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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31-03)

 


새로운 언약을 세우시는 하나님

예레미야 31장 23-40절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모세와 세운 언약이 지워지지 않도록 언약을 돌에 새겨서 주셨습니다. 하지만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우상숭배하고 있는 타락한 모습을 보고 십계명 돌 판을 깨뜨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언약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는 어떻게 해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언약을 어기지 않고 잘 지킬 수 있습니까?

 

  •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로 인해 깨어진 언약 관계를 새롭게 갱신하십니다. 언약 파기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기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습니다. 새 언약은 죄를 용서하심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새로운 관계 회복시키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도 재건시켜 주실 것도 약속하십니다.

 

유다를 회복시키실 하나님(23-26)

항상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지속적인 부자 관계를 이루어 가시길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은 암울한 죄악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관계가 깨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다시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23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그 사로잡힌 자를 돌아오게 할 때에 그들이 유다 땅과 그 성읍들에서 다시 이 말을 쓰리니 곧 의로운 처소여, 거룩한 산이여, 여호와께서 네게 복 주시기를 원하노라 할 것이며 24유다와 그 모든 성읍의 농부와 양 떼를 인도하는 자가 거기에 함께 살리니 25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였음이라 하시기로 26내가 깨어 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23-26)

 

항상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언약을 따라 살아가기보다는 죄악으로 가득한 암울한 모습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은 파기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물으신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혹독한 바벨론 포로가 징벌이긴 했지만, 하나님의 사랑으로 연단하는 과정이었습니다.

 

(1) 의로운 처소(23)

 

앞 15-20절이 주전 722년 앗수르에 멸망 당한 북왕국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주어진 말씀인 반면에, 본문 23-26절은 주전 587년 바벨론에 멸망당한 유다에게 주어진 말씀입니다. 심판을 받고 유배 갔던 유다의 운명을 여호와께서 되돌리실 것입니다. 고토로 돌아온 유배민들이 여호와의 축복 가운데 시온(과 가나안)에서 풍족하고도 평화롭게 살게 될 것입니다(23). ‘의로운 처소’는 여호와께서 당신께 순종하는 의로운 자들에게 구원을 베푸시는 장소를 의미합니다.

 

(2) 내적인 평안(24-25)

 

24-25절에서는 12-14절에서 시온에 주어진 축복의 약속이 유다로 확대됩니다. 시온을 중심으로 ‘유다와 그 모든 성읍’(성읍에 거주하는 자들)과 농부와 목자들이 함께 사이좋게 지냅니다. 지친 자들(‘피곤한 심령’)이 물을 마음껏 마시고 허약해진 자들(‘연약한 심령’)이 모두 배불리 먹습니다. 저주 아래 놓였던 땅이 여호와께서 복을 내리시는 의롭고 거룩한 땅이 됩니다.

 

(3) 외적인 안전(26)

 

26절의 ‘내가 깨어 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는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미래의 회복에 관한 말씀을 하나의 꿈이나 꿈에서 본 이상으로 해석해주는 말로 이해하기도 하지만, 이는 본문이 ‘꿈’이 아니라 ‘잠’을 말하고 있음을 무시한 이해입니다. ‘내 잠이 달았다’는 걱정 근심이 없는 평안한 삶의 표상입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구원은 먼 미래에 있을 사건이지만, 예레미야는 이를 이미 맛보고 있었습니다. 유배민들의 구원과 회복에 관한 약속은 예레미야의 단잠 안에서 벌써 현재화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심판의 극복(27-30)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으십니다. 범죄한 백성들을 심판하지만 돌아올 기회를 주십니다. 돌아온 자들에게 다시 회복시키는 복을 주십니다. 자신의 백성들에게 주신 징계는 심판이 아니라 회개와 구원입니다. 모든 것을 잃게 될 철저한 절망의 날이 지나고 회복과 소망의 날이 올 것입니다.

 

27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깨어서 그들을 뿌리 뽑으며 무너뜨리며 전복하며 멸망시키며 괴롭게 하던 것과 같이 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9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30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27-30)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새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그들을 다시 심으시고, 각 사람은 자신의 죄악을 인정하며 자기 자신을 비판할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나타내며, 하나님의 은혜와 회복의 약속을 나타냅니다.

 

⑴ 축복의 회복(27-28)

 

유배에서 돌아오는 것은 회복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전쟁과 멸망보다 더 힘겨운 것은 그 이후의 생존이었습니다. 파괴된 고향에 남은 자들은 황폐해진 땅을 일구며 힘겹게 생존을 이어가지만, 일상사가 된 굶주림과 질병 그리고 치안 부재에 따른 폭력과 약탈에 절망적인 삶을 벗어날 수 없었습니다. 생존을 위한 정치적·경제적·사회적 환경이 모두 남김없이 파괴됐기에, 아이들이 태어나더라도 살아남지를 못했습니다. 주민 수가 계속 줄어들어 민족의 유지조차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사라지고 있는데 여호와께서 주신 미래의 구원 약속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현실이 너무 절망적인데, 이는 이스라엘의 눈에만 그렇게 보일 뿐이고, 여호와께서 개입하시면 그냥 극복될 수 있는 절망입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뿌려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이 다시 번성하게 하실 것입니다. 생명을 끊으셨던 여호와께서 사람과 짐승의 생명력이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해주십니다. 주거지에는 사람이, 숲에는 짐승이 다시 많아집니다.

28절에 사용된 일곱 개의 부정사 가운데 다섯 번째 ‘괴롭게 하던’을 제외한 여섯 개는 1:10에도 나옵니다. 여호와와 예레미야의 일치를 보여줍니다. 전에 이스라엘의 심판을 지켜보셨던 여호와께서 이제 이스라엘의 구원을 지켜보십니다. 심판이 그분의 계획에 따라 집행됐던 것처럼 미래의 구원 또한 그분의 계획에 따라 그대로 이뤄집니다.

 

⑵ 죄책의 문제(29-30)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로 끌려가게 된 이유를 하나님께 대한 죄악의 보응이라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죄책의 문제를 다룹니다. 이스라엘의 멸망은 죄와 책임이라는 심각한 신학적 문제를 제기했습니다(참조. 겔 18장). 조상의 잘못으로 나라가 멸망했는데, 왜 그 멸망에 관여한 적이 없는 후손이 유배살이를 해야 합니까? 본문은 이에 대한 사변적 설명을 거절하고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내다볼 것을 권면합니다. 구원 시대에 각 개인은 자기 죄에 대해서만 책임을 집니다.

 

용서에 기초한 새로운 언약(31-34)

신앙생활을 하면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로 시험에 들 수 있습니다. 시험에 들도록 했던 원인을 제공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결국 시험에 들었던 사람은 바로 자신이란 것입니다. 믿음은 스스로 책임을 지려는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탓하며 자신의 책임을 떠넘겨서는 안 됩니다. 더 성숙한 사람들은 자신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상처받은 사람이 없을까라고 묵상해 보아야 합니다. 이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방법으로 제시해 주십니다.

 

3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32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4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알기 때문이라 내가 그들의 악행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4)

 

하나님께서 죄로 물든 이스라엘 백성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가길 원하셨습니다. 그 백성들이 잘못된 길로 갈 때, 예언자를 통해서 여러 차례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게다가 타락한 그들은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지킬 수 있는 능력도 점점 잊어버렸습니다.

 

(1) 새 언약의 채결(31)

 

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 백성의 불순종이 의지적이었음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들에게는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할 능력도 없음을 확인해주었습니다. 여호와의 용서와 은혜로 시내산 언약이 갱신된다고 해도, 이를 준수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이 없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본문은 이런 당혹스러운 질문에 대한 답변입니다. 여호와께서 계획하신 언약은 출애굽의 조상들과 맺은 시내산 언약(참조. 신 29:25)의 갱신이 아니라, ‘새 언약’입니다(31). 조건적인 시내산 언약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좌초했습니다.

 

(2) 옛 언약과 새 언약(32)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남편이셨음에도 이스라엘은 남편 여호와를 떠나 가나안에서 알게 된 간부 바알을 쫓았습니다(32). 아내 이스라엘이 결혼(언약)의 의무를 지속적으로 무시함으로써 여호와와의 결혼 관계가 파탄 났습니다.

 

(3) 새 언약의 내용(33-34)

 

새 언약에서는 시내산 언약의 경우처럼 의무 규정이 돌비에(참조. 신 9:9-16) 새겨지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의 법(가르침)을 각자의 가슴 속에 넣어주시고 각자의 마음에 기록해주십니다(33). 새 언약이나 시내산 언약이나 법이 주어진다는 점에서는 동일하지만, 전자에서는 법을 준수할 수 있는 필요조건마저 여호와께서 마련해주십니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여호와의 의지를 경험하게 됩니다. 마음이 여호와의 법을 기록하는 장소가 되기에 여호와의 법을 잊거나 무시하지 않게 되고, 여호와의 법을 잊거나 무시하지 않기에 언약관계가 파기되지 않고 영원히 유지됩니다. 물론 새 언약도 시내산 언약처럼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를 목표로 합니다. 각 사람의 마음에 여호와의 법이 각인돼 있기에 다른 사람에게서 그분의 법을 배울 필요가 없게 됩니다. 시내산 언약 시대에는 비천한 자나 지도자나 여호와의 길과 하나님의 법을 모르기는 마찬가지였는데(참조. 5:4-5), 새 언약 시대에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모두 여호와를 알기에 ‘너는 여호와를 알라’하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악행의 사함과 죄를 기억하지 않음은 새 언약 체결의 전체에 해당합니다. 여호와께서 일방적으로 죄의 용서를 선언하시고 이스라엘과 새 언약을 맺으십니다.

 

영원한 구원 의지(35-37)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창조를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지금까지도 조화롭고 질서정연하게 유지되게 하셨습니다. 새로운 언약을 통해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35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셨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정하였고 바다를 뒤흔들어 그 파도로 소리치게 하나니 그의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니라 36이 법도가 내 앞에서 폐할진대 이스라엘 자손도 내 앞에서 끊어져 영원히 나라가 되지 못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7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위에 있는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밑에 있는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내가 이스라엘 자손이 행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그들을 다 버리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5-37)

 

옛 언약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파기 되었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각 사람의 마음에 새겨진 새 언약은 파기 되지 않을 것입니다. 따라서 새 언약의 백성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는 흔들림 없이 확장되어 갈 것입니다.

 

⑴ 창조주 여호와(35)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 가운데 거하시며 통치하시는 입니다. 새로운 예루살렘의 재건될 것을 가리킵니다. 성내에서는 진정하는 통치자인 하나님께서 거하실 것입니다. ‘하나넬 망대’에서 ‘모퉁이 문’까지 건축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이것은 예루살렘 성 전체를 건축할 것이라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성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서 온전히 이루어질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⑵ 창조주 여호와의 약속(36-37)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도 신실하여 이스라엘을 영원한 나라로 세우실 것입니다. 어느 누구도 자기 백성을 지키시고 새롭게 지어가시는 깊은 지혜를 헤아릴 수 없습니다. 그분의 결단을 꺾지 못할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재건하실 약속(38-40)

하나님께서는 정하신 규칙에 따라 자연계의 질서가 유지되듯 이스라엘과 맺은 새 언약도 영속성을 지닙니다. 새 언약이 깨어지기란 자연 질서가 깨어지는 것만큼 불가능할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이 허물어져 사라질 일도, 이스라엘의 죄로 그들을 버릴 일도 없게ㅔ 될 것입니다.

 

38보라, 날이 이르리니 이 성은 하나넬 망대로부터 모퉁이에 이르기까지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9측량줄이 곧게 가렙 언덕 밑에 이르고 고아로 돌아 40시체와 재의 모든 골짜기와 기드론 시내에 이르는 모든 고지 곧 동쪽 마문의 모퉁이에 이르기까지 여호와의 거룩한 곳이니라 영원히 다시는 뽑거나 전복하지 못할 것이니라(38-40)

 

하나님께서는 이전의 언약과는 다른 새로운 성격의 언약을 주실 뿐 아니라 그것을 지킬 수 있는 힘도 주십니다. 이 새 언약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의지 표현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언약을 통해서 이스라엘이 영원토록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새 언약(31-34)과 새 백성(35-37)의 약속이 새 예루살렘(38-40)에서 정점에 달합니다. 예루살렘이 ‘여호와를 위하여’ 재건됩니다. 폐허가 된 예루살렘이 재건되고, 여호와의 성으로서의 특별한 지위가 재건된 성에 주어집니다. 지리적 언급이 일부 불분명하지만, 아마도 북쪽에서 서쪽을 거쳐 남쪽을 지나 동쪽 방향으로 기술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넬 망대’는 예루살렘 북쪽에(참조. 즉 14:10; 느 3:1), ‘모퉁이 문’은 서쪽(?)에(참조. 왕하 14:13; 슥 14:10), 가렙 언덕은 힌놈 계곡 북동쪽(?)에, 고아는 힌놈 계곡 북쪽과 기드론 계곡 서쪽(?)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체와 재의 모든 골짜기’는 예루살렘을 서쪽과 남쪽에서 둘러싸고 있는, 어린아이 희생제사가 드려졌던 도벳 사당이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를 가리키는 표현 같습니다. ‘기드론 시내’는 도성과 감람산 사이의 예루살렘 동남쪽에 있는 계곡의 이름입니다. ‘마문’(말들의 문)은 아마도 예루살렘 남동쪽 모퉁이에 있었던, 기드론 계곡으로 나아가는 문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묵은 언약을 파기시키고 새로운 언약을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 새로운 언약인 복음은 우리에게까지 주신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과 맺은 새로운 언약인 복음을 마음 판에 잘 새겨야 합니다. 새로운 언약 안에서 통치를 받아가면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담대하게 살아가면서 감사의 생활을 해나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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