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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31-02)

 


북 이스라엘을 회복시킨 것처럼

예레미야 31장 10-22절


 

성경에서는 두 가지 길인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이 있습니다. ‘생명의 길’은 좁고 힘든 고난의 길이며, ‘사망의 길’은 크고 넓고 평탄한 길처럼 보여 많은 사람들이 찾지만, 그 길은 ‘멸망의 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좁은 생명의 길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 길은 고난의 길이고, 어려운 길이고, 상처받는 길이지만, 그 길을 가야만이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 길을 갈 때, 교만을 꺾으시며 하나님의 아버지 사랑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온전한 회복 가운데 돌아갈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출애굽을 통해 회복을 말씀하셨습니다. 이제는 다시 북 이스라엘의 회복을 통해 회복시켜 주실 것을 확증시켜 주십니다. 그래서 그 백성들을 위해 새로운 날을 준비하시고 분입니다. 하나님의 손에 들려지면 모든 것이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고통과 슬픔이 변하여 희망과 기쁨이 될 것이며 새로운 날이 펼쳐질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회복의 약속(10-1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징계하신 분이지만 그 이스라엘을 다시 돌이켜서 회복하실 수 있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 손에 달려있는 것입니다. 지금 당신에게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하나님의 손에 당신의 문제들을 맡겨 드리고, 그 손을 꼭 붙잡으시길 바랍니다.

 

10열방이여 너희는 나 여호와의 말을 듣고 먼 섬에 전파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을 흩으신 자가 그를 모으시고 목자가 그 양무리에게 행함 같이 그를 지키시리로다 11여호와께서 야곱을 속량하시되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속하셨으니 12그들이 와서 시온의 높은 곳에서 찬송하며 여호와의 은사 곧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에 모일 것이라 그 심령은 물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 할찌어다 13그 때에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이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이켜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근심한 후에 기쁨을 얻게 할것임이니라 14내가 기름으로 제사장들의 심령에 흡족케 하며 내 은혜로 내 백성에게 만족케 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10-14)

 

하나님께서는 열방 끝까지 주님께서 야곱을 위해 이루실 일들을 전하라고 명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자가 되셔서 그들을 인도하시겠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의 멸망과 포로생활을 지켜본 모든 이방 나라들은 이스라엘 백성의 귀환과 회복을 보면서 증인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조롱했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증인으로서 이야기합니다.

 

(1) 유배민들의 해방(10-11)

 

민족들은 여호와께서 당신 백성을 위해 예비하신 구원의 소식을 듣고 먼 바닷가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야 합니다. 전에 당신 백성을 심판하시고 민족들 가운데 흩으셨던 여호와께서 이제 목자처럼 흩어졌던 자들을 다시 모아 보호하십니다(10; 참조. 6:3). 그분께서 야곱을 더 강한 자의 손에서 속량하십니다(11), ‘강한 자’는 바벨론 제국뿐만 아니라 폭력으로 약자를 짓밟는 악한 세력까지도 가리킵니다.

 

(2) 여호와의 복(12)

 

유배살이에서 벗어나 시온으로 돌아온 자들에게 여호와의 축복에 따른 풍요로운 삶이 약속됩니다(12).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과 어린 양의 떼와 소의 떼’를 여호와의 선물로 받습니다. 굶주림과 헐벗음이 사라지고 풍요로움과 기쁨이 그 자리를 대신합니다. ‘물 댄 동산’의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듯이 여호와의 성전에서 흘러나오는 축복으로 풍족하고 활기찬 삶을 살게 됩니다. ‘시온의 높은 곳’은 시온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을 가리킵니다.

 

(3) 돌아온 즐거움(13)

 

시온에 다시 축제가 돌아옵니다. 처녀가 춤추며 기뻐하고(참조, 출 15:20; 시 30:11), 젊은이와 노인들이 함께 즐거워합니다(13). 울며 돌아온 자들이(9) 기뻐 춤춥니다.

 

(4) 여호와의 복(14)

 

여호와의 복을 매개로 땅과 성전이 유기적으로 연결됩니다(14). 여호와의 복이 땅의 풍요로운 결실을 가져오고, 풍요로운 결실이 풍요로운 예물로 성전에 드려지고,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성전 제사가 여호와를 기쁘게 해 다시 땅의 축복으로 되돌아옵니다. 제사가 풍족하게 드려지기에 제사장들은 기름진 것을 배부르게 먹고(참조, 레 7:32-36), 땅의 결실을 성전에 제물로 드린 백성은 여호와의 축복으로 배부르게 됩니다.

 

라헬의 탄식과 여호와의 답변(15-17)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의 고난 중에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위로하시는 분입니다. 과거에 집착하지 않으시고 미래의 새로운 역사를 창조해 나가십니다. 당신은 과거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아래 내려놓으시고, 당신의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희망을 두고 살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15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그가 자식이 없으므로 위로 받기를 거절하는도다 16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 소리를 금하여 울지 말며 네 눈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 네 일에 갚음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 대적의 땅에서 돌아오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7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의 최후에 소망이 있을 것이라 너의 자녀가 자기들의 경내로 돌아오리라 18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함을 내가 정녕히 들었노니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매 멍에에 익숙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19내가 돌이킴을 받은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진고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20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노라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21처녀 이스라엘아 너를 위하여 길표를 세우며 너를 위하여 표목을 만들고 대로 곧 네가 전에 가던 길에 착념하라 돌아오라 네 성읍들로 돌아오라 22패역한 딸아 네가 어느 때까지 방황하겠느냐 여호와가 새 일을 세상에 창조하였나니 곧 여자가 남자를 안으리라(15-22)

 

본문에서는 라마에서 들려오는 통곡 소리를 묘사하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의 슬픔을 위로하고 그들을 다시 회복시키겠다고 약속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포로 생활이 끝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회개하고 돌아오는 것을 기뻐하며 그들을 사랑으로 맞이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1) 라헬의 탄식(15)

 

사자의 전언양식으로 시작하지만, 여호와의 메시지 대신 ‘한 소리’에 관한 서술적 언급이 나옵니다(15). 통곡하는 소리를 누가 보고하는지는 달리 언급하지 않습니다. 내용상 아마도 예언자가 인용해서 보고하는 것 같습니다.

 

(2) 여호와의 답변(16-17)

 

여호와께서 긍정적으로 반응하시지만(16-17), ‘들리니’는 직접 여호와를 향한 통곡이 아니었음을 시사해줍니다. ‘슬퍼하며 통곡하는’은 애도의 모습으로, 죽음으로 인한 슬픔임을 미리 보여줍니다. 통곡의 동기뿐만 아니라 장소와 주체도 구체적으로 제시됩니다. 라마에서 들리는 소리로 라헬이 자식들 때문에 우는 통곡입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북왕국은 주전 722년 앗수르에 멸망당했고, 많은 주민이 먼 땅으로 사로잡혀 갔습니다. 백 년 이상의 시간이 흘렀지만, 라헬의 절망적 처지는 조금도 바뀌지 않았습니다. 에브라임의 회복을 전혀 기대할 수 없기에 애곡할 뿐이었습니다. 자식이 죽어 위로받기를 거절하고 비통하게 울부짖는 라헬에게 여호와께서는 울음을 멈추고 눈물을 그치라고 위로하시며 자식들이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을 약속하십니다. 16절의 ‘네 일에 삯을 받을 것인즉’(네 수고에 보상이 있어)은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본문에서 찾아볼 수 있는 라헬의 일(수고)은 위로받기를 거절하고 통곡한 것뿐입니다. 라헬의 애도 행위를 일로 인정해주고 그 대가로 구원이 주어질 것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레미야는 어디에서도 구원을 수고의 대가로 선포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를 출생한 어머니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보상은 자녀의 건강한 성장과 복된 삶입니다. 마찬가지로 북왕국의 자식들을 낳은 라헬에게도 같은 보상이 주어지는데, 자식들이 죽지 않고 강건하게 성장해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너의 미래에 소망이 있어’는 유배의 종식과 관련한 약속입니다.

 

(3) 에브라임의 고백(18-19)

 

15절에서는 라마에서 한 소리가 들리는데, 18절에서는 여호와께서 직접 들으십니다. 특히 동사 ‘듣다’를 절대부정사와 함께 사용해 여호와께서 들으셨음을 최상급으로 강조합니다. 탄식의 주체는 에브라임으로, 현재의 문맥에서는 대적의 땅에서 유배살이 하는 라헬의 자식들을 가리킵니다. 여호와께서 인용하시는 에브라임의 고백은 전형적인 참회기도입니다. 에브라임은 먼저 자신의 불순종과 완고함을 시인하고 여호와의 징계가 정당했음을 인정합니다(18a). 여호와의 징계를 무시하고 완강하게 제 길을 가다가 멸망에 떨어졌던 에브라임이 마침내 징계를 받아들입니다. 실패한 것 같았던 여호와의 교육적 징계가 결국에는 의도했던 목표에 도달합니다.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길들지 않은 송아지)는 여호와의 가르침과 명령을 거절하고 오직 자기 결정에 따라 살아간 에브라임을 상징합니다(참조. 2:20).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에브라임은 여호와께 나아가 도움을 호소합니다. ‘저를 돌아가게 해주소서. 제가 돌아가고자 합니다’(18b절의 사역). 여호와를 배반한 결과로 징계를 받았기에 그분의 허락 없이는 돌아갈 수 없습니다. 회개가 구원의 전제 조건이 될 수는 있어도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에브라임의 돌아감은 이중적입니다. 유배지에서 고향으로 돌아감뿐만 아니라 여호와께로 돌아감도 여호와의 허락 아래서만 가능합니다. 여호와와의 관계 단절이 유배의 심판을 초래했기에 고향으로 돌아감과 여호와께로 돌아감은 하나의 사건이 됩니다. 에브라임은 자신의 지난 삶이 반역으로 얼룩진 삶이었음을 고백합니다. ‘내가 돌이킨 후에 뉘우쳤고 내가 교훈을 받은 후에 내 볼기를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지므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19). ‘후에’를 반복 사용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단절을 강조합니다. ‘돌이킨’은 회개보다는 배교를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볼기/허벅지를 치다’는 깊은 슬픔을 보여주는 제의적 행위입니다(참조. 겔 21:17). 에브라임은 여호와께 등을 돌리고 떠났다가 징벌을 당한 후에야 깨닫고 후회하며 볼기를 쳤고, 더 나아가 현재의 수치와 창피를 짊어져야 할 죗값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어렸을 때’는 멸망하기까지의 가나안에서의 삶을 가리킵니다.

 

(4) 여호와의 답변(20)

 

에브라임의 참회와 간구에 여호와께서 격정적으로 반응하십니다(20). 여호와께서 에브라임을 향한 주체할 수 없는 연민의 마음을 그대로 표출하십니다. 에브라임은 (파기될 수 있는) 언약 신학에 근거해 (18절의 ‘주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시니’) 호소했는데, 여호와께서는 (어떤 경우에도 되돌릴 수 없는) 아버지와 아들의 혈연관계로 답하십니다. 에브라임은 단순하게 아들이나 자식이 아니라,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입니다. 귀한 아들이기에 책망하는 순간에도 본능적으로 생각이 났습니다. 귀한 아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여호와의 맹목적 사랑이 절망적 처지에 빠진 에브라임에게 구원의 문을 열어줍니다. ‘내가 반드시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5) 예언자의 책망 어린 권면(21-22)

 

다섯 개의 명령문으로 이뤄진 21절은 현재의 문맥에서 18b절에 대한 답변입니다. 여호와를 대신하여 예언자가 처녀 이스라엘에게 돌아오도록 허락합니다. 여호와의 약속에 따라 이스라엘도 행동에 나서야 합니다. 유배지에서 고향으로 돌아가는 길은 먼 여정이기에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곁길로 빠져 길을 잃지 않게 선발대를 보내 이정표와 푯말을 세워놓고, 대로로 돌아와야 합니다. ‘네가 전에 가던 길’은, 이미 백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기에, 단순하게 유배지로 끌려갈 때 갔던 길만을 가리키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유배의 극복을 보여주는 신학적 함의를 갖고 사용된 표현 같습니다. 유배 길이 여호와에 의해 쫓겨나는 징벌의 길이라면, 귀향길은 그분에 의해 다시 받아들여지는 용서와 구원의 길입니다. 권면의 말씀 다음에 뜻밖에도 책망의 말씀이 나옵니다(22). 지금까지의 청자는 위로의 대상이었는데 여기서는 질책을 당합니다. 일부 유배민은 구원 약속에 적극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방황했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여호와와 고토로 돌아오라는 예언자의 선포를 거절했습니다. ‘반역한 딸’은 여호와의 구원 약속을 받아들이지 않은 자들의 부정적 정체성을 보여주는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용서와 관계 회복, 위로와 새 창조의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의 포로 귀환에서 선취됐으며, 궁극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베푸신 구원에서 온전히 성취됐습니다.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떠났던 우리를 용서하시고 자녀 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 안에 거하는 삶을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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