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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31-01)

 


하나님의 회복의 은혜와 축복

예레미야 31장 1-9절


 

부모와 자식 사이나 형제간에 저절로 우러나는 본능적인 애정인 끊을 수 없는 관계를 일컬어서 천륜지정(天倫之情)이라고 합니다. 이 정(情)에는 자녀들이 잘못을 한다고 하더라고 끝까지 용서할 수 있는 부모의 사랑이 담겨 있습니다. 유다를 향한 그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이와 같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포로된 사람들을 계속 위로하시면서 회복을 구체적으로 약속하십니다. 그 약속을 보증하시기 위해 과거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던 하나님의 사랑을 상기 시키면서 약속하십니다. 이곳에서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 끝없는 사랑이란 것을 맛볼 수 있습니다.

 

에브라임의 재건(1-6)

유다 백성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번 경고하셨지만 불순종은 계속되었습니다. 급기야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바벨론의 포로가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하나님계서 유다와 관계를 정리하실 법도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계속 아프게 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쉽게 유다를 버리실 수 없었습니다.

 

1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2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얻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3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 4처녀 이스라엘아 내가 다시 너를 세우리니 네가 세움을 입을 것이요 네가 다시 소고로 너를 장식하고 즐거운 무리처럼 춤추며 나올 것이며 5네가 다시 사마리아 산들에 포도원을 심되 심는 자가 심고 그 과실을 먹으리라 6에브라임산 위에서 파숫군이 외치는 날이 이를 것이라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나라 우리가 시온에 올라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로 나아가자 하리라(1-6)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람난 부인처럼 하나님이 아닌 다른 곳으로만 향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론 포로라는 특단의 조처를 내리셨던 것입니다. 그들은 바벨론 포로라는 피해의식 속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그 관계성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버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한결같은 사랑으로 영원히 자기 백성들을 사랑하신 분입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잊지 않도록 하십니다.

 

(1) 언약 관계의 회복(1)

 

앞 단락과 뒤 단락을 이어주는 가교의 역할을 담당하는 1절은 내용상 22절과 일치합니다. 이스라엘의 배반으로 파기됐던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관계가 다시 회복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모든 종족의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그분 백성이 됩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종족’은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가 혈연관계에 있는 친족임을 시사해줍니다. 회복된 언약관계에 처음처럼 온 이스라엘이 참여합니다. ‘그 때에’는 여호와께서 개입하셔서 새로운 구원 시대를 열어주실 미래의 어느 시점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30:8의 ‘그 날에’와 의미상 같습니다.

 

(2) 구원사의 회고(2-3)

 

미래의 구원을 선포하기에 앞서 출애굽에서 광야를 거쳐 가나안에 정착하기까지의 이스라엘 초기 구속사가 간략하게 언급됩니다. 이스라엘의 미래가 처음에 연결되면서, 과거의 구속사가 역사적 유물에 속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의 조상들과 함께하셨던 여호와께서 다시 민족들 가운데 흩어져 살이하는 유배민들과 함께하십니다.

2절은 출애굽과 광야를 회고합니다. ‘칼에서 벗어난’은 특히 애굽 왕 바로의 추격을 벗어나 홍해를 건넌 사건을 가리킵니다. 애굽을 탈출하는 데 성공한 이스라엘은 광야에서 여호와의 은혜를 경험했습니다. 오경 전통에 의하면 광야 사십 년은 출애굽 세대의 불순종이 초래한 징벌의 기간이지만, 예레미야에게는 이스라엘이 여호와만 따른 축복의 기간입니다.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는 출애굽의 목표가 가나안 정착임을 보여줍니다. 가나안은 여호와께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에게 안식처로 주신 땅입니다(참조. 신 12:9-10).(2절을 2a절에 걸리는 때의 부사절로 번역한 개역개정에 따르면) 3절은 아마도 2절에 언급된 광야의 은총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 같습니다. 여호와께서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셔서 ‘영원한 사랑으로’ 이스라엘을 사랑하시고 ‘인자함으로’ 이스라엘을 이끄셨습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스라엘을 향한 당신의 마음을 사랑(아하바)과 인자함(헤세드)으로 규정하십니다.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그분의 사랑은 일시적이 아니라 영원한 사랑입니다. 그분의 변함없는 신실함이 이스라엘의 부족함을 메꿔가면서 이스라엘을 영원한 사랑으로 감싸주었습니다. 사랑과 인자함(인애)은 2:2에서도 광야를 회고할 때 사용된 중심단어입니다.

다수의 입장은 2b-3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합니다. ‘이스라엘이 자기 안식처를 찾아 나섰을 때 먼 곳에서 여호와께서 그에게 나타나셔서 (말씀하셨다). “나는 너를 영원한 사랑으로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내가 너에게 인자함을 (계속) 베풀었다.”’ 이 경우 ‘여호와의 나타나심’(3)이 출애굽과 광야(2)와 가나안 도착(2b) 사이에 위치하게 되기에, 시내산 강림을 배경으로 읽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여호와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습니다. 언약 체결 가운데 계시된 그분의 사랑과 인자함은 가나안에 정착한 이후에도 계속됐습니다. 언약이 영원한 사랑과 인자함에 근거했음은 이스라엘과 유다의 멸망으로 언약관계가 완전히 끝장나지 않았음을 시사해줍니다.

 

(3) 회복의 약속(4-5)

 

시선이 이스라엘의 처음에서 현재로 옮겨집니다. 출애굽 세대가 경험했던 해방의 구속사와 영원한 사랑과 인애함이 앗수르(와 바벨론)에 멸망당한 이스라엘과 유다)의 회복을 가능하게 해줍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시기에 이스라엘이 세워지고, 사람들이 다시 소고를 들고 흥겹게 춤을 추며 나오고, 다시 사마리아 산마다 포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즐기게 됩니다(4-5). 멸망한 이스라엘이 재건되고 사람들은 다시 삶의 기쁨과 즐거움을 되찾습니다. ‘심은 자가 그 열매를 따기 시작하리라’는 구속받지 않는 자유로운 삶의 표상입니다. 땅의 결실이 더는 검령군의 손에 넘겨지지 않고 씨를 뿌린 자가 그 열매를 먹게 됩니다. 포도나무는 4b절의 축제와 관련해 선택된 것 같습니다. 포도주는 축제와 기쁨을 상징합니다. 4절에 두 번, 5절에 한 번 사용된 ‘다시’는 앞으로 있을 구속사건이 제2의 출애굽 사건임을 시사해줍니다.

 

(4) 시온으로의 순례(6)

 

이스라엘의 회복에서 시온으로의 순례로 주제가 바뀝니다. 예전 북왕국의 중심에 속하는 에브라임 산지의 주민들에게 파수꾼들이 일어나 여호와께서 현존하시는 시온으로 올라가자고 외칩니다(6). 이스라엘의 정치적 회복이 곧 종교적 회복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여호와는 (재건된 성전이 있는) 시온에서만 만날 수 있고, 시온 이외의 지역에서는 여호와께 예배드릴 수 없습니다. 시온에 계신 여호와가 회복된 에브라임 산지의 주민들이 찾아야 할 하나님입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솔로몬 사후에 다윗이 유산으로 물려준 통일 왕조가 더 이상 유지되지 못하고 남과 북으로 분열됐습니다. 북쪽 지파들과 남쪽의 유다 지파가 정치적으로뿐만 아니라 종교적으로도 각자의 길을 갔습니다. 이스라엘 왕으로 세움을 받은 여로보암(926-907)은 자기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을 찾지 못하도록 그 대항마로 벧엘과 단에 국가 성소를 세웠습니다(참조. 왕상 12:25-33). 멸망하기까지 이스라엘은 벧엘 성소에서 예배를 드렸고, 유다는 켈엘 성소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예레미야는 정치적·종교적으로 분열됐던 남·북 왕조가 여호와의 성전이 있는 시온을 중심으로 다시 결합하게 될 것을 내다봅니다.

 

유배민의 귀향(7-9)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에게 그랬듯이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며 우리는 그분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의 보혈로 값주고 사신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로서 당신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아버지의 말을 믿고 따르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따르고 있습니까?

 

7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야곱을 위하여 기뻐 노래하며 만국의 머리 된 자를 위하여 외쳐 전파하며 찬양하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 8보라 내가 그들을 북편 땅에서 인도하며 땅 끝에서부터 모으리니 그들 중에는 소경과 절뚝발이와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이 함께하여 큰 무리를 이루어 이곳으로 돌아오되 9울며 올 것이며 그들이 나의 인도함을 입고 간구할 때에 내가 그들로 넘어지지 아니하고 하숫가의 바른 길로 행하게 하리라 나는 이스라엘의 아비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7-9)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모으시고 그들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흩어진 자들을 모아 안전하게 인도하시며,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시고 강과 평탄한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구원의 약속을 강조합니다.

 

(1) 예언자의 찬양 요청(7)

 

흩어진 자들의 귀향을 약속하시기에 앞서 여호와께서 찬양을 권면하십니다. ‘너희는 야곱에게 기쁨으로 환호하라. 민족들의 (우두머리에게 환성을 질러라’(7a). 야곱이 민족들의 우두머리로 선포됩니다. 야곱이 심판받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여호와에 의해 선택된 야곱의 특별한 지위가 폐지된 것은 아닙니다. 야곱은 민족들 가운데 첫째로, 예나 지금이나 여호와께서 베푸시는 영원한 사랑과 인자의 대상입니다. 원래 찬양의 권면 다음에는 찬양의 동기로 여호와의 구원 행위에 관한 언급이 나오는 것이 일반적인데(참조. 사 44:23;48:20;49:13;54:1), 여기서는 다시금 간청이 등장합니다.

‘너희는 전파하며 찬양하며 말하라 여호와여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구원하소서 하라’(7b). 여호와의 구원 행위가 아직 미래에 속하지만, 그분의 취소될 수 없는 결정으로 반드시 성취될 것을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일차적으로는 민족들 가운데 흩어져 유배살이 하는 옛 북왕국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유다의 경우처럼(24장) 이스라엘에서도 유배민이 남은 자가 됩니다. 찬양과 간구의 명령을 받는 ‘너희’의 정체는 불분명합니다.

 

(2) 여호와이 구원 선포(8-9)

 

여호와의 구원 행위에 세계사적 지평이 주어집니다. 여호와께서 북쪽 땅과 땅 끝에서, 앗수르와 바벨론에서,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불러 모으십니다. 가나안까지 멀고 험난한 길이지만, 보행조차 힘든 사람까지도 모두 안전하게 귀환합니다(8). ‘맹인과 다리저는 사람과 잉태한 여인과 해산하는 여인’은 여행은커녕 제 힘으로 걷기도 힘든 자들로, 귀향이 철저하게 여호와의 은총에 근거함을 보여줍니다. 그분께서는 한 사람의 낙오자가 없도록 위험이 없는 평탄한 길로 인도하시고, 유배민들은 기쁨과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돌아옵니다(9). 이스라엘의 구원은 여호와와 이스라엘 사이의 특별한 관계에 기인합니다. ‘나는 이스라엘의 아버지요 에브라임은 나의 장자니라’(9b; 참조. 2:3). 끊임없이 반역했음에도(참조. 3:19-20;4:22)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아버지이시기에 구원의 문이 열립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일시적으로는 일그러질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완전히 끝장나지는 않습니다. 아버지의 진노가 아버지의 사랑과 인자함 앞에 무장해제를 당합니다. 에브라임의 장자권은 유다보다는 민족들과 관련한 표현으로(7), 에브라임/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지으신 민족들 가운데 첫째로 그분의 맏아들입니다. 또 장자의 신분은 출애굽 사건을 시사해주기도 합니다(참조. 출 4:22-23; 호 11:1).


우리의 삶에서도 어려움과 고난이 있을 수 있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잊지 않으시고, 우리를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모으시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시며, 평탄한 길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약속을 기억하며, 그분께서 주시는 희망과 평안을 붙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주시고, 안전하게 인도하시는 선한 목자이십니다. 이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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