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36-01)
두루마리에 기록된 말씀
예레미야 36장 1-19절
지도자의 중요성은 누누이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습니다. 그 지도자의 리더십에 따라 그가 속한 조직이 좌우되기 때문입니다. 리더십 부재의 지도자는 조직원들의 방종과 혼란을 불러옵니다. 영적인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가 경험과 지혜가 많으면 좋겠지만, 가장 중요한 지혜는 여호와를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은 나라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남 유다가 회개하길 원하시면서 여호야김 시대를 향해 말씀을 기록하고 권하십니다. 예레미야는 붙잡혀 있었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동역자인 바룩을 통해 대신 기록하도록 한 후, 그 내용을 백성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읽어줍니다.
말씀을 백성들에게 낭독됨(1-8)
종교 지도자들이 권위로 행세하면서 외형적인 형식과 의식으로 자신들을 치장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보다 사람들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기를 바랐습니다. 거짓과 위선으로 얼마든지 다른 사람을 속일 수도 있을 뿐 아니라, 자기기만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이 같은 위선적인 삶에 대해 하나님께서는 가차 없이 책망하신 것입니다.
1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제사년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2너는 두루마리 책을 가져다가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모든 나라에 대하여 내가 네게 일러 준 모든 말을 거기에 기록하라 3유다 가문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 한 모든 재난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리니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용서하리라 하시니라 4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5예레미야가 바룩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나는 붙잡혔으므로 여호와의 집에 들어갈 수 없으니 6너는 들어가서 내가 말한 대로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을 금식일에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하고 유다 모든 성읍에서 온 자들의 귀에도 낭독하라 7그들이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며 각기 악한 길을 떠나리라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선포하신 노여움과 분이 크니라 8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에게 명령한 대로 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책에 있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니라(1-8)
심판을 초래한 이스라엘의 범죄가 한 사람의 범죄가 아니라 왕에서부터 백성에 이르기까지 나라 전체가 총체적으로 부패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여호야김 왕의 타락을 잘 소개하면서 한 나라의 지도자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다시 한 번 보여줍니다.
⑴ 말씀을 기록케 받은 예레미야(1-4)
본문에 나타난 시기는 ‘여호야김 제 4년’(주전 605년; 25:1)입니다. 이 때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왕이 갈그미스 전투에서 애굽을 대파하고 시리아와 팔레스틴 지역 통치권을 손에 넣은 해입니다. 예레미야가 오래전부터 선포했던 여호와의 재앙이 북쪽에서부터 구체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기가 이 해입니다(1:13-14). 바벨론이 근동의 패권을 장악하는 시점에 예레미야는 여호와로부터 명령을 받습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두루마리 책을 가져와 그에게 이른 모든 말을 기록하게 하십니다(2). 문맥상 말씀의 기록은 심판의 확정성을 보여줍니다. 3절에서는 유다의 회개에 대한 여호와의 막연한 기대가 동기로 언급됩니다.
25:3에 의하면 예레미야는 요시야 왕 13년부터 오늘까지 23년 동안,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참조 1:2-3). 25:1에 의하면, 오늘은 유다의 왕 요시야의 아들 여호야김 4년이 됩니다. 요시야는 남 유다의 역사 상 가장 하나님을 섬겼던 신실한 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우상과 산당을 제거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아들인 여호야김은 아버지가 없앤 우상과 산당을 다시 지었습니다.
그동안 입술로만 선포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요시야 때부터 이제껏 이스라엘과 유다, 열방을 향해서 말씀하신 것을 두루마리 책에 낱낱이 기록하게 하십니다. 두루마리에 기록할 내용의 시간적·공간적 범위가 제시됩니다.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모든 나라에 대하여,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에게 이르신 말씀입니다. 유다의 회개에 대한 여호와의 긍정적 기대감을 담고 있는 말씀이 아닙니다. 돌이키지 않으리라는 것을 아시지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백성을 끝까지 포기하실 수 없는 그분의 절망적 안타까움의 표현입니다. 여호와께서 재앙을 내리시기로 했다는 말을 듣고 혹시 악한 길에서 돌이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유다의 악과 죄를 용서해주고 싶으신 여호와께서는 유다가 마지막 가능성을 뿌리치지 않고 당신께로 돌아오기를 간절히 기다리십니다. ‘길’을 수식 하는 ‘악한’과 ‘재난’은 히브리어로는 동일합니다. 재난은 한편으로는 악한 길에 대한 여호와 징벌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악한 길의 필연적 결말입니다.
악한 길은 운명처럼 재난을 초래하는 길입니다. 말씀을 기록하라는 여호와의 명령을 받은 예레미야는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불러 자기가 불러주는 대로 두루마리 책에 받아 적게 합니다(4). 네리야의 아들 바룩은 예레미야의 동역자로서 끝까지 그와 함께합니다(참조. 43:3, 6). 그 시기는 예레미야가 예언자로 부름을 받은 627년부터 605년까지 선포한 말씀이 고스란히 두루마리 책에 기록합니다. 예레미야서의 현재 구조에 따르면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한 말씀은 1-20장에서 ‘모든 나라’에 대한 말씀은 46-51장에서(참조. 46:2)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포기할 수 없어서 끝까지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남 유다의 악과 죄를 용서하고 싶으신 여호와께서 이제 마지막 가능성을 뿌리치지 않고, 돌아오길 간절히 기다리고 계신 것입니다.
⑵ 말씀을 대신 기록한 바룩(5-8)
예레미야가 하나님의 입이었다면, 예레미야의 손과 입이 되어준 신실한 동역자 ‘바룩’이었습니다. 그는 예레미야가 불러준 대로 두루마리에 받아 적었습니다. 바룩을 ‘서기관’으로 부릅니다(26,32). 전문적인 직업교육을 받은 서기관은 비교적 높은 지위에 속한 자로 주로 왕궁에서 고위관료로 활동했습니다.
그동안 선포된 예언으로도 이미 충분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을 기록하게 하신 이유는 두루마리에 기록된 말씀을 통해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또 두루마리에 기록된 말씀은 그냥 입으로 들려지는 말씀보다 더 정확하고 분명하게 전달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붙잡혀서 자유롭게 다닐 수 없으니, 예레미야는 신실한 바룩에게 말씀을 기록하라고 명합니다.
5-7절의 말씀은 기록의 배경과 동기를 보여줍니다. 성전에 들어갈 수 없게 된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대신 성전에 가서 그가 불러준 대로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을 금식일에 낭독하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와의 성전은 여호와의 말씀을 선포하기에 최적의 장소였고(참조 7:2, 19:14, 26:2),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금식일은 최상의 시점이었습니다. 성전에 모인 자들은 금식을 위해 유다 모든 성읍에서 온 자들이었습니다. 바룩이 성전에서 낭독한 말씀은 모든 유다 백성이 들어야 할 말씀이었습니다. 어떤 이유에서 예레미야가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는지는 달리 언급하지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아직 행동의 자유를 빼앗기지 않았기에 ‘붙잡혔으므로’는 ‘제한받고 있어’로 옮기는 것이 좋습니다. 예레미야는 소란을 일으키는 자로 제사장에 의해서 성전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금지를 당했던 것입니다.
7절은 내용상 3절의 반복입니다. 하나님께서 ‘행여 그들의 기도가 여호와 앞에 올라가고 그들이 저마다 제 악한 길에서 돌아설지도 모른다.’라고 기대하셨다는 것입니다. 유다 백성의 회개는 예레미야에게도 막연한 희망 사항이었습니다. 가능성이 없음을 아시면서도 여호와께서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예레미야도 실낱같은 소망에 몸을 던집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크신 노여움과 분에서 회개의 이유라고 찾습니다.
그 말씀대로 회개하지 않은 이스라엘은 멸망했고, 그 말씀대로 절대 무너질 것 같지 않았던 앗수르 제국이 무너지고 애굽도 패하고 바벨론이 새롭게 중동의 패권을 차지했습니다(주전 605년). 그러니 유다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 말씀대로 바벨론에 붙이실 것임을 깨닫게 하고 싶으셨으며, 유다라도 악한 길에서 돌아서서 죄사함을 받기를 바라셨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타오르는 진노를 누그러뜨리기 위해서는 속히 악한 길에서 떠나서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바울은 예레미야의 명령을 그대로 수행합니다(8). 악한 길에는 반드시 재난이 따를 것입니다. 기록된 말씀을 우리에게 남겨두신 뜻도 이것일 것입니다. 말씀을 묵상하여 주님을 만남으로써 내가 선 자리와 가는 방향이 주께서 앞서 가신 길이고 동행하고 계신 길인지 확인합시다.
낭독된 말씀과 그들의 반응(9-19)
복음은 모두에게나 복음이 아닙니다.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고 위협적인 메시지입니다. 회개한 자에게는 불온한 소식이기에 말씀 선포자는 항상 위태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복음의 전달자로 우리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기록하고 낭독하고 전달해야 합니다.
9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의 제오년 구월에 예루살렘 모든 백성과 유다 성읍들에서 예루살렘에 이른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앞에서 금식을 선포한지라 10바룩이 여호와의 성전 위뜰 곧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새 문 어귀 곁에 있는 사반의 아들 서기관 그마랴의 방에서 그 책에 기록된 예레미야의 말을 모든 백성에게 낭독하니라 11사반의 손자요 그마랴의 아들인 미가야가 그 책에 기록된 여호와의 말씀을 다 듣고 12왕궁에 내려가서 서기관의 방에 들어가니 모든 고관 곧 서기관 엘리사마와 스마야의 아들 들라야와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사반의 아들 그마랴와 하나냐의 아들 시드기야와 모든 고관이 거기에 앉아 있는지라 13미가야가 바룩이 백성의 귀에 책을 낭독할 때에 들은 모든 말을 그들에게 전하매 14이에 모든 고관이 구시의 증손 셀레먀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여후디를 바룩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한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오라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그들에게로 오니 15그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앉아서 이를 우리 귀에 낭독하라 바룩이 그들의 귀에 낭독하매 16그들이 그 모든 말씀을 듣고 놀라 서로 보며 바룩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모든 말을 왕에게 아뢰리라 17그들이 또 바룩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그가 불러 주는 이 모든 말을 어떻게 기록하였느냐 청하노니 우리에게 알리라 18바룩이 대답하되 그가 그의 입으로 이 모든 말을 내게 불러 주기로 내가 먹으로 책에 기록하였노라 19이에 고관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너는 가서 예레미야와 함께 숨고 너희가 있는 곳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니라(9-19)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유다가 돌아오길 간절하게 원했습니다. 그는 제사장들에 의해서 성전 출입 금지로 인해 성전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예레미야는 자신 대신에 동역자인 서기관 바룩으로 하여금 성전에서 예레미야에게 전해진 여호와의 말씀을 낭독합니다.
⑴ 선포의 배경(9)
9-10절은 내용상 6절의 구체적 설명에 해당합니다. ‘여호야김의 제오년 구월’에 예루살렘에서 금식이 선포됩니다. 특이하게도 왕이 아니라 ‘예루살렘 모든 백성과 유다 성읍들에서 예루살렘에 이른 모든 백성’이 금식 선포의 주체로 등장합니다.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백성의 주도로 자발적 금식이 거행됩니다. ‘여호야김의 제오년 구월’은 604년 11/12월에 해당합니다. 주전 605년 9월 7일 바벨론에서 왕위에 오른 느부갓네살은 곧 시리아로 돌아와 주변을 종속시키고 주전 604년 12월에 아스글론 원정을 떠나 하나씩 성을 점령합니다.
예루살렘과 유다가 아스글론까지 진출한 바벨론 군대를 보고 혼란과 두려움에 빠져 금식을 선포했다면 예레미야는 아스글론의 멸망에서 예루살렘의 위기를 보고 특히 예루살렘 왕궁이 긴박한 현실을 직시하도록 호소하기 위해 두루마리를 성전에서 낭독한 것 같습니다.
⑵ 서기관 미가야의 반응(10-13)
바룩이 성전 위 뜰에 있는 사반의 서기관 그마랴의 방에서 두루마리에 적힌 말씀을 모두 백성에게 낭독합니다(10). 그마랴는 서기관 사반의 아들입니다. 그마랴의 방에서 예레미야의 말을 낭독했음은 그마랴가 예레미야에게 우호적이었음을 시사해줍니다. 26:24에 의하면 사반의 아들 아히감이 예레미야를 여호야김 왕의 손에서 지켜줍니다.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는 못했지만(31), 성과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자발적으로 금식을 선포한 백성은 말씀에 무관심했지만, 일부 서 기관들이 긍정적으로 반응합니다. 백성의 귀에 낭독된 두루마리의 말씀이 그마랴의 아들 미가야에 의해 고관들의 귀에 알려지고, 뒤이어 왕의 귀에도 들려지게 됩니다.
두루마리에 적힌 ‘예레미야의 말’의 중요성을 인지한 미가야는 지체하지 않고 행동합니다(11). 그는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으로 가서 그곳에 모인 모든 고관에게 이 사실을 알립니다(12-13). 고관들 가운데 다섯 사람의 이름이 소개됩니다. ‘서기관 엘리사마와 스마야의 아들 들라야와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사반의 아들 그마랴와 하나냐의 아들 시드기야로’ 이들 가운데 세 사람의 이름은 25절에 다시 나옵니다.
⑶ 왕궁 서기관들의 반응(14-19)
미가야의 보고를 들은 고관들도 즉각적으로 반응합니다. 이들은 여후디를 바룩에게 보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고, 두루마리를 손에 들고 온 바룩에게 낭독해주기를 청합니다(14-15). 유다 사람을 의미하는 ‘여후다’(14, 21, 23)의 경우 특이하게도 삼 대에 걸쳐 집안을 소개합니다. 미가야가 바룩의 낭독을 듣고 상황의 위중함을 감지했던 것처럼 고관들도 두루마리의 심각성과 중요성을 알아챕니다. 바룩이 읽어주는 말씀을 다 들은 고관들은 놀라 서로를 쳐다보다가 왕에게 보고하기로 합니다(16). 두루마리에 적힌 말씀은 누구보다도 왕이 알아야 할 말씀이었습니다. 두루마리의 내용에 관해서는 달리 언급하지 않습니다(29). 왕에게 보고하기에 앞서 고관들이 바룩에게 두루마리에 적힌 말씀의 출처에 관해 묻자(17), 바룩은 예레미야가 직접 입으로 불러주는 것을 받아 자신이 먹으로 기록했다고 말합니다(18). 말씀의 기원이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있음을 강조합니다(10). 왕의 폭력적 성품을 잘 알고 있던(참조, 22:13-19) 고관들은 바룩에게 예레미야와 함께 아무도 모르는 곳에 숨어 있도록 충고합니다(19). 많은 사람이 예레미야에게 적대적이었지만, 예루살렘 성전과 왕궁에 예레미야를 도와주는 사람이 일부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들을 통해 예레미야에게 하신 구원 약속(참조, 13,19)을 지켜 나가십니다. 26절은 고관들의 예상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26:21-23에 따르면 ‘예레미야의 모든 말과 같이 이 성과 이 땅에 경고하여 예언한’ 예언자 우리야가 애굽으로 피신하자 여호야김은 사절을 보내 그를 애굽에서 데려다가 처형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 많으셔서 심판 가운데서도 백성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용서해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그 사랑을 알고 있는 우리도 그렇게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참고자료가 아닙니다. 정보가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회개한 자에게는 두렵고 기쁜 소식이지만, 거부하는 자에게는 불온한 소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복음의 전달자로 우리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기록하고 낭독하고 전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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