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48-04)
심판 그리고 회복의 여망하는 모압
예레미야 48장 36-47절
오늘날 교회들이 안고 있는 문제점들은 ‘참된 제자’인 ‘일꾼’이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많이 세워지고 성도들은 모여 드는데, 일꾼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된 제자’가 된다는 것은 말씀을 체계적으로 배우는 수준이 아닙니다. ‘참된 제자’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입니다. 그렇지 아니하면 가식적인 종교인을 뿐이며 하나님의 심판에 면치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판하시고 멸망하실 때는 아주 철저하고 냉정합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질그릇처럼 여겨 깨뜨리실 것입니다. 하지만 그곳에도 작은 희망의 불씨는 남기십니다.
- 교만한 모압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할 정도로 철저히 심판하실 것입니다. 모든 즐거움과 기쁨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애곡 소리가 대신합니다. 그모스를 섬기던 백성이 자기 신들과 함께 모두 사로잡혀 유배를 떠납니다. 더 이상 한 민족을 이루지 못하도록 사라질 것입니다. 그모스를 섬기던 백성이 자기 신들과 함께 모두 사로잡혀 유배를 떠널 것입니다.
모압을 위한 탄식(36-39)
세상에 하나님보다 더 크고 강한 것은 없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보다 더 크다고 생각하며 능력과 재산을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모든 자랑거리들은 통곡거리들로 바뀔 것입니다. 언젠가는 반드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교만한 모압을 향해 깨진 항아리처럼 산산조각 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36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피리 같이 소리 내며 나의 마음이 길헤레스 사람들을 위하여 피리 같이 소리 내나니 이는 그가 모은 재물이 없어졌음이라 37모든 사람이 대머리가 되었고 모든 사람이 수염을 밀었으며 손에 칼자국이 있고 허리에 굵은 베가 둘렸고 38모압의 모든 지붕과 거리 각처에서 슬피 우는 소리가 들리니 내가 모압을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 같이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9어찌하여 모압이 파괴되었으며 어찌하여 그들이 애곡하는가 모압이 부끄러워서 등을 돌렸도다 그런즉 모압이 그 사방 모든 사람의 조롱거리와 공포의 대상이 되리로다(36-39)
모압과 암몬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딸들에게 난 아들에게서 시작된 나라들입니다. 이스라엘과는 형제 나라입니다. 남쪽의 에돔은 에서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들로서 형제의 나라입니다. 이들은 큰 나라는 아니었지만, 비옥한 땅에서 안정된 삶을 누렸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숭배를 일삼은 그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모압에 대한 심판은 다른 나라보다 긴 것이 특이합니다.
⑴ 탄식(36)
모압을 멸망하지만 그 멸망한 모습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머음은 좋지 않습니다. 적들의 침략으로 모압이 황폐해졌기에 여호와께서 탄식하십니다.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피리 같이 소리 내며 나의 마음이 길헤레스 사람들을 위하여 피리 같이 소리 내나니 이는 그가 모은 재물이 없어졌음이라’(36)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분의 공익에 따라 모압을 심판하기로 결정하셨지만, 모압의 멸망은 그분께도 가슴 아픈 일이었습니다. 그분의 마음이 모압 때문에 피리처럼 슬피 울고, 그분의 마음이 길헤레스 사람들 때문에 피리처럼 슬피 웁니다(36a; 참조. 31a). 애곡의 대상을 ‘모압’ 대신 ‘길헤레스 사람들’로 바꾼 것을 제외하면 두 문장은 거의 문자적으로 일치합니다. 슬픔을 강조하기 위한 반복입니다. 애곡을 피리 소리에 비유하는 경우는 여기가 유일합니다(참조, 마태복음 9:23). 피리는 원래 축제 때 사용하는 악기였습니다(참조. 사무엘상 10:5; 열왕기상 1:40; 이사야 5:12; 30:29). 아마도 애곡의 강렬함을 표현하기 위해 피리에 비교한 것 같습니다. 또 애곡의 주체로 여호와의 마음이 등장합니다. 히브리적 사고에 따르면 마음은 판단과 이성의 자리입니다. 모압의 멸망을 결정한 그분의 마음이 멸망에 떨어진 모압 때문에 슬피 웁니다. 다시금 여호와의 심판 결정이 가슴 아픈 결정이었음을 시사해줍니다.
‘소리 내다’는 31:20b에서는 여호와의 ‘창자’를 주어로 사용합니다. 심판을 당한 에브라임을 생각하실 때마다 그분의 창자가 동요하는 것처럼 멸망에 떨어진 모압 때문에 그분의 마음이 동요합니다. 심판에 떨어진 이스라엘과 모압을 바라보는 그분의 마음이 다르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후반절은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여호와의 애곡이 모압의 약탈을 초래합니다. 논리적으로 보면 순서가 뒤바뀐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피상적 이해입니다. 여호와의 애곡은 모압의 멸망이 확정됐음을 보여주고, 이런 면에서 심판 선언이 됩니다. 여호와께서 모압의 심판을 결정하셨기에 모압은 애써 모아놓은 자랑거린 재물을 약탈당합니다.
⑵ 깨뜨려진 그릇(37-38)
사람들이 모압의 멸망을 죽음으로 보고 애곡합니다(37-38a; 참조. 이사야 15:2-3), 머리를 밀고 수염을 깎고 몸에 상처를 내고 허리에 굵은 베를 두르는 행위는 사람이 죽었을 때 슬픔과 고통을 표현하는 전형적인 애도 의식에 속합니다. 재난이 전면적이라 개별적으로 애도하지 않고, 주민들이 모두 힘을 합쳐 애곡에 참여합니다. 다들 집에서 나와 지붕이나 광장에서 애곡합니다.
아무도 모압에 임한 재난에서 안전하게 벗어나지 못합니다. 필요없는 그릇을 부스는 것처럼 멸망시킵니다. 죽은 자가 없는 집이 없습니다. 모압의 주민들이 모두 공개적 장소에서 국가적 위기를 애곡할 때는 이유가 없지 않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아무도 좋아하지 않는 그릇)처럼 모압을 부수시기 때문입니다(38b).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은 22:28에서는 바벨론으로 유배된 유다 왕 여호야긴(고니야)에게 적용된 표현입니다. ‘깨뜨리다, 부수다’를 의미하는 동사 샤바르(שבר)는 48장에 네 번 사용됩니다. 여호와께서 모압을 부수셨기에 모압의 ‘아름다운 지팡이’(17)와 ‘그 팔’(25)과 ‘모압’(4절)이 부서집니다. 19:10-11에서 예레미야는 토기장이의 그릇(옹기)을 깨뜨리는 표적행위를 통해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부수실 것을 선포했습니다. 잘못 만들어진 옹기처럼 예루살렘과 유다를 부수신 여호와께서 모압을 쓸모없는 그릇처럼 부수십니다.
⑶ 조롱거리가 된 모압(39)
다시 한 번 탄식의 소리가 들립니다. 사람들은 모압의 파괴를 애곡하고, 모압은 수치스러워 등을 돌립니다(39a; 참조. 1,20). ‘등을 돌리다’는 도망하기 위해 돌아서는 행동이나 자리를 떠날 수밖에 없는 심한 모멸감의 표현입니다. 수치를 당한 모압이 주위 모든 민족에게 ‘조롱거리와 공포의 대상’이 됩니다(39b). ‘모압에게 취하도록 술을 먹여 조롱거리가 되게 하라’(26)는 여호와의 명령대로 모압은 민족들의 조롱거리로서 성취되고 있습니다. 내던져진 그릇이 조각조각 깨지듯이 모압이 너무도 처참하게 파괴되기에 민족들은 멸망당한 모압을 보고 공포를 느낍니다. 모압의 상황이 극에 달하여 곳곳에서 사람들이 슬픔으로 울부짖고 큰 혼란 속에 빠지면서 모압 백성은 물론이고 하나님 역시 모압의 상황을 가슴 아프게 여기시고 함께 슬퍼하십니다. 특히 모압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밀어 대머리를 만들고 수염을 깎으며 손에 상처를 내고 허리에 베옷을 걸치는 등 사람이 죽었을 때, 슬픔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재난에 대해 탄식하는 모습이 독특하게 그려집니다.
피할 수 없는 심판(40-44)
하나님을 거스르는 만용보다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 세상을 거스르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재건될 수 없는 멸망할 나라를 위하여 살지 말고 영원히 흔들 수 없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모압이 다시는 재건되지 못할 만큼 철저히 파괴될 것입니다.
40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가 독수리 같이 날아와서 모압 위에 그의 날개를 펴리라 41성읍들이 점령을 당하며 요새가 함락되는 날에 모압 용사의 마음이 산고를 당하는 여인 같을 것이라 42모압이 여호와를 거슬러 자만하였으므로 멸망하고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로다 4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압 주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닥치나니 44두려움에서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떨어지겠고 함정에서 나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내가 모압이 벌 받을 해가 임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40-44)
모압에 내리실 재난을 다루는 마지막 단락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압을 쳐부술 적군을 묘사하는 말로 시작하여 교만한 모압이 겪을 무력함과 절망을 예고하시며 재앙을 결코 피할 수 없음을 확고히 하십니다. 그렇지만 그것으로 끝나지 않고 모압에게도 회복의 기회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다양한 비유적 표현을 사용해 모압의 피할 수 없는 멸망을 기술합니다.
⑴ 모압의 멸망(40-41)
먼저 모압을 침략하는 적군이 독수리에 비유됩니다. 적이 독수리처럼 날아와 모압을 향해 날개를 폅니다(40). ‘편 날개’는 보통 보호를 상징하지만(출애굽기 25:20; 신명기 32:11), 여기서는 신속함과 위협의 표상입니다. 독수리에 비유된 적이 누구인지는 달리 언급하지 않습니다. 에스겔 17:3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색깔이 화려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에 비유합니다. 또 신명기 28:49에 의하면 이스라엘이 배반하면 여호와께서 멀리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가 날아오는 것 같이, 오게 해서 이스라엘을 치게 하십니다. 다음으로는 모압의 용사들이 산고를 겪는 여인에 비유됩니다. ‘성읍들이 점령을 당하며 요새가 함락되는 날에 모압 용사의 마음이 산고를 당하는 여인 같을 것이라.’(41) 출산의 진통이 시작된 산모는 해산하기까지 홀로 고통과 두려움에 맞서야 합니다. 적이 침략해 성읍과 요새를 공격하면 용감하게 맞서 방어해야 할 용사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성읍이 점령당하고 요새는 함락됩니다.
⑵ 멸망의 원인(42)
‘모압이 여호와를 거슬러 자만하였으므로 멸망하고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로다.’(42) 이 말씀은 34-41절의 요약에 해당합니다. 여호와를 거슬러 교만했기에(26) 모압은 멸망하고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합니다. 더 이상 한 민족을 이루지 못하고 역사에서 사라집니다. 그를 끊어서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하자고 헤스본에서 적들이 세운 계획(2)이 성취됩니다.
⑶ 피할 수 없는 심판(43-44)
모압 주민들은 침략자를 피해 목숨을 구하지 못합니다(43-44a; 참조 이사야 24:17-18). 이들 앞에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놓입니다. 이 세 단어(파하드과 하트-파흐)에는 두음법이 사용돼 강하게 서로 연결됩니다. 함정은 동물을 잡기 위해 파놓은 구덩이를, 올무는 새 사냥꾼이 사용하는 그물을 가리킵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망하는 차는 함정에 떨어지고, 함정에서 올라오는 자는 올무에 걸립니다(참조 아모스 5:19). 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도랑을 해보지만, 사로잡힘을 피하지 못합니다. 독수리처럼 날래고 무섭게 쳐들어오는 적으로부터 누구도 벗어나지 못합니다. 모압 주민이 모두 재난에 떨어짐은 적의 침략이 여호와께서 모압에 내리시는 벌이기 때문입니다(44b). 여호와께서 모압을 멸망시키시기로 결정하셨기에 그 멸망에서 벗어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단호하게 다루시는 분입니다. 모압 백성에게 닥칠 재난으로 무척 가슴 아파하셨지만, 그들의 죄에 대해서만큼은 엄격하게 판결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세상 곳곳에 또는 내 주변에 독버섯처럼 퍼져있는 불의와 죄악을 바라보면, 물들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향해 빛과 소금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피할 수 없는 심판(45-47)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은 언제가 반드시 옵니다. 그날은 어느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그 날이 오기 전에 지금부터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눈을 피하여 살아갈 궁리를 멈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중에서 애굽에게 회복을 약속하셨듯이 모압에게도 약속하십니다.
45도망하는 자들이 기진하여 헤스본 그늘 아래에 서니 이는 불이 헤스본에서 나며 불길이 시혼 가운데 나서 모압의 살쩍과 떠드는 자들의 정수리를 사름이로다 46모압이여 네게 화가 있도다 그모스의 백성이 망하였도다 네 아들들은 사로잡혀 갔고 네 딸들은 포로가 되었도다 47그러나 내가 마지막 날에 모압의 포로를 돌려보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압의 심판이 여기까지니라(45-47)
운이 좋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를 힘겹게 벗어나 헤스본 그늘 아래서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 사람들이 있을지라도, 안심하기는 이릅니다. 행운은 거기까지 입니다.
⑴ 멸망과 유배(45-46)
헤스본에서 불이 나오고 시혼 가운데서 불꽃이 나와 ‘모압의 살쩍과 떠드는 자들의 정수리’를 삼켜버립니다(45; 참조, 민수기 21:28). 도망한 자들은 헤스본에서 피난처를 찾지만, 헤스본은 이미 적들의 수중에 넘어 갔습니다(2). 헤스본에서 적들이 나와 그늘에서 지친 몸을 추스르며 쉬는 자들을 다 죽여 버립니다. 현재의 문맥에서 헤스본과 시혼은 동격입니다. ‘모압의 살쩍과 떠드는 자들의 정수리’(참조, 민수기 24:17)는 모압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살쩍’은 ‘옆’, ‘가장자리’를 의미하는 폐아(פאה)의 번역으로 관자놀이/이마 부분을 가리킵니다.
46절은 모압의 심판을 마무리합니다. 모압에 화가 임합니다. 그 모스의 백성이 멸망하고, 모압의 아들들과 딸들이 모두 잡혀 유배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리시는 벌로 그모스를 섬기는 모압이 멸망합니다. 그모스의 정체가 헛것으로 폭로됩니다. 그모스는 자기 숭배자들을 지켜주기는커녕 자신도 포로로 잡혀갑니다(7).
⑵ 모압의 회복(47)
모압의 운명이 멸망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훗날에 모압의 운명을 되돌리실 것입니다(47a; 참조. 46:26). ‘모압의 심판’은 모압의 멸망이 모압의 잘못에 대한 징벌임을 보여줍니다(21). 애굽에게 회복을 약속하셨듯이 모압에게도 회복의 소망을 남겨주십니다. 심판은 하나님의 성품 때문이고 하나님의 주권을 드러내는 수단일 뿐 그 자체로 목적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누구든 멸망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그모스를 믿은 모압 사람들 중 아무도 재난에서 피할 수 없게 하실 것입니다. 두려움에서 도망하면 함정에 떨어지고, 함정에서 나오면 올무에 걸릴 것입니다. 성읍을 빠져나와 헤스본으로 도망하더라도,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큰 불에 타는 헤스본일 것입니다. 그 불을 피하더라도 모압의 아들 딸들은 포로로 잡혀갈 것입니다. 그러니 심판의 날이 오기 전에 지금부터,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눈을 피해서 살아갈 궁리를 멈춰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인간을 징계하시고, 회개를 촉구하기고, 회복을 약속하십니다. 약속하신 것을 이루어 값없는 구원을 선물하십니다.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시기 위함입니다. 이를 아는 자들은 교만으로 방종하거나 죄 아래 머물지 않고, 돌이켜 순종의 종으로 자신을 드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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