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46-02)
역사의 주인이신 사랑의 하나님
예레미야 46장 13-28절
급변하는 세계 정세 속에 우리 민족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많은 나라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자국의 이익을 위해 우리 민족을 두고 무엇인가를 결정하려 합니다. 우리와 그들이 전혀 상관없는 것 같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너무나 밀접히 얽혀 있어서 이 문제는 그들의 문제가 되고, 그들의 문제 또한 당장 우리의 문제로 돌변하기도 합니다. 성도들은 이와 같은 현장을 보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현재나 예레미야 시대나 모두 하나님의 통치 가운데 모든 세상이 운행됨을 믿기 때문입니다. 참 왕이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살 수 있는 길이 없음을 오늘도 성경을 통해서 배웁니다.
- 갈그미스의 참패는 애굽의 운명의 서곡에 불과했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애굽 본토를 침략하여 폐허로 만들 것입니다. 바벨론 군대의 공격으로 애굽은 거의 죽은 몸이 됩니다.
바벨론의 애굽 침략(13-24)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을 대상은 애굽이나 바벨론이 아니라 하나님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눈에 보이는 것에 집착하였습니다. 때가 늦기 전에 세상의 허풍에 속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애굽의 멸망이 선포되고 있는 46장은 전부 애굽의 심판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의 이야기를 하시면서도 이스라엘을 말씀하십니다.
13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와서 애굽 땅을 칠 일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말씀이라 14너희는 애굽에 선포하며 믹돌과 놉과 다바네스에 선포하여 말하기를 너희는 굳건히 서서 준비하라 네 사방이 칼에 삼키웠느니라 15너희 장사들이 쓰러짐은 어찌함이냐 그들이 서지 못함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몰아내신 까닭이니라 16그가 많은 사람을 넘어지게 하시매 사람이 사람 위에 엎드러지며 이르되 일어나라 우리가 포악한 칼을 피하여 우리 민족에게로, 우리 고향으로 돌아가자 하도다 17그들이 그 곳에서 부르짖기를 애굽의 바로 왕이 망하였도다 그가 기회를 놓쳤도다 18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이 이르시되 나의 삶으로 맹세하노니 그가 과연 산들 중의 다볼 같이, 해변의 갈멜 같이 오리라 19애굽에 사는 딸이여 너는 너를 위하여 포로의 짐을 꾸리라 놉이 황무하며 불에 타서 주민이 없을 것임이라 20애굽은 심히 아름다운 암송아지일지라도 북으로부터 쇠파리 떼가 줄곧 오리라 21또 그 중의 고용꾼은 살진 수송아지 같아서 돌이켜 함께 도망하고 서지 못하였나니 재난의 날이 이르렀고 벌 받는 때가 왔음이라 22애굽의 소리가 뱀의 소리 같으리니 이는 그들의 군대가 벌목하는 자 같이 도끼를 가지고 올 것임이라 2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들이 황충보다 많아서 셀 수 없으므로 조사할 수 없는 그의 수풀을 찍을 것이라 24딸 애굽이 수치를 당하여 북쪽 백성의 손에 붙임을 당하리로다(13-24)
바벨론이 애굽을 공격하여 패배시킬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애굽의 용사들은 겁에 질려 도망치며, 그들의 땅은 황폐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재앙을 내리실 것이며, 애굽은 바벨론의 손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⑴ 도입부(13)
앞에서는 애굽이 원정을 떠나 메소포타미아 지방으로 올라갔는데, 이번에는 바벨론이 원정을 떠나 애굽으로 내려옵니다. 전쟁의 무대가 이방 땅에서 본토로 바뀝니다. 역사를 계획하시고 그대로 집행하시는 여호와께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애굽 땅을 치러 올 것을 예언자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십니다(13; 참조 43:11).
⑵ 결정된 패배(14)
애굽 왕 느고의 갈그미스 원정과 달리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애굽 원정이 여호와의 의지로 선포됩니다. 믹돌과 놉과 다바네스가 바벨론 군대의 침략을 받습니다(14). 칼이 사방을 삼키려 하기에(10) 전열을 가다듬고 싸울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이 세 성읍의 이름이 나오는 44:1과 함께 읽으면, 바벨론의 애굽 침략은 다른 한편으로는 애굽에 사는 유다 백성의 우상숭배와 불순종을 심판하는 전쟁입니다.
⑶ 바로의 패배(15-17)
애굽을 침략한 바벨론 군대를 보게 될 때 여호와의 말씀과 애굽의 유다 백성의 주장 가운데 누구의 말이 맞았는지 알게 됩니다(43:28). 적의 공격 앞에 방어선이 허물어집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몰아내시기에, 용맹한 자들도 버티지 못하고 거꾸러집니다(15). 여호와께서 바벨론 군대 편에 서서 함께 싸우시기에 살기 위해서는 도망하는 것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16). 징집된 자들과 동맹군으로 참여한 자들이 더 이 상의 싸움이 소용없음을 보고 전선을 이탈해 각자 자기 민족이나 고향으로 돌아갑니다.
애굽의 왕으로서 군대를 이끌고 바벨론과 싸웠던 바로가 놀림을 당합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애굽 왕 바로를 때를 놓친 허풍쟁이라고 불렀다’(17절의 사역). 유능한 왕이라면 주어진 기회를 잡아야 하는데 바로는 좋은 기회를 놓치고 애굽을 패배의 수렁에 빠뜨립니다. 대적의 침입은 하나의 가능성이 아닙니다. 왕이신 여호와께서 당신의 생명을 두고 하신 약속입니다.
⑷ 유배와 파괴(18-19)
‘그가 과연 산들 중의 다볼 같이, 해변의 갈멜 같이 오리라’(18). ‘쳐들어오는 자’를 이스라엘에 있는 다볼 산과 갈멜 산에 비유한 이유는 아마도 이 산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잘 알려졌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다볼 산과 갈멜 산은 그 높이가 각각 549미터와 518미터에 불과했지만, 이스르엘 평지를 굽어보거나 바닷가에 위치하고 있어 상대적으로 위용 있게 보였습니다.
특이하게 여호와를 ‘왕’으로 부릅니다(참조. 8:19). 때를 놓친 애굽 왕과 때를 정하지는 만군의 여호와 왕의 대비를 읽을 수 있습니다. 애굽 왕은 온 땅의 왕이신 여호와께서 정하신 때를 따를 수박에 없습니다. 바벨론의 침략과 애굽의 패배가 확정됐기에 유배를 대비해 짐을 챙겨놓는 것이 그래도 조금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19a 참조. 10:17; 에스겔 12:3). 애굽의 오랜 역사를 간직한 놉이 폐허가 된다(19b). 유다가 의존했던 애굽의 운명이 유다의 운명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⑸ 패배의 비유적 서술(20-23)
20-22절은 동물의 비유를 사용해 애굽의 패배를 선포합니다.
먼저 바벨론에 의해 침략을 당하는 애굽을 쇠파리 떼에 지속적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암송아지에 비유합니다(20). 여기서 애굽 백성이나 땅의 상징으로 사용된 ‘암송아지’는 여신 하도르(Hathor)를 상징하는 동물이기도 합니다. ‘심히 아름다운’, 곧 주변 나라들이 부러워하는 애굽의 부요함이 적들의 침략을 막아주지 못합니다. 침략해 오는 방향을 보여주는 ‘북으로부터’는 애굽의 운명을 유다의 운명에 연결합니다(참조.1:13-15). ‘줄곧 오리라’는 침략이 반복될 것을 보여줍니다. 쇠파리 떼가 암송아지 곁을 떠나지 않고 괴롭히듯이 바벨론 군대가 경제적으로 번성한 애굽을 약탈하기 위해 거듭 침략합니다. 다음으로는 북으로부터 침략해오는 적에게 패해 도망하는 용병들이 ‘살진 수송아지’에 비유된다(2a; 참조 28:24, 말라기 3:20). 특별 대우를 받았지만 정작 필요한 때는 소용이 없었습니다. 잘 훈련받고 충분히 무장한 용병들도 적의 공격을 막아내지 못하고 등을 돌려 함께 도망합니다. 이날은 그들에게 재난이 닥치는 날이요 그들을 벌하는 때이기에(21b; 참조 10) 달리 어찌해볼 수 없습니다. 세 번째는 애굽을 ‘뱀’에 비유합니다. ‘애굽의 소리가 뱀의 소리 같으리라’(22a). 벌목꾼이 나무를 베어내기 시작하면 숨어 있던 뱀이 위험을 느끼고 소리를 죽여 재빨리 도망하듯이 애굽 군대 가고 그렇게 도망합니다. 현재의 문맥에서 뱀의 비유는 고대인들의 일상적 경험을 반영한 것이지만, 암송아지처럼 뱀(코브라)도 애굽의 종교와 왕조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바로의 왕관 중에서는 전면에 수호신과 힘을 상징하는 코브라를 새겨 넣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22b-23절에서는 비유의 종류가 바뀐다. 바벨론 군대가 손에 도끼를 든 벌목꾼에, 애굽이 나무로 가득찬 수풀에 비유됩니다. 숲이 수많은 나무로 빽빽이 들어찼을지라도 메뚜기보다도 많은 벌목꾼이 베어 넘기기에 하나도 남아나지 못한다 딸 애굽이 수치를 당하고 북쪽 백성의 손에 넘겨진다(24). 온 땅의 왕이신 여호와께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애굽을 주기로 하셨기에 애굽이 패배의 수치를 피할 길은 없습니다.
바벨론의 손에 넘겨지는 애굽(25-26)
심판으로 초토화시키는 것도 하나님의 결정이지만, 다시 그들을 회복하여 사람 살 땅이 되게 하실 것도 하나님께서 결정하십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을 북쪽에서 내려와서 애굽을 심판하시는 것도 하나님입니다.
25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노의 아몬과 바로와 애굽과 애굽 신들과 왕들 곧 바로와 및 그를 의지하는 자들을 벌할 것이라 26내가 그들의 생명을 노리는 자의 손 곧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의 손과 그 종들의 손에 넘기리라 그럴지라도 그 후에는 그 땅이 이전 같이 사람 살 곳이 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5-26)
심판의 대상이 확대됩니다. 애굽과 바로를 넘어 애굽의 신들까지 벌을 받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들을 모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과 그 종들의 손에 넘기십니다. 애굽의 운명이 심판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애굽에 심판 이후의 회복이 약속됩니다. 여호와의 징벌 후에 애굽은 이전 같이, 사람이 살게 됩니다. 문맥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을 때(27-28) 애굽도 참여하게 됩니다. ‘그를 의지하는 자들’(참조, 열왕기하 18:21, 이사야 36:6)은 바로의 봉신들을 가리키고, 예레미야서의 문맥에서는 여호와의 권면과 경고를 무시하고 안전한 피난처를 찾아 애굽으로 내려간 요하난 일행을 포함한 유다 사람들을 가리킵니다(42-44장). 18왕조 시대(주전 1552-1306) 제국의 수도였던 노(참조, 겔 30:14-16; 나 3:8)는 그 후에도 왕들의 무덤과 성소가 있는 장소로 그 중요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스어로 테베로 부르는 노는 카이로에서 남쪽으로 대략 740킬로미터 떨어진 곳의 도성으로, 아몬 신을 섬겼습니다. 아몬은 노에서 때로는 레와 혼합되어 신들의 왕인 아몬-레(Amon-Re)가 되어 제국의 신으로 섬겨지기도 했습니다.
야곱의 구원(27-28)
첫 출애굽할 때도 애굽에 열 재앙으로 괴로움을 당할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전했듯이 이번에도 이스라엘을 지켜주실 것이며, 애굽의 재앙이 도리어 이스라엘에게는 구원의 기회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자기 백성의 죄를 묵인하시거나 공의를 저버리겠다는 뜻은 아님을 분명히 하십니다.
27내 종 야곱아 두려워하지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보라 내가 너를 먼 곳에서 구원하며 네 자손을 포로된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평안하며 걱정 없이 살게 될 것이라 그를 두렵게 할 자 없으리라 28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 종 야곱아 내가 너와 함께 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나라들은 다 멸할지라도 너는 사라지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를 법도대로 징계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27-28)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두려워하지 말고, 놀라지 말라고 위로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먼 땅에서 구원하여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며, 그들을 지키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적들에게는 심판이 있을 것이나, 이스라엘은 징계를 받을지라도 완전히 멸망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⑴ 야곱의 귀환(27)
애굽의 신탁 다음에 야곱의 회복에 관한 말씀이 뒤따릅니다. 여호와께서 이방 민족들 가운데 흩어져 사는 야곱의 자손들을 다시 고토 로 불러 모아 안전하게 살게 해주십니다.
⑵ 야곱과 함께하는 여호와(28)
야곱을 한정하는 ‘내 종’은 여호와와 야곱/이스라엘 사이의 특별한 관계, 곧 야곱/이스라엘이 여호와께 속했음을 보여줍니다. 먼 곳에서는 지리적 거리감뿐만 아니라 신학적 거리감도 포함합니다. 가나안에서 멀리 떨어진 곳은 여호와로부터도 멀리 떨어진 곳입니다. 먼 곳에서 돌아옴은 여호와와 야곱/이스라엘의 거리가 좁혀졌음을, 곧 관계가 회복됐음을 시사해준다. 유배지에서 야곱을 해방해 고향으로 데려오신 여호와께서는 민족들을 멸망시켜 이들이 두려움 없이 평안히 살 수 있게 해주십니다. 야곱도 죄를 범하면 징벌을 받기는 하겠지만(참조 출애굽기 34:7), 민족들과 달리 멸망에 떨어지지는 않습니다(참조 4:27; 5:10,18). 야곱은 그분의 종으로 그분의 보호 아래 있기에 여호와께서는 ‘법도대로’(러미슈파트) 징계하십니다(10:24). 아마도 교육적 목적의 제한적 징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참조. 31:18: 신 8:5). 27-28절은 30:10-11의 문자적 반복입니다. 애굽의 구원을 약속하는 26b절과 함께 읽도록 여기에서 다시 반복된 것 같습니다.
바룩의 바람은 이스라엘의 구원이었지만, 하나님의 뜻은 재난과 심판이었습니다. 백성의 고통을 아파하는 마음은 귀하지만, 하나님의 뜻을 앞설 수는 없습니다. 심판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을 인정해야 합니다. 의를 위해 살되, 하나님의 주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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