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48-02)
교만의 뿔이 잘린 모압
예레미야 48장 11-25절
인생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한계가 가득하여 안개처럼 사라지는 것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이것들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주고, 보장해주는 것처럼 여깁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려 하고 더 높은 자리에 서려고 합니다. 이것을 스스로 얻었다고 생각하고 이것이 전부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지지만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십니다. 겸손하게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면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모압에 대한 예언을 하시면서, 과거 가장 안전한 곳에 위치해 평안했던 모압을 이야기합니다. 가장 안전한 곳에 있었던 환란과 파멸이 시작되고 있음을 예언합니다. 모압의 모습을 포도주 제조과정으로 설명합니다. 멸망한 것은 군사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교만했기 때문입니다.
술을 옮겨 담을 사람(11-13)
이스라엘 멸망을 보고 기뻐하는 모압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제외되지는 않습니다. 모압의 멸망은 여호와의 되돌릴 수 없는 그런 결정일 것입니다. 하나님 외의 것들을 의지하면 의지하는 그것으로 인해 고난 앞에 서게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압은 자신들이 용사이며 능숙한 전사임을 자부하였습니다. 그들이 자부하는 힘이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철저하게 파괴될 것을 알지 못합니다.
11모압은 젊은 시절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이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하지 아니하였도다 12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술을 옮겨 담는 사람을 보낼 것이라 그들이 기울여서 그 그릇을 비게 하고 그 병들을 부수리니 13이스라엘 집이 벧엘을 의뢰하므로 수치를 당한 것 같이 모압이 그모스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리로다(11-13)
모압은 지금까지 외부의 침략 없이 평안한 삶을 즐겼습니다. 적의 침략을 모르고 살았던 좋은 시절이 이제 마치게 됩니다. 모압의 재난이 가까웠습니다. 파멸하는 자가 모압에 올라와서 모압 전역을 황폐하게 할 것입니다. 그들은 형제 이스라엘과 유다가 멸망 당할 때 기뻐하였던 그런 악행에 걸맞은 심판이 임하게 되어집니다.
⑴ 평안을 빼앗기는 모압(11-12)
예레미야를 통해 모압의 평안했던 과거와 전쟁에 휩싸일 미래가 포도주의 제조 과정에 비교됩니다. 모압을 ‘모압은 젊은 시절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이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하지 아니하였도다’(11)라고 표현합니다. 포도주가 어느 정도 기간을 지나서 발효가 되면 찌끼와 분리하여 다른 그릇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래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모압은 다음 단계로 넘어가지 않은 것과 같은 상태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압을 옮겨 담을 사람을 보내시겠다고 말합니다.
고대 세계에서 포도주는 대략 네 단계의 과정을 거쳐 제조됐습니다. (1) 수확한 포도를 술틀에 넣고 발로 밟아 포도즙을 짜냅니다. (2) 짜내 포도즙을 토기나 가죽 부대에 넣고 마개를 열어 놓은 채 발효시킵니다. 찌끼가 밑으로 가라앉도록 포도즙이 담긴 토기나 가죽 부대를 한동안 그대로 놓아둡니다. (3) 발효 과정이 끝나면 포도주를 찌끼로부터 분리합니다. 찌끼가 섞이지 않게 세마포를 이용해 포도주를 조심스럽게 다른 그릇에 따라 넣습니다. (4) 걸러낸 포도주를 담은 토기나 가죽 부대를 창고로 옮겨 저장합니다.
본문에서 하신 ‘마치 술이 그 찌끼 위에 있고’는 두 번째 단계를 배경으로 합니다. 모압은 외부의 침략 없이 자기들만의 삶을 안전하게 즐겼습니다.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는 포도주 제조 과정의 세 번째 단계로 넘어가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적당히 발효하면 순수한 포도주를 다른 그릇에 담아야 하는데, 모압의 경우는 계속 그대로 두었습니다.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는 옮겨 담는 세 번째 단계를 유배로 해석합니다. 마지막의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하지 아니하였도다’는 모압의 처음 평안함이 지금까지 그대로 유지됐음을 보여줍니다.
이제 지체됐던 세 번째 단계가 모압에게 시행됩니다. 때가 되면 포도주를 옮겨 담는 것처럼 모압을 옮겨 담을 ‘날(들)’이 옵니다(12). 여호와께서 ‘술을 옮겨 담는 사람(들)’을 보내시면, 그들이 술을 옮겨 담아 그릇을 비우고 단지는 부숴버릴 것입니다. 원래는 옮겨 담고 빈 그릇을 부수지 않습니다. 포도주를 옮겨 담는 목적이 맛과 향이 좋은 포도주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담았던 그릇의 파괴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술을 옮겨 담는 사람(들)’이 ‘파멸하는 자’의 역할을 담당합니다(8). ‘옮겨 담음’이 모압 사람들의 유배를 가리킨다면(11), 단지의 파괴는 모압의 완전한 멸망을 상징합니다.
⑵ 그모스로 인한 수치(13)
모압이 여호와의 심판에 넘겨질 때는 이유가 없지 않았습니다. 특이하게도 모압의 멸망을 이스라엘의 멸망 원인과 나란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집이 벧엘을 의뢰하므로 수치를 당한 것 같이 모압이 그모스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리로다’(13)라고 북왕국 이스라엘의 성소 벧엘과 모압의 신 그모스가 대등하게 비교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섬긴 벧엘의 송아지 상과 모압 백성이 섬긴 그모스는 우상이라는 점에서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벧엘의 송아지를 숭배하다가 주전 722년 앗수르에 멸망하고 많은 백성이 제국의 변방으로 사로 잡혀간 것처럼, 모압도 그모스를 숭배하다가 멸망하고 그 백성은 유배를 당합니다.
열왕기상 12:28-29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왕이 된 여로보암은 단과 벧엘에 송아지 상을 만들어놓고 백성이 예루살렘 성전으로 올라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송아지 상이 안치된 벧엘 성소는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기까지 국가 성소의 역할을 담당했습니다(참조. 암 7:13). 하나님께서는 풍요와 평안을 누리면서 그모스를 의지했던 모압이 그 우상으로 인해 멸망당할 것임을 가르쳐 주십니다.
모압의 재난이 가까웠고(14-17)
주변 정세나 정보에 민감하되 너무 의존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상황에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도움의 근원이신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힘에 기대려는 속성이 있습니다. 모압은 자신이 이룬 사업과 재산만을 의지하다가 하나님께 심판을 당했습니다. 혹시 당신도 모압과 같은 모습은 없습니까? 가장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이어야 합니다.
14너희가 어찌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용사요 능란한 전사라 하느냐 15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모압이 황폐하였도다 그 성읍들은 사라졌고 그 선택 받은 장정들은 내려가서 죽임을 당하니 16모압의 재난이 가까웠고 그 고난이 속히 닥치리로다 17그의 사면에 있는 모든 자여, 그의 이름을 아는 모든 자여, 그를 위로하며 말하기를 어찌하여 강한 막대기, 아름다운 지팡이가 부러졌는고 할지니라(14-17)
예언자(여호와)가 탄식하듯이 모압 사람들의 자신감 넘치는 말을 인용합니다. 멸망할 운명으로 이미 결정됐는데도 이들은 ‘우리는 용사요 능란한 전사라’하며 자신들의 뛰어난 군사력을 신뢰합니다(14; 참조 46:7-9). 이들의 과거 경험과 자만이 여호와께서 ‘술을 옮겨 담는 사람을 보낼’ 날이 오고 있음을 볼 수 없게 합니다.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께서(참조 46:18) 이들의 실체 없는 자신감을 폭로하십니다. ‘모압이 황폐하였도다 그 성읍들은 사라졌고 그 선택 받은 장정들은 내려가서 죽임을 당하니’(15) 모압이 자랑하는 최고의 용사들이 파멸하는 자 앞에서 도살당하는 짐승처럼 힘없이 죽어갑니다. 여호와의 계획안에 따르면 모압의 멸망은 아직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이미 시작되고 있는 사건입니다(16). 모압의 멸망이 확정적이기에 모든 민족에게 그의 죽음을 애도하도록 요청합니다(17). ‘그의 사면에 있는 모든 자’는 가까운 이웃 민족들을, ‘그의 이름을 아는 모든 자’는 모압에 관해 들어서 아는 먼 곳의 민족들을 가리킵니다. 모든 민족이 모압의 죽음을 애도하며 ‘강한 막대기, 아름다운 지팡이’가 부러졌다고 탄식합니다. 왕권을 상징하는 홀이 꺾였습니다. 오랫동안 편안하게 살아온 모압이 종말을 맞았습니다.
단호한 심판 지속 명령(18-25)
한 때 번성하고 사람들이 많았던 곳이 내일도 그렇게 되리라고 보장할 수 없습니다. 사실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보다 번성하고 풍요로울 때, 더 긴장하고 더 기도해야 하는 이유가 교만하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 풍요를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풍요로울 때 하나님께 겸손한 신앙으로 나가지 않으면 나중에 하나님을 외면하고 무시하는 교만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모압이 하나님께 멸망 받아야 할 이유가 이곳에서 있었습니다.
18디본에 사는 딸아 네 영화에서 내려와 메마른 데 앉으라 모압을 파멸하는 자가 올라와서 너를 쳐서 네 요새를 깨뜨렸음이로다 19아로엘에 사는 여인이여 길 곁에 서서 지키며 도망하는 자와 피하는 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물을지어다 20모압이 패하여 수치를 받나니 너희는 울면서 부르짖으며 아르논 가에서 이르기를 모압이 황폐하였다 할지어다 21심판이 평지에 이르렀나니 곧 홀론과 야사와 메바앗과 22디본과 느보와 벧디불라다임과 23기랴다임과 벧가물과 벧므온과 24그리욧과 보스라와 모압 땅 원근 모든 성읍에로다 25모압의 뿔이 잘렸고 그 팔이 부러졌도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8-25)
만군의 주님이 심판하러 오실 때, 누구에게 영광의 자리에서 내려앉으라 하실 것 같습니까? 그 대상이 내가 되지 않도록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게 살아갑시다. 모압의 멸망은 그들의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⑴ 무너진 요새들(18-20)
모압의 멸망이 ‘디본’과 ‘아로엘’의 경험으로 구체화합니다. 모압을 파멸하는 자가 올라와 디본을 치고 그 요새들을 무너뜨렸기에 딸 디본의 주민은 영광의 자리에서 내려와 ‘메마른 데’ 앉아야 합니다(18). 풍족하게 물을 사용하는 자들이 물이 없어 고통을 당합니다. 디본이 옛 영화를 모두 잃고 비참한 처지에 떨어집니다. 이미 요새들이 무너졌기에 피신할 곳도 없어졌습니다. 디본은 모압의 주요 도성으로 아르논 강에서 북동쪽으로 5킬로미터, 사해에서 동쪽으로 20km 정도 떨어졌습니다. 아로엘의 주민들에게는 세 가지 명령이 주어집니다(19). 아로엘 주민들은 길가에 서서 지켜보다가 도망하는 남자나 피하는 여자를 보면 무슨 일이냐고 물어야 합니다.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고 있는지를 알아야 나름대로 대책을 세울 수 있기에 전시에는 정보가 중요했습니다. 아로엘 주민들은 너무 늦지 않게 적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파악하고 안전한 곳을 찾아 떠나야 합니다. 아로엘은 아르논 근처에 있는 성읍으로, 디본에서 남서쪽으로 대략 5km 떨어졌습니다. 전시 상황을 물어보는 아로엘 주민들에게 피난민들이 절망적 소식을 전해줍니다.
‘모압이 패하여 수치를 받나니 너희는 울면서 부르짖으며 아르논 가에서 이르기를 모압이 황폐하였다 할지어다’(20) 모압은 이미 전쟁에서 패했습니다. 되돌릴 수 있는 패배가 아닙니다. 통곡과 부르짖음만 남은 멸망입니다. 남은 일은 모압의 멸망 소식을 아르논에 가서 전달하는 것뿐입니다. 아로엘 남쪽을 지나가는 아르논은 모압 평지와 요단 분지를 지나 사해로 흘러 들어가는 강입니다.
⑵ 심판에 넘겨진 성읍들(21-24)
21-24절은 파멸하는 자가 무너뜨린 성읍의 목록입니다. 현재의 문맥에서는 피난민들이 아로엘 주민들에게 하는 계속된 답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모압의 패배를 ‘심판’(21a), 곧 잘못에 대한 징벌로 이해합니다(13, 14). ‘평지’는 아르논 북쪽의 고원지대를 가리킵니다(8). 모두 열한 개의 성읍 이름이 나오는데, ‘디본’과 ‘느보’와 ‘기랴다임’을 제외한 아홉 성은 여기에 처음 나옵니다. ‘홀론’의 위치는 불분명합니다. ‘야사’는 ‘야하스’(34)와 같은 성읍으로 메데바와 디본 사이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메바앗’은 디본 동쪽에서 찾기도 하지만 불확실합니다. ‘벧디불라다임’과 ‘벧가물’과 ‘벧므온’은 여기에만 나오는 지명으로 어디에 있었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성읍들’을 의미하는 그리욧은 그모스 제의의 중심지로, 아모스 2:2에는 모압의 왕도로 나옵니다. 때로는 디본에서 북동쪽으로 8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찾기도 하지만 불분명합니다. 모압의 보스라는 에돔의 보스라와는 구별되는 성읍으로 위치는 알 수 없습니다. ‘모압 땅 원근 모든 성읍’은 위에 열거한 열 한 성읍을 포함한 모압의 모든 성읍을 가리킵니다.
⑶ 모압의 잘린 뿔(25)
‘모압의 뿔이 잘렸고 그 팔이 부러졌도다’(25)는 18-24절의 요약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뿔과 팔은 힘을 상징합니다. 뿔이 잘리고 팔이 부러졌음은 모압이 힘을 완전히 상실했음을 보여줍니다. 헤스본에 모인 적들이 계획한 대로 모압은 이제 민족으로 살아남을 수 없게 됐습니다(2).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심판은 철저하게 임합니다. 교만한 모압을 심판하시기 위해 세속적인 바벨론의 욕망을 이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도구인 바벨론의 게으름을 용납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심판의 칼을 멈추면 도리어 그들이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모압의 교만의 뿔은 잘리고 그 필은 부러졌습니다. 하나님이 없이 세운 모든 것은 불타고, 더불어 음행하고 사치하던 땅의 왕들은 울며 가슴을 칠 것입니다. 허탄한 것에 사로잡혀 살면 모든 것이 사라지는 날 슬피 울게 될 것입니다. 세상 나라는 사라지되, 하나님의 나라만은 영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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