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49-01)
암몬을 향한 심판 선언
예레미야 49장 1-6절
무지개가 여러 칼라로 이루어졌듯이, 세상에 사는 사람들은 다양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모두가 같다면, 세상은 매우 단조로울 것입니다. 일곱 색깔이 조화를 이루어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듯이, 세상은 다양한 모습으로 아름다움을 만들어갑니다. 하지만 자신의 장점으로 다른 사람의 단점을 공격한다면, 다른 사람들을 무시하고 깔볼 수 있으며, 그 부족한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을 판단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무시하는 것은 범죄입니다. 특별히 부자들은 겸손히 하나님을 섬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 암몬은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 갓 지파의 땅을 빼앗고 살았습니다. 군사적인 우위와 물질적인 번영을 의지하여 오만해진 암몬을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들은 암몬의 신 말감이 하나님보다 강하다고 주장했지만, 심판으로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드러내십니다.
암몬 자손에 대한 경고(1-2)
자족하지 못하고 끝없는 탐욕으로 이웃의 것을 탐하는 일은 우상숭배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주인되심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 하는 절도입니다. 경쟁은 불가피하지만 정당하지 않은 경쟁으로 도를 넘는 소유와 힘을 차지하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괴롭혔던 갓 지파의 땅을 침공한 암몬은 어떻습니까?
1암몬 자손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이스라엘이 자식이 없느냐 상속자가 없느냐 말감이 갓을 점령하며 그 백성이 그 성읍들에 사는 것은 어찌 됨이냐 2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므로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전쟁 소리로 암몬 자손의 랍바에 들리게 할 것이라 랍바는 폐허더미 언덕이 되겠고 그 마을들은 불에 탈 것이며 그 때에 이스라엘은 자기를 점령하였던 자를 점령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2)
에돔 족속은 에서의 후손이고, 암몬 자손은 롯의 후손이었습니다. 이 둘 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관계가 있었지만, 그들은 점점 더 영적으로 망가진 자들이었습니다. 암몬의 세 개의 수사의문문으로 구성된 여호와의 탄식으로 시작됩니다.
⑴ 갓에 대한 탄식(1)
‘이스라엘이 자식이 없는나? 상속자가 없느냐? 말감이 갓을 점령하며 그 백성이 그 성읍들에 사는 것은 어찌 됨이냐?’ 이스라엘에게는 아들들도 있고 상속자도 있는데, 마치 상속권을 가진 자식이 끊겨 타인의 소유가 된 것처럼 갓의 땅과 성읍들이 암몬의 손에 넘어갔습니다.
솔로몬이 자신의 이방 아내들을 위해 세운 산당들 가운데 하나가 암몬 자손의 신 밀곰을 위한 산당이었습니다(참조, 열왕기상 11:5, 33).
열왕기하 23:13에 따르면 유다 왕 요시야가 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시돈 사람의 가증한 아스다롯과 모압 사람의 가증한 그모 스와 암몬 자손의 가증한 밀곰을 위하여 세웠던, 산당들을 허물어 버렸다.
1절과 2절에서 ‘점령하다’는 원래 ‘소유하다, 상속하다’를 의미한다. ‘상속자’는 이 동사의 현재분사에 해당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갓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신 것을 암몬의 신 밀곰이 상속 재산으로 차지합니다. 갓 지파의 땅과 성들이 언제부터 암몬의 수중에 떨어 졌는지는 불분명합니다. 여리고 맞은편의 요단 동쪽에 정착한 갓 지파의 영토(참조 민수기 32:34-35; 여호수아 13:24-28)는 암몬의 영토(참조, 민수기 21:24)와 많이 겹쳤기에 충돌은 언제나 가능했습니다. 아마도 732년과 722년 앗수르에 의해 북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주민들이 앗수르 제국의 변방으로 유배를 떠난(참조, 열왕기하 15:29) 후 암몬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갓 지파의 영토에 침투하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⑵ 암몬의 심판(2)
갓 지파의 상속 재산을 빼앗아 자신들의 상속 재산으로 만들어 버린 암몬 사람들에게 여호와께서 전쟁의 재난으로 응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준비하신 ‘날’이 오고 있습니다. 암몬 사람들의 랍바에 전쟁의 함성이 들리고, 랍바는 폐허의 언덕이 되고 주변 마을들은 불에 탈 것입니다. 갓의 땅을 빼앗은 암몬이 전쟁으로 폐허가 된다. 암몬을 침략하는 적에 관해서는 달리 언급하지 않고, 암몬의 멸망에만 초점을 맞춥니다. ‘큰 것’, ‘큰 성’을 의미하는 랍바는 암몬의 수도로(참조, 아모스 1:14) 오늘의 암만에 해당합니다. ‘폐허더미 언덕’은 고대의 도시 재건 전통을 반영한 표현입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무너진 성읍 위에 다시 성읍이 세워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어느 시점에 무너진 성읍이 더 이상 복구되지 못하고 그대로 버려지면서 폐허의 흙더미가 언덕처럼 생겨났습니다. 랍바가 다시 복구될 수 없게 철저하게 파괴됩니다.
암몬의 심판으로 갓 지파의 상속재산이 이스라엘에게로 돌아옵니다. 암몬 사람들이 빼앗아 자식들의 상속 재산으로 갓 지파의 상속 재산이 이스라엘에게로 돌아옵니다. 암몬 사람들이 빼앗아 자신들의 상 재산으로 삼은 갓의 영토를 이스라엘이 다시 소유하게 됩니다.
재물을 의지하는 자들(3-5)
넉넉한 재물 때문에 부강한 자신을 아무도 공격해오지 않을 것이라고 의기양양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무시하면 교만스럽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서 겸손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암몬도 웃고 떠들 때가 아니라 상복을 입고 통곡해야 할 때입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했기 때문입니다.
3헤스본아 슬피 울지어다 아이가 황폐하였도다 너희 랍바의 딸들아 부르짖을지어다 굵은 베를 감고 애통하며 울타리 가운데에서 허둥지둥할지어다 말감과 그 제사장들과 그 고관들이 다 사로잡혀 가리로다 4패역한 딸아 어찌하여 골짜기 곧 네 흐르는 골짜기를 자랑하느냐 네가 어찌하여 재물을 의뢰하여 말하기를 누가 내게 대적하여 오리요 하느냐 5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두려움을 네 사방에서 네게 오게 하리니 너희 각 사람이 앞으로 쫓겨 나갈 것이요 도망하는 자들을 모을 자가 없으리라(3-5)
모압의 파멸과 회복에 대해 예언합니다. 모압은 재물과 성읍의 안전을 의지했으나, 이는 여호와의 심판 앞에서는 무의미해질 것입니다. 모압의 성읍들은 파괴되고, 주민들은 포로로 끌려가며, 그들이 믿었던 부와 안전은 그들을 구원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마지막 때에 모압의 포로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⑴ 암몬의 유배(3)
암몬은 멸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이들에게 남은 일은 애도하는 것뿐입니다. 죽은 사람을 위해 애곡하듯이 헤스본(48:2)과 랍바의 딸들(마을들)은 굵은 베를 두르고 울부짖으며 애곡해야 합니다(3a). ‘폐허를 의미하는 ‘아이’는 우리에게 알려 지지 않은 암몬의 성읍입니다.
‘랍바의 딸들’은 2절의 ‘그 마을들’과 동일합니다. ‘울타리 가운데에서 허둥지둥할지어다’는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습입니다. ‘울타리’는 원래 양 떼나 포도원과 같은지 재산을 지키기 위해 주로 주변의 돌을 이용해서 낮게 쌓은 담을 가리킵니다. 높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랍바와 같은 큰 성이 함락됐다면, 울타리 정도의 성벽으로 둘러싸인 그 주변 마을들의 운명은 뻔했습니다.
신 만이 유일하게 도움을 줄 수 있겠는데, 이 또한 암몬 사람들에게는 헛된 기대일 뿐이다. 암몬의 신 밀감은 ‘그 제사장들과 그 고관들’과 함께 사로잡혀 끌려갈 것입니다(3b; 참조.48:7). 암몬의 신은 자신을 숭배하는 자들을 지켜주기는커녕 자신마저 지키지 못합니다. 암몬이 멸망을 피할 길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⑵ 암몬의 교만(4)
물론 암몬은 자신의 능력을 신뢰하겠지만, 이는 교만에서 나온 허상일 뿐이다(4). ‘어찌하여 골짜기 곧 네 흐르는 골짜기를 자랑하느냐’는 아마도 암몬 지역의 지리적 특징, 곧 깊이 깎여 들어간 강줄기와 관련한 언급 같습니다. 풍부한 수량과 그에 따른 풍요로운 결실이 암몬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이들은 ‘누가 내게 대적하여 오리요’하고 자신하지만 자신감으로 여호와께서 들려오게 하는 전쟁의 함성(2)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⑶ 암몬의 재난(5)
암몬을 부정적으로 지칭하는 ‘패역한 딸’은 31:22(반역한 딸)에서 이스라엘에게 적용됐습니다(참조 3:14, 22). 암몬이 자랑하는 경제적 풍요가 암몬을 지켜줄 수 없음은 이들에게는 재난이 여호와께서 보내신 것이기 때문입니다(5). 여호와께서 ‘사방에서’(암몬 주위 모든 민족에게서) 암몬에게 ‘두려움’(48:43)이 오게 하시기에, 암몬 사람들입니다. 제 땅에서 쫓겨납니다. 이들이 앞뒤 돌아볼 겨를 없이 황급히 도망하지만, 이들을 모을 자도 없습니다. ‘오게 하리니’는 ‘오리요’(4)와 같은 동사입니다. ‘누가 나를 치러 오겠는가?’하고 자신하는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두려움이 오게 하십니다.
헤스본 사람들과 랍바 주변의 주민들은 사람들의 죽음을 슬퍼하면서 울타리 안의 양들이 놀라서 갈팡질팡하듯이 어찌할 줄 몰라 혼비백산할 것입니다. 어려움 앞에서 그리스도인이 평안할 수 있고 담대할 수 있고 소망의 끈을 놓치 않을 수 있는 것은 모든 상황과 형편의 주인 되시는 한 분 하나님을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회복의 예언(6)
호세아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향해 예언할 때,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실 것이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하실 때 심판하는 것만이 목적이 아닙니다. 그들이 돌아오길 기다신 분입니다. 치신 후에라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십니다. 모압의 경우처럼(48:7) 암몬의 신탁도 구원 약속으로 끝을 맺습니다(6).
6그러나 그 후에 내가 암몬 자손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6)
한편 하나님께서는 애굽과 모압에게처럼 암몬 자손에게도 회복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심판하시기보다 용서하시고 회복시키시기를 좋아하시는 분입니다. 이방을 향한 한결 같은 아버지의 마음은 아브라함의 복이 그들에게도 임하게 하는 것입니다. 심판에 담긴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고 회복의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제어되지 못한 탐욕은 이웃의 것을 탐하게 되어 전쟁으로 비화합니다. 지난 제국 전쟁의 역사가 이를 증명합니다. 우상 말감은 그 탐욕의 결정체입니다. 우상 사회의 삶의 방식을 부인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와 정신을 따르는 길만이 화를 면하는 길입니다. 성도들도 재물이 때로는 하나님보다 앞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금방 사라질 것들입니다. 이런 것을 의지하느라고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아야 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손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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