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49-03)
아람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레미야 49장 23-39절
권세의 목적은 선한 일을 증진하고 악한 일을 억제하는 것입니다. 이런 대원칙은 국가와 열강들에게 똑같이 적용됩니다. 교회는 부여된 권위를 성경에 충실하게 사용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국가와 세상의 권력자들을 향해 천명해야 합니다.
- 심판의 대상이 유다 주변에서 먼 북동쪽 민족들로 확대됩니다. 시리아 지방의 다메섹, 아라비아 사막에 사는 게달과 하솔, 동쪽에 위치한 엘람이 여호와의 심판 아래 들어옵니다. 바벨론의 지배 아래 있는 모든 나라의 운명이 여호와에 의해 결정됩니다.
다메섹의 신탁(23-27)
각 나라들의 군사력을 자국의 방어를 넘어 침략과 수탈을 위해 사용될 때 인간은 불행해집니다. 이런 사태가 낳는 폐해를 권력을 오용한 자들이 감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의하게 당한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람의 주력 무기인 활을 꺾어 버리십니다.
23다메섹에 대한 말씀이라 하맛과 아르밧이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흉한 소문을 듣고 낙담함이니라 바닷가에서 비틀거리며 평안이 없도다 24다메섹이 피곤하여 몸을 돌이켜 달아나려 하니 떨림이 그를 움켜잡고 해산하는 여인 같이 고통과 슬픔이 그를 사로잡았도다 25어찌하여 찬송의 성읍, 나의 즐거운 성읍이 버린 것이 되었느냐 26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런즉 그 날에 그의 장정들은 그 거리에 엎드러지겠고 모든 군사는 멸절될 것이며 27내가 다메섹의 성벽에 불을 지르리니 벤하닷의 궁전이 불타리라(23-27)
다메섹이 악한 소식을 듣고 두려움에 빠져 도망치지만, 결국 도시의 젊은이들과 군사들이 멸망하고 성벽이 불타며 벤하닷의 궁궐들이 불에 타버릴 것이라는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⑴ 하맛과 아르밧의 수치(23)
시리아 지방에 자리 잡은 아람 민족들의 성읍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세 도성이 신탁의 수신자로 등장합니다. 다메섹은 남부 시리아를 대표하는 세력으로 앗수르의 서진에 강력히 맞서다가 732년 앗수르 왕 다글랏 빌레셀에 의해 멸망합니다. 다메섹에 북쪽으로 대략 170km 떨어진 오론테스 강 동편에 위치한 하맛은 중부 시리아의 대표 세력으로 738년에 앗수르에 빼앗겠던 영토를 되찾기 위해 720년 반기를 들지만 실패하고 앗수르의 한 지방으로 편입된다 하맛에서 북북동쪽으로 대략 150km 떨어진 아르밧은 시리아 북부 지방의 핵심 세력으로 740년 디글랏 빌레셀에 의해 함락되고, 720년 하맛이 주도한 봉기에 가담했다가 멸망합니다. 하맛과 아르밧이 ‘흉한 소문’을 듣고 당황합니다. 마치 바다가 거센 파도와 바람에 요동치듯이 하맛과 아르밧이 들려오는 소식에 당해 크게 동요합니다(23). ‘흉한 소문’의 내용에 관해서는 달리 언급하지 않습니다.
⑵ 다메섹의 멸망(24)
다메섹의 멸망에 관한 소문보다는 무서운 적이 쳐들어온다는 소문인 것 같습니다. 소문만 듣고도 하맛과 아르밧은 전의를 상실하고 두려움에 떨어집니다. 이들보다 남쪽에 다메섹은 극심한 공포에 사로잡힙니다. 안전한 곳을 찾아 도망하려하지만, 공포로 온몸에 힘이 빠져 달아나지 못하고, 해산하는 여인처럼 볼산과 고통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24). 한때 ‘찬송의(명성 높던) 성읍, 나의 즐거운 성읍’이었던 다메섹이 버림을 받고 폐허가 됩니다(25). 많은 사람으로 벅적거리던 거리가 젊은이들과 병사들의 시체로 가득 차고, 다메섹의 성벽과 궁전이 불꽃의 먹이가 됩니다(26-27). 통상로를 장악하고 그 이름을 떨치며 번성하던 다메섹이 잿더미가 됩니다. 다메섹이 폐허가 되는 이유는 27절을 통해 간접적으로 나타납니다. 다메섹이 여호와의 심판으로 멸망합니다.
메달과 하솔의 신탁(28-33)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맘몬과 소비주의에 물어서 타락해 가고 있습니다. 교회들은 이러한 세상 가치로부터 떠나야 합니다. 이스라엘의 인근 도시국가들은 풍요의 신을 숭배하는 가나안 체제를 유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사용하여 바알의 문화를 응징하십니다.
28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공격을 받은 게달과 하솔 나라들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일어나 게달로 올라가서 동방 자손들을 황폐하게 하라 29너희는 그들의 장막과 양 떼를 빼앗으며 휘장과 모든 기구와 낙타를 빼앗아다가 소유로 삼고 그들을 향하여 외치기를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 할지니라 30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솔 주민아 도망하라 멀리 가서 깊은 곳에 살라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너를 칠 모략과 너를 칠 계책을 세웠음이라 3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는 일어나 고요하고도 평안히 사는 백성 곧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사는 국민을 치라 32그들의 낙타들은 노략물이 되겠고 그들의 많은 가축은 탈취를 당할 것이라 내가 그 살쩍을 깎는 자들을 사면에 흩고 그 재난을 여러 곳에서 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3하솔은 큰 뱀의 거처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 거기 사는 사람이나 그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리라 하시니라(28-33)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게달과 하솔을 공격하여 그들의 장막과 재산을 약탈하고 그들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게달 주민들은 도망가고, 하솔은 사람이 살지 않는 황폐한 곳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들 지역에 임하여 그들의 생활 터전이 파괴될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신 바입니다.
⑴ 메달의 침략(28-29)
신탁의 첫 번째 대상은 게달입니다. 게달은 시리아-아라비아 사막에서 양 떼를 치며 천막에 사는 아랍 부족이었습니다. 이사야 21:17에 따르면 게달은 특히 활을 잘 다루었던 것 같고, 에스겔 27:21에 따르면 ‘어린 양과 숫양과 염소들’과 같은 작은 가축을 두로와 거래했습니다. 두 번째 상대는 하솔 나라들입니다. 하솔은 아라비아 사막에 정착해서 농가에 사는 아랍 부족 전체를 가리키는 집합 명칭으로(참조. 이사야 42:11), 하솔 나라들은 족장이 다스리는 아랍 부족들을 의미합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공격을 받은’은 599/8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아랍 부족들을 약탈한 사건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게달에 대한 신탁은 전투 명령으로 시작한다. 여호와께서 2인칭 복수의 청자에게 일어나 게달을 치러 올라가서 ‘동방 자손들을 짓밟고 그들의 생존 토대를 남김없이 파괴하라고 하십니다(28b-29).
⑵ 하솔의 침략(30-33)
적의 침략으로 일상생활에 필요한 장막과 양 떼와 휘장과 살림살이뿐만 아니라 멀리 나갈 때 필요한 낙타까지도 다 약탈당하고, ‘사방의 두려움’만 남습니다. 적들에 에워싸인 게달 사람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게달을 침략하도록 명령을 받는 자들은 30b절에 따르면 바벨론 군대가 됩니다. ‘동방 자손들은 팔레스티나 동쪽 아라비아 사막과 초원 지대에 사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하솔에 대한 신탁은 도주 명령으로 시작합니다. 목숨을 건지려면 하솔 주민들은 빨리 도망쳐 깊은 곳에 들어가 숨어야 합니다(30a).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이들을 치기로 결정하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30b), ‘모략과 계획’은 ‘여호와의 의도’(20)와 '여호와의 계획‘에도 사용됐습니다. 느부갓네살의 모략과 계획이 여호와의 의도와 계획에 따른 것 임을 시사해줍니다. 28절의 경우처럼 여호와께서 2인칭 복수의 청자에게 명령을 주십니다(31). 하솔 주민들은 통상로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았기에 외부의 침략에 대비해 주거지에 방어 시설을 갖출 필요가 없었습니다. 바벨론의 관심 밖에서 편안하게 살던 하솔 주민들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로) 느부갓네살의 계획안에 들어오게 되고, 이들의 편안한 삶도 끝납니다. 적이 이들의 낙타를 노획물로, 이들의 가축을 전리품으로 빼앗아깁니다(32a; 참조. 29). 하솔의 멸망은 여호와의 의지에 따른 것이기에 멸망을 벗어날 길은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살쩍을 깎는 자들’(아랍 족속들)을 사방으로 흩어버리시고, ‘재난’이 그들에게 사방에서 오게 하십니다. 주민들은 떠나고, 인적이 완전히 끊깁니다. 영원히 폐허가 승냥이의 소굴이 된 하솔은 됩니다(33). 승냥이는 폐허가 된 곳에 사는 대표적인 동물입니다.
엘람의 신탁(34-39)
참된 인간됨은 주께 경청하고 순종하며 신뢰하는 데 있습니다. 우리는 부지불식중에 오염될 수 있으니 깨어 분별해야 합니다. 정체성이 흔들리면 선한 행실과 순종으로부터 멀어집니다. 권위가 권력으로 변질된 교회와 국가는 신적 역할과 사명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34유다 왕 시드기야가 즉위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엘람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5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엘람의 힘의 으뜸가는 활을 꺾을 것이요 36하늘의 사방에서부터 사방 바람을 엘람에 오게 하여 그들을 사방으로 흩으리니 엘람에서 쫓겨난 자가 가지 않는 나라가 없으리라 37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엘람으로 그의 원수의 앞, 그의 생명을 노리는 자의 앞에서 놀라게 할 것이며 내가 재앙 곧 나의 진노를 그들 위에 내릴 것이며 내가 또 그 뒤로 칼을 보내어 그들을 멸망시키리라 38내가 나의 보좌를 엘람에 주고 왕과 고관들을 그 곳에서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9그러나 말일에 이르러 내가 엘람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4-39)
엘람에 대한 심판이 예언됩니다. 엘람은 전쟁과 재앙으로 인해 큰 고통을 겪고, 그 지역의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가고 지도자들은 제거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엘람의 운명을 회복시키고 그들의 흩어진 자들을 다시 모으셔서 회복시킬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이로써 엘람에 대한 최후의 구속과 회복의 약속이 담겨 있습니다.
⑴ 엘림에 대한 도입
바벨론 동쪽 또는 페르시아 만 북북동쪽에 위치한 엘람의 역사에 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습니다. 주전 2000년대 후반, 대략 13세기 중반부터 12세기 중반까지 엘람은 일시적으로 메소포타미아의 주요 세력으로 등장했지만, 이후로는 영향력을 상실했습니다. 639년 앗수르 왕 앗수르바니팔(Ashurbanipal)에 의해 점령당했고, 그 뒤에는 바벨론과 메대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페르시아 시대에 엘람의 수도 수사는 페르시아 대제국의 행정 중심지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습니다. 예언자들은 자주 앗수르나 메대와 함께 엘람을 언급합니다(참조, 이사야 21:2; 22:6; 예레미야 25:25; 에스겔 32:22-26). 특이하게도 엘람의 신탁이 예레미야에게 주어진 때가 유다 왕 시드기야의 통치 초기로 옵니다(34).
⑵ 꺾인 엘림의 활(35-36)
시드기야의 통치 초기와 엘람의 신탁이 어떤 관계에 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 의해 유다의 왕으로 세움을 받은 시드기야와의 연결은 아마도 신탁의 시대적 정보 제공보다는 신학적 의도에서 나온 것 같습니다. 유다나 엘람이나 여호와께서 결정하신 바벨론의 굴레를 자진하여 받아들여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당신 백성 유다뿐만 아니라 저 멀리 동편 끝에 있는 엘람까지 모든 민족의 운명을 결정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엘람의 힘의 으뜸가는 활을 꺾으실 것입니다(35). 활은 칼과 함께 공격과 방어를 위한 가장 중요한 무기였습니다. 엘람이 자랑하는 활(참조. 이사야 22:6)이 꺾였음은 엘람의 군사력이 무력화됐음을, 엘람의 정병들이 궤멸됐음을 의미합니다. 엘람의 멸망이 먼저 바람의 비유로 표현됩니다(36). 여호와께서 하늘 네 귀퉁이에서 네 바람을 엘람에 오게 하셔서 엘람 사람들을 사방으로 흩으십니다. 겨가 광풍에 흔적 없이 사방으로 날려가듯이 엘람 사람들이 산 사방으로 흩어집니다. 엘람에서 쫓겨난 자들이 들어가지 않은 나라가 없습니다. 바람의 비유가 여호와의 맹한 진노로 구체화됩니다(37).
⑶ 여호와의 보좌(38)
여호와께서 적들 앞에서 엘람이 무서워 떨게 하시고, 칼을 보내 멸망하기까지 뒤쫓게 하십니다. 적에 맞서 싸워야 할 용사들에 사로잡혀 도망하지만, 뒤따르는 적의 칼을 피하지는 못합니다. 여호와께서 엘람에 진노하셔서 재앙을 내리시는 이유는 달리 언급되지 않습니다. 엘람의 멸망은 여호와의 우주적 왕권을 과시하는 사건입니다(38).
⑷ 엘람의 회복(39)
여호와의 보좌가 엘람에 놓입니다. 누가 엘람을 통치하는 왕인지가 분명해집니다. 지금까지 엘람을 다스렸던 왕과 고관들을 없애버리 시고 여호와께서 직접 통치하십니다. 이스라엘과 민족들의 심판을 통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은 물론 민족들의 왕이심이 분명해집니다. 모압(48:47)과 암몬(49:6)의 경우처럼 엘람의 신탁도 먼 미래에 있을 회복의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여호와께서 훗날 엘람의 운명을 되돌리실 것입니다(39).
인간은 도덕일 수 있으나 사회와 체제는 도덕적일 수 없습니다. 견제와 균형은 구조화된 권력의 악용을 최소화 해주는 지혜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주신 여러 권위를 바르게 행하는 시범을 보야 합니다. 사유화된 권력의 폐해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는 시대에 교회는 이런 실상을 하나님 앞에 기도로 드러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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