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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42-01)

 


말씀을 순종하려는 남은 자

예레미야 42장 1-14절


 

옛날 시조 중에서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 소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고 있습니다. 신앙에 있어서도 겉으로는 대단한 믿음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자신의 생각과 의지로 가득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위대하고 거대하게 보여도 실제로는 아주 연약하고 무능합니다. 해결할 수 없는 난제 앞에서 방황하고 두려워합니다. 바로 이때가 전능하신 하나님께 나갈 수 있는 기회입니다.

 

  • 본문의 내용은 그달랴를 잃고 바벨론이 두려워서 애굽으로 내려가려는 사람들이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묻고 싶어 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로만 행하겠다고 다짐하고 맹세합니다. 자신들의 진로에 대해서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이미 결정이 되어 있었습니다.

 

기도를 부탁하는 요하난과 백성들(1-6)

 

모든 삶에서 우리 뜻을 하나님의 뜻에 맞추어야 합니다. 위기를 만나면 이를 극복하기 위한 최선책을 찾아 나섭니다. 종종 마음속으로는 이미 결정을 내리고는 확인받고 싶어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대답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라면 그래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순종해 나가야 합니다.

 

1이에 모든 군대의 지휘관과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호사야의 아들 여사냐와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나아와 2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의 탄원을 듣고 이 남아 있는 모든 자를 위하여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 주소서 당신이 보는 바와 같이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이니 3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 4선지자 예레미야가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 말을 들었은즉 너희 말대로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고 무릇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숨김이 없이 너희에게 말하리라 5그들이 예레미야에게 이르되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하리이다 여호와께서는 우리 가운데에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이 되시옵소서 6우리가 당신을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보냄은 그의 목소리가 우리에게 좋든지 좋지 않든지를 막론하고 순종하려 함이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이다 하니라(1-6)

 

그달리야가 살해된 이후, 이스마엘이 추격해 쫓아버리고 그가 사로잡아가던 ‘왕의 딸들과 모든 백성’을 구출한 것으로 상황이 종료된 것은 아닙니다. 또 남아 있는 유다 백성들에게는 다른 살아가야할 문제가 남아 있었습니다.

 

⑴ 신탁의 부탁(1-3)

 

긴박한 상황에서 군대 지휘관들과 요하난과 그와 함께한 모든 사람들이 갈 길을 잃고 있었습니다. 40:15에서 요하난이 걱정했던 일이 눈앞의 현실로 다가옵니다. ‘유다의 남은 자’가 멸망에 떨어질 위기에 처합니다.

 

갈대아인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유다 사람이 바벨론 왕이 임명한 총독을 죽였다는 사실입니다. 갈대아인들의 보복은 피할 수 없어 보였습니다. 이들은 가만히 앉아 보복을 당하느니 차라리 애굽으로 내려가기로 결정합니다. 애굽을 향해 가다가 베들레헴 근처 게롯김함에서 쉬게 됐을 때, 이들은 예언자 예레미야를 생각해냅니다.

39:14과 40:6에 의하면 석방된 예레미야는 미스바의 그다랴에게로 보내지는데, 그는 미스바에서 그다랴와 함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문맥에 따르면 요하난 일행이 예레미야를 찾아왔을 때, 그는 베들레헴 근처에 머물고 있었던 갓 같습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의 멸망은 예레미야가 선포한 예언의 성취로, 이를 통해 그의 예언자적 권위가 전반적으로 인정을 받았습니다. 남은 유다의 모든 백성들, 요하난과 여사냐를 포함한 ‘모든 군대의 지휘관’과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예레미야에게로 옵니다. 모든 남은 사람이 예레미야와의 대화에 참여했기에 후에 누구도 핑계 될 수 없습니다. 모두 자기 말과 결정에 책임을 져야합니다.

이들은 예레미야에게 자신들의 절망적인 처지를 호소하면서 자신들을 위해 여호와께 중보해줄 것을 간청합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는 예레미야와 여호와의 긴밀한 관계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성취하신 하나님을 함축합니다. 그들은 예레미야에게 자신들의 갈 길을 위해서 중보기도해주길 부탁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표현하기를 ‘우리는 많은 사람 중에서 남은 적은 무리이니’는 과장법을 사용한 호소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남아 있는 유다 백성들은 바벨론 침공으로 많은 사람이 죽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고 남은 자들입니다. 요하난 일행은 환경이 매우 심각했습니다. 매우 마음이 낮아진 상태였습니다. 예레미야의 도움을 호소한 후에, 그들은 찾아온 목적을 언급합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마땅히 갈 길과 할 일을 보이시기를 원하나이다’(3) 그다랴가 살해당한 충격으로 바벨론의 보복에 대한 두려움과 혼란에 휩싸인 이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당혹해 했습니다. 구체적으로는, 이성적으로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은 합리적인 길이라고 생각해서 계속 내려가야 할지, 또는 다른 길이 있는지 예레미야를 통해 여호와의 뜻을 묻습니다.

 

⑵ 부탁의 수락(4)

 

예레미야는 이들의 간절한 부탁을 기꺼이 들어줍니다.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를 부탁하자, 예레미야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해주겠다고 응답합니다(4). 두려움에 사로잡힌 어찌할 바를 모르는 요하난 일행은 어쨌건 예레미야의 동포이고, 또 그와 함께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자들입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께서 이들에게 응답하시는 것을 하나나도 숨기지 않고 다 전달해줄 것을 약속합니다.

 

⑶ 일행의 답변(5-6)

 

예레미야가 메시지 전달을 약속하자 중보기도를 부탁했던 자들도 순종을 굳게 약속합니다. 이들은 여호와를 ‘진실하고 성실한 증인’으로 세워 ‘우리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당신을 보내사 우리에게 이르시는 모든 말씀대로 행할’ 것을 장엄하게 약속합니다(5). 예레미야를 통해 하신 말씀은 모두 좋든 나쁘든 순종하겠다고 맹세하고, 여호와를 증인으로 내세우기까지 했습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어떤 말씀이 주어지든 간에 순종할 것을 확약하면서 순종이 축복의 길임을 고백합니다(6; 참조 7:23; 38:20; 40:9).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뜻을 숨김없이 전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듣는 사람의 감정이 아니라 전할 메시지의 내용이었습니다. 그가 의식해야 할 것은 맡긴 분의 음성이었지 듣는 이들의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당신은 예레미야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확신한 말씀을 숨김없이 전하는 일꾼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예레미야(7-14)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해할 수 없을 때에도 순종했기 때문입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께 부름을 받을 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지만,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믿고 순종한 것입니다. 당신도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을 소유하시길 바랍니다.

 

7십일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 8그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 지휘관과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부르고 9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나를 보내어 너희의 간구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드리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가 이렇게 이르니라 10너희가 이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난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라 1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 12내가 너희를 불쌍히 여기리니 그도 너희를 불쌍히 여겨 너희를 너희 본향으로 돌려보내리라 하셨느니라 13그러나 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복종하지 아니하고 말하기를 우리는 이 땅에 살지 아니하리라 하며 14또 너희가 말하기를 아니라 우리는 전쟁도 보이지 아니하며 나팔 소리도 들리지 아니하며 양식의 궁핍도 당하지 아니하는 애굽 땅으로 들어가 살리라 하면 잘못되리라(7-14)

 

남은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지만, 그 응답은 자신들의 생각과는 달랐습니다. 분명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겠다고 했지만,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결정이 나니 순종하지 않으려 합니다. 혹시 하나님께 들으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내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기도를 드리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봅시다.

 

⑴ 신탁의 도입부(7-9)

 

열흘이 지난 후에 여호와의 응답이 주어집니다(7). 예레미야가 열흘 동안 계속 기도했는지는 불분명합니다. 답변이 주어지기까지 왜 열흘의 기간이 필요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놀람과 두려움에 사로잡혀 애굽으로 내려가던 요하난 일행에게 열흘의 기다림은 긴 시산이었을 것입니다. 43:2-3에 따르면, 기다림이 길어지자 사람들은 예레미야에게 의심을 품게 됐던 것 같습니다. 이들은 거듭 순종을 약속하고 순종이 복을 가져다준다고 고백했지만 이들의 순종은 결과적으로 열흘을 넘지 못합니다.

여호와께로부터 응답이 주어지자 약속에 따라 예레미야는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그와 함께 있는 모든 군 지휘관과 백성의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까지 다’ 한곳으로 부릅니다. 처음 예레미야를 찾아와 중보기도를 간청했던 사람들이 모든 답변 전달에 참여합니다. 예레미야는 여호와의 답변을 전달하기에 앞서 이들이 자신을 찾아와 중보기도를 부탁했음을 분명히 합니다. 이제 전할 신탁은 예레미야가 개인적으로 여호와께 기도해서 받은 것이 아니라, 이들의 청탁에 따라 여호와께 간구해서 받은 것입니다(9). 이것은 그들이 여호와의 응답에 순종할 책임이 있음을 강조합니다.

 

⑵ 권면의 말씀(10-12)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답변은 조건적으로 주어집니다. ‘너희가 땅에 눌러 앉아 산다면 내가 너희를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 너희를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가 너희에게 내린 재난에 대하여 뜻을 돌이킴이라’(10) 여호와께서 당신이 내린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셨기에, 이들이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지금 살고 있는 유다에 그대로 머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요하난과 함께한 남은 백성들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이 땅에 머물라고 하십니다.

‘세우고 헐지 아니하며’와 ‘심고 뽑지 아니하리니’는 24:6에서 제1차 바벨론 유배민들에게 주어진 약속의 말씀에도 그대로 나옵니다. 24장은 제1차 바벨론 유대민들을 하나님 백성의 남은 자들로 선포했는데, 유다가 멸망한 후 가나안에 남은 자들에게도 하나님 백성의 남은 자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주어집니다. 차이가 있다면 24장의 약속에는 조건이 따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여호와의 목소리에 순종하면 우리에게 복이 있으리라’(6)고 고백한 자들에게 복을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가나안에 사는 자들의 눈에는 심판의 흔적만 보이겠지만, 여호와께서는 이미 이들을 위해 새로운 구원 시대를 준비하셨습니다.  11-12절은 요하난 일행이 처한 상황과 관련한 약속의 말씀입니다. 바벨론 왕을 두려워하는데(41:16), 그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여호와께서 이들과 함께하시며 이들을 바벨론 왕의 손에서 구원하실 것이기에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호와께서 불쌍히 여기시기에 바벨론 왕도 이들을 불쌍히 여겨 고향 땅으로 돌려보낼 것입니다(참조 27:11). 선행하는 여호와의 자비가 바벨론 왕의 자비를 결정합니다. 바벨론 왕이 유다를 지배하도록 허락하신 분께서 유다의 남은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기로 하셨기에 바벨론 왕에게는 자비를 베푸는 것 이외의 다른 방도가 없습니다.

‘본향’은 가나안 땅이 아니라 바벨론의 보복이 무서워 애굽으로 도피하려고 떠나왔던 고향 땅을 가리킵니다. 요하난 일행에게 주는 구원 약속(11)은 여호와께서 예레미야를 예언자로 부르실 때 주신 약속의 말씀과 유사합니다(1:8).

 

⑶ 권고의 말씀(13-14)

 

권면의 말씀은 세 절로 짧게 주어지는데, 경고의 말씀은 13절부터 23절까지 열한 절에 걸쳐 길게 주어집니다.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겠다고 하던 요하난 일행은 눈앞에 보이는 불안한 유다에 남지 않고 안전한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을 선택할 것을 시사해줍니다. 13절의 조건문은 앞에 나오는 권면의 말씀을 부정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14절의 고건문은 요하난 일행의 속마음을 노출한 것입니다. 내용상으로는 동일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 살지 아니하리라.’는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복종하지 아니한’ 결정이기에 재앙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전쟁도 겪지 않고 나팔소리도 들리지 않고 양식이 떨어져 굶주리지도 않는 애굽 땅으로 내려간다면, 이들이 피하려 했던 재앙을 그곳에서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바벨론의 공격을 받을 때 여호와께서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두신(22:7) 것처럼, 바벨론의 보복이 두려워 유다를 떠나려는 자들 앞에 다시금 구원에 이르는 권면의 말씀과 멸망으로 끝나는 경고의 말씀을 두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요하난을 따르는 무리 속에 도사린 불신앙의 불씨를 보고 계십니다. 그들은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대신에 전쟁도 없고 기근도 없이 평화롭게 살 수 있는 애굽을 택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바벨론의 보복도 근거 없는 걱정이었고, 애굽에서의 절대 평화와 번영도 근거 없는 망상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헛된 상상이 빚어낸 부질없는 염려와 무익한 망상에서 우리를 건져 현실에 뿌리 내린 옹골진 믿음으로 살게 합니다.

그들은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요청하면서도 하나님께서 애굽 행을 허락하는 말씀을 하시기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결정을 정당화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어떻게 결정하실지 다 알고 있다는 듯 오만했습니다.

유다 백성들처럼 자신의 생각이 부정적으로 고정되어 있으면서, 하나님께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 결제 받으려는 것처럼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온 땅을 통치하시는 주권자이십니다. 요하난과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뜻을 외면한 채 오히려 바벨론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바벨론 왕이 아무리 강하다 해도 하나님과 견줄 수 없음을 그들은 알아야 했습니다. 진심으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요하난 일행은 안타깝게도 예레미야를 통해 주어진 하나님의 지시를 따르지 않습니다. 분명히 그들을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했을 때, 자신의 뜻이 아니라도 순종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다른 응답에 불순종의 길을 선택합니다. 기도의 모양은 갖추었으되 껍데기였을 뿐입니다. 우리의 기도는 순종할 결단과 믿음으로 드리는 참된 기도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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