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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40-01)

 

 


남은 동족 유다에게 돌아간 예레미야

예레미야 40장 1-16절


 

천주교 김수한 추기경이나 불교계 법정 스님 같은 분들은 세상 사람들에 많은 존경을 받습니다. 그들은 진리의 길은 가지 못한 분이지만 종교인으로서 일반사람들은 걸어가지 못할 만큼 청빈한 삶을 살았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살아갈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을 통해 성도들에게 교훈하신 경우가 있습니다. 일부분이지만, 성도들보다 하나님의 뜻을 더 잘 깨달아 살아갑니다. 그들은 성도들을 향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법을 가르칠 때가 있습니다. 이럴 때는 성도들이 부끄럽습니다.

 

  • 본문은 예루살렘 멸망으로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던 예레미야가 시위대장에 의해 발견되어지고 자유에 몸으로 석방이 되어 집니다. 예레미야에게는 안정적인 바벨론으로 가는 대신 유다로 돌아가 백성 가운데 거하기로 결정합니다. 이것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 지에 대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이방인(1-3)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채, 하나님의 백성의 지위를 유지할 길은 없습니다.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서 촛대를 옮기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순종한 유다에게 벌을 주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돌아서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해야 함을 강조합니다.

 

1사령관 느부사라단이 예루살렘과 유다의 포로를 바벨론으로 옮기는 중에 예레미야도 잡혀 사슬로 결박되어 가다가 라마에서 풀려난 후에 말씀이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2사령관이 예레미야를 불러다가 이르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곳에 이 재난을 선포하시더니 3여호와께서 그가 말씀하신 대로 행하셨으니 이는 너희가 여호와께 범죄하고 그의 목소리에 순종하지 아니하였으므로 이제 이루어졌도다 이 일이 너희에게 임한 것이니라 4보라 내가 오늘 네 손의 사슬을 풀어 너를 풀어 주노니 만일 네가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게 여기거든 가자 내가 너를 선대하리라 만일 나와 함께 바벨론으로 가는 것을 좋지 않게 여기거든 그만 두라 보라 온 땅이 네 앞에 있나니 네가 좋게 여기는 대로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갈지니라 하니라 5예레미야가 아직 돌이키기 전에 그가 다시 이르되 너는 바벨론의 왕이 유다 성읍들을 맡도록 세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가운데 살거나 네가 옳게 여기는 곳으로 가거나 할지니라 하고 그 사령관이 그에게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내매 6예레미야가 미스바로 가서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나아가서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가운데서 그와 함께 사니라(1-6)

 

예레미야의 석방을 보고하는 기사의 시작(1)이 특이합니다. 예레미야가 라마에서 풀려난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했다고 하는데, 2-6절은 느부사라단과 예레미야의 대화입니다.

 

⑴ 말씀의 계시(1)

 

예레미야에게 주어진 여호와의 말씀은 (새로운 도입부로 시작하는) 42:7-18에 가서야 나옵니다. 유다의 멸망으로 예레미야의 예언자적 활동이 끝난 것이 아님을 보여주려는 것 같습니다. 유다의 멸망으로 여호와의 심판 예언이 성취되기는 했지만, 예레미야를 통한 여호와의 개입은 멸망 이후에도 계속됩니다. 유다를 멸망시키는 것이 그분의 최종 목표가 아니었음을 시사해줍니다.

이 도입부에 따르면 여호와께서 느부사라단의 입을 통해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느부사라단의 말을 바벨론 사령관의 주장이 아니라, 여호와의 의지를 대변하는 말로 읽게 도와줍니다. 예레미야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다른 모든 사람과 함께 포로로 잡혀 바벨론으로 끌려가다가 라마에서 친위대장 느부사라단에 의해서 석방됩니다(1).

‘라마’(참조 31:15)는 베냐민 지파의 영토에 속한 성읍으로(참조. 여호수아 18:25; 사사기 4:5),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대략 10킬로미터 떨어진, 예레미야의 고향 아나돗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시위대 뜰에서 석방된 예레미야가 어떻게 다시 사로잡혀 다른 유배자들과 함께 바벨론으로 끌려가게 됐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왕의 명령에 따라 예레미야를 시위대 뜰에서 석방한 느부사라단이 예레미야를 다시 체포했으리라고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가 유배자들 가운데 있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것 같습니다.

 

⑵ 느부사라단의 말(2-5)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를 풀어주기에 앞서 예루살렘의 멸망 원인을 유다의 불순종으로 지적합니다(2-3). 유다 백성에 의해 거절당했던 예레미야가 구스인 에벳메렉(38:9)과 갈대아인 느부사라단에 의해 여호와의 예언자로 인정받습니다.

느부사라단은 예레미야를 풀어주면서 자기와 함께 바벨론으로 갈 것인지 또는 유다 땅에 남을 것인지 마음대로 하도록 제안합니다(4). 그는 예레미야를 점령지의 포로가 아니라 완전한 자유인으로 대우합니다.

39:12에서 느부갓네살이 그에게 준 명령 ‘그를 데려다가 선대하고…그가 네게 말하는 대로 행하라’에 일치하게 행동합니다. 느부사라단은 ‘바벨론 왕이 유다 성읍들을 맡도록 세운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로 돌아가서 그와 함께 백성 가운데 살든지, 또는 가고 싶은 곳으로 가라고 말하며, 예레미야에게 길에서 먹을 양식과 선물을 주어 보냅니다(5).

 

⑶ 미스바의 예레미야(6)

 

예레미야는 전자의 제안을 선택합니다. 그는 미스바에 있는 그다랴에게로 가서 그와 함께 ‘그 땅에 남아 있는 백성 가운데’ 삽니다(6). 예레미야는 폐허가 된 유다 땅에서 아직 할 일이 있음을 자각하고 남은 것 같습니다.

예레미야는 심판, 즉 아픔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새로운 자녀로 창조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가 바벨론에 항복을 권했지만, 그는 바벨론 나라의 번성을 위해 일하는 매국노가 아니었습니다.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살라고 권고합니다.

 

안정을 되찾는 유다(7-12)

하나님께서는 그의 자녀들이 혼란스러워서 갈팡질팡하고 있을 때, 때로는 믿지 않는 사람들을 통해 그 혼란시기를 잡아주시기도 합니다. 가령 모세는 그의 장인 이드로를 통해 이스라엘 질서 있게 통치하는 방법을 터득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총독 그다랴를 통해 남은 백성이 살길을 제시합니다.

 

7들에 있는 모든 지휘관과 그 부하들이 바벨론의 왕이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그 땅을 맡기고 남녀와 유아와 바벨론으로 잡혀가지 아니한 빈민을 그에게 위임하였다 함을 듣고 8그들 곧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과 가레아의 두 아들 요하난과 요나단과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와 느도바 사람 에배의 아들들과 마아가 사람의 아들 여사냐와 그들의 사람들이 미스바로 가서 그다랴에게 이르니 9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그들과 그들의 사람들에게 맹세하며 이르되 너희는 갈대아 사람을 섬기기를 두려워하지 말고 이 땅에 살면서 바벨론의 왕을 섬기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유익하리라 10보라 나는 미스바에 살면서 우리에게로 오는 갈대아 사람을 섬기리니 너희는 포도주와 여름 과일과 기름을 모아 그릇에 저장하고 너희가 얻은 성읍들에 살라 하니라 11모압과 암몬 자손 중과 에돔과 모든 지방에 있는 유다 사람도 바벨론의 왕이 유다에 사람을 남겨 둔 것과 사반의 손자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그들을 위하여 세웠다 함을 듣고 12그 모든 유다 사람이 쫓겨났던 각처에서 돌아와 유다 땅 미스바에 사는 그다랴에게 이르러 포도주와 여름 과일을 심히 많이 모으니라(7-12)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은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를 총독으로 임명해(5,7) 그에게 유다를 맡기고 바벨론에 잡혀가지 않은 자들을 돌보게 합니다. 그다랴는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떠나 미스바에 자리를 잡고 혼란과 두려움에 빠진 유다를 안정시키기 위해 애씁니다(6,10).

남쪽의 유다 산지로 피신했던 저항 세력들도 바벨론 점령군이 세운 그다랴의 통치를 받아들입니다. 이들의 지도자들인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 가레아의 두 아들 요하난과 요나단, 단후멧의 아들 스라야, 느도바 사람 에배의 아들들과 마아가 사람의 아들 여사냐(참조, 열왕기하 25:23)가 그다랴에게로 돌아옵니다(8). 그다랴는 이들에게 (예레미야의 선포와 동일하게) 두려워하지 말고 바벨론 왕을 섬기며 그의 재건 사업에 동참할 것을 호소합니다(9). 이 땅에서 살면서 바벨론 왕을 섬기면 모든 일이 잘될 것입니다(참조 38:20). 그는 이들에게 역할 분담을 제안합니다. 자신은 미스바에서 갈대아인들을 상대할 것이니 각자 마음에 드는 성읍으로 가서 정착하여 살 것을 부탁합니다(10).

바벨론 왕이 그다랴에게 유다의 통치를 맡겼다는 소식이 유다의 경계 밖까지 전 해집니다. 전쟁과 요단 동편 모압과 암몬과 에돔 땅으로 피난했던 유다 사람들이 돌아와 성읍에 정착하여 농사를 짓기 시작합니다(11-12). ‘포도주와 여름 과일을 심히 많이 모으니라’(12b)는 사실적 언급이 아닙니다. 포도나무와 과일나무를 심어 그 열매를 거두기까지는 여러 해가 지나야 합니다. 신학적 내용을 담고 있는 진술로, 여호와께서 다시 땅을 축복하기 시작하셨음을 보여줍니다(참조. 29:5). 유다가 심판의 시대를 지나 구원의 시대로 접어듭니다. 여호와의 축복이 함께하면서 전후의 혼란과 궁핍함이 신속하게 극복됩니다.

예레미야서에 따르면 예레미야는 자주 사반 집안에 속한 인물들의 도움을 받는다. 사반은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에 참여한 인물입니다(열왕기하 22:3 이하). 사반의 아들 아히감은 26:24에서 여호야김의 위험으로부터 예레미야의 목숨을 보호해줍니다. 열왕기하 22:14에 의하면 아히감은 여호와의 신탁을 묻기 위해 요시아 왕이 예언자 홀다에게 파견한 사절들 가운데 한명입니다. 사반의 또 다른 아들 엘리사는 시드기야 왕의 사신으로 바벨론에 갈 때 예레미야의 편지를 바벨론 유배민들에게 전해줍니다(29:3). 느부사라단은 석방된 예레미야를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에게 맡깁니다(39:14; 40:5). 예루살렘 왕궁에서 중요 지위를 차자했던 사반 집안 사람들이 예레미야에게 우호적이었음은 사반 집안의 정치적 입장과 예레미야의 신학적 입장이 서로 일치하는 바가 있있음을 사사해 줍니다. 사반 집안은 정치적 판단에 따라 바벨론의 지배를 받아들였겠지만, 바벨론에 의한 유다의 지배가 양적 공통분모였습니다.

 

내재된 위험(13-16)

오늘날 성도 중에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평안한 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사람들이 인정해 주지 않고 박수 받지 않는 길이지만 가야할 필요성이 있습니다. 그 길은 좁은 길과 좁은 문이기도 합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면 그 길을 순종하며 나가야 합니다.

 

13가레아의 아들 요하난과 들에 있던 모든 군 지휘관들이 미스바에 사는 그다랴에게 이르러 14그에게 이르되 암몬 자손의 왕 바알리스가 네 생명을 빼앗으려 하여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을 보낸 줄 네가 아느냐 하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믿지 아니한지라 15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 미스바에서 그다랴에게 비밀히 말하여 이르되 청하노니 내가 가서 사람이 모르게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을 죽이게 하라 어찌하여 그가 네 생명을 빼앗게 하여 네게 모인 모든 유다 사람을 흩어지게 하며 유다의 남은 자로 멸망을 당하게 하랴 하니라 16그러나 아히감의 아들 그다랴가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에게 이르되 네가 이 일을 행하지 말 것이니라 네가 이스마엘에 대하여 한 말은 진정이 아니니라 하니라(13-16)

 

유다를 안정시키고 재건하려는 그다랴의 시도가 예기지 않은 위험에 직면합니다. 그다랴에게 돌아온 유다 저항군의 모든 지휘관은 느다냐의 아들 이스마엘이 암몬 자손의 왕 바알리스와 공모해 그다랴를 암살할 생각으로 돌아왔다고 알려 주지만, 그다랴는 이들의 정보를 신뢰하지 않습니다(13-14).

암살의 주모자와 배후 세력만 언급하고 그 동기나 목적에 관해서는 달리 말하지 않습니다. 또 그다랴가 자신에 대한 암살 정보를 신뢰하지 않은 이유도 나오지 않습니다. 최소한의 정보만 제공해준다. 지휘관들과 그다리의 만남이 성과 없이 끝나자 이번에는 가레아의 아들 요하난이 은밀하게 그다랴를 찾아가서 제안합니다. 유다의 남은 자들을 위해 자신이 아무도 모르게 이스마엘을 죽일 테니 허락해 달라고 부탁하자, 그다랴는 요하난이 이스마엘에 관해 거짓을 말한다고 하면서 그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합니다(15-16). 그다랴가 이스마엘의 암살 음모에 관한 정보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에 관해서는 추측만 가능하다. 시드기야 시대 왕궁의 당파적 분열을 경험한 그다랴는 화합과 일치에 우선을 두었을 수 있습니다. 그는 멸망당한 유다가 다시 분열되는 것을 막기 위해 지휘관들의 정보를 무시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 됐건, 이스마엘에 대한 그다랴의 신뢰가 결국은 요하난이 걱정했던 대로모인 모든 유다 사람을 흩어지게 하며 유다의 남은 자로 멸망을 당하게 합니다(참조. 41:16-43:7). ‘암몬 자손의 왕 바알리스’는 여기에만 나오는 인물로, 그가 이스마엘을 사주하거나 그와 공모해서 바벨론 왕이 유다 총독으로 임명한 그다랴를 죽이려 한 이유도 불분명합니다. 암몬 왕은 유다 지역의 안정이 자신의 세력 확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다랴는 바벨론 왕이 유다 총독으로 세운 인물이기에 암몬 왕의 의도는 자신에게 큰 위험을 초래할 수도 있었습니다. 바벨론의 보복을 피하려고 그는 다윗 가문에 속한 이스마엘을 대리인으로 내세웠을까?


하나님께서는 때로 주변 사람들을 통해 당신의 뜻을 보여주십니다. 말씀 앞에 신중한 분별이 필요하지만, 때로 사람의 음성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잇습니다. 안락함과 부요함이 아니라 부르심과 주의 뜻을 따라 선택하며 살아갑시다. 말씀하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신뢰하며 주님의 몸된 교회와 사회를 섬기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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