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잠언(25-02)

 


일상 생활 속에서 나타난 지혜

잠언 25장 15-28절


그리스도인은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름 받았습니다. 이 말은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을 구원하라는 뜻도 되겠지만, 사람을 얻는 일이 소중한 일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손해 보거나 상처를 받으면 조금도 참지 못하고 똑같이 갚아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서두르지 말고 하나님께 넘겨 드리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사람을 얻을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반면 사람을 잃는 길은 무엇입니까?

 

본문은 자기 절제에 대한 여러 가지 잠언들을 소개합니다. 첫 부분인 15-17절은 자기 절제의 중요성을 말하면서 시작하고, 마지막 부분인 27-28절도 자기 절제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그 사이에 위치한 18-26절은 삶의 현장에서 자기 절제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 적절한 경우들과 적절하지 않은 경우들을 번갈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자신을 절제하면서 올바른 삶의 길을 가도록 문제들을 헤쳐나가야 합니다.

 

자기 절제의 중요성(15-17)

절제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분노를 참고, 과식을 금하고, 지나치게 이웃을 찾아 그를 질리게 하지 않은 것이 지혜입니다. 아주 좋은 꿀도 많이 먹으면 좋지 못하고 자기를 스스로 높이려고 하면 절제력을 잃을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 절제하지 못하는 마음은 성벽 없는 설과 같습니다.

15오래 참으면 관원도 설득할 수 있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16너는 꿀을 보거든 족하리만큼 먹으라 과식함으로 토할까 두려우니라 17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까 두려우니라(15-17)

본문은 자기 절제의 중요성으로 시작됩니다. 15절은 분노를 참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분노를 참고 인내하면 지도자의 생각도 바꿀 수 있습니다. 부드럽게 설득할 때 그의 생각을 바꿀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 절제는 적절한 삶의 태도로 이어집니다.

16절과 17절은 ‘만족’의 주제로 서로 연결됩니다. 히브리어 동사 샤바가 공통으로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16절은 꿀을 족할 만큼만 먹고 과식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17절은 이웃집에 많이 다니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두 구절 모두 ‘내 만족’만을 추구하다가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 있는 경우를 말하고 있습니다. 만족을 추구하지 말고, 절제하는 마음으로 적절한 정도에서 만족할 줄 아는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의 삶입니다.

 

적절하지 않은 삶의 예들 1(18-20)

남의 상황과 심정을 잘 고려하여 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예의 없이 대한다면, 그것은 마음이 상한 사람에게 기쁨의 노래를 불러주고, 추운 날에 옷을 벗기며, 상처 위에 식초를 붓는 것 같은 잔인한 행동이 될 수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의 상황과 형편을 잘 살펴서 말하고 행동하야 합니다.

18자기의 이웃을 쳐서 거짓 증거하는 사람은 방망이요 칼이요 뾰족한 화살이니라 19환난 날에 진실하지 못한 자를 의뢰하는 것은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 20마음이 상한 자에게 노래하는 것은 추운 날에 옷을 벗음 같고 소다 위에 식초를 부음 같으니라(18-20)

18절부터는 이런 절제의 관점에서 잘못된 삶의 태도들을 예로 들어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18절은 이웃을 쳐서 거짓증거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칼과 뾰족한 화살 같아서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사람입니다. 이웃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하고 이웃을 해하려 하는 태도는 지혜롭지 못하고 미련한 내면을 드러낼 뿐입니다.

19절은 어려울 때에 패역한 자를 의지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패역한 자를 의지하는 것은 부러진 이와 흔들리는 발과 같습니다. 치아가 부러지면 사용할 수 없고, 발이 흔들리면서 있을 수가 없습니다. 즉, 있어도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패역한 자는 이와 같기에, 그런 사람을 의뢰하는 것은 결코 삶의 적절한 태도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도움이 필요하다 해도, 절제하지 못하고 패역한 자에게 가면 안 됩니다.

20절은 마음이 상한 자 앞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 적절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마치 추운 날에 옷을 벗는 것과 같습니다. 소다 위에 식초를 붓는다는 구절은 해석하기 어려운 난해 구절인데, 아마도 ‘소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 ‘네테르’는 깊은 상처로 번역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식초를 상처 위에 부으면 쓰라리듯이, 마음이 아픈 자 앞에서 노래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다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18-20절은 적절하지 않은 행동들을 언급하는데, 이 행동들은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하고 자기만족을 추구하기 때문에 저지르게 되는 일들입니다. 이웃의 마음과 상황을 생각한다면, 또한 의지하려는 존재가 누구인지를 생각한다면, 실수를 범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적절한 삶의 예들 1(21-22)

아무리 원수라 할지라도 어려움에 처했다면 도와주어야 합니다. 이 우너수는 그동안 내게 거짓말하고, 배신했으며, 마음이 상했을 때 기쁨의 노래를 부른 사람일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그가 어려움에 빠졌을 때, 이를 외면하지 않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화해의 길이 열리고 하나님의 기쁨이 될 수 있습니다.

21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22그리 하는 것은 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21-22)

이어서 21-22절은 적절한 삶의 예를 보여줍니다. 바로 원수에게 은혜를 베푸는 일입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과연 어떻게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이 일이야말로 자기 절제로부터 비롯된 가장 적절한 행동입니다. 원수에게 음식을 먹이고 물을 공급해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두 가지 유익을 얻게 됩니다. 첫째로, 그 원수가 스스로 지독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자신의 악함에도 불구하고 자신에게 되돌아온 선함으로 인해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기에, 스스로를 돌아볼 기회를 그에게 줄 수 있게 됩니다. 둘째로, 모든 것을 지켜보시는 여호와께서 그런 선한 행동에 대해 적절한 보상을 주실 것입니다. 원수에게 보복하고 싶은 마음을 참고 절제하는 것이 올바른 지혜의 행동이며, 위의 두 가지 유익을 얻게 됩니다.

 

적절하지 않은 삶의 예들 2(23-24)

악인과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의인이 흔들려서 악인과 타협하는 것은 마치 우물이 흐려지는 것과 같습니다. 우물이 흐려지면, 그동안 그것을 이용한 사람들은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됩니다. 동일하게 사회를 맑게 해주던 의인이 타락하면 사회는 치명적인 해를 입게 됩니다.

23북풍이 비를 일으킴 같이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을 일으키느니라 24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 움막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나으니라(23-24)

23-24절에서는 다시금 적절하지 않은 삶의 예들을 소개합니다.

23절은 ‘참소하는 혀’에 대해서 말합니다. 여기서 참소하는 혀란 ‘비밀의 혀’라는 뜻으로, 당사자의 뒤에서 그 사람에 대해서 말하는 경우를 뜻합니다. 본인도 모르는 잘못된 이야기가 등 뒤에서 들려오는 경우 즉 억울하게 험담을 당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바람이 불면 비가 올 것이 확실한 것처럼, 이런 참소하는 혀는 사람의 얼굴에 분노를 불러일으킬 것이 확실합니다. 자신의 혀를 절제하지 못하면 나중에 자신이 화를 당하게 됩니다.

24절은 다툼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이 구절은 21:9과 거의 동일합니다. 비교잠언(~보다 ~가 더 좋다)의 형태를 통해 적절함에 관해 알려주고 있습니다. 다툼을 일삼는 여인과 함께 지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붕 한구석에서 혼자 사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습관적으로 분노하는 것이 얼마나 적절하지 못한 일인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23-24절은 자신을 절제하지 못하고 혀를 잘못 사용하는 경우와 분노를 다스리지 못하는 경우를 보여주면서,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절제하는 삶을 살 것을 가르쳐줍니다.

 

적절한 삶의 예들 2(25-26)

지혜롭지 못한 부적절한 삶의 예들이 나열됩니다. 이웃에 대한 거짓 증거, 어려울 때 패역한 자를 의지하는 것, 마음이 상한 자 앞에서 노래 부르는 일, 참소하는 혀, 다툼 등은 모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결코 자신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뿐 아니라 도리어 해가 되며 이웃에게도 화를 가져오게 됩니다.

25먼 땅에서 오는 좋은 기별은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으니라 26의인이 악인 앞에 굴복하는 것은 우물이 흐려짐과 샘이 더러워짐과 같으니라(23-26)

25-26절은 다시금 적절한 삶의 예로 두 가지를 소개합니다.

25절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것이 목마른 사람에게 냉수와 같음을 말합니다. 목마른 사람에게 있어서 냉수는 가장 필요한 것이며 따라서 가장 적절한 것입니다. 멀리 있는 자에게 좋은 소식을 전할 줄 아는 것이 삶의 지혜이며, 그것은 지혜로 삶의 적절함을 유지하는 좋은 예입니다.

26절은 의인이 악인에게 굴복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이것은 의인이 적절하게 살기 위해서는 악인 앞에 굴복하지 말아야 함을 알려주는 가르침입니다. 흐려진 우물은 우물이 아니며 더러워진 샘은 쓸모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악인 앞에 굴복한 의인 역시 공동체에 아무런 유익을 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악에게 굴복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런 노력이야말로 가장 적절한 삶의 태도입니다. 그 어떤 어려움과 난관이 있어도, 스스로를 잘 다스려 끝까지 믿음을 지키도록 해야 합니다.

 

자기 절제의 중요성(27-28)

지혜로운 삶은 절제하는 삶이며 또한 때에 맞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원수에게 은혜를 베풂으로써 원수가 부끄러움을 느껴 자신을 돌아보게 하거나, 좋은 소식을 전하여 목마른 자에게 생수와 같은 시원함을 주는 것, 의인이 결코 악인 앞에서 굴복하지 않는 모습 등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27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하고 자기의 영예를 구하는 것이 헛되니라 28자기의 마음을 제어하지 아니하는 자는 성읍이 무너지고 성벽이 없는 것과 같으니라(27-28)

27-28절은 25장 전체를 마무리하면서 자기 절제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27절은 꿀을 많이 먹는 것이 좋지 못함을 말합니다. 자기 절제의 중요성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꿀을 적당히 먹으라는 조언은 오늘 본문 16절에 이미 등장한 바 있습니다. 초두와 말미가 서로 수미쌍관을 이루면서 전체를 아우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27b절에서 자기 영예를 구하는 것이 적절하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절제를 잃게 되고, 결국 넘어져 실수하게 됩니다. 자기 영광을 버리고 겸손해지는 것이 지혜와 절제를 지킬 수 있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28절은 이 모든 논의를 최종적으로 결론짓습니다. 자기의 마음을 절제하는 것은 마치 성읍을 지키는 것과 같습니다. 성벽이 없는 무너진 성은 더 이상 성으로서의 존재 가치를 갖지 못합니다. 마찬가지로 절제하지 못하는 마음은 더 이상 스스로를 지킬 수 없으므로, 멸망의 길로 달려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점을 기억하며 우리는 스스로를 절제하고 하나님 경외하기를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일이 손해라고 생각한다면 살아계신 하나님과 그분의 약속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마음을 제어하고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누리는 성도가 됩시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잠언(25-01)

 


올바르게 통치한 왕의 지혜

잠언 25장 1-14절


자아중심주의(Egocentrism, 自我中心主義)는 자기(self)와 타자(other)를 구분할 줄 모르는 것을 말합니다. 더욱 특정화하면, 모든 것을 자기 기준에서 자신 외에 다른 시각을 정확하게 인정하거나 이해하는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만을 내세우는 사람을 보면 마음이 답답해집니다. 그러나 잘 들어주고 상황에 맞게 말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마음을 시원하게 합니다.

 

본문은 주로 왕정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왕의 역할을 설명하고(1-2), 왕 앞에서 어떻게 행실을 해야 하는지를 가르친 후(4-7), 재판정에서 어떻게 행하고 말해야 하는지를 보이며(8-11), 지혜로운 삶에 대하여 조언합니다(12-15). 왕정생활에 대한 가르침인 동시에, 모든 언약 백성들의 삶에서 부딪치게 되는 문제들에 대한 가르침이기도 합니다.

 

표제(1)

성도는 사랑과 공의의 조화를 이루며 살아야 합니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죄와 악한 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면, 자신도 물들어 잘못된 길을 가기 쉽습니다. 한 나라를 다스리건 개인의 일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공통점은 악을 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말과 마음을 잘 다스려 지혜롭게 행해야 합니다.

1이것도 솔로몬의 잠언이요 유다 왕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편집한 것이니라(1)

25-29장은 히스기야 왕의 신하들이 편집한 솔로몬의 잠언들입니다. 열왕기상 4:32에서 언급한 것처럼 솔로몬은 3,000개의 잠언들을 지었고, 그중 새롭게 수집된 내용이 25-29장에 등장합니다.

1절의 원문에 보면 ‘또한’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즉, ‘이것들도 또한 솔로몬의 잠언이다’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25장 이후를 수집했던 히스기야의 신하들이 25장 앞에서 이미 나타났던 솔로몬의 잠언 모음집(1-9장, 10:1-22:16)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2:17-24:34은 지혜자들의 잠언 모음집이었는데, 이제 다시 솔로몬의 잠언 모음집으로 되돌아온 것입니다.

 

왕의 역할(2-3)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질서 있게 창조하신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신비를 살피며 지혜롭게 행하기 원하십니다. 사람은 말과 마음을 잘 다스려 지혜롭게 행해야 합니다. 왕이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해 필요한 것에 대해 전합니다.

2일을 숨기는 것은 하나님의 영화요 일을 살피는 것은 왕의 영화니라 3하늘의 높음과 땅의 깊음 같이 왕의 마음은 헤아릴 수 없느니라(2-3)

2절은 하나님의 영광과 왕의 영광을 대조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일을 숨기는 것이고, 왕의 영광은 일을 살피는 것입니다. 살핀다는 것은 자세히 조사해서 드러낸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주관하시고 다스리고 계시는데, 그 일을 실제로 이 땅에서 해나가는 것은 왕의 책무입니다. 이 구절을 이신론적으로 이해해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서 일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옳지 않은 해석이 됩니다. 2절은 왕의 책무를 강조하기 위한 구절입니다.

3절은 이어서 왕에 대해서 한 가지를 더 언급합니다. 왕의 마음을 헤아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헤아리다’로 번역된 단어와 2절에서 ‘살피다’ 라고 번역된 단어는 ‘하카르’ 동사로 동일합니다. ‘살펴 조사해서 드러낸다’는 의미입니다.

즉, 2절은 왕의 임무가 일을 살피는 것이라고 말하고, 3절은 그렇게 살피는 왕의 마음을 살피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왕의 마음은 사람들이 그의 마음을 살필 수 없을 만큼 크고 넓은 마음이어야 합니다. 지도자의 마음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알 수 있는 구절입니다.

 

왕 앞에서의 행실(4-7)

외적인 조건으로 판단하는 사회 분위기로 인해 사람들은 자신을 드러내는 데 조급하고 경쟁에서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해를 씁니다. 자신이 손해를 입으면 어떤 방법으로든 상대에게 바로 갚아 주려고 합니다. 하지만 선을 넘어 지나치게 행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4은에서 찌꺼기를 제하라 그리하면 장색의 쓸 만한 그릇이 나올 것이요 5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하라 그리하면 그의 왕위가 의로 말미암아 견고히 서리라 6왕 앞에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며 대인들의 자리에 서지 말라 7이는 사람이 네게 이리로 올라오라고 말하는 것이 네 눈에 보이는 귀인 앞에서 저리로 내려가라고 말하는 것보다 나음이니라(4-7)

4-7절은 왕 앞에서 어떻게 행해야 하는지를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4절은 은에서 찌꺼기를 제하는 과정을 거쳐야 그릇이 나올 수 있음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찌꺼기는 무엇이며 그릇은 무엇입니까? 5절이 이를 설명합니다. 찌꺼기란 곧 왕 앞에 있는 악한 자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왕의 통치가 견고해지지 못하게 하는 자입니다. 은에서 찌꺼기를 제거하면 그릇이 되듯이, 왕 앞에서 악한 자를 제거하면 왕의 통치가 의로 견고하게 서게 될 것입니다.

6절은 이어서, 스스로 높은 체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5절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왕 앞에서 제거될 만한 악한 자가 되지 말라는 뜻이 됩니다. 물론 6-7절은 기본적으로 왕 앞에서 어떤 자리에 앉을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왕 앞에서 높은 자리에 앉았다가 나중에 더 높은 이가 왔을 때 내려가라는 말을 들을 수 있으므로, 처음부터 낮은 자리에 앉았다가 나중에 높은 자리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 더 낫다는 의미입니다. 겸손하면 나중에 존귀를 얻게 될 수 있다는 뜻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6-7절의 이야기를 4-5절과 연결시키면, 처음부터 높은 자리에 앉는 자야말로 왕 앞에서 제거해야 하는 찌꺼기와 같은 악한 자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 악한 자는 나중에 그 높은 자리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며, 그 자리는 처음부터 왕 앞에서 겸손했던 자에게 대신 주어질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왕 앞에서 겸손하게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듯 본문은 고대 왕 앞에서의 행동에 대한 지침을 제공해줍니다. 그렇다면 이 구절들을 현대 사회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내 삶의 자리에서, 리더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가장 중심이 되는 원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고, 그러한 하나님 경외의 경계 안에서, 리더를 존중하고 그 앞에 겸손히 행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재판과 언어사용(8-11)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바르게 전하는 능력은 귀한 것입니다. 학교에서도 일방적으로 강의하고 듣기만 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토론하여 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문화적으로도 큰 차이가 있지만, 잠언의 시대나 지금이나 말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8너는 서둘러 나가서 다투지 말라 마침내 네가 이웃에게서 욕을 보게 될 때에 네가 어찌할 줄을 알지 못할까 두려우니라 9너는 이웃과 다투거든 변론만 하고 남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말라 10듣는 자가 너를 꾸짖을 터이요 또 네게 대한 악평이 네게서 떠나지 아니할까 두려우니라 11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8-11)

이어서 8절 이하에서는 재판 및 언어 사용에 대한 주제를 전개해나갑니다.

8절은 우리에게 너무 급하게 재판정에 호소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나중에 이웃으로부터 수치를 당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이웃으로부터 수치를 당한다는 것은 재판에서 지는 경우를 말합니다. 미리 살피고 잘 판단하지 못한 상태에서 재판을 걸면, 나중에 오히려 재판에 져서 수치를 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재판에 호소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그 재판을 통해서 의로운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가늠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9절은 그런 재판 과정 가운데 필요한 말만 하고 상대방의 비밀을 누설하지는 말라고 조언합니다. 재판과 관계없는 개인적인 비난은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10절에 나옵니다. 은밀한 일을 누설하면, 듣는 자가 꾸짖으려 할 것이고 나 자신은 악평을 듣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르침을 11절은 ‘경우에 합당한 말’이라고 부릅니다. 원문을 직역하면 상황에 맞춰서 나온 말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경우에 합당한 말이란 무엇입니까? 그냥 사람의 마음을 사기 위해 적당히 둘러대는 말, 내 유익을 챙기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11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8-10절의 문맥을 생각해야 합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이란, 바르게 행한 말입니다. 급하게 재판을 걸지 말고, 재판 중에도 상대방의 은밀한 일은 누설하지 않는 그런 말입니다. 꼭 필요한 경우에, 꼭 필요한 내용만 말하고, 다른 이에게 피해가 갈 만한 말은 삼가는 말이 바로 ‘경우에 합당한 말’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말입니다.

 

지혜로운 삶(12-14)

지혜로운 삶은 우선 잘 듣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은 들리지 않습니다. 듣지 않으면 순종할 수 없습니다. 더욱이 자신에게 약이 되는 쓴 충고도 잘 들어야 합니다. 또한, 말을 신실하게 잘 전달하는 사신은 갈증을 해갈하는 음료수처럼 보낸 자의 마음을 회복시킵니다.

12슬기로운 자의 책망은 청종하는 귀에 금 고리와 정금 장식이니라 13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느니라 14선물한다고 거짓 자랑하는 자는 비 없는 구름과 바람 같으니라(12-14)

12절부터는 여러 가지 주제를 통해 지혜로운 삶의 실제적인 경우들을 보여줍니다. 먼저 12절은 우리에게 듣는 귀가 필요함을 강조합니다. 듣는 귀는 순종할 줄 아는 사람을 말합니다. 지혜로운 자의 말이라고 해도, 듣는 귀가 있어야 듣고 유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듣는 귀’가 있어야 합니다.

11절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는 것도 중요하고, 또한 듣는 귀가 있어서 지혜로운 조언을 받을 줄 아는 것도 중요합니다. 13절은 충성된 사자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충성된 사자란 ‘믿을 수 있는 사자’를 말합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누가 그런 충성된 사자입니까? 바로 추수하는 날의 얼음 냉수와 같은 사람입니다. 쉽게 구할 수 없는 눈 녹인 물이 추수하는 일꾼들에게 너무나 귀한 음료수가 되는 것처럼, 이런 충성된 사자는 매우 귀하여 찾기 어렵지만, 일단 그런 사자를 찾게 되면 그가 주인의 마음을 회복시키는 일을 감당하게 됩니다. 우리는 충성된 사자와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14절은 과장하는 말에 대해 경고합니다. 마치 구름이 몰려오고 바람이 불어 비가 올 줄 알았는데 비가 오지 않으면 당황하게 되는 것처럼, 선물을 주겠다고 분위기만 만들어놓고 선물을 주지 않는 사람은 다른 이들을 당황하게 만듭니다. 14절은 행동이 뒤따르지 않는 언어행위의 허무함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경우에 합당한 말을 하고, 듣는 귀를 가지고, 충성된 사자가 되어야 하되, 말 만하고 행동은 뒤따르지 않는 미련한 자의 모습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결국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하나님 때문에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고, 악한 신하들을 제거함으로 공의를 세우고, 일시적 충동이 아닌 성령의 충만을 받는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갑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잠언(24-02)


추가로 덧붙이는 지혜들

잠언 24장 23-34절


연인은 잠시라도 헤어져 있는 것을 싫어합니다. 늘 그리워하고 보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지혜를 그렇게 사모하고 애타게 추구하기를 원하십니다. 지혜는 성도의 삶을 형통하게 하며 실제적인 유익과 도움을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절대적이고 완전하고 영원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스스로 지혜를 산출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혜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은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지혜자로 살아갈 수 있을지를 다룹니다. 지혜자의 말씀에 해당하는 두 번째 모음집으로, 지혜자들이 삶에서 경험한 가르침을 전달합니다. 악인을 견책하고, 스스로 악인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또한, 공동체를 돌보지 않는 게으름을 버리고, 하나님의 공동체를 잘 지켜나가도록 힘써야 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의를 이루라(23-29)

재판 상황입니다. 지혜자는 악인을 악하다 하고 의인을 의롭다 합니다. 하지만 미련한 악인은 얼굴을 보고 안면이 있는 사람이면 편파적으로 판결합니다. 그것은 이방인에게서도 미움을 받겠지만. 악인을 견책하면 기쁨과 복을 얻게 됩니다. 정직한 대답을 하는 사람은 평화와 친교의 입맞춤을 할 수 있습니다.

23이것도 지혜로운 자들의 말씀이라 재판할 때에 낯을 보아 주는 것이 옳지 못하니라 24인에게 네가 옳다 하는 자는 백성에게 저주를 받을 것이요 국민에게 미움을 받으려니와 25오직 그를 견책하는 자는 기쁨을 얻을 것이요 또 좋은 복을 받으리라 26당한 말로 대답함은 입맞춤과 같으니라 27네 일을 밖에서 다스리며 너를 위하여 밭에서 준비하고 그 후에 네 집을 세울지니라 28는 까닭 없이 네 이웃을 쳐서 증인이 되지 말며 네 입술로 속이지 말지니라 29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가 행한 대로 그 사람에게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23-29)

재판할 때 사람에 따라 재판하는 것은 매우 옳지 않습니다. 지혜자는 사사로운 정이나 이해관계에 이끌려 악인을 두둔해서는 안 되며, 잘못을 지적하고 바로잡을 것을 권면합니다.

(1) 악인을 견책하라(23-26)

본문은 22:17-24:22에 이어 등장하는 두 번째 지혜자들의 말씀 모음집입니다. 23a절이 이를 나타내는 표제입니다. 23b절부터는 본격적인 지혜자들의 말씀을 소개합니다. 먼저 재판할 때 어떤 사람에게 편파적인 판정을 내리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이 두 번째 지혜자들의 말씀은 처음부터 공동체 안에 하나님의 원칙을 세우는 것을 언급하고 있는 것입니다.

24절은 악인을 옳다 하면 안 되며, 그렇게 하면 심지어는 이방 백성들에게서까지 미움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알려줍니다. 25절은 이와는 반대로 악인을 견책하면 기쁨과 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들은 계속해서 공동체 안에서 악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 줍니다. 참 지혜를 지녔다면, 우리는 악인을 견책하는 바른 양심을 삶 속에서 실천해야만 합니다.

23-25절까지의 이야기가 26절에 요약되어 있습니다. 26절은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 문장입니다. 개역개정에서 ‘적절한 말로 대답하라’라고 한 것은 원문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정직한 말로 대답하라’라고 번역해야 옳습니다. 정직한 대답을 하는 사람은 입맞춤할 수 있게 됩니다. 공동체 안에서 가장 필요한 대답은 ‘정직한 대답’입니다. 앞선 23-25절에서도 편파적인 판정을 하지 말며, 악인을 옳다 하지 말고 견책하라고 했습니다. 이런 모든 언어사용이 바로 정직한 대답인 것입니다.

우리는 공동체 안에서 옳은 것은 옳다 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참 지혜입니다.

(2) 바깥일을 잘 다스리라(27)

27절은 처음 보기에는 앞뒤 문맥에 잘 어울리지 않는 듯 보입니다. 바깥일을 먼저 잘 다스린 후에 자기 집을 세우라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입니까? ‘수신제가치국평천하’라는 가르침에 익숙한 우리는 이 말씀이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27절은 공동체를 하나님의 원칙으로 돌보는 일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공동체가 가정보다 더 중요하다는 뜻이 아니라, 공동체의 일이 원만히 해결되지 않으면 가정의 일도 세우기 어렵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앞뒤 문맥에 잘 어울리게 됩니다. 공동체 안에서 선을 행하고 악을 멀리하라는 문맥이므로, 27절은 공동체의 일을 잘 돌보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강조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3) 악인이 되지 말라(28-29)

28절은 잠언의 독자들에게 악인이 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이웃에 대해서 거짓으로 증거하지 말고, 입술로 속이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특별히 29절에서는 이웃에게 원수를 갚는 것과 같은 행동을 삼가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한 그대로 갚아주겠다는 생각은 공동체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 생각은 하나님의 정의를 세우는 방법이 아닙니다. 참되게 정의를 세우는 것은 내가 당한 일을 갚아주겠다는 복수의 의도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공동체를 돌보는 가운데 하나님의 의를 세우겠다는 참되고도 아름다운 목적을 세우고 실천할 때, 정의는 실현될 수 있습니다.

 

게으름에 대한 경고(30-34)

게으른 자는 지혜 없는 자입니다. 그는 자신의 게으름이 가져올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게 때문입니다. 영적 태만이요 자기 방치입니다. 그것은 자기 혼자만이 아니라 공동체에 해를 입힙니다. 하지만 지헤자는 깊이 생각하고 훈계를 받아서 게으름에 빠지지 않습니다.

30내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며 본즉 31시덤불이 그 전부에 퍼졌으며 그 지면이 거친 풀로 덮였고 돌담이 무너져 있기로 32가 보고 생각이 깊었고 내가 보고 훈계를 받았노라 33네가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 더 누워 있자 하니 34네 빈궁이 강도 같이 오며 네 곤핍이 군사같이 이르리라(30-34)

게으름이 가난을 부릅니다. 지혜자는 좋은 포도원에 가시덤불과 잡초가 무성한 것을 보았는데, 이 모든 것은 농부의 게으름 때문입니다. 이를 보며 지혜자는 ‘좀 더’ 자고, 졸고, 누우려는 게으름이 가난을 강도같이 빈곤을 군사같이 불러오게 만든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1) 게으른 자의 밭(30-32)

30절부터 갑자기 게으름에 대한 경고가 나타납니다. 게으름의 주제가 문맥에 어떻게 부합할 수 있을지 처음에는 명확하게 나타나지 않습니다. 30절의 내용은 지혜자가 게으른 자의 밭과 지혜 없는 자의 포도원을 지나가면서 보니 포도원과 밭이 황폐해지어 덤불로 덮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 없는 자’로 번역된 원어는 ‘마음이 부족한 자로 판단력이 부족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이 표현은 잠언 1-9장에서 음녀의 유혹에 넘어가는 자에게 주로 쓰였습니다(잠 7:7; 9:4, 26). 따라서 30절의 게으른 자는 곧 판단력이 부족하여 지혜를 버린 미련한 자입니다. 지혜 없음과 미련함의 결과, 게으른 삶에 천착하게 된 것입니다. 게으름이란 삶에서 어쩌다가 범하게 되는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마음의 뿌리에서 나오는 삶의 형태요 습관입니다.

이러한 게으름의 결과가 어떠한지가 31절에 묘사되고 있습니다. 가시덤불이 땅 전체에 퍼져 있고, 지면은 거친 풀로 덮였으며, 돌담은 무너져 있습니다. 게으름은 하나님께서 주신 산업을 피폐하게 만들고, 그 땅이 열매를 맺지 못하게 만들고 맙니다. 그렇다면 이런 게으름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는 것입니까? 다음 구절로 계속 연결해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2) 게으름에 대한 경고(33-34)

지혜자는 이것을 보고 한 가지 ‘훈계’를 얻었다고 말하는데, 그 훈계의 내용이 33-34절에 나와 있습니다. 좀 더 자자, 좀 더 졸자, 좀 더 누워 있자고 하면 빈궁이 강도처럼 찾아와 궁핍한 자가 될 것입니다.

이 33-34절은 잠언 6:10-11에서 미리 다루어진 잠언과 동일합니다. 6장에서는 부지런함을 강조하기 위해서 이 구절을 사용했습니다. 개미에게 가서 부지런함, 문제 해결을 위한 준비성을 배우라는 가르침을 강조하기 위해서 게으름에 대한 경고를 사용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 게으름은 ‘지혜를 버린 결과’로 표현됩니다. 여기서 30절의 ‘판단력이 부족하다’라고 할 때 부족함이라는 히브리어 어근과 34절의 ‘곤핍’의 히브리어 어원이 ‘하사르’로서 동일한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혜 없음과 게으름이 연결되고 있는 것입니다. 판단력이 부족하여 지혜를 버리고 결국 미련하게 된 자는 게으름에 빠질 수밖에 없음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지혜 없음의 결과로 게으름에 빠짐이 오늘 본문 전체의 문맥에서는 어떠한 의미를 지닐 수 있습니까? 바로 ‘공동체를 돌보지 않는 잘못’이라는 주제와 연결됩니다.

30-34절의 게으름은 공동체를 돌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공동체를 먼저 돌보고 자기 일을 돌보라고 할 정도로, 공동체를 세우고 그 안에서 하나님 지혜의 가치를 실천해 나가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지혜 없는 자는 이러한 일에 게으름을 부리게 될 것이고, 결국 자신이 악인이 되거나 아니면 재판 중에 편파적인 판정을 내리게 되어,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말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경고의 말씀을 진중하게 받아들임으로, 참 지혜자가 되어 공동체를 하나님 지혜의 말씀으로 돌보고 바로 세워가도록 힘써야 할 것입니다. 지혜자의 말씀을 듣고 지혜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만 복을 받고 성공의 길로 달려가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공동체를 돌보고, 억울함을 당한 자들을 도와주며, 그 공동체에 하나님의 의와 거룩이 세워지도록, 최선을 다해 열심을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삶의 자리에서 참된 지혜자가 되어야 한다고 본문은 우리를 일깨웁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가진 자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고난 중에 회복시키시는 은혜를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를 늘 사모하여 지혜롭고 형통한 삶을 살기 바랍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잠언(24-01)

 


인생의 집을 건축한 지혜

잠언 24장 1-22절


왕을 비롯해 국정을 맡은 자, 가정을 책임지는 부모는 모두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염두에 두고 국정이나 가정을 이끌어야 합니다. 진정한 ‘왕다움’ 혹은 왕권은 거기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왕권을 주장하려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한 것인지를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잠언 22:17-24:22의 마지막 단락으로서 지혜가 가져오는 유의들을 강조하며, 또한 교활하게 악을 행하는 자들에 대해서 경고하고 있습니다. 악인을 대하는 태도를 가르쳐주는데, 그들을 시기하지도 말고 그들의 멸망을 즐거워하지도 말며 오직 하나님을 경외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오직 하나님과 왕을 두려워하는 삶이야말로 지혜로운 삶이라는 것이 22:17-24:22의 결론입니다.

 

악인을 시기하지 말라(1-2)

세상이 흘러가는 것을 보면, 선하고 의롭고 올바른 길을 가는 사람들이 세상을 주관하는 것이 아니라, 사악하고 안하무인 사람들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들은 하나님도 무시하고 사람들을 우습게 여겨서 자기 생각대로 모든 것을 해야 합니다. 마치 자신들이 역사를 주락펴락하면서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가만히 두지 않습니다.

1너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며 그와 함께 있으려고 하지도 말지어다 2그들의 마음은 강포를 품고 그들의 입술은 재앙을 말함이니라(1-2)

인생의 집은 지혜로 지어야 합니다. 악인이 세운 인생의 집은 겉보기에 화려하고 튼튼해 보이지만, 심판의 재앙이 불어올 때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본 단락은 악인을 시기하지 말라는 가르침으로 시작합니다. 심지어는 그런 자와는 함께 있지도 말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의 마음과 입술에서 나오는 것이 악한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잠언 3:31과 23:17의 내용을 다시 거론하고 있는데, 24:19-20에 또다시 나옵니다. 동기를 제시하는 절에서는 악인들이 앞으로 할 일이 아니라 그들의 악한 의도(품다, 말하다)에 더 강조점을 두고 있습니다.

 

지혜가 베풀어주는 유익 1(3-7)

지혜를 담은 공동체는 번성과 안전을 누립니다. 그런 공동체는 전쟁에서 승리할 만큼의 전술과 전략을 가지게 됩니다. 지혜는 우리 각자의 영혼에 꿀과 같으며, 지혜가 있으면 미래가 있습니다. 시간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그분이 열어 가시는 의의 실을 걷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3집은 지혜로 말미암아 건축되고 명철로 말미암아 견고하게 되며 4또 방들은 지식으로 말미암아 각종 귀하고 아름다운 보배로 채우게 되느니라 5지혜 있는 자는 강하고 지식 있는 자는 힘을 더하나니 6너는 전략으로 싸우라 승리는 지략이 많음에 있느니라 7지혜는 너무 높아서 미련한 자가 미치지 못할 것이므로 그는 성문에서 입을 열지 못하느니라(3-7)

악인들에게서 흘러나오는 악함과 대비되는 것들이 지혜가 베풀어주는 유익입니다.

3절은 지혜로 말미암아 집이 견고하게 됨을 말합니다. 4절은 그 집의 방들이 지식과 명철을 통해 아름답게 채워진다고 말합니다. 3-4절은 지혜가 풍성한 보상을 우리에게 공급한다는 의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집’은 ‘가정’, ‘왕조’, ‘나라’를 의미할 수 있으므로, 지혜가 공동체를 견고하게 건설하고 풍성하게 성장시킨다는 뜻이 됩니다.

이어서 5-7절은 지혜가 전쟁에서의 승리를 보장한다고 말합니다. 5절은 지혜 있는 자가 강하다고 설명하고, 6절은 전쟁에서는 전술과 모략가가 필요함을 말합니다. 여기서 전술 및 모략가란 지혜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됩니다. 7절에서는 미련한 자는 지혜를 얻지 못함을 말합니다. 마치 성문에서 너무 높이 있어서 미련한 자가 지혜를 취할 수 없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 어떤 공개적인 토론(“성문”은 사법적인 모임을 암시한다)에서도 미련한 자의 의견은 무시될 것입니다. 미련한 자에게는 아무런 의견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에게는 뭔가 쓸 만한 말이 없다는 것을 사람들이 알기 때문에 “그는 입을 열지 못한다.” 지혜의 능력은 강하며 미련한 자는 취할 수 없으므로, 지혜를 지닌 자가 전쟁에서 승리하게 됩니다. 지혜를 갖게 되면 풍성한 성장 및 전쟁에서의 승리를 보장받게 됩니다.

 

교활한 악인이 되지 말라(8-12)

기독교의 윤리는 세상의 가치 기준을 넘어섭니다. 복음은 가족, 친척, 동족, 동일 인종이라는 한계를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신 사건을 통해 천상과 지상의 장벽이 허물어졌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따라서 교회는 위기에 처한 사람 누구라도 도울 준비하여야 합니다.

8악행하기를 꾀하는 자를 일컬어 사악한 자라 하느니라 9미련한 자의 생각은 죄요 거만한 자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느니라 10네가 만일 환난 날에 낙담하면 네 힘이 미약함을 보임이니라 11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 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12네가 말하기를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하였노라 할지라도 마음을 저울질 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네 영혼을 지키시는 이가 어찌 알지 못하시겠느냐 그가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8-12)

 이어서 8절은 악한 일을 마음에 생각하는 자는 ‘교활한 자’임을 말합니다. 9절은 그런 교활한 계획은 죄임을 지적합니다. 그런 일을 꾀하고 실천하면 사람에게 미움을 받게 될 뿐입니다. 미련한 자는 죄를 생각합니다. 미련한 자는 거만한 자와 동일시되고 거만한 자가 얻는 이름(8)을 받게 됩니다. 잠언서에서 “미워하는 것”(가증히 여기는 것)은 하나님의 비위를 거스르는 것을 가리킬 때 자주 쓰입니다.

10절은 이어서 환난이 오는 날에 힘에 부쳐 약해지면 자신의 미약함을 보일 뿐임을 말합니다. 8-10절은 겉으로 보기에는 지혜로운 것 같으나 사실 속마음은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은 참 지혜를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보다는 자신의 이득만을 계산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자는 나중에 환난이 닥쳐올 때 끝까지 버티지 못하고 결국 버틸 힘이 없어 넘어지게 될 뿐입니다.

11-12절은 그러한 교활한 악인의 한 예를 명쾌하게 보여줍니다. 사망으로 끌려가 학살을 당하게 된 자를 도와주지 않는 교활한 악인의 예입니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자입니다. 12절은 교활한 자가 내놓은 변명을 미리 보여줍니다. ‘우리가 알지 못했습니다’라고 둘러대려 해도 마음을 저울질하시고 영혼을 지키시는 이, 곧 여호와께서 모두 알고 계시기에, 결국 그분이 각자의 행위대로 갚으셔서 교활한 자에게는 그에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게 하십니다. 8-12절은 겉으로는 지혜로운 척하지만 실제로 여호와를 경외하지는 않는 사람에 대한 엄중한 경고입니다.

 

지혜가 베풀어주는 유의 2(13-14)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을 아시고, 각자의 행위대로 보응하십니다. 사회의 불의와 폭력으로 죽음의 위기에 놓인 약자들을 외면하고 돌아선다면, 하나님께서는 그에 상응한 대가를 치르게 하십니다. 공동체 안 퍅으로 어려움에 부닥친 약한 지체를 돌아보시길 바랍니다.

13내 아들아 꿀을 먹으라 이것이 좋으니라 송이꿀을 먹으라 이것이 네 입에 다니라 14지혜가 네 영혼에게 이와 같은 줄을 알라 이것을 얻으면 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13-14)

이 명령은 1-9장에 자주 나오는 ‘내 아들아’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13-14절에서는 지혜가 베풀어주는 유익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13절에서는 꿀을 먹으면 입에 달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꿀은 14절에서 설명할 지혜에 대한 비유입니다.

14절은 지혜가 우리의 영혼(네페쉬)에 꿀과 같다고 밝힙니다. 지혜를 얻으면 장래의 소망이 끊어지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지혜를 얻어서 장래의 소감을 가진 사람은 어떤 자세로 살아가게 될 것입니까? 그것이 15-20절에서 의인은 악인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라는 측면에서 설명되고 있습니다.

 

의인과 악인(15-20)

악인들은 교활합니다. 그래서 겉으로 보면 지혜로운 것 같지만 환난이 닥쳐오면 그 정체가 드러납니다. 그들은 도움이 필요한 자를 외면하고는 자신들은 몰랐다고 발뺌할 것입니다. 하지만 마음을 저울질하시고 영혼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 다 알고 계시니 그들이 자기 행위대로 받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니 악인의 번성은 부러워할 일이 아닙니다.

15악한 자여 의인의 집을 엿보지 말며 그가 쉬는 처소를 헐지 말지니라 16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17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 그가 엎드러질 때에 마음에 기뻐하지 말라 18여호와께서 이것을 보시고 기뻐하지 아니하사 그의 진노를 그에게서 옮기실까 두려우니라 19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며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 20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15-20)

15-20절은 의인이 악인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먼저 15-16절은 악인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알려줍니다. 15절은 악인에게 의인의 집을 헐려고 숨어서 기회를 엿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그 이유가 16절에 나옵니다. 의인은 일곱 번 넘어가도 일어나게 될 것이기에, 의인을 무너뜨리려고 매복하는 것은 결국 성공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악인은 자신의 악함으로 인해서 스스로 무너질 것입니다.

17-20절은 의인에게 악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를 알려줍니다. 17-18절은 원수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때 마음에 증거로 제시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와께서 그 다음의 즐거움을 약하게 보시고서 그 원수에 대한 심판을 돌이키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악인을 심하지 않으실 수 있다는 뜻이 결코 아닙니다. 다만 우리가 악인의 심판받는 것을 볼 때, 속으로 기뻐하는 것이 지혜가 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하나님의 심판을 보면서 악인을 긍휼히 여기며 나 자신이 그러한 악인이 되지 않도록 주님 경외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19-20절은 악인으로 인해서 분노하지도 말고 시기하지도 말 것을 요청합니다. 19a절의 ‘악인으로 인해서 분노하지 말라’는 내용은 앞선 17-18절에서 악인의 멸망을 기뻐하지 말라는 것과 내용상 연결됩니다. 우리는 악을 미워해야 하나, 악인을 미워하거나 그 사람에 대해서 분노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악인에 대해 분노하지 말고, 악을 미워하며, 악인이 잘되는 것을 시기하지도 말고, 오히려 선을 행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악인들의 결국은 명확합니다. 그들은 장래의 소망이 없기에 결국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와 왕을 두려워하라(21-22)

구약에서 왕은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왕을 요구할 때 반드시 다음의 사실을 명심하라고 하셨는데, 많은 병마를 두지 말 것, 많은 아내를 두지 말 것, 율법책을 묵상함으로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워서 그의 마음이 형제 위에 교만해지지 아니할 것입니다.

21내 아들아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고 반역자와 더불어 사귀지 말라 22대저 그들의 재앙은 속히 임하리니 그 둘의 멸망을 누가 알랴(21-22)

본 단락의 결론은 여호와와 왕을 두려워하라는 것입니다. 여호와와 왕을 경외하는 데 힘쓰지 않는 자들과 더불어 함께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런 자들에게는 재앙이 급하게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재앙과 왕이 보내는 재앙이 임하므로, 그들은 곧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핵심입니다. 악인을 시기하거나 미워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 경외하기를 힘쓰면, 악인들의 악을 무너뜨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나라를 세워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않고, 은연 중에라도 그들의 악행을 닮지 않으려면, 더 적극적으로 하나님과 모든 사람들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가정과 교회를 튼튼하게 세워가는 지혜로운 건축자의 모습입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잠언(23-02)


술과 음식에 대한 지혜

잠언 23장 15-35절


세상이 좀처럼 사람을 사람답게 대우해주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원일 뿐이고 심하게 말하면 부속품일 뿐입니다. 필요할 때 쓰고 편하게 버리도록 법까지 만들어 주었습니다. 마음 둘 곳이 없는 현실은 이겨낼 대상이 아니라 체념하고 순응할 대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상황이 녹록지 않으니 사람들은 술을 찾습니다. 이런 때에 믿음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본문은 크게 두 문단(15-21, 22-35)으로 나뉩니다. 각 문단은 지혜를 얻으라는 권고로 시작하고 술에 대한 경고로 마칩니다. 첫째 문단은 이 내용을 간략하게 가르치는 데 비해, 둘째 문단은 매우 자세한 가르침을 베풀고 있습니다. 지혜를 얻어야 하며, 술을 멀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본문에서의 술은 물론 술 자체를 가리키지만, 동시에 상징적 의미로 음녀의 유혹을 뜻합니다.

 

첫 번째 권고(15-21)

지혜로운 자녀를 보는 부모는 기쁩니다. 정직한 아들을 보면 부모는 유쾌합니다.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않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식을 보는 것이 부모의 소원입니다. 부모가 아니라 바로 그 지혜의 삶이 그들에게 안전한 미래, 의로운 미래를 열어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15내 아들아 만일 네 마음이 지혜로우면 나 곧 내 마음이 즐겁겠고 16만일 네 입술이 정직을 말하면 내 속이 유쾌하리라 17네 마음으로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항상 여호와를 경외하라 18정녕히 네 장래가 있겠고 네 소망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19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 20술을 즐겨 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21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 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 22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15-22)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많은 재물을 모으고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모로서, 혹은 교사로서 나는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1) 지혜를 얻으라(15-19)

오늘의 본문은 지혜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는 권고로 시작합니다.

15-16절은 마음이 지혜로워야 하고 입술이 정직을 말해야 함을 가르칩니다. 여기서는 이해력을 담당하는 기관인 ‘마음’이라는 단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여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직’은 ‘메샤림’이라는 단어로, ‘공평’으로도 번역되는데 올곧고 바름'을 뜻하며, 지혜의 길을 선택한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지혜를 선택하면 부모의 마음이 즐겁고 기쁠 것이라는 부탁입니다.

17-18절에는 지혜를 선택해야 하는 이유가 등장합니다. 먼저 17절에서는 죄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고 여호와 경외에 힘쓸 것을 주문합니다. 여기 ‘부러워하다’라는 ‘시기하다’라는 단어입니다. 지혜자는 악인의 번영을 시기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일을 시기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18절에서 말하듯이, 여호와를 경외할 때 장래가 있고 소망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15-18절은 지혜를 선택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허락하신다는 내용입니다.

이어서 잠언 기자는 19절에서 19장을 연상시키는 권면을 합니다. “내 아들아 너는 듣고 지혜를 얻어 네 마음을 바른 길로 인도할지니라.”

(2) 술에 대한 경고(20-21)

20-21절에서는 조금 갑작스럽게 음식을 탐하는 것에 대한 경고가 나옵니다. 술을 즐겨하고 고기를 탐하는 자와 함께하지 말라는 내용인데, 그런 자들에게서 영향을 받아서 술을 즐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가 되거나 잠에 취한 게으른 자가 되면, 지금 있는 재산조차 모두 탕진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술과 고기를 탐하지 말라는 내용은 그 자체로는 유익한 조언입니다. 신명기 21:20에서도 제멋대로인 젊은이들은 공동체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경고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조언이 왜 이 문맥에서 등장하고 있는지는 아직 분명하지 않으며, 27-35절에서 명확해질 것입니다. 일단 우리가 여기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것은 먹는 것에 탐욕을 부리거나 게으른 사람이 되면 안 된다는 메시지입니다.

 

두 번째 경고(22-35)

술이 주는 기쁨에 취해서 술의 노예가 되고 결국 죄악에 무감각한 자가 되어 자신을 스스로 파멸시키고 말 것입니다. 이는 음녀의 유혹에 넘어가 그녀에게 자기 영혼을 팔아넘기는 사람처럼 어리석습니다. 술은 분별력과 절제력을 앗아가며, 아주 천천히 우리를 죽이는 독사의 족과 같습니다. 그 외적인 화려함과 거짓 만족의 늪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23진리를 사되 팔지는 말며 지혜와 훈계와 명철도 그리할지니라 24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로 말미암아 즐거울 것이니라 25네 부모를 즐겁게 하며 너를 낳은 어미를 기쁘게 하라 26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주며 네 눈으로 내 길을 즐거워할지어다 27대저 음녀는 깊은 구덩이요 이방 여인은 좁은 함정이라 28참으로 그는 강도 같이 매복하며 사람들 중에 사악한 자가 많아지게 하느니라 29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상처가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30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31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순하게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32그것이 마침내 뱀 같이 물 것이요 독사 같이 쏠 것이며 33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구부러진 말을 할 것이며 34너는 바다 가운데에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35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23-35)

술 취함은 재앙과 근심, 분쟁과 원망과 상처의 원인입니다. 술은 마치 뱀과 같아서, 한번 물리면 감각을 마비시키고 허튼소리를 하게 합니다. 이것이 지속하면 거대한 파도가 몰아치는 바다 한가운데 누운 사람처럼, 또 몸을 가눌 수 없는 돛대의 꼭대기에 있는 사람처럼 위태롭게 됩니다.

(1) 지혜를 얻으라(22-26)

먼저 22-26절은 다시금 지혜를 얻으라는 권고를 전해줍니다. 특별히 22, 24-25절은 부모와의 관계를 언급합니다. 지혜를 얻은 자가 되면 부모의 기쁨이 된다는 사실을 매우 강조합니다.

22절은 부모에게 순종하고 어머니가 나이가 들어갈 때 경히 여기지 말라고 말합니다. 23절은 그렇게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 중 중요한 부분이 지혜를 얻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24-25절은 자녀가 지혜를 얻게 될 때 부모가 크게 즐거워할 것을 말합니다. 26절 역시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 주어야 함을 말합니다. 부모의 가르침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2) 술에 대한 경고(27-35)

이제 27절부터는 다시금 술에 대한 경고가 나옵니다. 20-21절에서는 술, 고기, 잠자는 것에 대한 경고가 함께 등장했는데, 27-35절에는 술에 대한 경고가 집중적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술에 대해서 가르치기 위해서 먼저 27-28절에서는 기생과 이방 여인의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27절은 기생과 이방 여인을 피하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깊고 좁은 구덩이여서, 한번 빠져들게 되면 헤어날 수 없는 덫과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28). 그들은 강도같이 매복하고 있으며 사람들 중에 사악한 자가 많아지게 만듭니다. 여기서 기생과 이방 여인은 잠언의 독자들이 피해야 할 좋지 않은 여인들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 내용은 29절부터 이어지는 술에 대한 내용과 병행되면서 상징적인 의미를 동시에 갖게 됩니다. 이를 살피기 위해 29절 이하를 먼저 생각하고, 이후 이 두 가지를 연결해보시길 바랍니다. 29절은 ‘~이 뉘게 있느뇨’라는 질문을 여섯 번이나 던집니다. 재앙, 근심, 분쟁, 원망, 까닭 없는 상처, 그리고 붉은 눈이 뉘게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30절에 나오는데, 바로 술입니다. 술에 의해서 삶의 모습이 흐트러진 사람에게 재앙, 근심, 분쟁, 원망 등이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31절은 그 술의 일종인 포도주를 언급합니다. 포도주는 매우 ‘올곧음’ 보입니다. ‘올곧음’으로 번역되는 ‘메샤림’이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포도주가 순하게 내려감을 묘사합니다. 그런데 그 ‘올곧음’은 32절이 말하는 것과 같이 나중에는 뱀같이 쓰고 물것입니다. 즉, 처음에 좋게 보이는 포도주가 나중에는 생명을 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처음 보이는 모습에 속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 포도주에 속아 넘어가 빠지게 되면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맞게 됩니다.

그 결과가 33-35절에 나옵니다. 먼저 33절에 나오는 것처럼, 눈에 괴이한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을 때려도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정도에까지 이르게 되고, 그런 상태에서도 다시금 술을 찾는 지경에 빠지게 됩니다. 즉, 술에 중독이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괴이한 것’으로 번역된 원어를 직역하면 ‘음녀들’입니다. 포도주에 빠지면 눈에 ‘음녀들’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여기서 우리는 27-28절에서 기생과 이방 여인이 언급되었던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잠언 1-9장에서 음녀와 이방 여인은 지혜 여인과 대조를 이루는 상징이었습니다. 지혜의 길이 아닌 죽음의 길, 멸망의 길로 가도록 유혹하는 존재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23장 본문에서 ‘술’은 곧 ‘음녀’를 상징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음녀와 같은 존재’로 묘사되고 있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술을 멀리해야 하는 것은 처음에는 그것이 좋아 보이지만, 나중에는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중독되기 때문입니다.

35절을 보면, 술에 취해 맥이 풀린 상태이면서도 허세와 호기를 부리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더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그가 생각하는 것은 또 한 잔의 술뿐입니다. 술에 완전히 지배당하고 중독된 모습입니다. 이것은 음녀의 유혹을 물리쳐야 하는 이유와 비슷합니다. 잠언 5:1 이하에서 음녀에 대해 묘사하기를, 처음에는 달콤하지만, 나중에는 죽음에 이르게 하는 존재가 바로 음녀라고 말한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오늘 15-35절 본문 전체는 ‘지혜의 길을 가서 부모를 기쁘게 해야 한다’라는 가르침과 ‘술과 음녀와 같은 존재들을 피해야 한다.’라는 가르침으로 압축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을 살며, 음녀와 술과 같은 것들을 멀리하면서, 겉보기에 우리를 만족시킬 것처럼 유혹의 손길을 뻗는 미련함의 길을 멀리해야 할 것입니다.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여 형통함을 위해 악인의 길을 따를 것인지, 아니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 살 것인지 우리는 결정하도록 요구받고 있습니다. 한쪽은 거짓 만족에 취해 있느라 나와 타인을 망가뜨리게 되지만, 다른 한쪽은 참된 기쁨과 즐거움을 안겨줄 것입니다. 아무리 힘겨운 현실일지라도, 그 너머에서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며 오늘도 지혜의 길을 걷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잠언(23-01)

  


진수성찬이나 재물을 경계하라

잠언 23장 1-14절


누군가와 함께하는 식사는 단순히 음식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누는 행위입니다. 그런 식탁의 자리가 ‘회식’ 혹은 ‘접대’라는 이름 아래 탐심과 탐식으로 변질하곤 합니다.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이 그저 공허한 인사말이 되거나 무슨 의도입니까? 고민하게 하는 말이 되었습니다. 언제쯤 우리는 밥과 말에 정직할 수 있습니까?

 

본 단락의 중심 주제는 탐욕에 대한 경고와 자녀 교육입니다. 1-5절은 탐욕에 대한 첫 번째 경고로서, 맛있는 음식을 탐하는 것을 상징적 이미지로 사용해서 과한 욕심을 부리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6-11절은 탐욕에 대한 두 번째 경고로, 이웃의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12-14절은 자녀에 대한 훈계가 꼭 필요함을 가르칩니다.

 

탐욕에 대한 경고 1(1-5)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과 음식을 먹게 될 경우, 차려진 음식에 정신이 팔려서는 안 된다고 권면합니다. 그가 나를 시험하는 자리일지 모릅니다. 그가 차려준 산해진미를 먹는 것이 내게 독이 될지도 모릅니다. 특히 인색한 자와 함께하는 식탁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1네가 관원과 함께 앉아 음식을 먹게 되거든 삼가 네 앞에 있는 자가 누구인지를 생각하며 2네가 만일 음식을 탐하는 자이거든 네 목에 칼을 둘 것이니라 3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라 그것은 속이는 음식이니라 4부자 되기에 애쓰지 말고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 5네가 어찌 허무한 것에 주목하겠느냐 정녕히 재물은 스스로 날개를 내어 하늘을 나는 독수리처럼 날아가리라(1-5)

‘속이는 음식’을 조심해야 합니다. 아랫사람을 위하는 마음으로 대접하는 경우도 있지만, 많은 경우 통치자들은 자기 뜻을 관철하기 위해 사람들을 대접하고 자기편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식탐을 경고합니다.

(1) 음식에 대한 욕심을 절제하라(1-3)

23장의 첫 단락은 맛있는 음식을 상징적 이미지로 사용해서 탐욕을 부리지 말 것을 권합니다.

1절은 솔로몬은 한 가지 특수한 상황을 상정합니다. 관원과 함께 음식을 먹는 경우입니다. 여기서 ‘관원’이란 ‘다스리는 자’로 정치적, 행정적 권세를 행사하는 사람입니다. 즉 자신보다 더 큰 권세를 지닌 사람과 식사 자리에 동석한 경우, 우리는 맛있는 음식에 관심을 기울이면 안 되고, 그 사람에게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2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만일 음식을 탐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조심해야 한다고 경고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비유로서, ‘내가 연약하고 민감하고 넘어지기 쉬운 영역’이 있다면, 그에 관해서는 더욱 과한 욕심을 부리지 않기 위해 주의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목에 칼을 두라고까지 말합니다. 욕심을 내는 것을 반드시 절제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목’은 탐욕을 가리킵니다. 본문에서 사용하는 탐하는 것의 원어가 ‘네페쉬’인데, 이 단어는 동시에 목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따라서 본 절의 의미는 ‘탐욕을 부리고 싶어 하는 마음 그것에 칼을 겨눠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3절은 연이어서 음식을 탐하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그 탐욕은 바로 ‘속이는 음식’이기 때문입니다. 3절은 2절에서 제시한 권고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목에 칼을 겨누지 않고 탐욕에 져서 그 음식을 먹게 되면, 먹을 때는 맛있게 느껴지겠지만 나중에는 그 음식이 나를 속이게 될 것입니다. 그 음식은 맛있는 음식이 아니라, 나를 어려움으로 몰아넣는 쓰디쓴 음식임이 결국 밝혀지기 때문입니다.

(2) 재물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4-5)

4절은 부자가 되려는 욕심을 멀리하라고 권고합니다. 이 역시 탐욕에 대한 경고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재물을 과하게 모으려 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음을 알려줍니다. 4b절은 우리에게 지혜를 사용해서 욕심을 버려야 한다고 말합니다. 개역개정의 ‘네 사사로운 지혜를 버릴지어다’보다는 ‘네 지혜를 사용하여 욕심을 멈추라고 해석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5절은 재물에 탐욕을 부리면 안 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우리가 재물에 눈길을 주는 순간, 그 재물은 없어집니다. 재물에 독수리와 같은 날개가 생겨서 하늘로 날아가고 만다는 것입니다. 이것 역시 하나의 비유입니다. 우리가 욕심을 내는 순간, 그 재물을 갖지 못하게 된다는 것을 비유를 통해 전달하는 것입니다. 재물은 그 자체로서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지 못합니다. 바른 관점과 태도로 재물을 대해야 그 재물을 소유할 수 있고 사용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적 관점으로 재물을 관리하지 않는다면, 재물은 어느 순간 없어지고 맙니다. 좀 더 깊이 해석해보면, 설사 우리가 재물을 계속 갖고 있게 된다손 치더라도, 과욕에 치우쳐서 그 재물을 올바로 사용하지 못하게 될 것이기에, 올바른 의미의 재물은 가지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두 손에 가득한 불의의 재물은, 올바른 의미의 재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탐욕에 대한 경고 2(6-11)

하나님께서는 고아들의 구속자이십니다.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기업은 지계석으로 표시되었는데, 권력자들은 그것을 옮겨 약자들의 권리를 발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힘없는 자들의 재산을 약탈하려는 자들을 대적하시고, 약자들의 구속자가 되어 그들의 권리를 보호해주십니다.

6악한 눈이 있는 자의 음식을 먹지 말며 그의 맛있는 음식을 탐하지 말지어다 7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 그가 네게 먹고 마시라 할지라도 그의 마음은 너와 함께 하지 아니함이라 8네가 조금 먹은 것도 토하겠고 네 아름다운 말도 헛된 데로 돌아가리라 9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지니 이는 그가 네 지혜로운 말을 업신여길 것임이니라 10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며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지어다 11대저 그들의 구속자는 강하시니 그가 너를 대적하여 그들의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6-11)

부자가 되려는 마음을 경고합니다. 이 역시 탐욕입니다. 재물을 과하게 모으려고 하거나, 남의 지계석을 옮겨서라도 모으려고 한다면 그 과정에 탈이 납니다. 과한 물욕을 절제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재물은 손쉽게 우리 손에 들오지 않습니다.

(1) 음식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6-8)

6-8절은 다시금 음식에 대한 욕심으로 되돌아갑니다. 악한 눈을 가진 자의 음식을 먹지 말라고 말합니다. ‘악한 눈’이란 인색한 자를 의미합니다.

6절에서 말하는 ‘악한 눈을 가진 자’는 1-3절에서 말한 ‘관원’보다 좀 더 직접적인 비유입니다. 이 사람은 음식을 나눠줄 생각이 처음부터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의 음식은 결코 탐해서는 안 됩니다.

그 이유가 7절에 나옵니다. 그 사람은 겉으로는 ‘음식을 맛있게 드세요’라고 권하는데, 그의 속마음은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라는 그의 권유는 유혹이요. 어려움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그의 사람됨은 그가 겉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속으로 하는 생각에 있습니다. 그러니 그런 사람의 음식은 결코 먹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 그런 음식을 먹으면 8절이 말하는 결과를 맛보게 됩니다. 먹은 것을 다시금 토해내야 하게 되고, 아름다운 말은 헛된 데로 돌아가게 됩니다. 먹은 것만큼 다시 내놓아야 하므로, 그것은 먹은 것이 아니게 됩니다. 또한, 그 음식을 먹으려고 그 사람에게 해야 했던 여러 가지 말도 결국 아무런 효과가 없게 됩니다.

6-8절은 우리가 탐욕을 부리는 상황을 비유로 표현한 것입니다. 내게 무언가를 줄 생각이 없는 사람이 겉으로 아무리 좋게 말하더라도, 그것이 정말인지 생각해봐야 한다는 뜻입니다. 과욕을 부려 무언가를 취하더라도, 결국은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될 뿐입니다.

(2) 이웃의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9-11)

9절은 미련한 자의 귀에 말하지 말라는 권고입니다. 미련한 자는 더 이상 교훈을 받지 않습니다. 이는 그가 이미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더 지혜로워지고, 미련한 자는 더 미련해지기 마련입니다(9:7-12 참고). 그렇다면 어떻게 지혜롭게 살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관점에서 살아야 합니다. 탐욕을 버리고 하나님을 높이기 위해 살아야 합니다.

그 한 예가 10절에 나옵니다. 10절은 선조가 세운 이웃의 지계석을 옮기지 말고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이것 역시 탐욕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웃의 지계석을 옮기는 것은 내 땅을 넓히고 싶은 욕심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웃에게 주신 땅을 침범하는 행위입니다. 고아들의 밭을 침범하는 것은 부모를 잃어 자신들의 땅을 보호할 힘이 없는 아이들의 땅을 빼앗는 악한 행위입니다. 탐욕으로 인해 다른 사람에게 불의와 악을 행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행위를 하면 안 되는 이유가 11절에 등장합니다. 탐욕으로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구속자가 되어 주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위해서 변호해주실 것이고, 결국 그들이 빼앗긴 것을 되찾아주실 것입니다.

 

자녀에 대한 훈계(12-14)

훈계를 위한 사랑의 체벌은 필요합니다. 아이를 위한다고 그릇된 행동에도 매를 아끼면 아이의 영혼과 인생을 망칠 수 있습니다. 물론 냉혹한 책망과 분노를 쏟아내는 체벌은 피해야 하지만 따뜻하고 애정이 넘치는 책망과 체벌은 꼭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책망과 체벌을 하는 부모나 받는 자녀 모두 사랑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12훈계에 착심하며 지식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 13아이를 훈계하지 아니하려고 하지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14네가 그를 채찍으로 때리면 그의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하리라(12-14)

본 단락의 마지막 구절은 자녀에게 주는 훈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여기서 훈계란 단순히 누군가를 야단치는 것이 아닙니다. 훈계란 어떤 목표를 가지고 누군가를 훈육하는 것을 말합니다. 잘못된 것은 잘못되었다고 말해주고 바르게 지도하는 것입니다.

12절은 잠언 독자들에게 이런 훈계를 마음에 두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런 후, 13절에서는 이 훈계를 자녀들에게도 전달해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잠언을 통해 배운 교훈을 자신에게 엄격하게 적용해야 하며, 그것을 또한 자녀들에게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자녀를 훈계할 때 채찍으로 때려도 그가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채찍은 비유적인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좋습니다. 실제로 사랑의 매도 때에 따라서는 필요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서 22:6에서 언급한 것처럼 여기서 ‘아이’로 번역된 단어는 ‘나아르’로서 젊고 건장한 청년까지 포함하는 의미 범주를 지녔습니다. 건장한 청년을 채찍으로 내려친다는 것은 비유적인 표현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지혜를 선택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바른 관점으로 살아가도록 철저하게 지도한다는 의미로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14절에서는 그 ‘나아르’를 채찍으로 때리면 영혼을 스올에서 구원한다고 말합니다. ‘스올’은 음녀의 집입니다(7:27:9:13), 따라서 훈계는 ‘나아르’를 음녀의 집으로부터 구원하는 것입니다. 12-14절은 잠언 독자에게 먼저 자신을 지혜의 말씀으로 채찍질하고, 그 후 자신이 가르치고 인도해야 할 사람들에게 지혜의 길로 가도록 엄중히 권하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회는 진실된 밥상공동체입니다. 정직하고 검소한 음식이 차려지고 서로를 향한 사랑가 진리의 언어가 오고 가는 성도들의 식탁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것입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잠언(22-02)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

잠언 22장 17-29절


 

우리나라에는 공직 혹은 후보자들의 부정부패를 막고 공무집행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공직자윤리법’이 존재합니다. 공직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 높은 도덕적 윤리적 기준을 적용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오늘 본문은 왕궁의 관리가 되려는 이들을 향한 지혜자의 가르침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교회의 직분자들에게 혹은 사회의 공적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중요한 교훈이 됩니다.

 

본문은 잠언 22:17-24:22의 잠언 모음집을 시작하는 첫 부분으로, 이 새로운 모음집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17-18절에서는 표제를 설명하였고, 19-21절에서는 이 잠언 모음집의 목적을 알려줍니다. 22-29절에서는 본격적으로 여러 주제의 잠언들이 등장하는데, 곤고한 자, 분노하는 자, 보증 등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지혜자의 말씀(17-21)

하나님의 말씀은 머릿속의 지식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듣고 뱃속과 입속에 스며들어 완전히 체화해야 합니다. 머리는 잊을지언정 몸은 말씀을 기억하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만을 의뢰하는 것은 결심이나 의지만으로 안 됩니다. 경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본문은 서른 자기 교훈을 주고 그것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를 요구합니다.

17너는 귀를 기울여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을 들으며 내 지식에 마음을 둘지어다 18이것을 네 속에 보존하며 네 입술 위에 함께 있게 함이 아름다우니라 19내가 네게 여호와를 의뢰하게 하려 하여 이것을 오늘 특별히 네게 알게 하였노니 20내가 모략과 지식의 아름다운 것을 너를 위해 기록하여 21네가 진리의 확실한 말씀을 깨닫게 하며 또 너를 보내는 자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회답하게 하려 함이 아니냐(17-21)

하나님께서는 지혜자를 세워 진리로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가르침에 귀 기울이고, 마음에 새기며, 깨달아 알게 된 진리를 삶에 적용하여 살아야 합니다. 우리 공동체에는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는 좋은 교사, 좋은 지도자들이 많아야 합니다.

(1) 지혜자의 말씀을 들으라(17-18)

17절은 22:17-24:22의 단락을 열어주는 첫 잠언입니다. 그러므로 이 단락의 성격을 설명합니다. 먼저 이 모든 잠언들의 표제를 소개하는데, ‘지혜 있는 자의 말씀’이라 지칭합니다. 이제까지의 잠언들, 즉 잠언 1-9장과 10:1-22:16은 솔로몬의 잠언이었습니다(1:1; 10:1). 그런데 이제는 지혜자들의 잠언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 지혜자들이 누구인지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의 잠언인데 의도적으로 지혜자의 잠언이라고 불렀을 가능성도 제외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왜 이 잠언의 저자들을 ‘지혜자’라고 부르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지혜자’라는 명칭입니다. ‘지혜자’란 지혜를 얻고 소유한 자들입니다. 잠언 전체의 맥락 특히 잠언 1-9장의 맥락을 생각해보면, 지혜자란 여호와 경외의 길을 선택하고 미련한 여인의 길을 거절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을 선택한 자들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22:17 이하의 잠언들을 ‘지혜의 길을 선택하여 이미 그 길을 경험한 신앙의 선배들’의 잠언으로 이해해도 될 것입니다. 이 지혜자들은 이제 잠언의 독자들에게 자신들이 경험을 통해 배운 지혜의 길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지식에 귀를 기울이라’고 17b절에서 외치는 것입니다.

18절은 이러한 지혜자들의 잠언을 우리 속에 보존하고 입술에 머물게 하라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2) 지혜자의 말씀을 주신 이유(19-21)

‘지혜자의 말씀’을 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가 19-21절에 소개됩니다.

19절은 ‘지혜자의 말씀’을 가르치는 이유는 하나님을 의뢰하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특별히 오늘 이 말씀을 전달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만 신뢰하는 지혜의 길을 가게 하기 위해서 22:17-24:34의 말씀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20절은 지혜자들이 ‘예전에’ 한번 말씀을 주었다는 것을 되새겨줍니다. 여기서 ‘예전에’라고 번역된 단어는 학자들이 ‘삼십 가지’ 혹은 ‘아름다운 것’으로 번역하기도 하지만, ‘예전에’라고 번역하는 것이 가장 적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22:17-24:22에는 잠언 1-9장에 나타난 구절들과 어휘적, 주제적으로 연결되는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즉 20절에서 예전에 이미 주었던 말씀이란 잠언 1-9장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제 지혜자는 그러한 1-9장의 말씀을 다시 한번 또 다른 형태로 새롭게 들려주겠다는 것입니다. 19절의 ‘오늘’ 말씀을 준다는 표현과 20절의 ‘예전에’ 주었던 말씀은 서로 연결됩니다.

21절은 이렇게 1-9장의 말씀을 새로운 형태로 다시금 가르쳐주는 이유를 말합니다. 바로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해서 잠언을 읽는 독자를 보낸 사람(잠언 말씀을 배우게 한 사람)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화답하게 하려 한다는 것입니다. 즉 독자가 잠언 말씀을 배워 진리를 실천하게 하려는 목적을 가졌음을 말합니다. 우리는 잠언 22:17-24:34을 읽을 때, 잠언 1-9장을 복습하는 마음으로 읽되, 다시 한 번 새로운 마음으로 지혜의 길을 배워나가야 할 것입니다.

 

사람을 대하는 지혜(22-25)

지도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 중 하나는 사람 관계에서의 지혜입니다. 유유상종이라고 그 옆에 있는 사람들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습니다. 약하고 곤고한 자를 보살필 때,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것입니다. 삶에 있어서 우리 예수님께서 “너희는 뱀같이 지혜롭고 비둘기같이 순결하라”(마 10:16)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지혜로워야 합니다. 지혜자는 모든 이들을 하나님 대하듯 하는 자며 하나님의 심판을 신뢰하는 자입니다.

22약한 자를 그가 약하다고 탈취하지 말며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 23대저 여호와께서 신원하여 주시고 또 그를 노략하는 자의 생명을 빼앗으시리라 24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25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22-25)

하나님께서는 약자들의 억울함을 신원하여 주십니다. 나눔과 배려 없는 인색한 세상에서 탐욕은 재능 또는 실력이라는 말로 포장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분배하신 약속의 땅마저도 경계를 바꾸는 이스라엘 민족의 간악함이나, 경쟁에서 이겼다고 당연하게 모든 것을 독식하는 우리 모습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 약한 자를 대하는 방법(22-23)

이 두 구절은 약한 자와 곤고한 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알려줍니다.

22절은 약한 자를 탈취하지 말고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하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성문은 고대 근동에서 사회의 여러 가지 행정적인 일이 처리되는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성문에서 어떤 일을 행한다는 것은 그 사회에서 공적인 인정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곤고한 자를 성문에서 압제한다는 것은 어떤 재판이나 절차를 통해 가난한 자를 어렵게 만드는 것이고, 22절은 그런 일을 행하지 말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23절이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어려움을 당한 곤고한 자가 여호와께 부르짖게 되면 여호와께서 그를 위해 변호해주실 것이고, 그 곤고한 자를 노략질한 자의 생명을 여호와께서 노략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곤고한 자를 어렵게 하면, 그가 행한 바로 그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갚으신다는 것입니다. 어렵게 한대로 자신이 고스란히 당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신원하시고 갚아주시는 공의의 주님이시므로, 곤고한 자를 돌보고 그들에게 사랑과 은총을 베풀어야 합니다.

(2) 분노하는 자를 대하는 방법(24-25)

이 두 구절은 분노를 품은 자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분노를 품은 자와는 깊은 인간관계 맺기를 조심해야 하며, 심지어는 동행하기도 삼가야 합니다. 여기서 분노를 품은 자란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사람을 말합니다. 불의한 일에 대해 정당하게 분노하는 경우를 말하는 것이 아니며, 어쩌다 실수로 화를 내는 경우를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습관적으로 분노하여 그것이 자신의 성품의 일부가 된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런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은 매우 조심해야 합니다. 그 이유가 25절에 나옵니다. 분노하는 자와 관계를 맺으면, 그 영향이 미쳐서 자신의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올무란 새를 잡는 덫을 말한다. 새는 자신이 덫에 빠지는 것을 알지 못한 채 잡힙니다. 마찬가지로 습관적으로 화를 내는 사람과 사귀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분노하는 습관에 물들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자의 모습으로 살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의 방법을 따르는 미련한 사람의 모습으로 살게 될 수 있으므로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삶에 나타난 지혜(26-28)

자신이 가진 힘과 지위로 약한 자를 누르면 안 됩니다. 힘없는 이들이 재판 과정에서 억울한 일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특히 토지 착취는 가난한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능하다는 것은,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위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의 말씀을 실제 살아내는 것을 말합니다.

26너는 사람과 더불어 손을 잡지 말며 남의 빚에 보증을 서지 말라 27만일 갚을 것이 네게 없으면 네 누운 침상도 빼앗길 것이라 네가 어찌 그리하겠느냐 28네 선조가 세운 옛 지계석을 옮기지 말지니라 29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26-29)

형편과 분수를 모르고 선 보증은 관계를 깨드리는 큰 고통이 됩니다. 아무도 책임질 수 없는 섣부른 결정을 내리기 전에 내 상황을 꼼꼼히 점검하고 확인한 후, 형편이 되지 않으면 말하기 어려워도 거절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1) 보증을 서지 말라(26-27)

이 두 구절은 보증에 대해서 가르쳐줍니다. 보증을 서지 말라는 권고입니다. 보증에 대한 문제는 6:1-5에서 자세히 다루어진 적이 있는데 보증을 서지 말라는 교훈은 아니었고, 보증을 섰으면 빨리 보증 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이제 22:26-27은 보증 자체를 서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그 이유가 27절에 주어집니다. 만일 보증이 문제가 될 경우, 내 재산을 빼앗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28)

28절은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신명기 19:14에서 모세는 각자에게 주신 지계석을 옮기지 말 것을 명령했습니다. 지계석이란 땅의 경계선입니다. 따라서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잘 지켜야 하며, 다른 사람에게 주신 기업에 손해를 끼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26-27절에서 보증을 서지 말라는 말씀과 연결해봅시다. 보증을 서지 말라는 것은 단순히 어려운 사람을 돕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보증을 잘못 서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삶의 기업을 무너뜨리게 되는 실수를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8절의 지계석을 옮기지 말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주신 기업을 무너뜨리는 잘못을 범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26~28절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영역을 감사함으로 잘 지키고 발전해나가라는 메시지로 이해해야 합니다.

(3) 자신의 일에 능숙한 자(29)

29절은 자신의 일에 능숙한 자는 왕 앞에 서게 된다고 서술합니다. 자신의 일에 능숙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기본적으로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고, 그 일들을 해낼 수 있는 실력을 갖춘다는 뜻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이제 잠언 22:17-24:34에 소개되고 있는 여러 잠언들을 잘 익혀서 실천한다는 의미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자신의 일들을 능숙하게 해낼 수 있게 되면 왕 앞에 서게 됩니다. 왕 앞에 선다는 것은 자신의 분야에서 인정을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잠언을 익히고 실천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삶의 선물들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소위 사회 지도층에 있는 기독교인 중에 부정과 불법에 연루된 이들이 많아 교회가 종종 어려움을 겪습니다. 말씀이 머릿속 지식에만 머물고 교회 안에서만 머무르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말씀에 능한 자들이 사회 곳곳에서 제 몫을 감당해 내기를 소망합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잠언(22-01)

  


재물에 대한 지혜

잠언 22장 1-16절


당신은 정직한 자의 형통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불의한 이들이 얻은 부 또는 정직한 이들의 가난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겠습니까? 지혜자는 지혜롭고 의로운 자가 복을 받고 악하고 미련한 자가 망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의 현실은 이 지혜자의 말씀을 비웃습니다. 우리는 이 부조화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겠습니까?

 

잠언 10:1-22:16의 마지막 단락으로서, 부와 가난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시작(1-2)과 끝(16)이 부와 가난의 문제를 다루며, 4, 5, 9절 역시 이 문제를 언급합니다. 문맥의 흐름을 보면, 지혜로운 삶과 미련한 삶을 대조하면서 지혜로운 삶을 선택해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부와 가난의 문제(1-2)

제대로 분별이 곧 지혜입니다. 무엇이 더 가치가 있고, 언제 행동하며 어디로 가야 할지 분별할 수 있는 지혜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 정직하게 땀 흘려 일한 사람은 그대로 합당한 대가를 얻어야 합니다. 게으른 사람이 양식을 얻지 못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1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2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1-2)

1절은 재물의 문제를 다룹니다.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선택해야 하고,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재물은 우리의 삶에 중요하지만, 절대적인 기준이 되지는 않습니다. 재물보다 자신의 명예나 하나님의 은총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1절은 재물은 객관적인 실체일 뿐이지, 거기에 어떤 가치를 부여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2절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 사회 속에 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섞여서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난한 자와 부한 자 모두를 만드셨고 그들이 함께 살아가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난이나 부에 대해 어떤 절대적 가치를 부여해서는 안 되고, 그 모든 것을 지으시고 이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가치로 재물의 문제를 바라보고 해석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삶과 미련한 삶(3-15)

잠언은 율법이나 약속이라기보다는 일반적인 진리나 교훈에 해당합니다. 따라서 그 말씀들이 그대로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실망한 필요는 없습니다. 권선징악, 인과응보가 하나의 공식처럼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잠언의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정의를 통해 세상의 질서를 세우신다는 믿음에서 기초해 있습니다.

3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4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 5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6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7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8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9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10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 11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12여호와의 눈은 지식 있는 사람을 지키시나 사악한 사람의 말은 패하게 하시느니라 13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14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 15아이의 마음에는 미련한 것이 얽혔으나 징계하는 채찍이 이를 멀리 쫓아내리라(3-15)

하나님께서는 선한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악한 자들을 징계하십니다. 많이 가진 자는 나누고 섬겨야 할 책임이 있고, 적게 가진 자 역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의 반응이 삶에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날마다 의식하지 않으면, 결코 성경이 말하는 지혜롭고 선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1) 지혜로운 삶(3-6)

3절은 슬기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를 대조합니다. 슬기로운 자는 악을 만나게 될 것 같으면 피해 가지만, 어리석은 자는 악을 향해 계속 가서 악을 만나게 되고 그래서 결국 해를 당하게 됩니다. 지혜는 악을 버리고 피하는 것입니다.

4절은 겸손과 여호와 경외를 강조합니다.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주님을 경외하면 큰 유익을 얻게 되는데 바로 재물과 영광과 생명입니다. 얻게 되는 유의 중에 재물이 들어가 있다는 점이 주목을 끕니다. 재물은 그 자체로 절대적 가치를 지닐 수 없습니다. 재물은 하나님에게서 오는 것이고, 주님에게서 얻어서 주님 앞에 바로 사용할 때 가치가 있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5절은 자신의 영혼을 지키는 것이 중요함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자신을 지키려는 자는 가시와 올무가 있는 패역한 자의 길을 멀리하려고 노력합니다. 3-5절은 어떤 길로 갈지를 선택하라고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악의 길을 멀리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길로 가야 자신의 영혼을 지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3-5절의 교훈은 6절에서 일종의 절정에 도달합니다. 6절은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고 권고합니다. 아이가 그 교훈을 배우면 일생 그 교훈에서 떠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 구절을 어린이 교육 혹은 청소년 교육을 말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나 위에서 이미 설명한 것처럼 ‘나아르’는 아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청년까지 포함합니다. 잠언 1-9장의 가르침을 고려하면, ‘나아르’는 아직 지혜 여인과 음녀 사이에서 누구를 선택할지 결정하지 못한 미성숙한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그렇다면 6절의 가르침은 이렇게 선택을 앞두고 있는 사람을 가르쳐서 지혜의 길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길로 가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3-6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길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지혜로운 삶과 미련한 삶(7-11)

7절은 재물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부자가 가난한 자를 주관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현실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며, 부자가 가진 재물의 가치를 절대화하는 내용은 결코 아닙니다.

7절은 뒤이어 나오는 구절들과 연결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8절은 악을 뿌리면 재앙을 거두게 된다는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입니다. 7절과 연결해서 생각하면, 가난한 자를 주관하는 부자는, 자신의 재물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서 선을 거둘 수도 있고 재앙을 거둘 수도 있습니다. 8b절의 설명처럼 재물이 있다고 해서 악하게 사용하면 나중에는 자신이 휘두르던 힘이 쇠약해지고 그 재물마저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9절은 재물 사용을 선하게 해야 함을 말합니다. 자기가 먹을 양식을 다른 이에게 나누어주면 오히려 복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의 재물을 다른 이를 위해 사용할 줄 아는 것이 참 지혜의 길입니다.

10절은 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도 없어지게 됨을 말합니다. 잠언에서 거만한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이니, 우리는 거만한 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11절은 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에 대하여 말합니다. 그런 자는 입술에 덕이 있어서 왕의 친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10절의 거만한 자의 결국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7-11절의 내용을 정리하면, 지혜로운 삶의 방식과 미련한 삶의 방식이 있는데 우리에게 주어진 것들을 지혜롭게 사용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게 되지만 그것들을 미련하게 사용하면 오히려 가진 것조차 잃고 쫓겨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재물이 그 대표적인 예로 사용됩니다. 재물은 절대적인 가치를 지니지 못했기에,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의 관점에서 사용해야만 합니다.

(3) 미련한 삶(12-15)

 12-15절은 미련한 삶의 여러 가지 형태들을 열거합니다.

12절은 여호와께서 지식을 지키시기에 사악한 사람의 말을 패망하게 하신다고 말합니다. 사악한 자는 여호와께로부터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13절은 게으른 자에 관해서 설명합니다. 사자가 밖에 있으니 두려워서 밖에 있으니 두려워서 밖에 나가지 못하겠다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는 자신의 게으름을 깨닫지 못하고, 주어진 일에 충실하게 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삶의 자리를 지킬 줄 모르는 것입니다.

14절은 음녀에게 빠진 자에 대해 언급합니다. 여기서 음녀는 여성 복수 형태로, 잠언 1-9장에 나타난 음녀를 가리키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즉 지혜의 길과 반대되는 미련한 길, 여호와를 떠난 길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를 산 자는 이러한 음녀의 길에 빠지게 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자가 지혜 대신 음녀의 길을 선택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부와 가난의 문제(16)

현실은 종종 우리의 믿음을 배신합니다. 자녀들에게 마땅히 행할 길을 가르쳤는데도 그 길을 떠나는 자녀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가르쳐야 합니다. 음란을 버리고 정결을 사모하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교만을 걷어내고 겸손을 심어야 합니다. 필요하다면 엄한 훈계로 옳은 길을 지도해야 합니다.

16이익을 얻으려고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자와 부자에게 주는 자는 가난하여질 뿐이니라(16)

마지막 구절인 16절은 가난과 부의 문제를 다시금 언급합니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가난한 자를 학대하거나 부자에게 뇌물을 주는 사람은 결국 이익을 얻기는커녕 가난해집니다.

16절은 재물이 절대적 가치가 될 수 없고 삶의 목표도 될 수 없음을 말합니다. 재물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그 재물을 올바른 가치를 가지고 활용하면 복이 됩니다. 여기서 올바른 가치란 물론 지혜 즉 여호와 경외의 관점을 말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바른 재물 활용을 할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값없이 은혜로 얻은 구원’에 대한 믿음 때문에 ‘뿌린 대로 거둔다.’라는 진리를 무시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 역시 주께서 뿌린 피로 이룬 것입니다. 피 흘림이 없으면 죄 사함도 없습니다. 주의 은혜를 값싼 은혜로 만들지 맙시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잠언(21-02)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는 지혜

잠언 21장 15-31절


악인은 본성상 정의와 무관한 삶을 살뿐 아니라 정의롭게 사는 의인을 간교한 계략으로 함정에 빠뜨립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결국 의인을 들어 형통하게 하고 악인을 심판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신이 속한 곳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거나 모함을 받거나 따돌림당한 경험이 있는지 되돌아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정직한 자의 편에 서 계십니다. 정직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공의를 실천하며 살아갑니다.

 

본 단락은 먼저 지혜를 떠난 자의 모습을 집중적으로 조명한 후(16-19), 지혜를 얻은 자의 모습을 깊이 있게 묘사합니다(20-23). 그런 후에 악인과 의인의 모습을 서로 비교합니다(24-29). 그 결론은 여호와께서 참된 지혜의 기준이 되시므로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30-31). 지혜와 미련함, 의와 악의 구분은 하나님께 있으며, 여호와를 경외하는 태도로만 그 차이를 분별해낼 수 있습니다.

 

공의를 행하는 삶(15)

명철의 길을 버리고 연락을 좋아한 자, 다투며 성내는 자는 이 땅에서 가난하고 관계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며 결국엔 사망에 이르게 됩니다. 반면에 지혜 있는 자, 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이땅에사도 안전과 번영을 누리며 궁극적으로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습니다.

15정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요 죄인에게는 패망이니라(15)

이 구절은 21장의 문맥 흐름상 독특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왜냐하면,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5-14절은 주로 악인의 삶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었는데, 15절에 와서는 의인과 악인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정의를 행하는 것이 의인에게는 즐거움이나 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멸망이 된다는 것입니다. 21장은 여기서부터 의인과 악인, 지혜를 얻은 자와 지혜를 놓친 자를 대조해 나가기 시작합니다. 21장의 새로운 흐름이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지혜를 버린 자의 삶(16-19)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살피고 그것을 먼저 구하는 사람입니다. 악인은 하늘의 지혜를 떠나 생명 없는 무리와 함께 패망을 맞이하지만, 하나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임을 알게 된 의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과 공의, 영광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16명철의 길을 떠난 사람은 사망의 회중에 거하리라 17연락을 좋아하는 자는 가난하게 되고 술과 기름을 좋아하는 자는 부하게 되지 못하느니라 18악인은 의인의 속전이 되고 사악한 자는 정직한 자의 대신이 되느니라 19다투며 성내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사는 것이 나으니라(16-19)

먼저 16-19절은 지혜의 길을 떠난 자의 삶을 묘사합니다.

16절은 명철의 길을 떠난 자는 죽음에 이르게 됨을 말합니다. ‘사망’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죽은 자를 뜻합니다. 이 단어는 우리에게 잠언 전체의 서론인 1-9장의 마지막 구절인 9:18을 생각나게 합니다. 9:18은 지혜 여인을 버리고 미련한 여인을 따라가면 죽은 자들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21:16은 지혜를 버리고 음녀/미련한 여인을 택한 자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17절은 육체적인 쾌락을 추구하는 자는 가난하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좋은 음식을 먹는 것 자체가 나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지나치게 사랑하면 잘못을 범하게 됩니다. 핵심은 지혜를 버린 것입니다. 지혜를 버리면 분별력을 잃고 술과 음식에 탐닉하게 됩니다. 바른 삶의 태도를 갖지 못하기에, 선하게 쓰면 유익이 될 것들을 잘못된 방식으로 사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18절은 악인이 의인 대신 벌을 받게 됨을 말합니다. 처음 보기에는 악인이 악한 방법으로 성공하는 것 같고 의인은 어려움을 겪는 것 같으나, 결국에는 악인이 모든 책임을 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의인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회복이 임할 것입니다.

19절은 다툼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다투는 여인과 함께 사는 것보다 광야에서 홀로 지내는 것이 낫다는 비교 잠언입니다. 이 19절은 바로 위에 있는 9절과 매우 유사합니다. 차이점은 9절은 지붕 위에서 홀로 사는 것을 말하고 19절은 광야에서 홀로 사는 것을 말한다는 점뿐이며, 그 내용은 사실상 동일합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다툼이 얼마나 큰 해악을 끼치는가에 관한 서술입니다. 악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그 다툼을 계속 이어나가서, 가족과 같은 친밀한 공동체를 깨뜨려 공동체 구성원들을 아프게 합니다.

 

지혜를 얻은 자의 삶(20-23)

의인은 정의를 실천하여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살피고 그것을 먼저 구하는 사람입니다. 악인은 하늘의 지혜를 떠나 생명 없는 무리와 함께 패망을 맞이하지만, 하나님의 기쁨이 나의 기쁨임을 알게 된 의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생명과 공의, 영광을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0지혜 있는 자의 집에는 귀한 보배와 기름이 있으나 미련한 자는 이것을 다 삼켜 버리느니라 21공의와 인자를 따라 구하는 자는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느니라 22지혜로운 자는 용사의 성에 올라가서 그 성이 의지하는 방벽을 허느니라 23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하느니라(20-23)

20절부터는 지혜를 얻은 자의 삶이 나옵니다. 먼저 20절에서는 지혜자의 집에 보배와 기름이 있다고 말합니다. 20절의 보배와 기름 17절에서 악한 자가 술과 기름을 좋아한다는 서술과 연결됩니다. 보배와 기름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므로, 지혜롭게 사용하면, 얼마든지 복된 물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20절 하반절은 미련한 자가 이 보배와 기름을 삼켜버린다고 말합니다. 미련한 자는 보배와 기름 자체에 욕심을 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이러한 물질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알고 지혜롭게 대처하기에, 오히려 그 보배와 기름을 늘 간직할 수 있게 됩니다.

21절은 공의와 인자를 구하는 자가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게 됨을 가르칩니다. 공의와 인자는 하나님의 성품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어휘입니다. 따라서 공의와 인자를 구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아간다는 지표다. 지혜로운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지혜롭게 살면, 생명과 공의와 영광을 얻게 됩니다. 그 예들을 우리는 22-23절에서 만나게 됩니다.

22절은 지혜로운 자가 용사들이 지키는 성을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 용사들이 지키는 성이란, 함락하기 불가능한 성입니다. 그런데 지혜자는 그 성을 얻습니다. 이것은 사람의 힘과 능력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를 이기지 못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 즉 지혜를 얻은 사람은 세상의 그 어떤 권세 앞에서도 당당하며 결국 승리를 얻게 됩니다.

23절은 입과 혀를 지키는 자가 자기 영혼을 환난에서 보전함을 알려줍니다. 입과 혀를 지키는 자는 자신의 언어생활을 다스릴 줄 아는 자로, 지혜의 입술을 가진 자로 해석해야 합니다. 지혜를 얻은 자는 언어생활에서도 실수하지 않고 좋은 열매를 얻습니다.

 

의인과 악인의 대조(24-29)

지혜를 멸시하는 악인은 무례하고 교만하며 게으르고 종일토록 탐하기만 합니다. 거짓 증거를 일삼으면서도 뻔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바친 제물을 가증하게 여기십니다. 반면에 의인은 확신 있는 발언을 하며, 자기 손으로 일하기를 기뻐하고, 그렇게 모은 것을 나누는 데 후하고 관대합니다.

24무례하고 교만한 자를 이름하여 망령된 자라 하나니 이는 넘치는 교만으로 행함이니라 25게으른 자의 욕망이 자기를 죽이나니 이는 자기의 손으로 일하기를 싫어함이니라 26어떤 자는 종일토록 탐하기만 하나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베푸느니라 27악인의 제물은 본래 가증하거든 하물며 악한 뜻으로 드리는 것이랴 28거짓 증인은 패망하려니와 확실히 들은 사람의 말은 힘이 있느니라 29악인은 자기의 얼굴을 굳게 하나 정직한 자는 자기의 행위를 삼가느니라(24-29)

24절부터는 의인과 악인을 대조합니다. 먼저 24-25절은 악인에 대해서 말합니다.

24절은 무례하고 교만한 자가 거만한 자임을 밝힙니다. 거만한 자라는 표현은 잠언의 거시적 맥락에서 미련한 자 혹은 악한 자와 같은 의미를 지닙니다. 따라서 거만한 자가 무례하고 교만하다는 24절의 가르침은, 지혜를 떠난 자 곧 악인은 무례하고 교만한 삶을 살게 된다는 사실을 알려주려 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25절은 게으름에 대해서 알려준다. 게으름은 자신을 죽인다는 것입니다. 연이어서 26절은 탐욕에 관해서 말합니다. 온종일 탐욕만 부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25절과 26절을 묶어서 생각해보면, 악인의 특징이 게으름과 탐욕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26절 하반절에서는 의인을 등장시켜서 의인이 베풀기를 즐겨하고 베푼 후에도 후회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악인의 게으름과 탐욕을 의인의 선한 마음과 대조하는 것입니다. 의인은 나누는 것을 기뻐하는 성품을 지녔습니다.

27절은 악인이 간교하고 교활한 의도를 가지고 제물을 드리는 것이 심각한 잘못임을 지적합니다. 악한 성품을 지녔기에 그 제물 자체가 가증할 것인데, 그 위에 간교한 계교까지 더해서 제물을 가져온다면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실 것임을 명확히 하는 내용입니다.

28절은 거짓 증거는 신속히 없어지지만 참된 증거는 계속해서 남아 효력을 발휘할 것을 말합니다. 악인의 증거와 의인의 증거를 대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9절은 악인이 자신의 얼굴을 뻔뻔하게 하는 것과 정직한 자가 자신의 길을 정직하게 세우는 것을 대조합니다. 악인은 겉모습을 꾸며 사람을 속이려 하나, 정직한 자는 내면의 정직함으로 일을 도모합니다.

 

참된 지혜이신 여호와(30-31)

하나님의 지혜를 당해낼 인간의 지혜나 명철은 없습니다. 그러니 그분을 경외하고 의지하고 인정하는 것이 참다운 지혜입니다. 열심히 전쟁을 준비해도 승패를 좌우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을 앞세우고, 그분을 의지할 때 이길 수 있습니다. 대적과 싸우기 전에 자신과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30지혜로도 못하고, 명철로도 못하고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하지 못하느니라 31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30-31)

마지막 구절인 30-31절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언급합니다.

30절을 직역하면 “여호와 앞에서는 지혜도 없고 명철도 없고 모략도 없다”로 번역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지혜, 명철, 모략이 의미를 잃는다는 것입니다. 지혜, 명철, 모략의 참 기준과 진정한 의미는 오로지 여호와 하나님에게서만 발견됨을 강조하기 위한 화법입니다. 지혜로운 자가 되어 복된 삶을 영위한다는 것은 결국 여호와 하나님을 찾고 그분을 두려워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지혜, 복, 성공과 같은 것들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이 삶의 핵심입니다.

31절은 그러한 참 지혜의 삶에 대한 적절한 예를 제공합니다. 마병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과 병거는 전쟁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지만, 그것으로 승리를 얻을 수는 없으며 승리는 오직 여호와께로부터 나옵니다. 지혜는 유익한 것이나 그 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잊으면 더 이상 지혜가 아닌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살아야 함을 강조하면서 30~31절은 전체 논의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허락하신 여러가지 선한 것들을 바라볼 때, 그 선한 것들에 눈이 치우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지혜가 절실할수록 더욱 겸손해져야겠습니다. 미련해 보이는 십자가의 도를 더욱 붙들어야겠습니다.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고전 1:21)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잠언(21-01)


정의를 행함이 하나님의 기쁨

잠언 21장 1-14절


어린 아이에게 ‘정의가 뭔지 아나?’라는 질문에 아이가 떠올린 것은 슈퍼 히어로였습니다. 아이에게 정읠란 나쁜 사람들을 혼내주는 영웅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특별한 능력의 영웅에 의해 한 번에 정의가 세워지는 일은 없다는 것을 아이도 곧 알게 되겠습니다. 악인이 형통하는 이 현실에 대해 우리는 자라나는 다음 세대에게 어떤 말로 설명해주어 합니까?

 

잠언 20:1-14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1-4절에는 여호와 하나님이 집중적으로 언급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니, 그분 앞에 의로운 삶의 열매를 맺어야 함을 말합니다. 이어지는 5-14절은 여호와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지 않는 악한 자의 삶의 모습들을 묘사합니다. 악한 삶의 특징뿐 아니라, 악한 삶을 살았을 때 맞게 될 결과들도 비교적 자세히 그려냅니다.

 

판단의 기준이 되시는 여호와(1-4)

악한 이들이 성공하는 것을 보고, 그들이 높은 자리에 올라 권력으로 불법을 자행하는 것을 봅니다. 이것을 지켜보는 이들은 혼란스럽습니다. 하지만 성공이라는 결과가 모든 것을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그들의 심히 구부러진 길이 그들의 죄를 폭로합니다. 모든 것이 잘 물린다고 해도 ‘악인의 형통은 죄’라는 준엄한 선언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1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2가난한 자와 부한 자가 함께 살거니와 그 모두를 지으신 이는 여호와시니라 3슬기로운 자는 재앙을 보면 숨어 피하여도 어리석은 자는 나가다가 해를 받느니라 4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1-4)

하나님께서는 인생의 가야 할 길을 인도하고 세밀히 감찰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 취해야 할 태도는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 오만한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기대로 겸손히 자신을 맡겨드리는 것입니다.

(1)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는 여호와(1-2)

1절은 왕에 대하여 언급하는데,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는 물줄기와 같아서, 그 흐름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바대로 인도해 가신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인간 세상에서 가장 높은 통치권자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통치 앞에서는 복종할 수밖에 없음을 알려줍니다.

2절은 사람의 행위를 하나님께서 친히 감찰하심을 말합니다.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 앞에서는 의롭다 말할 수 없으며 겸손하게 하나님의 평가를 받아야 함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2) 여호와 앞에서의 삶의 열매(3-4)

이렇게 주권적으로 통치하시는 여호와 앞에서 우리의 삶이 평가되므로, 우리는 단순히 겉모습만의 종교 생활로 만족해서는 안 되며,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의 열매를 맺기 위해 애쓰고 수고해야 합니다.

3절은 제사 드리는 것보다 공의와 정의를 행하는 것이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일임을 천명합니다. 지혜로운 자가 맺어야 하는 삶의 열매가 바로 정의와 공의입니다.

4절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죄에 대해 언급합니다. 교만한 눈, 절제할 줄 모르는 마음, 그리고 악인의 변화되지 못하는 상태가 바로 죄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열매를 맺기 위해 힘써야 하며, 악인의 모습을 버리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악인의 삶의 모습(5-14)

결국 악인의 길은 자멸의 길입니다. 조그바여 거짓으로 재산을 모은 자는 궁핍해질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부르짖음에 귀를 막으면 자기가 부르짖을 때 아무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을 것입니다. 불의에 눈 감으면 그 불의가 나를 공격합니다. 자신이 취두른 폭력에 의해 스스로 망합니다.

5패역한 자의 길에는 가시와 올무가 있거니와 영혼을 지키는 자는 이를 멀리 하느니라 6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7부자는 가난한 자를 주관하고 빚진 자는 채주의 종이 되느니라 8악을 뿌리는 자는 재앙을 거두리니 그 분노의 기세가 쇠하리라 9선한 눈을 가진 자는 복을 받으리니 이는 양식을 가난한 자에게 줌이니라 10거만한 자를 쫓아내면 다툼이 쉬고 싸움과 수욕이 그치느니라 11마음의 정결을 사모하는 자의 입술에는 덕이 있으므로 임금이 그의 친구가 되느니라 12여호와의 눈은 지식 있는 사람을 지키시나 사악한 사람의 말은 패하게 하시느니라 13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 14음녀의 입은 깊은 함정이라 여호와의 노를 당한 자는 거기 빠지리라(5-14)

불법으로 얻는 부와 형통은 경계와 단절의 대상이지 부러움의 대상이 아닙니다. 교만한 악인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 형통이란 없습니다. 사라질 안개처럼 잠시 만족할지 모르지만, 악인은 결국 하나님께서 던져버린 막다른 길, 더 이상 자기 지혜로 예측할 수 없는 굽은 길에서 더 큰 절망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1) 악한 삶의 결과 1(5-7)

이 단락에서는 악한 삶의 여러 모습을 소개하면서, 그 결과를 더불어 가르쳐줍니다.

5절은 부지런함과 조급함을 대조하면서 부지런함은 풍부함에 이르지만 조급함은 궁핍에 이르게 됨을 가르칩니다. 그렇다면 부지런함과 조급함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부지런한 자는 깊은 생각을 통해 계획을 세웁니다. ‘경영’이라고 번역된 원어는 ‘생각들’이라는 말입니다. 부지런함은 조급함과는 다릅니다.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신중한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는 데 있어서 부지런한 것입니다. 이러한 지혜가 없는 부지런함은 조급함일 뿐이며, 궁핍에 이르게 될 뿐입니다.

6절은 거짓말로 모은 재물이 한순간의 숨결과도 같아서 금방 없어지고 만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심지어 이런 불의의 재물은 죽음을 구하는 것과 같아서 멸망에 이르게 할 것이므로, 우리는 재물을 얻는 데 있어서 정직함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7절은 악인의 폭력성이 악인을 끌고 간다고 말합니다. 폭력성이라는 악한 성품에 물들게 되면, 그 폭력성이 그 사람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는 3절에서 말한 하나님의 공의를 지키지 못하게 되어, 하나님의 선하신 지혜의 길에서 멀리 떠나게 됩니다. 폭력성은 우리가 매우 조심해야 할 악한 성품입니다.

(2) 악한 삶의 특징(8-11)

8-11절 역시 악한 삶의 여러 가지 태도에 대해서 말하는데, 다만 그 결과를 서술하지는 않고 악한 삶 자체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8절은 굽은 길로 가는 자는 음녀의 길로 가는 것과 같지만 정결한 자는 올바른 행동을 한다고 말합니다. 이리 저리 굽은 길, 좌우로 치우치는 행보를 피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습니다.

9절은 다투는 여인과 함께 큰 집에서 사는 것보다는 차라리 지붕 위에서 홀로 사는 것이 낫다고 가르칩니다. ‘~ 보다,’ ‘~이 더 낫다’라는 비교 잠언의 형식을 통해서 다툼을 일삼는 여인과 함께 사는 삶의 고통을 보여줍니다. 이는 다툼을 일삼는 것이 악한 삶의 형태임을 우리에게 일깨워줍니다. 다툼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이 삶의 형태와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 지혜의 길에서 떠나는 것이 되며 가정과 같은공동체를 파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0절은 악인의 마음은 재앙을 원한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그래서 같은 공동체에 속한 이웃이라 할지라도 악인에게서는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이 구절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에게조차 선을 행하지 못하는 사람이 악인이며, 그 마음에는 항상 재앙을 도모하는 잘못된 욕망이 꿈틀대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서 공동체 구성원을 향한 선한 마음이 흘러나오고 있는지를 늘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11절은 거만한 자를 훈계하면 어리석은 자가 지혜를 얻게 되고, 지혜로운 자가 교훈을 받으면 지식이 더한다고 가르칩니다. ‘어리석은 자’는 ‘미성숙한 자’로서, 교훈을 주면 배워서 변화될 가능성이 있는 자이고, 거만한 자는 더 이상 가르침을 받지 못하는 완고한 자입니다. 11절은 악한 삶을 사는 자를 보게 될 때, 그 악인의 삶의 결과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점을 가르쳐줍니다. 거만한 자가 받는 결과 즉 5-14절에 걸쳐 나타나는 여러가지 해로운 결과들을 지켜보고 교훈을 얻어 지혜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3) 악한 삶의 결과2(12-14)

12-14절은 악한 삶을 살 때 맞게 될 결과를 다시 한 번 설명합니다. 그 성격에 있어서 12-14절은 5-7절과 유사합니다.

12절은 의로우신 자가 악인을 감찰하셔서 그를 환난에 던지신다고 말합니다. 본문에서 ‘의로우신 자’라고 번역된 원어는 ‘짜티크’로서 '‘의로운 자’라는 의미인데, 이 의로운 자가 악인을 환란에 던지는 존재이기에 대개 이 의로운 자를 하나님으로 해석합니다. 악인은 의로우신 하나님에 의해서 재앙에 던져질 뿐입니다.

13절은 가난한 자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고 거절하면, 나중에 자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아무도 돕지 않을 것임을 말합니다. 즉 자신이 다른 이에게 악하게 행한 그대로 받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악인의 악함은 스스로를 멸망시키는 지름길과 원동력이 될 뿐이니, 우리는 이런 악한 삶을 버리고 다른 이를 돕고 섬기는 선한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14절은 선물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데, 상반절에 ‘은밀한 선물’이라고 표현되어 있으므로, 우리는 이 선물을 뇌물로 이해해야 합니다. 뇌물은 분노를 그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악인이 자신의 악함으로 인해 멸망 당하게 될 때, 불의한 뇌물로 상황을 해결하려고 시도할 것을 말합니다. 이 구절은 뇌물을 사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라는 뜻이결코 아닙니다. ‘선물’이란 원래 좋은 것이고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선한 결과를 낳지만, 그것을 ‘은밀하게’ 사용하려는 잘못된 시도는 악한 삶의 태도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5-13절에 악한 삶의 특징과 그 결과를 언급한 문맥을 생각할 때, 14절을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가능할 것입니다.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의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다음 세대들이 정의를 영화 속에서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와 교회 성도들의 삶에서 발견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잠언(20-02)


여호와를 기억하고 기다리라

잠언 20장 16-30절


‘100퍼센트 진짜 순 참기름’이란 말이 있습니다. 오죽 믿지 못하면 이런 말이 생겼을까 싶습니다. 정치인의 말을 있는 그대로 믿는 사람이 없고, 언론도 이제는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종교인들의 말이라고 크게 나을 것이 없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말을 믿지 못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입니다. 이런 세상 속에서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의 명령으로 받은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본 단락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의 중요성을 21-25절을 통해 강조하고, 또 내면 변화의 중요성을 26-30절을 통해서 강조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은 결국 내면의 변화라는 진정성 있는 열매를 맺게 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와 더불어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지혜로운 선택을 해야 하며(16-18) 공동체를 해치는 말을 삼가야 한다(19-20)는 가르침도 함께 주어집니다.

 

선택의 결과(16-18)

삶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선택은 전적으로 내 책임이며 내가 그 결과를 감당해야 합니다. 따라서 자기 욕망이 이끄는 대로 선택하기보다는 지혜롭게 선택해야 합니다. 보증을 서는 것이나 거짓된 행실은 뼈아픈 대가를 치르게 합니다. 하지만 유익한 조언을 청취하는 좋은 선택은 이로운 결과를 가져옵니다. 이렇듯 잠언은 상식적인 인과율을 지지합니다.

16타인을 위하여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 외인들을 위하여 보증 선 자는 그의 몸을 볼모 잡을지니라 17속이고 취한 음식물은 사람에게 맛이 좋은 듯하나 후에는 그의 입에 모래가 가득하게 되리라 18경영은 의논함으로 성취하나니 지략을 베풀고 전쟁할지니라(16-18)

거짓말은 자신과 타인의 삶을 망가뜨리고 관계를 깨뜨리며 공동체를 무너뜨립니다. 남을 속여 부당한 이익을 취합니다. 싸게 사서 비싸게 팔기 위해 적당히 거짓말을 섞습니다. “이 물건은 거룩하다”하며 과대포장과 헛된 맹세를 서슴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짓말들은 결국 자신에게 덫이 됩니다. 남을 속여 번 돈으로 누리는 즐거움은 머지않아 모래를 씹는 듯한 고통으로 변할 것입니다. 화려한 말의 포장이나 맹세가 없어도 말 그 자체로 신뢰를 얻으려면 우리는 얼마나 진실하게 살아야 할까요?

(1) 잘못된 선택의 결과(16-17)

16절은 보증을 설 때 맞게 되는 결과를 묘사합니다. 문법적으로는 보증 선 자의 옷을 취하라는 명령법으로 되어있으나, 사실상 이런 표현은 반어법으로 보증을 서면 자신의 옷을 빼앗기게 되고 자기 몸을 담보로 잡히게 된다는 사실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잘못된 선택은 해가 되어 돌아옵니다.

17절은 거짓말을 할 때의 결과를 서술합니다. 거짓말하는 순간은 달콤할지 모르나, 나중에는 모래를 입에 담은 것처럼 쓰디쓴 결과를 맞게 될 것입니다. 16-17절은 이렇듯 잘못된 선택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2) 올바른 선택의 결과(18)

16-17절이 잘못된 선택의 결과를 보여준 데 반하여, 18절은 올바른 선택이 가져오는 긍정적인 결과를 서술합니다. 다른 이의 의견을 듣고 의논하면 생각을 다듬을 수 있고, 계획을 세워서 전쟁하면 승리를 거둘 수 있다는 것입니다. 18절은 의논의 중요성을 말하는 동시에, 올바른 선택을 했을 때 유익한 결과를 맞게 됨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경제적인 부분에서(16), 언어사용의 부분에서(17), 또한 계획을 세우고 의논하는 부분에서(18), 올바른 선택을 해서 유익한 결과를 맞도록 해야 합니다.

 

공동체를 해치는 언어행위(19-20)

에덴에서의 인간의 타락은 곧 언어의 타락이었습니다. ‘거짓의 아비’인 마귀에게 속은 아담과 하와는 진실 없는 말로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거짓말 속에 담긴 악의 실체를 깨닫고 맞서야 합니다. 키질하여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듯, 진실과 거짓을 분별하는 세심한 눈과 지혜가 필요합니다.

19두루 다니며 한담하는 자는 남의 비밀을 누설하나니 입술을 벌린 자를 사귀지 말지니라 20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의 등불이 흑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19-20)

이 두 구절은 공동체를 해치는 잘못된 언어 행위에 대한 경고를 담고 있습니다. 19절은 다른 사람에 대하여 험담하는 행위를 하는 자를 벗으로 사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다른 사람의 비밀을 누설하여 해를 끼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20절은 부모를 저주하는 자는 가장 어두운 흑암 중에서 그의 등불이 꺼지게 된다는 점을 말합니다. 부모를 저주하는 언어행위를 하게 되면, 그 저주가 자신에게로 돌아와, 나에게 필요한 것을 가장 필요한 순간에 빼앗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9-20절은 공동체 구성원에게 해악을 끼치는 언어행위를 하지도 말고 그런 자를 사귀지도 말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우리는 이런 잘못된 언어행위들을 쉽게 용납하거나 그런 행위에 동참하는 실수를 범하지 말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올바른 언어를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21-25)

미련한 자는 성급합니다. 일의 전후를 살피거나 앞날을 예측하지도 않고 속단하는 것은 어리석습니다. 서두르면 사업도 망하고 함부로 서원하면 득이 아니라 덫이 됩니다. 함부로 보복하면 억울한 사람을 만들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참 지혜입니다. 그분은 전후좌우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21처음에 속히 잡은 산업은 마침내 복이 되지 아니하느니라 22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23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이요 속이는 저울은 좋지 못한 것이니라 24사람의 걸음은 여호와로 말미암나니 사람이 어찌 자기의 길을 알 수 있으랴 25함부로 이 물건은 거룩하다 하여 서원하고 그 후에 살피면 그것이 그 사람에게 덫이 되느니라(21-25)

하나님께서는 가야 할 길로 인도해주십니다. 한 치 앞도 분별할 수 없는 인생길을 안내자 없이 홀로 걷는 용기가 아니라, 어리석은 것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온전한 인도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여, 내딛도록 보여주신 길을 따라 걷습니다.

(1) 성급한 결정에 대한 경고(21)

21절은 성급한 결정에 대하여 경고합니다. 급하게 얻은 재산이 나중에 복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급한 결정에 대한 경고는 25절에 다시 한번 나오게 되는데, 그 중간 부분인 22-24절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에 대해서 말합니다. 즉 22-24절은 성급한 결정에 대한 두 가지 경고에 의해 인클루지오 기법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2)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22-24)

이 세 구절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삶에 대하여 가르칩니다. 22절은 악한 일을 당했을 때 스스로 원수를 갚으려 하지 말고 여호와를 먼저 의지해야 함을 말합니다. 의인을 구원하고 악인을 심판하는 권세가 여호와께 있음을 신뢰하고 그분을 의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3절은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와 속이는 저울을 여호와께서 싫어하심을 언급합니다. 거짓된 경제행위에 대한 언급인데, 경제활동을 함에 있어서 여호와를 의지하면서 정직한 삶의 태도를 견지해야 함을 알려줍니다. 24절은 사람이 자신의 길을 스스로 깨달을 수 없고 그 길은 오직 여호와께 달려있음을 말합니다. 24절은 22-23절의 두 경우 즉 악인에 대한 심판과 경제활동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 이유를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자기 생각으로 올바른 길을 찾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기 생각에는 직접 악인에게 보복하는 것이 좋아 보이고, 거짓된 방법으로라도 이익을 취하는 것이 좋아 보이나, 모든 길을 판단하시고 인도하시는 여호와 앞에서 그러한 행동들은 결국 심판을 초래하고 말 것입니다.

(3) 성급한 결정에 대한 경고(25)

25절은 21절에 이어서 다시 한번 성급한 결정에 대한 경고를 제공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서원이라 할지라도 너무 성급하게 하면 나중에 후회하게 되고 결국 자신에게 덫이 되고 맙니다. 따라서 거룩한 신앙의 결단이라 할지라도 깊이 생각한 후에 행해야 합니다. 이러한 25절의 메시지는 21절과 함께 인클루지오 기법을 이루어, 여호와께서 성급한 결정을 좋게 평가하지 않으신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성급하게 악을 갚으려고 하거나 불의의 이익을 취하지 말고 오직 여호와를 의지하면서 차근차근 삶의 걸음을 걸어 나갈 때, 여호와께서 인도하시는 인생의 길을 걸어갈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내면 변화의 중요성(26-30)

정말 중요한 것은 위가 아니라 아래일 수 있고, 앞이 아니라 뒷일 수 있으며, 겉이 아니라 속일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왕은 선과 악을 분별해냅니다. 그러니 속일 생각 말아야 합니다. 내면까지 살피기에 사랑의 매를 통해서라도 내면을 가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혜로운 노인의 백발이 아름다운 것은 그 내면 때문입니다.

26지혜로운 왕은 악인들을 키질하며 타작하는 바퀴를 그들 위에 굴리느니라 27사람의 영혼은 여호와의 등불이라 사람의 깊은 속을 살피느니라 28왕은 인자와 진리로 스스로 보호하고 그의 왕위도 인자함으로 말미암아 견고하니라 29젊은 자의 영화는 그의 힘이요 늙은 자의 아름다움은 백발이니라 30상하게 때리는 것이 악을 없이하나니 매는 사람 속에 깊이 들어가느니라(26-30)

이 단락은 사람의 내면의 모습을 주로 다룹니다.

먼저 26절에서는 왕이 사람들을 평가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지혜로운 왕은 타작마당에서 키질하듯이 사람들의 선함과 악함을 분별해냅니다. 권위자 앞에서 우리의 삶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27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여호와께서 사람의 내면을 살피신다는 점을 서술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사람에게 호흡을 주셨는데, 그 호흡은 여호와의 등불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호흡이 사람 속에 들어가고 나오듯이, 여호와의 등불은 사람 속을 비추고 그 내면을 감찰하고 평가한다는 것입니다.

28절은 왕의 인자함과 진실함이 왕의 자리를 보존해준다는 점을 기술합니다. 왕이 자신의 왕위를 지키는 비결이 인자함과 진실함을 지키는 것이라는 말로서, 이 역시 내면세계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왕위는 권력 같은 인간적인 방법으로 지켜지지 않습니다. 그 내면의 성품이 아름답고 복될 때 왕위가 지켜질 수 있습니다.

29절은 젊은 사람에게는 힘이 곧 영광이지만 나이 든 사람에는 백발이 아름다움이 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나이가 들게 되면 젊었을 때 자랑하던 힘은 잃어버리게 되지만, 힘보다 더 아름다운 백발이라는 선물을 갖게 됩니다. 백발의 아름다움을 언급하는 이유는, 육체의 겉모양이 절대적 가치를 지니고 있지 않음을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육체는 쇠하여져도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30절은 사랑의 매가 사람 속에 깊이 들어가 악을 없앤다는 점을 말합니다. 이 구절은 27절과 상당히 유사합니다. 27절은 여호와께서 사람의 내면을 살피심을 말했고, 30절은 부모나 스승의 훈계가 사람의 내면을 변화시킴을 말합니다. 우리는 내면의 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고 각자의 속사람 모습에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내면을 감찰하시고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실한 과정 없이 부를 얻고자 기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불의한 방법이나 노력 없이 거저 얻은 부로 풍요롭게 사는 사람을 부러워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그다지 가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 자체가 사람에게 절대적 행복의 조건이 되지 못하며, 불성실하게 얻은 부는 반드시 그 폐해가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한 사람들은 어리석게 일확천금이나 불로소득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잠언(20-01)


지혜롭고 겸손한 삶의 지혜

잠언 20장 1-15절


사람에게 거짓이 통한다고 해서 하나님까지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거짓된 모습은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알고 계시기에 우리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마음이 상하면 상한 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됩니다. 우리 모습이 아무리 초라해도 주님은 우리를 씻기고 치료해 주실 것입니다.

 

잠언 20장 전반부는 주로 성실함과 정결함에 대한 잠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성실과 정결에 대한 여러 다양한 삶의 측면들이 제시됩니다. 지혜로운 자는 자신에게 맡겨진 삶을 성실하게 살아내며, 불의의 이득으로부터 자신을 지켜 정결함을 유지합니다. 이 단락의 마지막 구절인 14-15절은 지혜로운 언어생활을 다시 한번 강조합니다.

 

거만함에 대한 경고(1)

술 취하면 사람은 절제력을 잃어버립니다. 멋대로 떠들고 마음대로 행동합니다. 그런데 술 취한 사람처럼 겁 없이 마음대로 하는 행동은 용기도 아니요, 지혜도 합니다. 모든 것이 드러나면 심판받을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1포도주는 거만하게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이에 미혹되는 자마다 지혜가 없느니라(1)

이 구절은 처음 보기에는 독주와 포도주에 대한 내용을 소개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잠언에서 매우 중요한 표현인 ‘거만하다’라는 말과 ‘지혜’라는 말이 대조되어 사용되는 사실에 주목하게 되면, 1절이 독주와 포도주에 대한 경고라기보다는 거만함에 대한 경고임을 알 수 있습니다. 거만함은 포도주나 독주와 같아서 사람을 취하게 하고 떠들게 합니다. 거만함에 취하게 되면 실수를 저지르게 되니 주의해야 합니다. 이 구절은 앞서서 거만함의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룬 19:25-29의 연장 선상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실한 삶의 중요성(2-7)

죄성으로 인해 교묘한 모습, 거짓된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도 겉으로는 매우 경건해 보입니다. 사람의 숨은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혜가 있으면 그것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짓은 영원할 수 없습니다. 때가 되면 사실이 드러납니다.

2왕의 진노는 사자의 부르짖음 같으니 그를 노하게 하는 것은 자기의 생명을 해하는 것이니라 3다툼을 멀리 하는 것이 사람에게 영광이거늘 미련한 자마다 다툼을 일으키느니라 4게으른 자는 가을에 밭 갈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거둘 때에는 구걸할지라도 얻지 못하리라 5사람의 마음에 있는 모략은 깊은 물 같으니라 그럴지라도 명철한 사람은 그것을 길어 내느니라 6많은 사람이 각기 자기의 인자함을 자랑하나니 충성된 자를 누가 만날 수 있으랴 7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라 그의 후손에게 복이 있느니라(2-7)

어리석은 자들은 헛소리를 내뱉을 때까지 독주를 마시고, 의로운 왕의 통치에 떨며, 파종할 시기를 놓쳐 추수하지 못합니다. 또 작은 이득을 위해 사람을 속이지만, 그것으로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는 더 큰 해를 자초합니다.

(1) 왕의 권위(2-3)

2절은 왕의 진노를 언급합니다. 왕의 진노를 일으키면 생명이 위험해진다는 것입니다. 3절은 다투는 것은 미련한가 하는 행동이므로 다투는 행위를 피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2절과 3절은 모두 분노 혹은 다툼 등의 연관된 주제를 다룹니다. 이렇게 분노와 다툼이 연결되어 나오는 현상을 우리는 19:10-14에서 이미 목격한 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20:2-3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물론 분노와 다툼을 피해야 한다는 것인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2b절로서 왕의 분노를 사게 되면 생명을 위협당한다는 점입니다. 왕은 권위자를 뜻하므로, 2b절은 권위자의 분노를 일으킬만한 잘못한다는 뜻이 됩니다. 3a절에서도 다툼을 멀리하는 것이 영광된다는 표현을 주목해야 합니다. 어떻게 다툼을 피하는 것이 영광될 수 있습니까? 이것은 권위자 앞에 선 현장을 생각하면 쉽게 이해됩니다. 왕 앞에서 다툼과 분쟁이 없는 것이 영광스러운 삶으로 이끄는 것입니다. 즉 2-3절은 권위자 앞에서 올바른 삶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는 함의를 제시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2) 성실한 삶의 중요성(4-7)

이 네 구절은 성실한 삶의 모습을 강조합니다. 4절은 게으름에 대해 경고하는데, 해야 할 일을 적절한 시기에 하지 못하면 나중에 아무런 결과도 얻지 못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시간에 대한 성실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5절은 사람의 마음에 있는 계획은 알아내기 어렵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 계획을 파악해낸다고 말합니다. 5절의 의미는 6절과 연결해서 생각했을 때 분명해집니다. 6절은 많은 사람이 자신의 성실함을 자랑하지만 그런 성실함을 지닌 자를 실제로 찾기는 어려움을 가르쳐줍니다. 5절과 6절을 함께 생각해보면, 겉모습뿐 아니라 내면까지 성실한 사람은 많지 않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런 사람을 구별해낸다는 의미가 됩니다. 7절은 온전하게 행하는 자가 의인이며 그 후손에게 복이 있음을 말합니다. 7절을 앞 구절들과 연결해보면, 온전히 행하는 자란 삶을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성실한 사람을 찾기는 어렵지만, 지혜로운 자는 그런 사람을 찾아낼 것이며, 그런 성실한 사람은 결국 복을 받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시간의 측면에서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하고, 성실한 사람이 될 때 결국을 받게 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를 2-3절과 연결해보시길 바랍니다. 성실함의 여부는 결국 왕과 같은 권위자 앞에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성실하면 복을 받게 되나, 성실하지 못함이 드러나면 진노를 받게 되어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입니다.

 

정결한 삶의 중요성(8-13)

하나님을 속일 수 없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믿음을 장담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처럼 꾸민다 해도 하나님께서는 겉모습에 속지 않으십니다. 외모를 취하지 않으시고 중심을 보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거짓말을 할 때 어른이 보면 뻔히 보이는데도 끝까지 속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8심판 자리에 앉은 왕은 그의 눈으로 모든 악을 흩어지게 하느니라 9내가 내 마음을 정하게 하였다 내 죄를 깨끗하게 하였다 할 자가 누구냐 10한결같지 않은 저울 추와 한결같지 않은 되는 다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느니라 11비록 아이라도 자기의 동작으로 자기 품행이 청결한 여부와 정직한 여부를 나타내느니라 12듣는 귀와 보는 눈은 다 여호와께서 지으신 것이니라 13너는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라 네가 빈궁하게 될까 두려우니라 네 눈을 뜨라 그리하면 양식이 족하리라(8-13)

충성은 믿음과의 통합니다. 온전히 행하는 자는 아쉬울 때만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충성스러운 믿음이 복을 누리게 합니다.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파악하지 못하실 리가 없습니다.

(1) 왕의 권위(8)

8-13절도 앞 단락인 2-7절과 같이 왕에 대한 잠언으로 시작합니다. 8절은 왕이 모든 악을 분별해낸다는 사실을 제시합니다. 여러 가지 일들이 왕 앞에 펼쳐지더라도, 그중에서 선한 일과 악한 일을 왕은 가려낼 수 있습니다. 8절은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들의 진정성이 차후에 그 일들을 판단할 권위자 앞에 낱낱이 드러나게 될 것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2) 정결한 삶의 중요성(9-13)

9-13절은 정결한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결한 삶을 위한 여러 교훈을 제시합니다.

9절은 자신의 마음을 정결하게 하였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누구일지 묻습니다. 수사적 의문문의 형태로서 ‘그런 사람은 없다’라는 의미입니다. 이 구절을 완전히 정결한 자는 없다는 어떤 존재론적 선언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입니다. 오히려 이 구절은 나 자신에게 정결하지 못한 모습이 있을 수 있기에 늘 조심해야 한다는 가르침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10절은 한결같지 않은 저울추와 되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신다는 사실을 언급합니다. 상황에 따라 기준을 바꾸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정결한 삶이 아닙니다. 정결함이란 자신의 이익을 좇아 다른 이들을 속이는 거짓 행위를 멀리하는 것입니다.

11절은 비록 어린아이라 할지라도 그 행동거지에서 자신의 정결 여부와 정직 여부가 다 드러난다는 것을 말합니다. 정결/정직의 여부는 결코 숨길 수 없습니다. 12절은 여호와께서 눈과 귀를 지으셨음을 말합니다. 단순히 창조행위를 말하는 것으로 제한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눈과 귀를 지으셨으므로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을 통해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12절을 10-11절과 연결해보면, 정결하지 못한 행동은 반드시 드러나게 되어 있고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니 결코 그런 행동을 해서는 안 되다는 점을 알 수 있게 됩니다.

13절은 잠자기를 좋아하지 말아야 하고 눈을 떠야만 풍족한 양식을 얻을 수 있음을 말합니다. 13절과 12절은 ‘눈’이라는 주제로 연결됩니다. 13절은 눈을 감아서 잠들 때에 대해 경고하는데, 잠자는 것은 여호와께서 지으신 눈을 감는 것이며, 결국 정결하지 못한 삶을 용인하는 것을 뜻하게 됩니다. 우리는 눈을 바로 뜨고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 정결한 삶을 유지해 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정결 여부와 정직 여부는 언젠가 드러나게 됩니다. 8절에서 왕의 권위를 언급한 것처럼, 권위자 앞에서 우리의 정결/정직 여부를 판단 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권위자이신 여호와를 생각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정결한 삶을 추구해야 합니다.

 

지혜로운 언어생활(14-15)

지혜로운 의인은 구체적인 삶의 방식에 있어서 어리석은 악인과 구별됩니다. 언어는 마음에 담겨 있는 것을 표현하는 도구이기 때문에 지혜로운 입술을 가진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지식이 들어야 합니다. 두루 다니며 남을 비방하고 헛된 소문을 퍼뜨리는 자들은 형제를 이간하는 사악한 자이기 때문에 멀리해야 합니다.

14물건을 사는 자가 좋지 못하다 좋지 못하다 하다가 돌아간 후에는 자랑하느니라 15세상에 금도 있고 진주도 많거니와 지혜로운 입술이 더욱 귀한 보배니라(14-15)

이 두 구절은 지혜로운 언어생활에 대해서 알려줍니다. 14절은 일반적인 사람들의 언어 행위를 묘사합니다. 물건을 살 때는 물건 가격을 깎기 위해서 물건이 좋지 않다고 말하지만, 물건을 사서 돌아간 후에는 그 물건을 값싸게 샀다는 사실을 자랑한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사람들의 언어 행위가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언어 행위를 우리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 것입니까? 그 기준이 15절에 나타납니다. 세상에는 금과 진주가 많지만 지혜로운 입술이 금과 진주보다 더 귀하다는 것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변덕스러운 말을 하는 입술보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위해서 진실한 말을 하는 입술이 더 귀하다는 의미입니다. 지혜로운 입술이 가장 큰 유익을 가져다주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상황에 따라 자꾸 말을 바꾸는 사람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우리의 언어 행위를 통해 하나님을 높이고 그분을 경외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비전이란 말을 자주 듣습니다. 많은 경우 무엇이 되는 것에 초점을 두지만, 핵심은 어떤 사람이 되는가입니다. 소유의 허상으로 자신을 세우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아름다운 내면을 바르게 표현하는 인격적 삶에 관심 두십니다. 이것을 추구하는 것이 신자의 참 비전입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잠언(19-02)


하나님의 경건한 사람들

잠언 19장 15-29절


 

잠언은 하나님의 은혜를 전제로 하지만 우리가 하나님의 지혜를 찾고 실현하기 위해서 마땅히 감당해야 할 책임을 강조합니다. 그 책임에 따른 상과 벌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닙니다. 간간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의 중요성을 말하며 또 궁극적으로는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생각하고 행동하더라도 “하나님의 뜻만이 완전히 서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책입니다. 그러니까 세상에 돌아다니는 윤리와 도덕에 관한 경구들을 모아놓은 책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만 참된 윤리와 도덕이 세워지고, 진정으로 선과 악이 결정 난다고 분명히 밝히는 책입니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이 적절하게 조화된 이 책의 성격이 오늘 본문에서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본문은 선한 일에 열심을 내야 하는 경우들(15-19)과 거만한 자를 주의해야 하는 이유(24-29)를 설명하는데, 이 두 문단 사이에 여호와 경외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문단이 위치해 있습니다(20-23). 첫 문단과 셋째 문단은 모두 게으름에 대한 경고로 시작하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선한 일에 열심을 내며, 여호와를 경외하고, 거만한 자를 주의하라는 것이 본 단락의 메시지입니다.

 

선한 일에 열심(15-19)

미련한 자는 게으릅니다. 그들은 점점 자기 행동에 대해 무감각해지고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합니다. 당연히 가난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지혜자는 하나님께서 다 해주실 것을 기대하는 자가 아니라 자기 일에 열심을 다 하는 자입니다. 하지만 과도한 열심을 오히려 해를 끼치게 되니 조심해야 합니다.

15게으름이 사람으로 깊이 잠들게 하나니 태만한 사람은 주릴 것이니라 16계명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지키거니와 자기의 행실을 삼가지 아니하는 자는 죽으리라 17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어 드리는 것이니 그의 선행을 그에게 갚아 주시리라 18네가 네 아들에게 희망이 있은즉 그를 징계하되 죽일 마음은 두지 말지니라 19노하기를 맹렬히 하는 자는 벌을 받을 것이라 네가 그를 건져 주면 다시 그런 일이 생기리라(15-19)

지혜 있는 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세상을 살아갑니다. 삶에서 게으름을 몰아내고,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부모는 자녀를 훈육하고 자녀는 부모를 공경하며, 사람들에게 인자히 행하여 존경과 사랑을 받습니다.

(1) 게으름에 대한 경고(15)

15절은 게으름에 대한 경고다. 게으름은 사람으로 하여금 깊이 잠들게 하고 굶주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게으름을 피우는 순간은 즐겁고 편할지 모르나, 결국 그로 인해서 큰 피해를 당하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게으름이 사람으로 하여금 깊이 잠들게 한다는 점을 주목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잠든다는 것은 비유로서, 자기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무감각하게 되고 해야 할 일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열심을 내야 할 일들을 놓치게 되는 것입니다. 게으름은 우리가 매우 주의해야 할 잘못이며 실수입니다.

(2) 열심을 내야 하는 경우들(16-19)

이 구절들은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되는 여러 가지 경우들을 제시합니다. 이 일들을 올바로 해내지 못하면 해가 되는 결과를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16절은 계명을 지키지 않거나 자신의 행실을 삼가지 않는 경우, 자신의 영혼에 해를 가하게 되며 심지어는 죽게 된다고 가르칩니다. 계명을 지키고 행실을 삼가는 것에 게으름을 피워서는 안 됩니다.

17절은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면 하나님께서 갚아 주심을 말합니다.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에 우리가 열심을 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18절은 아들에게 희망이 있을 때 양육하고 훈계하기를 힘써야 함을 말합니다. 아직 기회가 남아있을 때 열심을 내어서 자녀를 돌봐야 합니다. 여기서 18b절은 한 가지 제한선을 설정합니다. 과도하게 자녀를 징계하다가 죽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즉 열심을 내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과도한 정도의 잘못된 열심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의미입니다.

19절은 심하게 화를 내는 자들을 조심하라는 경고의 메시지를 줍니다. 심하게 화를 내는 버릇은 고치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사람을 용서해주어도 그가 깨닫고 화내는 버릇을 고치지는 못할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19절은 18b절의 죽일 마음을 두지 말라는 내용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무슨 일이든 과도한 열심을 내면 역효과가 나게 됩니다. 화를 심하게 내는 것도 그런 경우이고, 자녀를 심하게 징계하여 죽일 마음을 품는 것도 그런 경우입니다. 모든 일에 선한 열심을 내되, 과하지 않게 적절한 선에서 열심을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의 중요성(20-23)

미련한 자는 거만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법을 무시하고 정의를 업신여기며 심지어 “죄악을 삼키는 자”가 됩니다. 거만한 자는 징계를 받아도 안 변하지만, 그것을 본 어리석은 자, 즉 미성숙한 자는 지혜를 배울 것입니다. 그들이 살길은 지혜의 말씀을 붙잡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심판이요 채찍질입니다.

20너는 권고를 들으며 훈계를 받으라 그리하면 네가 필경은 지혜롭게 되리라 21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 22사람은 자기의 인자함으로 남에게 사모함을 받느니라 가난한 자는 거짓말하는 자보다 나으니라 23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당하지 아니하느니라(20-23)

이 네 구절은 선한 열심의 주제로부터 전환하여 새로운 주제로 묶여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 신앙과 지혜에 관련된 주제입니다.

20절은 권고를 듣고 훈계를 받아 지혜롭게 되어야 함을 말합니다. 잠언에서 지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적 관점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으므로, 20절은 암시적으로 여호와 경외 신앙을 말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21절은 지혜를 배워야 하는 이유를 말합니다. 사람이 많은 것을 계획하더라도, 그중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허락하시고 뜻하시는 것뿐입니다.

22절은 해석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 대략적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가능합니다. 사람에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인자함입니다. 인자함이란 약속에 대한 성실함을 뜻합니다. 하반절의 ‘가난한 것이 거짓말하는 것보다 낫다’라는 구절은 거짓말의 해악을 강조한 표현이므로, 22절 전체는 다른 사람과의 약속을 성실하게 지켜야 함을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3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면 생명을 얻게 됨을 말합니다. 여호와 경외는 재앙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고 풍성한 생명을 가져다줍니다. 21-23절을 거시적으로 이해해본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우리 삶의 모든 측면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메시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15-19절의 열심의 주제와 연결해보자. 우리는 게으름을 피하고 선한 열심을 내야 하는데, 과도한 열심은 피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과도하게 열심을 내는 경우는 무엇입니까? 그에 대한 일종의 대답을 20-23절이 주고 있는 듯합니다. 열심을 낼 때,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 안에서 열심을 내야 하며, 다른 사람을 향해 성실함을 지키는 범주 안에서 열심을 내야 하고, 나의 계획이 아닌 하나님의 계획이 설 것이라는 신앙적 겸손으로 열심을 내야 합니다.

 

거만한 자에 대한 경고(24-29) 

게으름과 거만함의 치료책은 ‘여호와 경외’입니다. 그것이 사망의 길에서 건져 생명의 길로 갈 수 있게 해줍니다. 창조주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하고, 결국 인간이 그 무엇을 마음에 경영한들 결국 하나님의 뜻만이 오롯이 설 것이라고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24게으른 자는 자기의 손을 그릇에 넣고서도 입으로 올리기를 괴로워하느니라 25거만한 자를 때리라 그리하면 어리석은 자도 지혜를 얻으리라 명철한 자를 견책하라 그리하면 그가 지식을 얻으리라 26아비를 구박하고 어미를 쫓아내는 자는 부끄러움을 끼치며 능욕을 부르는 자식이니라 27내 아들아 지식의 말씀에서 떠나게 하는 교훈을 듣지 말지니라 28망령된 증인은 정의를 업신여기고 악인의 입은 죄악을 삼키느니라 29심판은 거만한 자를 위하여 예비된 것이요 채찍은 어리석은 자의 등을 위하여 예비된 것이니라(24-29)

게으름은 하나님께서 주신 소중한 기회를 저버리고 삶을 무가치하게 여기는 죄악된 습관입니다.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즉시 헤어나오지 못하는 것은 게으름을 쉼, 또는 안식으로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게으름으로 자신을 망치거나 주변 사람들에게 어려움을 주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환경을 낭비하지 말고 성실히 살아갑시다.

(1) 게으름에 대한 경고(24)

24절은 게으름에 대한 경고를 전해줍니다. 이 구절은 15절과 매우 유사합니다. 다만 다른 점은, 15절은 게으름이 사람을 잠에 빠뜨려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결과적 측면을 강조했지만, 24절은 게으름의 현상 자체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음식이 가득한 그릇에 손을 넣고도 먹지 않는다는 24절의 묘사는 게으름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조차 누리지 못하는 잘못된 삶의 태도이기에, 한번 게으름에 빠지면 자신의 삶을 개선해 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우리에게 깨우쳐줍니다.

이러한 24절의 메시지는 25절 이하로 나타나는 거만한 자의 이미지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거만한 자야말로 게으른 자의 대표적인 경우로서, 자기 삶의 잘못된 측면을 개선하거나 변화시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2) 거만한 자에 대한 경고(25-29)

25-29절은 주로 거만한 자에 대한 여러 가지 잠언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5절은 거만한 자를 때리면 미성숙한 자가 옆에서 보고 지혜를 배울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거만한 자를 때렸을 때, 거만한 자 자신은 지혜를 배우지 못한다는 점입니다. 미성숙한 자조차 지혜를 배우며, 명철한 자는 지식을 얻는데, 거만한 자는 자기가 훈계를 받았음에도 지혜를 얻지 못합니다. 거만한 자는 스스로 잘못을 돌이킬 줄 모르는 자입니다.

26절은 부모를 멸시하고 쫓아내는 사람은 부끄러움과 수치를 불러들이는 자임을 말합니다. 26절은 27절과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27절에 “내 아들아”라는 말이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27절의 화자는 아버지이고 청자는 아들입니다. 화자는 아들에게 지식의 말씀 즉 지혜의 말씀을 떠나게 하는 교훈을 멀리하라고 가르칩니다. 다시 말해 지혜의 말씀을 굳게 붙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26-27절은 우리가 지혜를 굳게 붙잡아야 하며,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수치와 능욕을 불러들이게 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28-29절은 다시금 거만한 자에 대하여 언급합니다. 28절은 망령된 증인이 정의 앞에서 거만하게 행동한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여기서 거만함이란 참된 증거 대신 거짓 증거를 내세우는 잘못입니다. 25절에서 거만한 자는 자신의 삶을 개선하지 못하는 자로 묘사되었는데, 이제 28절에서 거만한 자는 더욱 적극적으로 죄를 행하는 자로 묘사됩니다. 거만한 자는 죄악을 삼키는 악인과 같은 수준의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29절은 거만한 자가 결국 심판을 받게 될 것을 말합니다. 이제 거만한 자는 미련한 자와 동급으로 묘사됩니다. 25-29절은 거만한 자가 자기 삶의 잘못된 부분을 고치지 못하는 자이고, 지혜를 붙잡으라는 부모의 가르침을 버리는 자이며, 그리하여 결국 심판을 당하게 되는 자임을 차례로 가르칩니다. 우리는 결코 이러한 거만한 자가 되어서는 안 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 지혜에 거하여 선한 열심을 내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게으름과 거만함의 치료책은 ‘여호와 경외’입니다. 그것이 사망의 길에서 건져 생명의 길로 갈 수 있게 해줍니다. 창조주요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고 신뢰하며, 결국 인간이 그 무엇을 마음에 경영한들 결국 하나님의 뜻만이 오롯이 설 것이라고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할 때 생명에 이르고 족하게 살며 재앙에 이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이 지혜의 길이며 의의 길이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잠언(19-01)


재물을 사용하는 지혜

잠언 19장 1-14절


성경은 '부의 위험성을 지적하지만 부 자체를 나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결핍이나 빈곤 등을 해결해야할 일로 말하며 풍성함을 복이라고 말해줍니다. 심지어 생명력이 고갈되어 온전하지 못한 상태를 죽음에 이미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말할 정도입니다. 따라서 재물에 대한 공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 가치를 긍정할뿐 아니라 돈이 갖고 있는 막강한 파괴력도 잘 인지하여 우리 시대에 돈이 갖는 전능성과 거룩성을 과감하게폭로하고 해체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자들의 몫입니다.

 

본문의 중심내용은 재물입니다. 잠언이 가르치는 지혜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재물을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1-9절을 통해 집중적으로 조명합니다. 재물은 중요하나, 그 재물을 사용함에 있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으로 현실의 재물 문제를 헤쳐나가야 합니다. 10-14절은 공동체 안에서 분노를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여러 가지 경우를 들어 설명합니다.

 

재물에 대한 가르침 1(1-5)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것이 더 큰 미덕입니다. 불의한 재물을 모으려고 혀를 잘못 사용하거나 재물에 대한 소원만 있지 참된 지식이 없이 서두르기만 하는 것도 어리석은 일입니다. 자기 뜻대로 돈이 벌리지 않으면 사람도 하나님도 원망합니다.

1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 2지식 없는 소원은 선하지 못하고 발이 급한 사람은 잘못 가느니라 3사람이 미련하므로 자기 길을 굽게 하고 마음으로 여호와를 원망하느니라 4재물은 많은 친구를 더하게 하나 가난한즉 친구가 끊어지느니라 5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하는 자도 피하지 못하리라(1-5)

어리석은 마음은 재물을 따라 움직이고, 재판에서도 침과 구너력 앞에서 진실을 덮고 거짓을 말하게 합니다. 잘못을 용서하고, 과오를 인정하며,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지혜를 얻는 길입니다.

(1) 재물에 대한 가르침(1-4)

1절은 재물에 대한 주제를 비교잠언(‘~보다 ~이 낫다’는 형태로 이루어진 잠언)의 형식으로 설명합니다.

가난해도 성실한 것이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가 어떤 자인지 명확하지 않지만, 가난해도 성실한 자와 비교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패역한 방법으로 재물을 모으는 자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즉 불의의 재물을 누리는 것보다 정직한 가난이 낫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1절은 이어서 9절까지 이어지는 재물에 대한 논의를 열어주는 서론입니다.

잠언 19:1-9은 불의의 재물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2절은 지식이 없는 욕심은 선하지 못한 결과를 낳는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여기서 지식은 물론 지혜의 유사어휘입니다. 즉, 지혜롭지 못하게 욕심을 내면 잘못된 결과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3절은 사람이 자기 미련함 때문에 실수하고서는 하나님을 원망한다는 점을 말해줍니다. 2-3절이 무엇을 가르치는 것입니까? 바로 1절에서 나온 패역하고 미련한 자의 결국을 제시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불의의 재물을 모으려고 할 때, 잠시는 잘될지 모르지만 결국은 잘못된 길로 가서 악한 결과를 맞게 될 것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4절은 재물이 많으면 친구가 많고 재물이 적으면 친구가 없어진다고 말합니다. 이 구절은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객관적인 진술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현실을 말할,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많이 사귀어야 한다고 말하지는 않습니다.

(2) 거짓 증거에 대한 경고(5)

1-4절에 이어서 5절은 갑작스럽게 거짓 증거 및 거짓말에 대해서 경고합니다. 거짓 증거는 물론 재물의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거짓 증거와 거짓말이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불의의 행동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거시적인 관점에서 재물과 어느 정도 연결될 수도 있습니다. 즉 5절은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다가 잘못을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4절의 가르침과 연결될 수 있겠고, 특히 4절에서 재물이 많아야 친구가 많다는 현실 인식을 신앙적 관점으로 재조명하여, 재물을 위해 불의한 행동을 하지 말 것을 알려주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재물에 대한 가르침 2(6-9)

지혜자는 재물이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을 잘 압니다. 따라서 그것으로 자기 배를 불리지 않고 자기만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며 돈을 쌓는 것 자체를 기쁨으로 삼지 않습니다. 타인의 필요를 채우는 데 쓰기 때문에 지혜로운 부자 곁에는 친구가 많고, 그에게 너그러움과 은혜를 구하는 자들이 더 많이 생깁니다.

6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 7가난한 자는 그의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거든 하물며 친구야 그를 멀리 하지 아니하겠느냐 따라가며 말하려 할지라도 그들이 없어졌으리라 8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 9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뱉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6-9)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미워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짓 증인과 거짓말을 퍼뜨리는 자를 반드시 징계하십니다. 눈앞에 놓인 작은 이익 때문에 거짓으로 형제와 이웃을 어려움에 빠지게 하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1) 재물에 대한 가르침(6-8)

6절부터는 다시금 재물에 대한 문제가 등장합니다. 6절에서 “너그러운 사람에게는 은혜를 구하는 자가 많고 선물 주기를 좋아하는 자에게는 사람마다 친구가 되느니라”은 선물에 대한 가르침인데, 선물을 주기 좋아하는 사람에게 친구가 많다는 현실을 제시합니다. 7절은 “가난한 자는 그의 형제들에게도 미움을 받거든 하물며 친구야 그를 멀리하지 아니하겠느냐 따라가며 말하려 할지라도 그들이 없어졌으리라”라고 역시 유사한 메시지를 전하는데, 재물이 없는 자는 형제에게 미움을 받게 될 뿐 아니라 친구까지 없어진다는 점을 말합니다.

6-7절은 동일하게 재물이 꼭 필요한 우리 삶의 현장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재물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해도 괜찮습니까? 8절에서 “지혜를 얻는 자는 자기 영혼을 사랑하고 명철을 지키는 자는 복을 얻느니라”은 지혜와 명철의 중요성을 언급하는데, 지혜를 얻은 자야말로 자기 영혼을 사랑하는 자이고, 명철을 지키는 자가 바로 선을 발견한 자임을 강조합니다. 잠언 전체에서 지혜와 명철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적 관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8절은 우리가 무슨 일을 만나든지 여호와 경외를 가장 기본적인 삶의 해석법으로 삼아야 함을 알려줍니다.

그렇다면 8절은 6-7절에서 말한 재물의 중요성에 대해서 신앙적인 관점에서 제한을 걸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재물은 꼭 필요하지만, 재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입니다. 신앙적으로 옳고 합당한 선 안에서 재물은 의미가 있습니다.

(2) 거짓 증거에 대한 경고(9)

9절은 “거짓 증인은 벌을 면하지 못할 것이요 거짓말을 뱉는 자는 망할 것이니라”라는 사실상 5절과 거의 동일합니다. 거짓 증인이 되는 자와 거짓말을 하는 자는 결국 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9절은 6-8절의 논의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보아도 좋을 것입니다. 이는 5절이 1-4절의 연장선상에 있음과 같습니다. 5절에서는 거짓말하는 자는 피하지 못한다고 조금 소극적으로 표현했으나, 9절은 거짓말하는 자는 망할 것이라고 더 적극적으로 말합니다. 재물이 중요하나, 불의한 재물의 유혹에 넘어가면 망하게 됨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분노에 대한 가르침(10-14)

분노는 자신이 자기 인생의 주인이며 타인을 모두 주체가 아니라 객체로 간주할 때 나옵니다. 거룩한 분노도 있겠지만, 이기적인 분노는 오만함에서 나옵니다. 모든 것이 자기 뜻대로 되어가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심지어 하나님마저도 자기 기준에 따라 움직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10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 11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 12왕의 노함은 사자의 부르짖음 같고 그의 은택은 풀 위의 이슬 같으니라 13미련한 아들은 그의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14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10-14)

10-14절은 ‘분노’라는 새로운 주제를 다룹니다. 다만 10절은 분노를 직접 다루지는 않고, 종이 방백을 다스리는 것이 합당하지 않음을 말합니다. 여기서 종이 방백을 다스리는 것과 비교되는 사항이 있는데, 바로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입니다.

‘사치’란 1-9절에 나온 재물 주제의 연장선상에 있습니다. 즉 10절에서 “미련한 자가 사치하는 것이 적당하지 못하거든 하물며 종이 방백을 다스림이랴”라는 1-9절의 논의에서 11-14절의 분노에 대한 논의로 넘어가는 디딤돌 역할을 합니다. 11절부터는 분노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다룹니다. 11절에서 “노하기를 더디 하는 것이 사람의 슬기요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 자기의 영광이니라”라는 분노를 잘 조절하는 것이 필요함을 말합니다. 허물이 있을 때 넘어가 주는 것이 결국 유익이 된다고도 말합니다. 12절에서 “왕의 노힘의 부르짖음 같고 그의 은택은 풀 위의 이슬 같으니라”라는 왕의 분노에 대해서 말하는데, 왕이 화를 내면 사자의 부르짖음과 같아서 두려운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왕의 진노를 사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합니다. 12절은 정당한 분노 혹은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다른 사람의 분노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를 만나게 되면, 가능한 한 그런 분노를 피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13절에서 “미련한 아들은 그의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라는 다투는 아내에 대해 소개합니다. 아내의 다툼이란 넓게 보았을 때 분노의 주제와 연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투기를 잘하는 아내가 그 남편에게 있어서 쏟아지는 빗방울 같음은 마치 미련한 아들이 아버지에게 재앙인 것과 같습니다. 아내는 분노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14절에서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서 말미암느니라”라는 슬기로운 아내는 하나님으로부터 내려온다고 말합니다. 13절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다툼을 삼가는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를 지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내들은 분노를 잘 조절할 수 있어야 하며, 남편들은 아내가 분노를 잘 조절하여 신앙적인 덕을 지닌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이러한 아내의 분노에 대한 적용점은 물론 남편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13-14절은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분노를 잘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참으로 지혜로운 남편, 아내, 부모, 자녀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자신의 분노를 잘 관리해야 합니다. 화가 나는 상황은 있을 수 있으나, 그 화를 잘 조절하여 이어 떨어지는 물방울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사회의 정의를 세우기 위한 왕의 정당한 분노는 풀 위의 이슬같이 부당한 권력에 의해 짓눌린 생명력을 복원하고 자유의 공기를 마시게 해줍니다. 가정에서도 분노하며 다투는 아내 또는 남편이 있는 집이나 부모를 업신여기는 자녀가 있는 집이 행복할 리 없습니다. 분노를 잘 조절할 줄 아는 아내와 남편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잠언(18-02)

 

 


인간관계와 말하는 지혜

잠언 18장 13-24절


사람은 한 번 봐서 알 수 없습니다. 말도 한 번 들어서는 그 진의를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한 사람을 볼 때도 한 “이야기”로 보고 한 “역사"로 보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한 사람의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 신중히 기다리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그러지 않고 자기 이야기로 상대방의 이야기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속단하면 관계를 건강하게 형성할 수 없습니다. 자기 지식이나 자신의 사회, 경제적 신분으로 상대방을 함부로 판단하여 오만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말을 포함하여 건강한 공동체의 관계를 위해서 필요한 것들에 대해 다양한 지혜를 주고 있습니다.

 

18장 후반부는 다양한 주제들을 거론하는데, 그중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지혜롭게 살아갈 것인지에 대한 주제들이 많이 다루어진다는 점이 시선을 끕니다. 경청의 문제, 마음의 문제, 선물의 문제, 재판의 문제, 언어사용의 문제, 가정 및 친구의 문제 등이 공동체의 삶과 연결되어 다뤄지고 있습니다. 이 중 가장 집중적으로 다뤄지는 주제는 17-19절의 재판의 문제입니다.

 

지혜와 미련의 여러 가지 경우들(13-16)

사람은 한 변 봐서 일 수 없습니다. 말도 한 번 들어서는 그 진의를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니 지혜로운 사람은 한 사람을 볼 때도 한 “이야기”로 보고, 한 “역사”로 봅니다. 말뜻을 이해하기 위해 신중하게 기다립니다. 특별히 재판과정에서는 치우침이나 서두름이 없는 이런 신중함이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지혜입니다.

13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여 욕을 당하느니라 14사람의 심령은 그의 병을 능히 이기려니와 심령이 상하면 그것을 누가 일으키겠느냐 15명철한 자의 마음은 지식을 얻고 지혜로운 자의 귀는 지식을 구하느니라 16사람의 선물은 그의 길을 넓게 하며 또 존귀한 자 앞으로 그를 인도하느니라(13-16)

지혜를 가진 사람은 사연을 듣되 한쪽에 치우치지 않기에 올바르게 판단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람의 말이며, 지혜를 공유할 때 참된 교제가 가능하게 됩니다.

(1) 경청의 중요성(13)

13절은 어떤 일에 대해 듣기 전에 그 문제에 대해서 대답하는 것이 지혜롭지 못하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다른 이의 말을 들을 때에 먼저 경청해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경청’이란 단순한 ‘듣기’뿐 아니라, 해당 문제에 대한 깊은 숙고와 분석까지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개역개정에서 “대답하는 자”라고 번역된 원문은 ‘문제를 되돌린다.’라는 뜻으로 그 문제에 대하여 모종의 결론이나 해답을 내린다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 문제에 대하여 충분히 듣고 알아보기 전에 섣불리 판단하지 말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지 않을 때는 수치와 욕을 당하게 됩니다.

(2) 마음의 중요성(14)

사람의 마음은 원래 건강한 힘이 있어서 병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마음이 상하게 되면 병을 이길 수 없게 됩니다. 14절은 마음이 상하게 되는 경우의 심각성을 언급하면서, 마음을 건강하게 지켜나가는 것이 중요함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3) 지식을 구하는 태도의 중요성(15)

15절은 지식을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명철한 자와 지혜로운 자는 늘 지식을 찾고 구합니다. 여기서 ‘지식’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잠언 전체의 거시적인 시각에서 해석되어야 합니다. 단순한 지적인 학습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것입니다. 지식이란 사실상 지혜 혹은 명철과 같은 범주에 들어가는 지혜 어휘군(群)에 속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명철한 자와 지혜로운 자가 지식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냥 공부를 열심히 한다는 정도의 뜻을 뛰어넘어, ‘지혜를 가진 자는 지혜를 더욱 열심히 추구한다.’라는 의미로 이해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혜를 배운 자는 하나님을 더 경외하기에 힘쓰지만, 이런 지혜를 갖지 못한 자는 지혜의 중요성을 알지 못하여 지혜를 더욱 무시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4) 선물의 중요성(16)

선물을 주면 기회가 열려서 존귀한 자 앞으로 가게 된다는 의미인데, 선물을 통해서 자기가 원하는 바를 이루라는 뜻으로까지 해석하기는 어렵습니다. 즉 선물이 그런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단순한 서술일 뿐입니다. 선물을 통해서 부당한 이득을 취하려고 생각한다면 그 선물은 뇌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 앞 구절인 15절과 연결해서 생각해보면, 지혜롭고 명철한 자는 선물을 지혜롭게 다루어서 물이 되지 않도록 할 것이 분명합니다.

 

공동체 안에서의 관계의 중요성(17-19)

관계는 생명과 같습니다. 한 가지 공식만 존재하지 않고 상황과 처지와 조건에 따라서 다양한 행동 방식과 관계 맺기 방식이 필요합니다. 한 가지 방법만을 고민하지 않고 공평하지만 동시에 창의적인 길을 모색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배우자와 친구, 가난한 자와 부자 등 다양한 관계 속에서 오직 지혜만이 그 관계에 생명력을 부여합니다.

17송사에서는 먼저 온 사람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의 상대자가 와서 밝히느니라 18제비 뽑는 것은 다툼을 그치게 하여 강한 자 사이에 해결하게 하느니라 19노엽게 한 형제와 화목하기가 견고한 성을 취하기보다 어려운즉 이러한 다툼은 산성 문빗장 같으니라(17-19)

17절부터 14절은 공동제안에서의 관계 문제를 다룹니다.

17절은 재판을 할 때 한 사람의 말만 듣고 모든 것을 판단할 수는 없음을 지적합니다. 다른 사람이 와서 다른 의견이나 진술을 제시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18절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모두 듣고 나서도 판결을 내릴 수가 없을 때는 제비뽑는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제비가 다툼을 그치게 하고 강한 자의 얽힌 관계를 풀어준다는 것입니다. 즉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그 문제의 여러 측면을 소상하게 살펴보고 판결을 내려야 하며, 판결이 어려울 때는 제비뽑기를 통해 양쪽이 이해할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해야 함을 말합니다.

19절은 재판과 연관하여 다툼의 문제 자체를 다룹니다. 다툼은 해결하기가 너무 어려워서, 차라리 견고한 성읍을 공격하여 점령하는 것이 더 쉽게 생각될 정도입니다. 따라서 처음부터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제일 좋습니다. 만약 다툼이 일어난다면, 17-18절에서 서술된 것처럼 공정하게 모든 측면을 잘 살펴야 하고, 양측이 받아들 수 있는 해법을 제시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17-19절을 좀 더 넓게 적용한다면, 재판하는 경우뿐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 어떤 분쟁이나 다툼이 일어났을 때 대한 말씀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교회나 가정이나 직장에서 발생한 일들을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지 보여주는 기본적인 원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올바른 언어사용의 중요성(20-21)

지혜자는 말로 관계를 생성하고 이어갑니다.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에게도 만족을 주는 것은 바로 바른 말입니다. 말의 열매로 나와 타인을 배부르게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그것은 도움이 되는 데 그치지 않고 죽고 사는 것까지 결정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큽니다. 사회, 경제적 지위를 막론하고 모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정하고 주님 대하듯 말을 한다면 생명의 열매로 배부를 것입니다.

20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21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20-21)

이 두 구절은 다시금 언어사용의 중요성에 대해 말합니다.

20절은 우리가 입술의 열매로 인해서 만족하게 된다고 말함으로써, 내가 말하는 것이 곧 나에게 돌아오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21절 역시 유사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죽고 사는 것이 혀에 달려 있어서 혀를 쓰면 혀의 열매를 맺습니다. 무엇인가 말하면 그것이 내게 돌아온다는 것으로, 말할 때 주의해서 지혜롭게 말해야 하며, 그 말의 책임을 스스로 져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공동체 생활의 여러 가지 경우들(22-24)

지혜자는 말로 관계를 생성하고 이어갑니다. 나 자신뿐 아니라 상대방에게 만족을 주는 것은 바로 바른 말입니다. 심지어 그것은 도움이 되는 데 그치지 않고 죽고 사는 것까지 결정할 정도로 그 영향력이 큽니다. 사회, 경제적 지위를 막론하고 모두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인정하고 주님 대하듯 말을 한다면 생명의 열매로 배부를 것입니다.

22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 23가난한 자는 간절한 말로 구하여도 부자는 엄한 말로 대답하느니라 24많은 친구를 얻는 자는 해를 당하게 되거니와 어떤 친구는 형제보다 친밀하니라(22-24)

18장의 마지막 세 구절은 공동체 생활의 여러 가지 단면을 묘사합니다.

22절은 가정에 대해 언급하는데, 아내를 얻은 자가 하나님으로부터 은총을 얻은 자임을 말합니다. 고대의 여러 역본들은 ‘좋은 아내를 얻은 자’로 번역하는데, 마소라 사본은 그냥 ‘아내를 얻은 자’로 봅니다. 아내라는 존재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 얻을 수 있다는 말로서, 아내를 대할 때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해야 한다는 적용점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내를 귀중하게 여기고 그 아내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며, 이런 적용점은 아내가 남편을 생각할 때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23절은 가난한 자와 부한 자의 대화를 보여주는데, 가난한 자가 간절한 말로 구하지만, 부자는 거친 말로 대답한다는 현실을 묘사합니다. 이것은 부자의 태도를 변호하는 의미는 아닐 것입니다.

24절은 해를 당할 때 친구가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음을 말하면서, 친구나 형제보다도 더 가깝게 나를 사랑해주는 이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즉, 주변에 사람이 많은 것보다 나를 사랑해줄 수 있는 몇몇 사람을 가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22절에 나오는 아내가 바로 그런 존재일 것이며, 그렇게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은 23절에 나오는 부자와 같이 거칠게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22-24절은 공동체 안에서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해주시는 가까운 사람과 깊이 교제하며 사랑의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반드시 필요함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경솔하게 말을 해 다른 이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합시다. 잘못된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입술에서 올바른 찬송이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잠언(18-01)

 


미련한 사람의 언행에 대한 지혜

잠언 18장 1-12절


성경은 '부의 위험성을 지적하지만 부 자체를 나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결핍이나 빈곤 등을 해결해야 할 일로 말하며 풍성함을 복이라고 말해줍니다. 심지어 생명력이 고갈되어 온전하지 못한 상태를 죽음에 이미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말할 정도입니다. 따라서 재물에 대한 공정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그 가치를 긍정할 뿐 아니라 돈이 가진 막강한 파괴력도 잘 인지하여 우리 시대에 돈이 갖는 전능성과 거룩성을 과감하게 폭로하고 해체하는 것이 하나님을 아는 자들의 몫입니다.

 

18장 전반부는 미련한 자의 삶을 다루는데, 1-3절에서는 미련한 자의 여러 가지 실수들을 묶어서 서술합니다. 4-8절은 미련한 자의 언어사용에 대하여 언급하며, 9-12절은 망대, 성, 성벽, 교만 등의 어휘들을 사용하여 높음이라는 공통된 주제를 다룹니다. 재물과 같은 인간적인 높음을 추구하지 말고 높은 망대가 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할 것을 권고합니다.

 

미련한 자의 생활(1-3)

지혜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그것은 사랑이고 자비이고 배려이고 관용입니다. 그것은 겸손이고 섬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그 지혜의 절정인 이유가 바로 이 모든 것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미련한 자는 이기적입니다. 자기만 생각하고 공동체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사는 지혜를 멸시하며, 명철한 길을 들어도 거절합니다.

1무리에게서 스스로 갈라지는 자는 자기 소욕을 따르는 자라 온갖 참 지혜를 배척하느니라 2미련한 자는 명철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사를 드러내기만 기뻐하느니라 3악한 자가 이를 때에는 멸시도 따라오고 부끄러운 것이 이를 때에는 능욕도 함께 오느니라(1-3)

교만하고 미련한 사람은 생명의 길로 이끄는 지혜의 말씀을 거부하며, 입을 열어 자기 어리석음과 악한 생각을 드러냅니다. 이들의 종착역은 수치요, 멸망이기에 그들의 악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1) 공동체와의 관계(1)

1절은 자신의 욕심 때문에 공동체를 저버리는 이기심에 대해서 다룹니다.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생각하기보다 개인의 이익을 더 중요시할 때, 공동체에 해를 끼치게 된다는 점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미련한 자가 가지고 있는 잘못된 삶의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으며, 따라서 참 지혜를 배척하는 태도일 뿐입니다.

(2) 미련한 자의 마음 관리(2)

1절에서 언급된 미련한 자의 이기적인 모습은 2절에서도 계속됩니다. 미련한 자는 자기 마음을 드러내는 데만 관심이 있고 명철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1-2절의 문맥에서 명철이란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자기 자신의 마음만 돌보려 합니다. 자기 생각, 자신의 관점, 자신의 입장 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의 유익이 공동체 전체의 유익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습니다.

(3) 멸시와 능욕(3)

개역개정에서는 악한 자가 이를 때는 멸시도 따라온다고 번역했는데, 악한 자라고 번역한 ‘라샤’는 ‘악함’이라고 번역하는 것이 문맥상 더 적절합니다. 악함이 오면 멸시도 반드시 따라온다는 것으로, 악하게 행동하면 반드시 멸시를 받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하반절도 유사한데, 부끄러운 일을 행하면 결국 능욕을 당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1-3절의 다양한 언급들을 묶어 함께 생각해보면, 미련한 자는 자기 자신의 이익만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공동체 전체의 유익을 돌보지 않는 자이며, 이런 삶의 태도는 결국 악하고 부끄러운 삶의 방식일 수밖에 없어서 결국은 수치와 능욕을 당하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런 미련한 삶의 방식을 버리고 지혜의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자신의 이익만을 고려하기보다 공동체의 유익을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만 드러내기보다 다른 이들의 마음도 함께 고려하여, 악하고 부끄러운 삶의 태도가 아니라 선하고 덕스러운 삶의 태도를 지향해야 할 것입니다.

 

언어생활의 지혜(4-8)

말에는 인격성과 창조성이 있습니다. 말은 그 사람이며, 무슨 말을 하는지에 따라 생명을 낳기도 하고 사망을 낳기도 합니다. 지혜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서게 하는 자입니다. 지혜자는 하나님의 창조를 행하는 자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자기 욕망의 나라를 만들려고 타인을 희생시키는 자입니다. 파괴적인 언어로 자신에게 찬동하지 않고 무릎 꿇지 않는 자를 망가뜨리는 자입니다.

4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은 깊은 물과 같고 지혜의 샘은 솟구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 5악인을 두둔하는 것과 재판할 때에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이 선하지 아니하니라 6미련한 자의 입술은 다툼을 일으키고 그의 입은 매를 자청하느니라 7미련한 자의 입은 그의 멸망이 되고 그의 입술은 그의 영혼의 그물이 되느니라 8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4-8)

4절부터 8절까지는 언어생활이라는 한 가지 주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17장의 마지막 구절인 27-28절에서는 지혜로운 언어생활을 다루었는데, 이제 18:4-8은 미련한 자의 언어생활이 어떠한지를 집중적으로 서술합니다.

먼저 4절은 지혜자의 언어생활을 언급하면서 바른 기준을 제시합니다. 개역개정은 상반절을 “명철한 사람의 입의 말”이라고 번역했는데, 원어를 직역하면 ‘사람의 입의 말’이라고 해야 옳습니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깊은 물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말을 해야 합니까? 4b절은 그 말들이 지혜의 샘에서 나와야 한다고 명시합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지혜의 샘에서 말을 길어내지 못하고 오히려 잘못된 말을 일삼습니다. 그 예들이 5-8절에 연속하여 등장합니다. 5절에서는 악인을 두둔하거나 재판에서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것을 언급합니다. 악과 선을 구별하지 못하고 오히려 악인의 편을 드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권고입니다. 6절은 미련한 자의 입술이 다툼을 일으킬 뿐 아니라 스스로 해가 되고 만다는 점을 상기시킵니다. 7절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미련한 자의 입은 스스로 멸망이 되고 자기 영혼에 덫이 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5-7절은 미련한 자의 언어사용이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칠 뿐 아니라 결국에는 자신을 망하게 한다는 점을 점층적으로 표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미련한 자는 언어생활을 통해서 자신의 이익을 꾀하려고 하는데, 이는 결국 스스로 해를 끼치는 결과를 낳고 맙니다. 이것은 1-3절에서 미련한 자가 이기심을 따라 살지만 결국은 멸시와 능욕을 당하게 된다고 가르친 내용과 일맥상통합니다.

8절은 이러한 미련한 자의 입술에 대하여 한 가지 가르침을 추가합니다. 다른 사람을 헐뜯는 말은 맛있는 음식 같아서 배의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는 것인데, 다른 이에 대한 험담에 귀가 솔깃하여 그 험담에 동참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실수를 범하기가 매우 쉽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문맥상 8절의 역할은 5-7절에 나온 미련한 자의 언어생활에 빠지기가 얼마나 쉬운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미련하게 말하는 것이 나쁜 결과를 가져올 줄 알면서도, 그 미련한 말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 있음을 현실적으로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8절은 우리가 미련한 자의 언어생활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함을 알려줍니다.

 

올바른 높음과 잘못된 높음(9-12)

지혜로운 사람은 여호와의 지혜와 능력을 의지하기에 그분에게 피하며 그분을 견고한 망대로 여깁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지혜자를 높은 곳에 두시니 늘 안전합니다. 반대로 미련한 자는 하나님보다는 자신을 스스로 높입니다. 그런 교만은 멸망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9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자는 패가하는 자의 형제니라 10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11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 12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9-12)

의인은 하나님을 의지하지만, 악인은 재물을 의지합니다. 악인들은 재물이 안전과 생명을 준다고 믿기에 불법과 속임수, 폭력을 통해서도 재물을 모으고 지키려 하지만, 그는 그 재물로 인해 멸망하게 될 것입니다.

(1) 게으름(9)

19절은 게으름의 주제에 대해서 다룹니다.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사람은 사실상 멸망하는 자의 형제라는 것인데, 이는 게으름이 멸망과 매우 가깝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게으르게 살면 멸망하게 되기 쉽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9절 자체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런 9절의 의미를 지금까지 살펴본 미련한 자의 주제와 연결한다면, 특별히 미련한 자의 언어생활을 다룬 4-8절과 연결시킨다면 어떤 적용이 가능합니까? 자기의 일을 게을리하는 일 중 하나가 지혜로운 말 대신 미련한 말을 일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올바른 말에 힘쓰지 않고 자신의 삶을 게으름에 버려두면, 미련한 말을 하게 되고, 그것은 곧 멸망으로 자신을 이끌게 된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2) 올바른 높음과 잘못된 높음(10-12)

10-12절은 ‘높음’이라는 주제를 다룹니다. 10절에 나타난 ‘망대’는 ‘높은 곳’이라는 말이며, 안전함을 ‘얻는다’라는 말은 높아진다는 뜻입니다. 11절에는 ‘높은 성벽’이 나오며, 12절에는 ‘높아진 마음’이 나타납니다. 이런 연결고리는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것입니까? 먼저 10절을 보면, 10절은 여호와의 이름이 견고한 망대가 된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달려가는 사람이 바로 의인이며, 여호와의 이름으로 피하면 안전하게 된다는 점을 알려줍니다. 여기서 ‘안전하게 된다’라는 말은 ‘높아진다’라는 말입니다. 물론 안전하게 된다는 함의를 지니고 있지만, 기본적인 의미는 그 이름에 피하는 자가 높은 망대에 거하게 되어 그도 높아지게 된다는 데 있습니다. 여호와께 피하면, 여호와께서 주시는 존귀함과 안전을 동시에 누리게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11절은 10절과 반대되는 내용을 보여줍니다. 부자는 여호와의 이름 대신 자신의 재물을 견고한 성으로 여기고 높은 성벽처럼 여깁니다. 그는 여호와께 피하는 의인이 아니므로, 곧 악인입니다. 10절과 11절은 선명한 대조를 우리에게 보여주면서, 재물을 의지하는 악인이 되지 말고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는 지혜로운 자가 될 것을 요청합니다. 12절은 10절과 11절의 내용을 모두 다 포함하고 있습니다. 교만하면 멸망하게 되고 겸손하면 존귀하게 된다고 말하는데, 여기서 ‘교만’이란 원어를 보면 마음이 높은 것입니다. 12절을 문맥으로 해석해보면,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는 자는 겸손한 자여서 존귀하게 되나,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지 않는 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물과 같은 것을 의지하기에 결국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겸손하게 되는 참 지혜가 필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자신의 의지를 말로 표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경솔하게 말해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잘못된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 입술에서 올바른 칭찬과 찬송이 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을 통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수 있도록 말입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잠언(17-02)

 


 의인을 의롭게 하라

잠언 17장 15-28절


지혜는 심오하면서도 누구나 붙잡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롭다고 하는 이들에게는 감추시고 어린아이들에게는 나타내셨습니다.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지혜를 얻는 데 결정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결국, 의와 지혜는 하나님의 관점으로 그분이 좋아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며, 불의와 미련함은 그 반대입니다. 오늘은 인간관계, 말, 그리고 재판의 맥락에서 지혜와 미련함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잠언 17:15-28은 1-14절에 이어서 미련한 자라는 중심 주제를 이어가면서 여러 가지 다양한 주제들을 펼칩니다. 미련한 자의 삶에서 벗어나 지혜로운 자가 되어 공동체와 자기 자신에게 유익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하며, 그렇게 하려고 지혜로운 언어사용을 할 필요가 있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지혜와 인간관계(15-18)

지혜롭지 못한 것은 미숙함과 어리숙함을 의미합니다. 그는 때에 맞게 행동하지 못하고 행동의 강조를 조절하지 못합니다. 사랑해야 할 때와 사랑을 거둘 때, 도와주어야 할 때와 참아야 할 때를 분별하지 못하여, 결국 자기 자신을 어려움에 몰아넣고야 맙니다. 선한 의도가 어리석은 행실을 정당화하지 못합니다.

15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사람은 다 여호와께 미움을 받느니라 16미련한 자는 무지하거늘 손에 값을 가지고 지혜를 사려 함은 어찜인고 17친구는 사랑이 끊어지지 아니하고 형제는 위급한 때를 위하여 났느니라 18지혜 없는 자는 남의 손을 잡고 그의 이웃 앞에서 보증이 되느니라(15-18)

하나님 앞에서는 옳고 그름이 분명합니다. 이 둘을 혼동하거나 반대로 말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일입니다. 의인을 괴롭히거나 악을 대우하는 것도 그러합니다. 비록 완벽할 순 없더라도, 세상의 여러 일에 대해서 내 이익을 떠나, 옳고 그름을 바로 판단하고 바로 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1) 악인과 의인(15)

잠언 17장 후반부는 미련한 자라는 17장 전반부의 주제를 계속해서 이어 나갑니다. 미련한 자는 악인을 의롭다고 판단하고 의인을 악하다고 판단합니다. 이는 의도적인 악함이라기보다는 판단력이 부족한 경우를 말한다고 생각됩니다. 어떤 행동이 의로운 것인지, 어떤 행동이 악한 것인지에 대해서 올바로 판단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물론 17절의 의미를 악을 의롭게 평가하고 의로운 일을 악하게 평가하는 의도적인 거짓말로 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두 가지 해석 중 어떤 것을 취하든, 이러한 잘못된 평가 뒤에는 미련함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은 명확합니다. 미련한 자는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2) 지혜의 가치(16)

“미련한 자는 무지하거늘 손에 값을 가지고 지혜를 사려함은 어찜인고”에서 ‘무지한 자’란 마음을 갖지 못한 자라는 뜻으로 판단력이 부족한 사람입니다. 판단력이 흐린 미련한 자는 지혜의 가치를 가늠하지 못해서 어떤 값을 주고 지혜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혜는 인간의 어떤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오직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며, 이런 사실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 바로 미련한 사람입니다.

(3) 지혜와 인간관계(17-18)

이 두 구절은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지혜 없는 자)를 대비합니다.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공동체의 구성원들에게 사랑과 도움의 손길을 베풉니다. 이웃을 향해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는 것이 지혜요 분별력인 것입니다. 그러나 미련한 자는 이러한 분별력을 갖고 있지 못하여 실수를 범합니다. 그 전형적인 예가 18절에 나오는 보증의 예입니다. 그는 ‘마음이 부족한 자’ 즉 판단력이 부족한 자입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위해 보증을 서며 자신의 물건을 보증품으로 맡깁니다. 그것이 다른 이에게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하지만, 그러한 일은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도 않고 자기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이웃을 돕는 일은 반드시 필요하나, 적절한 분별력을 사용하여 참된 도움이 될 수 있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미련함의 결과(19-22)

참 지혜자는 바른말을 하면서 동시에 때에 맞는 말을 합니다. 바른말도 적절한 때를 맞추지 않으면 효과를 낼 수 없습니다. 때로 해야 할 말을 감추고 참는 것이 더 지혜로울 때가 있습니다. 가령 들을 귀 없는 자를 향하여 말을 삼가는 것이 적절하지 않은 충고로 관계를 어긋나게 하는 것보다 지혜롭습니다.

19다툼을 좋아하는 자는 죄과를 좋아하는 자요 자기 문을 높이는 자는 파괴를 구하는 자니라 20마음이 굽은 자는 복을 얻지 못하고 혀가 패역한 자는 재앙에 빠지느니라 21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 22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19-22)

악인이 악을 드러내는 첫째 방법은 바로 혀입니다. 그들은 악한 생각을 말로 쏟아냅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본성이 있고, 타락한 생각을 말로 나타낼 수 있기에 성경은 말을 아끼는 것이 지식이요, 명철이라 가르칩니다.

(1) 미련함의 결과 1(19-20)

이렇듯 참된 분별력을 갖지 못하게 되면 여러 가지 잘못된 실수를 범하게 됩니다. 그 첫 번째 경우가 다른 사람과 다투거나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높이려 하는 것입니다. 다툼으로써 자신에게 유익을 가져올 수 있다고 생각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 자신을 높임으로 유익을 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것이 바로 미련함이며, 그 결과 죄를 범하게 되고 스스로 멸망할 뿐입니다.

둘째, 이러한 자는 그 마음 즉 판단력이 굽었고 그래서 또한 혀도 굽었기에 어떤 말을 해야 할지를 알지 못하게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분명히 기억해야 할 사실은 마음 곧 판단력이 굽게 되면 그 결과로 혀도 굽게 된다는 점입니다. 내면에 미련한 모습이 깃들게 되면, 그 미련함은 겉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특별히 혀를 잘못 사용하는 실수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언어사용의 문제는 27-28절의 언어생활에 대한 언급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됩니다.

(2) 미련함의 결과 2(21-22)

21절 “미련한 자를 낳는 자는 근심을 당하나니 미련한 자의 아비는 낙이 없느니라”에 의하면, 미련한 자는 자신의 부모에게 근심을 끼치게 됩니다.

21절은 25절과 사실상 같은 내용을 보여줍니다. 부모에게 근심을 끼친다는 것은 미련한 자가 속한 가장 기본적인 공동체인 가정에서 행복과 평안의 결과를 낳지 못하는 매우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됨을 의미합니다.

22절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라는 미련한 자 자신의 내면에 미치는 결과로서 마음이 상하게 되어 육신의 건강까지 해치게 됨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에 반하여, 마음이 즐거운 사람은 큰 유익을 얻게 됩니다. 미련한 사람이 되느냐 아니면 지혜로운 사람이 되느냐에 따라서 육신과 삶의 행복과 안녕이 좌우된다는 사실을 엿볼 수 있습니다.

 

미련함이 공동체에 미치는 결과(23-26)

지혜가 그 빛을 발휘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의로운 자를 외롭다고 하고 불의한 자를 불의하다고 말하기는 너무 쉽고 상식적인 것 같지만 사실은 때로 큰 용기가 필요한 일입니다. 의인을 벌하는 것과 귀인을 정직하다고 때리는 일이 세상에 비일비재합니다. 하지만 지혜자는 하나님께서 공의와 정의를 거스르는 일을 묵과하지 않으실 것을 믿는 자들입니다.

23악인은 사람의 품에서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하느니라 24지혜는 명철한 자 앞에 있거늘 미련한 자는 눈을 땅 끝에 두느니라 25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근심이 되고 그 어미의 고통이 되느니라 26의인을 벌하는 것과 귀인을 정직하다고 때리는 것은 선하지 못하니라(23-26)

미련한 사람은 자기 자신과 가족뿐 아니라 공동체 안에서도 해악을 끼치게 됩니다. 그는 뇌물을 받고 재판을 굽게 합니다. 여기서 재판이란 ‘미쉬파트’라는 단어로, ‘공의’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즉 미련한 자는 공동체 안에서 지켜져야 하는 공의까지 어그러지게 만듭니다. 그 이유를 24절에서 찾을 수 있는데, 미련한 자는 눈을 땅끝에 두기 때문입니다. 미련한 자가 생각하는 바가 현실과 얼마나 동떨어져 있는지를 묘사하는 문구입니다. 미련한 자는 공동체 안에서 이루어져야 할 공의에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미련한 자가 부모에게 근심거리가 된다는 언급이 21절에 이어 다시 한번 언급됩니다. 미련한 자는 의인을 벌하고 정직한 귀인을 때리는데, 이것 역시 공동체 안에서 잘못된 영향을 미치게 되는 현상에 대한 언급입니다. 미련한 자는 결국 공동체에 유익을 끼치기는커녕 여러 해악을 끼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지혜와 말의 관계(27-28)

참 지혜는 바른말을 하는 것뿐 아니라, 때에 맞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침묵’은 단순히 ‘말 없음’이 아니며 그것도 하나의 언어입니다. 말과 말 사이의 멈춤도 언어입니다. 말하지 않음이 거부를 가리킬 수도 있고 비겁한 승인을 의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불의에 대한 단호한 거부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27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 28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27-28)

17장의 마지막 부분인 27-28절은 미련한 자의 주제와 언어생활을 서로 연결합니다. 27절에 “말을 아끼는 자는 지식이 있고 성품이 냉철한 자는 명철하니라”라는 먼저 지혜로운 언어사용의 경우를 언급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말을 삼가서 말을 많이 하지 않으려고 하고, 말이 적기 때문에 안정감 있는 성품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28절 “미련한 자라도 잠잠하면 지혜로운 자로 여겨지고 그의 입술을 닫으면 슬기로운 자로 여겨지느니라”라는 이런 언어생활의 주제에 있어서 반어법적인 언급을 제시합니다. 심지어 미련한 자라도 말을 적게 하면 지혜롭고 슬기로운 사람처럼 생각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이 심지어 미련한 것보다도 더 나쁜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을 암시합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되고 싶다면 말수를 줄이고 신중하게 언어생활을 해야 합니다. 말을 많이 하는 것은 반드시 좋지 않은 결과를 낳게 됩니다.


거짓으로 다툼을 일으키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멸시하기 때문입니다. 새삼스럽게도 참 지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고 신뢰하는 데서 나온다는 진리를 확인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잠언(15-02)


순종하는 자가 얻는 지혜

잠언 15장 19-33절


노르웨이는 6년 연속으로 전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선정된 바 있습니다. ‘2014 세계 번영 지수’에 따르면, 노르웨이는 8개 분야 중 특히 사회구성원 간의 협조나 네트워크, 자선 분야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반대로 우리나라는 이 분야에서 69위에 그치고 말았습니다. 잠언은 다양한 주체들을 통해 사회구성원 간에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지혜를 담고 있습니다.

 

사람의 지혜로움과 우매함의 구분이 ‘말’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부모의 가르침이나 조언자들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고 다른 사람에게 시기적절한 말로 도움을 주는 자가 지혜로운 자의 길을 가게 됩니다. 그러나 교만하여 부모를 경시하고 자신만 믿고 모든 것으로부터 귀를 닫아 버리는 자는 죽음의 길을 걷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우매자의 길과 지혜자의 길(19-24)

지혜자와 우매자를 여러 방면에서 대조합니다. 지혜자가 곧고 평탄한 길을 가는 자라면 미련한 자는 스스로 자기 삶에 장애물을 놓는 사람입니다. 지혜자는 타인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만 미련한 자는 독선적이고 독단적이어서 경영이 무너집니다. 지혜자는 때에 맞는 말을 하며 생명으로 이어지는 길을 걷습니다. 이는 악인의 종착지가 사망인 것과 대조됩니다.

19게으른 자의 길은 가시 울타리 같으나 정직한 자의 길은 대로니라 20지혜로운 아들은 아비를 즐겁게 하여도 미련한 자는 어미를 업신여기느니라 21무지한 자는 미련한 것을 즐겨 하여도 명철한 자는 그 길을 바르게 하느니라 22의논이 없으면 경영이 무너지고 지략이 많으면 경영이 성립하느니라 23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 24지혜로운 자는 위로 향한 생명 길로 말미암음으로 그 아래에 있는 스올을 떠나게 되느니라(19-24)

19-24절 단락은 처음과 마지막에 각각 ‘게으른 자의 길’과 ‘정직한 자의 길’ 그리고 ‘지혜로운 자의 생명길’이 나타나 수미일치(처음과 끝에 같거나 유사한 말을 써서 단락을 나타내고 강조하는 형식)를 이루며 한 단락을 이루고 있습니다.

19절의 금언은 게으른 자의 길을 가시밭으로, 정직한 자의 길을 ‘대로’(15:19)로 묘사합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게으른 자의 대조로 부지런한 자가 아니라 ‘정직한 자’를 들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게으름이 단순히 꾸물거리고 일을 미루는 것만이 아니라 부정직한 말이나 행동을 유발할 수도 있음을 암시적으로 보여줍니다. 이런 게으른 자가 가는 길은 가시 울타리와 같습니다. 이 ‘가시 울타리’는 게으른 자가 걷는 길에서 만나는 문제들, 곧 장애물을 말합니다. 반대로, ‘정직한 자’가 가는 길은 높이 쌓아 올린 길이며 장애물을 찾아볼 수 없는 곧고 평탄한 길입니다.

20-21절은 ‘즐거움’이라는 주제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20절에서 지혜자는 10:1과 같이 부모를 기쁘시게 하는 태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혜로운 아들은 출애굽기 20:12의 계명을 지키며 부모를 공경할 뿐만 아니라 부모가 전하는 훈계를 들으며 그 훈계로부터 지혜를 얻습니다(4:1; 13:1). 반면, 미련한 자는 부모의 가르침과 경책을 싫어할 뿐만 아니라(13:1; 15:5), 더 나아가 부모를 멸시하고 경멸합니다(19:26). 나를 낳고 기르신 부모를 공경하고 기쁘시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이며,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뜻을 따르는 지혜자의 참 모습입니다.

21절은 미련한 자의 헛된 즐거움을 20절의 지혜자의 참된 즐거움과 대조하여 교훈하는 금언입니다. 21절의 ‘미련한 것’은 문자적으로 ‘마음이 미련한 것’을 말합니다. 무지한 자가 스스로의 마음의 어리석음과 미련함을 따라 행악하기를 즐거워하며 악인의 길을 걷는다는 의미입니다(10:23; 15:9).

22-23절은 조언에 대한 금언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22절에서 미련한 자는 자기 계획이나 생각을 다른 이들과 의논하지 않는 자로 소개됩니다. 그는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겨 자신의 미련함을 따라 혼자 결정하기 때문에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자는 11:14과 같이 친밀하게 조언하는 자들을 곁에 많이 두고 신중하게 판단하여 행하기 때문에 자기가 뜻한 바를 이룹니다. 이처럼 일을 계획하고 진행함에 있어서 나를 맹신하는 교만에 빠지지 말고, 주위의 조언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뜻하는 바를 이루는 지혜입니다(13:10). 23절에서는 특히 적절한 때에 건네는 올바른 조언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24절에는 19절에 나타난 ‘길’의 주제가 다시 반복되어 나타나 서로 연결됩니다. 여기서도 선택할 수 있는 두 길을 제시합니다. ‘위로 향하는 길’과 ‘아래로 향하는 길’은 각각 ‘생명의 길’과 ‘스올(죽음)로 가는 길’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이 가는 길은 19절에 언급되었듯이 높이 쌓여 걸릴 것이 없는 곧게 뻗어 있는 길로서 생명을 주는 길입니다. 그러나 악인의 길이 지향하는 곳과 종착하는 곳은 죽음입니다.

 

여호와의 미워하시는 것과 기뻐하시는 것(25-29)

여호와는 자신을 경외하는 지혜자를 기뻐하시고 자신을 멸시하는 미련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교만한 자와 악인의 잔꾀를 미워하셔서 그들의 집을 허십니다. 그들이 뇌물로 얻은 불의한 이익이 도리어 그들의 집을 해롭게 하게 하십니다. 악인은 멀리하시지만, 의인의 기도는 들으십니다. 의인이 숙고하여 내놓은 선하고 정결한 말을 기뻐하십니다.

25여호와는 교만한 자의 집을 허시며 과부의 지계를 정하시느니라 26악한 꾀는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 선한 말은 정결하니라 27이익을 탐하는 자는 자기 집을 해롭게 하나 뇌물을 싫어하는 자는 살게 되느니라 28의인의 마음은 대답할 말을 깊이 생각하여도 악인의 입은 악을 쏟느니라 29여호와는 악인을 멀리 하시고 의인의 기도를 들으시느니라(25-29)

15장의 마지막 단락인 25-33절에는 ‘여호와’란 명칭이 다른 곳보다 자주 나타나면서(25, 26, 29, 33), 10-15장의 주제들을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즉, 지혜로운 아들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여호와의 훈계를 따르는 자라고 요약됩니다. 특히 25-29절은 말에 대한 주제가 두드러져, ‘의인의 선한 말’(26), ‘대답할 말’(28), ‘기도’(29)와 함께 악인의 입으로 쏟는 ‘악한 말’(28)이 나타납니다.

25절의 금언은 여호와가 교만한 자를 미워하고 그 집을 허무신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집’은 장소적 개념만이 아니라 가족 집안의 의미를 포함하고 모든 재물도 포함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교만한 자가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기며 자신의 것을 쌓지만 여호와는 그의 모든 것을 무너뜨리심으로 그를 심판하심을 명백히 설명합니다. 반면, 가난한 과부는 의지할 곳이 없기에 겸손히 여호와만 의지하고 그의 도움을 받는 자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만을 의지하는 자는 하나님이 직접 그들의 삶에 관여하시고 그들을 돌보십니다.

26절에서 하나님은 눈에 보이는 악인의 집을 무너뜨리실 뿐만 아니라(25) 눈에 보이지 않는 악한 행위의 시발점이 되는 악한 생각과 계획도 몹시 싫어하심을 나타냅니다. 그러나 ‘꿀송이 같이 달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는’(16:24) 의인의 선한 말은 여호와께서 귀히 여기십니다.

27절은 경제생활에 관한 금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합당하지 않은 이익에 마음을 빼앗겨 다른 이들을 해하며 이익을 챙기는 자를 싫어하십니다. 그와 같은 불의한 재물은 결국 그 사람의 집안을 해하는 것이 됩니다. 그러나 불의의 재물을 싫어하는 지혜로운 자는 생명을 소유하게 됩니다. 결국, 의인의 집은 든든히 세워지며, 여호와가 그 집을 풍성케 하십니다(12:7; 14:1; 14:11; 15:6).

28-29절에는 잠언의 주요 단어인 ‘의인’과 ‘악인’이 교차 대구를 이루며 언어생활에 관한 금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28절은 2절과 유사한 내용으로서 의인은 사려 깊은 말을 하지만, 악인은 거침없이 악을 내뱉어 사람들에게 해를 끼친다고 설명합니다. 29절에서는 각각 의인과 하나님, 악인과 하나님의 관계를 묘사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악을 행하는 자와는 관계를 단절하시나 의인과는 가까이하시고 그의 기도에 귀 기울이십니다.

 

훈계를 따르는 자와 싫어하는 자(30-33)

지혜를 추구하는 삶은 삶의 모든 영역에 영향을 미치며, 동시에 우리 전 인격에 영향을 미칩니다. 지혜를 추구하면 마음에 선한 질서가 작동하여 몸과 마음이 건강해집니다. 마음의 즐거움으로 얼굴이 빛나고, 뼈가 든든해집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마음과 겸손한 마음은 우리를 존귀한 자로 사람과 하나님 앞에 서게 합니다. 이는 모든 관계에 있어서도 건강해진다는 의미 아니겠습니까?

30눈이 밝은 것은 마음을 기쁘게 하고 좋은 기별은 뼈를 윤택하게 하느니라 31생명의 경계를 듣는 귀는 지혜로운 자 가운데에 있느니라 32훈계 받기를 싫어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경히 여김이라 견책을 달게 받는 자는 지식을 얻느니라 33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지혜의 훈계라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30-33)

30-33절에는 ‘경계’, ‘훈계’, ‘견책’이라는 단어가 공통적으로 나와 서로 연결되며, 훈계를 따르는 자와 훈계를 싫어하는 자를 대조합니다.

30절의 금언은 지혜가 훈계를 따르는 자의 눈을 밝게 하고 마음을 즐겁게 할 뿐만 아니라 육체에도 활력을 주고 강건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31절에서는 지혜자를 ‘생명을 주는 교훈을 듣는 귀를 가진 자’로 설명하는데 이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지혜 말씀을 듣는다는 것이 귀로만 듣고 끝나는 행위가 아니라 삶으로 응답하는 순종이 있어야 함을 확실히 설명해줍니다.

이와 반대로, 훈계를 받기 싫어하는 자는 32절에서 자신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자라고 소개합니다. 그는 생명을 버리고 죽음의 길을 선택한 미련한 자입니다.

33절의 금언은 여호와 경외가 지혜의 훈계라고 선언합니다. 잠언의 서문(1:2)에서부터 나온 단어인 ‘훈계’는 무엇보다 지혜와 밀접한 관계가 있고, 지혜의 대치어로 나오며, 지혜를 얻을 수 있는 지름길로 소개되었습니다. 사람들은 대부분 훈계 듣는 일을 기뻐하지 않지만, 잠언에서는 계속적으로 그 훈계를 소홀히 여기지 말고 거절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그 이유는 첫째, 훈계를 들으면 지혜로운 분별력과 통찰력을 얻고 그에 따른 유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훈계는 여호와 경외를 그 밑바탕에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33절에서도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바로 지혜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훈계의 내용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개인적이고 친밀한 관계를 통해 하나님을 아는 것(9:10)이며 나 자신의 판단을 신뢰하지 않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3:5-7)을 의미합니다.


자기 입장과 맥란만 중요시하는 사회는 건강하지 않습니다. 고르반이나 모르쇠로 반응하지 말고 굳게 드리운 휘장을 찢고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적극적으로 다가갈 필요가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단절을 예방하는 방법은 많습니다. 각박한 일상에서 무엇을 통해 활력을 돋우겠습니까?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잠언(16-02)


 공평과 정의를 구하는 지혜

잠언 16장 16-33절


하나님께 부와 권세가 아닌 지혜를 구했던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허락하셨습니다. 지도자에게 지혜란 공평과 정의, 자비와 은혜로 백성을 다스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고, 하나님의 성품이며, 하나님께서 당신 백성들에게 주시려는 복입니다.

 

누가 지혜로운 자이며 누가 어리석은 자입니까? 지혜로운 자는 기꺼이 낮아져 가난한 자들과 함께하며 물질보다는 하나님 앞에서의 의로운 삶을 택하고 입으로는 선한 지식을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자입니다. 반면, 어리석은 자는 이웃을 입과 행동으로 이간질하고 분쟁을 일으키는 자며 궁극적으로 이웃을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자입니다.

 

지혜자와 우매자의 대조(16-33)

지혜는 여호와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한다는 것은 여호와를 의지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씀에서 나오는 지혜로운 말은 생명의 샘이 되어 활력과 생기를 주고 즐거움과 기쁨을 주며,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만들어줍니다. 즉 관계를 회복시키고 사람을 살리는 것이 지혜의 말입니다. 반대로 어리석은 말은 관계를 파괴하고 생명력을 읽게 합니다.

16지혜를 얻는 것이 금을 얻는 것보다 얼마나 나은고 명철을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더욱 나으니라 17악을 떠나는 것은 정직한 사람의 대로이니 자기의 길을 지키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보전하느니라 18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19겸손한 자와 함께 하여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 20삼가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좋은 것을 얻나니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21마음이 지혜로운 자는 명철하다 일컬음을 받고 입이 선한 자는 남의 학식을 더하게 하느니라 22명철한 자에게는 그 명철이 생명의 샘이 되거니와 미련한 자에게는 그 미련한 것이 징계가 되느니라 23지혜로운 자의 마음은 그의 입을 슬기롭게 하고 또 그의 입술에 지식을 더하느니라 24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에 달고 뼈에 양약이 되느니라 25어떤 길은 사람이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26고되게 일하는 자는 식욕으로 말미암아 애쓰나니 이는 그의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니라 27불량한 자는 악을 꾀하나니 그 입술에는 맹렬한 불 같은 것이 있느니라 28패역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쟁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29강포한 사람은 그 이웃을 꾀어 좋지 아니한 길로 인도하느니라 30눈짓을 하는 자는 패역한 일을 도모하며 입술을 닫는 자는 악한 일을 이루느니라 31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공의로운 길에서 얻으리라 32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33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16-33)

교만은 죄의 핵심입니다. 교만은 그저 자기가 남보다 낫다 생각하며 사람들 앞에 우쭐대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추악함과 무익함을 깨닫지 못한 상태를 가리킵니다.

(1) 지혜로운 자와 교만한 자(16-19)

먼저, 16-19절의 금언들은 지혜로운 자와 교만한 자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16절은 지혜와 명철의 가치가 금과 은보다 더 귀한 것이고, 정직한 자의 길은 악을 떠나는 것이며, 이런 길을 지키는 것이 결국은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악을 떠나 지혜를 따라 정직하고 바른길을 가는 것이 바로 생명을 지키는 일이기 때문에(17) 금이나 은보다 귀한 것입니다.

18절 대조적으로 교만한 자나 거만한 마음은 넘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교만이 패망의 선봉’이란 표현은 15:33의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18절이 교만 즉, 높아짐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면 19절은 18절과는 대조적으로 낮아짐 즉, 겸손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19절에서 겸손한 자는 기본적으로 ‘가난한 자’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겸손한 자와 마음을 낮춘다는 것은 단순히 마음으로 동조하는 정도가 아니라 가난한 자들과 함께 가난한 삶을 살아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와 대조되는 삶은 교만한 자들과 탈취물을 나누는 삶으로 비유할 수 있습니다. 탈취물이란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쪽이 얻는 노획물입니다. 지혜자는 교만한 마음을 가진 자들과 함께 폭력적인 것으로 얻은 부유한 삶을 사는 것보다는 가난을 택하겠다고 말합니다.

(2) 지혜로운 자의 말(20-24)

20-24절에는 언어생활에 대한 교훈이 반복되며 ‘말씀’과 ‘말’이라는 단어가 절마다 나타납니다.

먼저, 20절은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말씀에 주의하는 자는 구체적으로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에 귀 기울이며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자는 하나님으로부터 행복을 누리게 됩니다. 잠언에서 언급된 축복이나 행복은 일반적인 복이 아니라 항상 복의 근원 되신 하나님이 제공하시는 행복과 축복을 의미합니다.

21절은 지혜로운 자가 사회적으로 누리는 특권을 설명합니다. 마음이 지혜롭다는 것은 단순히 지식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20절에서 언급한 여호와를 의지함으로써 분별력을 지니게 된 지혜로운 자를 의미합니다. 이런 사람은 명철하다는 칭송을 받게 됩니다. 또한 ‘학식’은 기본적으로 가르침이란 뜻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설득력 있는 말로 사람들을 지혜의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22절은 명철과 어리석음을 대조합니다. 명철은 그것을 가진 사람에게 생명의 샘이 되어 그에게 기쁨과 생기를 주는 반면, 어리석음은 그의 주인을 어리석은 길로 인도하므로 평탄치 못한 인생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23-24절은 지혜로운 자의 말의 특징을 설명합니다. 일단 지혜로운 마음은 그의 입에 지혜가 있고 그의 입술에 지식을 더합니다. 23절의 그의 입술에 지식을 더한다는 표현은 21절의 ‘남의 학식을 더하게 한다’와 동일한 표현으로서 하나님이 주신 지혜를 가진 사람은 말을 통해서도 그의 지혜로움이 계속해서 드러나고 그 지혜로 자신과 다른 이에게 유익을 가져다준다고 설명합니다. 24절은 이런 지혜로운 자들의 말이 갖는 실제적인 영향력을 묘사합니다. ‘선한 말’ 즉, 즐겁고 기쁨을 주는 말은 꿀송이처럼 달콤하여 우리 마음에 즐거움과 행복을 주어 마음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뼈’로 상징된 육체도 치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말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잠언의 교훈에는 말에 대한 교훈이 많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공동체를 살리고 사람들을 살리고 힘을 주는 말을 하는 사람입니다.

(3) 어리석은 자의 말(25-30)

25-30절에는 ‘사람’이란 단어가 매 절마다 반복되고 있는데, 특히 ‘불량한 사람’, ‘패역한 사람’, ‘말쟁이’, ‘강포한 사람’, ‘눈짓을 하는 사람’, ‘입술을 닫는 자’ 등 여러 종류의 악한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25절은 14:12과 동일한 표현으로서, 선한 사람인지 악한 사람인지는 겉모습만 보아서는 알 수 없음을 드러냅니다. 진정한 실체는 알 수 없으며, 사람의 말과 행동을 주의 깊게 살펴 지혜로운 사람인지 어리석은 사람인지를 판단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인간의 한계입니다. 여기서는 사망의 길로 가는 사람을 예로 들어 26절부터 악한 사람들에 대한 교훈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26절의 ‘노력하는 자는 식욕으로 인하여 애쓰나니’라는 문장은 인간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인간이 자신의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반면, 이는 ‘그 입이 자기를 독촉함이라’라는 문장은 열심히 일하는 모습을 먹는 문제로 한정하고 ‘독촉하다’라는 말을 사용하여 식욕이 인간의 노동을 더욱 힘들고 고단하게 만들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식욕은 인간이 갖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으로 모든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단어입니다. 더 가지려는 인간의 욕망이 삶을 더 힘들고 피곤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탐하는 마음을 갖게 합니다.

27-30절까지는 다양한 악인이 등장합니다. 첫째, 불량한 사람으로서 이들은 다른 사람을 해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준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의 입술은 맹렬하게 타는 불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불량자는 말과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죽이고 해를 가하는 무섭고 포악한 사람입니다. 이런 자들은 1:11-14에 나오는 강도의 무리에 서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은 입술로 지식을 더하는 지혜로운 사람과 대조가 됩니다.

28절에서는 여기저기 다툼을 일으키고 다니는 패역한 자가 등장합니다. 패역하다는 말은 완고하다는 뜻으로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하고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주 다른 사람과 분쟁을 일으킵니다. 또한, 말쟁이는 앞에서 정정당당하게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뒤에서 험담이나 중상모략을 하거나 여기저기 다니며 소문을 퍼트리는 사람입니다. 이런 말쟁이는 가장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깨뜨리며 공동체를 파괴합니다. 29절에서는 강포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이 사람은 폭력배로서 사람들을 유혹하여 좋지 않은 길로 인도합니다.

30절은 위에서 나온 인물보다 더 위험한 사람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악한 행위가 겉으로는 잘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을 감거나 눈짓을 하는 것은 은밀히 악한 일을 꾸미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며 입술을 닫는다는 것은 자신의 악한 일입니다. 이루어질 때까지 말을 하지 않고 은밀하게 일을 진행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음모를 꾸미는 사람이나 모사들이 주로 이런 식으로 자기들의 악한 일을 도모합니다.

(4) 여러 가지 교훈들(31-33)

31-33절은 앞의 단락들과 특별하게 연결되는 것 같지는 않지만 31-32절은 ‘지혜’라는 주제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31절의 백발은 장수를 의미하는데 장수는 지혜롭고 공의로운 길을 산 사람이 얻는 상급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백발을 영화의 면류관이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또한, 32절에서는 지혜자 중에서 특히 분노를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얻는 유익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32절은 전형적인 비교 잠언으로 분노를 참는 것과 용사를 비교합니다.

33절은 인간이 계획하지만, 그것을 이루시는 이는 여호와라는 사실을 언급한 1절과 9절의 주제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제비뽑는 행위는 인간의 일이지만 제비뽑기의 결과는 온전히 여호와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성취하신다는 것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것은 나와 나의 삶의 모든 부분이 하나님의 손에 있음을 인식하여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따라 지혜롭게 살 것인지 아니면 어리석은 자로 살 것인지를 청중이나 독자에게 묻고 지혜롭게 살 것을 촉구하기 위함입니다.


지혜는 세상 속에서 약삭빠르게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일과 거리가 멉니다. 오히려 성경의 지혜는 약자들을 배려하고, 세상 모든 사람들의 유익이 곧 나의 유익임을 인식하며, 모든 생명들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태도입니다. 그럴 때 우리 공동체가 풍요로워진다는 믿음이 지혜입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728x90
반응형

잠언(16-0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법

잠언 16장 1-15절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1-9)과 왕의 주권(10-15)이라는 두 가지 주제와 대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권위 아래 내 권한을 두는 일, 하나님의 공평 위에 왕의 권위를 세우는 일, 모두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할 때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답게, 지도자를 지도자답게 만드는 중요한 원칙을 배워봅니다.

 

사람이 계획을 세우고 어떤 일을 할지라도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각자의 인생에 여호와의 개입을 기대하고 의지하며 살아야 합니다. 한편, 세상에 있는 왕은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공의를 행할 의무를 가지고 있으며 공의가 바로 그의 왕좌를 지지하는 기반입니다. 지혜자는 이런 왕들을 잘 보좌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교훈(1-9)

누구든 인생의 계획을 세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생각한 대로 바라는 대로 계획을 세운 대로 되는 사람도 없고 그렇게 기대하는 것은 어리석은 태도입니다. 우리는 그걸 이뤄낼 만큼의 능력이 없고 수많은 변수들이 기다리고 있는 것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최대 변수이시며 또 변치 않는 상수이심을 인정하는 것이 진정한 지혜입니다.

1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 2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깨끗하여도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 3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네가 경영하는 것이 이루어지리라 4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 5무릇 마음이 교만한 자를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나니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하지 못하리라 6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말미암아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7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8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 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1-9)

젊은이들에게 가정과 왕궁에서 갖추어야 할 적절한 행동을 가르칩니다. 16장에서 특별히 강조하는 주제는 모든 행위의 동기를 감찰하시는 하나님과 모든 일을 주관하고 이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것입니다.

(1) 인간의 계획과 여호와의 성취(1-3)

잠언 16:1-9의 단락은 8절을 제외한 모든 절에서 여호와가 등장하여 단락을 구성하고 있으며, 여기서는 여호와의 역할에 대해서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여호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1-3절은 전체적으로 인간과 여호와를 대조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경영’은 인간이 일하기 위해 계획을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말의 응답’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는데, 첫째는 단어의 의미를 그대로 살려서 말을 적절하게 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마음에 순서를 정하고 생각을 하지만 경우에 합당한 지혜로운 말은 여호와께서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15:23의 ‘입의 대답’과 연결됩니다. 둘째 해석은 전통적인 해석으로서 입의 대답을 말에만 한정하지 않고 모든 사건으로 확대하여 모든 일의 성취는 여호와께로부터 나온다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 해석은 16:3과 연결되어 동일한 주제를 반복하여 강조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말로 해석하든지 혹은 일의 성취로 해석하든지 간에 인간의 입을 주관하시고 인간의 삶을 주관하시는 이는 여호와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고 꼭 기억해야 할 사항입니다.

2절은 사람의 행위와 심령의 대조로서, 인간의 눈으로 볼 때는 어떤 사람의 모든 행위가 죄나 악한 의도가 없는 순수하고 깨끗한 것으로 보이지만 하나님은 행위가 아닌 마음의 상태를 보시기 때문에 그가 악한 의도로 일을 하였는지 혹은 선한 의도로 일을 하였는지 분명하게 평가하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시야는 한정되기 때문에 잘못 판단하고 자신과 남을 속일 수 있지만, 결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3절은 하나님과 인간의 상호성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행사’ 즉, 우리의 일을 여호와께 맡긴다는 것은 여호와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 분별하며 일을 계획하고 준비한다는 의미이지 내가 계획을 모두 세운 후 하나님께서 알아서 하시라고 맡기는 태도는 아닙니다. 이렇게 계획 단계부터 하나님의 뜻을 따라 계획을 세우고 일을 해나가면 하나님께서 인간이 할 수 없는 부분들과 결과를 책임져주신다는 뜻입니다.

(2) 여호와와 악인(4-8)

4-8절에서는 여호와와 악인의 관계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먼저, 4절은 악인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설명합니다.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다’라고 포괄적인 범주를 말한 후에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다’라고 언급함으로써, 말하고 싶은 대상을 꼭 집어서 말하는 기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절에서의 핵심 주제는 악인의 존재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온 세상 만물을 다스리는 하나님께서 왜 악인을 만드셨으며 악인을 그냥 두고 보시는지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이에 대해 잠언은 모든 만물이 그의 행위에 상응하게 만들어졌기 때문에 악인들에게는 악한 날 즉, 심판의 날이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5절은 악한 자들의 예로서 교만한 자를 들어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매우 가증스럽게 생각하시기 때문에 이들을 반드시 벌하실 것입니다. 벌을 피하기 위해 인간들끼리 아무리 연대를 하고 함을 키워도 전능한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벌을 피할 수는 없습니다.

6절은 하나님의 벌을 피하는 방법을 제시하는데, 인간의 연대가 아니라 인자와 진리를 행하며 여호와를 경외함으로써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고 악에서 떠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인자와 진리는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이며, 이같이 인자와 진리를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7절은 6절의 행위의 결과로 이렇게 인자와 진리를 행하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며 원수라도 화목하게 만들어주신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여호와를 기쁘시게 한다는 표현은 5절의 ‘여호와의 미워함이라’와 대조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악인이 살 길은 오직 여호와께 나오는 것이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8절은 7절과 연결하여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는 행동을 기술합니다. 적지만 공의로운 소득이 정의롭지 못한 많은 소득보다 낫다는 것입니다. 공의는 하나님의 성품 중 하나로서, 공의로운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인생을 의미합니다. 이런 삶은 많은 소득보다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하는 복된 삶입니다.

(3) 여호와와 인간의 행위(9)

19절은 1절과 3절의 내용을 반복함으로써 1~9절까지의 단락을 마감합니다. 결국, 인간의 모든 삶의 길은 여호와의 손에 있으므로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삶이라는 것이 이 단락의 주제입니다.

 

왕에 대한 교훈들(10-15)

한 분 궁극적인 왕이신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왕을 세우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공의와 공평으로, 인자와 진리로 다스려야 합니다. 그 왕의 백성들 역시 하나님께 하듯이 의롭고 정직한 말로 인간 왕을 기쁘게 해야 합니다.

10하나님의 말씀이 왕의 입술에 있은즉 재판할 때에 그의 입이 그르치지 아니하리라 11공평한 저울과 접시 저울은 여호와의 것이요 주머니 속의 저울추도 다 그가 지으신 것이니라 12악을 행하는 것은 왕들이 미워할 바니 이는 그 보좌가 공의로 말미암아 굳게 섬이니라 13의로운 입술은 왕들이 기뻐하는 것이요 정직하게 말하는 자는 그들의 사랑을 입느니라 14왕의 진노는 죽음의 사자들과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것을 쉬게 하리라 15왕의 희색은 생명을 뜻하나니 그의 은택이 늦은 비를 내리는 구름과 같으니라(10-15)

국가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통치 기관으로, 정의와 고평을 실행하며 강자의 힘을 제어하고 약자를 보호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본적으로 법과 질서를 성실히 지킬 뿐 아니라, 국가기관과 책임자들이 법을 만들고 집행할 때, 하나님의 공의에 맞는지 잘 살펴 여야 합니다.

(1) 왕의 공의(10-12)

10-15절은 왕들에 대한 교훈을 다루는 부분으로 온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이 이 땅에 세우신 왕들은 어떤 존재이며 어떻게 백성을 다스려야 하는지, 우리는 백성으로서 그 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10절의 금언은 왕을 하나님의 신탁을 받아 재판을 존재로 그리고 있습니다. 왕은 하나님의 대언자로서 재판 시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재판을 하기 때문에 재판장으로서 성실하고 올바르게 재판해야 할 의무를 지녔습니다. 그리고 이런 하나님의 정의는 일상생활 속에서도 나타나야 합니다.

11절의 공평한 저울과 접시저울, 저울추는 상거래를 할 때 사용되는 측량 단위들로서 물건을 팔고 사는 일상적인 삶 속에서도 하나님의 공의가 지켜져야 함을 드러냅니다.

12절에서 ‘왕들이 혐오하는 것’(‘미워할 바’로 번역됨)은 5절의 ‘여호와께서 혐오하는 것’(‘미워하시나니’로 번역됨)과 같은 단어와 형식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왕은 하나님이 끔찍이 미워하시는 악을 멀리해야 하고 공의와 공평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왕의 보좌가 든든하게 설 수 있습니다. 왕의 자리를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여호와의 공의를 실행하지 않는 왕을 기뻐하지 않으시며 그의 날을 단축하십니다. 결론적으로, 공의의 하나님이 백성을 다스릴 왕에게 요구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질은 바로 공의입니다.

(2) 왕의 진노와 기뻐하는 것(13-15)

13-15절은 왕 앞에 섰을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는 것이 지혜로운지에 대해서 설명합니다. 여기서 나타나는 왕은 공의를 지키는 선한 왕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이 왕은 의로운 말과 정직한 말을 하는 사람을 기뻐합니다.

14절은 왕의 다른 면모를 이야기하는데, 왕이 살리고 죽일 수 있는 권리와 주고 빼앗을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으며, 그가 화를 내면 사람의 생명도 빼앗을 수 있다고 진술합니다. 하지만 왕이 화가 난 경우에도 지혜로운 사람은 그의 노를 쉬게 할 수 있으며 생명을 살릴 수 있습니다. 왕의 희색은 왕의 얼굴이 밝아졌다는 의미로 지혜로운 말을 듣고 기분이 풀렸다는 의미입니다. 왕의 기분이 풀리면 죽이려고 했던 사람도 살릴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기분이 좋아진 왕은 은혜를 베풀게 되는데, 이는 봄비를 품은 구름으로 비유됩니다. 봄비는 곡식을 여물게 하는 소중한 비로 왕의 은혜가 백성들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왕의 말은 권위가 있기 때문에 지혜자들은 왕을 지혜로운 말로 잘 보필해야 하며 왕은 이런 지혜로운 말을 잘 경청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개인도 나라도 건실하게 세워지려면 지켜져야 할 원칙이 있습니다. 내 힘으로 이루려는 계획, 그리고 공평과 정의를 배제한 권력은 언제 전복될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관념이 아닌 삶으로 인정하시길 바랍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