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09-02)
유다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예레미야 9장 7-16절
인간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자비의 아버지십니다. 하나님은 심판을 통해 인간이 죄악에서 돌이켜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심판으로 환난당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심판에 대해 미리 깨달아 파멸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경고하시는 죄악의 결과는 무엇일까요? 거짓과 사기가 하나님 백성의 본질이 됐습니다. 서로 속이고 악을 행하며 공동체의 모습을 완전히 상실하였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인내를 시험하듯 그분께서 벌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심판선언(7-9)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한한 자원을 주십니다. 그분 안에는 모든 풍성한 은혜가 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떠난 사람들은 그 무한한 자원에서 떠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징계를 통해 거룩한 삶을 회복하십니다. 당장은 징계를 기쁘게 받아들일 수 없겠지만, 그것 또한 우리를 거룩하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사랑의 또 다른 표현입니다.
7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내가 내 딸 백성을 어떻게 처치할꼬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 8그들의 혀는 죽이는 화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마음으로는 해를 꾸미는도다 9내가 이 일들로 말미암아 그들에게 벌하지 아니하겠으며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 여호와의 말씀이니라(7-9)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의 타락한 삶을 마냥 두고 보지는 않으십니다. 죄인들은 자기 삶을 방치할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삶을 언젠가 끝장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유다 백성에게 징계의 채찍을 드셨습니다.
(1) 징계의 선언(7)
마치 악을 행하기 위해 사는 것처럼 악행이 편만했습니다. 거짓과 속임수가 사회 규범인 양 일상적으로 행해졌습니다. 하나님 백성의 공동체가 살기 위해 서로를 죽이는 들짐승의 세계처럼 됐습니다.
(2) 고발(8)
“그들의 혀는 죽이는 화살이라 거짓을 말하며 입으로는 그 이웃에게 평화를 말하나 마음으로는 해를 꾸미는도다”(8), 팽팽하게 당겨진 시위를 떠난 화살이 상대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듯이 거짓을 말하는 자들의 혀가 치명적인 상처를 입힙니다. 겉으로는 친근하게 평화를 말하지만, 마음속으로는 이웃에게 해를 끼칠 악한 계획을 세웁니다. 다정하게 인사하며 상대를 함정에 빠뜨립니다. 웃는 얼굴의 거짓 혀는 ‘죽이는 화살’과 같이 치명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혹감과 분노 가운데 행동에 나서십니다. 징계를 통해 죄악을 제거하기로 결심하십니다. ‘그들을 녹이고 연단하리라’(7)는 심판의 목적이 아직은 멸망이 아니라 정화에 있음을 시사합니다. 광석을 용광로에 집어넣고 불을 가해 순도 높은 금속을 얻는 것처럼, 혀를 치명적인 화살로 악용하는 자들을 녹이고 연단해 다시 깨끗하게 하십니다.
(3) 징계의 선언(9)
하지만 9절의 ‘내 마음이 이런 나라에 보복하지 않겠느냐’는 제련이 성공적이지 않을 것을 암시합니다. 8절의 고발을 중심으로 ‘내 딸 백성’이 ‘이런 나라’로 바뀝니다. 전자가 징계를 피할 수 없게 된 유다에 대한 안타까움과 연민을 담고 있다면, 후자는 거리감과 단호함을 보여줍니다. 9절의 ‘벌하다’는 동사 ‘파카드’의 번역으로 ‘잘못에 관하여 책임을 묻다’를 의미합니다. ‘보복하다’는 동사 ‘나캄’의 번역으로, 악한 자들을 보복하시고 세상을 다시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정의를 뜻합니다.
멸망의 탄식(10-11)
인간의 죄악을 심판하시는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자비의 아버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통해 인간이 죄악에서 돌이켜 다시금 하나님의 은혜 안에 머물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분은 우리가 심판으로 환난당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심판에 대해 미리 깨달아 파멸과 고통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다.
10내가 산들을 위하여 울며 부르짖으며 광야 목장을 위하여 슬퍼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불에 탔으므로 지나는 자가 없으며 거기서 가축의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며 공중의 새도 짐승도 다 도망하여 없어졌음이라 11내가 예루살렘을 무더기로 만들며 승냥이 굴이 되게 하겠고 유다의 성읍들을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게 하리라(10-11)
우리 삶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풍요로움이 황폐함으로 변합니다. 무성하고 풍요로운 곳이 모두 황무지가 되고, 사람으로 가득 찼던 곳이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게 됩니다. 가축도 공중의 새도 들의 짐승도 사라진 사막과 같은 곳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1) 탄식(10)
화자 ‘나’의 탄식(10)과 심판선언(11)으로 이뤄진 단락입니다. 11절의 ‘나’가 하나님임은 분명한데, 10절의 ‘나’는 불분명합니다. 통일성 있게 하나님의 일인칭으로 읽을 수도 있지만, 10절의 내용과 표현은 예언자의 탄식에 좀 더 어울립니다. 10절은 하나님께서 선포한 멸망의 심판(10)이 성취될 것을 미리 내다볼 수 있었던 예언자의 반응입니다. 문맥 안에서 앞 단락과의 연결은 희미합니다. 혀를 죽음의 화살로 사용하는 자들에게 선포된 여호와의 보복(7-9)은 일종의 정화의 심판인데, 11절의 심판선포와 10절의 탄식은 완전한 멸망을 지향합니다. 심판의 대상을 전자는 감정이 깃들인 “내 딸 백성”(7) 또는 “이런 나라”(9)로 부르는데, 후자는 중립적인 표현인 “예루살렘”과 “유다의 성읍들”로 말합니다. 반면에 12절과의 연결은 비교적 뚜렷합니다. 특히 예언자의 질문(12b)과 예언자의 탄식(10)은 일부 표현까지도 공유합니다. ‘광야’와 ‘지나가는 자가 없다’와 ‘불에 타다’는 양쪽에 다 나옵니다. 또 멸망한 ‘이 땅’은 유다 산지와 광야를 포함하기에 10절의 ‘산들’과 ‘광야 목장’과 일치합니다. 요약하자면, 현재의 위치에서 10-11절은 예언자가 멸망의 원인에 관해 질문하는 12절의 배경 역할을 담당합니다.
(2) 심판의 선언(11)
죽은 자를 위해 애곡하듯이 예언자가 예루살렘과 유다의 멸망을 애통해하며 애가를 부릅니다. 한때 사람들이 가축을 키웠던 푸른 산들과 광야의 목초지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사람도 없고 가축의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10). 하늘의 새부터 땅의 짐승에 이르기까지 모두 도망쳐버렸습니다. 산들과 광야의 목초지가 들짐승도 살아갈 수 없을 정도로 초토화됐습니다. 예언자가 산들과 광야 목초지를 두고 울부짖으며 애가를 부르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완전한 멸망을 결정하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루살렘을 무더기로 만들며 승냥이 굴이 되게 하겠고 유다의 성읍들을 황폐하게 하여 주민이 없게 하리라”(11). 하나님의 심판으로 돌무더기가 된 예루살렘은 승냥이의 소굴이 되고, 사람들이 사라진 유다의 성읍들은 황무지가 됩니다. 예루살렘과 유다가 그처럼 파국적 심판을 받는 이유는 달리 언급되지 않습니다. 다만 13-14절의 문맥에 따르면, 불순종과 우상숭배 때문이었습니다.
재난의 원인(12-16)
사람이 궁극적으로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당신의 말씀 안에서 만족을 얻도록 설계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행복하고 복된 삶을 살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며 순종하는 데 있습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그 안에 거하십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 자체가 복입니다.
12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가 누구며 여호와의 입의 말씀을 받아서 선포할 자가 누구인고 이 땅이 어찌하여 멸망하여 광야 같이 불타서 지나가는 자가 없게 되었느냐 13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율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14그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그 조상들이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따랐음이라 15그러므로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그들 곧 이 백성에게 쑥을 먹이며 독한 물을 마시게 하고 16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 가운데에 그들을 흩어 버리고 진멸되기까지 그 뒤로 칼을 보내리라 하셨느니라(12-16)
예레미야는 슬픈 노래를 부르며 묻습니다. 이 땅이 왜 멸망해 광야같이 되었는지를 알 만큼 지혜 있는 자가 누구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선포할 사람이 누구인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선포할 사람이 누구인지를 묻습니다. 선지자는 불타 버린 땅을 향해 의미 없는 질문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1) 화자의 질문(12)
예레미야서는 자주 가상적 질문과 답변의 틀을 사용해 이스라엘의 멸망 원인을 요약적으로 가르쳐줍니다(참조․ 5:19; 13:22; 16:10–13; 22:8-9). 보통은 백성이 묻는데, 여기서는 예언자가 묻고(12) 하나님께서 답변하십니다(13-16).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언자의 질문은 10-11절이 선포한 심판 위협이 눈앞의 현실이 됐음을 전제합니다.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이 황폐해진 것을 보고 사람들이 탄식하며 던질 질문을 예언자가 대신합니다. “지혜가 있어서 이 일을 깨달을 만한 자가 누구며 여호와의 입의 말씀을 받아서 선포할 자가 누구인고 이 땅이 어찌하여 멸망하여 광야 같이 불타서 지나가는 자가 없게 되었느냐”(12). 처음 두 질문은 예레미야의 예언 활동과 관련한 수사적 질문입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이 심판에 떨어져 황무지가 된 이유를 아는 자들이 아무도 없습니다. 놀랍게도 예루살렘 거리에는 단 한 사람의 의인도 없었던 것입니다(5:1). 하나님 백성이 이처럼 처참하게 멸망한 원인을 깨달아 아는 지혜자도 없고 이에 관해 말씀을 받아 선포할 예언자도 없었습니다. 예루살렘과 유다가 광야처럼 초토화된 현실 앞에서 지혜자들과 많은 예언자들은 할 말을 잃고 그저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원인을 모르면 치유가 불가능하기에 상황은 아주 절망적입니다. 많이 늦었지만, 그들은 이제라도 예레미야가 ‘여호와의 입’이었음을(참조, 1:9; 5:14; 15:19) 인정하고, 예언자의 선포를 들어야만 합니다.
(2) 하나님의 답변(13-16)
‘어찌하여’로 시작하는 세 번째 질문은 예언자의 좌절과 절망과 연민을 담고 있는 질문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 이처럼 불타서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무지가 되었단 말입니까! 심판 선포의 성취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눈앞의 현실이 너무나도 참담합니다. 멸망의 원인에 관한 여호와의 답변은 예레미야가 지금까지 선포한 내용의 요약입니다. “이는 그들이 내가 그들의 앞에 세운 나의 율법을 버리고 내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그 마음의 완악함을 따라 그 조상들이 자기에게 가르친 바알들을 따랐음이라”(13-14).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을 때 주어진 율법을 버렸습니다. 준수하면 생명과 축복이 주어지는 율법을 버린 대가로 죽음과 저주가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가르침 안에서 걷기를 거절하고 조상들의 길을 따라 오직 바알을 섬겼습니다. 우상숭배에 있어 이스라엘은 조상들의 가르침에 충실했습니다. 오래전부터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들을 섬기며 멸망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15-16절에서는 시점이 바뀌어 다시 멸망 이전의 현재 상태에 대한 기술로 돌아옵니다.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불순종과 우상숭배의 길을 간 유다 백성에게 심판을 선고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 백성’에게 쓴 쑥을 먹이고 독이 든 물을 마시게 해서 멀리 이방 민족들 가운데로 흩어지게 하십니다. 멸망과 유배가 심판의 정점이기는 하지만, 그 끝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먼 곳으로 쫓겨난 유다 백성에게 칼을 보내 그들을 진멸하십니다. 누구도 그분의 심판에서 목숨을 구하지 못합니다. 조상 대대로 불순종하며 우상을 섬긴 이스라엘의 완악함을 따라 하나님은 철저하게 그들을 심판하십니다. ‘그들과 그들의 조상이 알지 못하던 여러 나라’는 문자 그대로 그들이 ‘모르는 나라들’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알지 못함’의 모티브는 공간적 거리감과 심리적 두려움을 포함하고 있다. 멀리 있어 알지 못하고, 알지 못하기에 그들은 더욱 두렵게만 느껴집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악에 빠진 유다 백성에게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그들이 저지른 우상숭배와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린 죄악 때문에 그들은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풍요한 생명의 땅이 황폐해지고 모든살아있는 것이 죽음에 이르는 심판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의 이러한 죄악 중에서도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말씀에 순종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확고한 믿음으로 순종의 길만 걷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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