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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05-02)


반역자들을 심판하시는 하나님

예레미야 5장 10-19절


하나님의 말씀을 쉽게 생각하고 여겨서 하나님의 심판으로 갈 수 있는 그러한 때는 없는가를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해야 할 마땅한 바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을 힘들어하고 괴로워할 때가 있습니다.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순종의 기회가 됨을 기뻐할 수 있는 그런 마음의 반전이 일어나길 바랍니다.
유다 백성들은 심판 전이나 후에도 변함없이 보여줍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계시지 않기 때문에 결코 재앙이 자신들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입에 있는 그분의 말로 불을 만들어 그들을 사르겠다고 하십니다. 여호와를 버리고 이방 신을 섬긴 그들은 타국에서 이방인을 섬길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주는 혼란(10-14)

하나님께서는 행한 대로 갚으시는 분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이방 신들을 섬기자 이방 땅으로 끌려가 종노릇 하며 이방 신들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돌이켜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유다 백성들의 강퍅한 태도가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습니다.
10너희는 그 성벽에 올라가 무너뜨리되 다 무너뜨리지 말고 그 가지만 꺾어 버리라 여호와의 것이 아님이니라 1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이 내게 심히 반역하였느니라 12그들이 여호와를 인정치 아니하며 말하기를 여호와는 계신 것이 아닌즉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않을 것이요 우리가 칼과 기근을 보지 아니할 것이며 13선지자들은 바람이라 말씀이 그들의 속에 있지 아니한즉 그같이 그들이 당하리라 하느니라 14그러므로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그들이 이 말을 하였은즉 볼찌어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로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으로 나무가 되게 하리니 그 불이 그들을 사르리라(12-14)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 유다가 심히 반역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반역은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들이 없었던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이 큰 민족을 이룰 것이며, 그들이 가나안 땅을 차지하게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이 이르기를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했다는 것은 영적으로 타락한 자의 어리석음을 드러내 줍니다.
(1) 파괴되는 포도원(10-11)
여호와께서 종교적·윤리적 간음을 즐긴 ‘이런 나라’에 보복하십니다. 그분께서 2인칭 복수의 청자 ‘너희’에게 파괴를 명하십니다. ‘너희는 그녀의 포도원 두둑으로 올라가서 파괴하여라. 그러나 끝장을 내지는 말라. 그 가지들만 잘라내어라. 그것들이 여호와께 속해 있지 않기 때문이다’(10절의 사역). 포도원의 파괴가 제한적입니다. 포도나무가 잘려 나가지 않고, 가지들만 꺾입니다. 그 가지들이 여호와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명령은 포도나무와 가지를 구별하는 것이지, 좋은 열매가 열린 가지와 나쁜 열매가 맺힌 가지를 구별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지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 아니기에 잘립니다(1-5절에 따르면 예루살렘에는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다). 가지가 다 잘려 거의 죽은 나무와 같지만, 그래도 줄기와 뿌리는 남아 있기 때문에 완전히 말라 죽지 않습니다. 아마도 유다가 대적의 침략을 받아 멸망하지만, 완전히 끝장나지 않고 언젠가 다시 회복될 것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백성이 모두 심판에 넘겨지지만, 미래의 회복 가능성마저 깨끗하게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무의 가지가 다 잘리는 혹독한 심판을 받은 이유는 ‘이스라엘의 집과 유다의 집’이 여호와께 ‘심히 반역하였기’ 때문입니다(11). 이미 오래전에 멸망한 이스라엘을 유다와 나란히 언급합니다. 여호와께 ‘심히 반역한’ 이스라엘이 주전 722/1년 앗수르에 의해 멸망 당한 것처럼, 마찬가지로 여호와께 ‘심히 반역한’ 유다의 운명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철저한 번역이 멸망과 유배를 초래했듯이 유다의 철저한 반역도 멸망과 유배를 초래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유다의 경우는 회복 가능성이 열려있다는 점입니다.
(2) 여호와를 인정하지 않는 자들(12-14)
현재의 문맥에서 다음 두 절은 유다 사람들이 어떤 연유에서 여호와께 반역하고 예레미야와 같은 심판 예언자들의 선포를 거절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심판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12). ‘여호와께서는 계시지 아니하니’라는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분의 심판 의지를 무시하는 말입니다. ‘그분께서 그렇게 하지는 않으실 것이다’. 구원사적 전통에 매몰된 자들은 여호와께서 유다를 심판하시리라고는 추호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이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칼과 기근’의 재앙을 선포하는 심판 예언자들에 맞서서 그런 재앙은 결코 자신들에게 임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들의 눈에는 예언자들이 심판받아야 할 거짓 예언자들입니다. “선지자들은 바람이라 말씀이 그들의 속에 있지 아니한즉 그같이 그들이 당하리라 하느니라”(13). 여호와의 심판을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볼 때 재앙을 선포하는 심판 예언자들은 실체가 없는 '바람'에 불과했습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영이 함께하지 않는 자들로, 저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허공으로 사라지는 바람과 같으므로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칼과 기근’의 재앙은 하나님의 이름을 스스로 칭한 자들에게나 임할 것입니다. 심판 예언자들을 거짓 예언자들로 정죄한 자들에 맞서서 여호와께서는 예레미야를 옹호하시며, 그들에게 볼 심판을 선언하십니다. “내가 네 입에 있는 나의 말을 불이 되게 하고 이 백성을 나무가 되게 하여 불사르리라”(14).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는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용하는 공식적인 명칭으로 예루살렘 성전의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재앙을 선포하셨음을 그리고 예레미야를 당신의 예언자로 선택하셨음을 보여줍니다. 여호와께서 예레미야의 입에 두신 그분의 말씀(참조 1:9)은 봄이 되고, 그의 선포를 거절한 유다 백성은 나무가 됩니다.
 

강하고 오랜 민족에 의한 심판(15-19)

하나님의 존재를 믿지 않는 사람은 선과 악에 대한 궁극적인 심판도 믿지 않기 때문에 굳이 선하게 살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잘못된 믿음 때문에 결국 심판을 맞이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그분의 말씀을 믿지 않은 유다 백성의 행위와 그 결과를 묵상하고, 새 언약 백성인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15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보라 내가 한 나라를 원방에서 너희에게로 오게 하리니 곧 강하고 오랜 나라이라 그 방언을 네가 알지 못하며 그 말을 네가 깨닫지 못하느니라 16그 전통은 열린 묘실이요 그 사람들은 다 용사라 17그들이 네 자녀들의 먹을 추수 곡물과 양식을 먹으며 네 양떼와 소떼를 먹으며 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열매를 먹으며 네가 의뢰하는 견고한 성들을 칼로 파멸하리라 18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도 내가 너희를 진멸치는 아니하리라 19그들이 만일 이르기를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느뇨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여호와를 버리고 너희 땅에서 이방 신들을 섬겼은즉 이와 같이 너희 것이 아닌 땅에서 이방인들을 섬기리라 하라(15-19)
하나님께서는 반역자들에 대해 말씀이 불이 되게 하고 그들은 나무가 되게 하셔서 말씀으로 그들을 불태우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는 그들이 알지 못하던 강한 민족이 올라와 그들을 치고 성읍을 파멸시키며 모든 것을 갈취해 갈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1) 강하고 오랜 민족(15-16)
여호와의 심판 능력을 인정하지 않는 ‘이스라엘 집’을 태울 붙은 전쟁의 불입니다. 여호와께서 ‘한 나라를 먼 곳에서’ 오게 하시는데, ‘강하고 오랜 민족’으로 이스라엘이 알아듣지 못하는 모르는 말을 사용하는 민족입니다(15). 이들은 모두 잘 훈련받은 용사들로 이들의 화살은 빗나감 없이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혀 무덤에 들어가게 합니다(16). 이스라엘이 이제껏 경험해보지 못한 무서운 민족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들과 싸워 살아남을 가능성은 없습니다. ‘먼 곳’은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알지 못하는 곳이고, 감정적으로는 두려움과 야만스러움의 장소입니다. ‘강하고’는 원래 ‘지속적인’, ‘영속적인’을 의미합니다. 흥망성쇠를 경험하지 않고 고대로부터 계속 있어 온 민족은 강한 민족입니다. ‘알아듣지 못하는 모르는 말’은 낯섦과 무서움의 대상입니다.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려고 여호와께서 불러오는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민족은 20장에서 바벨론으로 밝혀집니다. 강하고 오랜 민족의 침략으로 이스라엘은 남김없이 파괴되고 약탈당합니다.
(2) 침략의 결과(17)
“그들이 네 추수 곡물과 네 양식을 먹으며 네 자녀들을 먹으며 네 양 떼와 소 떼를 먹으며 네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열매를 먹으며 네가 믿는 견고한 성들을 칼로 파멸하리라”(17). 스올이 입을 크게 벌리고 사람들과 그들의 소유를 다 집어삼키듯이 침략자들이 모든 것을 먹어 치웁니다. 사람들은 칼에 맞아 죽거나 포로로 사로잡혀 끌려갑니다. 곡식과 가축을 다 빼앗기고,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가 잘려 버렸기 때문에 기근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 대신 의지하였던 ‘견고한 성들’도 모두 ‘칼’에 파괴되기 때문에 그들은 안전하게 몸을 쉴 곳이 없어집니다. 생존에 필수적인 것이 하나도 남겨지지 않습니다. ‘칼과 기근’의 재앙이 닥칠 리가 없다고 하나님의 심판 능력을 인정하지 않던 자들이 모두 ‘칼과 기근’에 쓰러지고 멸망합니다.
(3) 진멸의 모면(18)
침략자들이 ‘아들들과 딸들’뿐만 아니라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마저 먹어 치우는 17절에 따르면, 멸망 이후 전망하기 힘든 완전한 멸망입니다. 그러나 10절의 경우처럼 심판은 철저하게 집행되지만, 그것으로 완전히 끝장나는 것은 아닙니다. 여호와께서는 유다 백성을 위해 미래를 열어놓으십니다. “그 때에도 내가 너희를 진멸하지는 아니하리라”(18), 적들이 쳐들어와서 예루살렘과 유다를 폐허로 만들고 백성을 사로잡아가지만, 하나님과의 관계마저 단절된 것은 아닙니다.
(4) 심판의 이유(19)
하나님께서는 이미 심판 이후를 준비하십니다. 그분은 회복의 약속을 주시기에 앞서, 먼저 심판의 시대를 사는 자들에게 심판 원인을 깨닫게 해주십니다. 과거의 극복 없이는 새로운 미래도 없기 때문에 가상적 질문과 답변의 양식을 빌려 이를 알려주십니다(19).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느냐”는 질문에는 재앙을 경험한 자들의 당혹감과 한계가 반영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재앙을 임하게 하셨음을 인정하지만, 어떤 연유로 그분께서 이처럼 혹독하게 심판하셨는지는 전혀 깨닫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구원자로 이해하는 자들에게 그분 백성의 멸망은 이해하기 힘든 파국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멸망의 원인을 묻는 자들에게 줄 답변을 예언자에게 알려주십니다. 이스라엘은 자기 땅에서 여호와를 배반하고 ‘이방 신들’을 섬겼기 때문에, 이제 자기 땅이 아닌 곳에서 ‘이방인들’을 섬겨야 합니다. 유다의 멸망과 유배는 겉으로는 전쟁과 정치적 갈등에서 비롯된 재앙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상숭배가 초래한 신학적 사건입니다. 병의 원인을 정확히 파악하면 처방전도 확실해지는 것처럼, 심판의 원인이 우상숭배에 있다면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지는 비교적 분명해집니다. 심판의 시대를 사는 자들은 우상숭배의 잘못을 인정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와 그분의 도움을 기다려야 한다. 지난 시대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여호와께로 돌아와 그분의 도우심을 간구해야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구한다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비위에 맞는 말씀만 듣고자 한다면 바른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 자신을 사랑하시고 복 주시고 지켜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만을 듣고자 할 뿐, 정작 진리의 말씀에는 관심이 없다면 하나님의 평안과 사랑과 복과 보호하심은 주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마음을 찌른다면 그 말씀에 오히려 더 귀를 기울이고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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