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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10-02)


이방인을 성도로 받아들인 초대교회

사도행전 10장 17-33절


요즘 젊은 세대들은 존경할 인물이 없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동안 기성세대들이 어른으로 존경받지 못할 행동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에 대한 평가는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들로 시작됩니다. 아무리 가정 밖에서 인정받고 존경받아도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성도는 하나님과 사람들에 의한 평가가 일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도 사람들에게도 칭찬 받는다면 그처럼 훌륭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로마군대 백부장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 집에 도착하여 베드로를 찾습니다. 성령이 베드로에게 주저하지 말고 함께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집으로 들여 하룻밤을 머물게 한 다음 베드로는 그들과 함께 가이사랴로 출발합니다. 가이사랴에 도착한 베드로는 어떤 목적으로 자신을 초대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고넬료로부터 직접 듣습니다.

 

욥바에 있는 시몬의 집에서(17-23a)

성도들은 자신의 영혼을 위해 분별력을 가지고 살아가야할 책임이 있습니다. 영적 지도자라고 하지만 의심스러울 때가 있으면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무조건 영적 지도자라고 순종만 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 올바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산다면, 그 분이 비천한 사람이라도 배우고 순종해야 합니다.

17베드로가 본 바 환상이 무슨 뜻인지 속으로 의아해 하더니 마침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을 찾아 문 밖에 서서 18불러 묻되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 하거늘 19베드로가 그 환상에 대하여 생각할 때에 성령께서 그에게 말씀하시되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20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 하시니 21베드로가 내려가 그 사람들을 보고 이르되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 22그들이 대답하되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 한 대 23베드로가 불러 들여 유숙하게 하니라(17-23a)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은 비장하게만 접근한 것이 아니라 일종의 게임이나 놀이입니다. 그 뜻을 알아가는 것이 하나님과의 교제인 것입니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의 도착은 우연이 아니라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하는 사건입니다.

⑴ 베드로를 찾아온 사람들(17-18)

기도 중에 환상을 보았던 베드로는 여전히 자기가 본 환상의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의 의미를 쉽게 깨닫지 못합니다. 환상을 세 번씩이나 보여주셨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의미를 담고 있음을 암시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환상이 무슨 의미인지 확실히 알 수가 없었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스승 노릇을 해주십니다. 직접 모범답안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에게 환상과 전혀 상관이 없지만 아주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건을 통해서 스스로 깨닫도록 안내해주십니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도착하는 방법이었습니다. 베드로가 방금 본 환상의 의미를 생각하며 머리를 갸우뚱거릴 때,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이 시몬의 집 밖에서 그를 찾고 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라 하는 시몬이 여기 유숙하느냐?’라고 묻습니다. 정말 기막힌 타이밍입니다. 환상에 대한 의미를 잡을 수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정답을 주신 것입니다.

⑵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심(19-20)

이번에는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직접 말씀하십니다. ‘두 사람이 너를 찾으니 일어나 내려가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19b-20). 본문에는 ‘두 사람’이 베드로를 찾아왔다고 기록되어 있지만, 동행한 군인을 경호병으로 간주하고 고넬료가 보낸 사람을 실제적으로 세 사람이었습니다. 성령께서는 두 사람을 따라서 가이사랴로 가면, 그 환상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왜 그런 환상을 주셨는지,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 백부장이 집으로 가야할 것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명령은 환상 속에서 ‘잡아 먹으라’와 같은 명령입니다. 고넬료가 보낸 사람들의 도착은 우연이 아니라 모든 과정을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하는 사건입니다. 성령께서 다시 ‘의심하지 말고’ 가라고 하십니다. ‘내가 그들을 보내었느니라’라는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미리 환상을 보여주신 이유를 드러내십니다. 즉, 이 사람들의 방문을 미리 준비하라는 의미입니다. 이에 베드로는 옥상에서 내려와 자기를 찾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⑶ 고넬료의 말을 베드로에게 전함(21-22)

옥상에서 내려온 베드로는 그들에게 ‘내가 곧 너희가 찾는 사람인데 너희가 무슨 일로 왔느냐?’고 그들이 찾는 사람이 자신임을 밝힙니다. 그들이 자신을 찾아온 이유를 묻습니다. 베드로는 욥바에서 온 사람들의 임무를 몰랐습니다. 하지만 전혀 모르고 하는 질문은 아닙니다. 다시 확인하고 싶었던 질문입니다. 욥바에서 온 사람들은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그가 거룩한 천사의 지시를 받아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22)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기들을 보낸 주인 백부장 고넬료에 대해 베드로에게 ‘백부장 고넬료는 의인이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이 말은 자기들을 보낸 사람은 로마 군대 백부장인데 선한 사람이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는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들이 주인을 이렇게 소개한 것은 단순히 주인에 대한 사실만을 전한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에게 주인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어주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의인이라는 말은 그가 좋은 성품과 인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주인이 아랫사람으로부터 이러한 평가를 받는 것이 예나 지금이나 쉽지 않은 일입니다. 고넬료의 인품을 뒷받침해주는 설명이 바로 이어서 나옵니다. ‘유대 온 족속이 칭찬하더니...’ 이 말은 고넬료가 비록 로마 군대를 위해 백부장으로 봉직하면서도 식민지 사람들에게 선을 행하며 살고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이는 ‘백성을 많이 구제하고’(2)와 일치하는 대목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여기서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이것은 지금까지 전개된 고넬료 이야기에서 처음 나오는 정보라 할 수 있습니다. 4-5절의 천사의 말에서나 8절의 고넬료의 지시에 이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던 것인데, 그 생략된 정보를 누가가 이제 와서 독자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가는 내러티브의 생동감과 긴장감을 높이기 위해 무슨 목적으로 고넬료가 베드로를 초대한 것인지를 미리 발설하지 않고 이 대목에 이르러 비로소 소개합니다. 이와 같은 누가의 이야기 전개 방식은 독자들을 이야기 안으로 강하게 끌어들입니다. 베드로는 욥바에서 온 사람들의 말을 듣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본 환상과 고넬료가 본 환상이 정확히 맞아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 환상들과 이방인의 방문이 연결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고넬료의 초청과 욥바로 가라고 하신 말씀이 연결되고 있었습니다. 이 이방인들이 환상 속에서 보았던 부정한 동물들이었습니다. ‘부정한 동물들을 먹으라’는 것은 ‘이방인들을 형제로 받아 들리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방인이 ‘당신을 그 집으로 청하여 말을 들으려 하느니라’고 초대합니다. 그리고 ‘천사가 명령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겠으니 오라고 초청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바울에게 환상 중에 건너오라고 초청했던 마게도냐 사람들의 환상과 버금가는 엄청난 복음의 역사, 교회 역사에 전환점을 가져다주는 초청이었습니다.

⑷ 시몬의 집에 유숙함(23a)

베드로는 처음부터 그들의 말을 경청해서 들었습니다. 그들의 말이 끝나자, 그들을 집 안으로 불러들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식사와 잠자리를 제공합니다. 손님을 하루 대접하는 것이 대수롭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사람들은 이방인들입니다. 이방인을 집안으로 들여보내고 집안에서 식사도 같이 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방인들을 향제로 맞아들이기로 한 것입니다. 그들은 아직 세례를 받은 것도 예수님을 영접한 것도 아닙니다. 그들은 그냥 이방인들입니다. 이제 베드로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과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기준이 상관없게 되었습니다. 불과, 오전에 베드로와 오후에 베드로, 욥바 고넬료로부터 온 사람들을 만나기 전과 후의 베드로는 완전히 달라진 것입니다. 고넬료가 보낸 이방인 방문객을 집에 유숙하게 했다면, 이제 그들을 따라가는 것은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닐 듯합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이방인을 자기 집에서 (율법의 범위 안에서) 접대하고 유숙하게 하는 것과 이방인의 집에 초대받아 들어가 접대를 받는 것은 당시로서는 엄연히 다른 문제에 속합니다. 후자는 집에서 어떤 음식을 제공받을지에 대한 권한이 방문객에게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이사랴의 고넬료의 집에서(23b-33)

성도들의 삶이 중요합니다. 복음을 위해 인생을 살려면 주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살아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의롭고 경건하게 살아야 합니다. 항상 세상적인 욕심을 버리고 많은 것을 세상으로 흘려보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 예수의 복음도 쉽게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23…이튿날 일어나 그들과 함께 갈새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함께 가니라 24이튿날 가이사랴에 들어가니 고넬료가 그의 친척과 가까운 친구들을 모아 기다리더니 25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27더불어 말하며 들어가 여러 사람이 모인 것을 보고 28이르되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29부름을 사양하지 아니하고 왔노라 묻노니 무슨 일로 나를 불렀느냐 30고넬료가 이르되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 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31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32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33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23b-33)

이 단락은 고넬료의 회심 이야기에서 세 번째 장면에 속합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에게는 많은 장벽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장벽, 점령군으로서 장벽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⑴ 가이사랴에 도착함(23b-24)

다음날 아침, 베드로는 ‘의심하지 말고 가라’는 성령의 음성을 따라서, 시몬의 집에서 하룻밤을 머문 그들은 이튿날 베드로와 함께 가이사랴로 출발합니다. 여기서 ‘욥바에서 온 어떤 형제들도 함께 가니라’라고 말하는데, 욥바 출신 성도들이었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베드로는 지혜롭게 욥바 출신 성도들이 함께 이 여전에 동행했습니다. 나중에 그들의 숫자가 여섯 명이었음이 밝혀집니다(행 11:12). 지금으로서는 그들의 동행이 큰 의미가 없어 보이지만, 이야기가 차츰 무르익어감에 따라 독자들은 그들이 목격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됨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들은 이튿날 가이사랴에 도착합니다. 고넬료는 혼자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의 도착을 준비하며 그의 친척들과 가까운 친구들을 집에 초대하고 대기합니다. 그들은 대부분 이방인이었을 것입니다. 고넬료의 환상은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하실 것인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그가 백부장으로서 베드로에 대한 정보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를 청하라’는 하나님의 환상은, 바울에게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것 같은 충격적인 경험이었습니다. 또한 제자들이 여자들에게서 예수님의 무덤이 비었다는 보고와 같은 충격적인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이것은 고넬료가 알고 유대교와 메시아에 대한 알고 있었던 지식을 다시 해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하나님의 습격을 수용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고넬료와 대화를 나누며 집 안으로 들어간 베드로는 큰 기대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던 고넬료의 친척과 친구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이방인의 집에서 이런 사람들과 만나게 될 줄은 미처 상상도 못했을 것입니다.

⑵ 베드로와 고넬료가 서로 인사(25)

베드로가 집에 도착하자 고넬료는 급히 달려 나갔습니다. 그리고 지배국 장교가 피지배국 백성인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려 상관에게 절하듯 절을 했습니다. 악수를 하거나 목례를 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신적인 존재나 로마 황제를 대하듯 극진한 환영이며 두려움에 찬 환영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그만큼 겸손했고 간절했습니다. 사실 고넬료는 로마 제국의 백부장으로 유대 나라를 지배하는 점령군의 지휘관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사도라고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갈릴리에서 물고기 잡던 어부에 불과했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엎드려 절을 해야할 사람은 고넬료가 아니라 베드로였습니다. 그런데 로마 제국의 백부장인 고넬료가 이렇게 행동은 자신이 본 환상과 천사의 지시 때문입니다. 베드로를 보는 시선과 안목이 바뀌어서 둘 사이의 관계를 바꾸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람을 맞이하는 예의를 표했던 것입니다. 베드로보다 옆에 있는 사람들이 더 놀랐을 것입니다. 이전에 누구로부터도 이러한 예우를 받아본 적이 없는 베드로는 당황했습니다. 한 가지 베드로는 고넬료를 만져서 일으켜 세워주었습니다. 유대인이 이방인을 만지고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고넬료의 예의에 ‘일어나세요. 저도 다 같은 사람입니다.’라면서 사양합니다.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린 고넬료는 베드로는 천사와 같은 존재였을 것입니다. 그는 베드로를 주 안에서 존경하는 형제가 아니라 경배해야할 대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그것을 거절한 것입니다.

⑶ 베드로가 초청 이유를 물음(26-29)

베드로가 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들은 유대인들과의 접촉을 긴장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이제 그곳에 모인 사람들에게 ‘유대인으로서 이방인과 교제하며 가까이 하는 것이 위법인 줄은 너희도 알거니와 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도 속되다 하거나 깨끗하지 않다 하지 말라’라고 말합니다. 이제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구약에서 자의적으로 깨끗한 것과 부정한 것을 정하신 때가 있었습니다. 더 이상 그것이 허용되지 않는 새시대가 열렸다는 것을 베드로가 깨달은 것입니다. 베드로의 말을 개역개정으로 읽으면, 마치 베드로가 오기 싫은 곳에 억지로 할 수 없이 온 것처럼 매우 투명스런 어조로 말하는 것으로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본문은 실제로 그렇지 않다. 베드로의 말을 가급적 현대적인 어투로 바꾸어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여러분은 유대인이 이방인과 교제하거나 가까이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어느 누구도 부정하거나 깨끗하지 않다고 말하지 말 것을 내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저를 불렀을 때 전혀 사양하지 않고 왔습니다. 그러니 이제 어떤 유유에서 저를 부르셨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습니까?’ 베드로는 자기가 본 환상에서 특정 음식이 속되거나 깨끗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곧 한 사람도, 부정하거나 불결하다’고 여길 수 없음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베드로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보여주신 음식에 관한 환상에서 '사람에 대한 새로운 적용 포인트를 발견한 것입니다.

⑷ 고넬료가 이유를 설명함(30-33)

고넬료의 독자들이 이미 익히 알고 있는 내용일 것입니다. 고넬료는 베드로를 통하여 내려오게 한 것이 자신의 개인적인 관심사 때문이 아니라 천사의 지시에 따라한 것이라고 환상 중에 들은 것을 소개합니다. 베드로는 그의 하인들을 통해서 들은 바가 있습니다. 고넬료는 자신이 본 환상에 대해 마무리하면서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사도행전 10:3의 ‘하나님의 사자’는 이제 고넬료의 입에서 ‘빛난 옷을 입은 한 사람’으로 표현됩니다. 고넬료는 사람들이 복음을 듣기 위해 모이면,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모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복음은 차별과 소외의 복음이 아닌 공평과 포용의 복음입니다. 이러한 뜻이 잘 반영되어 나타난 것이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이었습니다. 능동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한 베드로와 고넬료를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은 경계와 장벽을 넘어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로 흘러가고 있었습니다. 한계를 넘어서 진정한 복음의 역사를 볼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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