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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11-02)

 


복음이 결실되어 가는 성숙한 교회

사도행전 11장 19-30절


미국 MIT공대 기상학자 에드워드 N. 로렌츠(Edward N. Lorenz)가 처음으로 발표한 이론으로 ‘나비효과’입니다. 이 이론은 작고 사소한 사건 하나가 나중에 커다란 효과를 가져온다는 의미입니다.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과학이론에서 발전했으나 점차 경제학과 일반 사회학 등에서도 광범위하게 쓰이게 되었습니다. 믿음에서도 믿음으로 살겠다는 성도들 한 사람 한 사람의 결단하고 실천하는 나비효과를 통해서 작은 믿음의 날갯짓이 나중에는 큰 영향을 주게 됩니다.

 

스데반에 시작된 작은 날갯짓은 전 세계로 복음을 전파하는 큰 역사를 낳았습니다. 스데반의 죽음으로 온 지역으로 흩어졌던 헬라파 유대-그리스도인들은 수리아의 수도 안디옥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에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를 파견합니다.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사울을 다소에서 데리고 옵니다. 안디옥 교회는 지역 사회에 매우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사람들부터 ‘그리스도인’이라는 별칭을 얻게 됩니다.

 

안디옥 교회의 설립됨(19-21)

교회의 존재하는 목적은 주의 능력이 역사하여 많은 사람들을 주께 돌아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교회의 구성원은 모이던지 흩어지든지 어디에 있든지 주와 함께 하면서 사역해 가는 일군들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들을 찾고 계십니다. 그러한 신실한 일군들을 통해 하나님의 사역을 이루어 가시기 원하십니다. 

19그 때에 스데반의 일로 일어난 환난으로 말미암아 흩어진 자들이 베니게와 구브로와 안디옥까지 이르러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하는데 20그 중에 구브로와 구레네 몇 사람이 안디옥에 이르러 헬라인에게도 말하여 주 예수를 전파하니 21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 수 많은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오더라(19-21)

앞 사도행전 11장 1-18절에서 이방인인 백부장 고넬료와 그 가족, 친구 그리고 친척들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과정과, 예루살렘 교회는 그들을 하나님 나라의 가족으로 인정하는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수많은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과정과 안디옥 교회가 세워지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이것은 13장에서 사도 바울과 그의 선교팀을 통해 복음이 이방인 지역으로 들불처럼 확산되는 것으로 더 발전할 것입니다. 안디옥 이방인을 위한 복음 사역으로 백부장 고넬료의 가정에서부터 복음이 시작된 후, 얼마나 시간이 경과되었는지 모릅니다.

(1)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함(19)

예루살렘에서 흩어진 성도들은 아직까지도 자기 동족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했습니다. 아마 성경에 대한 기초를 알고 있는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익숙한 것을 좋아합니다. 그들은 아직도 자신들이 예루살렘에 흩어진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땅끝까지 이르러 모든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몰랐습니다. 고난과 핍박에는 하나님의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해답을 쉽게 찾을 없고, 빠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고난과 핍박을 통하여 자신이 변화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과 가치관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인도하신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2) 이방인들에게 전하는 복음(20-21)

스데반의 일로 예루살렘에서 그리스도인들이, 특히 교회 지도자급에 속한 자들이 예루살렘에 머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다른 복음 전도자들도 베니게와 구브로 그리고 안디옥으로 각자 흩어졌습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신자가 되기 위해 할례를 받거나 율법을 지키지 않았으며, 교회 내에서도 수적인 면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와 관련한 율법의 문제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온 ‘할례에 속한 자들’이 도착하기 전까지는 아직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으로 보입니다(갈 2:11-14). 베드로처럼 복음 전도자들이 안디옥에 헬라인들에게 ‘주 예수를 전파하는’ 전파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성경에서는 그들이 구브로 출신이고, 그레데 출신들이 안디옥에서 전도자로 일했다고 소개합니다. 이들을 통해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세워졌습니다. 안디옥에 교회가 세워진 일은 상당히 의미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초대교회의 영향력이 지리학적으로 확장되어 나갈 뿐만 아니라 이방인 선교에 있어서도 초대교회는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본문에는 복음을 받은 자들을 ‘헬라인’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이 ‘헬라인들’은 순수한 이방인들이 아니라 고넬료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이방인들이었을 것입니다. 복음 전도자들은 어떤 계기로 그들과 대화하게 되었고, 그들에게 그 메시아로 오신 분이 예수님이라고 소개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고넬료의 만남을 기뻐하시고 이방인에게도 성령으로 세례를 주셨던 주님께서 복음 전도자들 속에 역사 하셨습니다. 흩어진 자들은 먼저 베니게에서 복음을 전했고 일부는 배를 타고 구보로로 건너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구브로는 오늘날의 키프로스로 바나바의 고향입니다(사도행전 4:36). 구브로는 또한 나중에 바나바와 바울이 1차 선교여행을 떠날 때 가장 먼저 전도한 곳이기도 합니다(사도행전 13:4-12), 적어도 주전 2세기부터는 유대인들이 많이 모여 살았던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마카비 1서 15:23). 또한 이들 중에는 수리아의 수도인 안디옥에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하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안디옥은 로마와 북아프리카의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인구가 많은 인구 50만의 대도시였으며, 당시 그곳에는 많은 유대인들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본문에서는 안디옥에서 일어난 사건이 앞 단락에서 소개된 고넬료의 회심 사건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뉘앙스를 전혀 남기지 않습니다. 이로 미루어보건대, 복음 전파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독립적 현상이었습니다. 아울러 그들의 복음 전파를 ‘주 예수를 전파하니’라는 말로 요약합니다. 이제 유대인을 넘어 이방인에게도 예수를 주(퀴리오스)로 소개하는 새로운 선교 전략이 도입된 것입니다. 이는 초대 교회에서도 선교 대상에 따라 복음의 강조점을 달리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시매’라는 말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이 전해지는 과정에서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이 있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전하는 자의 뛰어난 말솜씨보다는 그들과 ‘주의 손’이 함께 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치유와 이적이 함께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의 선교 활동 배후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방인들에게는 말씀보다 이러한 사역이 더 호소력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역으로 인해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맺었습니다. 몇 사람이 아니라 수많은 사람들이 믿고 돌아왔습니다. 이것을 주께서 하셨다고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방인 안디옥 교회의 성장(22-30)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지칭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따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그렇지 못하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비극입니까? 그리스도인인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명성만큼 아름다운 삶을 이루어가시기 바랍니다. 한 두 명의 이방인으로 시작한 안디옥 교회는 점점 능력 있는 교회로 성장해갑니다.

22예루살렘 교회가 이 사람들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안디옥까지 보내니 23그가 이르러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믿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 24바나바는 착한 사람이요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25바나바가 사울을 찾으러 다소에 가서 26만나매 안디옥에 데리고 와서 둘이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 큰 무리를 가르쳤고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22-30)

베드로가 이방인 고넬료와 접촉해서 세례를 주었던 일이 신속하게 전파되었듯이, 안디옥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회심 사건 역시 예루살렘 교회까지 보고되었습니다. 그들은 베드로를 통해 이미 예방 주사를 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1) 바나바를 파송하는 예루살렘 교회(22-24)

이에 예루살렘 교회는 다시 정비되어 본부 역할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신속하게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송합니다. 사마리아가 주의 복음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파송했던 것처럼, 이번에는 바나바를 보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선택해 안디옥으로 보낸 이유는 그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한 의구심, 혹은 거부감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예루살렘 교회 지도자들은 유대교 전통을 중시하는 소위 보수 성향의 유대-그리스도인들의 지나친 우려를 진정시키기 위해 바나바를 파견한 듯합니다. 바나바라는 인물을 선택했다는 사실 자체가 이러한 추측을 합리적인 것으로 보이게 합니다. 바나바는 비록 구브로 출신인 디아스포라 출신 유대인이었지만, 그 동안 예루살렘 교회 신자들로부터 두터운 신뢰를 받아왔습니다. 관계 중심적으로 ‘위로의 사람’이란 별명처럼 바나바는 회심한 사울을 예루살렘 공동체와 연결해준 사람입니다. 그래서 공동체 안에서도 히브리파 신자들과 헬라파 신자들을 중재하는 역할을 잘 감당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나바의 드러난 성품 또한 그가 이번 일의 적임자임을 말해줍니다. 안디옥 교회의 가능성을 본 바나바는 자신과 함께 동역할 사람을 생각합니다. 그가 바로 옛 친구 사울 바로 바울이었습니다. 그를 부르기 위해 다소까지 내려갑니다. 고향에서 있던 시간이 승승장구하던 사울에게는 유배 생활처럼 느껴졌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10여년의 기간 동안, 이후에 이방인 지역에서 사역하기 위한 온갖 모든 것들을 준비하였던 것입니다. 사울을 경쟁자로 생각하지 않고 환상의 콤비였습니다. 바나바는 사랑이 많은 관계 중심 사람이었고, 사울은 성경과 신학에 능한 훌륭한 교사였습니다. 두 사람은 1년 동안 로마 제국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인 안디옥에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갔습니다. ‘교회에 일 년간 모여 있어라’는 말은 일 년간 교회(건물)에서 모였다는 의미가 아니라 성도들과 함께 모였다는 의미입니다. 전자는 교회(에클레시아)를 장소로 보는 것이고, 후자는 교회를 성도들의 모임으로 보는 것입니다.

(2) 그리스도인이라 인정받은 성도(25-26)

안디옥에 도착한 바나바는 집단적인 회심 사건이 ‘주의 손’이 하신 일인지, 예루살렘 교회가 인정할 만한 회심인지 아닌지 판단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회심한 이방인들을 만나서 물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여’라고 결론을 맺었습니다. 공동체 안에 새로 믿게 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율법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 모든 사람에게 굳건한 믿음으로 주와 함께 머물러 있으라’고, 굳건한 마음으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지킬 것을 당부합니다. 이러한 당부와 지도는 이방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가 안디옥 교회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깨달은 바나바의 영적 통찰력 때문이었습니다. 돌아온 자들이 성숙해지자 안디옥 교회는 부흥이 찾아왔습니다. 이로써 바나바는 안디옥 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게 됩니다. ‘이에 큰 무리가 주께 더하여지더라.’ 이 말은 초대교회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할 때 자주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이제 복음을 받은 자들 대신에 바나바의 가르침을 받은 자들이, 다른 복음 전도자들로 성장한 것입니다. 제자가 제자들을 낳은 것입니다. 사도행전에서 바나바를 ‘착한 사람’라는 표현합니다. 이러한 표현은 누구에게도 사용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나바의 영적 상태를 표현하는 데 ‘착한 사람’이라는 표현에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라는 언급을 덧붙입니다. 그는 안디옥 교회의 큰 부흥을 이끈 구브로 출신의 복음 전도자들과 잘 협력해서 예루살렘 교회의 입장을 전달하고 성도로 양육하는 일에 협력하기 적합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나바와 사울이 함께 한 사역으로 안디옥 교회는 든든하게 서 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도들을 뿐만 아니라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도 소홀히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얼마나 성숙하게 성장했는지에 대해 다음 성경에서 말합니다.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그리스도인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라는 말에서 ‘그리스도인’(크리스티아노이)라는 표현은 본래 헬라어가 아니라 라틴어이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라는 뜻입니다. 또한 ‘일컬음을 받았다’는 말은 안디옥의 일반 시민들이 성도 공동체를 가리켜 만들어낸 신조어였을 가능성을 높여줍니다. 안디옥 시민들이 성도들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부르는 데에는 긍정적인 의미뿐만 아니라 조롱과 조소의 의미도 들어 있었습니다(사도행전 26:28; 베드로전서 4:16). 초대교회의 성도들은 ‘제자’나 ‘성도’, 혹은 ‘형제’로 불리기를 더 좋아했습니다.

 

이방인 안디옥 교회의 선교(27-30)

성숙해진다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서 완숙되어 가지만, 성장해가면서 능력의 성장도 동반되어야 합니다. 환난 가운데서도 기쁨으로 이겨낼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면서 자신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도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아름답게 성장하여 이제 어머니 교회와 같은 예루살렘 교회의 어려움을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27그 때에 선지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에 이르니 28그 중에 아가보라 하는 한 사람이 일어나 성령으로 말하되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 하더니 글라우디오 때에 그렇게 되니라 29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 30이를 실행하여 바나바와 사울의 손으로 장로들에게 보내니라(27-30)

성도들이 그곳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일컬음을 받을 정도로 안디옥 교회는 구별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성장하여 점점 다른 사람들을 돌아볼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당시에 전 세계적으로 닥친 흉년이 오리라는 아가보의 예언을 듣고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로한 것도 이를 증명하는 예일 것입니다.

(1) 아가보가 천하에 큰 흉년을 예언(27-28)

안디옥 교회 성도들이 얼마나 성장했는지가 시험해 볼 수 있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속한 선지자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 안디옥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지자’는 순회 사역을 하던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이들의 사역은 말씀을 가르치기도 하고, 때로는 장차 일어날 일을 예언하기도 했습니다. 그 중에 아가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천하에 큰 흉년이 들리라’고 예언하였습니다. 아무도 하나님께서 내리시겠다는 흉년을 막을 수 없어도 대비할 수는 있었습니다. 그런데 흉년이 들자, 안디옥 교회는 자신들의 안위를 걱정한 것이 아니라 어머니와 같은 예루살렘 교회를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이들이 왜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왔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누가는 그중 한 사람인 아가보가 천해온 로마 제국에 걸쳐)에 큰 흉년이 들것을 예언했는데, 그 예언이 글라우디오 황제 때 성취되었다고 기록합니다. 로마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는 당시 여러 차례 흉년이 있었다고 전하고, 요세푸스도 주후 46년경 유대 지방에 흉년이 있었다고 전합니다. 누가의 관심사는 단순히 아가보의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점에 있지 않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보인 성숙한 신앙과 형제들을 향한 사랑의 모습을 부각하는 데 누가의 관심이 있습니다.

(2) 예루살렘 교회에 구제 헌금(29-30)

안디옥 교회는 점점 성숙해져 어려움 중에 있는 형제들을 돌아보기 시작합니다. 안디옥 교회는 자발적으로 예루살렘 교회를 도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들은 ‘제자들이 각각 그 힘대로 유대에 사는 형제들에게 부조를 보내기로 작정하고’라고, 유대 예루살렘에 사는 형제들을 위해 구제 헌금을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결정한데로 구체적으로 행동에 옮겼습니다. 이 구제헌금을 전달할 사람으로 바나바와 사울을 선택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교회를 지도하고 바나바와 같은 좋은 지도자를 보내 줌으로서 영적인 도움을 안디옥 교회에게 주었다면, 안디옥 교회는 이에 구제헌금으로 화답한 것입니다. 이처럼 교회의 모든 사역은 사람의 힘만으로도 성령의 역사만으로도 안 됩니다. 성령의 역사와 사람들의 믿음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들도 이렇게 세워집니다. 안디옥 교회의 성숙한 신앙의 모습은 이전에 예루살렘 교회가 ‘각 사람의 필요에 따라’(행 2:45; 4:35) 물건을 나누었던 모습과 맥을 같이 합니다. 안디옥 교회가 성장해 가는 모습을 오늘날의 우리 한국교회도 닮아가야 할 좋은 모본입니다.


스데반으로부터 시작된 복음의 작은 날갯짓이 예루살렘을 넘었습니다. 유다와 사마리아를 넘었고, 이제는 이방 지역인 안디옥으로까지 확장되어 갔습니다. 오늘도 성실한 자들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을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자신에게 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동안 성심과 성실로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워 가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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