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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08-02)

 


진리에서 멀어진 이스라엘의 결과

예레미야 8장 4-17절


연어는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알을 낳기 위해서 회귀하여 갑니다. 그곳을 향해 가는 연어들의 모습은 봅니다. 돌아가려는 모습을 보면 물결을 타고 상류로 올라갑니다. 큰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기도 엄한 바위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그러다가 배가 찢어지기도 하고 상처가 나기도 합니다. 이렇게 애쓰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메시지는 ‘여호와께 돌아가자’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돌아가는 것이 그곳에 생명이 있고 살 길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이스라엘이 멸망하게 된 원인으로 지도자들의 완악함과 어리석음을 폭로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떠나면 돌아오는 것이 정상인데 그들은 돌아올 줄을 모릅니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엎드러질 줄 모르고 평안하다 합니다. 결국 이들은 최후까지 고집하다 여호와의 심판을 피할 수 없게 됩니다.

 

백성의 완악함과 어리석음(4-7)

진리(말씀)에서 떠나면 본향을 잃고 완악해져서 표류하는 인생이 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않고 배반하고 떠난 이스라엘은 도무지 돌아올 줄(회개) 모릅니다. 그래서 거짓을 고집하면서 정직을 말하지 않고 자신들의 악을 뉘우치는 기색도 없습니다. 그래서 사망의 길로 그대로 달려갑니다. 동물들도 그 정한 시기와 때를 아는데 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합니다.

4너는 또 그들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사람이 엎드러지면 어찌 일어나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떠나갔으면 어찌 돌아오지 아니하겠느냐 5이 예루살렘 백성이 항상 나를 떠나 물러감은 어찌함이냐 그들이 거짓을 고집하고 돌아오기를 거절하도다 6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즉 그들이 정직을 말하지 아니하며 그들의 악을 뉘우쳐서 내가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없고 전쟁터로 향하여 달리는 말 같이 각각 그 길로 행하도다 7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4-7)

심판의 날에 멸망 당한 자들은 스스로를 속일 뿐만 아니라, 또한 하나님을 속이려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미물보다 못한 자들이었고, 자신들이 원하는 말만 들었습니다. 죄를 행하는 백성, 죄악 된 행실을 보고서도 아무 경고도 하지 않았던 지도자들은 동일하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습니다.

(1) 하나님의 탄식과 고발(4-5)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유다의 행태에 하나님께서도 당황스러워하십니다. 누구나 길을 걷다가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가던 길이 틀리면 다시 돌아 나오는데, 유다는 쓰러져도 일어나려 하지 않고 빗나가도 다시 돌아오려 하지 않습니다(4). 여기서 ‘떠나갔으면’과 ‘돌아오지’는 동일한 단어 ‘야숩’의 번역으로, 전자는 ‘길을 벗어나 옆길로 들어서다’를 의미합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길을 가다 옆길로 빠지면 얼마쯤 가다가 이상함을 느끼고 다시 돌아와서 바른길을 찾습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완악함이 몸에 밴 유다는 자신의 삶에 대한 최소한의 성찰이나 되돌아봄이 없이 고집스럽게 제 길로만 나아갑니다. 마치 하나님을 배반하고(머슈바) 그분에게서 멀리 떠나가는(쇼버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는 것 같습니다(5). ‘어찌함이냐’(마두아)는 하나님의 안타까움과 좌절이 담긴 책망의 표현입니다. 거짓에 사로잡혔기에(5b; 참조. 9:3-6) 하나님께서 예언자를 보내 구원의 길을 벗어나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고 아무리 경고하고 위협해도 이들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의 귀는 “이것이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여호와의 성전이라 하는 거짓말”(7.4)과 ‘평강하다.’ ‘평강하다’하는(11) 구원 예언에만 익숙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당신 이름을 두신 여호와를 오직 구원의 하나님으로 알고 있는 자들에게는 불순종과 우상숭배의 고발과 멸망 선포가 악의에 찬 거짓말이거나 남의 이야기로만 들릴 뿐입니다.

(2) 예언자의 고발과 탄식(6-7)

6-7절에서는 화자가 하나님에서 예언자로 바뀝니다(4-5절의 경우처럼 일인칭 화자를 하나님으로 이해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6절 서두의 ‘내가 귀를 기울여 들은 즉’과 7절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는 예언자에게 더 잘 어울립니다.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거리감을 내포한 ‘이 백성’을 사용해 유다의 배반을 고발하였다.) 예언자가 돌아다니며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지만, ‘악을 뉘우쳐서 내가 행한 것이 무엇인고 말하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6a). 아무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치지 않았습니다. 바른길을 벗어났다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기에 돌이켜야 할 이유도 없습니다. 명령에 따라 요란스럽게 전쟁터로 내달리는 군마와도 같이 모두가 앞만 보며 달려갔습니다(6). 철새도 창조주께서 정해놓은 질서를 알아 떠나야 할 때 떠나고 돌아와야 할 때 돌아오는데, 하나님 백성이라는 유다는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고 돌아오지 않습니다(7). 학과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 같은 철새가 때맞춰 이동하지 않으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처럼, 유다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고 거짓을 고집하며 돌아오기를 거절한다면 멸망을 피할 수 없습니다. 현재의 문맥에서 ‘여호와의 규례’는 유다가 하나님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일반적인 규범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지혜자의 어리석음(8-9)

심판이 임박한 유다 백성을 향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복음의 핵심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마 3:2)입니다. 준비하지 않으면 예수님을 맞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지혜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풍성히 맺을 수 있습니다. 이것이 마지막날에 준비할 성도들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8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냐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9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두려워 떨다가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8-9)

고발의 대상이 ‘내 백성’에서 하나님의 법을 맡은 ‘서기관’으로 바뀝니다. 앞 단락과 연결해 읽자면, 서기관들이 하나님의 법을 왜곡했기에 유다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해 멸망합니다. 유다의 맹목적 질주는 서기관의 가르침에 따른 것입니다. 유다는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고 말하지만, 이는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만들어낸 거짓에 불과합니다(8). 철새보다도 못한 자들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떠들고, ‘여호와의 규례’도 알지 못하는 자들이 자신들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고 자랑합니다. 지혜와 율법은 입술의 주장만으로는 인정받을 수 없습니다. 지혜롭다면 지혜 주신 분을,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면 율법 주신 분을 알 수 있어야 합니다.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는 서기관들의 교리적 율법 해석을 고발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에 속한 제사장들과 예언자들이 ‘평강’을 선포한 것처럼 서기관들도 전통적인 구원신학에 근거하여 율법을 해석했습니다. 이들의 왜곡된 율법 해석이 유다로 거짓을 고집하고 여호와께로 돌아오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거짓되게 하는 자들은 결코 지혜로운 자들일 수 없습니다. 지혜로 ‘여호와의 율법’을 해석한다는 서기관들은 부끄러움을 당하고 두려움에 떨며 사로잡혀갈 것입니다(9).

 

평강을 외치는 자들(10-12)

하나님의 말씀을 그의 백성들에게 정확하게 전달하며 순종을 촉구하는 자들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만약 교회가 위로의 말씀과 축복 선언만 외친다면 결국 하나님께 버림받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경고하신 말씀도 강단에서 물려나와야 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경성 하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믿음으로 살아가며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때문입니다.

10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밭을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욕심내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11그들이 딸 내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면서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12그들이 가증한 일을 행할 때에 부끄러워하였느냐 아니라 조금도 부끄러워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얼굴도 붉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들이 엎드러질 자와 함께 엎드러질 것이라 내가 그들을 벌할 때에 그들이 거꾸러지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10-12)

특히 거짓의 붓을 휘두른 서기관을 포함해 제사장과 예언자에게 심판을 선포합니다. 유다 백성도 거짓에 사로잡혀 여호와를 배반하고 그분께 돌아오기를 거절했지만, 이들에게 맹목적 구원의 환상을 심어준 종교 지도자들의 책임은 훨씬 큽니다. 이들은 평강이 없음에도 평강을 외치며 멸망을 향한 유다 백성의 질주를 부추겼습니다. 이들의 거짓 구원을 신뢰한 자들은 가던 길을 되돌릴 이유가 없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벌할 때’ 이들은 모두 넘어지고 쓰러질 것입니다(참조. 6:12-15).

 

북쪽으로부터 오는 적(13-17)

말씀을 떠난 이들에게 남은 것은 열매가 없음입니다. 여호와께서 주신 것이 다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그럼에도 깨닫지 못하고 여호와께로 피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견고한 성읍으로 피하면서 멸망하자고 합니다.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생긴 문제를 여호와를 향하여 핑계하고 불평하고 있는 배은망덕함까지 자행합니다. 마침내 심판의 군대가 탄 말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며 이스라엘 땅과 소유와 성읍과 주님을 삼키게 됩니다.

1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진멸하리니 포도나무에 포도가 없을 것이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가 없을 것이며 그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이 없어지리라 하셨나니 14우리가 어찌 가만히 앉았으랴 모일지어다 우리가 견고한 성읍들로 들어가서 거기에서 멸망하자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으므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멸하시며 우리에게 독한 물을 마시게 하심이니라 15우리가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이 없으며 고침을 입을 때를 바라나 놀라움뿐이로다 16그 말의 부르짖음이 단에서부터 들리고 그 준마들이 우는 소리에 온 땅이 진동하며 그들이 이르러 이 땅과 그 소유와 성읍과 그 중의 주민을 삼켰도다 17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를 너희 가운데 보내리니 그것들이 너희를 물리라 하시도다(13-17)

탐욕스러운 선지자와 제사장들은 끝까지 평강을 외쳤습니다. 그리고 가증한 일을 행할 때 조금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벨론으로 말미암은 멸망의 순간에 백성과 함께 죽임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1) 여호와의 재앙선언(13)

‘우리’에게 심판을 선포하는 이 단락은 ‘이 백성’의 완강한 배반을 고발하는 4-7절의 연속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농부가 포도나무에서 포도를, 무화과나무에서 무화과를 수확하듯 여호와께서는 빠짐없이 모두 거두어들이실 것입니다(13). 여호와께서 농부가 되셔서 거두시기에 어떤 열매도 그냥 지나치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의 축복을 상징하는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다 빼앗기고 잎사귀마저 말라버립니다. ‘내가 그들에게 준 것’은 약속의 땅을 포함해 그분께서 구원의 선물로 주신 모든 것을 포함합니다. 유다는 여호와께서 주셔서 지금까지 누려왔던 구원과 축복의 선물을 모두 빼앗깁니다.

(2) 재앙에 대한 우리의 반응(14-15)

심판에 떨어진 자들의 탄식을 인용해 이들의 절망적 형편을 기술합니다. 적들의 침략에 대한 ‘우리’의 반응 특이합니다. “우리가 어찌 가만히 앉았으랴 모일지어다 우리가 견고한 성읍들로 들어가서 거기에서 멸망하자”(14a). 적이 쳐들어오면 살기 위해 요새로 피신하는데, ‘우리’는 멸망하기 위해 피신합니다. ‘우리’는 견고한 성읍이 자신들의 생명을 지켜주지 못할 것을 압니다. '우리'가 그처럼 절망하는 이유는 전쟁의 신학적 성격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여호와께서 범죄한 ‘우리’에게 독이 든 물을 마시게 하셨기에, 성읍으로 피한들 멸망을 모면하지는 못합니다(14). ‘우리’는 여호와의 심판을 초래한 자신들의 죄악을 너무 늦게 깨닫습니다. ‘우리’는 ‘평강’을 바라나 ‘좋은 것’을 만나지 못하고, ‘고침을 입을 때’를 고대하나 '놀라움뿐인 현실을 탄식합니다(15).

(3) 침략하는 적의 묘사(16)

대적은 이미 유다를 향하여 원정을 떠났습니다. 적의 기병대가 지축을 뒤흔들며 단을 지나 무섭게 진격합니다. 마치 사망의 스올이 생명을 삼켜버리듯 ‘이 땅과 그 소유와 성읍과 그 중의 주민’을 삼켜버립니다(16).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무서운 적군의 돌진입니다. 성들이 함락되고 재물은 약탈당하고, 주민들은 적군의 칼날 앞에서 맥없이 쓰러집니다.

(4) 여호와의 심판선언(17)

이는 여호와께서 보내신 ‘술법으로도 제어할 수 없는 뱀과 독사’이기에, 해독제가 있을 수 없고 피할 수도 없습니다(17; 참조, 민 21:4-9), 독사에게 물린 사람이 고통스럽게 죽어가는 것처럼, 유다가 적들의 침략을 받아 처참하게 멸망합니다.


예레미야는 이러한 외침을 무려 40년이나 외치고 살았습니다. 기적하나 없이 자신이 선포(설교)한 것을 누구도 듣지 않는 현실, 그러나 멸망으로 치닫는 것을 알지 못하고 망해가는 이들과 함께 가야 한다는 현실이 너무도 괴로웠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씀 전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던 그 길을 오늘 걸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해보니 여러 가지로 말씀을 맡은자의 사명의 길이 더욱 무겁게 다가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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