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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08-01)

 


성전과 도벳에 우상숭배하는 사람들

예레미야 7장 29절-8장 3절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집니까? 구원은 이신칭의인,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행위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구원이 임하면 우리 안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됩니다. 하나님의 거룩함이 우리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원이 임하면 삶이 달라집니다. 죄를 미워하고 죄와 싸우고 죄를 떠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구원이 임하면 우리에게 행함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의 우상숭배를 지적합니다. 가장 거룩한 예루살렘 성전 안에 우상을 세워두었습니다. 이는 다분히 의도적이며 하나님께 반역한 행위입니다. 또한 힌놈 골짜기에서 도벳 사당을 세워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더럽힌 유다 백성을 강하게 심판하십니다. 그들이 우상 숭배한 현장들을 전부 죽음의 장소로 바꾸실 것입니다. 멸망의 날에 예루살렘은 죽은 자들의 시신이 무덤에서 꺼내질 정더러 완전히 뒤집어 집니다.

 

우상으로 성전을 더럽힌 유다 백성(29-31)

누구나 고질병이 있습니다. 나았다 싶으면 다시 도져서 또 문제를 일으키는 약점입니다. 유다의 고질병은 우상숭배였습니다. 왜 유다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 숭배를 끊지 못하겠습니까? 우상숭배를 한 자들에게 선포된 말씀이 참 두렵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매섭습니다.

29너의 머리털을 베어 버리고 벗은 산 위에서 통곡할지어다 여호와께서 그 노하신 바 이 세대를 끊어 버리셨음이라 30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유다 자손이 나의 눈 앞에 악을 행하여 내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집에 그들의 가증한 것을 두어 집을 더럽혔으며 31힌놈의 아들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들의 자녀들을 불에 살랐나니 내가 명령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아니한 일이니라(29-31)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며, 자녀를 헛된 우상에게 재물로 드리는 유다 백성의 모습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 진노를 쏟아 부으셔서 그들을 우상에게 제사하던 그곳에서 끔찍하게 살육 당하게 하겠다고 선언하십니다.

(1) 진노의 세대(29)

예언자가 애가의 형식을 빌려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하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는 민족’(28)에게 심판을 선고합니다. “너의 머리털을 베어 버리고 벗은 산 위에서 통곡할지어다”(29). 사람이 죽으면 얘기를 부르듯이 ‘너’는 헐벗은 산 위에서 죽음을 통곡해야 합니다. 아직 목숨이 붙어있기는 하지만, ‘여호와께서 그 노하신 바 이 세대를 끊어 버리셨기에’(29b) 죽음을 피할 길은 없습니다. 애가를 부르는 일만 남았습니다. 애가를 부를 ‘너’는 여성으로, 문맥에 따르면 예루살렘과 유다 또는 가나안 땅이 모두 가능합니다. ‘벗은 산’은 예루살렘과 유다가 우상들과 음란을 즐겼던 산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풍요와 생명을 기대하며 산당에서 제사를 드린 결과로 죽음이 주어집니다. 3:21에서도 예레미야는 환상 가운데 이스라엘 족속이 헐벗은 산에서 애곡하는 소리를 듣습니다. 머리를 미는 행위는 애도의 전통적 풍습에 속하는데(참조. 사 22:12; 겔 7:18; 암 8:10), 여기서는 특별한 표현이 사용됩니다. “머리털을 베어 버리고”는 문자적으로 옮기면 “너의 봉헌물을 잘라 버려라”의 뜻입니다. “머리털”로 옮긴 히브리어 ‘네제르’는 원래 ‘구별되어 하나님께 드려진 것’을 가리킵니다. 아마도 머리에 삭도를 대지 말라는 나실인 규정(민 6:5)과 관련해 의도적으로 선택된 표현 같습니다. 나실인은 서약 기간이 끝난 후에 머리카락을 자를 수 있기에, 머리카락을 잘라 내던지라는 예레미야의 명령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관계가 끝났음을 시사해줍니다. 순종의 봉헌 서약을 어긴 이스라엘은 더는 하나님께 구별된 자가 아닙니다. ‘그 노하신 바 이 세대’는 문자적으로 옮기면 ‘그분 진노의 세대’로, 하나님의 진노가 현세대의 피할 수 없는 운명임을 보여줍니다.

(2) 성전의 우상숭배(30)

다시 여호와께서 화자로 등장해 유다 백성의 죄악을 고발하십니다. 이들은 여호와가 보는 앞에서 노골적으로 악을 행하였습니다. 그분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예루살렘 성전에 가증한 것'을 세워놓고 그 집을 더럽혔습니다(30).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를 점령한 우상들이 예루살렘 성전까지 차지해버렸습니다. 도둑의 소굴이 된(11) 여호와의 집이 우상의 소굴이 되었습니다. 도둑과 우상숭배자들은 여호와께 예배하러 성전 문으로 들어가는 자들입니다. 에스겔도 환상 중에 “여호와의 성전 문 곧 현관과 제단 사이에서 약 스물다섯 명이 여호와의 성전을 등지고 낯을 동쪽으로 향하여 동쪽 태양에게 예배하는 것”을 보았습니다(겔 8:16). ‘가증한 것’을 여호와의 집에 들여다 놓은 자들의 가증함은 한계가 없었습니다.

(3) 도벳의 우상숭배(31)

이들은 예루살렘 남서쪽을 두르고 있는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다 도벳 사당을 세우고 자기 아들들과 딸들을 불에 살라 제물로 드렸습니다(31a). 예루살렘 성전에서부터 거리를 지나 예루살렘 골짜기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우상들이 있었습니다. “내가 명령하지 아니하였고 내 마음에 생각하지도 아니한 일이니라”(31)는 어린아이 희생제사가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께 드려졌음을 시사해줍니다. 어린아이 희생제사가 자신과 전혀 상관이 없다는 하나님의 주장은 다른 한편으로는 어린아이 희생제사를 여호와의 명령에 따른 것으로 받아들인 자들이 있었음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아마도 유다 백성 가운데 일부는 출애굽기 22:29의 ‘네 처음 난 아들들을 내게 줄지며’를 문자적으로 이해하고 원래 바알에게 드려졌던 어린아이 희생 제사를(참조, 렘 19:5; 32:35) 여호와 제의 안에 수용했던 것 같습니다. 미가 6:7의 “내 허물을 위하여 내 맏아들을, 내 영혼의 죄로 말미암아 내 몸의 열매를 드릴까”도 속죄제를 위해 맏아들을 드리는 경우가 있었음을 시사해줍니다. 에스겔 23:37-39도 예레미야의 경우처럼 어린아이 희생제사와 성전 예배를 함께 묶어 우상숭배를 고발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기 자녀를 잡아 우상에게 음식으로 바친 바로 그날 예루살렘 성전으로 돌아와 여호와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전 6세기 전후의 이스라엘이 얼마나 철저하게 종교적 혼합주의에 빠졌는지를 보여줍니다.

 

심판 선고(32-8:3)

하나님께서 가장 미워하는 죄 중 하나는 교만입니다. 성경에서 132번이나 교만에 대해 ‘교만하지 말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교만은 스스로 자신을 높이는 마음입니다.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고 하나님처럼 자신을 높이는 마음, 바로 사탄의 성품입니다.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 어떤 것도 하나님의 진노에서 우리를 벗어나게 해 줄 수 없습니다.

32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날이 이르면 이 곳을 도벳이라 하거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라 말하지 아니하고 죽임의 골짜기라 말하리니 이는 도벳에 자리가 없을 만큼 매장했기 때문이니라 33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 34그 때에 내가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 기뻐하는 소리, 즐거워하는 소리, 신랑의 소리, 신부의 소리가 끊어지게 하리니 땅이 황폐하리라 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의 지도자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주민의 뼈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2그들이 사랑하며 섬기며 뒤따르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에서 펼쳐지게 하리니 그 뼈가 거두이거나 묻히지 못하여 지면에서 분토 같을 것이며 3이 악한 민족의 남아 있는 자, 무릇 내게 쫓겨나서 각처에 남아 있는 자들이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2-8:3)

성전을 가증한 것으로 더럽히고, 자녀들을 불살라 우상에게 바치는 끔찍한 죄를 범한 유다 백성을 향해 하나님께서 힌놈의 아골 골짜기에서 그들이 떼죽임당하게 하심으로 그곳이 살육의 골짜기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1) 도벳의 심판(32-34)

예루살렘이 이방 제의의 각축장이 됐다. 여호와를 위한 자리는 어디에도 없었다. 다른 선택지가 없어진 여호와께서 심판을 결정하신다. 먼저 가증스러움의 극단을 보여준 도벳과 관련한 심판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여호와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심판하실 때 도벳이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죽임의 골짜기’로 바뀔 것입니다(32). 축복과 번영을 기대하며 우상을 섬겼던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가 멸망과 죽음의 상징이 됩니다. 죽은 자들이 너무 많아 매장지가 없어 제의장소인 도벳에 시체를 묻게 됩니다. 어린아이를 불살라 바치던 도벳이 공동묘지가 됩니다. 가증한 짓이 행해지던 곳이 가증한 짓을 행하던 자들의 시체로 더럽혀집니다. 여호와의 심판은 전면적이고 파멸적입니다. 매장되지 못하고 들판에 버려진 수많은 시체는 날짐승과 들짐승의 밥이 됩니다(33). 새와 들짐승이 시체를 뜯어먹지만, 그것들을 쫓아내고 시체를 지켜줄 사람이 없습니다. 기쁨과 즐거움의 소리로 활기가 넘치던 유다 성읍들과 예루살렘 거리에는 죽음의 적막이 감돕니다(34). 땅이 완전히 황폐해져 생존이 불가능하기에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도 사라집니다. 도벳에서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친 결과로 자녀들이 완전히 끊어집니다.

(2) 완전한 멸망(8:1-3)

여호와의 심판은 산 자에게만 임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덤에서 쉬고 있던 자들도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그때에 사람들이 유다 왕들의 뼈와 그의 지도자들의 뼈와 제사장들의 뼈와 선지자들의 뼈와 예루살렘 주민의 뼈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그들이 사랑하며 섬기며 뒤따르며 구하며 경배하던 해와 달과 하늘의 뭇 별 아래에서 펼쳐지게” 할 것입니다(1-2).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의 무덤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의 무덤까지도 훼손되어 이들의 뼈가 땅 위에 분토처럼 내버려집니다. 고대 세계에서 무덤은 고인의 영원한 안식처였기에, 때로는 복수의 차원에서 안식을 누릴 수 없게 무덤에서 뼈를 꺼내 들판에 내버리기도 했습니다. 들판에 버려진 뼈는 우상들의 무능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우상들은 한때 자기들을 섬겼던 자들의 무덤이 파헤쳐져도 속수무책입니다. 우상숭배자의 수치는 우상의 수치이기도 합니다. 들판에 나뒹구는 숭배자들의 뼈로 그들이 한때 신으로 섬겼던 “해와 달과 하늘의 별”이 더럽혀집니다. 우상숭배자들에게는 죽음도 안식으로 허락되지 않습니다. 헛것을 숭배한 대가로 영원한 저주가 주어집니다. 마지막 절은 산자의 심판이 얼마나 철저하게 집행될지를 보여줍니다. “이 악한 민족의 남아 있는 자, 무릇 내게 쫓겨나서 각처에 남아 있는 자들이 사는 것보다 죽는 것을 원하리라”(3). 전쟁의 심판에서 살아남았다고 목숨을 구한 것은 아닙니다. 살아남은 자들의 운명이 죽은 자들의 운명보다 더 비참할 것입니다. 이들은 유배지에서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고향에서 쫓겨나 사방으로 흩어진 자들은 절망적인 현실 앞에서 차라리 죽음을 소망할 것입니다.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이 모두 우상숭배에 빠졌기에 아무도 여호와의 심판을 피해 가지 못합니다.


우상 또한 피조물이며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를 위해 해코지도 무엇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것들입니다. 지금 심각한 것은 일월성신 이상으로 우리를 위협하는 돈의 우상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신앙을 왜곡시키고, 주권을 휘청거리게 하고, 탐욕을 부추기고, 법과 정의를 굽게하고, 교회를 부정하게 합니다. 우리가 정말로 사랑하며 섬기며 뒤따르며 구하며 경배해야 할 대상은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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