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06-02)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들
예레미야 6장 16-30절
옛날에는 남자와 여자가 주유소를 들어간 이유가 다르다고 합니다. 여자들은 주유소에 길을 물어보기 위해 들어가지만, 남성들은 길을 찾아 헤매다가 기름이 바닥나서 주유소를 찾는다고 합니다. 사실은 어리석은 모습입니다. 자신의 고집과 안다고 생각하는 경험에 묶여서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들도 자칫 잘못하면 목적지에서 멀리 떨어져서 헤맬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길을 가르쳐주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에게 길이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바른 길의 인생을 살아가라고 하십니다. 우리 앞에도 여러 길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생의 길을 물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부하고 그분의 법을 버렸기 때문입니다. 북방에서 치러 오는 민족은 아주 잔인하고 무자비해 유다 백성은 두려워 떨며 고통스러워할 것입니다. 유다는 내어 버린 은이라 칭함 받을 것입니다.
선한 길을 택하라(16-21)
사람들은 새것과 새로운 방법이 신앙생활에 좋으리라 기대합니다. 때로는 그것이 오히려 교회를 넘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말씀에 다 들어 있음을 인정하고,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무엇보다 우선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민이었던 유다 백성들의 실수는 무엇이었습니까? 이전에 알려주셨고, 언약으로 보여주셨고, 지시하신 많은 계명과 율법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방법대로 살아가지 않았습니다. 본문에서는 원리를 따르지 않는 유다 백성들의 경고가 나옵니다.
16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그리로 행치 않겠노라 하였으며 17내가 또 너희 위에 파숫군을 세웠으니 나팔소리를 들으라 하나 그들의 대답이 우리는 듣지 않겠노라 하였도다 18그러므로 너희 나라들아 들으라 무리들아 그들이 당할 일을 알라 19땅이여 들으라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 20시바에서 유향과 먼 곳에서 향품을 내게로 가져옴은 어찌함이냐 나는 그들의 번제를 받지 아니하며 그들의 희생제물을 달게 여기지 않노라 21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내가 이 백성 앞에 장애물을 두리니 아버지와 아들들이 함께 거기에 걸려 넘어지며 이웃과 그의 친구가 함께 멸망하리라(16-21)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에게 ‘옛길 길’이 ‘선한 길’이라 하시면서 그리로 가야 평강을 얻는다고 하셨지만, 그들은 그 말씀을 거부했습니다. 또한 나팔을 부는 파수꾼을 세워 주셨으나 그 경고도 듣지 않았습니다.
(1) 최고적 고발(16-17)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역사를 되돌아보며 살길을 찾으라고 권면하십니다.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16). 이스라엘은 지금의 길을 버리고 생명으로 인도해주던 옛길(참조. 18:15)을 찾아 그 길로 가야 합니다. ‘옛적 길’은 출애굽ㅡ광야 가나안에 이르는 길을 가리킵니다. 애굽을 떠나서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들어가는 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따라간 길이었습니다. ‘선한 길’은 생명과 축복과 평강과 같은 선한 것이 주어지는 길입니다. 하지만 오래 전부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권면을 단호하게 거절했습니다(16). 지금의 길이 선한 길이고 가나안의 물질적 삶에서 ‘평강’(쉼터)을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옛적 길’을 찾아 되돌아갈 이유가 없다고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 파수꾼(예언자)을 세워 나팔 소리를 들려주셨지만, 그들은 귀를 막고 듣기를 거절했습니다(17). 평강의 선포에 길들여진 귀(14)는 회개를 외치는 파수꾼의 경고를 듣기 싫은 소음으로 여겼습니다.
(2) 심판 선언(18-19)
하나님께서 ‘나라들’과 ‘땅’을 증인으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완강하게 거절한 이스라엘을 재판하십니다. 모든 민족이 알도록 이스라엘에 대한 판결을 공개적으로 선포하십니다. 판결은 징벌보다 그 원인에 초점이 맞춰집니다. “내가 이 백성에게 재앙을 내리리니 이것이 그들의 생각의 결과라 그들이 내 말을 듣지 아니하며 내 율법을 거절하였음이니라”(19).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재앙을 내리시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재앙은 유다가 자초한 것이기도 했습니다. 유다의 (잘못된) 생각이 자라나서 결실한 (악한) 열매가 재앙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자기 생각과 계획에 따라 살았기에, 그들에게 재앙이 임하게 됩니다. 불순종의 씨를 뿌린 이스라엘은 재앙의 열매를 거둔다. 동사 ‘듣다’와 17절의 ‘파수꾼’을 함께 고려할 때, ‘내 말’은 파수꾼-예언자들을 통해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키는 것 같습니다.
(3) 제의적 고발(20)
현재의 문맥에서 제의적 경건을 비판하는 20절은 ‘그들의 생각의 결과’의 구체적인 예에 해당합니다. 시바에서 들여오는 값비싼 유향과 먼 땅에서 가져오는 귀한 향품으로 분향한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겠습니까? 기름지고 풍성한 번제물과 희생 제물에 하나님께서 배부르시겠습니까? 귀하고 값진 예물과 풍성한 제사가 그분의 말씀과 율법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참조. 14:12; 사1:11: 암 5:22).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저들만의 행사에 불과합니다. 이스라엘의 제의적 경건은 ‘그들의 생각’에 따른 것이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모습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원하시는 것은 ‘옛적 길’을 찾아 그 길을 가는 삶, 곧 그분의 말씀과 율법에 순종하는 삶입니다. 여기서 ‘유향’은 제사 때 피우는 거룩한 향을 만드는 주재료고(출 30:34), ‘향품’으로 번역한 ‘카네 하톱’은 창포나 향초 줄기를 가리킵니다(출 30:23). 유향과 향품은 모두 먼 곳에서 들여오는 귀한 수입품이었습니다. 유향과 황금, 향료와 보석으로 유명했던 시바는 아마도 아라비아 남부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4) 신판 선언(21) ‘옛적 길’을 찾아 그 길로 걷기를 거절한 이스라엘에게 심판이 선포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길에다가 장애물을 놓아 이스라엘이 걸려 넘어지게 하십니다(21). ‘그들의 생각의 결과’(19)라는 점에서 멸망은 이스라엘이 초래한 재앙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장애물을 두어 걸려 넘어지게 하셨다는 점에서 멸망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대한 그분의 심판입니다. 하나님께서 놓으신 장애물이기에 넘어짐과 멸망에 예외는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들’(집안)과 ‘이웃과 그의 친구’(공동체)가 함께 넘어져 멸망합니다.
위기의 시온(22-26)
평강은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선한 길로 행할 때 옵니다. 우리는 앞에 놓인 여러 길 가운데 생명의 길, 진리의 길,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을 선택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당장 눈앞에 보이는 넓고 편한 길을 선택합니다. 하지만 불순종한 결과는 재앙과 장애물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들은 수천 년간 말씀 위에 서 있을 때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할 수 있었습니다. 이 역사를 무시하고 새로운 흐름을 따르겠노라며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22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한 민족이 북방에서 오며 큰 나라가 땅 끝에서부터 떨쳐 일어나나니 23그들은 활과 창을 잡았고 잔인하여 사랑이 없으며 그 목소리는 바다처럼 포효하는 소리라 그들이 말을 타고 전사 같이 다 대열을 벌이고 시온의 딸인 너를 치려 하느니라 하시도다 24우리가 그 소문을 들었으므로 손이 약하여졌고 고통이 우리를 잡았으므로 그 아픔이 해산하는 여인 같도다 25너희는 밭에도 나가지 말라 길로도 다니지 말라 원수의 칼이 있고 사방에 두려움이 있음이라 26딸 내 백성이 굵은 베를 두르고 재에서 구르며 독자를 잃음 같이 슬퍼하며 통곡할지어다 멸망시킬 자가 갑자기 우리에게 올 것임이라(22-26)
옛적부터 전해 내려오는 선한 길을 떠나 먼 곳에서 온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자들에게 임할 것은 먼 곳에서 올 재앙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북방에서 잔인하고 강한 나라가 쳐들어올 것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새로운 것을 추구하던 자들에게 임한 새로운 소식은 그 손을 약하게 하고 고통을 줄 뿐입니다.
(1) 북방에서 오는 민족(22-23)
시온을 치려고 ‘북방에서’ 한 민족이 내려오고, ‘땅 끝에서부터’ 큰 나라가 일어납니다(22). 두려움과 놀람을 불러일으키는 강한 민족이 시온을 향해 원정을 떠납니다. 이들은 활과 단창으로 무장한 잔인하고 무자비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바다가 포효하듯 함성을 지르며 말을 타고 급히 달려옵니다(23).
(2) ‘우리’의 반응(24)
시온의 주민은 북방에서 무서운 적이 내려온다는 소식을 듣는 것만으로도 힘이 빠져 손이 축 처지게 됩니다. 시온의 주민은 마치 해산하는 여인처럼 공포에 사로잡혀 자신들을 죽은 목숨과도 같이 여깁니다(24).
(3) 예언자의 권고(25-26)
유다 백성은 적을 보기도 전에 겁에 질려 용기를 잃고 절망합니다. 시온의 주변이 언제 적군의 수중에 떨어질지 모르기에 목숨을 잃지 않으려면 숨어 있어야 합니다. 원수의 칼이 높이 들려 ‘사방에 두려움’뿐이기에 밭으로 나가거나 길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25). 파괴자가 ‘갑자기’ 덮쳐올 것입니다. 시온은 이미 죽은 목숨이기에 죽음을 애도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굵은 베를 두르고 재에서 구르며 독자를 잃음 같이 슬퍼하며 통곡할” 뿐입니다(26). 이는 많은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애곡하는 의식이 행해질 것임을 암시합니다. 시온의 통곡은 집안을 이어갈 외아들을 잃고 울부짖는 여인의 통곡처럼 처참할 것입니다.
내버린 은(27-30)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하나는 공의와 심판입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백성을 한없는 사랑으로 인내하시며 권고하십니다. 하지만 죄악이 범람할 때는 반드시 심판의 매를 드십니다. 하나님의 반복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하면, 결국 하나님은 잔인하고 포악한 바벨론 사람들을 일으키셔서 유다 백성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27내가 이미 너를 내 백성 중에 망대와 요새로 삼아 그들의 길을 알고 살피게 하였노라 28그들은 다 심히 반역한 자며 비방하며 돌아다니는 자며 그들은 놋과 철이며 다 사악한 자라 29풀무불을 맹렬히 불면 그 불에 납이 살라져서 단련하는 자의 일이 헛되게 되느니라 이와 같이 악한 자가 제거되지 아니하나니 30사람들이 그들을 내버린 은이라 부르게 될 것은 여호와께서 그들을 버렸음이라(27-30)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경고의 메시지를 전하셨지만 유다 백성은 들으려 하지 않았습니다(27). 이에 하나님께서는 은제련 비유를 통해 유다를 버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 시금자 예레미야(27)
하나님께서 예언자에게 유다 백성의 영적 상태를 조사하는 임무를 맡기십니다. “내가 너를 내 백성 중에 시금자(와 검사자)로 세워 저들의 길을 살펴 시험하게 하였노라”(27). 시금자는 광석에서 뽑아낸 금속의 순도를 조사하는 사람입니다. 예언자는 시금자로서 하나님 백성이 바른길을 가는지, 그분 말씀에 순종하며 율법을 따라 사는지를 살펴 조사해야 합니다. 현재의 문맥에 따르면, 2-6장에 수집된 고발의 말씀들은 예언자가 시금자의 임무를 수행했음을 보여준다. 시금자 예언자는 그 기능에서 파수꾼-예언자(6:17)에 가깝습니다.
(2) 시험의 결과(28-23)
개역개정의 번역에 따르면 28-30절은 맡겨진 사명에 따라 조사를 수행한 시금자-예언자의 보고로서, 그 결과는 아주 부정적입니다. “그들은 다 심히 반역한 자며 비방하며 돌아다니는 자며 그들은 놋과 철이며 다 사악한 자라”(28). 하나님께서 ‘내 백성’이라 부르는 자들이 모두 고집 센 반역자, 헐뜯고 돌아다니는 자, 멸망을 가져오는 부패한 자였습니다. 전반절과 후반절에 한 번씩 사용된 ‘그들은 다’라는 어구는 유다 백성 전체가 타락했음을 강조합니다. 완고함과 공격성을 상징하는 ‘놋과 철’은 유다 백성과 예레미야를 대비시켜줍니다. 1:18에 따르면 하나님은 예레미야를 “그 온 땅과 유다 왕들과 그 지도자들과 그 제사장들과 그 땅 백성 앞에 견고한 성읍, 쇠기둥, 놋성벽이 되게” 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 백성은 자신들을 ‘놋과 철’로 만들어 하나님과 그의 예언자에게 완강하게 대듭니다. 예언자의 사역은 실패한 제련과정에 비교됩니다. 풀무에 광석을 넣고 화학 물질을 첨가한 후에 불을 지피면 불순물이 제거되고 순수한 은이 남는데, 풀무불을 더욱 세게 지펴 뜨겁게 해보았지만, 금속과 불순물이 나누어지지 않았습니다(29). 이스라엘을 다시 깨끗하게 하려는 하나님과 예언자의 노력이 결실을 보지 못하고 실패했음을 비유합니다. 예언자는 강도를 높여가며 이스라엘의 부패를 고발했지만, 어떤 긍정적 반응도 얻어내지 못했다. 하나님은 사랑의 매를 들어 치셨지만, 이스라엘은 깨닫지를 못하고 더욱 완고하게 저항했습니다. 풀무불에 들어갔지만 은을 뽑아내는 데 실패한 광석이 쓸모없는 놀로 버려지는 것처럼, 경고의 말씀을 듣고도 죄악에서 떠나기를 거절하는 이스라엘은 버려집니다(30). 하나님께서 당신의 율법을 버린(19) 이스라엘을 버려, ‘내버린 은’이 되게 하십니다.
형식만 있고 마음은 없는 예배를 하나님께서는 책망하십니다. 값비싼 유향과 향품을 동원한 호화스러운 예배도 하나님을 기쁘게 하실 수 없었습니다. 많은 헌금과 근사한 찬양대와 오케스트라를 앞세워도 하나님께서는 예배한 자의 순종과 정직한 고백이 없으면 그 예배를 가증스럽게 여기십니다. 형식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으로 순종의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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