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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10-01)

 


다윗에 대항하는 암몬

사무엘하 101-19


오해는 것은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할 때,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은혜를 기억하고 기회가 왔을 때 갚으려는 행동은 그 자체로 감동적입니다. 상대방의 진심으로 모르고 행동할 때, 얼마나 많은 잘못된 반응을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그로인해 자신만 손해 본 것이 아니라 주변과 모든 사람들이 본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다윗이 베푼 은혜를 받아들여 복을 누리게 된 므비보셋(9)과 달리, 다윗의 은혜를 오해하고 거절하는 하눈을 봅니다. 10장은 전쟁에서 패배하는 하눈 이야기입니다. 다윗은 암몬 왕 하눈에게 암몬 왕의 나하스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조문 사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진심어린 사랑과 배려가 오히려 오해를 받아 모욕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은총을 배신을 갚은 암몬(1-5)

싸움이나 전쟁이 불가피할 때가 있습니다. 성도에게 싸움은 잘 어울리는 단어는 아니지만 때로는 불가피하게 불의와 싸워야 하고 세상과 싸워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싸움의 현장에서도 형제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은총은 그들이 맺고 있는 모든 관계 속에 다 반영되어야 합니다.

 

1그 후에 암몬 자손의 왕이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대신하여 왕이 되니 2다윗이 이르되 내가 나하스의 아들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되 그의 아버지가 내게 은총을 베푼 것 같이 하리라 하고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보내 그의 아버지를 조상하라 하니라 다윗의 신하들이 암몬 자손의 땅에 이르매 3암몬 자손의 관리들이 그들의 주 하눈에게 말하되 왕은 다윗이 조객을 당신에게 보낸 것이 왕의 아버지를 공경함인 줄로 여기시나이까 다윗이 그의 신하들을 당신에게 보내 이 성을 엿보고 탐지하여 함락시키고자 함이 아니니이까 하니 4이에 하눈이 다윗의 신하들을 잡아 그들의 수염 절반을 깎고 그들의 의복의 중동볼기까지 자르고 돌려보내매 5사람들이 이 일을 다윗에게 알리니라 그 사람들이 크게 부끄러워하므로 왕이 그들을 맞으러 보내 이르기를 너희는 수염이 자라기까지 여리고에서 머물다가 돌아오라 하니라(1-5)

은혜를 기억하는 다윗은 요나단과의 언약을 기억하고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었는데, 이번에는 암몬이 베푼 은혜를 기억하고 보답하고 있습니다. 은총의 선순환이라는 하나님의 경제를 실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베푸신 은총와 보호와 용납을 다시 이웃에게 돌려주는 나라입니다.

 

(1) 암몬 왕의 죽음과 하눈의 즉위(1)

암몬 왕 나하스가 죽고 그의 아들 하눈이 왕위에 오르자 다윗은 하눈에게 사절단을 보내어 평화조약을 맺으려고 하였습니다. 암몬 왕 나하스는 사무엘상 11장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른쪽 눈을 빼야 언약을 맺겠다며 협박하던 인물입니다. 이때 막 왕이 된 사울은 소 한 거리를 잡고 열두 조각을 낸 다음 이스라엘 각 지파에 보내어 이스라엘 백성을 소집하였고, 결국 이 전쟁에서 크게 승리하였습니다. 이 전쟁 이후에 나하스는 사울과 적이 되었기 때문에 사울을 피하여 도망 다니던 다윗과는 우호 관계를 맺게 되었고, 그것은 다윗이 왕이 된 이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2) 다윗의 사절단 파견(2)

다윗은 나하스가 죽은 이후에도 계속해서 우호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새로 왕이 된 하눈에게 죽은 나하스를 조문하는 사절단을 파견하였습니다. 다윗이 사절단을 통해 하눈의 아버지가 내게 은총을 베푼 것처럼 자신도 하눈에게 은총을 베풀겠다고 말하는데, 은총으로 번역된 헤세드는 주로 언약적 관계에서 사용되는 단어로 나하스와 우호조약을 맺은 것처럼 하눈에게도 우호조약을 맺자고 말하는 것입니다.

 

(3) 모욕당한 사절단(3-5)

하지만 이런 다윗의 의도와는 다르게 하눈의 신하들은 다윗이 사절단을 보낸 것이 단순히 나하스를 공경하는 마음으로 조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을 정탐하여 함락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다윗이 승승장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도 공격할지 모른다고 걱정한 것입니다. 신하들의 말을 들은 하눈은 사절단에게는 호의를 베푸는 일반적인 관례를 깨고 그들의 수염 절반을 자르고 옷도 절반 길이로 잘라 엉덩이가 드러나게 만들었습니다. 수염은 고대 근동에서 남성의 상징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수염을 자른다는 것은 거세를 의미하는 매우 모욕적인 행동이었습니다.

사절단에게 이런 모욕을 주는 것은 그들을 보낸 다윗을 모욕하는 행위로, 다윗이 제안한 우호조약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전쟁을 하겠다고 도발한 것입니다. 이런 소식이 다윗에게 전해졌고, 다윗은 모욕을 당하고 돌아온 사람들을 맞이하고 위로하기 위해 사람들을 보냅니다. 그들에게 수염이 다 자라서 모욕의 흔적이 없어질 때까지 여리고에 머물면서 쉬라고 배려해줍니다. 예루살렘으로 바로 돌아오면 많은 사람들이 보고 될 것이고, 사절단 사람들이 창피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리고는 요단 동편에 있는 아람에서 요단 서편으로 넘어오는 관문이기 때문에, 사절단을 여리고에 머물라고 한 것입니다.

 

암몬과 아람의 공동 작전(6-14)

상대방의 선의를 의심할 때 갈등은 증폭되고, 때로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치닫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받을 계산을 하지 말고 사랑을 나누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랑을 거부하며 싸우기를 작정한 자들에게는 싸움을 수 밖에 없습니다. 거룩한 싸움에는 누구도 예외가 있을 수 없습니다. 주님이 모범을 보이셨듯이, 진정한 리더는 ‘나를 따르라!’고 외쳐야 합니다. 

 

6암몬 자손들이 자기들이 다윗에게 미움이 된 줄 알고 암몬 자손들이 사람을 보내 벧르홉 아람 사람과 소바 아람 사람의 보병 이만 명과 마아가 왕과 그의 사람 천 명과 돕 사람 만 이천 명을 고용한지라 7다윗이 듣고 요압과 용사의 온 무리를 보내매 8암몬 자손은 나와서 성문 어귀에 진을 쳤고 소바와 르홉 아람 사람과 돕과 마아가 사람들은 따로 들에 있더라 9요압이 자기와 맞서 앞뒤에 친 적진을 보고 이스라엘의 선발한 자 중에서 또 엄선하여 아람 사람과 싸우려고 진 치고 10그 백성의 남은 자를 그 아우 아비새의 수하에 맡겨 암몬 자손과 싸우려고 진 치게 하고 11이르되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가서 너를 도우리라 12너는 담대하라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담대히 하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13요압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아람 사람을 대항하여 싸우려고 나아가니 그들이 그 앞에서 도망하고 14암몬 자손은 아람 사람이 도망함을 보고 그들도 아비새 앞에서 도망하여 성읍으로 들어간지라 요압이 암몬 자손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니라(6-13)

하눈은 다윗의 조문단을 첩자로 간주했고, 그들에게 수치를 줌으로써 다윗을 모독했습니다. 이러한 행동은 선전포고나 다름없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선의를 왜곡해서 전쟁을 초래하는 어리석은 행동을 한 것입니다.

 

(1) 암몬의 용병이 된 아람 군대(6)

암몬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온 사절단을 모욕한 것 때문에 암몬에 대한 다윗의 적대 감정이 고조된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전의 호의적 관계가 완전히 깨진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암몬의 하눈과 신하들은 자신들의 행동의 결과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고 다윗의 사절단을 모욕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 전선의 형성(7-8)

하지만 다윗이 이 사건으로 분노하였고, 이에 따라 전쟁의 위협이 커지자 이에 대처하기 위해 이스라엘 북쪽에 있는 벨르홉의 아람 사람들과 소바의 아람 사람의 보병 이만 명과 마아가 왕과 그의 군인 천 명과 요단 동편의 돕 사람만 이천 명을 고용합니다. 돕은 작은 도시 국가로 갈릴리 바다 남동쪽에 위치합니다. 이스라엘 주변에 있는 많은 도시 국가들과 동맹을 맺고 용병을 고용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확장을 막기 위해 주변 나라들이 암몬에 협조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변 나라들이 위협을 느낄 만큼 다윗이 승승장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암몬이 군대를 소집했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이들을 상대하기 위해 요압과 군대를 보냅니다. 요압과 그의 모든 용사들을 보내는데, 그 규모가 얼마인지는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암몬과 아람의 연합군보다는 많지 않았을 것입니다. 8절에서 암몬이 전쟁을 하기 위해 진을 친 곳이 성문 앞이라고 하는데, 암몬의 성읍인 랍바일 것입니다(삼하 11:1). 그리고 암몬을 돕기 위해 온 부대는 들판에 따로 진을 치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요압의 군대를 가운데 두고 앞뒤로 포위하고 있는 상황을 말하는 것으로 요압의 군대가 다수의 적들에게 포위를 당하여 매우 위험한 상황에 놓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 요압의 계책(9-12)

다윗의 신하 요압은 이렇게 앞뒤로 포위되자 부대를 둘로 나누어 아랍과 암몬을 각각 상대하는 전법을 세웁니다. 요압은 군사들 중에서 최정예 군인들로 한 부대를 만들어 아람과 싸울 부대를 구성하고 나머지 군사들은 아비새에게 맡겨 암몬을 상대하게 하였습니다. 요압이 아람을 상대하기 위해 정예 부대를 만든 것을 보면 아람의 군대가 암몬의 군대보다 더 위협적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면서 요압은 아비새에게 서로 불리하면 돕자고 약속하고, 우리 하나님의 성읍과 백성을 위해서 담대하자고 권면합니다. 여기 하나님의 성읍은 이스라엘이 차지하고 있는 요단 동편 지역 성읍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요압은 하나님의 성읍을 지키기 위해 담대해야 한다고 말하며, 여호와께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행하시길 기원합니다. 여기서 요압은 매우 신실한 모습을 보이는데, 이런 모습은 매우 다윗을 닮았습니다. 수적으로 열세인 상황에서 다윗처럼 여호와를 의지하고 있습니다.

 

(4) 요압과 아비새의 승리(13-14)

요압과 그와 함께한 군대는 아람과 싸우기 위해서 다가갔고 아람 군대는 도망하였습니다. 암몬 군대는 아람 군대가 도망가는 것을 보고 아비새 군대와 싸울 생각을 하지 않고 성 안으로 들어가 숨습니다. 이렇게 요압과 아비새는 아람과 암몬을 이기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본문에서 요압의 군대가 어떻게 싸웠는지 그리고 여호와께서 어떻게 개입하셨는지는 언급되고 있지 않지만, 요압의 군대가 나갔고 아람 군대가 도망갔다고 간략하게 언급한 것은 여호와께서 요압의 믿음에 응답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비록 요압의 믿음이 일시적이고 한정되어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요압의 이런 일시적인 믿음에도 응답하시고 전쟁에서 아람 군대를 물리치신 것입니다.

 

다윗이 아람과의 전쟁에서 이김(15-19)

상대방의 호의를 거절해야 할 때 수치심을 겪지 않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남을 대려하지 않고 사욕에 급급해서는 안 됩니다. 사욕을 위한 싸움은 추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한 싸움이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싸움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의를 위한 싸움이라면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15아람 사람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였음을 보고 다 모이매 16하닷에셀이 사람을 보내 강 건너쪽에 있는 아람 사람을 불러 내매 그들이 헬람에 이르니 하닷에셀의 군사령관 소박이 그들을 거느린지라 17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알리매 그가 온 이스라엘을 모으고 요단을 건너 헬람에 이르매 아람 사람들이 다윗을 향하여 진을 치고 더불어 싸우더니 18아람 사람이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한지라 다윗이 아람 병거 칠백 대와 마병 사만 명을 죽이고 또 그 군사령관 소박을 치매 거기서 죽으니라 19하닷에셀에게 속한 왕들이 자기가 이스라엘 앞에서 패함을 보고 이스라엘과 화친하고 섬기니 그러므로 아람 사람들이 두려워하여 다시는 암몬 자손을 돕지 아니하니라(15-19)

수치심이 관계의 파국을 초래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수치심을 회복할 시간과 장소가 필요합니다. 다윗은 조문단이 잃어버린 품위를 되찾을 시간과 공간을 제공해주었습니다.

 

(1) 아람 군대의 전격(15-16)

이스라엘에게 패한 뒤 아랍 사람들은 다 같이 모였고하닷에셀은 강 건너편에 있는 아람 사람들까지 전쟁을 위해 불러들였습니다. 이 강은 유브라데 강으로 사무엘하 8:3에서 하닷에셀이 유브라데로 보냈던 아람 군대를 이때 불러들인 것입니다. ‘헬람은 요단 동편 북쪽 지역으로 다메섹과 하맛 사이 지역으로 추측됩니다. 이 지역이 다윗 왕국과 멀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다윗은 위협을 받고 이들을 물리치기 위해서 이스라엘 군대를 모아 요단강을 건너 헬람까지 진격합니다. 그리고 헬람에서 다윗은 아람군대와 싸웠고, 아람 군대는 또다시 이스라엘 앞에서 도망합니다. 아람 군대의 이런 모습은 요압과 싸웠을 때와 동일합니다.

 

(2) 다윗의 승리(17-18)

이렇게 다윗이 아람을 이긴 것은 사무엘하 8:14에서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다는 표현처럼 여전히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다윗은 매우 큰 성과를 얻어 아람의 병거 모든 사람 칠백 명과 마병 사만 명을 죽이고 군사령관 소박까지 죽입니다.

 

(3) 전쟁의 결과(19)

다윗이 이렇게 아람 군대에 치명타를 가하자 하닷에셀을 섬기던 도시의 왕들이 이스라엘에게 화친을 청하여 이스라엘을 종주국으로 섬기게 되었습니다. 다시는 암몬 자손을 돕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윗이 어디를 가든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며 전쟁에서 이기게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다윗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다윗을 통해 주변 나라들은 여호와의 살아계심과 위대한 능력을 알게 된 것입니다. 지도자 한 사람의 올바른 신앙은 그 공동체를 강하게 만들며 공동체 사람들과 그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바로 알리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 호의를 베풀었다고 다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거절할 때 상대방이 수치심을 느끼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인간이 수치심을 경험하면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되고, 자존감이 추락하고, 그 결과 서로의 관계가 심각하게 손상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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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09-01)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선대한 다윗

사무엘하 9장 1-13절


옛 어르신들은 ‘은혜를 모른 사람은 짐승만도 못하다.’라고 가르쳐왔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은혜를 바르게 안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면서 살아갔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도 사람의 은혜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다윗은 주변 나라들과의 전쟁에서 이기고 에돕과 다메섹을 속국으로 삼았습니다. 사울의 손자이며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에 관한 기록입니다. 다윗이 사울의 집에 남은 사람이 있는지 조사해보니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로드발 마길의 집에 있던 므비보셋을 예루살렘으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가 항상 왕과 함께 식사하게 하였으며, 그에게 사울의 땅을 되돌려주고, 사울의 종이었던 시바로 하여금 므비보셋의 땅을 관리하게 했습니다.
 

므비보셋 소개(1-5)

성도들은 세상의 법칙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보다 더 고귀하고 고상한 천국 가치관으로 살아갑니다. 세상을 사랑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때, 놀라운 구원의 은혜와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고, 그 은혜를 나누어주는 역사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1다윗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니라 2사울의 집에는 종 한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시바라 그를 다윗의 앞으로 부르매 왕이 그에게 말하되 네가 시바냐 하니 이르되 당신의 종이니이다 하니라 3왕이 이르되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없느냐 내가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고자 하노라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요나단의 아들 하나가 있는데 다리 저는 자니이다 하니라 4왕이 그에게 말하되 그가 어디 있느냐 하니 시바가 왕께 아뢰되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나이다 하니라(1-4)
사무엘하 8장에서 다윗은 정복 전쟁을 통해 대외적으로 주변 나라들을 차례로 정복하고, 대내적으로 행정 조직을 정비해 나가는 가운데 강력한 통일 이스라엘 왕국을 구현해 강해지고 주권적인 위치에 안정이 됐습니다. 이제 안정되어가면서 그동안 사람들과의 약속을 돌이켜 봅니다. 그중에 과거에 요나단과 맺은 언약을 충실하게 지키려고 합니다.
 
(1) 다윗의 조사(1)
통일 왕국을 효율적으로 통치할 관료 조직을 완비한 후, 정권이 안정됩니다. 그후에 다윗은 요나단과의 약속을 기억합니다. 그래서 사울의 가문에 아직 남아 있는 후손이 있는지를 물으며, 요나단과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 남아 있는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겠다고 말합니다(1).
사무엘상 20:15에서 요나단은 다윗을 사울의 손에서 살려 보내면서 자신과 자신의 집에 인자함을 영원히 끊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였고, 다윗은 이에 대해 요나단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살려주고 자신에게 은혜를 베푼 요나단을 기억하고 정권이 안정되자 요나단과의 언약을 지키기 위해 그의 가족을 찾은 것입니다.
 
(2) 시바에 대한 소개(2)
여기서 ‘시바’라는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는 사울 왕조를 섬기던 신하였으며, 다윗의 신하들이 그를 찾아서 다윗에게 데리고 옵니다. 그는 아마도 사울 왕가에 속한 토지와 재산을 관리하던 인물이었습니다. 현재 그 토지와 재산은 다윗 왕가에 귀속되었습니다.
시바는 다윗에게 오자 자신은 ‘당신의 종’이라고 고백합니다. 과거에는 사울 왕조의 신하였지만, 이제는 다윗을 왕으로 섬기고 있다고 고백하여 다윗에게 잘 보이려고 노력하였습니다.
 
(3) 다윗과 시바의 대화(3-4)
다윗은 시바에게 지금까지 사울 집에 남은 사람이 없는지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기 위해 찾는다고 설명합니다. 자신의 의중은 그 후손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총을 베풀기 위해서 사울의 가문 사람을 찾는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거론하여 얼마나 진심으로 은혜 베풀기를 원하는지를 강조합니다.
이에 시바는 요나단의 아들이 한 명 남았는데, 다리를 저는 장애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다리를 저는 자’라는 표현에서 우리는 그가 사무엘하 4:4에서 언급된 므비보셋임을 알게 됩니다. 시바가 므비보셋이 다리를 전다는 사실을 먼저 알린 것은 그가 다윗에게 전혀 위험이 되지 않는 인물이라는 것을 암시적으로 알려주기 위해서입니다.
요나단의 아들이 살아있다는 말에 다윗이 어디에 있는지 묻자, 시바는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다고 알려줍니다(4). 이것을 알고 있는 것을 보면 시바는 여전히 사올의 가문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로드발’은 한 때 이스보셋이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았던 요단 동면 마하나임 근처의 도시이며, ‘마길’이란 이름은 구약에서 므낫세의 아들이 있었고 길르앗의 아버지였습니다. 이름과 지역으로 볼 때 암미엘의 아들 마길은 요단 동편에 살던 부유한 가문으로 사용 가문을 지지하던 인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므비보셋을 자신의 집에 거하게 한 것입니다. 므비보셋이 마길의 집에 거한 것은 사울과 요나단에게 속한 모든 재산이 다윗에게 귀속되어 거할 곳이 마땅치 않았고, 또한 다윗의 눈에 띄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윗과 요나단 간의 언약을 모르는 므비보셋의 입장에서는 다윗을 자신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으로 여길 수 있었습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데리고 옴(5-8)

성도는 하나님께 복음과 사랑에 대한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그 빚은 다른 성도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으로 갚아야 합니다. 다른 성도들을 보살피고 선으로 대하고 사랑하는 것은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과 섬김이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만큼 다른 지체를 사랑하고 섬기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을 통해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 부지런히 알아가야 합니다.
 
5다윗 왕이 사람을 보내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서 그를 데려오니 6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나아와 그 앞에 엎드려 절하매 다윗이 이르되 므비보셋이여 하니 그가 이르기를 보소서 당신의 종이니이다 7다윗이 그에게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내가 네 할아버지 사울의 모든 밭을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을지니라 하니 8그가 절하여 이르되 이 종이 무엇이기에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하니라(5-9)
다윗은 자기 수하의 사람을 마길의 집으로 보냈습니다.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데리고 오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윗을 만난 므비보셋은 그 앞에 엎드려 절합니다. 다윗은 요나단과 맺은 언약의 대상자인 므비보셋에게 은총을 베풀었습니다. 과거에 다윗이 요나단에게 먼저 은총을 받은 것처럼 말입니다.
 
(1) 다윗과 므비보셋의 만나(5-6)
종 시바를 통해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의 소식을 들은 다윗은 신하를 보내어 마길의 집에서 자기 앞으로 데려오도록 합니다. 역대기에서는 그의 이름을 ‘므립바알’로 소개합니다(대상 8:34; 9:40). 사무엘 저자는 ‘바알’대신에 ‘수치, 부끄러움’을 의미하는 ‘보셋’을 접어넣음으로써 ‘므비보셋’이라고 소개합니다. 본문에서 므비보셋을 소개할 때, 사울의 손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므비보셋이 요나단의 아들이면서 사울의 손자로 사울 가문의 적통이란 사실을 강조한 표현입니다.
다윗의 신하들은 왕의 명령을 받들어 로드발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있던 므비보셋을 데리고 왕 앞으로 나아옵니다(5). ‘므비보셋은 왕궁에 있는 다윗에게 나아와 옆드려 절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당신의 종‘이라는 말로 낮추어 표현합니다(6). 어쩌면 므비보셋은 한때 할아버지 사울 왕의 경쟁자였던 다윗이 사울 가문의 생존자를 찾으려고 한 이유가 정적(政敵)을 제거하기 위한 의도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내심 두려움에 사로잡혔을 수도 있습니다.
 
(2) 다윗과 므비보셋의 대화(7-8)
’므비보셋‘은 다윗을 보자 엎드려 절하여 최고의 공경심을 표현합니다. 다윗이 ‘므비보셋아!’하고 이름을 부르자 그는 자신을 ‘당신의 종’이라고 대답하여 그에게 복종하겠다는 의사를 표현합니다. 여기서 므비보셋은 최대한 자신을 낮추며 조심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자신을 왜 찾아서 데리고 왔는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두려워하며 매우 조심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다윗은 그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며, 자신이 그의 아버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반드시 은혜를 베풀겠다고 약속합니다.
그 증거로 다윗은 두 가지 약속합니다. 첫째는 사울 가문이 가지고 있던 모든 밭을 돌려주겠다고 합니다. 사울이 죽고 다윗이 왕위에 오른 후에 사울 가문의 땅은 몰수되어 다윗 왕가에 귀속되었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다윗이 쉽게 므비보셋에게 사울의 땅을 돌려줄 수 있었던 것입니다. 땅을 돌려준다는 것은 이전에 사울이 누리던 부와 권세를 어느 정도 회복시켜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음으로 두 번째 약속은 므비보셋이 항상 다윗의 상에서 식사하도록 허락합니다. 이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사무엘상 2:8에 따르면 귀족이나 왕과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은 대단히 명예로운 일로 평가됩니다. 이것은 다윗이 므비보셋에게 큰 호의를 베풀고 그를 존중했다는 뜻입니다. 둘째, 정치적인 관점에서 보면 비록 다리를 절지만 모비보셋은 죽은 사울의 피붙이며 손자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반란의 핵심 인물이 될 수 있는 위험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사울의 땅이 있는 기브아로 보내지 않고 예루살렘 왕궁에 머물게 하여 므비보셋의 동향을 살리기 위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9장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 정치적인 이유보다는 므비보셋에 대한 호의를 보여주기 위한 행동으로 볼 수 있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은혜를 받은 므비보셋은 다시 한 번 절을 하여 감사되 자신을 죽은 개에 비유하며 무가치한 자신을 돌봐준 다윗에게 감사합니다. 죽은 개는 무가치한 것을 상징하는 표현으로(삼상 24:14) 므비보셋은 아무런 가치도 없는 자신을 선대하는 것에 대해 감격하여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다윗은 요나단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므비보셋을 찾았고, 또한 약속대로 므비보셋을 살려주고 선대하였습니다. 요나단과의 언약을 충실하게 이행하여 자신의 목숨을 여러 번 살려주고 자신을 사랑해준 요나단에게 보답하였습니다.
 

므비보셋을 선대하는 다윗(9-13)

섬기고 있는 교회에서 다른 성도들을 귀하게 여기고 있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이며 하나님 나라를 상속할 상속자들임을 인정하십니까? 이런 사실을 안다면 다른 성도들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달라져야 합니다. 성도들을 비하하거나 비난해서는 안 됩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그 위치와 명예를 존중해 함부로 대할 수 없는데, 하물며 하나님 나라를 상속하게 될 성도에 대해서라면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9왕이 사울의 시종 시바를 불러 그에게 이르되 사울과 그의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10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그를 위하여 땅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에게 양식을 대주어 먹게 하라 그러나 네 주인의 아들 므비보셋은 항상 내 상에서 떡을 먹으리라 하니라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 명이요 종이 스무 명이라 11시바가 왕께 아뢰되 내 주 왕께서 모든 일을 종에게 명령하신 대로 종이 준행하겠나이다 하니라 므비보셋은 왕자 중 하나처럼 왕의 상에서 먹으니라 12므비보셋에게 어린 아들 하나가 있으니 이름은 미가더라 시바의 집에 사는 자마다 므비보셋의 종이 되니라 13므비보셋이 항상 왕의 상에서 먹으므로 예루살렘에 사니라 그는 두 발을 다 절더라(9-13)
다윗은 언약의 대상자인 므비보셋을 마치 자기 아들처럼 대했습니다. 므비보셋을 왕자처럼 대우한 것입니다. 성도도 다윗처럼 새 언약 관계 아래서 한 몸이 된 다른 성도들을 귀하게 대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공로로 인해 그 성도도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1) 다윗의 명령(9-10)
다윗은 므비보셋에게 약속한 것을 바로 시행합니다. 원래 사울의 신하였던 시바를 불러 사울의 모든 재산과 땅을 주인의 손자에게 주었으니, 이제 시바와 시바의 아들들은 므비보셋을 위해 땅을 관리하고 경작하여 그에게 양식을 대라고 명령합니다. 다윗이 시바를 모비보셋의 재산 관리자로 임명하여 시바의 이전 신분도 회복시킨 것입니다. 시바의 입장에서 이런 신분이 그다지 달가웠던 것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후에 사무엘하 16장에서 다윗 편에 붙어서 므비보셋을 모함합니다. 이것을 보면 시바는 결코 사울 가문의 충성스러운 종이 아니었고, 오히려 다윗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던 인물입니다. 므비보셋을 섬기라는 다윗의 명령을 받은 시바는 왕의 명령대로 충실하게 행하겠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시바는 다윗을 자신의 주인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10절에서 시바의 가문에 대한 설명이 나오는데, 시바는 아들이 열다섯이고 종이 스무 명이었습니다. 므비보셋이 받은 땅을 관리하기에 충분한 인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므비보셋은 다윗의 말대로 왕의 궁전에서 왕자들과 같은 대접을 받으면서 살았습니다.
 
(2) 므비보셋을 환대(11-13)
여기서 므비보셋이 다윗의 상에서 식사했다는 것을 11절과 13절에서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데, 이것은 다윗이 약속대로 므비보셋을 선대했음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므비보셋의 어린 아들 미가가 소개됩니다. 다윗이 므비보셋뿐 아니라 요나단의 후손 모두를 선대하였음을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윗은 요나단과의 언약을 기억하고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선대하여 약속을 지키는 신실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울은 왕이 된 이후에 자신의 왕권을 위협할 위험이 있는 다윗을 죽이려고 하였지만, 다윗은 왕이 된 후에도 자신의 왕권을 위협할 위험이 있는 므비보셋을 살려주고 요나단과의 약속도 지켰습니다. 왕이 된 후에도 자신의 왕권을 지켜주시는 분은 여호와이시라는 것을 잘 알았기에 정적이 될 수도 있는 므비보셋을 선대한 것입니다. 요나단은 비록 자신은 죽었지만 므비보셋을 살릴 수 있었고 역대상 8:35-40과 9:41-44을 보면 손자 미가를 통해 많은 자손을 얻고 번성한 가문을 이루게 됩니다.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다윗을 선대한 요나단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손들을 통해 복을 주신 것입니다. 선을 행한 자들에게 선으로 갚으시는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당장 눈앞의 이익을 따라 행동할 것이 아니라 손해를 보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신한 일들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므비보셋이 말했던 것처럼 죽은 개와 같이 무의미한 존재였습니다. 그러한 무의미한 사람을 사랑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셨습니다. 우리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를 감사드리면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모든 사람들에게 베풀고 나누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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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08-01)


모든 대적으로부터 승리한 다윗

사무엘하 81-18


우리 삶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람, 물질, 정신적인 것 등 다양합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에 대해 언제쯤 이 문제가 이해되고 해결될 것인지 궁금해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은 어떤 삶의 자세를 취해야 하며, 이런 고통의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 수 있습니까?

 

다윗이 여호와의 성전을 짓기 원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다윗 왕조를 세워주시고 다윗의 아들들을 양자로 삼아주시겠다는 언약을 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약속에 다윗은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꼭 이루어주시길 기원합니다.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아 확고한 다윗 왕조를 세우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어디를 가든 동행하시며 승리를 주십니다.

 

전쟁에서 승리하는 다윗(1-6)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에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어디를 가든지 전쟁에서 승승장구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끊어 앉아 기도하여 경험한 힘이 이제 전쟁을 통해 승리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다윗의 힘으로 이기는 삶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승리하도록 하시는 삶을 자신의 경계를 넘어 국제관계 속에서까지 체험하게 된 것입니다.

 

1그 후에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을 쳐서 항복을 받고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으니라 2○다윗이 또 모압을 쳐서 그들로 땅에 엎드리게 하고 줄로 재어 그 두 줄 길이의 사람은 죽이고 한 줄 길이의 사람은 살리니 모압 사람들이 다윗의 종들이 되어 조공을 드리니라 3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 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그를 쳐서 4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5다메섹의 아람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지라 다윗이 아람 사람 이만 이천 명을 죽이고 6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1-6)

 

이 단락은 다윗이 전쟁에서 이긴 민족들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놓았습니다. 먼저 이스라엘을 지속적으로 괴롭혔던 블레셋이 성경에서 사라지는 시점입니다. 이후로는 성경 무대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게속될 것 같았던 고통의 문제가 해결되었고, 이는 하나님께서 함께하신 결과였습니다.

 

(1) 블레셋과 모압(1-2)

1절은 블레셋과의 전투에 대한 기록으로 다윗이 블레셋과 전쟁을 하여 항복을 받았고 블레셋의 손에서 메덱암마를 빼앗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다윗이 삼손 이후에 계속해서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블레셋을 굴복시키고 블레셋에 대한 지배권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2절은 다윗이 모압을 점령한 기록입니다. 다윗은 증조할머니 룻이 모압 사람인 관계로 자신의 부모를 모압 왕에게 부탁할 만큼 관계가 좋았었습니다(삼상 22:4). 그런데 다윗이 왕권을 잡고 난 이후 어느 시기부터 관계가 변한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다윗이 모압을 점령한 후에 전쟁 포로를 처리한 방법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땅에 두 줄을 그어 놓고 두 줄 사이에 들어가는 사람은 살려주고 두 줄을 넘어가는 사람은 죽이는데, 이것을 대부분의 학자들은 삼분의 이를 죽이고 나머지 삼분의 일을 남기기 위한 방법이라고 해석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모압의 포로들을 죽인 이유는 당시 관습적으로 전쟁 포로는 노예로 삼는데, 아직 이스라엘의 경제 규모가 포로로 잡은 남자들을 이스라엘의 노예로 부릴 만큼 성장하지 못하였기 때문으로 봅니다. 전부 살려주자니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적이 될 가능성이 높고, 전부 노예로 부리자니 노예로 쓰기에도 숫자가 너무 많아 삼분의 일만 남겨두고 모두 죽여 인구수를 줄임으로써 이스라엘을 침입할 수 없도록 만들고, 그 후에 모압 사람들을 살려서 돌려보낸 것입니다. 대신에 다윗은 이들에게서 조공을 받기 시작하는데, 이때부터 모압은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었습니다.

 

(2) 소바 왕 하닷에셀(3-4)

3-8절은 아람과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다. 르홉의 아들 소바 왕하닷에셀이 유브라데 강 유역에 대한 지배력을 회복하기 위해 전쟁을 시작하였습니다. 하닷에셀은 헬몬산 남쪽 끝에 있는 벤-르홉 출신으로 시리아의 강력한 정치 연맹 지도자로 추정되며, 소바는 레바논 맞은편 동쪽, 다메섹과 하맛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습니다. 하닷에 이 북쪽으로 전쟁을 하러 간 사이 다윗이 소바를 공격하였고, 제대로 방어하지 못한 하닷에셀은 전쟁에서 지게 됩니다.

여기서 다윗은 마병 1,700명과 보병 20,000명을 사로잡는 큰 승리를 거둡니다. 다윗이 사로잡은 엄청난 숫자의 군인들은 하닷에셀의 군사력이 매우 강하였음을 알려줍니다. 다윗은 병거 100대의 말만 남기고 나머지 말의 힘줄을 끊는데, 이것은 병마를 많이 두지 말라는 신명기 17:16에 순종한 것으로 다윗은 자신의 군대에 많은 병거와 말을 두지 않았습니다. 말의 힘줄을 끊는 것은 말이 달리지 못하게 하여 더 이상 군사적 용도로 사용되지 못하게 하기 위한 것으로 고대 사회에서 많이 사용한 방법입니다. 병거와 말은 고대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 강력한 무기인데, 이것들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든 것은 전쟁이 인간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이신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믿었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승리 소식에 소바와 주증 관계에 있던 다메섹의 아람 사람들이 하닷에셀을 돕기 위해 소바로 왔지만, 다윗은 오히려 아람 사람 22,000명을 죽이는 엄청난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3) 속국이 된 다메섹(5-6)

결국 다윗은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어 다메섹을 자신의 속국으로 삼고, 아람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조공을 바치도록 하였습니다.

 

다윗의 전리품(7-12)

교회는 모든 승리의 영광을 하나님께만 돌려야 합니다. 우리의 죄가 어떻게 해졌습니까?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라는 권세를 갖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예배할 수 있고 기도 응답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까? 어떻게 악한 자들이 건들지도 못하는 존재가 되었으며 유혹을 이기게 되었습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7다윗이 하닷에셀의 신복들이 가진 금 방패를 빼앗아 예루살렘으로 가져오고 8또 다윗 왕이 하닷에셀의 고을 베다와 베로대에서 매우 많은 놋을 빼앗으니라 9하맛 왕 도이가 다윗이 하닷에셀의 온 군대를 쳐서 무찔렀다 함을 듣고 10도이가 그의 아들 요람을 보내 다윗 왕에게 문안하고 축복하게 하니 이는 하닷에셀이 도이와 더불어 전쟁이 있던 터에 다윗이 하닷에셀을 쳐서 무찌름이라 요람이 은 그릇과 금 그릇과 놋 그릇을 가지고 온지라 11다윗 왕이 그것도 여호와께 드리되 그가 정복한 모든 나라에서 얻은 은금 12곧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과 아말렉에게서 얻은 것들과 소바 왕 르홉의 아들 하닷에셀에게서 노략한 것과 같이 드리니라(7-12)

블레셋에 대한 다윗의 승리 원인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고 또한 다윗이 지켜온 정의와 공의의 실천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은 공평과 정의를 구현하는 대리자, 즉 하나님의 지상 대리자였습니다. 불의한 현실 속에서 거룩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1) 소바 왕 하닷에셀(7-8)

이렇게 다윗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당시 가장 강력한 무기인 병거들을 자신의 손으로 없었지만,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시며 구원해주셨기 때문에, 어디를 가든지 이길 수 있었습니다. 다윗에게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늘 함께하시는 여호와이신 것입니다.

블레셋, 모압, 아람과 승리한 것이 모두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결론 짓습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승리한 후 금 방패와 많은 놋 등의 전리품들을 예루살렘으로 가져옵니다. 이 놋들은 후에 솔로몬이 열왕기상 18:8에서 놋바다와 성전 기물들을 만드는 데 사용됩니다.

이렇게 다윗이 많은 전리품들을 예루살렘으로 가져왔다는 것은 이스라엘이 점점 부강한 나라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다윗과 이스라엘에게 큰 축복을 주셨음을 보여줍니다.

 

(2) 하맛 왕 도이(9-11)

하닷에셀과의 전쟁에서 크게 이긴 소문이 팔레스틴 지역에 퍼지자 소문을 들은 하맛 왕 도이가 화친의 사절단을 보냅니다. 하맛은 소바의 북쪽에 있는 지역으로 이 두 지역은 적대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하닷에셀을 이겼다는 소식에 하맛 왕 도이는 많은 선물과 함께 아들 요람을 보내어 화친을 청합니다. 사람 관계에서 적의 적은 친구라는 공식이 여기에서 적용되고 있습니다.

7-8절에서 요람이 찾아온 것은 하닷에셀을 이겼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며 강조하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에 대한 좋은 소식들이 퍼지면서 고대 근동에서 이스라엘의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합니다. 이제 다윗이 전쟁하지 않고도 스스로 화친을 청하며 많은 선물을 바치는 나라들이 생겨난 것입니다. 요람이 가져온 선물은 은그릇과 금그릇과 놋그릇으로 다윗은 이들에게서 받은 선물을 여호와께 바친다.

 

(3) 다른 전리품들(12)

11절과 12절에서는 이것뿐 아니라 그동안 블레셋과 아람과 모압과 암몬 자손들과 아말렉과 하닷에셀에게서 얻은 전리품들도 여호와께 드렸다고 말합니다.

다윗이 모든 전리품을 여호와께 드렸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 전쟁은 여호와의 손에 있기 때문에 여호와께 전리품을 바치는 것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올바른 행동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은 여호와의 종으로서 여호와를 대신하여 싸운 존재일 뿐이며, 모든 영광은 여호와께서 받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자신은 여호와를 위한 성전을 지으라는 허락을 받지 못했지만, 대신에 성전을 지을 수 있는 물품들을 차곡차곡 준비한 것입니다. 후에 역대기는 다윗을 성전 건축을 준비한 사람으로 평가하는데, 이 평가는 다윗이 모든 전리품을 여호와께 드린 것을 근거로 합니다.

 

에돔을 정복한 다윗(13-14)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어디로 가든지 누구를 만나든지 승리할 수 있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버거운 상대나, 뛰어난 전쟁 도구로 무장한 사람들과 상대할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면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습니까?

 

13다윗이 소금 골짜기에서 에돔 사람 만 팔천 명을 쳐죽이고 돌아와서 명성을 떨치니라 14다윗이 에돔에 수비대를 두되 온 에돔에 수비대를 두니 에돔 사람이 다 다윗의 종이 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15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이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16스루야의 아들 요압은 군사령관이 되고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 되고 17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은 제사장이 되고 스라야는 서기관이 되고 18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관할하고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들이 되니라(13-18)

다윗은 모든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실행했습니다. 특정 계층의 사람들에게는 잘 대해주고, 사회적 약자에게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서는 안 될 일입니다. 영토 확보를 위한 전쟁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의와 공의하고, 그것이 나라의 안정과 평화를 가져오는 결정적 계기가 됩니다.

 

(1) 에돔을 정복한 다윗(13-14)

이 단락은 에돔 정복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소금 골짜기는 사해 남쪽 지역을 가리키는데 에돔 지역에 있습니다. 다윗은 이곳에서 에돔 사람 18,000명을 죽이는 엄청난 전과를 기록하였고, 이 전쟁으로 인해 주변국에서 큰 명성을 얻습니다. 아마도 이 전투가 매우 크고 유명한 전투였고, 그로 인해 다윗의 명성이 팔레스틴 지역에 널리 퍼지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여기서는 전쟁을 통해 다윗이 명예를 얻은 것을 언급합니다.

14절은 후렴구처럼 6절과 동일하게 에돔이 종이 되었다는 것과 여호와께서 어디를 가든지 구원하셨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다윗이 얻은 명성 또한 여호와의 은혜임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2) 다윗 왕국의 신하들(15-18)

15절에서 다윗이 이스라엘을 공의와 정의로 다스렸다고 평가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왕에게 바란 가장 이상적인 덕목으로, 왕은 전쟁을 통해 백성을 구원하는 역할도 해야 하지만 지혜로운 재판을 통해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가 실현되도록 해야 하는데 다윗은 그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했다고 평가한 것입니다.

16절부터는 다윗 왕국의 신하들에 대한 설명입니다. 다윗을 도와 이스라엘을 다스린 인물들에 대한 소개입니다. 먼저 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군사령관으로 소개됩니다. 제일 먼저 소개된 이유는 병권을 쥐고 있는 인물로 다윗 왕국의 이인자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사밧은 사관인데, 사관은 기억하다라는 단어에서 파생된 단어로 국가의 여러 기록과 문서를 관리하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제사장은 아히둡의 아들 사독과 아비아달의 아들 아히멜렉이었는데, 사무엘상 22:20에 따르면 아비아달은 다윗을 계속해서 따라다니며 도왔던 인물로 아히멜렉은 그의 아들입니다. 다윗의 아들들은 대신들이 되었습니다. ‘대신으로 번역된 것은 제사장인데, 이들은 임시적인 직책으로 아히멜렉이나 사독의 제사장직과는 달랐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다윗 왕국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든든하게 세워져 갔습니다.

 


우리는 위축과 좌절의 시대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수적으로는 물론 권위와 존경에 있어서도 쇠약해져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기쁘시게 하는 데 집중함으로써 하나님이 주시는 승리를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다윗 시대의 영광이 우리에게 임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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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07-02)

 


주의 응답에 대한 다윗의 찬양과 기도

사무엘하 7장 18-29절


찬양은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을 인정하고 고백함으로 하나님을 높여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는 하나님의 뜻과 약속을 확인하며 그것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위한 소원이니 더욱 그렇습니다. 그런데도 거절당합니다. 중요한 것은 거절된 기도가 아니라 그 기도 앞에서 보인 다윗의 반응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은혜로 평안을 얻자 여호와를 위한 성전을 지어 드리기를 원합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이 성전을 짓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시지만, 그 마음을 매우 기뻐하십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다윗 왕조를 세워주시겠다는 약속과 다윗의 아들들을 하나님의 양자로 삼으시겠다는 영원한 언약을 주십니다. 다윗은 사울과 달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기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왕조를 든든하게 세워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과거에 행하신 여호와의 일(18-21)

우리가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깊이와 높이를 더 알게 될수록 감사의 깊이도 깊어질 것입니다(엡 3:18-19). 그러므로 우리는 주 앞에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여,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셔서 주님을 더 알게 하옵소서!” 우리가 범사에 하나님께 감사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믿음을 선물로 주셔서 구원받게 하신 것입니다.
 
18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아서 이르되 주 여호와여 나는 누구이오며 내 집은 무엇이기에 나를 여기까지 이르게 하셨나이까 19주 여호와여 주께서 이것을 오히려 적게 여기시고 또 종의 집에 있을 먼 장래의 일까지도 말씀하셨나이다 주 여호와여 이것이 사람의 법이니이다 20주 여호와는 주의 종을 아시오니 다윗이 다시 주께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21주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주의 뜻대로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사 주의 종에게 알게 하셨나이다(18-21)
선지자의 말에 다윗은 항의하거나 항변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 앉아서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입니다. 다윗은 사울처럼 자기 뜻을 굽히지 않는 폭군이 아니었습니다. 도리어 그런데도 거절당합니다. 중요한 것은 거절된 기도가 아니라 그 기도 앞에서 보인 다윗의 반응입니다.
 
(1) 다윗의 겸손(18)
다윗은 나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자신과 자신의 가문에게 주신 큰 은혜의 언약을 듣게 된 후 여호와 앞에 들어가 앉습니다. ‘여호와 앞’이라는 것은 다윗 성 휘장 안에 놓여 있는 여호와의 궤 앞입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주신 언약의 말씀에 감사하며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기도하였습니다.
 
(2) 작은 일(19-20)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제일 먼저 감사합니다. 또 자신이 무엇이며 자신의 집이 무엇이기에 지금까지 인도하셨는지 묻습니다. 이것은 수사 의문문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자신과 자신의 집에 주신 은혜에 대해 감사한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은 여호와를 ‘나의 주’라고 부르는데, 여호와께서 다윗을 ‘나의 종’이라고 부른 것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제까지 인도하신 것도 작다고 여기시고 또다시 먼 미래의 종의 집일까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인간의 규범을 따라 왕조 언약을 주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주변 나라들과는 달리 이스라엘에 왕을 세우지 않으시고 사사를 직접 선택해서 다스리셨습니다. 사울을 왕으로 세우실 때도 하나님께서 직접 선택하셨고 사울 대신 다윗을 선택하신 것도 하나님이셨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다윗은 여호와께서 자신의 왕조를 세워주겠다고 말씀하신 것에 대해 감사한 것입니다. 또한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잘 알고 계시기에 더 이상 하나님께 말을 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이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에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하고 감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아직도 낮고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큰 일(21)
21절은 철저히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것으로 자신에게 왕조를 주시는 일은 온전히 하나님의 뜻이며, 자신은 오직 하나님의 뜻을 알지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자신은 여전히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온전히 순종하고 따라가겠다는 의미로 감사로 시작하여 순종으로 단락을 마무리합니다.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유일성(22-24)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쉴 만한 물가와 푸른 풀밭으로 인도해 주셨음을 기억하며 주 앞에 찬송을 올려 드려야 합니다. 우리는 과거에 받은 주님의 은혜를 기억할 뿐만 아니라 때를 따라 도우시는 주님의 새로운 은혜를 사모하며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22그런즉 주 여호와여 이러므로 주는 위대하시니 이는 우리 귀로 들은 대로는 주와 같은 이가 없고 주 외에는 신이 없음이니이다 23땅의 어느 한 나라가 주의 백성 이스라엘과 같으리이까 하나님이 가서 구속하사 자기 백성으로 삼아 주의 명성을 내시며 그들을 위하여 큰 일을, 주의 땅을 위하여 두려운 일을 애굽과 많은 나라들과 그의 신들에게서 구속하신 백성 앞에서 행하셨사오며 24주께서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세우사 영원히 주의 백성으로 삼으셨사오니 여호와여 주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22-24)
나단의 메시지에는 하나님을 주어로 하는 동사가 많습니다. 그 메시지를 듣고 다윗도 하나님을 ‘주’로, 자신의 ‘종’으로 부릅니다. 전에는 ‘나’로 가득했지만, 이제는 ‘하나님’으로 가득합니다. 주어의 변화는 주도권의 변화입니다.
 
(1) 여호와의 유일성(22)
이 단락은 여호와께 대한 송영으로 다윗은 여호와의 위대성을 찬양하며 단락을 시작합니다. 여호와 같은 분은 없으며, 여호와 이외에는 신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여호와가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유일한 신이라는 사랑은 신명기 3:24: 4:35과 연결되는 것으로 여호와서 다른 신들과 도저히 비교할 수 없다는 것은 여호와의 장엄성과 능력과 창조성은 어느 신도 따라올 수 없는 독보적인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2) 이스라엘의 유일성(23)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구원을 이야기합니다. 다윗은 이스라엘만큼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나라가 없다는 사실을 강조하는데 여호와 같은 신이 없는 것처럼 이스라엘과 같이 특별한 나라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아 자신의 이름을 이스라엘에게 두기 위해서 직접 구속하셨기 때문이며, 애굽과 다른 민족들과 신에게서 구속하신 백성들을 위해 큰 일과 두려운 일들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고백은 출애굽과 가나안 점령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직접 구속하신 것은 애굽에 어마어마한 재앙을 퍼붓고 애굽의 철병거를 홍해에 수장하면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을 말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을 주시기 위해 백성들 앞에서 여호와께서 전사로서 큰 기적들을 보여주시고 싸워주셨습니다.
다윗은 세상의 어느 신이 이렇게 자신의 백성을 위해 헌신적이며 세상의 어느 나라가 이스라엘처럼 하나님의 사랑과 보호와 헌신을 받느냐고 말하며 여호와와 이스라엘의 특별한 관계를 강조합니다.
 
(3) 여호와와 이스라엘(24)
24절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셨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셨다는 시내산 언약으로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를 마무리합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사랑의 모든 근원이 시내산 언약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에서 다윗이 고백하듯이 우리의 하나님 여호와는 자신의 백성을 너무나 헌신적으로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그렇기에 결국 자신의 아들을 우리를 위해 보내주기까지 하셨습니다.
 

다윗의 기도(25-29)

우리는 먼저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그렇기에 우리는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고, 뜻이 하늘에서 이뤄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뤄질 것을 위해 먼저 간구해야 합니다.
 
25여호와 하나님이여 이제 주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영원히 세우셨사오며 말씀하신 대로 행하사 26사람이 영원히 주의 이름을 크게 높여 이르기를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 하게 하옵시며 주의 종 다윗의 집이 주 앞에 견고하게 하옵소서 27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 이르시기를 내가 너를 위하여 집을 세우리라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이 기도로 주께 간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28주 여호와여 오직 주는 하나님이시며 주의 말씀들이 참되시니이다 주께서 이 좋은 것을 주의 종에게 말씀하셨사오니 29이제 청하건대 종의 집에 복을 주사 주 앞에 영원히 있게 하옵소서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사오니 주의 종의 집이 영원히 복을 받게 하옵소서 하니라(25-29)
다윗은 이제 성전 건축의 뜻을 철회하고 다윗의 집을 세우시겠다는 약속의 실현을 요청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이 자신의 소원이 되게 합니다. 기도의 마지막 단락은 간구입니다.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 후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신 약속을 이루어 달라고 간구합니다.
 
(1) 주의 말씀을 이루소서(25-26)
25절에서 다윗은 당신의 종과 종의 집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을 확실하게 해주시고 말씀하신 대로 행해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래서 영원히 여호와의 이름이 위대하게 되고 사람들이 ‘만군의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다’라고 외치게 해달라고 기원합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을 더욱더 부강하게 해달라는 말로 이스라엘이 부강하게 되면 주변 모든 나라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대하다고 칭송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부강을 위해서 기도한 다윗은 이제 가장 핵심적인 기도를 합니다. 당신의 종인 다윗의 집을 여호와 앞에서 굳건하게 세워달라고 기도합니다.
 
(2) 다윗의 집을 위한 기도(27)
27절에서 자신이 이런 기도를 하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여호와께서 먼저 다윗에게 너를 위해 집을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자신도 감히 이런 기도를 할 용기가 생겼다고 고백합니다. 본문에서 ‘주의 종의 귀를 여시고’로 번역된 것은 직역하면, ‘주의 종의 귀를 벌거벗기시다’입니다. 이것은 계시를 드러내셨다는 의미입니다. 즉, 여호와께서 나단을 통해 이런 계시를 주셨기 때문에 자신의 집을 굳건하게 해달라고 기도할 용기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26절과 27절에서 다윗은 여호와를 만군의 여호와로 부르는데, 이것은 하늘의 군대를 이끄시는 하나님이란 의미로 이스라엘과 다윗의 왕조를 적으로부터 지키시고 싸우시는 하나님을 의미합니다. 5:10에서도 만군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므로 다윗이 점점 강정해져 갔다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민군의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싸우셨다는 의미입니다.
 
(3) 복을 위한 기도(28-29)
28절에서는 하나님을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보증으로 삼습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하나님, 즉 신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진실하기를 기원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하나님께서 반드시 이루어주시길 기원한 것입니다. 여기서 ‘진실함’이란 뜻의 ‘에메트’는 하나님의 속성 중 하나로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하나님의 진실한 성품에 기대어서 확실하게 믿은 것입니다. 다윗은 마지막으로 왕조의 약속을 ‘좋은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이것은 ‘언약’이라는 말과 동의어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왕조 언약을 주셨으니 종의 집에 복을 주시고 주의 앞에 영원히 있는 것을 기뻐해 달라고 기원하며, 다시 한 번 자신의 집이 영원히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해달라고 하며 모든 기도를 마칩니다. 다윗의 기도를 보면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언약을 어마어마한 은혜라고 생각하고, 이에 대해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왕이 되고 나서 이스라엘에 평화를 주신 분이 여호와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고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런 모습은 왕이 된 이후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늘 불안해하며 살았던 사울의 모습과 대조됩니다. 과연 우리는 다윗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감사하며 살고 있는지, 아니면 사울처럼 늘 우리가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갖기 위해 불안해하고 불평하며 불행하게 살고 있는지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다윗처럼 늘 겸손하게 하나님을 섬길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높이시고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거절된 응답에 다윗이 보인 첫 반응은 보좌에서 내려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하는 일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먼저라는 것을 알았고, 자신의 열망보다 하나님의 열망이 더 크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기도 가운데서 일어난 변화이자 기도의 첫 응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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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07-01)

 


성전을 건축하길 원하는 다윗

사무엘하 71-17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심과 신실하심으로 그분의 언약을 주권적으로 이루고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분이 지금까지 행하신 역사를 믿고 장차 행하실 역사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언약은 그것의 성취 여부를 부흥할 수 없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됩니다.

 

다윗은 통일 왕국의 왕이 되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다윗 성을 지으면서 왕국의 기반을 다졌습니다. 그 후에 그는 자신의 하나님이신 여호와의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 성으로 옮겨 오려고 하였습니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했지만, 그 후 언약궤를 어깨에 메고 옮겨 무사히 예루살렘 다윗 성에 안치하였고, 다윗은 하나님께 감사의 제사를 드리며 온 백성과 축제의 기쁨을 나눕니다. 이렇게 예루살렘은 정치적 중심지가 되었고 이스라엘은 점점 강성해집니다.

 

성전을 건축하기 위한 소원(1-3)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이미 행하신 것을 믿고 그분이 행하실 것을 소망하는 것뿐입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해 수고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사람들을 위해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하겠다는 비전보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이루실 일을 기대하며 나갑시다.

 

1여호와께서 주위의 모든 원수를 무찌르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살게 하신 때에 2왕이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볼지어다 나는 백향목 궁에 살거늘 하나님의 궤는 휘장 가운데에 있도다 3나단이 왕께 아뢰되 여호와께서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모든 것을 행하소서 하니라(1-3)

다윗의 인생을 살펴보면 얼마나 힘겨운 세월이었습니까? 황폐한 광야와 동굴에 버려진 것과 같은 삶에서, 이제 예루살렘 궁에서 평안한 태평성대의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동안 고생했기 때문에 안주할 만한데도, 다윗은 나단 선지자에게 하나님의 성전을 새롭게 건축할 의사를 전합니다.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명령이 아닌 다윗의 소원에서 시작됩니다.

 

(1) 다윗의 상황(1)

다윗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에 있는 다윗 성으로 옮긴 후, 여호와께서는 주위의 모든 원수들을 물리쳐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이 예루살렘 궁에서 평안하도록 해주셨습니다. 모든 위험과 갈등의 세월이 지나갔습니다. 본문은 다윗이 누린 평안이 여호와께서 모든 적들의 손에서 구원해주셨기 때문임을 강조합니다.

 

(2) 다윗의 소원(2)

여호와께서 주시는 평화의 시대를 누린 다윗은 마음이 쉴 수가 없었습니다. 몸은 쉴 수 있는 환경이 되었지만, 그의 마음은 결코 쉴 수 없었습니다. 다윗의 마음은 불편했습니다.

선지자 나단을 불러서 자신의 마음을 전합니다. 다윗은 그 마음을 자신의 처소와 여호와의 처소를 비교하며 이야기합니다. 자신은 백향목 궁에 살고 있는데 여호와의 궤는 휘장 가운데 있다는 것입니다. ‘휘장이란 단어는 성막을 구성하는 천으로 성막은 여러 장의 휘장을 이어 만듭니다. 다윗이 여기서 장막이 아니라 장막의 일부분인 휘장이란 단어를 사용한 것은 자신의 백향목 궁과 좀 더 강한 대조를 하기 위한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모든 적에서 구원해주시고 이스라엘에 평화를 주신 여호와를 위해 이제 한 장소를 정하여 자신의 집보다 더 튼튼하고 아름다운 성전을 지어드리길 원했습니다.

 

(3) 나단의 동의(3)

본문에서는 이런 다윗의 마음이 표현되어 있지 않지만, 선지자 나단은 다윗의 마음에 감동하고, 흔쾌히 알고 승인합니다. 나단은 여호와께서 당신과 함께 계시니 당신의 마음대로 행해도 좋다라고 말합니다(3). 그는 다윗의 제안이 너무나 아름다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나단 개인의 생각이었습니다.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늘 다윗과 함께 계시니 성전 짓는 일도 허락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여기 처음 등장하며, 후에 그의 두 아들이 왕의 중요한 관리가 됩니다(왕상 4:5). 그는 다윗이 예루살렘에 자리 잡은 후에 등장하며 다윗이 죽고 솔로몬이 왕이 될 때까지 오랫동안 왕실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전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단을 통해 하신 말씀(4-17)

성도들은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 할지라도, 그 좋은 생각이 성숙한 신앙인에게서 나왔더라도 무조건 하나님의 뜻으로 간주해서는 안 됩니다. 때로는 그것이 인간의 생각으로 하나님의 계획을 방해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도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한 성전 건축은 순수하고 좋은 생각이었지만, 다윗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그곳에 있지 않았습니다.

 

4그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5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 6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부터 오늘까지 집에 살지 아니하고 장막과 성막 안에서 다녔나니 7이스라엘 자손과 더불어 다니는 모든 곳에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 어느 지파들 가운데 하나에게 내가 말하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나를 위하여 백향목 집을 건축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하였느냐 8그러므로 이제 내 종 다윗에게 이와 같이 말하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를 목장 곧 양을 따르는 데에서 데려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고 9네가 가는 모든 곳에서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 모든 원수를 네 앞에서 멸하였은즉 땅에서 위대한 자들의 이름 같이 네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 주리라 10내가 또 내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한 곳을 정하여 그를 심고 그를 거주하게 하고 다시 옮기지 못하게 하며 악한 종류로 전과 같이 그들을 해하지 못하게 하여 11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12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13그는 내 이름을 위하여 집을 건축할 것이요 나는 그의 나라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리라 14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니 그가 만일 죄를 범하면 내가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려니와 15내가 네 앞에서 물러나게 한 사울에게서 내 은총을 빼앗은 것처럼 그에게서 빼앗지는 아니하리라 16네 집과 네 나라가 내 앞에서 영원히 보전되고 네 왕위가 영원히 견고하리라 하셨다 하라 17나단이 이 모든 말씀들과 이 모든 계시대로 다윗에게 말하니라(4-17)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하려고 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한 번도 아름다운 성전을 요구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건물 안에 갇힐 수 없는 자유로운 분이요, 왕에게 매력적인 백향목이 하나님에게도 매력적인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1) 다윗이 여호와의 집을 짓는 것에 대해 반대하심(4-7)

그날 밤에 여호와의 말씀이 나단에게 임하셨는데 여호와께서는 나단에게 나의 종 다윗에게 '가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달하라'(4)라고 하십니다. 여호와께서는 다윗을 나의 종이라고 부르시는데, 이 호칭은 이전에 모세와 여호수아만 받은 칭호로 다윗이 여호와를 매우 충실하게 섬긴 인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네가 나를 위하여 내가 살 집을 건축하겠느냐?”(5)는 질문은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는 요청에 대한 거절을 표현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을 짓는 것에 대한 거절 이유가 나오는데(6-7), 첫째는 이스라엘과 동행하기 위해서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애굽에서 나온 날부터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기 위해 움직일 수 없는 성전이 아니라 움직일 수 있는 성막 혹은 장막에 거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성막은 그동안 완전하게 정착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살던 이스라엘과 동행하기에 가장 적합한 하나님의 거주지로 성막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어디에 가든지 늘 동행하시고 보호해주신다는 약속을 지키신 것입니다.

둘째는 성전을 짓는 것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동안 이스라엘이 간 모든 곳에 동행하셨지만 한 번도 백향목 성전을 지으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으셨습니다. 여기서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먹이라고 명령한 이스라엘의 한 지파라는 말은 사사시대를 암시하는데, 이스라엘의 지파들에서 지도자를 세운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 이스라엘을 잘 돌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나라의 이방신들처럼 각 지역마다 신전을 지으라고 하실 수도 있었지만, 그걸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본질적인 것을 추구하시는 분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이나 웅장함보다는 백성들과 동행할 수 있는 간편한 장막을 원하셨고, 자신이 선택한 지도자들이 자기 백성을 잘 돌보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2)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안전을 약속하심(8-11a)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짓겠다는 다윗의 제안은 거절하셨지만, 하나님을 생각하는 진실한 마음은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에게 이전에 주신 것보다 더 큰 은혜의 약속을 주십니다.

이 단락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8~9a절은 하나님께서 다윗을 위해 과거에 해주신 일을 서술하고 있고, 9절 하반절 이하는 앞으로 해주실 일에 대한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다윗을 양치기에서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은 것과 모든 전쟁에 함께하셔서 적들을 물리쳐주신 것을 상기시키십니다. 9절 하반절에서 새로운 축복을 더하여 주시는데, 다윗의 이름을 위대하게 만들어주겠다고 하십니다. 그것은 다윗을 주변 모든 왕들보다 강력하게 만들어주겠다는 것이며, 이스라엘에서도 역사적으로 길이길이 기념될 왕으로 만들어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두 번째는 이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의 영원한 땅으로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정하고 심고 거주하게 하고 다시는 옮기지 못하게 하다라는 표현들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세 번째는 또한 사사 때와는 다르게 적들의 침입이 없는 평화의 시대를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것은 다윗이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 살 때 누리는 약속이며, 다윗이 범죄하였을 때 다윗 왕국은 큰 어려움을 겪습니다.

 

(3) 여호와께서 다윗의 집을 세워주겠다고 언약하심(11b-17)

이 부분은 다윗의 언약으로 불리는 부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위해 집을 지어주겠다는 특별한 언약을 해주십니다. 다윗의 언약은 왕조 하사와 양자 언약으로 구성됩니다. 여호와를 위한 집 대신에 하나님께서 다윗의 집을 지어주겠다고 하십니다. 이것은 다윗 왕조를 세워주시겠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의 아들이 왕위를 계승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조를 견고하게 세워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다윗을 대신해서 다윗의 아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집을 건축할 것이며, 여호와께서는 그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세워주실 것이라고 약속하십니다. ‘견고하게 세워주신다는 말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는데, 이는 왕조가 이어지려면 견고하게 서야 하기 때문 아들을 자신의 아들로 삼아주시고 자신은 그의 아버지가 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제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의 양자로 여호와의 종, 즉 여호와의 백성보다 더욱 친밀한 관계로 들어서게 되며, 이것은 만군의 여호와의 절대적인 지지와 보호를 받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본문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단어는 영원히입니다. 다윗 왕조를 영원히 세워주고 보존해주시겠다는 말을 세 번이나 반복합니다. 이것은 사울 집과 대조를 보여주기 위한 것으로 사울 집에서 은혜를 거둔 것처럼 다윗 집에서는 은혜를 거두지 않을 것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다만 한 가지 조건을 두는데, 왕이 범죄할 경우는 사람의 매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하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사람의 매인생의 채찍은 평행법으로 동일한 의미를 비슷한 말로 반복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것은 아버지가 사랑하는 아들을 위해 죄에 대해서 징계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것도 일시적이며, 절대 사울의 집을 버리신 것처럼 완전히 버리지는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러므로 다윗 언약은 왕조를 주시겠다는 언약이며 양자 언약으로 또한 영원한 언약입니다. 사실 사울도 이런 약속을 받을 뻔하였습니다. 사무엘상 13:13에서 사무엘은 사울에게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였다면 여호와께서 왕의 나라를 영원히 세우셨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사울은 여호와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왕조를 세우지 못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였기에 영원한 왕조를 하사받은 것입니다.

다윗의 언약은 구약의 마지막 부분으로 가면 이스라엘이 멸망함으로 희미해집니다. 하지만 이 약속은 신약시대에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살아났고 성취되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다윗의 열망은 순수하고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그 열망보다 자기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열망이 훨씬 더 크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소망을 품은 사람들에게 위대한 복을 허락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나라와 그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케 할 것을 약속하십니다. 다윗의 후손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아버지가 되어주시고, 그들을 지키고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하나하나 벅차고도 거대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소망을 품은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 안에도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소망이 임하고 하나님의 거룩한 복이 임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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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06-02)


기쁨으로 춤추는 예배자

사무엘하 612-23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은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을 이렇게 진술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귀하지만,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 또한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예배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왕국 안정된 후 다윗은 기럇여아림에 있던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올 계획을 세웁니다. 이때 새 수레에 궤를 싣고 오다가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떨어지는 궤를 잡았던 웃사가 죽는 무서운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일로 다윗은 법궤를 두려워하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법궤를 두었던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다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올 계획을 세웁니다.

 

여호와의 궤를 모셔오는 행렬(12-15)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죄인인 우리에게 오셨는데, 그 은혜를 예수님의 십자가로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과 함께하시려면 죄를 해결하셔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죄를 해결하시고 의를 이루셨습니다. 오벧에돕의 집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사 복을 주셨듯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12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13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14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15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12-15)

다윗은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일어난 웃사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려던 계획을 중단하고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에 두게 됩니다. 그런데 오벨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가 여호와의 법궤로 인해 복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려는 시도를 다시 하게 됩니다. 12절은 다윗이 오벧에돔의 집으로 가서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가져왔다는 사실을 요약적으로 말하고 있으며, 13-15절은 법궤를 가져온 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다윗의 둘째 시도(12)

이번에는 여호와의 궤를 옮기는 규례를 따라 사람들이 법궤를 메었습니다. 다윗은 궤를 메고 여섯 걸음 걸었을 때 소와 살진 송아지로 희생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평안하게 법궤를 옮길 수 있게 해달라는 기원이 담긴 제사일 것입니다.

 

(2) 기뻐하는 다윗(13-14)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법궤 앞, 즉 여호와 앞에서 온 힘을 다하여 춤을 춥니다. 다윗이 춘 춤은 원형을 만들어 빙글빙글 돌며 추는 층으로 다윗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춤에 참여하여 단체로 춤을 추었을 것입니다. 다윗도 여기에 참여하여 여호와의 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기쁨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때 다윗은 베로 만든 에봇을 입고 있었습니다. 에봇은 일반적으로 제사장이 입는 제의적 옷이며 세마포로 만든 에봇은 사무엘상 2장에서 사무엘이 입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세마포 에봇은 정식으로 제사장 임명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여호와를 섬기거나 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참여할 때 입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제사를 드린 것과 에봇을 입은 것을 보면 그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것을 제의적 의식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여호와의 행진(15)

이렇게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은 기쁨으로 환호하고 나팔을 불며 여호와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옵니다. 이전에는 많은 악기를 사용하여 웅장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면, 이번에는 신호를 보내기 위한 나팔만 사용했습니다. 대신에 여호와 앞에서 기뻐 춤추며 환호하는 백성들이 여호와의 궤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안치된 언약궤(16-19)

똑같은 구원의 복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데 왜 우리는 다윗처럼 뛰놀며 춤추듯이 기뻐하지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가 받은 복과 우리가 받은 복이 다르지 않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의 복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때 다윗 왕은 왕의 신분을 잊은 채 뛰놀며 춤을 추었습니다.

 

16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17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18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19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16-19)

백성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다윗 기쁨은 나눌 때 배가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을 온 백성과 함께 나눕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떡과 고기에 건포도까지 얹어서 풍성한 선물을 나누었습니다. 거룩한 기쁨이 온 나라 온 백성에게 구석구석 퍼져 나갑니다. 이스라엘 온 땅이 거룩한 예배의 처소가 됩니다.

 

(1) 다윗의 모습을 업신여기는 미갈(16)

여호와의 궤가 예루살렘 다윗 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온몸으로 기뻐하며 참여한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대조적으로 미갈은 성안에서 이 광경을 창밖으로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미갈을 다윗의 부인이 아닌 사울의 딸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본문에서는 항상 사울의 딸로 표현됩니다. 이것은 미갈이 다윗 궁전에서 다윗의 아내가 아닌 사울의 딸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사무엘하 3:13에서 다윗이 아브넬에게 미갈을 데리고 오라고 말할 때도 나의 처가 아닌 사울의 딸 미갈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미갈을 자신의 처라고 부른 것은 이스보셋에게 미갈을 돌려달라고 말할 때가 유일한데, 이때는 미갈이 나의 처인 것이 들려달라는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아내가 아니라 사울의 딸로서의 미갈이 필요해서 강제적으로 데리고 온 것이기에 다윗 궁전에서 미갈의 위치는 편할 수 없었을 것이고, 다윗에 대해서도 이전처럼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불편함이 다윗의 모습을 보는 미갈의 마음에서 드러납니다.

미갈은 창 너머로 다윗이 춤추는 모습을 보며 그런 다윗을 경멸합니다. 이런 상황은 미갈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쁨에 동참하지 못하고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2) 법궤를 성막에 모시고 제사를 드림(17-19)

미갈의 마음과 관계없이 여호와의 꿰는 무사히 다윗이 준비한 장막에 잘 모셔집니다. 여기서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위해 만든 장막은 광야에서 모세가 만들었던 성막과 같은 종류의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장막은 여호와의 궤의 임시 처소로 사용된 것입니다. 다윗은 후에 여호와의 궤를 안치할 성전을 짓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에 안착한 것에 감사하며, 이제 그곳이 제사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립니다. 그러고 나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일반적으로 백성들을 축복하는 것은 제사장의 임무인데(10:8), 여기서 다윗은 제사장과 유사한 역할을 하였고, 여호와의 선택받은 왕으로서 백성들을 축복하였습니다. 또 남자부터 여자까지 빠짐없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빵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개를 주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언약식 후에 열리는 잔치와 같은 개념으로 여호와께서 다윗 성에 안주하신 것은 이제 여호와께서 다윗과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언약의 잔치에 모든 백성이 참여한다는 의미로 모든 백성에게 음식을 나누어 준 것입니다. 이제 여호와께서는 다윗 성에서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하시며 다윗 왕권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다윗과 미갈의 갈등(20-23)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보다 눈에 보이는 궤에 대한 호기심이 더 켰던 것입니다. 이처럼 지적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오직 경외하는 마음으로, 경배할 목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앞서려는 망므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이끄시는 만큼만 나아가며, 보여 주시는 만큼 순종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20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21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22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23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20-23)

다윗이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것을 기뻐하며 모든 백성 앞에서 춤추는 것을 비난한 사울의 딸 미갈의 비난에, 다윗은 자신을 택하사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신 하나님 앞에서 경배하는 일이라면 이보다 더 낮아져서 천하게 보여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1) 미갈의 비방(20)

다윗은 축제가 끝난 뒤에 자신의 가족을 축복하러 왕궁으로 들어옵니다. 이때 미갈도 다윗을 맞이하기 위해 나와서 아까 자신이 본 것에 대해 다윗을 비난합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지요?’로 시작하는 그녀의 말은 다윗의 모습이 왕으로서의 위엄과 영광이 전혀 없는 모습이라고 비꼬는 말입니다. 당신의 신복의 계집종은 천한 신분 중에서도 가장 비천한 신분의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녀는 다윗이 옷이 펄럭거려 하체가 드러날 정도로 춤을 춘 것에 대해 가장 비천한 신분의 사람들 앞에서까지 몸을 드러내는 체통 없는 행동을 한 것이며, 이런 행동은 어리석은 자가 스스로 옷을 벗는 것과 같은 행동이라며 비난하였습니다. 다윗이 체통을 잃고 어리석게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2) 다윗의 반박(21-22)

미갈은 다윗의 행동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다윗은 미갈에게 자신의 행동은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라며 여종들 앞에서 한 것이라는 미갈의 말을 반박합니다. 다윗과 둘 다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춤을 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여호와는 네 아버지와 그의 온집보다 자신을 선택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신 분이기에, 그 여호와 앞에서 기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여호와께 감사하여 춤추는 것이 왜 부끄럽고 어리석은 일이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미갈에게 노골적으로 여호와께서 네 아버지의 집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실을 말하며 미갈을 공격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더 낮아져서 자신의 눈에 천하게 보일지라도 여종들은 자신에게 영광을 돌릴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얼마나 영광스럽냐?’는 미갈의 비아냥에 대한 응수로 자신이 아무리 천하게 행동해도 자신이 이 나라의 왕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미갈의 비난에 매우 강하게 공격하며 비난하였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춤춘 것을 비난한 것에 대해 매우 분노한 것입니다.

 

(3) 미갈의 불행(23)

그 결과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다윗은 이 사건 이후로 미갈을 다시는 찾지 않았고 그 결과 아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분명히 미갈이 다윗을 업신여겼고 비난하였기에 다윗이 미갈에게 화를 내는 것이 정당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미갈과 다윗의 관계를 보면 미갈은 다윗을 사랑한 여인이고 다윗의 생명을 살려준 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미갈을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 10여 년을 같이 산 남편과 강제로 갈라놓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사울의 딸 미갈은 자손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울 가문과 다윗 가문의 결합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사울의 가문은 다윗 왕국에서 어떤 자리도 차지할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굳건하게 서게 되었고, 사울 가문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예배는 근엄한 의식 이전에 하나님을 향한 진심 어린 기쁨입니다. 이 땅에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쁨이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나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그분으로 인해 행복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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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06-01)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는 다윗

사무엘하 6장 1-11절


자동차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여 원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면 문명의 유익된 기계입니다. 하지만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로 굴러다니는 자동차는 문명의 흉기가 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품고 있는 ‘열심’은 어떠한 중요한 일을 이루는 중요한 에너지가 되지만, 적절히 통제되지 않고 사용될 때 오히려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신앙적인 열심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통해서 통제될 때,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통일 왕국의 기초가 세워지고 안정과 번영이 찾아오자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셔야 함을 알았기에 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기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궤’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계심과 동일한 의미가 있음을 인식합니다(민수기 10:35-36). 그러나 이 궤를 옮겨오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사람의 생각으로 행함으로 실수를 범합니다.


예루살렘으로 옮기려는 언약궤(1-5)

성도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중심에 하나님 두기를 소망해야 하며 그것을 중요한 일로, 기쁨으로 여겨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는 것을 말합니다.

1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2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3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4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5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1-5)

예루살렘을 통일 왕국의 수도로 삼고 통치를 시작한 다윗은, 왕궁을 짓고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합니다. 어느 정도 안정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 관심을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오려 했습니다.

(1) 다윗의 계획(1-2)

다윗은 이스라엘 지역이 블레셋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나라가 안정되자 하나님의 궤, 즉 언약궤를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려고 했습니다. 당시 궤가 있던 곳은 사무엘상 7장에 나와 있지만, 블레셋에 빼앗겼다가 돌아온 이후로 계속적으로 유다의 바알레(기럇여아림)에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군사 30,000명을 모으는데 언약궤를 옮기는 것을 마치 대규모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매우 성대하게 거행합니다.

다윗이 바알레유다로 가는데 ‘바알레유다’라는 지명에 대해 학자들은 대부분 유다의 ‘바알라’로 보는 것에 동의합니다. ‘바알라’는 여호수아 15:9에서 ‘기럇여아림’으로 불리며, 여호수아 10:60과 18:14에서는 ‘기럇여아림’으로 불리며, 여호수아 15:60과 18:14에서는 ‘기럇바알’을 ‘기럇여아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알레유다와 바알라와 기럇여아림은 모두 같은 지명을 의미합니다. 기럇여아림은 예루살렘과 게셀 중간에 있으며, 이곳은 기브온 사람들의 중요 성읍이었습니다. 사무엘상 7:2에 따르면 블레셋에게 뺴앗겼던 언약궤가 돌아온 이후부터 20년 동안 이곳에 있었습니다.

2절에서 하나님의 궤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그룹들 사이에 계시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불리는 궤라고 합니다. 이것은 언약궤가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물건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현재 왕국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 자신이 섬기는 여호와를 모셔둠으로써 예루살렘을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로 굳건하게 세우려 하고 있습니다.

(2) 언약궤를 싣고 가는 수레(3)

다윗은 언덕 위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새로 만든 수례에 싣고 옮겼습니다. ‘산’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언덕’정도의 나지막한 구릉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데 새 수레를 사용한 것은 어떤 부정한 것도 접하지 않은 정결한 상태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수레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궤를 옮기기 위해 특별히 정결하게 만든 수레였습니다. 그리고 이 새 수레는 제사장 아비나답의 아들들인 웃사와 아효가 몰았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언약궤를 정결한 방법으로 옮기려는 다윗의 배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도 제사장 아비나답도 언약궤를 옮기는 정확한 방법을 몰랐습니다. 사무엘이 죽은 후 이스라엘에는 뛰어난 영적 지도자가 등장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따라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제사장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에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않는 왕이 있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도 제대로 전수되거나 교육되지 않았으며,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지도자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원래 언약궤는 출애굽기 37:5에 따르면 메도록 만들어졌으며 민수기 7:9에서는 고핫 자손에게 언약궤를 메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방법을 무시하고 수레로 옮기려고 한 것입니다. 이들이 수레로 언약궤를 옮기려고 한 것은 블레셋 사람들의 방식을 따른 것입니다. 사무엘상 6장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궤를 돌려보낼 때 암소 두 마리가 이끄는 새 수레에 실어서 보낸 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이 이 방식으로 언약궤를 운반하려고 한 것입니다. 제사법과 성막 관리의 전문가인 제사장도 언약궤를 옮기는 법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을 만큼 다윗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지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3) 언약궤를 수행하는 행렬(4-5)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레에 언약궤를 싣고 나오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아비나답의 아들 아효는 그 궤 앞쪽에서 걸어갔고 다른 아들인 웃사도 수레 옆에서 걸어가고 있었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를 따랐을 것입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에 사용되는 악기를 총동원하여 연주하며 흥겨워하였습니다. 언약궤 수레 뒤를 쫓아가며 연주하고 다윗과 백성들은 기뻐 춤추며 흥겨워하는 축제의 한마당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흥겨운 분위기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다음 단락에 나오는 비극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언약궤를 만짐으로 웃사가 죽음(6-8)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며 죄인과 함께해 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은혜를 구하며 살아갑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자신의 뜻과 마음대로 살아가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은혜 속에 존재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그 은혜를 알아 가야 합니다.

6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8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6-8)

다윗은 하나님의 법을 어긴 웃사를 치시는 여호와를 보면서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 오리요’하며 두려워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자신이 두려우신 하나님과 결코 함께할 수 없었던 불의하고 더러운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죄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의 대상이었습니다.

(1) 언약궤를 붙잡은 웃사(6)

언약궤를 실은 수레와 무리들이 나곤의 타작마당까지에 왔을 때, 소들이 갑자기 움직여 언약궤를 떨어뜨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소들이 왜 이렇게 움직였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아마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이 주로 산지를 거치면서 평탄하지 못한 곳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수레 옆에서 수행하던 웃사는 언약궤가 크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언약궤를 붙잡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웃사는 언약궤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급한 마음에 언약궤에 손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웃사가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웃사가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침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는 붙잡지 말아야 하는 언약궤를 붙잡았습니다.

(2) 하나님의 진노(7)

하나님께서 이런 웃사의 행동에 진노하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를 죽이셨습니다. 웃사가 죽은 이유는 그의 부주의한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웃사를 죽이신 것이 너무 가혹한 처벌이 아닌가라는 논란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제의적인 잘못으로 죽은 경우는 레위기 10장에서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께서 명하지 않은 불로 향을 피우다 그 자리에서 불에 타 죽은 일이 있었는데, 이 경우도 고의적이라기보다는 부주의한 행동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여호와의 성물을 만지거나 여호와께 제사를 지낼 때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거룩성을 침해한 제사장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심한 처벌을 받았고, 제사장들은 늘 자신을 거룩하게 성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모든 제사와 행사를 수행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언약궤가 떨어지는 것을 그냥 두는 것이 옳은지 여부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언약궤가 떨어지게 만든 것도 하나님의 의지라고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궤를 수레로 옮기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소들이 언약궤를 떨어뜨리는 행동을 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경고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3) 다윗의 분노(8)

웃사의 죽음에 대한 다윗의 반응은 분노였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신 것에 대해 분노하며, 그곳의 이름을 ‘베레스웃사’, 즉 ‘웃사에게 분을 발하신 곳’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베레스’라는 단어는 5:20에서 물을 흩으신 것과 같이 블레셋을 흩으셨다고 하며, 그곳 지명을 바알브라심이라고 했는데, 바알브라심의 브라심과 동일한 단어 즉 블레셋에게 분을 발하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웃사에게 분을 발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여기서 분노한 것은 웃사가 여호와께 죽게 된 상황 때문입니다. 자신이 힘써 준비한 축제가 한순간에 공포의 자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언약궤를 오벧에돔의 집에 둠(9-11)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며 죄인과 함께해 주셨습니다. 성도는 날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은혜를 구하며 살아갑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자신의 뜻과 마음대로 살아가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9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9-11)

여호와의 궤가 올라오다가 웃사의 사망 사고를 통해 다윗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간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신 것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1) 다윗의 두려움(9)

다윗은 하나님께서 웃사를 즉시 처벌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에 두려워합니다. 이렇게 무섭게 대하시는 하나님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늘 그의 편에서 지켜 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전쟁에서 앞서 싸워주시는 구원자이셨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좀 더 여호와를 가까이 모시기 위해서 연 행사에서 자신을 향해 분노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다윗도 여호와에 대한 심한 두려움을 느낀 것입니다.

(2) 오벧에돔의 집으로 간 언약궤(10)

다윗은 조금 전과는 달리 여호와의 궤를 다윗 성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기를 꺼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두게 됩니다.

여기서 가드는 블레셋의 가드가 아닌 이스라엘의 한 지역 이름이며, 단 지파의 성읍 중 고핫 자손에게 할당된 가드림몬을 가리킬 것입니다(수 21:24). 역대상 15:17-19에서는 오벳에돔을 레위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오벧에돔은 가드 출신지이지만, 나곤의 타작마당 근처에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벧에돔은 ‘에돔의 종’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에돔은 신명일 가능성이 큽니다. 역대기에 따르면 그는 고핫 족속의 레위인이며, 성전 문지기로 봉사했습니다(대상 15:18; 26:4-8).

(3)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신 여호와(11)

여호와의 궤는 오벨에돔의 집에 석 달간 있었고, 여호와께서는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이 복이 어떤 형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복을 주셨다는 것은 오랜에돔이 여호와의 궤를 정중하게 잘 모셨고, 이제 여호와의 진노가 풀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여호와의 궤가 두렵고 무서운 대상이 아니라 법도에 맞게 거룩하게 다루면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는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런 언약궤의 모습은 여호와의 모습을 반영하는데, 우리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면 여호와는 우리의 복의 근원이 되시지만,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근원이 되시는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다윗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좀 더 여호와를 잘 섬기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나갈 때,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의 의지나 경험으로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순종해 나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따라 하나님이 맡기신 일들을 잘 감당함으로 하나님께 복을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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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05-02)

 

하나님께서 친히 싸우시는 전쟁

사무엘하 5장 11-25절

 

“모사제인(謀事諸人) 성취제천(成就諸天)”라는 말은, 잠언에서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부터 나오느니라”(잠언 16:1)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계획은 사람이 하지만, 뜻을 이루는 분은 하늘(하나님)이다.’는 뜻입니다. 어떤 일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조치나 방법은 강구하는 것을 ‘작전’이라고 합니다. 작전을 잘 세우고 통해야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작전의 승리가 곧 전투의 승리입니다. 우리 인생의 최고의 작전을 세우는 분은 누구입니까?

 

다윗은 이스라엘 장로들의 요청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드디어 유다와 이스라엘은 통일왕국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아직 쫓아내지 못한 여부스 족속이 살고 있던 예루살렘을 정복하고 그곳을 다윗 성이라 이름 붙이고 이스라엘의 수도로 삼게 됩니다. 다윗이 이렇게 승승장구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시기 때문으로 하나님께서는 모든 상황을 통해서 다윗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을 왕도로 삼음(11-16)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도우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성취된 일들이 있다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허락해 주셨습니다. 좋은 가정, 좋은 직장, 동료 그리고 이웃까지도 허락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일이 잘되고 번창할 때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을 높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다윗처럼 계속 인도하고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11두로 왕 히람이 다윗에게 사절들과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매 그들이 다윗을 위하여 집을 지으니 12다윗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세우사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신 것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 나라를 높이신 것을 알았더라 13다윗이 헤브론에서 올라온 후에 예루살렘에서 처첩들을 더 두었으므로 아들과 딸들이 또 다윗에게서 나니 14예루살렘에서 그에게서 난 자들의 이름은 삼무아와 소밥과 나단과 솔로몬과 15입할과 엘리수아와 네벡과 야비아와 16엘리사마와 엘랴다와 엘리벨렛이었더라(11-15)

다윗이 유다와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명실상부한 통일왕국의 왕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안정과 번영을 가져오자, 두로 왕 히람이 다윗을 국제적인 파트너로 인정하고 왕궁을 짓는 데 필요한 재료와 기술자를 보내 다윗을 위한 왕궁을 지어 주었습니다.

(1) 왕궁 건축(11)

열왕기는 히람이 평생에 다윗을 사랑하였다고 기록합니다(왕상 5:1). 이 기록은 히람과 다윗의 관계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었음을 암시합니다. 그리고 그 관계는 다윗의 정복 전쟁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면서 그의 명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을 때 시작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히람이 다윗에게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낸 것은 예루살렘으로 왕궁을 옮긴 후 몇 년이 지났을 때로 여겨집니다. 이것은 히람이 빠른 속도로 힘을 키워가는 신생 국가의 왕 다윗과 앞으로 좋은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그에게 보내는 선물이었습니다. 히람이 보낸 사신들이 히람의 의도와 마음을 다윗에게 전달했을 것입니다. 한편 히람의 통치 연대는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요세푸스의 글에 따르면, 에베소의 메난더(Menander)는 히람이 34년 통치한 후 53세에 사망했다고 진술했습니다. 솔로몬의 즉위 24년, 즉 솔로몬의 성전과 왕궁 건축이 끝난 후에도 히람이 여전히 살아있었습니다(왕상 9:10-14). 그러므로 메난더의 진술이 옳다면, 기껏해야 히람은 다윗 통치의 마지막 10년 동안 다윗과 시대를 같이했을 것입니다. 결국, 다윗의 백향목 왕궁 건축은 다윗이 죽기 몇 년 전에 겨우 이루어졌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은 성경의 기록과 맞지 않습니다. 백향목 왕궁이 완공된 이후에 주어진 다윗 언약이 솔로몬의 출생을 미래에 있을 일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7:12; 대상 22:9). 이처럼 성경은 백향목 왕궁이 다윗 통치 전반기에 건축되었음을 말합니다. 카일-델리취 주석은 메난더의 진술을 신뢰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2) 여호와의 인도하심(12)

다윗은 오랜 역사를 지닌 부유한 왕국인 두로의 왕 히람이 자발적으로 도움을 베푼 것을 보고 여호와의 뜻을 깨달았습니다. 여호와는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견고하게 세우셨고,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을 위해 다윗의 왕국을 높이 드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왕국을 높이시는 목적은 다윗의 부귀영화가 아니라 여호와의 백성을 위함입니다.

(3) 예루살렘에서 태어난 아들들(13-16)

다윗이 예루살렘에서 첩과 아내들을 얻었는데, 그들에게서 자녀들이 태어났습니다. 본문은 열한 명의 아들을 기록합니다. 역대기에는 사무엘서의 목록 외에 노가와 엘벨렛(=엘리벨렛)의 이름을 추가하여 모두 열세 명의 아들을 기록합니다(대상 3:5-9; 14:3-7).

역대기에 따르면, 처음 네 명인 삼무아, 소밥, 나단, 솔로몬은 밧세바의 아들들입니다(대상 3:5). 출생 순서가 다소 불분명합니다. 사무엘서는 밧세바의 첫아들이 여호와의 치심을 받아 죽고 다음으로 태어난 아들이 솔로몬인 것처럼 기록하고 있습니다(12:24-25). 모세는 왕이 많은 아내를 두지 말아야 한다고 명령합니다(신 17:17). 하지만 고대 사회의 전제 군주는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아내와 첩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예를 들어 왕은 지방 호족들과의 우호적 관계를 형성하기 위해 그들의 딸을 아내로 취했습니다. 그러므로 왕이 취한 아내들의 수가 국가의 힘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다윗의 아내와 자녀들에 관해 말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굳건히 세우셨고 그의 왕국을 부강하게 하셨다는 증거로 제시하는 것입니다. 신명기의 금지 조항은 아내들의 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왕이 여인들로 인해 미혹받지 말아야 함을 강조합니다. 즉 신명기 17:17은 가운데 부분인 ‘그의 마음이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를 강조하기 위해 미혹의 예로 아내와 금은의 축적을 금지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은 단순히 아내가 많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 아내들 때문에 미혹되었기 때문입니다(왕상11:1-8).

 

블레셋과의 첫 번째 전쟁(17-21)

하나님께서는 성령님을 보내셔서 구체적으로 인도하십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님이 인도하시기에 날마다 행할 바를 압니다. 승리가 보장되어 있으며 그 종착지까지 걸어갈 걸음을 인도받기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이것이 모든 난관과 대적에도 교회가 부흥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17이스라엘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함을 블레셋 사람들이 듣고 블레셋 사람들이 다윗을 찾으러 다 올라오매 다윗이 듣고 요새로 나가니라 18블레셋 사람들이 이미 이르러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19다윗이 여호와께 여쭈어 이르되 내가 블레셋 사람에게로 올라가리이까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넘기시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말씀하시되 올라가라 내가 반드시 블레셋 사람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20다윗이 바알브라심에 이르러 거기서 그들을 치고 다윗이 말하되 여호와께서 물을 흩음 같이 내 앞에서 내 대적을 흩으셨다 하므로 그 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부르니라 21거기서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우상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의 부하들이 치우니라(17-21)

다윗을 중심으로 이스라엘이 통일 왕국을 수립했다는 소식은 주변 나라들에게 전해졌습니다. 두로 왕 히람은 축하사절단을 보내고 당대 최고의 건축자들과 건축 재료들을 보내어서 백향목 왕궁을 지어주었습니다. 사울 왕처럼 자기 교만이나 자랑에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임을 깨달은 것입니다.

(1) 블레셋의 첫 번째 공격(17-18)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고 이스라엘 전체의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블레셋이 들었습니다. 블레셋 용병 출신이면서 블레셋 사람들에 의해 아기스의 봉신으로 여겨지는 다윗이 헤브론에서 유다 지파의 왕이 되었을 때, 블레셋은 다윗이 이스보셋과 잘 싸우기를 바라면서 그를 방해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갑자기 다윗이 사울의 왕국을 이어받고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블레셋은 어느새 다윗이 자신들의 주적이 되었음을 깨달았습니다. 르바임에서 블레셋과 싸운 두 번의 전쟁은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전에 일어났을 것입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위해 군사들을 이끌고 북쪽으로 가고 있을 때, 블레셋은 다윗을 잡으려고 예루살렘 근처 르바임 골짜기에 모였습니다. 르바임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서쪽에 있는 골짜기로, 힌놈의 아들 골짜기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블레셋이 사울 왕과 전쟁하듯 병력을 모아 다윗을 잡으려고 왔습니다. 블레셋 군대는 르바임 골짜기에서 가까운 베들레헴에 본거지를 두고, 르바임 골짜기에 군대를 흩어 놓았습니다. 다윗도 이에 대응하기 위해 요새로 내려갔습니다. 이 요새는 아들람 굴에 있는 요새일 것입니다(23:13-14). 다윗의 삼십용사 중 세 명이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에서 물을 가져온 일이 이때 있었을 것입니다(23:13-17).

(2) 하나님께 기도하는 다윗(19)

다윗은 하나님께 기도하며 자신이 블레셋과 싸워야 하는지 그리고 승리할 수 있는지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싸워서 승리하게 하겠다고 약속해주셨습니다. 블레셋을 다윗의 손에 넘겨주심은 완전한 승리를 보여줍니다. 다윗이 단순한 질문 여러 개를 던지는 것은 아마도 하나님의 계시가 찬성과 반대 형태로만 제시하는 우림과 둠밈을 통해 주어졌기 때문일 것입니다.

(3) 다윗의 승리(20-21)

다윗이 르바임 골짜기에서 블레셋을 쳐서 무찌르고 그곳 이름을 바알브라심이라 했습니다. 이 이름의 뜻은 ‘파쇄의 주’일 것입니다. 물을 파쇄하듯 대적을 파쇄함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도주하면서 자기들의 우상을 버렸으므로 다윗과 그 부하들이 우상을 치웠습니다.

 

블레셋과의 두 번째 전쟁(22-25)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들에게 승리를 주시는 분입니다. 원수들을 백성들보다 먼저 휩쓸어버리시는 격파의 주님이십니다. 삶에 어려움들이 홍수처럼 밀려온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대로 나가시길 바랍니다. 우리와 함께하셔서 그 모든 어려움들을 다 흩어버리시기 때문입니다. 요즘 겪고 있는 어려운 문제들과의 싸움이 ‘바알브라심’의 고백으로 바뀔 수 있기를 바랍니다.

22블레셋 사람들이 다시 올라와서 르바임 골짜기에 가득한지라 23다윗이 여호와께 여쭈니 이르시되 올라가지 말고 그들 뒤로 돌아서 뽕나무 수풀 맞은편에서 그들을 기습하되 24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공격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너보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하신지라 25이에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대로 행하여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니라(22-25)

블레셋 사람들은 1차 실패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전열을 가다듬고 다시 다윗을 공격하려고 올라옵니다. 블레셋이 르바임 골짜기를 가득 메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다윗은 또다시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1) 블레셋의 두 번째 공격(22)

한 번 패배한 블레셋이 물러서지 않습니다. 다시 군대를 전열을 가다듬고 다윗을 치려고 르바임 골짜기로 올라왔습니다.

(2) 하나님께 기도하는 다윗(23-24)

블레셋 군대가 다시 쳐들어왔을 때, 다윗은 이전에 이겼던 전술로 응전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다시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전처럼 정면에서 맞붙지 말고 블레셋의 후미로 돌아가서 기습하라고 하시며 전혀 다른 전술을 알려 주셨습니다. 그리고 다윗 앞서 나가서 적군을 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24). 이는 전쟁을 다윗에게 맡기지 않고 승리를 결정지으신다는 뜻입니다.

(3) 다윗의 승리(25)

다윗이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여 그대로 행하였습니다. 다윗이 블레셋 사람을 쳐서 게바에서 게셀까지 이르렀습니다. 게바는 예루살렘 북동쪽이므로, 여기서 게바는 게셀로 가는 길목에 있는 기브온으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대상 14:16). 게셀은 기브온에서 서쪽으로 30킬로미터 떨어진 블레셋 영토의 성읍입니다.

 

나가는 말

다윗처럼 매일 매순간 주님께 묻고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나가길 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베푸시는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작전 시지를 잘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뜻에 따라 움직여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성도들의 승리의 비결은 뛰어난 처세술이나 활달한 인간관계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순종함에 있습니다. 위급하고 절박한 상황이라도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앞길에 승리를 보장 받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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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05-01)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다윗

사무엘하 5장 1-10절

믿음은 기다리는 힘입니다. 우리는 왜 기다린 것이 힘들겠습니까? 기다리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느낄 수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기다린 것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만큼 적극적인 활동이 없기 때문입니다. 기다림은 하나님께서 하나님 되게 아름다운 신앙입니다. 본문은 그 아름다운 신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울의 집 이스보셋은 아브넬의 죽음으로 권력 기반이자 후원자를 잃게 됩니다. 그러자 그의 정예부대 지휘관이었던 베냐민 사람 바아나와 레갑이 이스보셋을 죽이고 권력과 재물을 얻으려고 그의 머리를 들고 다윗에게 찾아갑니다. 하지만 다윗은 이스보셋을 죽인 그들을 살인자로 규정하여 죽이고 사지를 잘라 헤브론 못에 걸어두는 극형에 처합니다. 왕을 잃은 이스라엘은 다윗에게 나와 왕이 되어달라고 요청합니다.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1-5)

하나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시는 분입니다. 약속이 성취되는 과정에는 너무도 연단하신 시간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계획된 시간이 있습니다. 모든 성도에게도 하나님의 각자에게 계획하신 시간이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시간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자칫 서둘러서 하나님의 시간을 무시하고 자신의 생각대로 하는 것은 실패의 지름길입니다.

1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이르러 다윗에게 나아와 이르되 보소서 우리는 왕의 한 골육이니이다 2전에 곧 사울이 우리의 왕이 되었을 때에도 이스라엘을 거느려 출입하게 하신 분은 왕이시었고 여호와께서도 왕에게 말씀하시기를 네가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며 네가 이스라엘의 주권자가 되리라 하셨나이다 하니라 3이에 이스라엘 모든 장로가 헤브론에 이르러 왕에게 나아오매 다윗 왕이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 그들과 언약을 맺으매 그들이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으니라 4다윗이 나이가 삼십 세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 동안 다스렸으되 5헤브론에서 칠 년 육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더라(1-5)

이제까지 사울의 집을 지지하고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섬기던 사람들이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로 돌아옵니다. 그들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며 자신들의 왕이 되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헤브론에서 다윗을 왕으로 추대했고,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드디어 다윗이 온 유다와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입니다.

(1)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다윗(1-3)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이 죽은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난 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윗을 왕으로 섬기기로 결정하고,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헤브론에 있는 다윗에게로 옵니다. 이것은 사울의 집을 섬기겠다거나 따로 독립하여 다른 왕국을 만들겠다는 의견이 이스라엘에서 더 이상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다윗이 왕이 되어야 하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첫째, 이스라엘과 유다가 같은 핏줄이기 때문입니다. 다윗의 집과 사울의 집으로 갈라지기 전에 이스라엘은 한 민족이었고 사울 시대에는 한 나라였습니다. 같은 피가 흐르는 한 민족이기에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는 것이 옳다는 것입니다. 둘째. 사울이 왕이던 시절에도 다윗은 이스라엘 지도자로서 군대를 이끌고 전쟁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왕의 주요 임무는 적의 침략을 막아내고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사울 왕 때부터 블레셋이나 다른 적들과 전쟁을 하며 구원자 역할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셋째, 여호와께서 다윗을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목양하는 목자와 지도자로 지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생각하는 왕에 대한 신학적 이해를 엿볼 수 있습니다. 둘째 이유가 세속적이고 일반적인 왕의 임무라면, 셋째 이유는 하나님과 관계된 이스라엘의 독특한 왕권개념입니다.

왕은 하나님께서 선택하여 세우십니다. 이스보셋처럼 인간이 선택하거나 세습으로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선택한 사람만이 왕이 될 수 있습니다. 왕의 임무는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잘 먹이고 입히고 보호하는 목자의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방 왕들처럼 백성들을 착취하고 억압해서는 안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백성이며 왕은 하나님의 백성을 잘 돌볼 의무를 지는 직책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모든 백성이 다윗이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왕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다윗에게 왕이 되어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3절에서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이 각 지파를 대표하여 헤브론에 모였습니다. 헤브론에서 여호와 앞에서 장로들과 함께 언약을 맺었고, 그들은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삼기 위해 기름을 붓습니다. 다윗은 총 세 번의 기름 부음을 받는데, 사무엘에 의해서 왕으로 선택받았을 때가 처음이며, 이 일은 비밀에 부쳐졌습니다(삼상 16:13). 두 번째는 유다 사람들이 다윗을 왕으로 세우며 기름을 부은 일이고(삼하 2:4), 이제 이스라엘 장로들이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면서 기름을 붓고 있습니다(삼하 5:3). 다윗은 드디어 유다와 이스라엘 모두의 왕으로 세움을 받았고, 이스라엘은 다시 통일왕국이 되었습니다.

(2) 다윗 통치에 대한 요약(4-5)

이 부분은 다윗 통치 기간에 대한 전체 설명입니다. 다윗은 30세에 왕위에 올라 40년 동안 왕으로서 통치하였습니다.

이스라엘에서 30세는 남성이 성인으로서 인정받고 공식적인 사역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이며, 제사장직을 수행할 수 있는 나이입니다(민 4:3). 40년은 구약에서 한 세대를 나타내는 숫자이며, 성공적인 사사가 다스릴 때는 40년 혹은 80년이 평안하였습니다.

다윗은 소년이었을 때 왕으로 선택을 받았지만, 10여 년간 단련 받은 후 성인이 되어 공식적으로 왕위에 올랐고, 한 세대 동안 이스라엘을 평안하게 다스린 성공적인 왕이었던 것입니다.

5절은 다윗이 왕권을 잡은 과정을 보여줍니다. 헤브론에서 7년 6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 33년 동안 온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습니다. 모두 40년 7개월로 다윗이 40년을 다스렸다는 것은 대략적인 숫자인 것입니다.

다윗이 유다 왕으로 등극한 후에 얼마 지나지 않아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도 이스라엘의 왕으로 2년을 다스렸습니다(삼하 2:10). 그러므로 이스보셋이 죽은 후 이스라엘 장로들이 다윗에게 와서 왕이 되어달라고 말할 때까지 대략 5년 정도가 흘렀습니다. 이것은 다윗이 이스라엘을 통합한 것이 본문이 말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과정이 있었음을 짐작하게 합니다. 본문은 결과만 말하고 있는데, 이는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을 정복한 다윗(6-10)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는 작은 틈새를 열어 승리하게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어린 목동에서 상상할 수 없는 왕권을 주셨고, 아무도 넘볼 수 없는 시온성에서 날로 강건해져 가는 나라를 출범하게 하십니다.

6 왕과 그의 부하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 주민 여부스 사람을 치려 하매 그 사람들이 다윗에게 이르되 네가 결코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너를 물리치리라 하니 그들 생각에는 다윗이 이리로 들어오지 못하리라 함이나 7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으니 이는 다윗 성이더라 8그 날에 다윗이 이르기를 누구든지 여부스 사람을 치거든 물 긷는 데로 올라가서 다윗의 마음에 미워하는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을 치라 하였으므로 속담이 되어 이르기를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더라 9다윗이 그 산성에 살면서 다윗 성이라 이름하고 다윗이 밀로에서부터 안으로 성을 둘러 쌓으니라 10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가니라(6-10)

왕이 된 다윗은 가장 먼저 예루살렘을 정복해서 통일 이스라엘의 새로운 수도로 삼았습니다. 당시 예루살렘은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 여부스 사람들은 다윗이 절대 자신들의 예루살렘 성을 빼앗지 못할 것이라고 큰소리쳤지만, 다윗은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을 힘입어 이 성을 손쉽게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의 이름을 ‘다윗성’이라 명명했습니다.

(1) 여부스 사람들의 조롱(6)

이 단락은 다윗의 예루살렘 정복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군사들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가서 그 땅 주민인 가나안 민족 여부스 사람들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차지하려고 하였습니다. 사사기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이 예루살렘과 전쟁하여 이긴 적은 있지만, 여부스 사람들을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차지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루살렘은 고대로부터 잘 발달된 도시이며 산꼭대기에 있어 수비하기에 좋은 성읍이었습니다. 다윗이 점령하려고 공격하자 여부스 사람들은 다윗의 군대를 우습게 여기고 그 군대가 절대 성읍에 들어오지 못할 것이라고 호언장담하였습니다. 심지어 다윗의 군대는 맹인과 다리 저는 자라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며 비아냥거렸습니다. 성이 워낙 튼튼하고 방비가 잘 되어 있어서 가장 약한 자들이라도 지킬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화자는 이들이 다윗을 비웃은 것은 실제로 다윗이 자신들의 성을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해줍니다. 예루살렘은 여부스 사람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큼 난공불락의 지형이었습니다.

(2) 예루살렘 점령(7-8)

7절은 다윗이 시온 산성을 빼앗았다고 한 줄로 말합니다. 이것은 여부스 사람들이 장담한 것과 달리 쉽게 점령하였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예루살렘을 시온 산성이라고 부르는데, 학자들에 따르면 시온은 예루살렘 남쪽 언덕의 지명이고 시온 산성은 그 언덕을 지키는 요새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러므로 시온 산성은 예루살렘에 속한 산성이며 후에 예루살렘과 시온은 같은 지역의 다른 이름으로 사용된 것입니다. 여기 시온 산성을 점령했다는 것은 예루살렘을 점령하였다는 것이고, 다윗은 그곳에 자기 이름을 붙여 ‘다윗성’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윗이 쉽게 예루살렘을 점령하였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셨고 그를 도우셨다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여부스를 점령한 뒤 여부스 사람들이 한 말을 받아서 여부스 사람들은 전부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들이라고 비꼬며 이들을 쳐서 죽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다윗이 미워하는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들은 여부스 사람을 의미하는데, 여부스 사람들이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으로도 다윗을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해 자신과 싸우는 여부스인을 다리 저는 사람과 맹인에 비유한 것입니다. 이 일로 인해 ‘맹인과 다리 저는 사람은 집에 들어오지 못하리라’라는 속담이 생겼는데, 여기서 집은 다윗의 성을 의미하며 이 속담이 문자 그대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다윗의 궁전에 들어가는 것이 금지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다만 여부스 사람들에 대한 조롱의 의미를 지닌 속담입니다. 후에 다리를 저는 므비보셋은 다윗 성에서 다윗과 같이 지냅니다.

(3) 예루살렘을 수도로 삼음(9)

산성을 점령한 다윗은 그곳에 거주합니다. 헤브론에서 예루살렘으로 이주하고 그곳에 성벽을 든든하게 지어서 이스라엘의 수도를 정비하며 이스라엘 왕국의 기틀을 다집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으로 다윗은 점점 강해졌다고 마지막에 언급함으로써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고 예루살렘을 정복한 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임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4) 여호와의 도우심(10)

다윗이 왕이 되는 과정에서 하나님은 전혀 등장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는 손길로 다윗을 당신의 계획대로 이끄셨고 그와 함께하시며 그가 형통하도록 복을 주고 계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해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위기 상황이나 특별한 상황에서는 특별히 선지자를 통해서나 직접적인 방법으로 자신을 드러내시지만 일상의 상황에서는 보이지 않는 손길로 인도하시고 형통케 하시며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이런 일상 속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발견하고 감사하는 것이 신앙인이 가져야 할 삶의 자세입니다.

 

나가는 말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꿈이 있습니다. 그 꿈을 목표로 삼으시고, 인내하면서 필요한 훈련을 잘 받으시길 바랍니다. 다윗은 서두르거나 자신의 의지를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비록 더디고 힘들어도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며 말씀 훈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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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04-01)

 

이스보셋의 최후

사무엘하 4장 1-12절

 

세상에는 과정이나 방법이야 어떻게 되든지 결과만 좋으면 괜찮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불순하고 잘못된 방법을 사용해 좋은 결과를 얻는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일시적인 것이지 최종적인 결과는 아닙니다.

 

아브넬은 이스라엘을 다윗의 손에 넘긴다는 협약을 맺고 돌아가던 길에 요압에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이 일로 다윗은 정치적인 어려움에 빠지게 되었고,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려고 최선을 다해 아브넬의 장례를 치러줍니다. 그 결과 다윗은 아브넬을 죽였다는 의심에서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한편 아브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이스보셋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모두 심하게 낙심하였는데, 아브넬이 이스라엘 권력의 핵심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보셋의 근황(1-3)

요즘 우리가 믿고 의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풀의 꽃처럼 사라져버릴 인생을 의지하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이스보셋처럼 맥이 풀리고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상황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고 살았던 사람들의 결과입니다. 시편에서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4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5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편 146:3-5)라고 하였습니다.

1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은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었다 함을 듣고 손의 맥이 풀렸고 온 이스라엘이 놀라니라 2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에게 군지휘관 두 사람이 있으니 한 사람의 이름은 바아나요 한 사람의 이름은 레갑이라 베냐민 족속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들이더라 브에롯도 베냐민 지파에 속하였으니 3일찍이 브에롯 사람들이 깃다임으로 도망하여 오늘까지 거기에 우거함이더라(1-3)

사울의 집에 중심이던 아브넬이 헤브론에서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 왕은 맥이 풀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습니다(1). 아브넬은 사울 집의 힘의 근원이었습니다. 그가 이스보셋을 왕으로 올리고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이끌고 지탱해 왔습니다. 그의 죽음은 이스보셋에게 더욱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이스보셋의 왕위는 국민들의 지지와 하나님의 선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오직 아브넬의 힘에 의해 생겨나고 유지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2-3절은 이야기의 흐름을 끊고 새로운 인물들을 소개합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군지휘관 바아나와 레갑입니다. 이들이 지휘하는 부대는 주로 습격과 약탈을 하는 왕의 정예부대이며, 이들은 이스보셋의 가장 중요한 지휘관들입니다. 또한 베냐민 지파 브에봇 사람 림몬의 아들들로 사용의 집과 같은 지파 사람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3절에서 브에롯 사람들의 혈통에 대한 좀 더 자세한 설명이 나오는데, 브에롯은 원래 여호수아를 속이고 살아남은 기브온 사람들의 성읍이며, 베냐민 지파에 속하지만 가나안 사람의 성읍이었습니다.

그런데 2절 하반절에서 현재 브에롯은 베냐민 지파에 속하며 브에롯의 거주민들은 짓다임으로 도망갔다고 설명합니다. 사울 통치하에서 이곳 거주민을 쫓아내고 베냐민 사람들이 그곳을 점령하여 현재까지 거주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아마도 이 사건은 후에 사무엘하 21:1-14에서 기브온 사람들이 다윗에게 사울의 죄를 처벌해달라고 요구하는 이야기의 배경일 것입니다. 여기서 브에롯에 대한 설명을 하는 것은 바아나와 레갑이 브에룻 사람이지만 혈통적으로 베냐민 사람이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힘으로써 이스보셋이 같은 지파 사람의 손에 죽었다는 사실을 강조하려는 것입니다.

 

요나단의 아들의 근황(4)

암투와 혼탁한 사건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보호하고 그의 집을 지키시고 세워나가십니다. 흑백을 가릴 수 없는 상황에서도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옳은 것을 따라 행동합니다. 자기 속도를 잃지 않으려면 달콤한 유혹을 이겨내고 하나님의 보폭을 따라 걸어야 합니다.

4사울의 아들 요나단에게 다리 저는 아들 하나가 있었으니 이름은 므비보셋이라 전에 사울과 요나단이 죽은 소식이 이스르엘에서 올 때에 그의 나이가 다섯 살이었는데 그 유모가 안고 도망할 때 급히 도망하다가 아이가 떨어져 절게 되었더라(4)

여기서 사건과 전혀 관계가 없는 한 인물이 소개됩니다. 이 인물을 소개하는 것은 이스보셋의 죽음 사건을 기록하기 전에 사울 가문에 아직도 생존자가 있으며, 바로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 임을 알리기 위해서일 것입니다. 이스보셋이 죽으면 사울 집의 계승자는 므비보셋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요나단에게 그의 집과 자손들을 살려주기로 언약을 맺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과 유다가 합병되면 므비보셋의 신변은 어떻게 될지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므비보셋은 요나단이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죽었을 때 다섯 살이었고, 그때 유모가 데리고 도망하다가 떨어뜨려 다리를 절게 되었다고 설명합니다. 이것은 아직 므비보셋이 10세 전후의 어린아이이고 다리가 불편하여 군인의 역할을 하기에는 약점이 있다는 뜻입니다. 결국 이스보셋 이후의 사울 집 왕위 계승자인 므비보셋은 사울 집을 계승하기에 적합한 인물이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스보셋 이후에 다윗을 왕으로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임을 말해줍니다.

 

신복에게 죽임을 당한 이스보셋(5-7)

모든 사람이 사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상대방의 신뢰에 반하지 않도록 성의있게 행동할 것을 요구하는 법원칙이다. 상대방의 신뢰를 헛되지 않도록 성의있게 행동하여야 한다는 원칙을 말합니다. 신뢰를 깨는 일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기회주의자들에게 신의나 의리를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오직 모략과 술수가 난무할 뿐입니다. 나라가 부흥할 때는 좋다고 따라다니다가 나라가 망하게 되니깐, 왕의 머리를 출세의 도구로 삼는 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5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바아나가 길을 떠나 볕이 쬘 때 즈음에 이스보셋의 집에 이르니 마침 그가 침상에서 낮잠을 자는지라 6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가 밀을 가지러 온 체하고 집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의 배를 찌르고 도망하였더라 7그들이 집에 들어가니 이스보셋이 침실에서 침상 위에 누워 있는지라 그를 쳐죽이고 목을 베어 그의 머리를 가지고 밤새도록 아라바 길로 가(5-7)

므비보셋에 대한 설명 다음에 다시 이야기는 이스보셋과 부하들에게로 돌아갑니다. 이 단락은 이스보셋이 죽임을 당하는 장면으로 이스보셋의 신복들이 브롯에서 출발하여 이스보셋의 집에 가장 뜨거운 한낮에 도착하였고, 때마침 이스보셋이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본문에서 바아나와 레갑이 사전에 계획하고 와서 살인한 것인지, 자고 있는 이스보셋을 발견하고 우발적으로 죽인 것인지는 분명히 언급하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전에 계획한 것으로 보는 것이 더 좋습니다. 1절과 연결하여 볼 때 이들은 이스보셋의 후원자이자 힘의 근원이었던 아브넬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이스보셋의 왕위가 얼마 가지 못하고 다윗에게 넘어갈 것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낮잠을 자는 한낮에 이스보셋의 집에 도착하였고, 예상대로 이스보셋은 낮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이들은 이스보셋을 지키고 있는 호위병들을 속이고 집 안으로 들어가려고 밀을 가지러 온 듯 꾸몄습니다. 이스보셋이 자고 있는 사이에 집에 들어가려고 거짓말을 한 것은 이들이 사전에 이스보셋을 죽이기로 계획하고 왔다는 증거가 됩니다. 이들이 어떠한 해도 입힐 생각 없이 단순히 이스보셋을 만나러 온 것이라면 그가 깨어나길 기다리는 것이 더 자연스럽기 때문입니다.

6절과 7절은 같은 사건을 조금 다르게 설명하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해석하기가 좀 어렵습니다. 6절은 이들이 이스보셋을 죽이고 도망가는 것을 간단하게 기술하고 있고 7절은 이것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6절은 이들이 집 안으로 들어가 배를 찔러 죽이고 도망갔다고 요약적으로 말하고 있는 반면에, 7절은 이들이 들어가서 본 상황, 즉 이스보셋이 침상에서 낮잠을 자고 있는 상황을 설명합니다. 5절에서 이스보셋이 낮잠을 자는 장면은 화자가 설명하였습니다. 반면에 7절은 바아나와 레갑의 시선으로 본 모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7절에서 ‘쳐죽이다’는 6절의 배를 찔러 죽이는 행동을 설명한 것이고, 7절에서 이스보셋의 머리를 베었다는 것과 아라바 길로 갔다는 설명이 덧붙여지는데, 이것은 6절의 ‘도망갔다’는 말을 좀 더 자세히 설명한 것입니다. 이스보셋의 머리를 벤 것은 자신들이 이스보셋을 죽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것으로 이것은 다윗에게 가기 위한 준비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보셋의 머리를 벤 것도 이들이 사전에 계획한 살인임을 증명해줍니다. 이들은 밤새 아라바 길을 걸어서 헤브론에 도착합니다. 마하나임에서 헤브론까지는 대략 100킬로미터 정도입니다. 그런데 다음날 헤브론에 도착한 것을 보면 이들이 매우 서둘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스보셋의 왕국 안에서 살인자를 추적하는 손길을 피하려고 최대한 빨리 다윗의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스보셋을 죽인 자들을 처형하는 다윗(8-12)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른 사람을 해쳐서는 안 됩니다. 레갑과 바아나는 이스보셋을 죽여 자신의 이익을 얻으려고 했지만, 그들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우리 성도들은 자신만 좋다면 그만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8헤브론에 이르러 다윗 왕에게 이스보셋의 머리를 드리며 아뢰되 왕의 생명을 해하려 하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나이다 여호와께서 오늘 우리 주 되신 왕의 원수를 사울과 그의 자손에게 갚으셨나이다 하니 9다윗이 브에롯 사람 림몬의 아들 레갑과 그의 형제 바아나에게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되 내 생명을 여러 환난 가운데서 건지신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10전에 사람이 내게 알리기를 보라 사울이 죽었다 하며 그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줄로 생각하였어도 내가 그를 잡아 시글락에서 죽여서 그것을 그 소식을 전한 갚음으로 삼았거든 11하물며 악인이 의인을 그의 집 침상 위에서 죽인 것이겠느냐 그런즉 내가 악인의 피흘린 죄를 너희에게 갚아서 너희를 이 땅에서 없이하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12청년들에게 명령하매 곧 그들을 죽이고 수족을 베어 헤브론 못 가에 매달고 이스보셋의 머리를 가져다가 헤브론에서 아브넬의 무덤에 매장하였더라(8-12)

헤브론에 도착한 이들은 바로 다윗 왕에게 이스보셋의 머리를 보여주며 왕의 생명을 찾으려 했던 원수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의 머리가 여기 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다윗이 사울을 원수로 생각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그의 아들 이스보셋도 원수로 여길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자신들의 행동은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행한 사울의 악행을 사울과 그의 자손들에게 되갚으신 정당한 행동이라고 말합니다. 이들은 이스보셋을 죽이면 다윗이 자신의 원수를 죽였다고 좋아할 줄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판이었습니다. 다윗은 이들에게 사울의 죽음을 좋은 소식인 줄 알고 전한 자를 죽였다고 말합니다. 즉 소식을 알린 사람도 죽인 마당에 침상에서 자고 있는 사람을 잔인하게 죽인 살인자들을 그냥 두겠냐는 것입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면서 이런 살인자는 반드시 죽이겠다고 한 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재물과 권력을 가져다줄 줄 알았던 이스보셋의 머리는 그들의 살인을 증명하는 강력한 증거물이 되어 그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입니다. 이들의 수족을 자른 후 팔다리 없는 시체를 헤브론 못가에 매달았습니다. 이것은 매우 이례적인 처형입니다. 시체를 욕보이는 일은 이스라엘에서 잘 행하지 않는데, 다윗은 사울과 사울의 아들들이 모욕당했던 방법 그대로 이들에게 행함으로 이들이 사울 집에 행한 죄를 집행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이스보셋을 죽인 자들에 대해 이렇게 신속하게 처형하고 그들의 시체를 모욕한 것은 아브넬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이스보셋을 죽이라고 시켰다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이며, 사울 집에 속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한을 갚아주기 위해서입니다. 이렇게 인간들의 욕심과 원한과 살인이 휘몰아치는 가운데 다윗이 전체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는 데 가장 큰 걸림돌들이 제거되었고, 결국 다윗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선한 방법으로도 하나님의 일을 이루시지만 악하고 욕심에 가득 찬 인간들이 판치는 세상에서는 그들의 악함을 이용하여 하나님의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은 선으로 갚으시고 악은 악으로 갚으시면서 계획을 하나씩 이루어가십니다.

 

나가는 말

성도들은 자신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좇으면서 올바른 방법과 과정을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자로서, 하나님 나라를 잘 이해하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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