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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06-01)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기려는 다윗

사무엘하 6장 1-11절


자동차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여 원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면 문명의 유익된 기계입니다. 하지만 브레이크가 고장 난 채로 굴러다니는 자동차는 문명의 흉기가 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이 품고 있는 ‘열심’은 어떠한 중요한 일을 이루는 중요한 에너지가 되지만, 적절히 통제되지 않고 사용될 때 오히려 잘못된 결과를 낳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신앙적인 열심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통해서 통제될 때, 큰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통일 왕국의 기초가 세워지고 안정과 번영이 찾아오자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함께 계셔야 함을 알았기에 이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오기로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궤’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계심과 동일한 의미가 있음을 인식합니다(민수기 10:35-36). 그러나 이 궤를 옮겨오는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사람의 생각으로 행함으로 실수를 범합니다.


예루살렘으로 옮기려는 언약궤(1-5)

성도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중심에 하나님 두기를 소망해야 하며 그것을 중요한 일로, 기쁨으로 여겨야 합니다. 성도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모신다는 것은 자신의 생각과 행동의 중심에 하나님을 두는 것을 말합니다.

1다윗이 이스라엘에서 뽑은 무리 삼만 명을 다시 모으고 2다윗이 일어나 자기와 함께 있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바알레유다로 가서 거기서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오려 하니 그 궤는 그룹들 사이에 좌정하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라 3그들이 하나님의 궤를 새 수레에 싣고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나오는데 아비나답의 아들 웃사와 아효가 그 새 수레를 모니라 4그들이 산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싣고 나올 때에 아효는 궤 앞에서 가고 5다윗과 이스라엘 온 족속은 잣나무로 만든 여러 가지 악기와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양금과 제금으로 여호와 앞에서 연주하더라(1-5)

예루살렘을 통일 왕국의 수도로 삼고 통치를 시작한 다윗은, 왕궁을 짓고 블레셋과의 전투에서 승리합니다. 어느 정도 안정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해 관심을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겨 오려 했습니다.

(1) 다윗의 계획(1-2)

다윗은 이스라엘 지역이 블레셋의 지배에서 벗어나고 나라가 안정되자 하나님의 궤, 즉 언약궤를 이스라엘의 수도인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려고 했습니다. 당시 궤가 있던 곳은 사무엘상 7장에 나와 있지만, 블레셋에 빼앗겼다가 돌아온 이후로 계속적으로 유다의 바알레(기럇여아림)에 있었습니다. 이를 위해 군사 30,000명을 모으는데 언약궤를 옮기는 것을 마치 대규모 군사작전을 방불케 할 정도로 매우 성대하게 거행합니다.

다윗이 바알레유다로 가는데 ‘바알레유다’라는 지명에 대해 학자들은 대부분 유다의 ‘바알라’로 보는 것에 동의합니다. ‘바알라’는 여호수아 15:9에서 ‘기럇여아림’으로 불리며, 여호수아 10:60과 18:14에서는 ‘기럇여아림’으로 불리며, 여호수아 15:60과 18:14에서는 ‘기럇바알’을 ‘기럇여아림’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알레유다와 바알라와 기럇여아림은 모두 같은 지명을 의미합니다. 기럇여아림은 예루살렘과 게셀 중간에 있으며, 이곳은 기브온 사람들의 중요 성읍이었습니다. 사무엘상 7:2에 따르면 블레셋에게 뺴앗겼던 언약궤가 돌아온 이후부터 20년 동안 이곳에 있었습니다.

2절에서 하나님의 궤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그룹들 사이에 계시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을 불리는 궤라고 합니다. 이것은 언약궤가 여호와의 임재를 상징하는 물건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현재 왕국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에 자신이 섬기는 여호와를 모셔둠으로써 예루살렘을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로 굳건하게 세우려 하고 있습니다.

(2) 언약궤를 싣고 가는 수레(3)

다윗은 언덕 위에 있는 아비나답의 집에서 하나님의 궤를 새로 만든 수례에 싣고 옮겼습니다. ‘산’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언덕’정도의 나지막한 구릉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옮기는 데 새 수레를 사용한 것은 어떤 부정한 것도 접하지 않은 정결한 상태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수레는 한 번도 사용하지 않고 오직 궤를 옮기기 위해 특별히 정결하게 만든 수레였습니다. 그리고 이 새 수레는 제사장 아비나답의 아들들인 웃사와 아효가 몰았습니다. 이것은 거룩한 언약궤를 정결한 방법으로 옮기려는 다윗의 배려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윗도 제사장 아비나답도 언약궤를 옮기는 정확한 방법을 몰랐습니다. 사무엘이 죽은 후 이스라엘에는 뛰어난 영적 지도자가 등장하지 않았고,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울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보다는 자신의 욕망을 따라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제사장을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에 하나님을 바로 섬기지 않는 왕이 있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도 제대로 전수되거나 교육되지 않았으며, 제대로 지켜지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지도자의 위치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원래 언약궤는 출애굽기 37:5에 따르면 메도록 만들어졌으며 민수기 7:9에서는 고핫 자손에게 언약궤를 메는 임무가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방법을 무시하고 수레로 옮기려고 한 것입니다. 이들이 수레로 언약궤를 옮기려고 한 것은 블레셋 사람들의 방식을 따른 것입니다. 사무엘상 6장에서 블레셋 사람들이 궤를 돌려보낼 때 암소 두 마리가 이끄는 새 수레에 실어서 보낸 적이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고 있던 사람들이 이 방식으로 언약궤를 운반하려고 한 것입니다. 제사법과 성막 관리의 전문가인 제사장도 언약궤를 옮기는 법을 제대로 모르고 있었을 만큼 다윗 시대는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지지 않고 있었던 것입니다.

(3) 언약궤를 수행하는 행렬(4-5)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수레에 언약궤를 싣고 나오는 장면을 묘사합니다. 아비나답의 아들 아효는 그 궤 앞쪽에서 걸어갔고 다른 아들인 웃사도 수레 옆에서 걸어가고 있었고,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뒤를 따랐을 것입니다.

다윗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시에 사용되는 악기를 총동원하여 연주하며 흥겨워하였습니다. 언약궤 수레 뒤를 쫓아가며 연주하고 다윗과 백성들은 기뻐 춤추며 흥겨워하는 축제의 한마당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흥겨운 분위기를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은 다음 단락에 나오는 비극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언약궤를 만짐으로 웃사가 죽음(6-8)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며 죄인과 함께해 주셨습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은혜를 구하며 살아갑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자신의 뜻과 마음대로 살아가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은혜 속에 존재하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실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며, 그 은혜를 알아 가야 합니다.

6그들이 나곤의 타작 마당에 이르러서는 소들이 뛰므로 웃사가 손을 들어 하나님의 궤를 붙들었더니 7여호와 하나님이 웃사가 잘못함으로 말미암아 진노하사 그를 그 곳에서 치시니 그가 거기 하나님의 궤 곁에서 죽으니라 8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시므로 다윗이 분하여 그 곳을 베레스웃사라 부르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이르니라(6-8)

다윗은 하나님의 법을 어긴 웃사를 치시는 여호와를 보면서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 오리요’하며 두려워했습니다. 이처럼 성도는 자신이 두려우신 하나님과 결코 함께할 수 없었던 불의하고 더러운 죄인임을 알아야 합니다. 죄로 인해 우리는 하나님의 진노와 형벌의 대상이었습니다.

(1) 언약궤를 붙잡은 웃사(6)

언약궤를 실은 수레와 무리들이 나곤의 타작마당까지에 왔을 때, 소들이 갑자기 움직여 언약궤를 떨어뜨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소들이 왜 이렇게 움직였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지만, 아마 기럇여아림에서 예루살렘까지 가는 길이 주로 산지를 거치면서 평탄하지 못한 곳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수레 옆에서 수행하던 웃사는 언약궤가 크게 흔들리는 것을 보고 반사적으로 언약궤를 붙잡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웃사는 언약궤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급한 마음에 언약궤에 손을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웃사가 올바른 판단을 내렸다고 하더라도, 웃사가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침범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는 붙잡지 말아야 하는 언약궤를 붙잡았습니다.

(2) 하나님의 진노(7)

하나님께서 이런 웃사의 행동에 진노하셨습니다. 그곳에서 그를 죽이셨습니다. 웃사가 죽은 이유는 그의 부주의한 행동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웃사를 죽이신 것이 너무 가혹한 처벌이 아닌가라는 논란이 있습니다. 구약에서 제의적인 잘못으로 죽은 경우는 레위기 10장에서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께서 명하지 않은 불로 향을 피우다 그 자리에서 불에 타 죽은 일이 있었는데, 이 경우도 고의적이라기보다는 부주의한 행동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여호와의 성물을 만지거나 여호와께 제사를 지낼 때는 특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이렇게 여호와의 거룩성을 침해한 제사장의 경우에는 다른 사람들보다 심한 처벌을 받았고, 제사장들은 늘 자신을 거룩하게 성별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모든 제사와 행사를 수행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했습니다. 언약궤가 떨어지는 것을 그냥 두는 것이 옳은지 여부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언약궤가 떨어지게 만든 것도 하나님의 의지라고 해석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궤를 수레로 옮기는 것이 잘못된 것임을 알려주기 위해서 소들이 언약궤를 떨어뜨리는 행동을 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분명하게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사건이 다윗에게 주신 하나님의 경고라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3) 다윗의 분노(8)

웃사의 죽음에 대한 다윗의 반응은 분노였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서 웃사를 치신 것에 대해 분노하며, 그곳의 이름을 ‘베레스웃사’, 즉 ‘웃사에게 분을 발하신 곳’이라고 불렀습니다. 여기서 ‘베레스’라는 단어는 5:20에서 물을 흩으신 것과 같이 블레셋을 흩으셨다고 하며, 그곳 지명을 바알브라심이라고 했는데, 바알브라심의 브라심과 동일한 단어 즉 블레셋에게 분을 발하신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웃사에게 분을 발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여기서 분노한 것은 웃사가 여호와께 죽게 된 상황 때문입니다. 자신이 힘써 준비한 축제가 한순간에 공포의 자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언약궤를 오벧에돔의 집에 둠(9-11)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며 죄인과 함께해 주셨습니다. 성도는 날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그분의 은혜를 구하며 살아갑니다. 그 은혜에 감사하며 자신의 뜻과 마음대로 살아가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9다윗이 그 날에 여호와를 두려워하여 이르되 여호와의 궤가 어찌 내게로 오리요 하고 10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옮겨 다윗 성 자기에게로 메어 가기를 즐겨하지 아니하고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으로 메어 간지라 11여호와의 궤가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을 있었는데 여호와께서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시니라(9-11)

여호와의 궤가 올라오다가 웃사의 사망 사고를 통해 다윗은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오벧에돔의 집에 석 달간 있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약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신 것을 통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1) 다윗의 두려움(9)

다윗은 하나님께서 웃사를 즉시 처벌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에 두려워합니다. 이렇게 무섭게 대하시는 하나님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는 늘 그의 편에서 지켜 주시고 보호해주시고 전쟁에서 앞서 싸워주시는 구원자이셨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좀 더 여호와를 가까이 모시기 위해서 연 행사에서 자신을 향해 분노하시는 하나님을 보면서 다윗도 여호와에 대한 심한 두려움을 느낀 것입니다.

(2) 오벧에돔의 집으로 간 언약궤(10)

다윗은 조금 전과는 달리 여호와의 궤를 다윗 성 예루살렘으로 가져가기를 꺼려 하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가드 사람 오벧에돔의 집에 두게 됩니다.

여기서 가드는 블레셋의 가드가 아닌 이스라엘의 한 지역 이름이며, 단 지파의 성읍 중 고핫 자손에게 할당된 가드림몬을 가리킬 것입니다(수 21:24). 역대상 15:17-19에서는 오벳에돔을 레위 사람이라고 소개합니다. 오벧에돔은 가드 출신지이지만, 나곤의 타작마당 근처에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

오벧에돔은 ‘에돔의 종’이라는 뜻인데, 여기서 에돔은 신명일 가능성이 큽니다. 역대기에 따르면 그는 고핫 족속의 레위인이며, 성전 문지기로 봉사했습니다(대상 15:18; 26:4-8).

(3)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신 여호와(11)

여호와의 궤는 오벨에돔의 집에 석 달간 있었고, 여호와께서는 오벧에돔과 그의 온 집에 복을 주셨습니다. 이 복이 어떤 형태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복을 주셨다는 것은 오랜에돔이 여호와의 궤를 정중하게 잘 모셨고, 이제 여호와의 진노가 풀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를 통해 여호와의 궤가 두렵고 무서운 대상이 아니라 법도에 맞게 거룩하게 다루면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는 복의 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이런 언약궤의 모습은 여호와의 모습을 반영하는데, 우리가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면 여호와는 우리의 복의 근원이 되시지만, 여호와의 말씀을 거역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근원이 되시는 것이다. 이 사건을 통해서 다윗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고 좀 더 여호와를 잘 섬기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해나갈 때, 거룩하신 하나님의 뜻을 먼저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의 의지나 경험으로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법으로 순종해 나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의 뜻과 방법을 따라 하나님이 맡기신 일들을 잘 감당함으로 하나님께 복을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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