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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06-02)


기쁨으로 춤추는 예배자

사무엘하 612-23


웨스트민스터 소요리 문답은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을 이렇게 진술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도 귀하지만, 우리 스스로 하나님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 또한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예배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왕국 안정된 후 다윗은 기럇여아림에 있던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올 계획을 세웁니다. 이때 새 수레에 궤를 싣고 오다가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떨어지는 궤를 잡았던 웃사가 죽는 무서운 사건이 벌어집니다. 이 일로 다윗은 법궤를 두려워하게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법궤를 두었던 오벧에돔의 집에 복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서 다시 법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시고 올 계획을 세웁니다.

 

여호와의 궤를 모셔오는 행렬(12-15)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사 죄인인 우리에게 오셨는데, 그 은혜를 예수님의 십자가로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인과 함께하시려면 죄를 해결하셔야 합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심으로 죄를 해결하시고 의를 이루셨습니다. 오벧에돕의 집에 하나님께서 함께하사 복을 주셨듯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12어떤 사람이 다윗 왕에게 아뢰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나님의 궤로 말미암아 오벧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에 복을 주셨다 한지라 다윗이 가서 하나님의 궤를 기쁨으로 메고 오벧에돔의 집에서 다윗 성으로 올라갈새 13여호와의 궤를 멘 사람들이 여섯 걸음을 가매 다윗이 소와 살진 송아지로 제사를 드리고 14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춤을 추는데 그 때에 다윗이 베 에봇을 입었더라 15다윗과 온 이스라엘 족속이 즐거이 환호하며 나팔을 불고 여호와의 궤를 메어오니라(12-15)

다윗은 나곤의 타작마당에서 일어난 웃사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려던 계획을 중단하고 법궤를 오벧에돔의 집에 두게 됩니다. 그런데 오벨에돔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가 여호와의 법궤로 인해 복을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려는 시도를 다시 하게 됩니다. 12절은 다윗이 오벧에돔의 집으로 가서 하나님의 궤를 다윗 성으로 가져왔다는 사실을 요약적으로 말하고 있으며, 13-15절은 법궤를 가져온 상황을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1) 다윗의 둘째 시도(12)

이번에는 여호와의 궤를 옮기는 규례를 따라 사람들이 법궤를 메었습니다. 다윗은 궤를 메고 여섯 걸음 걸었을 때 소와 살진 송아지로 희생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평안하게 법궤를 옮길 수 있게 해달라는 기원이 담긴 제사일 것입니다.

 

(2) 기뻐하는 다윗(13-14)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법궤 앞, 즉 여호와 앞에서 온 힘을 다하여 춤을 춥니다. 다윗이 춘 춤은 원형을 만들어 빙글빙글 돌며 추는 층으로 다윗 이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춤에 참여하여 단체로 춤을 추었을 것입니다. 다윗도 여기에 참여하여 여호와의 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기쁨을 표현한 것입니다.

이때 다윗은 베로 만든 에봇을 입고 있었습니다. 에봇은 일반적으로 제사장이 입는 제의적 옷이며 세마포로 만든 에봇은 사무엘상 2장에서 사무엘이 입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세마포 에봇은 정식으로 제사장 임명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여호와를 섬기거나 제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 참여할 때 입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제사를 드린 것과 에봇을 입은 것을 보면 그가 언약궤를 예루살렘으로 가져오는 것을 제의적 의식으로 여기고 있으며, 이 의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여호와의 행진(15)

이렇게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은 기쁨으로 환호하고 나팔을 불며 여호와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모셔 옵니다. 이전에는 많은 악기를 사용하여 웅장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면, 이번에는 신호를 보내기 위한 나팔만 사용했습니다. 대신에 여호와 앞에서 기뻐 춤추며 환호하는 백성들이 여호와의 궤를 환영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안치된 언약궤(16-19)

똑같은 구원의 복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는데 왜 우리는 다윗처럼 뛰놀며 춤추듯이 기뻐하지 않는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그가 받은 복과 우리가 받은 복이 다르지 않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백성인 것처럼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의 복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왔습니다. 이때 다윗 왕은 왕의 신분을 잊은 채 뛰놀며 춤을 추었습니다.

 

16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다윗 왕이 여호와 앞에서 뛰놀며 춤추는 것을 보고 심중에 그를 업신여기니라 17여호와의 궤를 메고 들어가서 다윗이 그것을 위하여 친 장막 가운데 그 준비한 자리에 그것을 두매 다윗이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니라 18다윗이 번제와 화목제 드리기를 마치고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19모든 백성 곧 온 이스라엘 무리에게 남녀를 막론하고 떡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덩이씩 나누어 주매 모든 백성이 각기 집으로 돌아가니라(16-19)

백성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는 다윗 기쁨은 나눌 때 배가 됩니다. 다윗은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을 온 백성과 함께 나눕니다. 남녀를 막론하고 떡과 고기에 건포도까지 얹어서 풍성한 선물을 나누었습니다. 거룩한 기쁨이 온 나라 온 백성에게 구석구석 퍼져 나갑니다. 이스라엘 온 땅이 거룩한 예배의 처소가 됩니다.

 

(1) 다윗의 모습을 업신여기는 미갈(16)

여호와의 궤가 예루살렘 다윗 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온몸으로 기뻐하며 참여한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대조적으로 미갈은 성안에서 이 광경을 창밖으로 내다보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미갈을 다윗의 부인이 아닌 사울의 딸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본문에서는 항상 사울의 딸로 표현됩니다. 이것은 미갈이 다윗 궁전에서 다윗의 아내가 아닌 사울의 딸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사무엘하 3:13에서 다윗이 아브넬에게 미갈을 데리고 오라고 말할 때도 나의 처가 아닌 사울의 딸 미갈이라고 했습니다. 다윗이 미갈을 자신의 처라고 부른 것은 이스보셋에게 미갈을 돌려달라고 말할 때가 유일한데, 이때는 미갈이 나의 처인 것이 들려달라는 이유였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아내가 아니라 사울의 딸로서의 미갈이 필요해서 강제적으로 데리고 온 것이기에 다윗 궁전에서 미갈의 위치는 편할 수 없었을 것이고, 다윗에 대해서도 이전처럼 사랑하는 마음을 갖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 불편함이 다윗의 모습을 보는 미갈의 마음에서 드러납니다.

미갈은 창 너머로 다윗이 춤추는 모습을 보며 그런 다윗을 경멸합니다. 이런 상황은 미갈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기쁨에 동참하지 못하고 철저히 소외되어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2) 법궤를 성막에 모시고 제사를 드림(17-19)

미갈의 마음과 관계없이 여호와의 꿰는 무사히 다윗이 준비한 장막에 잘 모셔집니다. 여기서 다윗이 여호와의 궤를 위해 만든 장막은 광야에서 모세가 만들었던 성막과 같은 종류의 것으로 보기는 어렵습니다. 여기서 장막은 여호와의 궤의 임시 처소로 사용된 것입니다. 다윗은 후에 여호와의 궤를 안치할 성전을 짓기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여호와의 궤가 다윗 성에 안착한 것에 감사하며, 이제 그곳이 제사의 중심지가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립니다. 그러고 나서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일반적으로 백성들을 축복하는 것은 제사장의 임무인데(10:8), 여기서 다윗은 제사장과 유사한 역할을 하였고, 여호와의 선택받은 왕으로서 백성들을 축복하였습니다. 또 남자부터 여자까지 빠짐없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빵 한 개와 고기 한 조각과 건포도 떡 한 개를 주었습니다. 이것은 일종의 언약식 후에 열리는 잔치와 같은 개념으로 여호와께서 다윗 성에 안주하신 것은 이제 여호와께서 다윗과 이스라엘과 함께하신다는 약속을 하신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여호와의 언약의 잔치에 모든 백성이 참여한다는 의미로 모든 백성에게 음식을 나누어 준 것입니다. 이제 여호와께서는 다윗 성에서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하시며 다윗 왕권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다윗과 미갈의 갈등(20-23)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보다 눈에 보이는 궤에 대한 호기심이 더 켰던 것입니다. 이처럼 지적 호기심을 해소하기 위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오직 경외하는 마음으로, 경배할 목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보다 앞서려는 망므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이끄시는 만큼만 나아가며, 보여 주시는 만큼 순종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20다윗이 자기의 가족에게 축복하러 돌아오매 사울의 딸 미갈이 나와서 다윗을 맞으며 이르되 이스라엘 왕이 오늘 어떻게 영화로우신지 방탕한 자가 염치 없이 자기의 몸을 드러내는 것처럼 오늘 그의 신복의 계집종의 눈앞에서 몸을 드러내셨도다 하니 21다윗이 미갈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니라 그가 네 아버지와 그의 온 집을 버리시고 나를 택하사 나를 여호와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으니 내가 여호와 앞에서 뛰놀리라 22내가 이보다 더 낮아져서 스스로 천하게 보일지라도 네가 말한 바 계집종에게는 내가 높임을 받으리라 한지라 23그러므로 사울의 딸 미갈이 죽는 날까지 그에게 자식이 없으니라(20-23)

다윗이 언약궤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오는 것을 기뻐하며 모든 백성 앞에서 춤추는 것을 비난한 사울의 딸 미갈의 비난에, 다윗은 자신을 택하사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신 하나님 앞에서 경배하는 일이라면 이보다 더 낮아져서 천하게 보여도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1) 미갈의 비방(20)

다윗은 축제가 끝난 뒤에 자신의 가족을 축복하러 왕궁으로 들어옵니다. 이때 미갈도 다윗을 맞이하기 위해 나와서 아까 자신이 본 것에 대해 다윗을 비난합니다. 얼마나 영광스러운지요?’로 시작하는 그녀의 말은 다윗의 모습이 왕으로서의 위엄과 영광이 전혀 없는 모습이라고 비꼬는 말입니다. 당신의 신복의 계집종은 천한 신분 중에서도 가장 비천한 신분의 사람을 의미하는 것으로 그녀는 다윗이 옷이 펄럭거려 하체가 드러날 정도로 춤을 춘 것에 대해 가장 비천한 신분의 사람들 앞에서까지 몸을 드러내는 체통 없는 행동을 한 것이며, 이런 행동은 어리석은 자가 스스로 옷을 벗는 것과 같은 행동이라며 비난하였습니다. 다윗이 체통을 잃고 어리석게 행동했다는 것입니다.

 

(2) 다윗의 반박(21-22)

미갈은 다윗의 행동을 부정적인 시각에서 보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다윗은 미갈에게 자신의 행동은 여호와 앞에서 한 것이라며 여종들 앞에서 한 것이라는 미갈의 말을 반박합니다. 다윗과 둘 다 다윗이 여호와 앞에서 춤을 춘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여호와는 네 아버지와 그의 온집보다 자신을 선택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신 분이기에, 그 여호와 앞에서 기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 자신을 왕으로 세우신 여호와께 감사하여 춤추는 것이 왜 부끄럽고 어리석은 일이냐는 것입니다. 여기서 미갈에게 노골적으로 여호와께서 네 아버지의 집이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실을 말하며 미갈을 공격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더 낮아져서 자신의 눈에 천하게 보일지라도 여종들은 자신에게 영광을 돌릴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얼마나 영광스럽냐?’는 미갈의 비아냥에 대한 응수로 자신이 아무리 천하게 행동해도 자신이 이 나라의 왕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미갈의 비난에 매우 강하게 공격하며 비난하였습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춤춘 것을 비난한 것에 대해 매우 분노한 것입니다.

 

(3) 미갈의 불행(23)

그 결과 미갈은 죽는 날까지 자식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다윗은 이 사건 이후로 미갈을 다시는 찾지 않았고 그 결과 아이가 없었던 것입니다. 본문에서는 분명히 미갈이 다윗을 업신여겼고 비난하였기에 다윗이 미갈에게 화를 내는 것이 정당합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미갈과 다윗의 관계를 보면 미갈은 다윗을 사랑한 여인이고 다윗의 생명을 살려준 은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미갈을 자신의 왕권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해 10여 년을 같이 산 남편과 강제로 갈라놓았습니다.

결과적으로 사울의 딸 미갈은 자손을 얻지 못하였기 때문에 사울 가문과 다윗 가문의 결합은 이루어지지 못했고, 사울의 가문은 다윗 왕국에서 어떤 자리도 차지할 수 없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굳건하게 서게 되었고, 사울 가문은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예배는 근엄한 의식 이전에 하나님을 향한 진심 어린 기쁨입니다. 이 땅에 우리를 기쁘게 하는 것들이 많이 있지만, 그 무엇보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쁨이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나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고, 그분으로 인해 행복한 하루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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