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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무엘하(11-01)

 


방심과 욕심이 불러온 범죄

사무엘하 11장 1-13절


다윗은 하나님께 인정받을 만큼 믿음이 좋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다윗도 한순간의 방심이 죄를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음욕으로 범죄하고 말았습니다. 그렇다면 다윗보다 믿음이 약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지금도 사단은 넘어질 자들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베드로전서 5:8)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은총을 독점하다시피 한 다윗은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승승장부 하였습니다. 그러나 잠깐의 방심으로 밧세바와 간음의 죄를 범하고, 급기야 밧세바의 남편을 살인하는 범죄까지 이르게 되는 내용입니다. 축복의 자리에 있을 때 죄를 범하지 않도록 더 조심해야 합니다.
 

다윗과 밧세바의 동침(1-5)

성도는 서 있는 곳이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의 장소에 서 있어야 합니다. 다른 곳에 있을 때, 우리도 다윗 못지않게 위험한 자리에 서게 됨을 배웁니다. 유혹은 지역과 장소를 가리지 않습니다. 가장 평온한 시간, 가장 거룩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우혹이 닥칩니다. 지금 우리가 서 있어야할 자리가 어디입니까?
 
1그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매 다윗이 요압과 그에게 있는 그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 군대를 보내니 그들이 암몬 자손을 멸하고 랍바를 에워쌌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그대로 있더라 2저녁 때에 다윗이 그의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 옥상에서 거닐다가 그 곳에서 보니 한 여인이 목욕을 하는데 심히 아름다워 보이는지라 3다윗이 사람을 보내 그 여인을 알아보게 하였더니 그가 아뢰되 그는 엘리암의 딸이요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아니니이까 하니 4다윗이 전령을 보내어 그 여자를 자기에게로 데려오게 하고 그 여자가 그 부정함을 깨끗하게 하였으므로 더불어 동침하매 그 여자가 자기 집으로 돌아가니라 5그 여인이 임신하매 사람을 보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임신하였나이다 하니라(1-5)
전쟁의 선두에서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 왕의 사명인데(삼상 8:19) 다윗은 요압과 그 신복과 온 이스라엘 군대만 보내고 다윗은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습니다. 사명을 소홀히 하고 지도자 노릇을 중단한 상태에서 유혹이 찾아왔습니다.
 
(1) 배경 설명(1)
본문은 사건의 배경을 설명하는 부분으로 시간적 배경은 ‘해가 돌아와 왕들이 출전할 때’입니다. 이것은 전쟁할 때가 되었다는 의미로 우기가 끝나고 추수가 시작되는 봄이 되기 전의 시기를 가리킵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관습적으로 이 시기에 백성들을 소집하여 전쟁을 하였고 대개 왕들이 군대를 이끌고 나갔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왕이 출전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왕궁의 정무나 외교적 일이 있으면 출전하지 않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다윗도 이번에는 요압과 그의 부하들만 전쟁에 보내어 암몬 자손을 치게 하였습니다. 이 전쟁은 10:14에 언급된 전쟁의 연장으로 요압은 군대를 이끌고 랍바로 도망한 암몬을 치기 위해 출전하였고, 암몬 자손을 친 다음에 랍바를 포위하였습니다. 요양은 암몬과의 두 번째 전쟁에서도 승리를 거두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암몬과의 첫 번째 전쟁(삼하 10:7)에서처럼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고, 화자는 다윗이 예루살렘에 남아 있었다고 보고합니다.
 
(2) 목욕하는 밧세바(2-3)
부하들이 전쟁터에 나가 있는 사이에 다윗은 한가한 저녁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는 낮잠을 자고 저녁에 일어나 시원해진 왕궁 지붕을 한가롭게 산책하였습니다. 그러다 한 여인이 옥상에서 목욕하는 모습을 보았는데,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여인의 이름은 밧세바였습니다. 그녀는 시원해진 옥상에서 햇빛에 따뜻해진 물로 씻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녀가 옥상에서 목욕한 것을 두고 다윗을 유혹하기 위한 고의적인 행동이라고 해석하는 것은 본문의 의도와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본문은 밧세바를 철저히 수동적인 인물로 그리고 있으며, 다윗이 모든 일을 주도한 것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목욕을 하고 있는 밧세바를 보았다는 것은 단지 일어난 사실을 언급한 것입니다. 이를 보고 다윗이 그냥 지나칠지 아니면 사람을 보내어 데리고 올지는 철저히 다윗의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아름다운 밧세바가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였고, 사람을 보내어 누구인지 알아보게 하였습니다. 이미 다윗의 마음에는 음욕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다윗은 그녀가 엘리암의 딸이며 헷 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여기서 밧세바의 아버지 엘리암과 밧세바의 남편 헷 사람 우리아는 모두 다윗의 37명의 용사 중에 들어 있는 다윗 왕국에서 높은 지위를 가지고 있던 인물들입니다(삼하 23:34,39). 우리아는 헷 사람으로 다윗 당시에 히타이트 제국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지만, 제국의 남은 자손들이 시리아에서 헷 족속의 형태로 생존하고 있었고 우리아는 여기 출신으로 이스라엘에 이주하여 살았던 인물입니다. 그의 이름 우리아는 ‘여호와는 빛이시다’라는 뜻의 이름으로 추측해 보건데 그는 이스라엘에서 태어났고 여호와를 믿는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3) 임신한 밧세바(4-5)
다윗은 밧세바가 전쟁터에 나가 있는 부하의 아내라는 사실을 알고도 사자를 보내어 그녀를 데려와 동침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때는 밧세바가 부정함에서 벗어나 정결 의식을 막 치른 때였기에 임신이 가능한 상태였습니다. 여기서 이것을 언급한 것은 밧세바가 임신한 아이가 우리아의 아기가 아니라 다윗의 아기라는 것을 분명하게 밝히기 위한 것입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다윗은 매우 주도적으로 밧세바에 대해 알아보고 부르고 동침하고 있습니다. 밧세바는 이 장면에서 다윗이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매우 수동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본문이 다윗의 적극적인 모습을 강조한 것은 다윗의 간음 사건이 어쩌다 여자의 꼬임에 넘어가 실수로 벌어진 일이 아니라 다윗이 적극적이고 고의적으로 행한 범죄라는 사실을 말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렇게 다윗은 밧세바와 관계를 가진 후에 아무도 모르게 죄를 덮으려고 했지만. 5절에서 밧세바가 다윗에게 자신이 임신하였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간음죄는 덮기 어려운 심각한 문제가 되어버렸습니다. 여기서 밧세바는 유일하게 말을 하고 있는데, 이 말은 모든 비극의 시작이 되는 매우 결정적인 말이었습니다.
 

우리아의 소환(6-9)

거짓과 속임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전쟁에 나가 있던 밧세바의 남편을 불러들여, 아내와 동침케 하여 자신의 허물을 덮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사는 사람도 언제든 순식간에 죄악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 줄로 생각하는 사람은 항상 넘어질까 조심하며, 악한 마귀가 틈타지 못하도록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6다윗이 요압에게 기별하여 헷 사람 우리아를 내게 보내라 하매 요압이 우리아를 다윗에게로 보내니 7우리아가 다윗에게 이르매 다윗이 요압의 안부와 군사의 안부와 싸움이 어떠했는지를 묻고 8그가 또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 집으로 내려가서 발을 씻으라 하니 우리아가 왕궁에서 나가매 왕의 음식물이 뒤따라 가니라 9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고 왕궁 문에서 그의 주의 모든 부하들과 더불어 잔지라(6-9)
무명의 목동 다윗은 블레셋의 위대한 거인 골리앗 장수를 물맷돌 다섯 개로 이겼지만, 통일 왕궁의 목자 다윗은 자기 자신을 지킬 수 없는 가련한 한 여인에게 무너졌습니다. 욕정이 이끄는 대로 권력을 남용하여 부하의 아내를 취하고 말았습니다.
 
(1) 우리아 소환(6)
밧세바가 임신하였다는 소식을 들은 다윗은 요압에게 사람을 보내어 우리아를 자신에게 보내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요압은 우리아를 다윗에게 보냅니다. 여기서 다른 설명은 일체 없이 사자를 보내고 우리아를 보내라고 명령하고 우리아를 보내는 것을 표현한 단순한 문장을 통해서 다윗이 매우 서둘러 우리아를 불러들였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2) 우리아의 보고(7)
다윗은 우리아가 오자 요압의 안부와 군사들의 안부와 전쟁의 상황을 물었습니다. 이것은 마치 전쟁의 상황을 알기 위해 우리아를 부른 것처럼 보이기 위한 행동입니다.
 
(3) 우리아의 불복종(8-9)
다윗의 진짜 속셈은 8절에 나타납니다. 그는 우리아에게 집으로 가서 ‘발을 씻으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발을 씻으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여행자가 집에 왔을 때 발을 씻겨 줌으로써 환영의 표시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발’이란 단어는 남성성을 은유적으로 표현할 때도 사용하는 단어이기 때문에, 다윗은 일부러 ‘발’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아내와 관계를 가지라는 암시를 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다윗은 밧세바와의 간음죄를 감추기 위해 우리아를 밧세바와 동침하게 하여 자신의 아기를 우리아의 아기인 것처럼 속이려고 한 것입니다. 또 우리아의 수고를 치하하는 의미로 많은 하사품을 보내어 자신이 매우 좋은 왕인 것처럼 행동합니다.
하지만 우리아는 다윗의 생각과 다르게 집으로 가지 않고 왕궁 문에서 왕의 모든 부하들과 같이 잠을 잤습니다. 여기서 ‘그의 주인의 부하’라는 표현을 통해 우리아는 다윗을 자신이 충실하게 섬겨야 할 주인으로 여기고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우리아의 충직한 모습은 자신에게 충직한 부하의 아내를 탐내어 간통하고 그 결과를 뒤집어 씌우려는 다윗의 비열한 모습과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이렇게 우리아가 다윗의 계획과 다르게 행동함으로 다윗의 계획은 실패하게 됩니다.
 

우리아의 결심(10-13)

성도들은 항상 방심하거나 욕심을 부리지 않아야 합니다. 대신에 항상 성령으로 충만하게 깨어있어야 합니다. 죄를 감추지 않고 속히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죄악을 감춘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의 범죄를 감추려다가 오히려 더 죄를 키우고 말았습니다.
 
10어떤 사람이 다윗에게 아뢰되 우리아가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나이다 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네가 길 갔다가 돌아온 것이 아니냐 어찌하여 네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11우리아가 다윗에게 아뢰되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내 주 요압과 내 왕의 부하30들이 바깥 들에 진 치고 있거늘 내가 어찌 내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내 처와 같이 자리이까 내가 이 일을 행하지 아니하기로 왕의 살아 계심과 왕의 혼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나이다 하니라 12다윗이 우리아에게 이르되 오늘도 여기 있으라 내일은 내가 너를 보내리라 우리아가 그 날에 예루살렘에 머무니라 이튿날 13다윗이 그를 불러서 그로 그 앞에서 먹고 마시고 취하게 하니 저녁 때에 그가 나가서 그의 주의 부하들과 더불어 침상에 눕고 그의 집으로 내려가지 아니하니라(10-13)
다윗은 범죄를 은패하기 위해 우리아를 불러 아내와 동침하도록 시도합니다. 자신과 우리아 사이에 깨어진 ‘샬롬’을 감추려고 안달하는 자가 뻔뻔하게 요압과 군사와 싸움의 안무를 묻고 있습니다.
 
(1) 다윗의 질문(10)
다윗은 집으로 가지 않은 우리아를 불러 왜 먼 길에서 돌아왔는데 집에 가지 않느냐고 묻습니다. 다윗의 입장에서는 이런 우리아의 행동이 매우 마음에 안 들었지만, 우리아를 걱정하는 척하며 집으로 가지 않은 이유를 물은 것입니다.
 
(2) 우리아의 대답(11)
이에 대해 우리아는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야영 중에 있고 자신의 상사인 요임과 왕의 군대가 전쟁터에 있는데 어떻게 자신만 편안하게 집으로 가서 먹고 마시고 아내와 잘 수 있냐고 말하며, 자신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을 왕의 목숨을 걸고 맹세합니다. 왕에게 보일 수 있는 최대한의 충성 맹세를 한 것입니다.
우리아가 궤와 전쟁터와 아내와의 잠자리를 언급한 것은 전쟁을 수행할 때 진영에서 정결해야 하는 규범과 연결됩니다. 언약궤가 함께하는 진영은 여호와께서 함께하시는 거룩한 곳이기에, 여자와 자는 것이 금지됩니다. 남성이 설정하면 하루 동안 부정한 상태가 되어 진의 거룩성을 훼손하게 되기 때문입니다(레15:16-18).
물론 우리아는 지금 전쟁터에 있는 것도 아니고 진영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에만 조심하면 상관이 없는 상황이지만, 비록 예루살렘에 와 있어도 여전히 전쟁터에 있는 사람들과 연결된 것으로 생각하였고, 그래서 자신의 정결을 지키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혹시라도 자신이 부정하게 되어 전쟁터에 있는 다윗 진영의 거룩성이 훼손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정결법을 최대한으로 지키려고 노력한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거룩한 모습을 유지하기 위해 애를 쓰며 이스라엘 군대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노력하는 우리아의 모습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고도 죄로 느끼기는커녕 그 죄를 덮기 위해 노력하는 다윗의 모습과 대조를 이룹니다. 여기서 그동안 하나님 앞에서 가장 충성스럽고 의로웠던 다윗의 모습은 사라지고 자신의 죄를 덮기에 급급한 다윗의 모습만이 나타납니다.
 
(3) 우리아의 변함없는 태도(12-13)
다윗은 우리아가 자신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집에 들어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자, 다시 한 번 우리아를 집으로 보내어 밧세바와 자게 하려고 시도합니다. 다윗은 우리아에게 하루 더 예루살렘에 머물라고 하며 내일은 보내주겠다고 합니다.
본문에서 우리아가 그날과 그 다음 날 예루살렘에 머물렀다는 것은 다윗의 권고로 이틀 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렀음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겉으로 보기에는 왕이 충성스러운 신하를 배려하여 하루 더 쉬게 해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다윗의 진짜 속셈은 13절에 나오는데, 그날 우리아를 불러서 그와 함께 먹고 마시며 일부러 우리아를 취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아가 취하면 술김에 집으로 가서 아내와 동침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의 생각과는 달리 우리아는 술이 취한 상태에서도 집으로 가지 않고 어제처럼 부하들과 함께 잤습니다. 본문은 우리아가 집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언급하여 강조합니다. 우리아는 자신의 맹세를 매우 충실하게 지킨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우직한 충성심의 대가는 죽음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왕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욕망을 잡고 성문 앞에서 부하들과 밤을 보낸 우리아의 모습은 자기 욕망을 억제하지 못해 하나님에 대한 충성성을 저켜리고 부하에 대한 신의를 버린 다윗과 대조됩니다.
 


죄는 위장하고 감춘다고 해결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다윗은 자신의 죄를 감추기 위해 우리아를 불러 밧세바와 동침하도록 하려고 했습니다. 처음 시도가 실패로 끝나자 다시 시도하였습니다. 하지만 다윗의 이러한 시도는 죄에 대한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었습니다. 죄는 위장하고 감춘다고 해서 결코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아무도 모르게 비밀리에 죄를 지었지만, 죄의 결과는 결코 숨길 수 없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죄를 짓게 되면 반드시 흔적이 남게 됩니다. 죄의 결과가 금방 나타나지 않는다고 해서 죄가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에게도 덮어둔 죄가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는 그 죄를 덮기 위한 헛된 위장술을 버리고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지하여 하나님께 자복하고 해결 받는 주의 백성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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