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04-02)
공생애 시작한 고향 갈릴리
누가복음 4장 14-30절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종종 실수를 합니다. 작은 실수는 웃음을 짓게 하지만, 큰 실수들은 삶을 바꾸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 중에 많은 실수는 자신의 주변 사람에 대한 가치를 쉽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그 자리에 없을 때 비로소 후회한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살아계시면 다시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만, 그분이 돌아가신 후에는 크게 후회에도 소용이 없습니다.
- 4:14-9:50은 갈릴리를 중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는 내용을 기술합니다. 갈릴리 사역을 시작하는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4:14-30은 앞으로 펼쳐질 예수님의 사역이 어떤 모습이고 그의 사역에 대한 반응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미리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희년을 실현하는 것이며(4:14-21), 고향의 반대와 살해 위협은 앞으로 있을 부정적인 반응을 예고합니다.
예수의 갈릴리 사역(14-15)
우리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능력을 의지하여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가르치며, 그 뜻을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지식과 경험을 나누어 다른 사람들이 하나님을 더 잘 알 수 있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도록 노력합시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소망합니다.
14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으로 갈릴리에 돌아가시니 그 소문이 사방에 퍼졌고 15친히 그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매 뭇 사람에게 칭송을 받으시더라(14-15)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신 것과 마귀에게 광야에서 40일 동안 시험을 받으신 일은 그의 공적 사역을 위한 예비과정이었습니다. 이제 갈릴리 사역을 시작으로 예수님의 사역이 전개됩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크게 네 부분으로 갈릴리 사역(4:14-9:50), 예루살렘으로 가는 여정 사역(9:51-19:44), 예루살렘 사역(19:45-21:38), 고난과 부활(22:1-24:53) 등으로 나뉩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 전체를 포괄하는 진술입니다. 14절은 갈릴리로 돌아간 예수님에 관한 서술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라는 구절에서 ‘성(聖)’과 ‘능력’이 나란히 나타납니다(1:35). 여기서 초점은 ‘능력’에 있는데, 그 능력이 성령의 충만한 임재로 인한 능력임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능력 가운데 사역을 감당하실 것을 내다보게 합니다. 15절은 예수님의 사역에 대하여 간략하게 진술합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셨습니다. 이 구절은 예수님의 유년 시절에 대한 서술과 유사합니다(2:52).
이 간략한 진술은 예수님의 사역의 특징을 두 가지 면에서 주목하게 합니다. 먼저 그의 사역은 성령의 능력으로 실행된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역은 성령의 인도에 따라 그의 능력으로 성취됩니다. 한편, 그의 사역은 가르치는 일에 초점을 맞춘 사역입니다. 가르침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분명하게 선포하는 사역입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의 사역은 좋은 영향력이 드러나고 널리 소문이 퍼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명 선언(16-21)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실천하며, 사회의 약자와 고통받는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합시다. 현재의 삶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 은혜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실천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꾸준히 읽고 묵상하며, 우리의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16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된 데를 찾으시니 곧 18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20책을 덮어 그 맡은 자에게 주시고 앉으시니 회당에 있는 자들이 다 주목하여 보더라 21이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 하시니(16-21)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분은 이사야서의 예언을 성취하시며,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현재의 삶에서도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합니다.
(1) 이사야 글을 낭독(16-19)
나사렛에 도착하신 예수님께서는 평소처럼 안식일에 회당에 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의 공적 사역으로 회당 사역을 언급합니다. 16절에서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라는 구절은 회당 에배의 순서를 담당하여 예언서를 읽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메시아에 대한 예언한 이사야 61:1-2의 말씀을 읽으십니다.
1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이사야서 61:1-2)
이 성경은 메시아에 대한 구절입니다. “주의 영이 내게 임하셨으니”라는 구절은 예수님의 수세 시 성령 강림(3:22), 그리고 그 강림 후에 성령의 지속적인 충만한 임재(4:1,14)와 연결됩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다”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전체적인 사역을 포괄합니다. 또한 이것은 누가복음의 신학적 강조점의 한 요소입니다. 여기서 이사야 원문과 누가의 인용문을 자세히 비교해보면 흥미로운 차이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원문에서는 ‘가난한 자’와 더불어 ‘마음이 상한 자’, ‘포로 된 자’, ‘갇힌 자’가 언급됩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문맥에서 가난한 자는 이방 민족의 압제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백성입니다. 누가복음에서 ‘가난한 자’는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와 더불어 언급되는데 이들은 당시 사회에서 버림받은 자들입니다. 누가복음은 소외된 사회 계층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강조합니다. 이러한 강조점은 마리아의 찬양(1:52-53)에서 확실하게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가난한 자들을 위한 복음을 선포하신 것은 세상적인 가치의 역전을 시사합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오심으로 임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새로운 가치의 반전을 기대케 합니다.
19절의 내용도 이사야 원문과 차이를 드러냅니다. 이사야 원문의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라는 구절은 인용문에서 생략됩니다. 이것은 분명 누가의 의도적인 생략입니다. 복음의 보편성 차원에서 이제 이방 민족의 심판의 날에 대한 언급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2) 청중의 반응(20-21)
이 말씀을 읽다가 멈추시고 말씀하십니다. 20절의 ‘주목하여 보더라’는 그들의 눈이 예수님께 고정되었다는 것으로 그들의 지대한 관심을 나타냅니다. 21절은 관심을 보인 청중에 대한 예수의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회당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21)고 하였습니다. ‘주의 은혜’가 이미 도래하였다고 선포하였습니다. 자신이 그 예언의 주인공이라고 하셨습니다.
고향에서 배척당한 예수님(22-30)
우리는 종종 진리를 받아들이기 어려워합니다. 그러나 열린 마음으로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자만심을 버리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모든 사람에게 미칩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에 이를 적용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그 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22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 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23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반드시 의사야 너 자신을 고치라 하는 속담을 인용하여 내게 말하기를 우리가 들은 바 가버나움에서 행한 일을 네 고향 여기서도 행하라 하리라 24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5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 시대에 하늘이 삼 년 육 개월간 닫히어 온 땅에 큰 흉년이 들었을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과부가 있었으되 26엘리야가 그 중 한 사람에게도 보내심을 받지 않고 오직 시돈 땅에 있는 사렙다의 한 과부에게 뿐이었으며 27또 선지자 엘리사 때에 이스라엘에 많은 나병환자가 있었으되 그 중의 한 사람도 깨끗함을 얻지 못하고 오직 수리아 사람 나아만뿐이었느니라 28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29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30예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서 가시니라(22-30)
예수님께서는 나사렛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사람들에게서 놀라움을 받았으나, 그들의 불신으로 인해 기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의 예를 들어 하나님의 구원이 이방인에게도 미쳤음을 강조하셨습니다. 이에 분노한 사람들은 예수님을 해하려 했으나, 예수님은 그들 사이를 지나가셨습니다.
(1) 청중의 증언(22)
예수님의 사역은 회당에서 계속 진행됩니다. 예수님께서 이사야의 말씀을 봉독하신 후에 메시지를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그의 메시지를 들은 청중은 반응입니다. 예수님으로부터 전해지는 말씀은 갈릴리 고향 사람들이 듣기에도 “은혜로운 말”이었습니다. 고향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에 경탄할 정도로 놀랐습니다(마 13:54). 그러나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를 증언하고”의 의미가 무엇인지 모호합니다. 그것은 긍정적인 증언일 수도 있고 부정적인 증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문맥상 부정적인 증언으로 보는 것이 낫습니다. 22절에 언급된 놀라움(1:21; 2:18)과 질문은 그들의 부정적인 태도를 반영합니다.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메시지 역시 청중의 부정적인 반응을 전제로 합니다. 또한 설교 후 청중의 과격한 분노도 22절에서의 반응과 상응합니다. 그리하여 회당에서 예수님의 말을 들은 자들은 그에 대하여 비판적인 증언을 하면서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고 묻습니다. 이 물음은 감탄이나 놀라움의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경멸과 비판의 부정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형제들도 자신과 같이 살고 있는 나사렛 사람들에게는 예수를 메시아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는 예수님께서는 너무 낯익은 목수의 아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래서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2) 예수의 메시지(23-27)
23-27절은 예수의 회당설교 내용입니다. 그 내용은 두 부분으로 구성되는데 선지자가 고향에서 대접받지 못한다는 메시지와 그 메시지를 예증하는 부분입니다.
23절에 속담이 인용됩니다: “의사야! 네 자신이나 고쳐라.” 이러한 태도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보며 조롱했던 관리들의 태도와 동일합니다(23:35). 결국 이 태도는 선지자를 윽박지르는 자세로 나타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예견하십니다: “가버나움에서 행하였다고 우리가 들은 대로 여기 고향에서도 행하라.” 그리하여 24절에서 선지자는 고향에서 대접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25-27절은 예수님께서 예를 들어 설명하시는 내용인데 엘리야 시대 사렙다 과부, 엘리사 시대 나아만을 지적합니다. 여기서 예증을 위해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이방인입니다. 누가복음은 복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화해적 관계를 강조합니다. 그리하여 이방인에 대한 언급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 칭찬한 믿음의 사람 백부장(7:9)과 강도 만난 자의 이웃으로 묘사된 사마리아인(10:29-37)은 이방인입니다. 예수님과 이방인 백부장의 접촉은 유대인의 장로들에 의해 중재됩니다(7:1-10). 마태복음의 병행구절에선 백부장이 중재자 없이 예수님을 만나는 것으로 서술됩니다(마 8:5-13). 누가복음에서 이방인은 더 이상 복음에서 제외된 대상이 아닙니다. 복음은 온 백성에게 미칠 좋은 소식(2:10)이고 구원은 만민 앞에 준비된 것(2:31)입니다. 메시아, 그리스도는 이방을 비추는 빛이고 이스라엘의 영광(2:32)으로 선포됩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오심은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리라는 예언의 성취입니다(3:4-6; 참조. 사 40:3-5). 따라서 누가복음은 복음의 보편성을 추구하여 복음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임을 강조합니다. 갈라디아서 3:28은 민족, 신분, 성별과 상관없이 예수님 안에서 모두가 하나임을 역설합니다.
(3) 청중의 반응(28-30)
본문은 고향 나사렛 회당에서 예수님의 메시지를 들은 사람들의 반응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있던 나사렛 고향 사람들은 몹시 분노했습니다. 그들은 ‘크게 화를 내다’라는 동사를 통해 분노나 놀라움 등의 강렬한 감정에 의해 지배당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메시지를 듣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님을 동네 밖으로 끌고 나가서 낭떠러지에 밀쳐 떨어뜨리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 가운데로 지나 떠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분노한 군중들을 헤치고 떠나셨는지 알 수 없습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하지 않았을까 추측할 따름입니다. 오늘도 그리스도의 복음에 대한 반응이 극도의 혐오로 나타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혐오뿐 아니라 방화나 살인, 테러 등의 극단적인 반응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그러한 반응에 대한 기독교인의 태도는 어떠해야 할 것인지 결단하기 쉽지 않습니다. 다만 성령의 능력으로 담대함을 잃지 않고 어려운 상황을 헤쳐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과 가르침을 통해 중요한 교훈을 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고,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모두에게 미치며, 우리는 겸손하게 그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꾸준히 읽고 묵상하며, 그 가르침을 삶에 적용해야 합니다. 믿음과 순종을 통해 하나님의 놀라운 일을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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