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01-05)
소망의 시작인 요한의 출생
누가복음 1장 57-66절
새로운 일을 시작할 때, ‘전에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있는가?’ 혹은 ‘다른 사람이나 교회는 이런 일을 해본 적이 있는가?’를 고민하며 전례를 중요시합니다. 하지만 전례를 따르는 것은 창의력을 잃게 만들고, 다른 사람이나 교회의 사역을 답습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놀라운 축복을 온전히 받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창의력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 우리는 하나님과의 끊임없는 교통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항상 신선함과 창의력을 부어주십니다.
- 본문은 세례 요한의 출생과 그의 이름을 짓는 일과 관련된 사건을 기록합니다. 엘리사벳이 아들을 출산하니 이웃과 친족이 듣고 기뻐합니다. 8일이 되어 할례를 왔을 때, 사람들이 아이의 이름을 ‘사가랴’로 하고자 하나 엘리사벳은 ‘요한’이라 하겠다고 합니다. 아이의 이름에 대한 물음에 사가랴가 서판에 요한이라 쓰자, 곧 그의 혀가 풀려 말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엘리사벳의 출산(57-58)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상황과 조건을 넘어서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우리는 이 은혜를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을 신뢰하는 인내가 필요합니다.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이루어주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57○엘리사벳이 해산할 기한이 차서 아들을 낳으니 58이웃과 친족이 주께서 그를 크게 긍휼히 여기심을 듣고 함께 즐거워하더라(57-58)
엘리사벳은 나이가 많을 때까지 아이를 낳지 못하던 불임(不姙) 병에 걸려 아이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녀는 아무런 소망이 없이 이제 죽은 날만 기다리던 엘리사벳에게 희망이 찾아 왔습니다. 그녀에게 불가능했던 일들을 가능케 하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테를 열어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리고 때가 되자 천사의 말대로 아들을 주셨습니다(13). 엘리사벳이 드디어 아들을 출산했습니다. 엘리사벳의 출산 소식을 듣고 이웃과 친족이 즐거워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산임에도 불구하고 안전하게 아이를 낳게 하셨습니다. 이 소식은 이웃과 친족들에게 오랫동안 아이가 없던 사가랴와 엘리사벳의 가정에 하나님께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라고 함께 기뻐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라가 이삭을 낳고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라고 한 말을 연상시킵니다(창 21:6). 그리하여 사라-엘리사벳 모형론이 형성되고, 아브라함-사가랴 모형론이 암시됩니다. 이러한 모형론으로 사가랴와 엘리사벳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세례 요한과 이삭이 연관됩니다. 또 세례 요한 뒤에 오신 예수님을 야곱(이스라엘)과 연관 지어 이스라엘(야곱)-예수 모형론의 기초를 형성합니다. 이스라엘 예수 모형론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께서는 새 이스라엘로서 새 열두 지파를 형성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명의 사도를 세우시고 그들로부터 시작해 새 이스라엘을 형성하도록 하십니다. 다만, 새 이스라엘에는 야곱-열두 지파로 이어지는 혈통적 계보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혈통과는 무관한 열두 사도와 제자들을 자신의 가족으로 간주하십니다(8:21). 그러므로 새 이스라엘은 혈통적으로 이스라엘과 무관한 이방인들이 들어 올 수 있는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방문한 과부가 이방 땅 시돈에 있는 과부였으며, 엘리사가 치유한 나병환자도 시리아의 장군 나아만이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이방인도 구원하실 메시아십니다(4:25-27).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에는 이방인을 향한 사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을 믿은 이방인 백부장의 종을 치유해 주시며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보지 못하였노라"고 칭찬하셨고(7:9-10), 치유받고 감사하러 온 사마리아 나병 환자를 이방인이라고 규정하시면서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고 칭찬하셨습니다(17:19). 이 친족들의 기쁨은 이 요한이 전하는 예수님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누릴 새 시대의 기쁨과 즐거움의 약속의 시작입니다.
요한의 작명(59-63)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한, 신앙의 일치를 이루는 것도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획을 신뢰하고 따를 때, 그 계획이 완성됨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기적을 베푸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는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 기본이 되어야 합니다.
59팔 일이 되매 아이를 할례하러 와서 그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사가랴라 하고자 하더니 60그 어머니가 대답하여 이르되 아니라 요한이라 할 것이라 하매 61그들이 이르되 네 친족 중에 이 이름으로 이름한 이가 없다 하고 62그의 아버지께 몸짓하여 무엇으로 이름을 지으려 하는가 물으니 63그가 서판을 달라 하여 그 이름을 요한이라 쓰매 다 놀랍게 여기더라(59-63)
요한의 할례식 날, 이웃과 친척들은 그의 이름을 아버지와 같은 사가랴로 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엘리사벳은 그의 이름을 요한이라 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사가랴도 이에 동의하며, 요한이란 이름을 쓰게 됩니다.
(1) 세례 요한이 할례 받음(59)
엘리사벳과 사가랴는 아기가 태어난 지 8일 만에 통상적인 방법으로 아이에게 할례를 주고 이름을 짓기 위해 모였습니다. 아기가 태어난 지 제8일에 할례를 줄 때, 사람들은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 주고자 했습니다. 구약성경을 보면 아기가 출생했을 때 이름을 지었음을 알 수 있는데, 생후 제8일에 할례를 행할 때 이름을 지으려고 한 것은 유대인들의 전통을 따른 것입니다.
당시 그리스는 아기가 출생한 지 7-10일째 되었을 때 이름을 지어 주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헬라 제국의 치하에서 헬라 문화를 접한 유대인들이 이 관습에 영향을 받아 출생 후 8일째 할례를 주면서 이름 짓는 전통을 만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2) 아기의 이름은 요한(60-63)
엘리사벳이 아기 이름을 ‘요한’이라고 지으려고 하자 친족과 이웃들은 그 이름이 친족들의 이름을 따른 것이 아니라고 지적하며 반대합니다(60-61). 유대인들은 아들의 이름을 대개 할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지었으며, 아버지의 이름을 따라 짓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아기 이름에 대한 최종 결정을 사가랴에게 맡깁니다(62). 사람들이 신호를 하여 질문한 것이나 사가랴가 글로 답하는 것을 볼 때, 사가랴는 여전히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상태에 있었습니다. 사가랴는 엘리사벳과 동일하게 ‘요한’이라는 이름을 선택했습니다. ‘요한’(요하난)은 히브리어로, ‘여호와는 은혜롭다’라는 뜻입니다. 사가랴는 천사 가브리엘이 전한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한 것입니다(13).
요한의 탄생 이후(64-66)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약속을 지키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때 우리는 찬양과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 행하신 하나님의 일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증언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신앙을 굳건히 하고, 하나님의 사랑을 나눌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신앙 생활의 본질적인 부분입니다.
64이에 그 입이 곧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여 하나님을 찬송하니 65그 근처에 사는 자가 다 두려워하고 이 모든 말이 온 유대 산골에 두루 퍼지매 66듣는 사람이 다 이 말을 마음에 두며 이르되 이 아이가 장차 어찌 될까 하니 이는 주의 손이 그와 함께 하심이러라(64-66)
사가랴가 요한이라 이름 지으면서 그의 입이 열리고 혀가 풀리며 말을 하기 시작하여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이 일을 목격한 이웃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고, 이 사건은 온 유다 산간 지방에 퍼졌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듣고, 요한의 미래에 대해 궁금해하며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1) 사가랴가 다시 말하게 됨(64-65)
사가라는 아기 이름을 지은 후에 다시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천사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다가 말하지 못하게 된 사가랴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요한이라는 이름을 아기에게 부여한 후에 다시 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가랴가 다시 말하게 된 현상은 사가랴가 지은 아기의 이름이 하나님의 뜻에 부합함을 사람들에게 입증하는 증표였습니다. 사람들은 이 놀라운 현상을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65).
(2) 성령충만한 세례요한(66)
사람들은 ‘주의 손이 요한과 함께한다’라고 말했습니다. ‘주의 손’은 하나님의 능력을 뜻하는 구약성경의 표현입니다(민 11:23; 왕상 18:46; 겔 37:1). 열왕기상 18:46은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라고 합니다. 여기서 ‘여호와의 능력’이라고 번역된 부분은 70인역에서는 ‘주의 손’,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손’으로 직역하여 표현했습니다. 에스겔 37:1은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라고 합니다. 여기서 ‘여호와께서 권능’이라고 번역된 부분은 70인역에서 ‘주의 손’, 히브리어 본문에서는 ‘여호와의 손’으로 직역한 표현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여호와의 손’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왜냐하면 이 표현이 그의 영과 평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손이 세례 요한과 함께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능력 또는 성령이 그와 함께함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성령이 어린 세례 요한과 함께 함을 보고 고백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천사 가브리엘의 예언대로였습니다. 천사는 세례 요한이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을 것이라고 예고했습니다(15). 이 예고대로 세례 요한은 아기 때에도 성령 충만했습니다. 사람들은 성령 충만한 세례 요한을 보고 “이 아이가 장차 어찌될까?”라고 말하며 기대했습니다. 이 아이는 이러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습니다. 요한의 위대한 인물 됨됨이는 예수님의 평가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7:26).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선지자 이상의 인물로 높이 평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 요한을 구약시대의 인물 중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이라고 평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7:28).
요한의 탄생은 인간이 생각할 수 없는 창의적인 일입니다. 요한의 탄생과 진행된 과정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이루어져 갔습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구하며 신선함에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세례 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는 하나님의 사역에 대해 불순종했을 때, 입이 열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순종을 이루었을 때, 임이 열리는 놀라운 역사를 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순종하시면 놀라운 축복이 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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