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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01-06)


성령으로 충만한 사가랴의 예언

누가복음 1장 67-80절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에게는 삶의 목적과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목적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당신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삶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한 것입니다.

 

  • 사가랴는 대제사장이자 경건한 종교 지도자로, 로마의 식민지 상황과 자식이 없는 고통 속에서도 신앙을 지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세례 요한이라는 아들을 주셨고, 사가랴는 10개월의 침묵 후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구원자보다 앞서 그 길을 준비하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사가랴는 자기 아들이 예비할 주님을 통해 하나님께서 백성을 구원하고 죄를 용서하실 것을 찬양했습니다.

 

구원의 뿔을 찬양(67-75)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서도 약속을 지키시고 신실하게 일하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자비를 기억하며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또한, 이 은혜를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그분의 역사를 기억하고 찬양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67○그 부친 사가랴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예언하여 이르되 68찬송하리로다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그 백성을 돌보사 속량하시며 69우리를 위하여 구원의 뿔을 그 종 다윗의 집에 일으키셨으니 70이것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 71우리 원수에게서와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일이라 72우리 조상을 긍휼히 여기시며 그 거룩한 언약을 기억하셨으니 73곧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라 74우리가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받고 75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67-75)

 

사가랴에게 주는 예언은 하나님의 일하심을 찬양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가랴의 찬양은 마리아의 찬양과는 달리 먼저 이스라엘을 위해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시작합니다.

 

(1) 사가랴가 하나님을 찬양함(67-68)

 

사가랴는 처음에 자신에게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는 말씀을 믿지 못했습니다(18). 그러나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전혀 보지 못하는 일까지도 믿음으로 찬양하게 된 것입니다. 단순히 개인적 경험으로 확실을 얻은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역사로 인해 확신의 자리까지 나아간 것입니다. 사가랴의 찬양에서 핵심은 속량입니다. 본문에서 ‘돌보셨다’라는 뜻의 동사 ἐπισκέπτομαι(에피스렙토마이)는 출애굽기 4:31에서 고난 당하는 백성을 외면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표현합니다. 유대 문헌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의 종말론적 방문을 가리킵니다. 이러한 배경을 고려하고 보면, ‘돌보셨다’는 것은 고난 당하는 백성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찾아오셨다는 뜻입니다. 사가라는 이어서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속량하셨다고 노래합니다. 구약성경에서 ‘속량’(뤠트로시스)은 팔린 가옥을 다시 회복하는 것(레 25:29), 종으로 팔린 자를 해방시키는 것을 뜻합니다(레 25:48).

 

(2) 구약성경이 성취됨(69-71)

 

사가랴가 언급한 구원의 뿔은 다윗의 집에서 일어날 것이므로(69), 레위 지파에서 태어난 세례 요한이 아니라, 마리아를 통해 다윗의 집에 태어날 아이를 가리킵니다. 사가라는 마리아가 방문했을 때 메시아가 잉태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믿었을 것입니다. 뿔은 특히 군사력을 상징하므로(신 33:17), 사가라는 군사적 메시아를 연상했을 수 있습니다. 사가랴는 메시아의 오심이 구약의 성취라고 노래합니다(70). 그가 “주께서 예로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으로 말씀하신 바와 같이”라고 노래할 때, 사무엘하 7:12~13도 염두에 두었을 것입니다. 선지자가 예언한 내용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71). 이스라엘이 로마에 예속된 상황에서 ‘원수’는 특히 로마를 가리키는 말로 여겨졌을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을 통한 약속 성취(72-7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는 이유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맹세 때문입니다(73). 그 약속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그에게 하신 약속입니다(창 22:16-18). 즉, 가나안 땅을 영원히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신다는 내용(창 17:8)입니다. 그 후손의 원수들이 정복될 뿐만 아니라 그의 순종과 믿음으로 온 세상이 복을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세례 요한의 사명(76-77)

하나님의 부르심에 귀 기울이고, 그분이 주시는 사명을 깨닫고 따르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그분의 사랑을 나누어야 합니다.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베푸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76이 아이여 네가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라 일컬음을 받고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여 77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하리니(76-77)

 

사가랴는 접속사 δε로 시작하면서 지금까지 예언한 메시아와 대조하면서 자신의 아이에 관해 예언합니다. 그 아이는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선지자’입니다(78). 그 아이의 사명은 ‘주 앞에 앞서 가서 그 길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이 사명은 이사야 40:3에 하나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으로 언급되었는데, 사가랴가 메시아에 관해 예언한 문맥에서 그 길을 메시아의 길이라고 이해하게 합니다. 사가랴는 세례 요한이 ‘주의 백성에게 그 죄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알게’ 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77). 이 예언은 죄 용서를 통해 회복되는 원리(레 26:38, 40-43)를 전제합니다. 세례 요한이 주는 것은 구원이 아니라 ‘구원의 지식’입니다. 여기서 ‘지식’은 셈족어적 의미의 실천적 지식을 의미합니다.

 

메시아의 오심(78-79)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사랑하시며, 그분의 자비로 새로운 시작과 희망을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진리를 받아들이고, 마음과 영혼에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또한, 삶에서 평화를 추구하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이 변화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 생활의 핵심입니다.

 

78이는 우리 하나님의 긍휼로 인함이라 이로써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 79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비치고 우리 발을 평강의 길로 인도하시리로다 하니라(78-79)

 

사가라는 ‘돋는 해가 위로부터 우리에게 임하여’라고 예언합니다. ‘돋는 해’로 번역된 ἀνατολή(아나톨레)는 70인역 예레미야 23:5에 사용되었는데, 개역개정에서는 히브리어 본문의 ‘체마흐’를 따라 ‘가지’로 번역되었습니다. 이 단어는 왕이 되어 새 출애굽을 이끄는 메시아적 존재를 가리킵니다(렘 23:5,8). 이 단어는 70인역 스가랴 6:12에도 쓰였습니다(개역개정에는 ‘싹’). 이 싹은 사무엘하 7:12~13의 다윗의 자손처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하는 메시아적 존재입니다. 70인역 스가랴 3:8에서도 이 단어는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따라서 누가복음에서도 이 단어는 메시아를 가리킬 것입니다.

‘임하여’로 번역된 ἐπισκέπτομαι(에피스켑토마이)는 68절과 7:16에서 하나님의 방문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된 동사이므로, 이 동사의 주어 ‘돋는 해’는 신적 주체를 가리킵니다. 이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신적 메시아가 세상 안에서부터가 아니라 세상 밖에서부터 오심을 강조합니다. 돋는 해가 ‘위로부터’(높은 곳으로부터) 온다는 표현도 그러한 의미를 전달합니다. ‘높은 곳으로부터’가 ‘하나님으로부터’를 뜻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누가복음에서 하나님을 가리키기 위해서는 ‘높은’ 대신 최상급 ‘지극히 높은’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1:32,76; 6:35; 8:28). 70인역, 구약 위경, 필로, 요세푸스, 신약성경에서도 하나님을 가리키는 경우에 ‘휩시스토스가 사용되었습니다. 그중 70인역의 용례를 살펴보면, 시편 102:20(개역개정, 102:19)에서 ‘높은 곳으로부터’는 ‘하늘로부터’와 평행합니다. 사무엘하 22:17에서 ‘높은 곳으로부터’는 ‘주’를 주어로 하는 동사와 연결되는 문장 속에 위치하므로 ‘하나님으로부터’를 뜻하지 않습니다. 시편 17:17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편 143:7의 “높은 곳으로부터 당신의 손을 보내셨다”에서도 ‘높은 곳’이 ‘당신’(하나님)을 가리킬 수 없고, 5절에 언급된 하나님의 거처인 하늘을 가리킵니다. 예레미야애가 1:13의 “그의 높은 곳에서부터 불을 보내셨다”에서도 ‘높은 곳’이 그(하나님)를 가리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높은 곳으로부터’는 ‘하나님으로부터’가 아니라 ‘하늘로부터’를 뜻하고, 누가복음은 여기서 신적 메시아가 하늘로부터 온다고 묘사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사가랴의 예언에 의하면 메시아는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임합니다(79). ‘어둠과 사망의 그림자 속에 사는 자들’은 로마의 압제 아래 있는 유대인들을 묘사하는 표현일 것입니다. 이 표현이 연상시키는 구약성경의 구절들(시 107:10,14; 사 9:2)은 포로가 된 이스라엘의 상태에 관해 묘사한합니다(참조, 시 107:2-4).

 

세례 요한의 성장(80)

우리는 지속적으로 배우고 발전하며,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이해하고 따를 수 있어야 합니다. 중요한 사명을 수행하기 전에는 충분한 준비와 기도가 필요합니다. 때때로 세상으로부터 떨어져 하나님과 독립적으로 교제하는 시간도 중요합니다. 이러한 시간은 우리의 영적 성장을 돕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강화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80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이스라엘에게 나타나는 날까지 빈 들에 있으니라(80)

 

세례 요한은 자라며 영적인 측면에서 강해졌습니다. 이것은 사무엘이 하나님 앞에서 튼튼하게 자라났다고 언급하는 사무엘상 2:21을 연상시킵니다. 아이는 사역을 위해 등장하기까지 ‘빈들’(광야)에 있었습니다. 이사야 40:3에 따라 하나님의 새 출애굽 길은 광야에서 준비해야 하므로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자신에 있는 고통을 아름답게 승화시키시길 바랍니다. 그것은 당신을 거룩하게 만드는 도구입니다. 사가랴는 주변 환경에 물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자녀들을 하나님 나라에 크게 쓰임 받는 일꾼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당신도 그렇게 기도해 나가는 성도가 될 때, 당신을 통해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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