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02-01)
섬기려 오신 왕 예수 그리스도
누가복음 2장 1-20절
오늘날 시대는 기쁨의 좋은 소식을 간절히 기대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 좋은 소식이란 모든 사람들에게 평화가 임한다는 소식입니다. 하지만 평화는 힘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재력, 학력, 인맥 등과 같은 힘을 가려고 합니다. 진정한 평화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 지어다!’라고 모든 자들에게 평화의 선물을 주셨습니다.
- 누가는 로마 황제 아구스도의 인구조사 칙령과 세앙의 구주가 베들레헴의 구유에 태어난 장면을 대조합니다(1-7). 주의 천사는 목자들에게 구주가 태어날 것이라는 기쁜 소식, 곧 복음을 전합니다. 구주의 표적은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태어난 것이며(8-14), 목자들은 구유에 누인 아기를 목격합니다(15-20). 낮은 곳에 임하신 구주의 탄생으로 세계의 중심과 이스라엘의 중심이 옮겨집니다.
베들레헴의 구유에 누인 아기 예수님(1-7)
어두움 가운데 걷던 사람들이 말씀의 조명을 받아서 빛 가운데 걷는 것이 구원입니다. 불안과 염려, 또 무질서 가운데 살던 사람들이 샬롬을 누리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 소식이 복이 되려면 두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의 삶은 엉망인 죄인이고, 혼자 힘으로는 이 길목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임의로 주신 구원의 방식에 동의해야 합니다. 베들레헴에 태어나신 예수님께서 그 선물을 주시려 오셨습니다.
1그 때에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 2이 호적은 구레뇨가 수리아 총독이 되었을 때에 처음 한 것이라 3모든 사람이 호적하러 각각 고향으로 돌아가매 4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5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6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7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1-7)
누가는 예수님의 탄생을 냉혹한 세계사의 흐름에서 서술합니다. 1장이 유대의 왕인 헤롯의 때를 언급하는 것으로 시작한 반면(1:5), 2장은 가이스 아구스도의 칙령에 대한 설명으로 시작합니다.
누가는 본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의 시기와 장소를 소개합니다. 그 시기는 로마 황제 아구스도는 군대 징집과 세금 징수를 목적으로 인구 조사를 위해 천하에 호적하라고 칙령을 내렸고(1), 구체적으로 시리아 지역의 총독인 구례노가 유대 지역에 집행했던 때임을 소개합니다. 시편 87:6에서는 세계적인 호적조사 실시 때 메시아가 탄생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황제의 명령에 따라 모든 사람들은 호적하려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3).
요셉은 다윗의 후손이므로 호적을 등록하려고 갈릴리 나사렛에서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갔습니다(4). 그때 임신 중인 마리아도 동행했습니다(5). 로마 제국의 황제가 내린 칙령 앞에 요셉과 마리아는 복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윗의 후손인 요셉이 다윗의 도시인 베들레헴에 간 것은 태어날 아기 예수님께서 약속된 다윗의 후손이라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미가 5:1-4은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으로 예언하였습니다. 가이사는 자신의 왕권을 증명하기 위해 호적하라는 칙령을 내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이것까지도 이용하셨습니다. 그 기간 동안 온 세상의 진정한 왕이신 예수를 베들레헴에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이로써 베들레헴에서 구세주가 탄생할 것이라는 구약을 통해 하셨던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미 5:2). 그래서 다윗의 위(位)가 영원할 것이라는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세월은 세상의 권력자를 바꾸고 나라는 흥망성쇠를 거듭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쇠하지 않고 우리가 충성할 왕 주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하십니다.
요셉과 마리아가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때, 빈 객실이 없었기 때문에 외양간에 머물러야 했고, 결국 약속된 메시아는 외양간의 여물통에 누였습니다. 만삭의 어린 여성이 먼 길을 와서 외양간의 여물통에 첫 아이를 낳는 장면은 결코 낭만적이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이 모습은 주의 천사가 마리아에게 고지한 ‘그가 큰 자가 되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아들’로 불리고 ‘주 하나님께서 그 조상 다윗의 왕위’를 주실 것이라는 약속(1:32)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신의 아들’이라 자처하던 로마 황제 아구스도가 통치하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가난한 부부의 첫아들(출 13:2; 민 3:12-13; 18:15-16; 신 21:15-17)로 구유에 누이셨습니다. 이처럼 높은 보좌에 앉아 천하에 칙령을 내리는 가이사 아구스도와 구유에 누인 메시아인 예수님은 완전히 대조됩니다. 예수님의 탄생으로 세상의 중심이 달라집니다. 천하를 호령하는 로마의 아구스도가 아니라 어느 시골의 외양간에서 태어난 예수님께서 세상을 다스릴 것입니다(미 5:2).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로마의 황제와 정반대의 방식으로 세상을 다스릴 것입니다.
구주의 탄생과 천사들의 찬송(8-14)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우리를 위해 낮은 자의 모습으로 보내주셨습니다. 다윗의 왕에 이어 영원히 왕노릇하실 하나님의 아들이 낮고 천한 모습으로 오신 것입니다. 비천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를 부유케 하시려고 짐승의 구유에 오신 것입니다. 구유에 계신 예수님을 보면서 천사들은 찬양합니다.
8그 지역에 목자들이 밤에 밖에서 자기 양 떼를 지키더니 9주의 사자가 곁에 서고 주의 영광이 그들을 두루 비추매 크게 무서워하는지라 10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11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12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 13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14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8-14)
본문은 주의 천사(가브리엘)가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을 알리는 정면과 천사들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내용으로 구성됩니다. 목자들은 천사에게 메시아 탄생 소식을 듣고 베들레헴을 달려가서 누구 집인지도 알 수 없지만 마구간에 구유 안에 누인 예수님을 찾아간 사건을 소개합니다.
(1) 목자들에게 탄생을 알림(8-12)
예수님께서 태어난 베들레헴 근처에서 목자들이 밤에 양 떼를 돌보고 있었습니다(8). 주의 천사가 목자들에게 나타났고 주의 영광이 목자들을 비추었습니다(9). 목자들은 천사를 보고 크게 두려워했습니다. 천사는 목자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천사는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전하러 왔기 때문입니다(10).
누가복음에서 ‘기쁨’은 하나님의 구원 행위(1:14; 2:10; 15:7,10)와 영적인 일(10:17)과 예수님의 부활(24:41,52)에 사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좋은 소식이 전해질 것이기에 목자들은 기뻐해야 합니다. 좋은 소식은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 ‘그리스도 주’가 태어난 것입니다(11). ‘다윗의 동네’는 베들레헴(삼상17:12-15)을 가리킵니다. 다윗의 동네에 태어난 예수님께서는 ‘구주’입니다. 구약에서 ‘구주’는 원수들에게서 해방시키는 구원자입니다(삿 3:9,15; 12:3; 느 9:27). 구주는 ‘그리스도 주’입니다. ‘주’는 70인역에서 하나님의 칭호이고, 로마제국에서는 ‘카이사르’가 ‘주’입니다. ‘구주’(1:47)는 구약에서 백성을 돕거나 구원하시는 하나님에게 사용된 용어였습니다(삼상 10:19; 사 45:15.21; 지혜서 4:30; 마카비1서 4:30; 집회서 51:1). 11절에서 ‘구주’의 역할을 행하는 주체는 예수님입니다(행 5:31; 13:23).
천사는 목자들에게 메시아라는 표적을 보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12)가 그들이 보게 될 표적입니다. 구주-주-그리스도임을 입증하는 표적은 초라한 곳에서 옷(강보)에 싸여 있는 아이의 모습입니다.
(2) 천사들의 축하 찬송(13-14)
온 세상을 구원하는 너무나 초라한 그리스도의 탄생 장면이지만, 하늘에서는 정반대의 반응인 찬송이 울려 퍼집니다. 주의 천사와 함께 수많은 하늘 군대가 도열해 우렁차게 하나님을 찬송합니다(13). 하늘의 군악대는 아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주어질 평화를 노래합니다. 하늘에 계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땅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평화를 선포합니다. 평화는 구주 그리스도의 통치로 주어지는 치유와 회복이며(참조, 4:18-19; 사 52:7),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들에게 임합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택하시는 사람들입니다. 천사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광경이 펼쳐지는 장소로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곳인 예루살렘 성전이 걸맞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은 베들레헴 광야의 목자들에게 나타났습니다.
1세기에 온 세상에 미치는 기쁜 소식은 로마 황제의 탄생이나 등극이었습니다. 로마는 하나님의 아들과 구주로 불리는 새로운 황제가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줄 것이라고 선전했습니다. 가이사 아구스도의 생일은 세상에 주어진 복음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누가 외양간의 구유에 누인 아이를 세상을 구원하고 이스라엘을 통치할 구주와 메시아로 생각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온 세상에 미칠 진정한 기쁨, 사람들의 평화는 시골의 외양간에서 태어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시작됩니다.
누가복음에는 ‘복음(유앙겔리온)’의 명사형은 나오지 않고 ‘좋은 소식을 선포하다’(유앙겔리조마이)라는 동사형이 10회 사용됩니다(1:19; 2:10; 4:43; 7:22; 8:1; 9:6; 16:16; 20:1; 참조. 3:18). 이는 이사야가 복음을 선포할 때 사용한 방식입니다(사 40:9; 52:7; 60:6, 61:1). 이사야는 겸손하고 고난 받는 종(42:1-4; 45:4; 49:3-5; 52:13-53:12)을 통해 복음이 전파될 것을 예고했습니다. 이사야의 예언처럼 궁핍하고 비천한 자들을 높이기 위해 예수님은 더 비천하게 낮아지셨습니다. 구주는 낮은 곳에 임해서 고난의 길을 걸었고, 결국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시는 구주를 영접하는 사람에게 평화가 찾아올 것입니다.
구유에 누인 아기를 목격한 목자들(15-20)
오늘 예수님께서 오신다면 여전히 우리의 삶의 조건보다 우리의 마음을 보실 것입니다. 말씀 앞에 겸손함이 필요하고, 무엇보다 순종하는 믿음이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주의 영광이 드러난 곳에 참 평화와 기쁨이 있습니다. 이러한 목자의 태도에서 오늘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도의 자세를 알 수 있습니다.
15천사들이 떠나 하늘로 올라가니 목자가 서로 말하되 이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께서 우리에게 알리신 바 이 이루어진 일을 보자 하고 16빨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찾아서 17보고 천사가 자기들에게 이 아기에 대하여 말한 것을 전하니 18듣는 자가 다 목자들이 그들에게 말한 것들을 놀랍게 여기되 19마리아는 이 모든 말을 마음에 새기어 생각하니라 20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15-20)
천사 합창단은 하늘로 올라가고 목자들은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15). 주의 천사가 아기의 탄생을 알렸는데도 목자들은 ‘주’(호 퀴리오스)께서 알려주신 사실을 확인하러 가자고 합니다. 그들은 천사의 메시지가 하나님에게서 온 것으로 믿었습니다. 메시아의 탄생 소식에 대해 마리아처럼(1:39) 목자들도 빨리 반응합니다(16). 목적지에 달려간 목자들은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인 아기를 목격하고 천사가 말한 표적을 확인합니다. 이제 목자들은 천사가 아기에 대해 말한 내용을 전합니다(17). 다윗의 아들과 구주를 통해 온 세상에 미칠 기쁜 소식을 맨 먼저 증언한 주체는 목자들입니다! 당시 목자들의 말은 신뢰를 얻지 못했지만 아기를 둘러싼 사람들은 목자들의 증언을 진심으로 받아들였습니다(18).
19절의 ‘간직하다’와 ‘고민하다’는 매우 긍정적이고 수용적인 의미를 내포합니다. 마리아는 주의 천사에게서 들은 메시지와 목자들의 증언을 깊이 생각합니다. 일터로 돌아온 목자들은 표적을 확인한 것으로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찬송합니다(20). 목자들의 찬송은 하나님의 (찬란함을 뜻하는) 영광이 예수님의 겸손과 고난을 통해 드러날 사실을 예고합니다.
하나님의 임재로 영광과 찬양을 돌리기에 적합한 곳은 세상의 중심인 예루살렘의 성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탄생으로 신앙의 중심이 옮겨집니다. 하루도 일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을 만큼 가난한 목자들이 일하는 곳에 하늘의 군악대가 등장했고, 목자들은 일터로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드립니다. 낮은 자들 가운데 임하신 예수님께서는 낮은 자들의 소망이며, 하나님은 이들의 찬송을 기뻐하십니다.
목자들은 강보에 싸여 구유에 누인 아이의 표적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천사의 고지 사실을 예수님의 부모에게도 전하여 그들을 놀라게 합니다. 마리아는 이 일을 마음에 담아둡니다. 이처럼 친히 주께서 하시는 일을 많이 보고 더 풍성한 찬양과 예배로 화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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