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03-01)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
누가복음 3장 1-14절
대부분의 사람들은 변화를 원치 않습니다. 변화하는 것은 쉽지 않고 그만큼 대가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행해왔던 것에 익숙해져 있고 자연스럽고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로는 익숙하고 편한 것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익숙하고 편한 것이 더 병들고 나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흔히 말하는 좋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니라 옳은 것이 좋은 것입니다.
- 3:1-4:13은 예수님의 공적 사역, 즉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위한 준비에 해당합니다. 탄생 내리티브에 묘사된 요한(3:1-20)과 예수님(3:21-4:13)은 하나님 나라의 시작을 준비하는 이야기에서 주연으로 등장합니다. 3:1-14은 요한을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전하는 선지자로 소개하고, 무엇이 회개인지 구체적인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주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1-6)
말라기 이후로 400년 동안 가나안 땅은 아니 전 세계는 영적 암흑기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빛이 등장했을 강조합니다. 어두운 세계에서 작은 희망의 불빛이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습니다. 이 복음의 빛은 전 세계를 태우고도 남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하심은 사람들의 화려한 궁궐이나 성전이 아니라 초라한 광야에 임하게 되어집니다. 본문은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회개의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1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2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3요한이 요단 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4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5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6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1-6)
모든 사물은 역할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역할을 다할 때는 버리고 새로운 것으로 대체합니다. 영적인 부분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안에는 많은 지도자들이 있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용하지 않으시고 요한을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 1-6절은 사가랴가 아들 요한에 대해 예언한 내용이 실현되는 것을 설명합니다(1:76; 1:16-17).
(1) 시대적인 배경(1-2)
누가복음 2장과 3장 사이는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약 30년이 흘러, 예수님과 세례 요한은 30세가량이 되었습니다. 이제 요한이 그리스도의 길을 준비하는 사역을 시작합니다. 그런데 요한의 사역을 거론하기 전에 시대적인 상황을 길게 설명합니다(1).
세례 요한이 선지자의 소명을 실행할 때는 로마의 황제 티베리우스, 유대의 통치자 빌라도, 팔레스틴의 세 분봉왕, 예루살렘 성전의 대제사장들이 패권을 쥐고 있었습니다(1). 이러한 사람들이 당시에 주인으로 지배자들입니다. 왜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필요했겠습니까? 그들은 세상에 성공과 실패, 생명과 사망의 법칙을 정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그들이 만든 이데올로기에 순응하는 것이 살길 이고 출세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배경이 세례요한과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면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한 배경입니다.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라 인간 스스로 자기들이 이 세상 질서를 만들고, 자기들 중심으로 이 세상이 돌아간다고 말하는 권력자들이 있는 곳에서 사역한 것입니다. 이 시대는 요한이나 예수님에게도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세례 요한의 메시지를 받아 들린다는 것은 바로 자신들이 누리는 권력에서 내려와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자신들이 틀렸고 예수님께서 맞는다는 점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당시에 지배하던 이들이 가장 화려한 공간에서 권세를 행사할 때, 광야에서 지내던 세례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습니다(2). 기득권을 상응할 수 있는 성전이나 궁궐이 아니라 광야에 임한 것입니다. 이곳에 하나님의 질서가 작동하고 하나님의 계시가 임하는 곳입니다. 선지자의 활동을 당대의 정치 상황과 연결해서 설명하는 방식은 구약에 근거합니다(예 삼하 7:4; 24:11; 왕상 12:22; 13:20; 왕하 20:4; 미 11:1; 욘 1:1; 슥 1:1; 사 38:4; 렘 1:1-4; 겔 1:3). 이처럼 선지자의 소명과 권능을 받은 요한은 힘과 부가 지배하는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실현될 곳을 예고한 선지자들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과 계획을 드러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안나스와 가야바가 종교 권력을 행사하는 성전이 아니라, 광야에 있는 가난하고 경건한 요한에게 임했습니다. 시대를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종교 권력과 지위에 심취한 종교인들에게 주어지지 않습니다. 성경을 사용하고 가르치는 위치에 있다고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임하는 것은 아닙니다. 광야에서 하나님을 대면하며 고독하게 살았던 요한처럼 하나님에게서 받은 소명에 사로잡혀 광야와 같은 현실을 살아가는 종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세상은 이런 사람의 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합니다. 또한 요한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으나 로마제국과 팔레스틴이라는 시회 속에 들어가 하나님의 뜻을 전했습니다. 구체적으로 헤롯 안티파스의 죄를 지적했고, 결국 참수형을 당하고 맙니다. 선지자지 소명은 공적인 영여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2) 회개를 선포하는 세례 요한(3-6)
요한은 요단강 근처에서 ‘죄 사함을 위한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습니다(3). 그의 세례는 죄사함을 줄 순 없지만, 죄사함을 받을 수 있도록 회개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그는 회복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여기서 죄 사함은 해방과 자유를 의미하고, 세례는 해방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은 홍해와 요단강을 건너 해방을 맛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물에 들어가는 세례는 새로운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예고하는 상징적 행위였습니다. 4-6절에서 누가는 요한의 선포를 이사야 40:3-5을 인용해서 입증합니다. 아사야 선지자의 말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3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4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언덕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아니한 곳이 평탄하게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5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보리라 이는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느니라(사 40:3-5)
세례 요한은 광야에 있으며,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였습니다. 광야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즉 해방을 경험하기 시작한 공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백성을 구원하고 환영하기 위해 광야로 오셨던 것처럼, 주(=예수)께서 광야로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성은 주의 오심을 준비해야 합니다(1:17, 76; 3:4). 구약의 하나님이 행하셨던 일을 이제 예수님께서 ‘주’로서 행하실 것입니다(1:43, 76; 2:11). 그리고 ‘그의 길’, 곧 예수님의 길을 곧게 해야 합니다(1:76, 79; 행 9:2; 19:9, 23; 22:4; 24:14, 22). 누가복음에서 주의 길을 준비하고 그의 오심을 곧게 하는 것이 회개며, 회개의 표시로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일은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마다 구원을 경험하는 것으로 실현됩니다. 광야로 오시는 주, 곧 예수님께 돌이켜 그의 말씀을 영접하는 자마다 이사야 40장에서 예고한 구원을 볼 것입니다.
주의 길을 준비하는 것의 핵심은 겸손한 태도를 취하는 것입니다.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져야 한다’의 동사 타페이노오(ταπεινόω)는 겸손을 의미합니다(1:52; 14:11; 18:14; 행 8:21; 13:10). 겸손히 예수님을 받아들일 때 구원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요구하는 요한(7-14)
당시 이스라엘 지도자들은 이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이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호의적이지 않을 것입니다. 요한의 메시지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자신들이 누린 기득권에서 내려와야 하기 때문에 더욱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은 틀렸고, 요한과 예수가 맞는다고 해야 하기 때문에 반발할 것입니다.
7요한이 세례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8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9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10무리가 물어 이르되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11대답하여 이르되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 하고 12세리들도 세례를 받고자 하여 와서 이르되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13이르되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 하고 14군인들도 물어 이르되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하매 이르되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하니라(7-14)
세례를 받으러 나온 이들 중에는 회개의 마음으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마저도 종교적인 통과의례나 종교적인 자격증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결코 메시아를 영접할 수 없는 마음이며, 그가 가져올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마음입니다. 마음을 바꾸지 않는 이에게 회개의 열매가 맺힐 리 없고 열매 없는 이는 주님의 주권을 인정한 사람일 리 없기 때문입니다.
(1)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7-9)
세례 요한은 당시에 인정을 받은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그래서 일부 세리들과 바리새인들도 세례를 받으러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는 곁인 모습인, 사회적인 지위나 명성을 보지 않았습니다. 세례를 받기 위해 나아오는 무리를 향해 담대하게 ‘독사의 자식들’이라는 부르며 다가오는 하나님의 진노를 경고합니다(7). 이 ‘독사의 자식들’이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향해 붙인 욕설이었으나, 요한은 이 표현을 유대인들에게 사용합니다.
요한은 ‘누가 너희에게 장차 올 진노를 피할 방편을 보여주었느냐?’(7b)라며 거짓된 안전에 대한 약속을 떠올립니다. 무리는 안전에 대한 거짓 약속에 속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회개하지 않으면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진정성 없는 회개는 진노로부터 안전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회개는 합당한 열매로 나타나야 합니다(8). 겉으로는 훌륭한 열매를 맺은 것 같이 보였지만, 회개의 열매가 없이는 선민이라는 자긍심도 구원을 보장하지 못합니다. 회개를 입증하는 구체적인 열매가 없이는 아브라함이 조상이라고 믿어도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아브라함은 구원받는 새로운 백성의 아버지입니다. 특히 아브라함의 가족에 포함되는 사람은 상처받고 소외된 사람들입니다(13:16; 16:24; 19:9).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열방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으므로(창 18:14), 인종과 지위에 관계없이 회개하는 자는 누구나 아브라함의 후손이 됩니다. 요한은 도끼 은유를 사용해 심판이 임박했음을 알립니다(9). 열매를 맺지 못하거나(13:7, 9) 썩은 나무가 찍혀 불태워지는 것은 당연합니다(말 4:1). 그런데 이미 도끼가 나무뿌리에 놓였기 때문에 즉시 회개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자긍심이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에게 임할 심판이 임박했습니다. 그럼 그들이 장차올 진노를 피해서 하나님의 자녀로 살려면 회개뿐입니다.
(2) 회개에 함당한 열매(10-14)
10-14절은 누가복음에만 있는 내용입니다. 세례 요한은 참된 회개는 삶의 열매를 동반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새로운 주인을 모시기 위해서 옛 주인과 결별하는 것, 그러므로 옛 가치, 옛 욕망과 옛 습관을 버리는 것이 회개입니다. 이러한 것들은 당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차피 법이라고 하는 것은 힘 있는 자들이 자신들의 통치를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하는 일은 어떤 식으로든지 정당화 되었을 것입니다.
회개는 소속을 옮기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속을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로 옮기는 것입니다. 그것은 가치관을 옮기는 것이며, 주인을 바꾸는 일입니다. 따라서 이 세상의 법을 존중한 것이 옳다고 해도 그것이 하나님의 법과 배치된다면 저항해야 합니다. 그 불의한 세상이 합법적으로 주는 권력이나 특권이나 해택에 대해서 당연하게 생각하지 말고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그 해택을 거부하던지 나누어야 합니다.
그러니 구체적인 삶의 방식이 변해야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회심이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무엇인지 구체적인 예를 열거합니다.
세례를 받기 위해 찾아온 무리들은 요한에게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10)라고 묻습니다. 그들에게 요한은 옷과 음식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도록 명령합니다(10-11; 12:23; 창 28:20; 신 10:18). 옷과 음식은 생필품입니다. 이를 더 가난한 자들과 나누어야 합니다(12:23; 창 28:20; 신 10:18). ‘옷’을 가리키는 키톤(χιτών)은 피부에 직접 닿는 긴 속옷을 가리킵니다(6:29; 9:3; 행 9:39). 이 속옷 위에 더 무거운 겉옷(히마티온 ἱμάτιον)을 걸쳐 입었습니다. 속옷은 겉옷보다 덜 비싸지만 그 정도의 생필품이 없어 고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먹을 음식도 궁핍한 사람들과 나눠야 합니다.
세리들도 세례를 받으러 나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묻고, 요한은 부과된 세금 외에는 거두지 말라고 지시합니다(12-13). 세리들은 세금을 거두기 전에 액수를 먼저 제시해서 지역을 할당받았으며, 주민들에게서 갈취한 만큼 이익을 남길 수 있었습니다. 정직한 세리도 있었겠지만 대부분의 세리는 사악하게 갈취하며 다녔을 것입니다.
군인들도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14). 요단강 부근은 갈릴리와 베레아를 다스린 헤롯 안티파스의 관할 구역이었으므로, 이들은 헤롯을 위해 일하는 군인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무력과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은 자기 이득을 위해 힘을 사용하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군인들은 폭력을 행사해 민간인의 재산을 빼앗지 말아야 하고, 거짓 혐의로 무고한 백성을 고발하지 말아야 하고, 받는 급료 외의 것을 탐내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이 광야에서 외친 메시지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회개는 상응하는 행위를 요구합니다. 선민의식이 강하거나 신앙의 배경이 좋을수록 열매 없는 회개로 만족하기 쉽습니다. 행위로 아브라함의 자녀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아브라함의 자녀에게서는 합당한 행위가 나타나야 합니다.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16:19-31)에서 부자는 죽어서도 ‘아버지 아브라함’이라고 부르지만 아브라함과 한곳에 있지 못한 반면,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습니다. 회개의 표현으로 가난한 자들을 위해 소유의 절반을 기부한 삭개오는 아브라함의 아들입니다(19:9). 둘째, 회개는 긍휼과 공정성으로 표현됩니다. 속옷과 음식을 나누는 행위는 회개의 행위가 긍휼임을 의미합니다. 세리와 군인이 이기적 욕심을 위해 공권력을 사용하지 않고 공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은 공정성이 회개의 열매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누가복음에는 인간의 탐욕이 가장 큰 문제로 강조되고, 타인에 대한 관심은 이런 탐욕의 회개를 뜻합니다. 셋째, 요한은 직업을 버리도록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소속된 직장에서 윤리를 실천하도록 촉구한다. 세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회개는 일상생활과 직업 현장에서 공공의 선을 위한 방향으로 표현됩니다.
회개는 주님 나라의 질서와 리듬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한에게는 궁전이나 성전이 아니라 광야가 현재 하나님 나라의 질서가 작동하는 공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중심이 아니라 변방에, 권력자들에게가 아니라 광야의 세례 요한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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