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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04-03)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

누가복음 4장 31-44절


 

날지 않는 독수리는 높이 날지 못하고, 먹이만 욕심내는 독수리는 비대해져서 점점 날지 못합니다. 오늘날 성도들은 땅의 것에만 욕심내는 독수리와 같아 천국에 대한 소망이 희박해지고 있습니다. 신앙에서 중요한 것은 능력을 행하는 것보다 사명을 이루는 것이며, 순간마다 분투하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현실에서 신앙은 변화산의 화려함보다 광야에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일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이용해 인기를 얻으려다 실패한 사람들이 많으며, 인기에 연연하다 보면 실패하게 됩니다. 신앙은 인기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명을 이루는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에 들어가셨습니다. 이곳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가르치시고, 더욱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는 능력을 보이셨습니다. 스스로 권위를 나타내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셨습니다.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는 예수님(31-37)

우리는 영적인 싸움에서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러한 승리를 원한다면 기도와 말씀을 통해 영적 권위를 강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을 신뢰하며, 하나님께서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을 믿고 구해야 합니다. 몸과 마음의 치유를 위해 예수님을 통해 온전한 회복을 경험해야 합니다.

 

31갈릴리의 가버나움 동네에 내려오사 안식일에 가르치시매 32그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말씀이 권위가 있음이러라 33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34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35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귀신이 그 사람을 무리 중에 넘어뜨리고 나오되 그 사람은 상하지 아니한지라 36다 놀라 서로 말하여 이르되 이 어떠한 말씀인고 권위와 능력으로 더러운 귀신을 명하매 나가는도다 하더라 37이에 예수의 소문이 그 근처 사방에 퍼지니라(31-37)

 

예수님께서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 귀신 들린 사람이 소리치며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에게서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쫓아내셨고, 그 사람은 치유되었습니다. 이 사건을 통해 사람들은 예수님의 권능과 권위를 깨닫고 놀라워했습니다.

 

(1) 권위 있는 가르침(31-32)

 

예수님께서는 고향 나사렛을 떠나서 갈릴의 도시 가버나움으로 가셨습니다. 이곳은 제자 베드로와 안드레의 고향이었습니다. 그곳에서도 역시 안식일에 회당에서 사람들에게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1).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었기 때문에 그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은 놀랐습니다(2). ‘권위’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메시아임을 보여주는 증거(32,36)로 누가복음에는 15회나 사용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나사렛 회당에서 선포하신 복음(4:18-19)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2) 악신 들린 자의 치료(33-35)

 

말씀의 권위에 대한 첫 번째 반응은 회당에 있던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나타납니다(33). 예수님께서는 말로만 하는 능력이 아니었습니다. 회당에 귀신이 들린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악귀에 의해 바른 인생을 살지 못했습니다.

그에게 들린 마귀는 예수님을 알아보았습니다. 그 마귀는 ‘아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크게 외치며 묻습니다(34). 예수님의 권위를 알고 인정했습니다. 서로 관심사가 없는데 자신들의 일에 왜 개입하는지 따지는 말투입니다. 귀신은 예수님의 개입으로 방해를 받는다고 생각하고 ‘아!’라는 감탄사를 사용해 괴성을 지릅니다. 귀신은 더 구체적으로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라고 묻습니다. ‘우리’는 귀신들의 세계 전체를 지칭하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정체를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밝힙니다. 이 칭호는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았을 때 하늘에서 들린 칭호입니다(3:22). ‘하나님’의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보냄을 받았다는 뜻과 ‘거룩한’ 영, 곧 성령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은 그리스도라는 뜻입니다(3:22; 4:1,18). 예수님ㄲ[서는 더러운 귀신들의 세력(33,41)을 파괴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귀신들의 세력에 사로잡히고 눌린 자들에게 자유를 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사명이기 때문입니다(4:18).

예수님께서는 귀신을 책망하면서 침묵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명령하십니다(35). ‘꾸짖다’는 유대 문헌에서 하나님이나 하나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자가 악한 영들을 제압할 때 사용하는 전형적인 단어입니다. 말씀의 권위(32)는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으로 실현됩니다.

 

(3) 치료에 따른 반응(36-37)

 

예수님의 책망과 명령에 귀신은 속주로 삼은 사람을 넘어뜨리기는 했으나 그 사람은 상처 없이 회복됩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장면을 목격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놀랍니다(36). 예수님의 말씀은 귀신을 쫒아낸 권위와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사역에 대한 소문은 그 주변 사방으로 급속하게 펴졌습니다. 예수님의 명성이 자자해지게 되었습니다.

가버나움에서 더러운 귀신을 만나 귀신 들린 자를 해방시킨 장면은 예수님의 사역이 사탄의 나라를 공격함으로써 갇히고 눌린 자들에게 자유를 선사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이미 시험 이야기는 하나님 나라가 사탄의 나라와 충돌하게 될 것을 예고했습니다(4:1-13). 귀신을 쫓아내는 행위는 사탄의 집이 그리스도에 의해 무너짐으로써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것을 의미합니다(11:20-23). 누가의 다른 본문에서도 예수님의 사명을 사탄의 속박에서 해방하는 것으로(행 10:38), 병의 치유를 사탄의 매임에서 풀어주는 것으로 묘사합니다(눅 13:16). 이처럼 하나님 나라의 사역은 속박에서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악의 세력은 언제나 인간을 누르고 종속시킵니다. 이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자이신 예수님의 권위로만 가능합니다.

 

육신적인 치유의 능력(38-41)

우리는 다양한 문제와 질병 속에서 예수님의 치유 능력을 믿고 기도해야 합니다. 영적인 싸움에서도 예수님의 이름을 의지하며, 기도와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믿고, 그분의 이름으로 승리할 수 있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믿으며, 이를 실천하는 삶이 중요합니다.

 

38예수께서 일어나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 사람들이 그를 위하여 예수께 구하니 39예수께서 가까이 서서 열병을 꾸짖으신대 병이 떠나고 여자가 곧 일어나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40해 질 무렵에 사람들이 온갖 병자들을 데리고 나아오매 예수께서 일일이 그 위에 손을 얹으사 고치시니 41여러 사람에게서 귀신들이 나가며 소리 질러 이르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꾸짖으사 그들이 말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 이는 자기를 그리스도인 줄 앎이러라(38-41)

 

예수님께서 시몬의 장모를 고치신 후, 많은 사람들이 병자와 귀신 들린 자들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치유하고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예수님의 권능과 자비가 드러났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1) 열병 앓은 자의 치료(38-39)

 

예수님께는 영혼만 치료하신 것이 아니라 연약한 육신도 치료해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회당의 사역을 마치고 떠나서 회당 근처에 있는 시몬 베드로의 집으로 가셨습니다. 그곳에 열병으로 고생하던 시몬의 장모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장모가 치료되었습니다. 치료 받은 시몬의 장모는 예수님의 수종을 들었습니다. 수종을 들 수 있도록 일시적인 치료나 약화된 상태에서 조금 나아진 상태가 아닌 완전하게 치료될 수 있습니다.

 

(2) 많은 병자들의 치료(40-41)

 

가버나움 치료는 계속 됩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주변 사람들에게 퍼져 나갔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안식일이 끝나자마다 해질 무렵 많은 병자들과 귀신들린 사람들을 데리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일이 손을 얹으시고 그들을 모두 고치셨습니다(40). 예수님께서 손을 얹고 기도하신 것은 긍휼한 마음을 전달하는 동작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을 치료하시는 의사임을 확증시켜주는 대목입니다(마 9:12; 막 2:17; 눅 5:31).

여러 사람에게서 쫓겨난 귀신들은 광야의 마귀처럼(4:3,9) 예수님의 정체를 알고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입니다’라고 외치며 나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신들을 꾸짖으시면서 그들의 입을 막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신분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막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사단의 간교함을 아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한 어리석은 수작(手作)에 불과합니다.

 

복음이 필요한 사람(42-44)

당신은 지금 어느 곳에 관심이 많습니까? 영적으로 보면, 땅이거나 비전, 둘 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만약 땅에 대한 욕망을 세우는 사람입니까? 당신의 몸집은 비대해질 것입니다. 그 비대함 때문에 천국으로 날아오르지 못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 영적 다이어트를 해야 합니다. 가벼워져서 하늘로 날아오르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비전에 집중하셨습니다.

 

42날이 밝으매 예수께서 나오사 한적한 곳에 가시니 무리가 찾다가 만나서 자기들에게서 떠나시지 못하게 만류하려 하매 43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다른 동네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을 위해 보내심을 받았노라 하시고 44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시더라(42-44)

 

예수님께서 새벽에 한적한 곳으로 나가 기도하시자, 사람들이 찾아와서 떠나지 말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른 동네에서도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갈릴리 여러 회당에서 전도하셨습니다. 이는 예수님의 사명이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전하는 것임을 보여줍니다.

 

(1) 여러 동네에서 전파(42-43)

 

예수님께서는 날이 밝자 한적한 곳에 가셨습니다. 사역의 방향을 잡기 위해 시간을 내신 것을 보입니다(42). 기도하고 돌아온 예수님을 가버나움 사람들은 더 많은 가르침과 기적을 기대하며 예수님을 떠나지 못하게 붙잡았습니다(42).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내가 다른 동네에서도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전하여야 하리니 나는 이 일로 보내심을 입었노라’(43)고 말씀하셨습니다. 간곡한 잔류 요청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나라의 소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로 찾아 떠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인기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따랐습니다. 사람이 찾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찾는 사람이 되셨습니다.

 

(2) 회당에서 전파(44)

 

갈릴리 다른 마을에도 하나님 나라를 전해야 한다고 하시면서 그들을 뿌리치시고, 다른 마을들을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선포하다’(κηρύσσω)는 43절의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하다’(유앙겔리조 εὐαγγελίζω)와 같은 의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위해 보냄 받은 종으로서(4:18-19; 사 61:1-2) 갈릴리의 여러 회당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가르치고 귀신을 쫓아내신 활동(31-37)이 다른 도시들에게도 일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권위와 능력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들을 치유하시고 귀신들을 쫓아내셨으며, 우리의 삶에서도 동일한 권능으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아들여 믿음과 순종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으로 영적 무장을 강화하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하며, 이를 다른 이들에게 전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사역을 통해 우리가 받은 은혜와 사랑을 삶 속에서 실천합시다. 이를 통해 우리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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