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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9-10)

 


하나님께의 간절한 기도와 변치 않는 진리

시편 119편 145-160절


 

우리는 자신의 절박한 심정에서 하나님께 호소합니다. 간절히 부르짖는 기도는 단순히 말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내면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진실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도가 우리의 마음과 정성을 담아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어야 함을 배웁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로, 어려운 상황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그 기도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심정을 이해하시고 응답하실 수 있는 기초가 됩니다.

 

  • 곤경에 처하여 하나님께 구원을 간청하는 일은 성도의 특권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과 그분의 능력을 신뢰하므로 하나님께 부단히 간구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구원을 간청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구원하시기를 간청합니다. 덧붙여, 때를 가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말씀대로 살려고 힘씁니다. 이런 태도야말로 진정한 신앙인의 자세입니다.

 

코프(열아홉 번째 알파벳) 연(145-152)

우리는 기도가 단순한 습관이 아니라, 마음을 다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와 정의를 알 수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 기준이 됨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과 신뢰는 이러한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야 합니다.

 

145○여호와여 내가 전심으로 부르짖었사오니 내게 응답하소서 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키리이다

146내가 주께 부르짖었사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지키리이다

147내가 날이 밝기 전에 부르짖으며 주의 말씀을 바랐사오며

148주의 말씀을 조용히 읊조리려고 내가 새벽녘에 눈을 떴나이다

149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내 소리를 들으소서 여호와여 주의 규례들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150악을 따르는 자들이 가까이 왔사오니 그들은 주의 법에서 머니이다

151여호와여 주께서 가까이 계시오니 주의 모든 계명들은 진리니이다

152내가 전부터 주의 증거들을 알고 있었으므로 주께서 영원히 세우신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145-152)

 

시편 기자가 간절히 기도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간청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결심과 열정을 표현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듣고 길을 안내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모든 것을 통찰하는 지혜를 지니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1)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145-148)

 

먼저 하나님께 간구하는 데에 전제된 요소로서, 무엇보다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그의 문제를 해결해주실 의지와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신 분임을 인지했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관심과 긍휼을 보이실 것을 믿었습니다. 이제 시인의 기도하는 태도를 살펴보면, 첫째, 그는 온 마음으로 부르짖습니다. 시인은 거짓도 꾸밈도 없이 진정한 마음으로 기도하고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 열심히 간구합니다. 145-147절에 ‘부르짖었다’는 말이 세 번이나 반복된 데서 구원의 응답을 바라는 간절함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든 기도에 귀 기울이심을 믿고, 시인은 시간을 가리지 않고 새벽에도 밤에도 간구합니다. 셋째, 부르짖으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킵니다. 역경에 처했지만, 그 상황에서 한탄만 하거나 대적에게 보복하거나 간청하는 데만 신경 쓰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에 합당하도록 말씀대로 행하기를 힘씁니다. 기도를 듣고 응답하는 것이 하나님의 몫이라면, 간구하면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기도자의 본분입니다. 넷째,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며, 그 말씀을 깊이 생각합니다. 시인은 간구가 자기 생각이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결될 것을 기대했습니다. 또 밤을 지새우며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그 말씀을 외우며 묵상합니다.

 

(2) 하나님의 응답을 간구(149-152)

 

하나님의 응답은 하나님의 성품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응답됩니다. 시인은 성경 말씀을 통해 이 사실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반복해서 하나님의 성품과 말씀을 함께 언급하며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149,154,156,159,160).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자비, 은혜, 긍휼, 인자, 진실이 많은 분이며,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고 악은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를 면죄하지 않을 것임을 알리셨습니다(출 34:6-7). 시인은 하나님의 성품들 중에서 대표적 성품인 인자하심을 들어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달라고 간구합니다. 이는 기도의 응답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임을 암시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자신을 살려달라고 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를 가까이하신다는 약속(시 145:18)이나 하나님께서 악인은 멀리하시지만, 의인을 가까이하시고 그의 기도를 들으신다는 약속(잠 15:29) 등이 포함되었습니다. 한편, 시인의 기도는 대적이 가까이 옴으로 더 긴급해집니다. 시인을 핍박하는 자들이 시인에게 가까이 왔다는 말은 문자적으로 그들이 가까이 접근했다는 뜻일 수 있고, 아니면(또는 동시에) 그들의 위협이 시인에게 바싹 다가왔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위협이 가깝더라도, 하나님의 율법에서는 멀리 있음을 시인은 파악했습니다. 율법에서 멀다는 말은 율법에서 벗어나 불의를 저지른다는 의미이며(150), 그렇기에 하나님의 보호나 구원에서도 멀다는 점을 암시합니다(155). 이런 상황 속에서, 실제로 오래전부터 시인 가까이에 계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바로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먼 대적들과 반대로, 시인은 말씀에 가까이 있어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라 변함이 없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그 진리의 말씀이 시인 가까이에 있기에, 시인은 안전과 보호를 보장받을 수 있습니다.

 

레쉬(스무 번째 알파벳) 연(153-160)

하나님의 말씀과 법이 영원하고 변하지 않는 진리입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신뢰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를 초월하여 변함없이 진리로 남아 있으며,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길잡이 역할을 합니다. 이 진리 위에 우리의 신앙을 세우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우리의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올바른 길을 걸어갈 수 있습니다.

 

153○나의 고난을 보시고 나를 건지소서 내가 주의 율법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

154주께서 나를 변호하시고 나를 구하사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리소서

155구원이 악인들에게서 멀어짐은 그들이 주의 율례들을 구하지 아니함이니이다

156여호와여 주의 긍휼이 많으오니 주의 규례들에 따라 나를 살리소서

157나를 핍박하는 자들과 나의 대적들이 많으나 나는 주의 증거들에서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158주의 말씀을 지키지 아니하는 거짓된 자들을 내가 보고 슬퍼하였나이다

159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랑함을 보옵소서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리소서

160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주의 의로운 모든 규례들은 영원하리이다(153-160)

 

자신의 고난과 어려움을 하나님께 호소하며 도움을 간구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를 표현하고, 하나님의 법이 진리와 정의의 기준임을 강조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말씀이 영원히 변하지 않으며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이 된다고 믿습니다.

 

(1)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153-156)

 

시인의 간구는 계속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보고' '구원하시기를 간청합니다. 하나님께서 보거나 듣거나 기억하신다는 표현은 그 행동 자체의 의미를 넘어 이제 하나님의 구조 계획이 시작될 것을 의미합니다(출 2:23-25). 그러므로 시인의 간구는 하나님께 구조를 목적으로 행동을 개시해달라고 촉구하는 기도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구원자와 구속자가 되어주시기를 바랍니다. 153절의 구원(나를 건지소서)은 누군가를 어려움에서 건져주는 것을 의미하며(구원자), 154절의 구원(나를 구하사)은 ‘구속하다’라는 뜻으로 대가를 치르고 누군가를 구해준다는 의미입니다(구속자).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의 변호인이 되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시인의 대적들이 거짓으로 비방하고 있으므로(22,39,42) 시인은 자신을 변호하고 대변할 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인의 변호만이 아니라 이 사건을 공정하게 조사하여 정의로운 심판을 내려주실 재판장 역할도 담당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을 구하는 자에게 가까이 다가갑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찾지 않기 때문에, 어려움을 당해도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약속한 구원을 신뢰하지 않으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에서 점점 멀어집니다. 그러나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찾고, 그 말씀을 잊지 않고 있으며, 구원을 신뢰하므로 구원의 때가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45,94,153). 한편, 하나님의 구원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긍휼하심에서 비롯됩니다. 하나님께서 시인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시면, 그분께 시인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없다면, 구조의 손길은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시인은 이 점을 인지하고 있으므로, 매번 하나님의 많은 긍휼에 호소합니다(17,77,88,156). 또한 하나님의 구원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공의에서 비롯됩니다. 시인은 이 점도 인지하고 있으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공의로 공정하게 살리시길 구합니다(40).

 

(2)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157-160)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시인의 사랑은 자기 자신을 넘어 핍박자들에게까지 적용됩니다. 시인을 비방하고 박해하는 자가 많으며, 그들은 시인 가까이에 있습니다. 시인은 이 대적들에게서 벗어나기를 하나님께 간구할 때, 그들의 악행을 고발하며 그들에 대한 심판을 촉하고 있습니다(22,51,84,115,121,122). 그러나 시인은 이런 부분에만 치우지지 않고, 그의 대적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여기며 슬퍼합니다(158). 그들이 율법을 잊어버리고, 저버린 데에 분노하고 좌절합니다(53,139). 그는 대적들이 하는 모든 거짓 행위가 하나님의 법도에 어긋남을 알므로 그 행위들을 미워합니다(128). 시인의 대적들은 참으로 하나님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그의 말씀의 진가를 모르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도 두려움도 갖지 않는 교만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정의를 이해하지 못하므로 거짓을 일삼고 불의를 저지르면서도 자기들의 죄를 깨닫지 못하는 미련한 자들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하기 때문에, 말씀에 비추어 대적들의 믿음 없는 생활과 악행을 더 빨리 찾아내며, 그것들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대적들도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는 자의 행복을 경험하기를 기대합니다(1,2).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닥친 고난만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의 법도들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고 알아주시기 바랍니다(153,159). 그는 그의 영혼이 피폐해질 정도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있습니다(20,82). 이런 그를 하나님께서 인자하심으로 봐달라고 간청하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께서 긍휼과 은혜 베풀어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시인이 사랑하는 이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며(142, 151), 그 말씀의 강령 또한 진리입니다(160). ‘강령’은 원래 ‘머리’, ‘꼭대기’, ‘시작’의 뜻이므로, 이 말은 하나님 말씀의 기본부터 전체가 진리, 즉 변함없는 진실임을 알려줍니다. 진리인 하나님 말씀은 의롭고 영원합니다(142,144,160). 시인은 하나님께서 말씀에 약속한 대로 자신을 구원하심으로써 하나님과 말씀에 담긴 인자하심과 의와 진리가 증명되기를 기대합니다.


오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그의 응답을 기다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웠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 진리의 기준임을 확고히 믿어야 합니다. 우리 삶에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고 그의 말씀을 신뢰하며 기다리는 자세를 가지며,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리는 믿음을 실천하는 우리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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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9-09)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경외와 열정

시편 119편 129-144절


 

하나님의 말씀은 경이롭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깊은 신비와 지혜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이끄는 빛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 때, 우리는 명철을 얻고 미련한 자도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경외와 존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며 그것을 삶에 적용할 때, 우리는 진정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위대하고 놀랍습니다. 그 말씀 안에 의와 성실함과 진리가 들어 있으며, 말씀 자체가 의롭고 변함없으며 참됩니다.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깨달음과 지혜를 줍니다.

 

페(열일곱 번째 알파벳) 연(129-136)

하나님의 명령을 사모하며, 그 갈망이 그의 마음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힘을 얻고자 하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법도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을 통해 힘과 지혜를 얻고자 하는 갈망을 가져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가 그의 말씀을 통해 인도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129○주의 증거들은 놀라우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130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131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132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133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134사람의 박해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135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136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129-136)

 

하나님의 말씀의 경이로움과 그로 인한 깨달음을 강조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사모하며, 그 말씀을 통해 명철과 지혜를 얻기를 갈망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길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하며, 악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1)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129-131)

 

시인은 하나님의 증거들이 놀랍다고 소개합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었고, 여기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이 수없이 기술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면 거기서 빛이 나와 지혜가 없는 자들에게 깨달음과 분별력을 줍니다. ‘빛’은 ‘생명’, ‘구원’, ‘건강’, ‘치료’, ‘거짓이 없음’ 등을 암시하기도 하는데(시 27:1; 눅 11:34; 요 8:12; 요일 1:5-9), 여기서는 깨달음을 주는 ‘지혜’로 설명됨을 알 수 있습니다. 유사하게, 앞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깝고 먼 곳을 비춰주어 인도하는 등과 빛으로도 비유하였습니다(105). 시인은 직접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지식과 깨달음을 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주의 깊게 읽고 묵상하며 그대로 순종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시인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너무 사모한 나머지 입을 벌려 헐떡였습니다. 시인의 이런 모습은 시편 42편에서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한 사람을 시냇물을 찾아 정신없이 헤매는 목마른 사슴으로 비유한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본 시에서도 유사하게, 목마른 사슴과 같이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갈증과 배고픔을 느껴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사슴은 목이 타므로 물을 찾기 전까지는 포기하지 않고 돌아다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시인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익히기 등 하나님 말씀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을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132-134)

 

시인은 이토록 말씀을 사랑하지만, 현재 핍박을 받고 있으므로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기 전에, 시인은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임을 밝힙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각 이름마다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함축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이름에 나타난 다양하고 놀라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얼굴을 향하여 주목하며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종국적으로 나타나서 자신이 말씀의 반석 위에 서기를 고대합니다. 굳건한 말씀의 바탕 위에 견고한 발걸음으로 인생길을 걷고, 그 여정을 갈 때 어떤 죄도 자신에게 영향력을 끼치지 못할 것을 기대합니다. 특히 박해자들이 그를 핍박하고 있으므로, 그들에게서 구해달라고 재차 하나님께 간구합니다(134,121,122).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면 그때에도 시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법도를 지킬 것을 약속드립니다.

 

(3) 하나님의 가르침을 간구(135-136)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자신에게 비춰주시고 말씀을 가르쳐주시길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이나 얼굴의 빛을 누군가에게 비추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과 호의적인 태도를 나타냅니다. 시인이 여기서 자신을 ‘주(당신)의 종’(140)이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호의를 간구하는 모습은 민수기 6장에서 하나님이 제사장에게 가르치신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축복 기도를 상기시킵니다(민 6:24,26). 이 기도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얼굴을 이스라엘에게 비추시고, 또 그들에게 얼굴을 향하심을 통해 은혜와 평강을 내려주심을 표현했습니다. 시인은 같은 표현을 이용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특별히 율례를 가르쳐주시길 간구합니다. 하나님한테서 율례를 배우는 것이야말로 그가 바라는 하나님의 축복이자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데는 기쁨이 동행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지키면서 그 말씀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았습니다(24,77,92,143, 174). 그렇기에 핍박을 받는 중에도 말씀에 대한 열정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은 시람들을 보니 눈에서 눈물이 시냇물처럼 흘러나옵니다.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136)라는 문장은 ‘내 눈이 시냇물을 흘리나이다’ 또는 ‘눈에서 시냇물이 흘러나오니이다’로도 번역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의 안타까운 심정을 비유적으로 묘사합니다.

 

짜데(열여덟 번째 알파벳) 연(137-144)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며, 그의 법이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롭고 그의 법은 모든 면에서 정직하십니다.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법이 변함없는 기준이자 참된 진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도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와 정직함을 신뢰하며, 그의 말씀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137○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138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니이다

139내 대적들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

140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141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142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143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144주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137-144)

 

하나님의 공의와 말씀의 진리성을 강조하며,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고 지키기를 갈망하며, 그 말씀의 변함없는 진리와 영원성을 확신합니다. 이러한 신뢰와 열정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구원을 간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1) 의로우신 하나님과 의로운 하나님의 말씀(137-138)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므로 그의 말씀도 의롭습니다.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137)에서 ‘주(당신)의 판단’은 하나님의 판단력이나 재판의 선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7,13,20,30,39,52,75). 의롭고 옳다는 표현은 하나님 말씀의 정의로움, 공평함, 정직함, 완벽함 등을 강조합니다. ‘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138)라는 문장은 ‘당신이 당신의 증거들을 의로움으로 명령하셨고’로도 번역이 가능합니다. 하나님과 말씀의 의로움에 덧붙여, 시인은 하나님께서 성실하시므로, 그분의 말씀도 성실하다고 선포합니다(138). 앞서 89-91절에서 시인이 창조 때를 묵상하며 하나님 말씀의 영원성과 성실성을 찬양한 데서도 보았듯이, ‘성실함’은 말씀의 변치 않음, 믿음직스러움, 신실함 등을 강조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음(139-141)

 

하나님의 말씀은 누군가에게는 잊힌 말씀이고 누군가에게는 잊히지 않는 말씀입니다. 시인의 대적들은 의롭고 성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의와 성실도 함께 잊었습니다. 여기서 ‘잊었다’는 말은 기억을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하찮게 여기고 무시했으며, 그 말씀을 어겼다는 뜻입니다. 시인은 이들의 태도에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열정’이란 단어는 하나님에 대한 열심(왕하 10:16), 어떤 일을 이룰 때의 열심(왕하 19:31), 남에 대한 질투(전 4:4), 남을 질투하여 괴롭힘(사 11:13) 등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삼켰다’는 말은 ‘침묵하게 하다’, ‘소멸시키다’의 뜻입니다. 이를 종합하면, 시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이 있으므로, 대적들이 말씀을 무시하는 것을 보고 분노하여 ‘할 말을 잃었다’ 또는 ‘힘이 빠졌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인의 원수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여 잊었지만, 시인은 하나님 말씀의 진가를 알므로 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극히 순수합니다(140). ‘순수하다’라는 말은 ‘정련되다’라는 뜻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광석을 용광로에 넣어 불순물을 다 녹인 후 얻은 순금 같이 순도가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순수성과 거룩함, 그 가치를 알기에, 시인은 앞에서도 수천, 수만의 금은보다 하나님의 율법이 나으며(72), 금이나 순금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127; 시 19:10). 그런데 완벽한 말씀에 자기 자신을 비교할 때, 시인은 별 볼 일 없고 사람들에게 멸시와 핍박을 당하고 있어 내세울 것이 없는 처지입니다. 그러나 시인의 마음에는 세상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의롭고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3) 진리와 의인 하나님의 말씀(142-144)

 

137, 138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과 말씀의 의로움과 성실함을 찬양했습니다. 그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공의를 찬양하면서, 그 의의 영원성을 부각합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수반되는 의는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실행되므로 시인은 그 의가 자기에게도 실현될 것을 기대합니다. 또한 시인은 하나님의 율법이 진리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점을 추가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공의와 진실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영되어, 말씀을 사랑하여 잊지 않는 시인에게 의와 정직과 신실함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므로 환난과 우환이 시인에게 닥쳤으나,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기쁨을 찾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의와 성실과 진실함이 녹아 있는 하나님 말씀을 계속 배워 깨닫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경외와 열정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경이롭고 우리의 영혼을 이끄는 빛입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에 의지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더욱 굳건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 진리로서 우리의 삶을 인도합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따라 살아가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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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9-08)


하나님의 공의와 말씀에 대한 신뢰

시편 119편 113-128절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말씀에 신뢰를 두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정의를 실현하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기다리며, 그 말씀에 따라 우리의 삶을 지키고 인도받기를 소망해야 합니다. 세상의 부정과 유혹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법도로 우리를 지켜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며 진정한 평안과 올바른 길을 찾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가 의롭고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지도해줍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여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구원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의로운 말씀에서 벗어나 악을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싸메흐(열다섯 번째 알파벳) “ס”연(113-120)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그 법도가 우리의 삶을 지키고 보호한다고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법도를 사랑하고 의지하며, 그 말씀에 따라 삶을 지키고 인도받기를 소망합니다. 두 마음을 가진 자들을 미워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고 순종해야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로부터 보호받고 올바른 길로 인도받을 수 있습니다.

 

113○내가 두 마음 품는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

114주는 나의 은신처요 방패시라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115너희 행악자들이여 나를 떠날지어다 나는 내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리로다

116주의 말씀대로 나를 붙들어 살게 하시고 내 소망이 부끄럽지 않게 하소서

117나를 붙드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을 얻고 주의 율례들에 항상 주의하리이다

118주의 율례들에서 떠나는 자는 주께서 다 멸시하셨으니 그들의 속임수는 허무함이니이다

119주께서 세상의 모든 악인들을 찌꺼기 같이 버리시니 그러므로 내가 주의 증거들을 사랑하나이다

120내 육체가 주를 두려워함으로 떨며 내가 또 주의 심판을 두려워하나이다(113-120)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와 그 말씀을 통해 받는 보호와 위로를 강조합니다. 시편 기자는 악인들과 거짓된 자들로부터 구원받기를 간구하며,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고 지키는 삶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지혜를 얻고, 신실한 길을 걸으며, 그 말씀으로 인해 받는 보호와 안전을 경험합니다.

 

(1) 악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함(113-115)

 

시인은 두 부류의 사람, 두 마음 품는 자와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는 자를 대조적으로 소개합니다.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이란 ‘마음이나 생각이 나뉜 자들’입니다(수 24:14-15; 왕상 18:21). 본 시에서 두 마음을 품는 자들은 시인을 핍박하는 자들을 암시적으로 가리키며, 그들이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지 못하고 마음이 이중, 삼중으로 나뉘었음을 지적합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는 자’는 ‘한 마음을 품는 자’이며, 시인처럼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과 말씀만을 신뢰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두 마음 품는 자들을 미워한다는 시인의 진술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는 자들은 사랑한다는 의미가 함축되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율법을 사랑하므로 자기처럼 하나님을 경외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을 친구로 삼았습니다(63).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들 또한 말씀만 의지하는 시인을 보고 기뻐하였습니다(74).

시인에게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신뢰의 대상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은신처’와 ‘방패’로 비유합니다(114). 이 용어들은 전쟁터나 군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본 시의 저자가 다윗이라면, 다윗은 사람들에게 쫓기거나 전쟁에 나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누군가에게 쫓길 때면 은신처를 찾아 몸을 안전하게 숨겼을 터이며, 적들과 싸울 때면 칼이나 화살을 방패로 막아 생명을 보존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물리적인 은신처나 방패는 매번 사람을 실수 없이 보호하거나 매번 생명을 건져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은신처와 방패가 되어주시면, 누구에게서나 어떤 위험한 상황에서나 항상 그 사람의 생명을 구하실 수 있습니다. 시인은 이런 하나님을 신뢰할 대상으로 삼고 말씀을 사랑하고 의지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의뢰하지 않는 두 마음을 품는 악인들은 다 그에게서 떠나야 합니다(115). 그들이 어떤 악행으로 시인의 생명을 빼앗으려 해도 방패이신 하나님께서 안전하게 구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온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진정성을 증명할 것을 선언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대로 붙드소서(116-117)

 

시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신을 하나님이 약속대로 붙들어주시길 간청합니다. 하나님께서 생명의 주관자이시므로, 하나님께서 시인을 붙들어줄 때 삶을 이어갈 수 있고, 하나님께서 지탱하여 지지할 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개입 없이는 누구도 생명과 구원을 얻을 수 없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확신합니다. 이 확신을 가지고 구원을 바라는 시인의 소망이 부끄럼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시인의 소망대로 하나님이 붙들어 건지시면, 시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율례들에 주의하며 이에 순종할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자들을 심판함(118-120)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에서 떠난 자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누군가 말씀에서 떠났다는 말은 ‘떠나다’의 뜻이 암시하듯 바르고 의로운 길에서 길을 잃었으며 똑바로 걸을 수 없는 상태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자들을 멸시하고 거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을 거부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고 거부하여, 남을 속이고 악을 행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속임수는 모두 거짓되고 헛됩니다. 그 속임으로 자신이 속임을 당하고, 자기들이 파놓은 구덩이에 스스로 빠지게 될 것을 알지 못합니다(시 9:15-16; 잠 1:18). 하나님께서 이들을 심판하실 때, 은이나 금을 제련하고 남은 불순물같이 그들을 제거하십니다. 광석은 용광로에 덩어리째 들어가지만, 정제 과정을 거친 후에는 가치 있는 금속으로 나오거나 쓸모없는 불순물로 걸러질 뿐입니다. 시인은 이와 같이 공정한 하나님의 심판이 들어 있는 그의 증거들을 사랑합니다. 또한 심판자이신 하나님과 그의 심판을 두려움과 떨림으로 경외합니다.

 

아인(열여섯 번째 알파벳) “ע”연(121-128)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의 공의에 신뢰하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서 정의를 실현하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과 말씀을 기다리며 그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려고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지키고 인도받으며, 세상의 부정과 유혹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참된 길을 걸어가기를 소망합니다.

 

121○내가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사오니 나를 박해하는 자들에게 나를 넘기지 마옵소서

122주의 종을 보증하사 복을 얻게 하시고 교만한 자들이 나를 박해하지 못하게 하소서

123내 눈이 주의 구원과 주의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하니이다

124주의 인자하심대로 주의 종에게 행하사 내게 주의 율례들을 가르치소서

125나는 주의 종이오니 나를 깨닫게 하사 주의 증거들을 알게 하소서

126그들이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께서 일하실 때니이다

127그러므로 내가 주의 계명들을 금 곧 순금보다 더 사랑하나이다

128그러므로 내가 범사에 모든 주의 법도들을 바르게 여기고 모든 거짓 행위를 미워하나이다(121-128)

 

하나님의 공의와 말씀에 대한 신뢰를 강조합니다. 시편 기자는 자신의 의를 지키며, 하나님께 정의와 구속을 간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지혜를 얻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고 그 말씀에 순종하며, 세상의 부정과 악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열망을 표현합니다.

 

(1) 박해자에게서 구하소서(121-123)

 

하나님의 율례에서 떠난 자들은 시인을 박해하는 자들이므로,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들로부터 자기를 구하시기를 청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한 마음을 품지 못했고,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며 속임수를 일삼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갖지 않는 교만한 자들입니다. 대조적으로, 시인은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고, 정의와 공의를 실천해왔습니다. 정의와 공의는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더불어 대표적인 하나님의 속성이며, 심판과 상급의 기본이자 질서의 기초가 되는 속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시인을 박해자들에게 넘겨 박해를 받도록 내버려둔다면 하나님의 공의에 어긋납니다. 시인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 말씀대로 행했으므로, 자신이 선(‘복’으로 번역됨; 122)을 얻도록 보증인이 되어달라고 간청합니다. 박해자들의 핍박 속에 시인의 눈은 하나님의 구원과 의로운 말씀을 사모하기에 피곤합니다. ‘사모하여 피곤하다’(123)는 말은 시인의 눈이 하나님께 향하고 그분의 구원과 말씀을 애타게 기다리느라 몸과 마음이 쇠진했다는 의미입니다(81, 82).

 

(2)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소서(124-125)

 

시인은 자신이 정의와 공의를 행했으므로, 하나님께서도 그 인자하심을 따라 자신에게 행하시기를 소망합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공의가 아닌 인자하심에 호소하여 간청하는 것은 정의와 공평을 넘어 하나님의 은혜와 호의를 더 소망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박해자들로부터 시인을 구함으로써 하나님의 정의를 나타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는 일회적으로 끝나는 일이므로,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를 더하여 계속적으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시인을 가르쳐주시길 요청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시인이 하나님께 속한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반복하여 자신을 ‘주(당신)의 종’이라 부르며 하나님과 자신과의 끊을 수 없는 관계를 상기시키며, 종과 주인의 의무를 상기시킵니다. 그는 평생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자가 되려고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을 배우고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의 뜻이 담긴 증거와 율례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배우기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시인의 주인으로서 그의 스승이 되어주시고 그를 보호하여 박해자로부터 구원하실 것입니다.

 

(3) 하나님이 일하실 때(126-128)

 

하나님께서는 줄곧 시인의 상황에 침묵하셨으나 이제는 행동을 개시하셔야 합니다. ‘지금은 여호와께서 일하실 때니이다’(126)라는 시인의 진술은 하나님께서 말씀에서 떠난 자들을 심판하고, 말씀대로 사는 자는 신원해달라는 요구입니다. 시인을 박해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어겼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처벌하심이 합당합니다. 이에 반해, 시인은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고 지키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에 응답하심이 마땅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시인에게 있어 순금보다 더 가치 있고 더 사랑스럽습니다. 시인은 말씀을 단순히 ‘금’이 아닌 ‘순금’에 비유함으로써, 하나님 말씀의 순도와 가치의 월등함을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값지고 소중하므로 시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법도를 다 바르게 여기고 사랑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올바른 법도에서 비뚤어져 나가는 모든 거짓의 길 또는 행위는 미워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말씀에 대한 신뢰를 배우며, 하나님께 공의로 우리의 삶을 다스려 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세상의 악과 부정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법도로 인도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과 의를 기다리며 믿음으로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는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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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9-06)


절망 속에서도 빛나는 소망

시편 119편 81-96절


 

우리 삶에도 때때로 시편 기자와 같은 절망과 고통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건강 문제, 관계의 갈등, 경제적 어려움, 심리적 고통 등 여러 가지 상황에서 우리는 마치 어두운 터널 속에 갇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 순간마다 우리는 어디에서 위로와 소망을 찾을 수 있을까요? 시편 기자는 이러한 질문에 대한 해답을 하나님의 말씀에서 찾고 있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개인 삶의 기초이며 창조 세계의 기초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에게 있어 어떤 상황에서도 즐거움이 되며, 삶을 지탱하고 회복하는 원천이 됩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창조 때부터 천지에 질서와 견고함과 영원함을 제공했습니다. 이 말씀에는 하나님의 성실하심과 인자하심 등 하나님의 속성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카프(열한 번째 알파벳) 연(81-88)

 

성도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고난의 시간이 찾아올 때, 어디에서 소망을 찾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뿌리내리고 그분의 약속을 붙잡으며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의 위로를 구했습니다. 본문을 통해 그 답을 함께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81○나의 영혼이 주의 구원을 사모하기에 피곤하오나 나는 주의 말씀을 바라나이다

82나의 말이 주께서 언제나 나를 안위하실까 하면서 내 눈이 주의 말씀을 바라기에 피곤하니이다

83내가 연기 속의 가죽 부대 같이 되었으나 주의 율례들을 잊지 아니하나이다

84주의 종의 날이 얼마나 되나이까 나를 핍박하는 자들을 주께서 언제나 심판하시리이까

85주의 법을 따르지 아니하는 교만한 자들이 나를 해하려고 웅덩이를 팠나이다

86주의 모든 계명들은 신실하니이다 그들이 이유 없이 나를 핍박하오니 나를 도우소서

87그들이 나를 세상에서 거의 멸하였으나 나는 주의 법도들을 버리지 아니하였사오니

88주의 인자하심을 따라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입의 교훈들을 내가 지키리이다(81-88)

 

시인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구원을 간절히 기다리며 말씀에 소망을 둡니다. 원수들의 박해로 고통받지만, 하나님의 계명을 잊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과 구원을 기도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사랑에 의지하여 그분의 율법을 끝까지 지키겠다고 다짐합니다.

 

(1) 하나님의 구원과 말씀을 바람(81-83)

 

시인은 곤경에 처해 하나님의 구원을 요청했고 응답이 지연되자 외로움을 느끼고 지칩니다. ‘사모하여/바라기에 피곤하다’(81)로 번역된 단어(칼라)는 무엇인가를 애타게 바란 탓에 기력이 쇠진하여 활력을 잃은 상태를 말합니다. 시인의 영혼과 눈이 하나님을 향하여 고정되어 그의 긍휼과 은혜를 기다리느라 지쳤다는 의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언제 자기를 위로해주실지, 언제 구원해주실지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시인은 자신의 이런 상태를 보고, 자신을 ‘연기 속의 가죽 부대’로 비유합니다. ‘가죽 부대’는 짐승의 가죽을 이용해 만든 자루이며, 이 단어는 구약에서 포도주(수 9:4,13; 삼상 16:20)나 우유를 담는 자루(삿 4:19)를 가리킵니다. 또한 은유적으로 고통당하는 시인의 눈물을 담는 자루(‘병’으로 번역됨)로도 표현되었습니다(시 56:8). 이런 가죽 부대가 연기 속에 있는 경우는 아마도 걸쭉한 요구르트를 만들기 위해 우유를 부대에 담아 은근한 온도의 잿더미 위에 일정 기간 둔 것으로 이해됩니다. 그러므로 그동안 자루는 무용지물처럼 한곳에 놓여 방치되며, 은근한 불에 쭈그러들기도 하고 자루 색이 변하기도 합니다. 시인은 자신이 이 자루처럼 하나님으로부터 장기간 무관심 상태로 버려진 것 같아 외롭고 비통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며 쇠약해진 시인이지만,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바라나이다’로 번역됨; 81)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율례들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말씀을 잊지 않았다는 시인의 고백은 시의 곳곳에서 메아리칩니다(16,61,83,109,141,153,176).

 

(2) 악인에게서 건지시기를 간구(84-88)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원수들을 심판하심으로써 자기를 구원해주시길 간구합니다. 그는 자신과 자기 원수들에 대한 질문을 각각 던지며 하나님의 구원을 재촉합니다. 자신에 대해서는, 세상에 살아 있을 날들이 얼마나 남았는지 묻습니다. 이 질문은 시인이 핍박을 받은 지 오래되었고, 하나님께 구원을 간구한 지도 한참 되었으나, 아직 응답이 없어 죽을 지경임을 암시합니다. 원수들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대체 그들에게 언제 심판을 내리실지 묻습니다. 시인은 원수들을 ‘나를 핍박하는 자들’로 부릅니다. 이들은 마치 군사가 적을 죽이려고 뒤쫓는 것처럼 시인을 해하려고 급하게 그의 뒤를 바싹 따라가는 자들이란 뜻입니다. 시인은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늦는 것에 대해 부당함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그의 원수들이 단순히 자기에게만 악을 끼치는 무리가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하나님께 악을 행하는 무리이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그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는 교만한 자들’(85)이라고 설명함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원수이기도 한 점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따르지 않음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음을 암시하며(잠 8:13), 그들이 율법을 멸시하여 저버렸음을 함축합니다(53). 구덩이를 몰래 파놓고 시인이 빠지기만을 기다리고, 거짓으로 시인을 핍박하면서도(86,69,78) 자기들의 죄를 깨닫지 못한다는 점이 앞의 설명을 증명해줍니다. 이처럼 시인의 원수들이 결국 하나님의 원수들이므로, 시인은 하나님과 말씀의 속성을 토대로 구원을 간청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계명의 신실하심을 언급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이 신실하다면, 무고한 자를 핍박하는 자는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고, 무고하게 핍박받는 자는 신원되어야 합니다(시 37:28; 54:5; 잠 22:23; 27:17-18). 시인은 원수들이 그를 이 땅에서 아주 쇠잔하게 만들었으나, 하나님의 법도를 버리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신실하신 말씀에 따라 시인의 도움이 되어주셔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언급합니다. 까닭 없이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하나님만을 신뢰하는 시인에게 인자와 긍휼을 보이셔서 소생시켜달라는 간구입니다(시 36:10). 하나님께서 시인을 회복하시면,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교훈들을 지킬 것이라고 다짐합니다.

 

라메드(열두 번째 알파벳) 연(89-96)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변화를 겪고, 때로는 혼란과 어려움에 직면합니다. 그러나 시편 기자가 고백한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를 지켜주고 인도해 주시는 변치 않는 진리입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내리고 그 말씀 속에서 우리의 삶을 세워가야 하는 이유를 함께 발견하고자 합니다.

 

89○여호와여 주의 말씀은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

90주의 성실하심은 대대에 이르나이다 주께서 땅을 세우셨으므로 땅이 항상 있사오니

91천지가 주의 규례들대로 오늘까지 있음은 만물이 주의 종이 된 까닭이니이다

92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93내가 주의 법도들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 때문에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94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들만을 찾았나이다

95악인들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들만을 생각하겠나이다

96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89-96)

 

시인이 하나님의 율법을 묵상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살아가려는 결심을 표현합니다. 악인들이 시인을 핍박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위로와 지혜를 얻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영원하고 완전하며, 시인은 그것을 사랑하고 그것에 의지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는 것이 생명의 길임을 고백합니다.

 

(1) 대대에 이른 하나님의 말씀(89-91)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과 그 말씀에 수반된 하나님의 성품은 영원하며 견고합니다. 시인은 기력이 쇠진한 상태에서도 하나님과 말씀에 대해 깊게 사고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품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에서 처음으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창조 때 드러났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실 때, 말씀의 위력이 나타났으며, 말씀의 효력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땅이 견고히 세워져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습니다. 원문에서 89-90절의 각 절맨 처음에 나오는 ‘영원히’와 ‘대대에’ 그리고 91절의 ‘오늘까지’라는 시간 부사구는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성품의 영원성을 부각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에는 그의 성품이 동반되었습니다. 시인은 90절에서 하나님의 성품 중 ‘성실하심’을 언급하여 영원성과 가깝게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성실하심’은 ‘꾸준함’, ‘믿음직함’, ‘안전함’ 등을 의미합니다. 즉, 하늘과 땅을 비롯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겨난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의 규례에 따라 창조 때부터 오늘까지 질서를 유지하며, 각각의 역할을 견고히 수행하고 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그의 ‘종’으로 삼아 돌보고 계십니다(91). 만물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며 말씀에 순복하고 있습니다.

 

(2) 고난 중에도 즐거움이 된 하나님의 말씀(92-93)

 

천지만물에 나타난 하나님 말씀의 위력과 하나님의 성실하심은 인간의 삶에도 나타납니다. 시인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움으로 삼았습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시인은 고난 중에 멸하여 제기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도는 그에게 생명과 활기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연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여 지금까지 견고한 것처럼, 시인도 하나님의 말씀을 영원히 잊지 않고 말씀과 동행할 것을 선언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의 간구(94-96)

 

시인은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고백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간청합니다. 이로써 첫째, 시인은 하나님께서 소유주로서 시인과 긴밀한 관계에 있음을 암시합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주인으로서 그를 돌볼 책임이 있음을 상기시킵니다. 셋째, 그가 하나님만을 신뢰하며 구원의 능력을 믿고 있음을 함축합니다. 넷째, 종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것임을 내포합니다. 시인은 오직 하나님의 법도들을 구했다고 밝히며 구원을 재촉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붙어 있는 자에게 생명을 약속하신 것(신 4:4)과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 생명과 축복을 약속하신 것(신 30:19-20)을 굳게 믿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현재 시인의 원수들은 그를 죽이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들(84-87)은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교만하고 악한 자들입니다. 반면에 시인은 하나님의 법도를 구하며 그것을 즐거움으로 삼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입니다. 원수들은 이유 없이 시인을 추격하고, 해하려고 구체적인 책략을 짜 구덩이를 팠고, 시인이 거기 빠지기만을 기다립니다. 시인은 죽음의 위기 상황에서 다른 것을 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증거들을 생각하겠다고 선언합니다. 시인은 고난 중에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면서 그 말씀의 완전함과 견고함과 영원함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세상에 무엇인가 완벽한 것이 있다면 그 모든 완벽한 것에는 끝, 즉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하나님의 계명들은 그 넓이나 깊이나 높이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깊이 뿌리내리고, 고난 속에서도 그분의 사랑과 구원을 간절히 구하는 자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시편 기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귀한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함께 말씀을 나누며, 하나님의 진리와 사랑을 더욱 깊이 체험하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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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9-05)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내리며 변화하는 삶

시편 119편 65-80절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떠나 삶의 방향을 잃고 막연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막연한 삶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입니다. 매일 성경을 읽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즐겨야 합니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을 발견하며,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가기를 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귀중한지를 깊이 깨닫고, 그것이 우리 인생의 기초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 고난 속에서도 유익(선)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시련을 주시지만, 결국은 선을 위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성도를 훈련하며,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더 신뢰하기를 원하십니다. 시인은 이 점을 깊게 깨달았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말씀대로 살 것을 다짐합니다.

 

테트(아홉 번째 알파벳) 연(65-72)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깊은 변화와 인도를 가져온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이 그에게 얼마나 귀중하고 값진지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입의 법은 금보다도 귀하다고 말하며, 이는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의 길을 밝히고, 우리를 지혜롭게 이끌어주는 원천임을 시사합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심도 있게 철창하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삶을 올바르게 세우는 데 헌신해야 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65○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66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67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68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69교만한 자들이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70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71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72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65-72)

 

저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통해 주의 계명을 믿고 지혜와 판단을 구하며, 항상 주의 말씀을 성실히 지키려고 합니다. 고난을 겪기 전에는 잘못된 길을 걸어왔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선한 지도를 바라며, 교만한 사람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주의 법을 성심껏 준수하겠다고 다짐합니다.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법을 배우며, 주의 말씀이 금보다 귀한 보배임을 깊이 인식합니다.

 

(1) 말씀대로 응답하신 하나님(65-66)

 

하나님의 약속대로 하나님은 시인을 선대 하셨습니다. ‘선대하셨다’(65)는 말은 ‘선을 행하셨다’는 뜻입니다. 시인은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며, 하나님께서 그를 섬기는 자를 긍휼히 여겨 은혜를 베푸시듯(시 123:2), 자기에게 선을 행하심에 감사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신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진 것이므로 이 점에도 감사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킬 때 약속된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 있음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께 최고의 분별력(‘좋은 명철’로 번역됨: 66)과 지식을 가르쳐주시길 간구합니다.

 

(2) 고난 전과 후의 변화(67-68)

 

시인은 고난의 전과 후에 변화가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고난이 닥치기 전에 시인은 잘못된 길로 갔음을 실토합니다. 고난이 오자 시인은 자기가 갔던 길을 하나님의 증거를 토대로 돌아보았습니다. 그릇된 길임을 깨달았을 때, 그는 다시 하나님의 증거들을 향하여 발길을 돌이켰습니다(59). 다시 돌아온 시인은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있습니다(67). 돌아온 후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데 지체하지 않았고 오히려 서둘렀습니다(60).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온 시인은 하나님께서 선하시며 선을 행하는 분임을 다시금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선한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이 선이며, 어떻게 해야 선을 행할 수 있는지 가르침을 받기 원합니다.

 

(3) 고난의 유익과 하나님 말씀의 가치(69-72)

 

그릇된 길에서 돌아온 시인에게 악인의 핍박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교만하며 시인을 거슬러 거짓을 꾸며대고 비방했습니다(22,23,39,42). 이들의 비방은 시인이 그릇 행한 일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는 것 같습니다. 시인이 이들의 악행을 고발하면서 ‘거짓’, ‘까닭 없이’라는 단어(69,78,86,161)와 ‘함정’과 관련된 용어들(61,85,110)을 계속해서 반복하고 있는 점이 이를 뒷받침해줍니다. 시인은 이 교만한 자들의 마음이 ‘살진 기름덩이’(70)같다고 언급합니다. 이는 비대하여 둔하고 무감각해진 마음을 뜻하며, 교만과 강포를 행하면서도 호의호식하는 생활, 탐욕스러움 등을 빗댄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시 17:10;73:10). 이처럼 시인을 핍박하는 자들의 마음은 기름덩이처럼 살져 하나님의 말씀에 둔감했고, 그 결과 악을 저질러도 양심의 가책도 후회도 없었습니다. 시인의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찌웠으므로, 그는 말씀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온 마음을 다해 지키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의 기쁨이 되었습니다. 악인들로부터 고난을 받는 중에 시인은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69)며 깨달음을 진술합니다. 핍박과 비방 자체는 고통이지만, 그 속에서 시인이 오히려 하나님의 율례를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고난이 주는 고통에 집중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기쁨에 집중했음을 나타냅니다. 한편, ‘유익’이 히브리어로 원래 ‘선’의 뜻인 점을 고려하면, 시인의 고난이 하나님의 징계와 시련일 수 있으나 궁극적으로 선을 목적으로 삼은 것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인에게는 하나님께서 친히 선포하고 가르쳐주신 율법들이 수천, 수만 개의 금이나 은보다 더 좋습니다(시 19:10).

 

요드(열 번째 알파벳) 연(73-80)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미치는 중요성에 대해 배워보려 합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의 법과 율례가 어떻게 우리를 인도하며, 우리의 길을 밝히는지를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귀중하고 중요한지를 깊이 생각해 보게 합니다. 저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것을 통해 우리의 삶을 지혜롭게 이끌어 나가는 데에 노력해야 합니다.

 

73○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74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를 보고 기뻐하는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까닭이니이다

75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

76구하오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위안이 되게 하시며

77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내가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78교만한 자들이 거짓으로 나를 엎드러뜨렸으니 그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소서 나는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79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내게 돌아오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그들이 주의 증거들을 알리이다

80내 마음으로 주의 율례들에 완전하게 하사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73-80)

 

저자는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되어 주의 계명을 배우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주를 경외하는 사람들은 저의 기쁨의 원천이 되며, 하나님의 말씀에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의로우시고 성실하심을 인정하며, 주의 인자하심이 위로가 되기를 구합니다. 교만한 자들에게 수치를 당하게 하시고, 하나님의 법이 저의 즐거움과 순종의 기쁨이 되기를 간구합니다.

 

(1) 창조주 하나님의 가르침을 간구(73-74)

 

고난의 유익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이므로, 이번에 시인은 하나님께서 그의 창조주이심에 호소하여 계명을 가르쳐달라고 구합니다. ‘주(당신)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나이다’라는 시인의 진술에서 하나님의 ‘손’은 보통 능력과 도움을 비유적으로 표현할 때 사용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분의 형상을 따라 흙에서 생명으로 창조하시는 손을 연상시킴으로써, 그분의 놀라운 지혜와 창조의 능력을 나타냅니다. 사람을 ‘세우셨다’는 말은 ‘견고하게 하셨다’는 뜻으로, 바로 뒤에 계명을 가르쳐달라는 시인의 간구와 연결해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창조된 인간을 육체적으로 견고하게 하셨다는 뜻만이 아니라, 인간에게 필요한 사고력과 판단력을 주어 지적으로 견고하게 하셨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인은 고난 전에 분별력을 잃고 죄를 지었던 때가 있었으므로, 다시 하나님의 계명들을 제대로 깨닫고 배우기를 원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토록 의지하며 바라고 있습니다. 시인의 이런 변화는 본인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그의 친구들에게도 기쁨이 되었습니다(74).

 

(2) 하나님의 행사와 속성과 말씀(75-77)

 

고난의 과정을 통해 시인은 하나님의 정의와 은혜의 속성을 경험하고 있습니다. 75-77절에 언급된 의로우심, 성실하심, 인자하심, 긍휼히 여기심은 하나님의 대표적인 속성입니다. 의와 성실은 하나님의 공정한 판결과 질서가 부각된 속성이며, 인자와 긍휼은 질서와 규칙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사랑이 부각된 속성입니다. 시인은 엇나간 자기를 하나님께서 고난으로 괴롭게 하신 데에서 하나님의 의와 성실하심을 깨달았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마땅한 심판을 받아들이며, 이제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인자와 긍휼로 자기를 위로해주시기를 바랍니다. 그 위로는 하나님의 긍휼로 시인을 소생케 하시는 것, 즉 시인을 핍박에서 구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를 지속적으로 인도해주시는 것입니다. 시인은 이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습니다. 시인은 그의 기쁨인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며 사는 삶으로의 회복을 열망합니다.

 

(3) 여러 사람에 대한 간구(78-80)

 

시인은 자신과 관련된 무리들과 자기 자신에 대해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시인 주변에 있는 자들은 교만한 자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로 나뉩니다.

시인은 먼저, 교만한 자들이 수치를 당하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들은 시인을 거짓말로 비방하여 죄인으로 만든 자들입니다(51,69).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므로, 율법을 무시하고 거짓말과 속임수를 대수롭지 않게 여깁니다(21,53). 그러나 그들의 거짓은 밝혀질 것이고, 그때 그들은 수치를 당할 것입니다. 반면, 시인은 자신의 무고함이 드러날 터이므로, 하나님의 법도들을 묵상할 것입니다.

두 번째, 시인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자신에게 돌아오도록 간구합니다. 63절에서 시인이 언급했듯,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법도를 지키는 이들(74,79)은 시인의 친구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시인의 간구로 보아 친구의 일부가 시인에게서 돌아선 것으로 보입니다. 이처럼 악인의 거짓말과 훼방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의 분별력을 흐리게 하거나 잃게도 만듭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이처럼 자기를 떠난 자들이 다시 분별력을 되찾아 진실을 깨닫고 자기에게 돌아오기를 고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이므로, 돌아온 후에는 다시 시인을 기뻐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74,79).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들과 경외하는 자들에 대한 간구 후, 시인은 마지막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기도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에 완전하기를 간구합니다. 마음의 완전함을 구하는 것은 시인이 하나님 앞에 완전하고 흠 없기를 바람이며, 완전하도록 말씀을 지키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합니다. 시인에 대해 거짓말하고 시인을 괴롭히는 자들은 수치를 당하겠지만, 시인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의 율례에 완전히 거하므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삶에 어떻게 깊이 뿌리내리고 변화를 가져오는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함으로써 우리의 길을 인도받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인도와 지도를 간절히 필요로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옮기는 데 있어 도전과 격려가 함께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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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9-04)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소망과 인내

시편 119편 49-64절


 

우리가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그의 법을 따르며 살아갈 때 받을 수 있는 위로와 희망을 강조합니다.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지키며 인내하는 방법과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하는 삶의 중요성을 함께 나누겠습니다. 우리의 신앙 여정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어떻게 경험할 수 있는지 깊이 생각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시인이 어디에 있든지 어떤 상황에 처했든지 그의 소망과 위로와 노래가 됩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말씀을 기억하며 준행하기에 힘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인의 인생길의 길잡이가 되어, 그를 의의 길로 이끌어줍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가르침을 간청합니다.

 

자인(일곱 번째 알파벳) “ז”연(49-56)

우리는 삶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우리의 길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에 신속히 순종하며, 어려움 속에서도 그 말씀을 기억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감사하며, 믿음의 공동체와 교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지키고 인도해 주십니다.

 

49○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내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나이다

50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51교만한 자들이 나를 심히 조롱하였어도 나는 주의 법을 떠나지 아니하였나이다

52여호와여 주의 옛 규례들을 내가 기억하고 스스로 위로하였나이다

53주의 율법을 버린 악인들로 말미암아 내가 맹렬한 분노에 사로잡혔나이다

54내가 나그네 된 집에서 주의 율례들이 나의 노래가 되었나이다

55여호와여 내가 밤에 주의 이름을 기억하고 주의 법을 지켰나이다

56내 소유는 이것이니 곧 주의 법도들을 지킨 것이니이다(49-56)

 

본문은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인내하는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약속에 소망을 두고, 그의 법을 지키며 삶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그는 즐거워하지 않는 자의 모독과 책망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교훈을 기억하고 믿음을 지키며 행동하려는 결의를 다짐합니다.

 

(1) 나의 소망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49-51)

 

하나님께서 시인에게 하신 약속의 말씀은 시인에게 소망이 되었습니다. 시인은 자신을 ‘하나님의 종’으로 다시 부르며(49, 17,23,38), 자신이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을 충성스럽게 섬기는 자임을 하나님께 상기시킵니다. 그러면서 하나님께서 시인에게 하신 말씀으로 인해 소망이 생겼으니 이 약속을 기억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시의 정황상 이 약속의 내용에 시인이 현재 처한 곤경에서의 구원과 완전한 회복, 시인의 말씀에 대한 온전한 순종이 포함되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습니다. 38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세워달라는 표현이 사용되었고, 49절에서는 기억해달라는 표현이 사용되었지만, 둘 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이행해달라는 시인의 간접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시인의 소망이 되었으므로, 시인은 현재 고난 중에 있지만 위로를 받았고, 죽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통해 다시 영적, 육체적 생기를 되찾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린 교만한 사람들의 심한 조롱(22, 23, 42, 51)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지만 결코 하나님의 율법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2) 나의 위로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52-53)

 

시인은 과거에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들을 떠올리며 한편으로 위안을 받습니다. 과거에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있었고 그것을 이루셨듯이, 이제 시인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실 것이므로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동안 보이셨던 그의 의와 사랑과 신실함이 시인에게도 나타날 것이므로 위로가 됩니다. 이런 위안을 받음과 동시에 시인은 자기가 하나님의 옛 규례를 기억하듯, 하나님께서 시인에게 말한 약속을 기억하여 이뤄주시기를 소망합니다. 옛 규례들을 기억할 때, 시인은 또 한편으로는 분노합니다. 이 분노는 하나님의 율법을 버린 자들을 향해 쏟는 맹렬한 분노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고 그 말씀을 위반합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추구하시는 선과 의를 떠난 자들이므로 악하고 미련하며 교만한 자들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자들이므로,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축복 대신 저주가 기다립니다(21; 레 26:14; 신 28:15).

 

(3) 나의 노래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54-56)

 

하나님의 말씀은 시인에게 노래가 되었습니다. 시인은 현재 집을 떠나 다른 지역이나 다른 나라에서 나그네로 머물고 있습니다(54,19). 그가 어디에 거하든지, 시인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며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 기억하고, 하나님 말씀으로 찬양과 감사의 노래를 삼습니다. 밤에도 시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합니다. 나그네 생활의 불안정하고 고단하고 긴장된 하루를 보내고 맞는 밤 시간에도 시인은 하나님의 이름을 떠올립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나 하나님의 성품을 노래하는 일과 매한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하고 기억하는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일로 연결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은 다른 이의 소유가 아니라, 시인에게 속한 것이며, 시인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헤트(여덟 번째 알파벳) “ח”연(57-64)

우리는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어려움 속에서 빛이 되며, 우리를 인도해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에 감사하는 삶은 우리에게 큰 영적 축복을 가져다줍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57○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58내가 전심으로 주께 간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59내가 내 행위를 생각하고 주의 증거들을 향하여 내 발길을 돌이켰사오며

60주의 계명들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체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1악인들의 줄이 내게 두루 얽혔을지라도 나는 주의 법을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62내가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밤중에 일어나 주께 감사하리이다

63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들과 주의 법도들을 지키는 자들의 친구라

64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땅에 충만하였사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57-64)

 

하나님의 법과 명령에 대한 헌신과 순종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와 약속에 대해 감사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겠다는 결심을 밝힙니다. 그는 하나님의 교훈이 자기의 기뻐하지 않는 바 되게 하고, 이를 바탕으로 삶을 세우기를 간구합니다.

 

(1) 여호와는 나의 분깃(57-58)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시인의 분깃이 되십니다. ‘분깃’ 또는 ‘기업’은 대개 하나님으로부터 분배받은 땅을 칭할 때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이 개념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약속하심으로써 시작되었으므로(창 13:14-15), 우선적으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와 하나님의 축복을 암시합니다. 둘째, 분깃은 당대의 생활 터전으로서의 땅일 뿐만 아니라 후대에게 물려주는 유산이므로, 여기에는 연속성이 함축되었습니다. 한편, ‘분깃’과 ‘기업’은 영적이고 비유적인 의미로도 사용됩니다. 본문에서처럼 하나님깨서는 시인이나 개인의 분깃으로 소개되었으며(57; 애 3:24), 이스라엘의 분깃으로 여겨졌습니다(민 18:20; 신 10:9). 거꾸로, 각 성도나 이스라엘 전체도 하나님의 분깃이자 기업으로 불렸습니다(사 19:25; 렘 12:7-9). 시인은 이처럼 하나님과 자신과의 언약 관계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심으로 간구하고 지킬 것을 다짐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데 있어서도 주의 도움이 필요하므로,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합니다. 58절의 ‘전심으로’와 ‘주께 간구하였사오니’(직역하면 ‘당신의 얼굴을 기쁘게 하였사오니’)라는 말에서 하나님께 진정과 호의로 간구하는 시인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헌신적인 순종(59-61)

 

시인은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데 전력을 기울입니다. 시인은 우선 자기의 행위를 되돌아봅니다. ‘행위’가 ‘길들’의 번역임을 적용해서 풀이하자면, 행위를 돌아본다는 말은 시인이 갔던 길들이 혹시라도 말씀에 어긋나 있는지 살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인에게 올바른 길잡이가 되어주었습니다. 길잡이의 도움으로 옳은 길로 되돌아왔을 때, 시인은 말씀을 지키는 일에 신속하였고 망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가는 길에도 위험은 많았습니다. 시인은 악인들의 줄(61)을 언급하는데, 여기서 ‘줄’은 ‘끈’, ‘밧줄’로서, 비유적으로는 ‘함정’, ‘올무’, ‘덫’, ‘차꼬’ 등을 의미합니다(삼하 22:6; 시 18:4-5). 시인은 악인들이 계획해 심어놓은 불의의 올무에 둘러싸였으나 이때에도 하나님의 율법을 잊지 않습니다. 율법을 ‘잊지 않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했다는 뜻을 넘어 그 말씀을 실행하겠다는 시인의 의지를 내포합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감사(62-64)

 

시인은 밤에 하나님의 이름을 기억하며 말씀을 지키고(55), 한밤중에도 일어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의 이유는 그의 삶의 지침과 안내자가 되는 하나님의 말씀 때문이며, 특히 이 말씀이 의롭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분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하므로, 말씀에 하나님의 의가 똑같이 나타납니다. 이 말씀은 시인으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정의하는 의와 불의가 무엇인지 제대로 분별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그렇기에 위에서 언급했듯이(59,61) 시인은 자신의 행위를 살펴 악에서 돌이킬 수 있었고, 불의한 자들의 덫에 걸렸을 때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 수 있었습니다.

의로운 말씀을 사랑하는 시인은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법도를 지키는 자들의 친구이자 동역자입니다. 바꿔서 말하면, 시인이 가까이하는 무리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하는 의로운 자들이란 뜻입니다. 말씀을 떠난 자들은 맹렬한 분노의 대상이지만(53), 말씀을 지키는 시인과 친구들은 축복의 대상입니다(1-3). 시인을 비롯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성도의 순종은 하나님을 경외함에서 시작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해야 마땅한 지혜와 분별력이 생기며, 지혜와 분별력으로 악에서 떠나고 의를 행할 수 있습니다(잠 8:13). 하나님의 말씀에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에게서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듯,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땅에서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충만하게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그분의 말씀 속에서도 나타나므로,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더 배우기 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가르침을 요청하는 시인의 간구는 끊임없이 계속된다(12,26,64).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헌신하며 그 말씀을 통해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분깃이시므로 그분의 말씀을 지키고 은혜를 구합시다. 우리의 길을 돌아보며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율례를 찬양하고 경외하는 자들과 교제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실천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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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9-03)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

시편 119편 33-48절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가르침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그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여 끝까지 지키겠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헛된 욕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길에서 참된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깨달음을 통해 전심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닫고 지키는 데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수적입니다. 시인은 이 점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지도해주시기를 부단히 간청합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자유와 즐거움을 주며, 그를 구원과 회복으로 이끄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헤(다섯 번째 알파벳) “ה”연(33-40)

우리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전심으로 순종하며, 그 계명을 따르는 기쁨을 누립시다.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말씀을 통해 소망과 생명을 찾는 삶을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참된 길로 인도하는 빛이 됩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날마다 실천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3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34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35나로 하여금 주의 계명들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36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37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38주를 경외하게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39내가 두려워하는 비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들은 선하심이니이다

40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33-40)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배우고 지키기를 간구하며, 그 말씀을 통해 이해와 지혜를 얻고자 하는 시편 기자의 기도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고, 거짓된 길에서 벗어나며, 하나님의 명령을 즐거움으로 따르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규례들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하고, 그분의 의로운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 하나님의 가르침을 간구(33-37)

 

시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가르침을 주는 교사입니다. 시인은 배우고 깨닫고 실천하는 모든 단계에 있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잠언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또는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듯(잠 1:9; 4:4), 시인은 먼저 하나님께 그분의 말씀을 자기에게 개인적으로 가르치시길 요청합니다(33). 하나님의 가르침을 통해 얻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깨달음’이 포함된 교육입니다. 이에 따라 시인은 두 번째 단계로서 말씀의 깨달음을 주시길 요청합니다(34). 하나님의 명령이나 규례의 내용을 배워 기억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명령이나 규례가 이끄는 ‘길’(33,35)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와 판단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하나님께서 시인으로 그 길로 걷도록, 즉 배운 대로 실천하도록 이끄시는 단계입니다(35). 시인이 말씀을 따라 사는 과정은 호락호락하거나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마음과 눈의 방향을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성도의 마음이 향할 곳은 탐욕이 아니라 하나님의 증거들입니다(36). 36절에서 ‘향하다’란 동사는 손을 뻗거나 몸을 굽히는 등 적극적인 동작을 나타내어,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쏠려야함을 표현합니다. ‘탐욕’은 ‘불의의 이득’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어떤 특정한 불로소득을 가리키기보다는 포괄적으로 ‘불의’를 가리키는 용어로 이해하면 적절합니다. 37절의 ‘허탄한 것’으로 번역된 단어(샤브)는 ‘헛됨’, ‘거짓’, ‘속임’의 뜻이며(시 127:1,2), 이런 의미로 인해 ‘우상’을 가리키기도 합니다(시 31:6;렘 18:15). 우상이든 거짓이든 헛된 것이든 모두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거슬리는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시인이 하나님께 자기 눈이 허탄한 것을 보는 행위에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요청한 데서 알 수 있듯, 실제 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에만 집중하고 불의나헛된 것을 목격하거나 경험할 때 그것에 무관심하거나 무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자기의 마음과 눈까지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도록 맡깁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목적은 그 말씀을 지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시인의 이러한 열심과 헌신은 ‘끝까지 지키리이다’(33)와 ‘전심으로 지키리이다’(34)라는 다짐에서 잘 나타납니다. ‘끝까지’로 번역된 단어는 ‘결과’, ‘상’의 뜻이므로, 이 뜻을 적용해보면 상을 받을 때까지, 끝장을 볼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단호한 결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심으로’라는 말에는 말씀에 대한 진지함과 완전한 집중을 암시합니다. 여기에 ‘즐거움’(35)이 덧붙어져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자발적인 반응임을 보여줍니다. 시인의 말씀 자체에 대한 즐거움과 말씀을 순종하는 기쁨은 이미 여러 번 표현되어(14,16,24), 시인이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즐거워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회복을 간구(38-40)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를 소생시키고 회복하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시인은 계속해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37,40)라고 간구하는데, 그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길과 공의 안에서 소생되기를 바랍니다. 이 말은 시인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사는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전에 말씀을 통해 그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를 회복시키시기를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란 말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그분을 경외하는 자를 위해 말씀을 주셨으므로, 그 약속의 말씀을 자신에게 이루어달라는 뜻입니다. 현재 비방과 멸시 속에 두려움도 느끼므로(39,22,23), 시인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자신을 비방에서 자유롭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들의 비방은 거짓에서 나왔으므로(69,78), 시인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선하고, 시인은 그 말씀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로운 해결책은 시인을 이 모든 고통에서 건져 소생시키는 것입니다.

 

바브(여섯 번째 알파벳) “ו”연(41-48)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은 우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자유를 줍니다. 또한, 우리는 그 자유로 인해 어떤 권위자들 앞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두려움 대신 용기를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은 우리에게 지속적인 영적 성장과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41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

42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지함이니이다

43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44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지키리이다 영원히 지키리이다

45내가 주의 법도들을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걸어갈 것이오며

46또 왕들 앞에서 주의 교훈들을 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겠사오며

47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48또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41-48)

 

하나님의 구원과 인자하심을 간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고백합니다. 시편 기자는 그 말씀을 통해 용기와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즐거움으로 지키겠다고 다짐합니다.

 

(1) 하나님의 인자와 구원을 간구(41-42)

 

시인은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인자와 구원을 보내달라고 간청합니다. 시인은 자신을 비방하는 자들에게 자기의 지식이나 힘으로 맞서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만을 의지합니다. 시인을 비방하는 자들은 그에게 거짓을 말하지만, 시인은 정직과 의의 대답을 줌으로써 그들에 맞설 수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이와 같은 주의 인자한 성품과 그분의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이 떠나지 않기를 간구(43)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라는 시인의 간구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라는 번역은 순화된 표현입니다. 이 동사(나짤)의 문자적 의미를 살리면, ‘잡아채지 마소서’, ‘끌어내지 마소서’라는 간구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므로 일부라도 잃고 싶지 않으며, 그 말씀을 계속 입으로 전할 것이라는 시인의 의지가 담겼습니다. 의와 진리의 말씀은 그의 의지하는 대상이므로, 시인은 이를 결코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영원한 순종(44-46)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다는 시인의 고백은 말씀을 항상, 영원히 순종하겠다는 헌신과 의지를 드러냅니다. 시인이 이처럼 하나님의 법도들을 찾아 실천하므로, 그는 거리낌 없이 자유로이 행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왕들 앞에서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증거들을 담대히 말할 것이며, 이로 인해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사랑(47-48)

 

시인의 말씀에 대한 사랑에는 진정성과 자발성이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 하나님의 말씀은 계명이든 율례든 어떤 형태로든 그가 사랑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에게 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 또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을 억지로나 외압에 의해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합니다. 상이나 호의를 기대하기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므로 저절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기쁨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향한 시인의 사랑은 스스로 기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이어집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향하여 손을 들 것이고, 그의 율례들을 읊조릴 것입니다(48). ‘손을 드는 행동’은 보통은 하나님께서나 성전을 향하여 손을 든 채 기도하는 경우(왕상 8:22; 시 141:2; 딤전 2:8), 사람들을 축복하거나(레 9:22; 눅24:50) 하나님을 송축하는 경우(시 134:2), 하나님께 회개와 헌신을 표하는 경우(애 3:41-42), 하나님께 화답하는 경우(스 8:6) 등에서 일어납니다. 이런 예들을 고려할 때, 시인이 말씀을 향해 손을 든다는 표현은 말씀에 대한 그의 헌신과 구체적인 화답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한편, ‘말씀을 읊조리는 행위’는 때로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도록 말씀을 외우거나 말하는 행동을 가리키기도 하고, 때로는 심사숙고하면서 조용히 묵상하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자유와 그 말씀을 사랑하고 증거하는 삶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구원을 간구하며, 그 말씀을 영원히 지키고, 그 말씀을 통해 참된 자유를 누립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그 말씀을 묵상하고 증거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날마다 실천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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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9-02)


말씀의 빛을 따라 걷는 삶

시편 119편 17-32절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 주시며, 우리가 보지 못했던 놀라운 진리들을 깨닫게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새로운 깨달음과 통찰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묵상할 때, 그 말씀은 우리에게 참된 기쁨과 위로를 줍니다. 그리고 우리의 약한 마음을 강하게 하고, 우리를 든든히 세워줍니다.

 

  • 사람들의 비방과 멸시 속에 고통 받고 있는 시인은 그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저버리지 않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구원을 바랍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제대로 가르침을 받아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선택합니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기쁨이요 조언자입니다.

 

기멜(세 번째 알파벳“ג”) 연(17-24)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은 길을 인도하는 나침반과도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없이는 우리는 방황하고 길을 잃기 쉽습니다. 이러한 갈망을 품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거역하는 자들이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계명을 간절히 갈망하며, 그 말씀을 통해 바른 길을 찾고자 합니다.

 

17○주의 종을 후대하여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의 말씀을 지키리이다

18내 눈을 열어서 주의 율법에서 놀라운 것을 보게 하소서

19나는 땅에서 나그네가 되었사오니 주의 계명들을 내게 숨기지 마소서

20주의 규례들을 항상 사모함으로 내 마음이 상하나이다

21교만하여 저주를 받으며 주의 계명들에서 떠나는 자들을 주께서 꾸짖으셨나이다

22내가 주의 교훈들을 지켰사오니 비방과 멸시를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23고관들도 앉아서 나를 비방하였사오나 주의 종은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렸나이다

24주의 증거들은 나의 즐거움이요 나의 충고자니이다(17-24)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갈망하고 사랑하는 시편 기자의 마음을 표현하며, 그 말씀을 통해 얻는 기쁨과 지혜를 강조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지침이자, 어려움 속에서 힘과 위로를 주는 원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지키며, 그 말씀을 통해 영적인 만족과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1) 하나님의 호의로 말씀을 깨닫기를 간구(17-20)

 

시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관대하게 대하시기 바라며, 그래야 자기가 소생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이때 시인은 본인을 ‘주(당신)의 종’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주인이고 자기는 그분의 소유이자 종임을 상기시킵니다. 그가 하나님과 떨어질 수 없는 관계임을 호소함으로써 시인은 하나님의 긍휼과 호의를 재촉합니다. 하나님의 너그러운 처사가 있어야만 시인은 소생할 수 있습니다(‘살게 하소서’로 번역됨), 소생한다는 말은 단순히 육체의 생명을 연장할 것이란 뜻이 아니라, 고난에서 벗어나 영적 생명을 되찾고 평안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행하며 사는 믿음 생활로의 회복을 의미합니다. 시인의 하나님 말씀에 대한 사랑은 이토록 절실합니다. 하나님의 종으로 자신을 소개한 시인은 자신이 땅에서 나그네인 점을 언급하며, 하나님의 호의와 은혜를 촉구합니다. 나그네는 거류민으로도 번역되었으며(레 19:33-34),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떠도는 자나 다른 민족 사이에 이방인으로 거주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54절을 고려하면, 시인은 나그네 생활을 하는 것 같다. 시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나그네인 자신을 보호하고 필요를 공급해주시기 바라는데, 특히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 호의를 내려주시기를 바랍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의 눈을 열어 율법에서 놀라운 것들을 보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율법에서 발견할 수 있는 놀라운 일들은 하나님께서 세계와 나라와 인생에게 행하신 놀라운 구원과 기적의 사건 및 하나님의 놀라운 성품 등을 가리킵니다. 시인은 또한 하나님께서 그의 계명을 감추지 말고 자기에게 깨닫게 해주시길 간구합니다. 이는 그가 하나님 말씀을 계속해서 지킬 수 있기를 바람에서ㅇ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사랑하고 그리므로, 시인은 마음이 상하여 상사병을 앓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으로 즐거움을 삼는 시인(21-24)

 

시인은 자신 주변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자들을 하나님께서 꾸짖은 사실을 떠올립니다. 시인 눈에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들로부터 길 잃고 타락한 자들로서 교만하고 저주받은 자들입니다. 이들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으며, 악을 행하는 이들입니다(잠 3:5-7). 시인이 이들을 향해 ‘저주 받은 자들’이라고 표현한 것은 타당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의 말씀을 가까이하고 행하는 자가 진정으로 행복한 사람이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1-2).

이제 시인은 하나님께 자신이 처한 곤경에서 구해달라고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떠난 자들과 달리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했고, 말씀대로 실천했습니다. 시인은 자기 자신도 자칫 잘못하면 그들처럼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서 멀리 떠나 타락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이미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을 ‘온 마음으로’ 찾았고, 하나님께 자신이 하나님의 계명에서 길을 잃지 않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했습니다(2,10). 그러나 하나님께 순종한다 해서 고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것은 아닙니다. 시인 주변에 있는 자들은 이런 시인을 못마땅하게 여겨 그를 비방하고 멸시했습니다. 고관들조차 그에 대한 나쁜 말을 주고받았습니다. 시인은 이런 현실을 부정하지 않고 자신에게 닥친 난관을 받아들였습니다. 또한 시인은 자기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응대하여 죄 짓기보다는 하나님의 율례에 자기 생각을 집중하는 지혜로운 길을 택했습니다. 시인은 이런 자신을 다시금 ‘주(당신)의 종’이라 부르며(17,23),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자기가 그분의 소유임을 기억하시고 긍휼을 베푸시기를 원합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기쁨이자 조언자입니다. 그의 마음은 부서지고 상했지만, 그렇다 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과 기쁨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시인은 온갖 재물을 기뻐하듯 하나님의 율례를 즐거워한다고 앞서 말했습니다(14). 하나님의 말씀이 진귀한 보배나 풍요로운 재물보다 더한 가치가 있음을 시인이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인의 ‘기쁨’인 하나님의 명령이나 증거는 또한 그의 ‘조언자’ 역할을 합니다. 그로 하여금 지속적으로 의롭고 지혜로운 삶의 길을 걸을 수 있도록 지도해줍니다. 기뻐하며 그 조언을 따르는 시인은 진정 하나님의 지혜로운 종입니다.

 

달레트(네 번째 알파벳“ד”) 연(25-32)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줍니다. 그것은 우리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아 새로워지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인도하는 등불이자, 우리의 입술로 찬양할 이유를 주는 원천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삶을 다시 일으키고 견고하게 하며, 거짓과 불의를 제거하고 진리와 의로움을 세웁니다.

 

25○내 영혼이 진토에 붙었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26내가 나의 행위를 아뢰매 주께서 내게 응답하셨사오니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27나에게 주의 법도들의 길을 깨닫게 하여 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28나의 영혼이 눌림으로 말미암아 녹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나를 세우소서

29거짓 행위를 내게서 떠나게 하시고 주의 법을 내게 은혜로이 베푸소서

30내가 성실한 길을 택하고 주의 규례들을 내 앞에 두었나이다

31내가 주의 증거들에 매달렸사오니 여호와여 내가 수치를 당하지 말게 하소서

32주께서 내 마음을 넓히시면 내가 주의 계명들의 길로 달려가리이다(25-32)

 

본문은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우리의 영혼을 다시 살아나게 살 수 있는지를 설명합니다. 이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악에서 승리하도록 인도합니다. 그리고 우리를 소생시키십니다. 세상에서는 우리의 외적인 모습에 따라 판단하여 무가치하다고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사랑하신다고 말씀 함으로서 가치를 부여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으로 소생하기를 간구(25-28)

 

하나님의 말씀은 육체만 아니라 영혼까지도 소생시킵니다. 시인은 이 점을 알므로, 슬픔 중에도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대로 자기를 소생시키시기를 바랍니다. 그는 자기 상황을 ‘영혼이 진토에 붙었다’고 표현하는데, 이 말은 비천함과 죽음에 가까운 상황을 뜻합니다. ‘진토’는 ‘'티끌’, ‘먼지’, ‘흙’의 뜻으로, 땅바닥에 굴러다니므로 비천하고 낮은 처지를 나타냅니다. 이는 사람이 죽어 다시 돌아가는 재료이므로 죽음도 암시합니다(창 2:7; 3:19). 시인의 상황은 영혼이 슬픔(‘눌림’으로 번역됨; 28)으로 인해 물이 새듯이 눈물을 흘리는 비유로도 설명되었습니다. 바로 이전 단락(17-24)을 고려하면, 시인은 비방과 멸시 속에 있으므로 그는 슬픔과 고통과 외로움과 절망의 상태에 놓였습니다. 이 상태에서 소생하기를 원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다만 놀라운 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소생되기를 원한다는 점입니다. 17절에서와 마찬가지로, 시인에게 있어 삶과 죽음은 육체적인 의미보다는 영적인 의미가 더 중요하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밀접하게 관련되었습니다. 시인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을 지키려 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는 자를 보호하실 것이라는 약속(사 41:10; 시 145:18-20)에 따라 하나님께서 자신을 회복시키시기를 기대합니다. 하나님 말씀에 대한 시인의 헌신은 시인과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더 돈독하게 합니다. 시인은 자신의 행위를 하나님께 터놓았으며, 하나님께서는 그린 시인의 기도를 듣고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더 배우고 깨닫기를 바라는 시인의 열망은 커져간다. 그러므로 시인은 게 속해서 하나님의 가르침과 깨달음을 간구합니다. 시인은 그 말씀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일들(27,18)을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기 원합니다. 이처럼 말씀에 사로잡힌 자이니, 하나님은 그분의 약속대로 시인을 일으켜 세우실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선택한 시인(29-32)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기 위해서는 지혜로운 선택이 필요합니다. 시인은 거짓의 길(‘거짓 행위’로 번역됨; 29)에서 떠나기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거짓인지 참인지를 분별해야 하므로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쳐주시길 애원합니다. 이처럼 시인은 거짓과 불의의 길 대신 성실의 길과 하나님의 규례를 택했습니다(30). 31절의 ‘내가 주의 증거들에 매달렸사 오니’라는 표현도 시인의 같은 선택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매달리다’라는 동사는 25절의 ‘붙었다’와 같은 단어로서, 두 절의 대조적인 연결성을 보여주는데 사용되었습니다. 즉, 영혼이 진토에 붙어 죽을 것 같은 이 상황(25)에서도, 시인은 하나님의 증거들에 끈질기게 붙어 있음을 나타냅니다(31). 이토록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매달리므로, 시인은 말씀을 어기거나 타락하여 수치를 당하지 않기를 구합니다. 시인은 인생이란 길에서 그 푯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삼고, 그것을 향해 전심으로 질주할 것을 다짐합니다(빌 3:13-14). 그러기 위해서는 여전히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을 넓혀주셔야 하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시인에게 가르침과 깨달음(26,27)을 주셔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그 말씀을 통해 우리가 어떠한 은혜를 누릴 수 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의 지침이며, 우리의 영혼을 새롭게 하고,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며, 우리에게 힘과 열정을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사랑하고, 그 말씀을 묵상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 속에서 살아 움직이며, 우리를 변화시키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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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9-01)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가는 길

시편 119편 1-16절


 

우리는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사랑하고 지켜야 할지, 그리고 그 말씀을 따르는 것이 우리에게 주는 참된 기쁨과 평안이 무엇인지 깊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유혹과 어려움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길, 그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축복임을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 여호와의 율법을 사랑하고 지키는 자가 얼마나 행복합니까! 시인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그가 주신 계명을 즐거워하고 그 계명에 주의하며 따르길 소망합니다. 또한 이런 소망을 실행할 수 있도록 시인은 끊임없이 하나님께 가르침과 인도를 구합니다.

알레프(첫 번째 알파벳 ‘א’) 연(1-8)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된 자입니다. 그 말씀이 오늘도 나를 창조하도록 내맡기는 일, 그것을 순종이라고 합니다. 생명은 바로 그 말씀을 따라 창조되는 곳에만 있습니다. 그곳에서 인간은 인간다워지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다워집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고,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며, 하나님 나라가 섭니다. 말씀을 따라 사는 것이 곧 여호와를 구하는 생명의 삶입니다.

 

1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2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3참으로 그들은 불의를 행하지 아니하고 주의 도를 행하는도다

4주께서 명령하사 주의 법도를 잘 지키게 하셨나이다

5내 길을 굳게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

6내가 주의 모든 계명에 주의할 때에는 부끄럽지 아니하리이다

7내가 주의 의로운 판단을 배울 때에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께 감사하리이다

8내가 주의 율례들을 지키오리니 나를 아주 버리지 마옵소서(1-8)

 

하나님의 법에 대한 경외와 순종을 강조하는 구절입니다. 이 구절은 하나님이 정하신 법을 따르는 사람들은 복이 있으며, 그의 길을 순종하며 살 것임을 다짐합니다. 말씀을 지키고, 그 길을 걷는 것을 간절히 원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시편의 주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따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1)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자의 행복(1-4)

 

시인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의 행복을 선언하며 시를 시작합니다. 1,2절 맨 마지막에 ‘복이 있음이여’와 ‘복이 있도다’로 번역된 단어는 ‘얼마나 행복한가!’의 뜻으로서, 원문에서는 1,2절의 첫 단어로 나와 듣는 이들의 주목을 끕니다. 구약에서 이 단어는 상대방에 대한 부러움을 표현할 때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과 축복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신 33:29; 왕상 10:8; 욥 5:17; 잠 4:21 등). 119편에서는 후자의 경우에 해당합니다.

시인이 행복의 예로 처음 언급한 사람은 행위가 온전한 자들입니다. ‘행위’는 ‘길’의 번역으로서 한 사람의 행위를 포함하여 삶의 태도나 방향, 인생의 여정 등을 나타내는 포괄적 용어입니다. ‘온전한 자들’이란 흠 없고 완전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여기서 ‘완전함’이란 말에는 다소 과장된 의미가 포함되었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행위가 온전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시인은 여호와의 율법을 지키고 살 때 가능하다고 알려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의 언약을 통하여 백성에게 원하는 삶이 ‘거룩한 삶’임을 선포하셨습니다(출 19:6). 또한 4절에서 설명하듯, 하나님께서 직접 여러 율법을 정해주셨고 열심히 지키도록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지시한 말씀에 순종한다면, 성도는 불의를 행하지 않을뿐더러(3) 하나님께서 원하는 온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율법에 따라 행하는 데 필요한 근본적인 태도가 있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온 마음으로 여호와를 찾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헌신이 있어야 말씀을 따를 수 있고, 그럴 때 성도 개인의 삶은 온전한 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다.

한편, 시편 119편은 하나님 말씀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보여 주는데,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켜 다음과 같은 여덟 가지 단어를 바꿔가며 사용하고 있습니다: 율법(1; 법:29), 증거(2; 교훈:22), 법도(4), 율례(5), 계명(6), 판단(7; 규례:13), 말씀(다바르; 9), 말씀(임라; 11). 이 단어들은 제각기 특정적인 의미가 있어,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다각적인 의미와 다양한 영역을 표현합니다. 이 다양성이 시에 적용되어 시적 재미와 아름다움도 제공합니다. 다양성과 동시에, 이 단어들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통일됨으로써 단어 간의 연결성과 결속성도 드러냅니다.

본 시편을 읽는 독자는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각 절에서 이 단어들이 나올 때, 각각의 의미를 살려서 이해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으로 단순화해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 말씀을 지키려는 시인의 의지와 간구(5-8)

 

시인은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자기의 의지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함을 알고 있습니다. 5절의 ‘내 길을 굳게 정하사 주의 율례를 지키게 하소서’는 직역하면, ‘내 길들이 당신의 율례들을 지키는 데 견고하다면!’입니다. 하나님 뜻을 따라 살고 싶은 시인의 소망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일의 어려움과 인간적인 연약함이 내포되었습니다. 한편 1절부터 줄곧 언급되는 하나님의 계명이나 판단 등 하나님 말씀에는 ‘의로움’이 대표적인 속성으로 나타나며(7), 이는 정의의 하나님의 속성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면, 그 사람은 불의에서 멀어지고 의와 공평과 정직 등 하나님의 속성에 가까워집니다. 시인은 이 같은 하나님의 의로운 말씀을 배울 것을 다짐합니다. 이런 배움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 말씀이 그를 의로 인도할 것이므로, 시인도 거짓이나 가식이 아닌 정직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가르침에 감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 후에 시인은 그가 배운 말씀을 조심스럽게 실천하리라 마음먹습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순종하는 단계마다 하나님이 연약한 자신을 내버려 두지 않고 함께하시기를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베트(두 번째 알파벳‘ב’) 연(9-16)

눈 앞에 펼쳐지는 상황이 순종하는 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일을 중단하지 않기로 합니다. 그 말씀의 약속을 신뢰하기로 합니다. 결코 하나님께서 말씀을 지키는 자신을 버리거나 부끄럽게 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 닥치는 환난은 결코 하나님의 무능이나 혹은 믿음의 무익함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9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10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11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12찬송을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

13주의 입의 모든 규례들을 나의 입술로 선포하였으며

14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15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16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9-16)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정결한 삶을 유지하려는 의지를 표현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법을 지키며 살아가는 것이 죄를 멀리하는 길임을 깨닫고, 그 말씀을 마음 깊이 새기기를 원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을 즐거워하며, 이러한 말씀을 통해 지혜와 깨달음을 얻기를 기도합니다. 말씀을 통해 자신의 삶을 인도받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을 나타냅니다.

 

(1) 하나님 말씀과 정결한 행실(9)

 

히브리어 알파벳의 두 번째 글자 ‘ב’로 시작하는 9-16절 단락은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라는 시인의 질문과 그에 대한 시인의 대답으로 시작합니다. 이와 같은 질문-대답 형식은 질문에 대해 생각할 기회를 주고, 대답을 제시하여 결론에 이르도록 도와줌으로써 질문자 본인에게나 상대에게 가르침과 배움의 장을 마련합니다(예. 시 24:3). 여기 9절의 ‘그의 행실’에서 ‘행실’은 1절의 ‘행위’와 단어는 다르나 똑같이 ‘길’이란 뜻도 있습니다. ‘깨끗하게 하다’는 ‘육체적으로 또는 도덕적으로 깨끗하게 하다’, ‘씻다’의 의미입니다. 청년으로서 정결한 삶은 하나님의 말씀을 길잡이로 삼고 그 말씀을 실천할 때 가능합니다. 9절에서 대답으로 제시된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는 ‘당신의 말씀대로 행실을 살핌으로’로도 번역이 가능합니다. 여기서 ‘지키다’란 동사는 ‘순종하다’라는 뜻 외에도 ‘살피다’, ‘주의하다’의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대답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행실을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와 자기 행실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주의 깊게 살핌으로써 깨끗하게 한다는 의미 둘 다를 내포합니다.

 

(2) 즐거움이 되는 하나님의 말씀(10-16)

 

하나님의 말씀에 주의하면서 이를 지키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시인은 기본적으로 마음의 태도를 갖추고 행동으로 실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먼저,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시인이 2절에서 하나님을 찾는 자의 행복을 진술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이미 하나님을 찾아 행복을 누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찾는 태도는 신명기 6:5이 설명하듯, 무엇보다 온 마음과 온 성품과 온 힘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전제되어야 합니다(신 6:5).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야 합니다. 성도는 스스로 성경을 읽거나 다른 이를 통해서 말씀을 배울 수 있으며, 언제든 하나님으로부터의 가르침, 즉 성령을 통한 지혜와 깨달음도 필요합니다. 셋째, 하나님 말씀의 소중함을 알고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11). ‘마음에 두다’와 비슷한 ‘마음에 새기다’라는 표현은 ‘말씀을 기록하라’는 뜻으로서 말씀을 잊지 말라는 의미를 강조합니다(신 6:6; 렘 31:33). 반면, ‘마음에 두다’에서 ‘두다’는 ‘숨기다’의 뜻이므로, 이 표현은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감추어 귀하게 여기며 보호하는 의미를 강조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해야 합니다. 시인은 재물을 즐거워하듯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즐거워한다고 고백합니다(14,16). 성도는 시인처럼 말씀의 속성과 그 가치를 알고 인정함으로써 자발적인 기쁨을 가질 수 있습니다(시 1:2). 또한 말씀 자체로 인한 기쁨만이 아니라 말씀을 행하는 즐거움도 절실히 필요합니다(시 40:8). 다섯째, 하나님의 계명에서 길을 잃어 타락하지 않도록 하나님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10).

여섯째,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하여 실천해야 합니다. 에스겔 선지자가 외치듯, 하나님께서 성도의 마음을 부드럽게 다듬어주고 성령을 그 속에 두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도록 도우셔야 하나님 말씀을 실행할 수 있습니다(겔 36:26-27). 일곱째, 하나님 말씀을 읊조림으로써 그 내용을 상기하며, 행동으로 몸에 배도록 합니다. 밤낮으로 말씀을 읊으며 그 말씀을 즐거움으로 삼은 행복자가 좋은 예시입니다(시 1:2). 이런 방법들을 통해 하나님이 진정으로 그의 성도에게 바라는 삶이 무엇인지 알게 될 터이므로,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죄 짓는 일을 피해 갈 수 있습니다. 또한 본인 스스로 하나님을 찬양할 뿐 아니라 다른 이들에게도 하나님께 배운 모든 규례들을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선포된 말씀을 들은 다른 이들도 깨끗하고 정결한 인생길을 걸어가며,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내 멋대로가 아닌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의 수혜자가 됩니다. 밥을 법을 버리라 하는 세상에서 후회 없는 결정을 내릴 수 있어야 합니다. 올해도 주께서 정해주신 바른 삶의 길을 끝까지 전지해 나가도록 다짐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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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8-02)

 


여호와를 경험하는 구원의 기쁨과 감사

시편 118편 14-29절


 

선수들은 세계 기록을 가지고 있길 원합니다. 육상 100m에서 10초는 인간의 한계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1968년 멕시코 올림픽에서 미국의 짐 하인스(Jim Hines)는 9초95로 10초대 들어섰습니다. 점점 세계 신기록이 깨어지기 시작하면서, 현재는 자메이카의 우사인 볼트(Usain Bolt) 9초 58로 세계 신기록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처럼 아무리 뛰어난 선수가 세운 기록이라 할지라도 인간이 세운 기록은 결국 깨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우신 기록은 절대 깨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강하고 위대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 118:14-29에는 신약성경의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여러 구절들이 나옵니다. 118편 자체의 용어로 바꾸어 표현하자면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사람’인 시편 기자는 죽음에 빠질 뻔했다가 다시금 살아나서 하나님의 집을 건축해 나가게 됩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시편 기자를 죽음에서 건져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시는 기이하고 놀라운 은총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구원이 되신 여호와(14-16)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시고, 우리의 삶을 찬양의 노래로 채우시며, 우리의 구원자로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신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의 어려움과 도전 속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힘이 되시며, 그분의 구원의 은혜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구원과 회복을 주셨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분의 오른손이 강한 일을 행하셨음을 고백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14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요 또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

15의인들의 장막에는 기쁜 소리, 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16여호와의 오른손이 높이 들렸으며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는도다(14-16)

 

14절에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자신의 능력, 찬송, 구원이 되셨음을 말합니다. 이 구절의 중요성은 하반의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라는 표현에 있습니다. 상반절의 ‘여호와의 능력과 찬송 되심’을 하반절의 ‘구원 되심’으로 치환하여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구원이 되시는 여호와’의 주제는 14절 이후의 본문들을 꿰뚫고 지나가는 핵심 흐름이 됩니다. 15절에서는 의인의 장막에 이 구원의 소리가 있게 된다고 설명합니다. 여기서 ‘의인’이란 물론 하나님의 구원을 입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게 된 이유를 하반은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여호와의 오른손이란 신인동형론적 표현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비유적으로 기술하는 표현입니다. 16절은 여호와의 오른손을 두 번이나 언급하면서 15절의 여호와의 구원에 대한 강조를 이어갑니다.

 

죽음에서 건지신 여호와(17-24)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이 기이하다는 것은 그분의 구원이 놀랍고 신비롭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모든 일들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기적이며, 우리는 그분의 행하신 일을 경외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날을 맞이하며 그날을 기쁘게 보내는 것은 우리의 신앙과 삶에서 중요한 자세입니다.

 

17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시는 일을 선포하리로다

18여호와께서 나를 심히 경책하셨어도 죽음에는 넘기지 아니하셨도다

19내게 의의 문들을 열지어다 내가 그리로 들어가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20이는 여호와의 문이라 의인들이 그리로 들어가리로다

21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나의 구원이 되셨으니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22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23이는 여호와께서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24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17-24)

 

여호와의 역사로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주제는 17절 이하에서 더 구체적인 주제로 연결, 발전됩니다. 바로 ‘죽음’이라는 주제입니다. 특별히 17-18절이 죽음의 이슈를 다루고 있습니다. 17절에서 시편 기자는 ‘내가 죽지 않고 살아서 여호와께서 하신 일을 선포하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하반절에서 ‘여호와께서 하신 일’이란 바로 그가 ‘죽지 않고 살게 하신 일’인 것이 분명합니다. ‘죽지 않고’라고 굳이 언급한 것은 시편 기자가 죽음의 주제를 언급하려 한 것이며, 다시 말해 죽음의 주제가 그의 삶에서 경험되었던 것임이 틀림없습니다. 이 죽음의 주제는 18절에 더 구체적으로 서술되는데, 여호와께서 자신을 경책하셨지만 죽음에는 넘기지 않으셨다는 내용입니다. ‘경책하다’로 번역된 ‘야사르’ 동사는 징계, 양육, 훈련을 위한 꾸짖는 행위를 뜻합니다. 여호와께서 시편 기자를 훈계하시려고 삶의 고난을 주셨는데, 그 고난을 경험한 후 기자는 ‘죽음에는 넘기지 않으셨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곧 그가 죽음에 가까운 심한 고통을 경험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19-20절은 죽음에 넘기지 않아 생명을 누리게 된 시편 기자가 ‘의의 문’으로 들어가겠다고 선언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20절에 따르면, 그 의의 문은 곧 ‘여호와의 문’이며 의인들이 그곳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의인’이라는 말은 15절에서 이미 등장했습니다. 여호와의 오른손의 구원 역사를 경험한 자들을 ‘의인’이라 부르는 것인데, 그들이 여호와의 문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이 그 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그분께 ‘감사드리기 위함’입니다(19). 118편의 본문은 구원받은 자들이 여호와의 집에 들어가 그분께 감사드리게 되는 장면을 이제 묘사해나가게 됩니다. 그러한 감사의 이유가 21절에 다시 한 번 서술되어 있는데, 바로 ‘여호와께서 응답하셨고 구원이 되셨기에 감사하겠다’는 것입니다. 21절의 내용은 118편이 그동안 말해온 모든 내용을 요약하여 서술한 것임이 분명합니다. ‘응답하셨다’는 주제는 5절에서 등장했고, 구원이 되셨다는 것은 14-17절의 주제였고, 감사하겠다는 것은 19-20절의 내용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편 기자가 이렇게 감사드리겠다고 말하는 ‘죽음으로부터 벗어남’은 과연 어떤 내용이었을 것입니까? 바로 이에 대한 내용이 22-23절에 서술되어 있습니다. ‘건축자가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이 구절은 쓸모없다고 평가받아 버려진 존재가 사실은 집의 가장 중요한 주춧돌이 되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118편의 문맥에서 보자면, ‘버린 돌이 되었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운 고난을 겪었음을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머릿돌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구약성경에서 ‘집’이란 매우 중요한 신학적 함의를 지닌 단어입니다. 특별히 삼하 7:8-16에 기록된 다윗 언약에서 ‘집’은 핵심 어휘입니다. 집이란 하나님의 나라를 뜻하며, 그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도록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다윗의 가문과 왕국을 뜻합니다. 다윗 언약이 시편 전체의 신학적 배경이 된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우리는 22절의 ‘집’이 다윗의 집이 건설할 하나님의 집, 곧 하나님의 왕국임을 미루어 짐작해볼 수 있습니다. 23절은 버린 돌을 주춧돌로 사용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이한 바’라고 표현합니다. 사람의 생각과 예상이 닿을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라는 뜻입니다. 22절의 내용은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을 뜻합니다. 그러한 신약 해석은 118편의 문맥에서 22절이 말하고 있는 내용과 정확하게 일치하며, 118편의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보여 주는 것이 분명합니다. 118편의 기자는 실제로 죽음을 당하지는 않았고 ‘죽음에 빠질 뻔’하였지만,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하여 실제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예수님을 죽음의 권세 아래 두실 수 없어 그 죽음으로부터 예수를 건지셨습니다. 24절은 이러한 하나님의 기이하고 놀라운 구원 역사를 가리켜 ‘이 날은 여호와께서 만드신 것이다’라고 선포합니다. ‘이 날’이란 물론 죽음의 권세를 이긴 날, 주춧돌로 하나님의 집을 세운 날을 뜻합니다. 기독교 전통에서 이 구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118편의 내용에 대한 적절한 해석이라 여겨집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25-26)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와 고난을 솔직히 아뢰고, 그분의 구원과 축복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깊게 하고, 응답을 기대하는 신뢰의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우리를 축복하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분을 찬양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경험한 축복에 대해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것이 신앙의 중요한 표현입니다.

 

25여호와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

26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자가 복이 있음이여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도다

27여호와는 하나님이시라 그가 우리에게 빛을 비추셨으니 밧줄로 절기 제물을 제단 뿔에 맬지어다(25-27)

 

25-26절에는 지금까지의 모든 내용을 담은 결론적인 이야기의 시작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여호와께 대하여 ‘구원해 주옵소서’라는 청원을 드리는 것입니다. 25절은 간절한 간구의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그 간구의 핵심을 두 단어가 표현합니다. 바로 ‘구원하소서’라는 요청과 ‘형통하게 하소서’라는 요청입니다. 여기서 ‘구원하다’는 ‘야샤’로서 14절 이후로 표현된 ‘구원’이라는 단어와 같은 어근을 지닌 동사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경험한 시편 기자의 고백을 근거로 이제 언약 공동체가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기자에게 베푸신 그 은혜가 공동체 구성원들에 게임하기를 간구하는 것임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내용이 26절 상반절과 하반절에 잘 배열되어 있습니다. 26절 상반절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오는 이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지금까지 해온 118편 전체의 논의를 요약한 것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대적을 끊었다는 것은 여호와의 구원 역사, 즉 버린 돌을 죽음에서 건지셔서 주춧돌로 삼아주신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입니다. 그렇기에 ‘여호와의 이름’을 사용하여 그 이름으로 오는 자, 여호와를 경외하고 그분을 신뢰하기로 결정한 자가 복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26절 하반절은 ‘우리가 여호와의 집에서 너희를 축복하였다’고 말합니다. 여호와의 집이란 22절에 나온 집 즉 모퉁이 주춧돌이 기초가 된 집일 것인데, 거기서 공동체 구성원들이 누군가를 축복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여호와께 감사를 드리며, 공동체를 축복하고 있는 제사 장면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살아온 본문의 시편 기자와 같은 삶을 살아가자고 공동체 구성원들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는 삶(28-29)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빛이 되어 주시며, 그분의 구원과 은혜를 경험할 때마다 그에 합당한 예배와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예배는 그분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응답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시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분을 찬양하고 높여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우리의 신앙의 핵심이며, 그분을 높이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28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께 감사하리이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주를 높이리이다

29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27-29)

 

27-29절은 118편의 결론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제사의 장면입니다. 27절은 제물을 제단으로 가지고 나가는 장면을 묘사하며, 28절은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29절은 1절을 그대로 반복하는 수미일치 기법을 활용하는데, 여호와가 선하신 분이며 인자하신 분인 것을 다시금 선포합니다. 여호와의 인자하심은 시편 기자를 죽음에서 건져 하나님 왕국의 주춧돌로 사용하신 언약의 성실함을 뜻합니다. 118편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온전히 성취되었으며, 26절이 말하는 것처럼 성도들을 향해 그러한 삶에 동참하여 복된 삶을 살아갈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의 날을 기쁘게 맞이하며, 그분의 은혜와 구원을 찬양하는 삶의 중요성을 가르쳐줍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명을 보존하시고, 구원의 문을 여시며,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하신 것을 기억하며 감사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구원의 날을 기쁘게 맞이하며, 그분의 역사를 찬양하고 감사하는 삶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깊이 경험하며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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