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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6-01)


죽음에서 구원하신 주님께 드리는 감사

시편 116편 1-11절


 

밤새 그가 보듬은 시 언저리에서 울고 있는 시인을 만나고, 밤낮으로 그분이 보듬은 영혼의 머리말에서 울고 계신 주를 만납니다. 들숨과 날숨마저 목구멍에 불어버린 아슬아슬한 호흡이 정신을 차리자 투명하고 진득한 기도가 새어나옵니다. 주가 생기를 불어넣지 않았다면 듣지 못했을 시인의 기도를 들어보시길 바랍니다.

 

  • 시편 116편은 할렐루야 시편 모음집의 여섯 번째 시편입니다. 115편에서 우상의 헛됨과 하나님의 축복을 대비할 때 사용되었던 죽음의 모티프가 116편에서는 전체 시편의 중심 주제로 등장합니다. 여호와께서는 언약적 성실하심을 통해 그 백성을 죽음으로부터 건져주신다는 것이 116편이 다루려는 메시지입니다. 오늘은 그 전반부인 1-11절을 내일은 후반부인 12-19절을 차례로 살펴봅니다.

 

여호와께 기도함(1)(1-2)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셨던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경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더욱 확신하게 하고, 그분께 더욱 나아가게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평생 하나님께 기도하며 살아야 합니다.

 

1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내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2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1-2)

 

본 시는 할렐루야 시편 모음집의 여섯 번째 시편입니다. 115편에서 사용되었던 우상의 생명력 없음이라는 주제가 116편에서는 시인의 죽음이라는 주제로 강하게 표현되며, 이어서 118편에서는 죽음의 권세를 벗어나는 스토리가 더욱 구체화되어 펼쳐지게 됩니다. 116편은 시편의 장르 구분상 개인 감사시입니다. 감사시란, 자신을 고난으로부터 구원해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시입니다. 이미 구원을 경험하였기에 그 구원 경험을 묘사하면서 여호와께 감사드리고, 자신의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여러 가지 통찰들을 표현해냅니다.

1-2절은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기도한 경험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1절은 여호와께서 시인의 음성과 간구를 들으시기에 여호와를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이 구절에서 특별한 부분은 ‘사랑한다’는 고백입니다. 히브리 원어로 ‘아하브’ 동사인데, 시편에서는 시인이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대한 사랑을 고백할 때 종종이 어휘를 사용합니다. 여기서 시인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실 것을 확신에 찬 어조로 고백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여호와를 사랑한다고까지 고백하는 것은 구원에 대한 신뢰가 있기 때문입니다. 2절 역시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셨다는 과거의 경험을 고백한 후, 그렇기 때문에 평생 주님께 외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1-2절은 시인이 갖고 있는 과거의 구원 경험을 기초로 하나님께 기도할 것이라는 결연하고 깊은 기도에 대한 의지를 선명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 기도함(2)(3-4)

우리의 삶에서도 이러한 고난과 슬픔이 찾아올 때가 있습니다. 육체적인 질병, 가족의 아픔, 개인적인 문제 등으로 인해 우리는 때때로 사망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하며 하나님께 어떻게 나아가야 할지 모르게 됩니다.

 

3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4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3-4)

 

3절은 1-2절에서 말한 구원 경험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시인은 사망의 줄에 묶였었고 스올의 고통을 마주한 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2절 중간 부분 및 마지막 부분을 직역하면, ‘스올’의 고통이 나를 발견했을 때, 내가 환란과 슬픔을 발견했을 때입니다. ‘스올’이란 죽음의 영역을 뜻하므로, 이 구절은 죽음이 시인을 찾아와서 시인이 그 죽음을 마주하고 깊은 슬픔을 경험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죽음이라는 주제가 선명하게 부각되는 장면입니다. 시편 18편에서도 시인은 자신이 마주한 고난을 묘사하면서 ‘사망의 줄’, ‘불의의 창수’, ‘스올의 줄’, ‘사망의 올무’라는 유사한 표현을 사용했습니다(시 18:4-5).

그런데 시인은 바로 그 순간에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건져달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죽음의 순간을 마주할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져 절망을 경험하게 되는데, 시인은 오히려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는 것을 선택했습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했을까 하는 의문점이 떠오르게 되는데, 그에 대한 설명이 5절 이하에 상세하게 이어질 것입니다. 4절에서 한 가지 더 기억해야 하는 것은 시인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했다는 사실입니다. ‘여호와의 이름으로’라는 표현은 앞으로 118편에서 집중적으로 조명될 것이기에, 111-118편의 맥락에서 기억해둘 필요가 있습니다. 116편과 118편은 그 주제 사용에 있어서 매우 유사하므로 상호 비교하며 고찰해야 합니다.

 

여호와의 구원하심에 대한 묘사(5-8)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서 자비롭고 관심을 가지신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고통과 어려움 속에서도 깊이 개입하시며, 우리의 상황을 돌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를 통해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겪는 고난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고 회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과 넘어짐을 치유하시고, 새로운 힘을 주십니다.

 

5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6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려울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7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8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5-8)

 

5절부터는 시인이 경험한 구원 사건에 대해 서술해 나갑니다. 그 구원의 경험을 통해서 시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에 대해 배웠습니다. 그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설명이 5절에 제시되고 있는데, 5절은 출애굽기 34:6의 요약적 서술입니다. ‘은총’(한눈)과 ‘자비’(라훔)라는 어휘를 통해 여호와의 인자하심, 즉 그분의 언약적 성실함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111편 및 112편에서 이미 등장한 바 있습니다(시 111:4; 112:4).특별히 112:4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성품을 묘사할 때 ‘한눈’과 ‘라훔’뿐 아니라 ‘의로움’을 뜻하는 단어인 ‘짜디크’를 함께 사용하여,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곧 ‘의인’인 것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이제 116:5은 이 ‘한눈’과 ‘라훔’과 ‘짜디크’를 모두 사용하여 여호와 하나님의 성품을 다시 한 번 진술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언약적 성실함을 지키시는 분이며, 그런 가운데 그분의 의로우심을 드러내시는 분입니다. 출애굽기 34장의 맥락에서 이러한 여호와의 언약적 성실성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죽음에서 건지셔서 언약 백성으로 회복하시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이제 116편에서 여호와의 언약적 성실함과 의로움은 시인 개인을 죽음으로부터 건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6절은 ‘순진한 자’를 지키셨고 ‘낮은 자’를 구원하셨다는 표현으로 다시 설명합니다. ‘순진한 자’란 미성숙한 자라는 의미입니다. 잠언에서 순진한 자(페타임)는 지혜의 길과 미련함의 길 앞에 서서 선택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알지 못해 유혹에 흔들리고 있는 자들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본문 6절은 시인이 이러한 ‘순진한 자’였기에 죽음의 유혹에 빠져들게 되었지만,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을 지켜주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6절 하반절은 시인이 ‘낮은 상태’에 있을 때 구원해주셨다고 고백하는데, ‘낮아짐’이란 스올을 향해서 낮아졌다는 뜻이며, 따라서 죽음에 매우 가까이 이르렀었음을 뜻합니다.

이러한 구원의 결과를 7절이 묘사합니다. 시인은 이제 ‘평안함’을 누리게 됩니다. ‘평안함’으로 번역된 ‘마노아흐’는 ‘누아흐’ 동사로부터 파생된 명사입니다. ‘누아흐’ 동사는 주로 ‘안식하다’로 번역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에서 이겨서 땅을 차지하고 하나님의 왕국을 든든히 세웠을 때 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마노아흐’란 단순한 내적 평안의 상태 정도가 아닌 외적 평안과 회복의 상태까지 모두 포괄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8절은 이어서 죽음으로 내려가는 길로부터 구원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합니다. 자신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셨고, 자신의 눈을 눈물에서, 자신의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다고 표현합니다. ‘영혼’으로 번역된 ‘네페쉬’는 영혼과 육체를 분리해서 보는 이원론적 사고를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시편에서 ‘네페쉬’는 주로 시인 자신을 가리키는 시적인 표현으로 많이 사용됩니다. 8절이 뜻하는 바는 여호와께서 시인을 구원해주셨다는 데 있습니다. 눈과 발을 건지셨다는 표현도 비유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약하면, 5-8절은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적 성실하심과 의로우심으로 인해 시인을 죽음에서 구원해주셨음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감사의 결단(1)(9-11)

우리의 삶 속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의 뜻을 따르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과 결정이 하나님을 향한 신뢰를 반영해야 하며, 이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고난과 어려움이 찾아올 때, 우리는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고난 속에서의 믿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줍니다.

 

9내가 생명이 있는 땅에서 여호와 앞에 행하리로다

10내가 크게 고통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

11내가 놀라서 이르기를 모든 사람이 거짓말쟁이라 하였도다(9-11)

 

이제 시인은 구원의 은혜를 경험한 사람으로서 자신의 결단을 표현합니다. 감사 시에서 시인의 결단은 여러 가지 방향으로 표현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자신의 경험을 나누는 간증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자신이 발견한 은혜를 정리하여 공동체적인 삶에 적용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9절은 ‘내가 생명의 땅에서 여호와 앞에서 행할 것이다’라는 명확한 진술을 보여줍니다. ‘생명의 땅’이란 ‘죽음을 벗어난 땅’입니다. ‘생명’으로 번역된 ‘하임’은 육체적 생명뿐 아니라 삶에서 누리는 축복까지 포괄적으로 의미할 수 있습니다. 9절 맥락에서 생명은 죽음과 대조되는 요소이기에, 시인은 이제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생명을 가지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아가게 될 것이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10-11절은 시인 자신이 죽음의 위기에 빠졌을 때를 잠시 다시 회고하는 내용을 보여주는데,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였지만 주변 사람들이 거짓말하는 것에 놀랐다고 말합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우리가 다 알 수는 없으나, 하나님 외에는 신뢰할 수 있는 존재가 없음을 보여주는 의미로 해석하면 충분할 것입니다. 시인의 주위에는 거짓을 말하는 자들로 가득했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기에, 생명의 땅에 다시 이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시편 116편 전반부는 자신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주신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충만합니다. 내일 살펴보게 될 후반부에는 그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고백이 더욱 구체적으로 표현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통해 그분이 우리의 고난 속에서도 보호하고 회복하신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돌보시며, 구원과 회복의 손길을 펼치십니다. 고난 중에도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기억하며 그분께 나아가기를 소망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께 돌아가 그분의 회복과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기를 기도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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