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13-01)
하나님의 높으심과 자비로우심
시편 113편 1-9절
높아질 궁리 대신 낮아질 궁리를 하시는 분이 있습니다. 나와 다른자, 특히 나보다 약한 자를 거절하고 밀어내며 혐오하는 세상에서 오히려 약한 자를 세상의 중심에 세우시는 분이 있습니다. 마음속 웅덩이에 근심 대신 기쁨만 고이도록 찾아와주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의 허리가 어디로 굽혀있는지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 시편 113편은 할렐루야 시편 모음집(111-113편)의 세 번째 시편입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께서 높은 보좌에 계셔서 다스리시되, 겸손한 자를 높여서 그분을 대신하는 지도자가 되게 하심을 말씀하십니다. 사무엘상 2장에 기록된 한나의 기도와 매우 유사한 내용을 제시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111-112편에서 제시한 ‘여호와를 경외하는 여호와를 닮은 자’의 모습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묘사해주는 첫 번째로 113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찬양하자는 초대(1)
여호와의 종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풍성하게 채우신 것을 기억하고 고백하는 예배로 주께 나아가야 합니다. 세상에 그분 외에 그 같은 주목과 찬사를 받아야 할 존재는 없어야 합니다. 찬양은 결코 남이 대신해줄 수 없으며, 감상하고 은혜 받는 대상도 아닙니다. 그분을 아는 만큼, 겪은 만큼, 깨달은 만큼 찬양도 풍성해질 것입니다.
1할렐루야, 여호와의 종들아 찬양하라 여호와의 이름을 찬양하라(1)
본 시는 할렐루야 시편 모음집의 세 번째 시편입니다. 111-112편은 이 모음집을 열어주는 서론적 역할을 했습니다. 110편은 보좌 우편의 주님이 여호와의 통치를 실현한다고 말했는데, 111-112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가 여호와의 통치를 이 땅에 구현한다고 말합니다. 110편 및 111-118편은 서로 다른 방향의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말하고 있는데, 두 가지 방향성 모두 결국은 신약의 예수님에게서 놀랍게 성취됩니다. 111-118편 맥락에서 보자면, 111-112편이 말한 ‘여호와 경외자’의 모습을 113-118편이 차례로 설명해 나가는 것인데, 그 첫 번째 시편이 113편이며, 이를 위해 사무엘상 1-2장의 한나와 사무엘 이야기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1절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자고 우리를 초대하는데, 청중을 ‘여호와의 종들’이라고 명명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여호와의 종들’은 복수형으로서 신앙공동체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시편 1-3권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존재는 다윗 왕권이라는 단수형으로 표현되었는데, 이제 111-112편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 즉 다윗 왕권보다 더 포괄적인 공동체적 개념을 사용하기 시작하더니, 113편에 와서는 ‘여호와의 종들’이라는 더 넓은 범주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찬양의 범주와 그 이유(2-4)
하늘과 땅에서 여호와의 위대하심과 견줄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그분의 영광보다 더 찬란한 것도 없습니다. 모든 나라도 그분의 주권 앞에 엎드리며, 하늘도 그분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그렇게 높으신 여호와는 ‘멀리 있는 신’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이 되십니다. 높은 곳에서 지으신 모든 것을 통치하시는 여호와께서 친히 자신을 낮추어 하늘 아래 지으신 것들을 굽어 살피십니다.
2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찬송할지로다
3해 돋는 데에서부터 해 지는 데에까지 여호와의 이름이 찬양을 받으시리로다
4여호와는 모든 나라보다 높으시며 그의 영광은 하늘보다 높으시도다(2-4)
그렇다면 이 여호와의 종들이 여호와를 찬양하는 방식은 어떠해야 합니까? 2-3절은 여호와께 드려지는 찬양에 대한 시간적, 공간적 범주를 설정합니다. 2절은 ‘이제부터 영원까지’라고 말함으로써 여호와께 대한 찬양은 모든 시간 가운데 이루어져야 함을 제시했고, 3절은 ‘해 돋는 데부터 해 지는 데까지’라고 말함으로써 여호와께 대한 찬양이 모든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함을 말했습니다. 즉, 여호와께 드려야 할 찬양은 모든 공간과 시간을 포괄하는 우주적인 행위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2-3절에서 ‘찬송 받는다’라는 말은 모두 수동분사로 사용되었기에, ‘여호와께서는 찬양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이다’라는 의미를 전달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주적인 찬양을 받으셔야 할 그런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그러한 광대한 우주적 찬양을 받으셔야 할 이유와 근거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가 4절에서 설명되고 있는데, 바로 그분은 모든 열방보다 높으시고 그 영광은 하늘보다도 높으시기 때문입니다. ‘높다’라는 말의 함의는 단순한 거리적 고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피조세계에 대해서 가지고 계신 ‘통치권’을 뜻합니다. 따라서 4절은 여호와께서 만물을 다스리는 ‘통치자’이심을 말하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분이 찬양을 받으셔야 할 이유는 왕이시며 주권자이셔서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호와의 행하심의 특징들(5-9)
스스로 낮추사 이 세상을 살피신 후 세상의 낮고 천한 자, 수치와 조롱 가운데 있는 자, 약하고 무식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 존귀한 자, 가진 자들을 부끄럽게 하십니다. 그래서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십니다. 자녀가 없어 소망이 없는 어머니에게 자녀를 안겨주셔서 기쁨을 되찾아주십니다.
5여호와 우리 하나님과 같은 이가 누구리요 높은 곳에 앉으셨으나
6스스로 낮추사 천지를 살피시고
7가난한 자를 먼지 더미에서 일으키시며 궁핍한 자를 거름 더미에서 들어 세워
8지도자들 곧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과 함께 세우시며
9또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집에 살게 하사 자녀들을 즐겁게 하는 어머니가 되게 하시는도다 할렐루야(5-9)
5절은 수사적 의문문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와와 같은 이 누구리요’라는 문장은 사실 미가 7:18-20에도 등장하는데, 여호와 하나님과 같은 분은 없다는 뜻이기도 하며, 그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를 서술해나가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5b절부터는 이 세상의 유일한 왕이시고 그분과 같은 존재는 있을 수 없는 그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구체적인 서술이 나옵니다. 111-112편의 흐름을 돌이켜 보면, 사실 그 여호와 하나님의 언약적 성품에 대한 묘사는 111편에서 이미 충분히 기술되었고, 그 여호와의 모습을 닮은 신자의 모습 역시 이미 112편에서 상세하게 주어졌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에 대한 어떠한 내용을 113편이 소개할지 궁금해지게 됩니다. 놀랍게도 5-9절은 구약 시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을 한나의 노래(삼상 2:1-10)를 활용하여 하나님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합니다. 한나의 노래는 이스라엘 왕정 전체에 대한 해석의 렌즈를 제공하는 중요한 본문입니다. 그 핵심은 ‘교만한 자는 낮추시고 겸손한 자는 높이신다’는 것이며, 이것이 이스라엘 왕들이 명심해야 했던 통치 원리였습니다. 다시 말해, 인간 왕 자신이 진정한 왕이 아니고 이스라엘의 참 왕은 오직 여호와 하나님뿐이심을 알고 그분께 겸손히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 이스라엘 왕정 통치의 핵심 원리였던 것입니다. 이 내용이 113:5-9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5-9절에는 한 가지 중요한 문예적 특징이 나타나는데, 여호와 하나님을 묘사하기 위해 히브리어 분사 형태를 연속적으로 사용한다는 점입니다. 우리는 ‘~하신 분’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첫 번째 분사는 5절에 나타난 ‘높은 곳에 앉으신 분’입니다. 높은 곳에 앉으셨다는 것은 4절에서 설명한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권을 다시 한 번 서술한 내용으로 이해하면 되겠습니다. 두 번째 분사는 6절의 ‘내려다보시는 분’입니다. 여호와는 높이 계시지만 하늘과 땅, 즉 온 우주 만물을 위로부터 내려다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 세계를 초월하여 존재하시지만, 그 피조 세계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살펴보시고 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여호와는 초월적 존재인 동시에 내재적인 존재입니다. 세 번째 분사는 7절에 나오는 ‘일으켜 세우시는 분’입니다. 이 분사는 7절뿐 아니라 8절까지 모두 지배하고 있는 분사인데, 바로 이 부분이 한나의 노래와 동일한 부분입니다. 7절 전체는 사무엘상 2:8 상반절과 그 원문이 완전히 동일합니다. 8절은 전체는 아니지만 상반절이 사무엘상 2:8 중반부와 동일합니다. 다시 말해, 7-8절은 사실상 한나의 노래의 인용인 셈입니다. 여호와는 지도자를 세우심에 있어서 한 가지 기준이 있으신데, 가난한 자를 들어서 일으키시고 궁핍한 자를 들어 세우신다는 것입니다. 7-8절 자체에 ‘교만’과 ‘겸손’의 대조가 나타나지는 않았지만, 한나의 노래 일부를 아예 인용했다는 사실은 구약성경에 익숙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한나의 노래 전체를 인용하는 것과 동일한 메시지를 전달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7-8절은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원하시는 대로, 그 주권적 역사를 따라, 낮은 자를 들어서 사용하시는 분임을 말하려는 것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8절 후반부에서 ‘그의 백성의 지도자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하는 것을 생각할 때 더욱 확실해집니다. 이 표현은 사무엘상 2장 한나의 노래에는 나오지 않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대신하여 언약 백성을 다스릴 지도자를 뽑으실 때에 높은 자를 택하지 않으시고 낮은 자를 택하여 사용하십니다.
113편의 결론부인 9절은 임신이라는 주제를 다룸으로써 한나의 노래와의 연관성을 더욱 강화합니다. 그 집의 임신하지 못하던 여자를 회복하셔서 어머니가 되게 하시고, 기쁨의 존재가 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두 가지 가능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정말 한 여인이 가정에서 자녀들의 어미가 된다는 뜻일 수 있고, 둘째는 7-8절에서 언급한 지도자들이 백성을 잘 다스려서 하나님의 나라를 풍성히 가꾸어가게 된다는 의미일 수도 있습니다. 이런 해석의 이중성은 사무엘상 1장의 한나 이야기와 2장의 한나의 노래가 이미 내재적으로 갖고 있는 특징이기도 한데, 113편의 결론부에서도 동일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113편은 왜 왕정 통치의 원리를 말하는 ‘한나의 노래’ 주제를 ‘왕’이 아닌 ‘여호와의 종들’에게 들려주고 있는 것입니까? 앞서 말한 것처럼 111-112편은 108-110편과는 달리 더 이상 다윗의 시편이 아닙니다. 또한 110편 및 111-112편은 다윗 왕권을 뛰어넘어 언약을 성취하는 존재들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110편은 보좌 우편의 주님, 111-112편은 여호와의 통치 및 그 통치를 구현하는 여호와 경외자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제 113편은 그 여호와 경외자들에 대해 설명하면서, 경외자들이 낮고 겸손한 자세로 신앙의 길을 간다면, 다윗 왕권이 감당하도록 하셨던 하나님 나라 통치 구현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라도, 어디서도 찬양해야 하는 이유는, 높으신 하나님께서 여기에도 여기까지 오셨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낮추실지언정,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은 높은 자리에 앉게 하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주 하나님 같은 이가 또 어디 있으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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