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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5-01)

 


오직 여호와께만 영광을

시편 115편 1-18절


 

우리의 성공과 성취는 우리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눈에 보이는 것에 의지하려 하지만, 그러한 우상은 아무런 힘도 없으며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도움이시며 방패가 되시며, 그를 의지하는 자는 안전하며 참된 평안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백성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지는 약속입니다.

 

 

  • 시편 115편은 할렐루야 시편 모음집의 다섯 번째 시편입니다. 115-117편은 각 시편의 맨 마지막 구절에 ‘할렐루야’라는 명령형이 나오는데, 115편은 그 첫 번째 시편입니다. 115편은 열방이 섬기는 우상의 헛됨을 지적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중요성을 부각함과 동시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의 중요성을 제시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언약 당사자의 범주를 확장하고 있습니다.

 

영광은 하나님께 돌려져야 함(1)

영광은 우리에게 돌려져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는 자신의 업적과 성공을 자랑하고 싶어 하는 유혹이 큽니다. 그러나 우리의 모든 성공과 성취는 우리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것, 우리의 재능, 건강, 기회, 그리고 축복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스스로를 자랑할 것이 아니라,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1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만 영광을 돌리소서(1)

 

본 시의 시작은 매우 독특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긍정적인 고백, 하나님께 대한 간절한 요청 등 전형적으로 시편을 시작하는 문장 대신에 ‘우리에게 영광을 돌리지 마소서’라는 부정적인 간구를 두 번 반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영광은 오직 인자하고 진실한 성품을 지니신 여호와 하나님께만 돌려져야 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인자와 진실은 여호와의 언약적 성품으로 111편에서 이미 집중적으로 강조된 바 있으며, 112편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삶의 특성으로도 묘사된 바 있습니다. 113편은 그 여호와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함을 제시했고, 114편은 이스라엘의 구속주 하나님이 곧 온 우주의 창조주이심을 설명했습니다. 이제 115편은 이러한 언약의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과 어떻게 연결해나갈지 우리는 주목해서 살펴야 합니다. 1절은 일단 여호와께서 언약의 하나님이심을 그래서 영광은 그분께만 돌려져야 함을 강력하게 설파합니다.

 

열방의 우상은 거짓 신들임(2-8)

우상들은 생명력이 없습니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합니다. 이는 우상이 아무런 실제적인 힘도 능력도 없음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이 의지하는 우상들은 그저 금속이나 돌로 만들어진 무생물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무력한 우상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2어찌하여 뭇 나라가 그들의 하나님이 이제 어디 있느냐 말하게 하리이까

3오직 우리 하나님은 하늘에 계셔서 원하시는 모든 것을 행하셨나이다

4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5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6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며 코가 있어도 냄새 맡지 못하며

7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목구멍이 있어도 작은 소리조차 내지 못하느니라

8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2-8)

 

2절부터는 새로운 주제가 등장합니다. 바로 열방이 믿고 의지하는 우상입니다. 2절은 열방이 이스라엘을 향해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어디 있느냐’고 말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단언합니다. 그 이유는 3절에 설명되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어느 한 장소에만 계시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계시고, 그렇기에 원하는 모든 것을 그 뜻대로 행하실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는 질문 자체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에게는 전혀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의 ‘하늘’이란 단순한 지구의 대기층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계시는 초월적인 장소를 상징적으로 뜻합니다. 2절은 사실상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둘 필요가 있습니다.

4-7절은 한 가지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달합니다. 바로 ‘우상들은 생명이 없는 죽은 신들이다’라는 것입니다.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한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한다, 코가 있어도 냄새를 맡지 못한다,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한다,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한다고 반복되는 표현들은 겉으로는 존재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존재하지 않음을 뜻하며, 더 정확하게 개념화한다면 ‘겉으로는 생명을 가진 것 같지만 사실은 죽은 신들’임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이 우상에게 간구할 때는 그 우상이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을 것으로 여기기 때문인데, 그 우상들은 사실상 죽은 신들, 거짓 신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신들이므로, 간구하는 자를 위해 그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는 존재일 뿐입니다. 4-7절에서 계속 반복적으로 암시되고 있는 ‘죽음’의 주제를 또한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8절은 이 모든 내용을 정리하면서 ‘우상을 만들거나 그 우상을 믿는 사람은 그 우상들과 같을 뿐이다’라고 단언합니다. 다시 말해, 우상을 섬기려는 자들은 우상처럼 거짓에 빠지게 될 뿐이며, 우상들을 통해 무언가를 얻으려는 그들의 노력은 헛될 뿐이고, 오히려 우상으로 인해 생명력을 얻지 못하고 죽음에 속한 결과를 얻을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열매와 효과도 얻지 못할 것이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신뢰해야 함(9-14)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시며 방패가 되십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다양한 어려움과 도전이 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시고 인도하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신뢰를 요구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모든 자는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이 받을 수 있는 안전과 보호를 보장합니다.

 

9이스라엘아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10아론의 집이여 여호와를 의지하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11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의지하여라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

12여호와께서 우리를 생각하사 복을 주시되 이스라엘 집에도 복을 주시고 아론의 집에도 복을 주시며

13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을 막론하고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복을 주시리로다

14여호와께서 너희를 곧 너희와 너희의 자손을 더욱 번창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9-14)

 

9절부터 14절은 114편의 흐름에서 사실상의 본론에 해당합니다. 이 문단은 한 가지 독특한 문예적 구조를 반복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바로 ‘언약 사명자의 범주 확장’이라는 구조입니다. 두 개의 소문단(9-11절과 12-14절)로 나뉘는데, 두 소문단 모두 이러한 언약 사명자의 범주를 확장하여 기술하고 있습니다. 차례로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9-11절은 ‘여호와를 의지하라(신뢰하라, 바타흐 동사), 그는 너희의 도움이시요 너희의 방패시로다’라는 후렴구를 세 번 반복하는 구조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여호와를 신뢰해야 할 대상이 9, 10, 11절에 각각 다르게 기술됩니다. 9절은 ‘이스라엘’을, 10절은 ‘아론의 집’을, 11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을 부릅니다. 9절은 먼저 언약 공동체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거론합니다. 이는 매우 자연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여호와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언약 공동체 전체인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4:6에 그려진 인자하심이 바로 이런 경우입니다. 10절은 ‘아론의 집’, 즉 레위 지파 및 제사장 가문을 거론합니다. 아론의 집은 하나님 나라의 전체 그림에 있어서 하나님께 가장 가까이 거하는 구별된 존재들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열두 지파와 구별되는 레위 지파가 존재하는데, 그 레위 지파 중에서도 또다시 거룩하게 구별된 것이 아론의 집, 즉 제사장 가문입니다. 9절의 이스라엘 민족에서 10절의 아론의 집으로 이어진 것은 거룩의 차등에 있어서 더 거룩한 자들을 언급하는 방향으로 움직인 것으로, 확장이 아닌 거룩 영역의 수축 혹은 거룩 영역의 집중화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매우 놀랍게도 11절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을 언급합니다. 112편 등에서 살폈던 바와 같이 이 표현은 언약 사명자의 범주를 오히려 확장하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아론의 집이나 이스라엘이라는 언급 없이, 그냥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이라 말하면 지파나 민족에 관계없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 누구라도 이에 포함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9-11절은 하나님을 신뢰해야 할 대상을 확장했습니다.

두 번째 소문단인 12-14절은 ‘이스라엘’ ‘아른의 집’-‘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의 집중과 확장 구조를 다시 한 번 동일하게 보여줍니다. 이 문단의 내용은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복을 주다’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바라크’동사입니다. 바라크 동사가 기본적으로 가진 의미는 ‘생명력을 통한 번성’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은 여섯째 날 동물들과 사람을 만드시고는 ‘복을 주셨고’, 그 이후 곧바로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따라서 바라크 동사는 죽음에 반대되는 생명의 이미지, 번성과 부흥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생명력의 충만으로서 의복이 이스라엘-아론의 집-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들에게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4절은 이러한 과정의 자연스러운 결과로서 ‘하나님께서 너희를 번성하게 하실 것이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9-14절은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러면 지켜주신다’는 메시지 및 ‘너희를 번성하게 하실 것이다’라는 두 가지 메시지를 전달하되, 이스라엘이나 제사장 그룹뿐 아니라 여호와를 경외하는 백성 전체에게 이 두 가지 메시지가 전달되고 적용되게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 여호와를 송축해야 할 이유(15-18)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으로, 하늘의 주인이시며, 땅은 우리에게 맡기신 선물입니다. 이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뜻에 따라 살아가야 한다는 책임을 일깨워 줍니다. 그분께 복을 받는 자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주권을 가지신 분임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창조와 주권에 따라 복을 주십니다.

 

15너희는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로다

16하늘은 여호와의 하늘이라도 땅은 사람에게 주셨도다

17죽은 자들은 여호와를 찬양하지 못하나니 적막한 데로 내려가는 자들은 아무도 찬양하지 못하리로다

18우리는 이제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송축하리로다 할렐루야(15-18)

 

이렇게 이스라엘에게 복을 베푸신 여호와를 15절은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로 설명합니다. 이제 우리는 111-114편의 흐름과 잘 맞아 들어가는 ‘창조주’의 주제를 다시금 만나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확장되어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 이어지는 것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는 ‘피조 세계 전체의 하나님’이신 것이 다시 명확하게 설명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으신 하늘과 땅을 16절은 두 가지로 나눠 말합니다. 하늘은 하나님께 속했지만, 땅은 사람에게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땅은 사람이 살아갈 하나님의 나라이며 주님 나라를 일구어나갈 통치 영역입니다. 그런데, 그 땅 아래에는 죽음의 세계가 있습니다. 17절이 바로 이 죽음의 메시지를 다루는데, 앞서 2-8절이 언급했던 우상들의 생명령 없음이 연결되는 세계가 바로 17절의 죽음의 세계입니다. 17절은 죽음에 대해서 말하되, 죽음의 세계에서는 여호와를 찬송할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이러한 17절의 메시지는 115편의 독자들에게 매우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생명을 창조할 수 없는 이방의 우상을 섬기지 말아야 하며, 생명으로 복 주시는 하나님 여호와를 섬겨야 하는데, 그렇게 여호와를 섬기는 방법이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앙’이라는 점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과 우리의 반응, 그리고 찬양의 중요성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은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며, 영원한 축복을 약속하십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송축하고 그의 이름을 높이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양을 기쁘게 받으시기를 기도하며, 할렐루야로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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