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14-01)
하나님의 능력과 우리의 신뢰
시편 114편 1-8절
혹시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한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인생의 광야를 지나고 있을 때, 우리가 느낀 두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신 경험이 있습니까? 이스라엘이 애굽을 떠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노예의 삶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찾는 기쁨과 두려움이 섞인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홍해를 가르시고, 광야를 지나며,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을 나타내셨습니다.
- 시편 114편은 할렐루야 시편 모음집의 네 번째 시편입니다. 113편이 한나의 노래를 인용하여 여호와 앞에 겸손한 자들을 통해 여호와의 통치가 실현된다고 말했다면, 114편은 출애굽 및 가나안 정복 사건을 언급하여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은혜에 대해 서술함으로써, 구속 역사를 통해서 여호와의 통치가 실현되었던 과거 역사를 잠시 되돌아 봅니다. 114편 자체에는 ‘할렐루야’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습니다.
출애굽 사건 및 그 의미(1-2)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하셔서 새로운 시작을 허락하십니다. 그 백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며, 그분의 성소와 영토가 되는 경험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절망 속에서 구원하시고, 새로운 희망을 주십니다.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하십니다.
1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오며 야곱의 집안이 언어가 다른 민족에게서 나올 때에
2유다는 여호와의 성소가 되고 이스라엘은 그의 영토가 되었도다(1-2)
시편 114편은 111-118편의 흐름에서 상당히 독특한 특징들을 보여줍니다. 우선 111-113편의 서두에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할렐루야’라는 명령형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이 명령형은 115-117편에서는 시의 맨 마지막에 나타납니다. 즉, 114편은 이러한 ‘할렐루야’명령형의 위치가 변화되는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으면서 ‘할렐루야’는 보여주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이 시편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니라는 것입니다. 114편의 목표는 오히려 과거의 역사적 사건을 언급함으로 111-118편의 흐름에서 어떤 특별한 메시지를 보여주려는 것 같습니다. 또 한 가지 특징은 출애굽 및 가나안 정복과 관련된 사건들을 계속해서 언급한다는 점입니다. 111-118편의 흐름이 대개 과거의 구속사 사건에 집중하기보다는 열방과 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광대한 통치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데, 114편은 예외가 됩니다.
1절은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온 출애굽 사건을 114편 전체의 기본적인 배경으로 설정합니다. 특별히 애굽을 ‘언어가 다른 민족’으로 설정하면서 이스라엘과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을 ‘야곱의 집’으로 표현함으로써 ‘집’이라는 단어를 통해 아브라함 언약을 통한 구속사의 진전에 관심을 표명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2절에 나타난 ‘유다와 이스라엘에 대한 선택’이라는 주제에 주목해야 합니다. 2절은 114편 전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핵심이 되는 중요한 구절입니다. 2절 상반절은 여호와께서 유다를 그의 ‘거룩’ 혹은 ‘거룩한 성소’)으로 선택하셨음을 말하며, 하반절은 이스라엘을 그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왕국의 영역으로 삼으셨음을 말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주제는 매우 중요합니다. 창세기 2장에서 하나님은 ‘에덴동산’이라는 모델을 선택하셔서, 그 모델에서 하나님 나라가 성취됨으로 온 우주 피조 세계에서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게 하려는 방식을 취하셨습니다.
즉, 에덴동산은 온 우주의 ‘모형’이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형’의 개념은 구속사에서 그대로 다시 드러납니다. 온 열방의 모형으로 이스라엘이 선택되었고, 온 공간의 모형으로 가나안 땅이 선택되었고, 온 시간의 모형으로 안식일 및 절기들이 선택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 2절이 유다/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공간 혹은 하나님의 선택된 민족의 모형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은 의미 깊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신 사건, 즉 ‘구속 사건’은 ‘창조 사건의 회복’을 위한 것입니다. 이스라엘만을 선택하고 구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온 열방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중간적인 임시 통로로 이스라엘을 제한적으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성경에서는 창조의 주제와 구속의 주제를 함께 사용하면서 구속을 ‘재창조’ 혹은 ‘새창조’로 이해합니다. 114편에서는 이러한 구속 사건을 과거 역사 가운데 언급하는데, 이러한 구속 사건을 이루시기 위해서 ‘창조주로서의 능력’이 사용되었음을 집중적으로 조망합니다.
출애굽 사건의 구체적인 예들(3-6)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능력으로 자연을 다스리시고, 그의 백성을 인도하십니다. 우리 삶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능력으로 함께하시며, 우리의 길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믿고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 앞에 어떤 폭풍이 닥치더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우리의 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3바다가 보고 도망하며 요단은 물러갔으니
4산들은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은 어린 양들 같이 뛰었도다
5바다야 네가 도망함은 어찌함이며 요단아 네가 물러감은 어찌함인가
6너희 산들아 숫양들 같이 뛰놀며 작은 산들아 어린 양들 같이 뛰놂은 어찌함인가(3-6)
먼저 3-6절은 출애굽 때 하나님께서 일하셨던 특정한 사건들을 언급합니다. 3절 상반절의 ‘바다가 보고 도망한 사건’은 출애굽기 14장의 홍해 사건이며, 하반절의 ‘요단이 물러간 사건’은 여호수아 3장의 요단강 도하 사건입니다. 4절의 ‘산들이 흔들린 사건’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강림하여 산들을 흔드신 출애굽기 19장 이하의 사건을 의미합니다.
5-6절은 3-4절에서 사용한 어휘 및 표현들을 한번 더 거의 그대로 사용하면서, 이 사건들이 일어난 이유를 묻고 있습니다. 즉, 출애굽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바다/강물에게 명령하시고 산들을 떨게 하면서 강림하신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묻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상 3-6절의 짧은 본문만으로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을 찾아내기는 쉽지 않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3-6절은 대답을 구하고 있다기보다는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만을 의도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에 대한 대답을 어떻게 얻어야 합니까? 기본적으로 고대 근동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 사건에 대해 어떤 배경 지식을 가지고 있었을지 먼저 알아본 후에, 7-8절에서 더 정확한 본문의 의도를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고대 근동에서 물은 죽음/무질서를 뜻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1장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 물을 다스려서 궁창 위의 물과 아래의 물로 나누심으로 질서를 부여하셨습니다. 또한 물에게 명령하사 한 곳으로 모이게 하여 바다가 되게 하시고 그 경계를 정하셨습니다. 물은 원래는 무질서이지만, 하나님의 통치 아래 놓이게 되면 질서 및 하나님의 평화를 뜻하게 됩니다. 출애굽 사건에서 홍해를 가르신 사건, 요단강 물을 멈추신 사건은 모두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께서 물을 다스리신창조 사건을 기초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들어가게 되는 가나안 땅은 하나님 나라 회복을 위한 ‘모형’이기에, 그 모형으로 들어가는 데 방해가 되는 물을 다스려 구원의 길을 확보하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창조의 능력’으로 ‘구속’을 이루사 ‘창조 때의 하나님 나라의 통치를 회복’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산과 땅이 흔들린 시내산 사건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해볼 수 있습니다. 산을 흔들 수 있는 권세는 오직 창조주 여호와에게만 있으므로, 여호와가 참 신이며 창조주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결국 3-6절은 출애굽의 세부적인 사건들을 언급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하나님, 즉 구속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사실은 이 모든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이시며, 그 창조의 능력으로 자신의 나라를 회복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맛사/리바 사건에 대한 설명(7-8)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경이로운 것입니다. 자연을 창조하시고, 그 속에서 그의 능력을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우리는 경외감을 느낍니다. 우리도 자연을 통해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고, 그분의 능력과 사랑에 감사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삶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놀라운 일들을 행하십니다. 삶을 통해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경험하며, 그분을 더욱 신뢰합시다.
7땅이여 너는 주 앞 곧 야곱의 하나님 앞에서 떨지어다
8그가 반석을 쳐서 못물이 되게 하시며 차돌로 샘물이 되게 하셨도다(7-8)
이러한 3-6절의 흐름에 이어 7-8절은 이제 ‘땅’에 대한 한 가지 사건을 더 언급합니다. 7절은 땅을 향해 ‘하나님 앞에서 떨라’고 명령합니다. 3-6절에서는 산들이 하나님의 임재에 떨었는데, 이제는 땅 전체를 향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8절에서 제시되는데, 바로 출애굽기 17장에 나오는 맛사/므리바 사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실 물이 없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여 반석을 치게 하시고 그 반석에서 물이 나와 백성들이 마시게 되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이 사건을 언급하는 7-8절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8절은 상반절과 하반절의 평행법 구조를 통해서 반석이 연못이 되었고 굳은 돌이 샘물이 되었다고 묘사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8절의 주어입니다. 이 모든 행위를 한 주체는 모세가 아닌 여호와 하나님으로 서술되고 있습니다. 즉, 창조주되신 하나님께서 이 일을 행하셨다는 것입니다. 상반절과 하반절에 반복된 대로, 반석이 물이 되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 가능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동시에 3-6절에서 반복해서 서술된 것처럼 물에 대한 통치권을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셔서 그의 통치 아래에서 물이 회복과 구원을 위해서 사용된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114편의 흐름에서 7-8절이 하는 역할은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시며, 구속의 역사를 이루기 위해 만물의 창조 때 사용하셨던 그 전능하신 능력을 다시금 사용하신다는 사실입니다.
111편 및 113편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만물 곧 우주 전체에 대한 통치권을 가지고 계심을 반복하여 언급했습니다. 이제 114편은 그 창조주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셨고 가나안 땅을 선택하셔서 그 능력으로 구속사를 진행하셨음을 언급했습니다. 114편은 이러한 특별한 구속사적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115-117편으로 이어지는 중간 연결 지점을 형성합니다. 이스라엘을 통해 열방으로, 제사장 가문/다윗 왕가를 통해 여호와를 경외하는 공동체 전체로 다시금 확장되어 나갈 근거를 마련한 것입니다. 114편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여호와는 우주 전체를 다스리시는 분이며, 그 우주적 구원을 반드시 다시 이루실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의 모든 상황 속에서도 그의 능력으로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겪었던 어려움과 두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지키시고 인도하셨듯이, 우리도 인생의 광야를 지날 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우리의 길을 인도하십니다. 우리가 직면하는 어려움과 도전 앞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의 반석이 되어주시고, 우리의 갈급함을 채우시는 분임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구독과 아래 [광고베너]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19 시편(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편(145) - 시편 116편 1-11절 - 죽음에서 구원하신 주님께 드리는 감사 (3) | 2024.09.08 |
---|---|
시편(144) - 시편 115편 1-18절 - 오직 여호와께만 영광을 (0) | 2024.09.07 |
시편(142) - 시편 113편 1-9절 - 하나님의 높으심과 자비로우심 (0) | 2024.09.07 |
시편(141) - 시편 112편 1-10절 - 의로운 자의 축복과 번영 (1) | 2024.09.07 |
시편(140) - 시편 111편 1-10절 - 영원히 기억될 하나님의 업적 (7) | 2024.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