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19-11)
말씀의 길을 따라가는 삶
시편 119편 161-176절
생을 살아가는 터전의 주인은 생을 이어 나가는 자들의 것임을 보여준 영화 “바르다가 사랑한 얼굴들”은 현실과 공간이 가진 한계와 편견을 깨고 사진을 통해 이를 표현해 화제를 모은 바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도 환경이 몰락해도 생의 주인도, 말씀을 지킬 자도 우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 시인이 사랑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완벽하고 완전합니다. 시인은 말씀에 매료되어 기도의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과 헌신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인의 일방적인 사랑과 헌신만을 받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도 시인에게 평안과 끝없는 가르침과 즐거움을 안겨주며, 도움이 되어줍니다. 시인은 하나님 말씀과의 끊을 수 없는 상호관계 속에서 인생길을 계속 걸어갑니다.
쉰/썬스물한 번째 알파벳) 연(161-168)
핍박이 계속되지만, 말씀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기쁨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군사처럼 의기양양했고, 진리를 지켜 거짓에 굴하지 않았습니다. 세상의 근심은 말씀의 존재로 물러가며, 말씀이 마음을 채우면 고난 중에도 찬양이 흘러나왔고 불안은 평안으로 변했습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약속을 향해 살아가게 합니다.
161○고관들이 거짓으로 나를 핍박하오나 나의 마음은 주의 말씀만 경외하나이다
162사람이 많은 탈취물을 얻은 것처럼 나는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나이다
163나는 거짓을 미워하며 싫어하고 주의 율법을 사랑하나이다
164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
165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
166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바라며 주의 계명들을 행하였나이다
167내 영혼이 주의 증거들을 지켰사오며 내가 이를 지극히 사랑하나이다
168내가 주의 법도들과 증거들을 지켰사오니 나의 모든 행위가 주 앞에 있음이니이다(161-168)
고관들의 핍박 속에서도 나는 주의 말씀을 경외하고 기뻐합니다. 주의 율법을 사랑하며, 주의 구원을 바라며 계명들을 지킵니다. 나의 모든 길이 주의 앞에 있음을 기억합니다.
(1)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함(161-164)
시인은 나그네 생활을 하면서(19,54) 고관들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있습니다(23,84,121,134,157,161). 이들은 ‘까닭 없이’, ‘거짓으로’로 번역됨: 161) 시인을 괴롭합니다. 시인에게 불리한 거짓말을 꾸며내어 비방하며(69,78,86), 함정을 놓는 등. 호시탐탐 그를 멸할 기회를 엿봅니다(85,95,110). 악인과 이들이 저지르는 악행은 본 시편 119편의 스물두 단락 중 오직 네 단락(1단락[1-8], 2단락[9-16], 4단락[25-32], 22단락[169-176])을 제외한 모든 단락에서 직접적으로 언급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핍박도 시인을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습니다. 말씀에 대한 그의 사랑은 마음과 행동의 일치를 통해 표현되었습니다. 시인은 악인들이 자신을 핍박해도 자신의 마음은 하나님 말씀만 경외한다고 선언합니다(161). 여기서 ‘경외하다’라는 말은 ‘두려워 떨다’의 뜻입니다. 시인은 이들의 비방을 염려하기도 했지만(39절), 그들 자체나 그들의 비방과 핍박의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 두렵고 떨림으로 대하고, 이것에만 온 신경을 집중합니다. 말씀을 향한 두려움과 떨림은 공포가 아니라 기쁨이 함께하는 경외심입니다. 마치 전쟁에서 많은 전리품(‘탈취물’로 번역됨; 162)을 얻어 환희하는 자처럼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에 환회할 수 있습니다. 시인이 이토록 말씀을 즐거워하는 것은 그 말씀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거짓을 미워할 뿐 아니라 혐오합니다. 거짓은 악인이 좋아하고 즐겨하는 도구이며, 악인의 실체를 대표합니다. 그러나 율법에는 거짓이 자리할 데가 없이, 오직 의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시인은 이런 하나님의 의로운 규례에 감사하여 하루에 일곱 번씩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일곱 번의 찬양은 매일 온전한 찬양을 드리기 원하는 시인의 마음을 함축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과 순종(165-168)
거짓을 미워하고 하나님의 의로운 율법을 사랑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으로부터 큰 평안과 구원이 약속되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이들에게는 장애물이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삶에 난관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의로운 말씀을 통해 못 헤쳐 나갈 일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구원까지 기대할 수 있습니다(166). 하나님께서 큰 평안과 구원을 약속하셨으니, 어떤 시련 속에서도 하나님 말씀을 사랑하는 자에게서 즐거움과 찬양이 떠날 수 없습니다(161-164). 시인의 하나님 말씀에 대한 사랑은 그가 말씀을 지킴으로써 확증됩니다. 시인은 166-168절에서 하나님의 법도나 계명들을 지켰다고 피력합니다. 특히, ‘행했다’, ‘지켰다’는 ‘순종’을 나타내는 동사를 과거 시제로 세 번 반복함으로써, 그가 순종했음을 강력히 증명합니다. 모든 행위(길들)가 하나님 앞에 있으니 그는 떳떳하며 숨길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행위들을 점검해보시면 순종했는지 분명히 아실 것입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증거들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말씀을 지극히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억지로 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말씀을 배우고 지키려고 힘썼습니다. 밤이나 새벽에도 깨어 하나님께 가르침을 구하고 말씀을 지켰습니다(55, 62, 147, 148). 말씀을 지키면서 하나님의 구원을 소망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보호하고 부르짖음을 듣고 구원하실 것을 믿었고(시 34:15,17; 145:17-20),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보호하여 악인에게서 건지실 것을 믿었으며(시 97:10), 말씀을 구하는 자에게 구원이 가까움(155)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시 145:17-20).
타브(스물두 번째 알파벳) 연(169-176)
어려운 환경에서는 누구나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한 신뢰와 의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임을 깨닫습니다. 자신의 부르짖음이 하나님께 전달되고, 하나님의 의로운 말씀이 자신에게 다가와 깨닫게 하기를 간구할 것입니다. 시인은 주의 말씀대로 자신을 구해주시길 바라며, 주의 은혜에 감사하며 주와 주의 말씀을 찬송하고 노래하겠다고 다짐합니다.
169○여호와여 나의 부르짖음이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깨닫게 하소서
170나의 간구가 주의 앞에 이르게 하시고 주의 말씀대로 나를 건지소서
171주께서 율례를 내게 가르치시므로 내 입술이 주를 찬양하리이다
172주의 모든 계명들이 의로우므로 내 혀가 주의 말씀을 노래하리이다
173내가 주의 법도들을 택하였사오니 주의 손이 항상 나의 도움이 되게 하소서
174여호와여 내가 주의 구원을 사모하였사오며 주의 율법을 즐거워하나이다
175내 영혼을 살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주를 찬송하리이다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
176잃은 양 같이 내가 방황하오니 주의 종을 찾으소서 내가 주의 계명들을 잊지 아니함이니이다(169-176)
시편 기자는 나의 부르짖음이 주께 이르러 구원과 깨달음을 구합니다. 주의 말씀을 찬양하고 주의 계명들을 사랑하며 따르기를 다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이 주를 찬송하며 주의 규례들이 나를 돕게 하소서 간구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대로 구원하시기를 간구(169-170)
시편 119편의 마지막 단락은 시인의 간구로 시작했습니다. 시편에서 가장 긴 시의 마지막 단락에 이르렀기만, 시인은 여전히 고통 속에 있으며 하나님의 응답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낙심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고통스러운 순간들을 피하지 않고 맞닥뜨리며, 하나님께 간구하고, 그분의 말씀대로 살기를 선택합니다. 시인의 부르짖음과 간구는 하나님께서 응답하실 때까지 계속될 것이며, 하나님 앞에 계속 가까이 나갈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구원을 고대하면서도, 그 가르침과 깨달음을 꾸준히 구합니다. 시인은 이때에도 하나님의 구원과 가르침이 그분의 말씀을 따라 이루어지기를 기대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찬양(171-172)
시인의 부르짖는 간구는 찬양하는 소리로 바뀝니다. 시인은 입술과 혀로 하나님과 그 말씀을 찬양합니다. ‘찬양하리이다’(171)는 ‘시냇물이 졸졸 흐르다’,‘거품이 부글부글 솟아나다’의 뜻이며, ‘노래하리이다’(172)는 ‘(들짐승이) 소리 내다’의 뜻입니다. 시인의 입에서 찬양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것을 생생하게 표현합니다. 이때 시인은 찬양의 이유로 두 가지를 드는데, 이들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것입니다. 첫째는 말씀의 가르침이며, 둘째는 말씀의 의로운 속성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줄곧 율례들을 가르쳐달라고 간구해왔습니다(12,26,33,64,124,135). 하나님께서는 그 간구에 응하여 말씀을 가르쳐주시며 좋은 스승이 되어주셨습니다(171).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계명과 율례는 모두 의로움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 말씀들은 하나님의 속성인 의를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시인은 이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노래를 삼습니다.
(3)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173-175)
시인의 찬양은 다시 간구로 전환됩니다. 하나님의 손이 시인의 도움이 되게 해달라는 간구는 그가 하나님의 능력과 도움을 신뢰하고 있음을 함축합니다. 그는 말씀의 능력도 의지하므로, 하나님의 규례들이 자신을 돕게 해달라고 간청합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시인이 의지적으로 선택했고 의지적으로 지키려고 한 대상입니다. 그는 말씀을 통하여 깨달은 하나님의 구원을 사모하며 기다립니다. 율법은 늘 그의 기쁨이었습니다(77,92,174). 시인은 사랑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회복되어 하나님을 찬송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4) 방황하는 당신의 종을 찾으소서(176)
시인의 기도는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며 마무리됩니다. 이는 아직 하나님의 응답이 없음을 암시합니다. 시인은 자기가 길 잃은 양처럼 헤매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길 잃은 양은 목자와 양 무리에서 벗어나 홀로 정처없이 방황합니다. 목자가 찾아주지 않으면, 언제든 들짐승의 먹잇감이나 강도의 탈취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또한, 험한 길이나 어둠 속에서 발을 헛디디거나 길을 잘못들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습니다. 시인이 자신을 양으로 비유하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 속한 양이며, 하나님께서 그의 목자임을 상기시키는 목적에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한 목자이시므로 자기 양이 길을 잃은 것을 아신다면 그냥 위험에 내버려두실 리 없습니다. 그분은 분명 위험을 감수하고 자신의 양을 찾으실 것이며, 찾은 후 양을 사랑으로 돌봐주실 것입니다. 시인은 하나님께 이런 점을 호소하며, ‘주(당신)의 종을 찾으소서’라고 간구합니다. 그 불쌍한 양이 바로 하나님을 섬기는 종, 시인 자신임을 상기시킵니다. 이는 종이 주인의 도움을 원하여 손을 바라보듯이(시 123:2), 시인이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보며 은혜와 긍휼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달라는 뜻입니다. 이에 덧붙여, 시인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잊지 않았음(61,83,109,141,153,176)을 다시금 고백하며 긴 기도를 마칩니다.
장장 긴 시편 119편을 마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지켜왔다는 말씀은, 어쩌면 시인에게서 수백 번이고 들었을 그 소린, 수많은 사람에게서 하나님께서 듣고 싶은 한마디였지 않았겠습니까! 구원을 열망하며 써 내려간 사랑과 순종의 대서사시는 대역사극을 보는 듯합니다. 항상 이러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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