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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19-09)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경외와 열정

시편 119편 129-144절


 

하나님의 말씀은 경이롭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규칙이 아니라, 깊은 신비와 지혜를 지니고 있으며, 그것이 우리의 영혼을 이끄는 빛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 때, 우리는 명철을 얻고 미련한 자도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우리의 경외와 존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외하며 그것을 삶에 적용할 때, 우리는 진정한 지혜를 얻을 수 있습니다.

 

  • 하나님의 말씀은 위대하고 놀랍습니다. 그 말씀 안에 의와 성실함과 진리가 들어 있으며, 말씀 자체가 의롭고 변함없으며 참됩니다. 이러한 특성을 바탕으로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깨달음과 지혜를 줍니다.

 

페(열일곱 번째 알파벳) 연(129-136)

하나님의 명령을 사모하며, 그 갈망이 그의 마음을 피곤하게 만듭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힘을 얻고자 하며,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법도를 배우고자 하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 말씀을 통해 힘과 지혜를 얻고자 하는 갈망을 가져야 함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가 그의 말씀을 통해 인도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129○주의 증거들은 놀라우므로 내 영혼이 이를 지키나이다

130주의 말씀을 열면 빛이 비치어 우둔한 사람들을 깨닫게 하나이다

131내가 주의 계명들을 사모하므로 내가 입을 열고 헐떡였나이다

132주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들에게 베푸시던 대로 내게 돌이키사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133나의 발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

134사람의 박해에서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135주의 얼굴을 주의 종에게 비추시고 주의 율례로 나를 가르치소서

136그들이 주의 법을 지키지 아니하므로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129-136)

 

하나님의 말씀의 경이로움과 그로 인한 깨달음을 강조합니다.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명령을 사모하며, 그 말씀을 통해 명철과 지혜를 얻기를 갈망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길을 인도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또한 하나님이 자신의 기도를 들으시고,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간구하며, 악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시기를 바랍니다.

 

(1) 놀라운 하나님의 말씀(129-131)

 

시인은 하나님의 증거들이 놀랍다고 소개합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사건들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었고, 여기에 하나님께서 행하신 위대하고 놀라운 일들이 수없이 기술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열면 거기서 빛이 나와 지혜가 없는 자들에게 깨달음과 분별력을 줍니다. ‘빛’은 ‘생명’, ‘구원’, ‘건강’, ‘치료’, ‘거짓이 없음’ 등을 암시하기도 하는데(시 27:1; 눅 11:34; 요 8:12; 요일 1:5-9), 여기서는 깨달음을 주는 ‘지혜’로 설명됨을 알 수 있습니다. 유사하게, 앞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깝고 먼 곳을 비춰주어 인도하는 등과 빛으로도 비유하였습니다(105). 시인은 직접 하나님의 말씀이 그에게 지식과 깨달음을 주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주의 깊게 읽고 묵상하며 그대로 순종하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시인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너무 사모한 나머지 입을 벌려 헐떡였습니다. 시인의 이런 모습은 시편 42편에서 하나님을 찾기에 갈급한 사람을 시냇물을 찾아 정신없이 헤매는 목마른 사슴으로 비유한 것을 떠오르게 합니다. 본 시에서도 유사하게, 목마른 사슴과 같이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에 갈증과 배고픔을 느껴 어쩔 줄 몰라하는 모습을 연상할 수 있습니다. 사슴은 목이 타므로 물을 찾기 전까지는 포기하지 않고 돌아다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시인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워 익히기 등 하나님 말씀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을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132-134)

 

시인은 이토록 말씀을 사랑하지만, 현재 핍박을 받고 있으므로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기 전에, 시인은 자신이 하나님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임을 밝힙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각 이름마다 하나님의 성품과 속성을 함축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이름에 나타난 다양하고 놀라운 소식을 접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얼굴을 향하여 주목하며 구원의 은혜를 베푸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종국적으로 나타나서 자신이 말씀의 반석 위에 서기를 고대합니다. 굳건한 말씀의 바탕 위에 견고한 발걸음으로 인생길을 걷고, 그 여정을 갈 때 어떤 죄도 자신에게 영향력을 끼치지 못할 것을 기대합니다. 특히 박해자들이 그를 핍박하고 있으므로, 그들에게서 구해달라고 재차 하나님께 간구합니다(134,121,122). 하나님의 구원이 임하면 그때에도 시인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법도를 지킬 것을 약속드립니다.

 

(3) 하나님의 가르침을 간구(135-136)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얼굴을 자신에게 비춰주시고 말씀을 가르쳐주시길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얼굴이나 얼굴의 빛을 누군가에게 비추는 것은 하나님의 관심과 호의적인 태도를 나타냅니다. 시인이 여기서 자신을 ‘주(당신)의 종’(140)이라고 부르며 하나님의 호의를 간구하는 모습은 민수기 6장에서 하나님이 제사장에게 가르치신 이스라엘 자손을 위한 축복 기도를 상기시킵니다(민 6:24,26). 이 기도에서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얼굴을 이스라엘에게 비추시고, 또 그들에게 얼굴을 향하심을 통해 은혜와 평강을 내려주심을 표현했습니다. 시인은 같은 표현을 이용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특별히 율례를 가르쳐주시길 간구합니다. 하나님한테서 율례를 배우는 것이야말로 그가 바라는 하나님의 축복이자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데는 기쁨이 동행합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지키면서 그 말씀을 자신의 즐거움으로 삼았습니다(24,77,92,143, 174). 그렇기에 핍박을 받는 중에도 말씀에 대한 열정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은 시람들을 보니 눈에서 눈물이 시냇물처럼 흘러나옵니다. ‘내 눈물이 시냇물 같이 흐르나이다’(136)라는 문장은 ‘내 눈이 시냇물을 흘리나이다’ 또는 ‘눈에서 시냇물이 흘러나오니이다’로도 번역되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시인의 안타까운 심정을 비유적으로 묘사합니다.

 

짜데(열여덟 번째 알파벳) 연(137-144)

하나님께서는 의로우시며, 그의 법이 정직하고 신뢰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롭고 그의 법은 모든 면에서 정직하십니다. 이 구절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법이 변함없는 기준이자 참된 진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에서도 이러한 하나님의 공의와 정직함을 신뢰하며, 그의 말씀에 따라 올바르게 살아가야 합니다.

 

137○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고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

138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 지극히 성실하니이다

139내 대적들이 주의 말씀을 잊어버렸으므로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

140주의 말씀이 심히 순수하므로 주의 종이 이를 사랑하나이다

141내가 미천하여 멸시를 당하나 주의 법도를 잊지 아니하였나이다

142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율법은 진리로소이다

143환난과 우환이 내게 미쳤으나 주의 계명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144주의 증거들은 영원히 의로우시니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사 살게 하소서(137-144)

 

하나님의 공의와 말씀의 진리성을 강조하며, 시편 기자가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고 지키기를 갈망하며, 그 말씀의 변함없는 진리와 영원성을 확신합니다. 이러한 신뢰와 열정 속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구원을 간구하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1) 의로우신 하나님과 의로운 하나님의 말씀(137-138)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므로 그의 말씀도 의롭습니다. ‘주의 판단은 옳으니이다’(137)에서 ‘주(당신)의 판단’은 하나님의 판단력이나 재판의 선고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7,13,20,30,39,52,75). 의롭고 옳다는 표현은 하나님 말씀의 정의로움, 공평함, 정직함, 완벽함 등을 강조합니다. ‘주께서 명령하신 증거들은 의롭고’(138)라는 문장은 ‘당신이 당신의 증거들을 의로움으로 명령하셨고’로도 번역이 가능합니다. 하나님과 말씀의 의로움에 덧붙여, 시인은 하나님께서 성실하시므로, 그분의 말씀도 성실하다고 선포합니다(138). 앞서 89-91절에서 시인이 창조 때를 묵상하며 하나님 말씀의 영원성과 성실성을 찬양한 데서도 보았듯이, ‘성실함’은 말씀의 변치 않음, 믿음직스러움, 신실함 등을 강조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잊지 않음(139-141)

 

하나님의 말씀은 누군가에게는 잊힌 말씀이고 누군가에게는 잊히지 않는 말씀입니다. 시인의 대적들은 의롭고 성실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렸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의와 성실도 함께 잊었습니다. 여기서 ‘잊었다’는 말은 기억을 못했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하찮게 여기고 무시했으며, 그 말씀을 어겼다는 뜻입니다. 시인은 이들의 태도에 ‘내 열정이 나를 삼켰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열정’이란 단어는 하나님에 대한 열심(왕하 10:16), 어떤 일을 이룰 때의 열심(왕하 19:31), 남에 대한 질투(전 4:4), 남을 질투하여 괴롭힘(사 11:13) 등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삼켰다’는 말은 ‘침묵하게 하다’, ‘소멸시키다’의 뜻입니다. 이를 종합하면, 시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이 있으므로, 대적들이 말씀을 무시하는 것을 보고 분노하여 ‘할 말을 잃었다’ 또는 ‘힘이 빠졌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인의 원수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시하여 잊었지만, 시인은 하나님 말씀의 진가를 알므로 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극히 순수합니다(140). ‘순수하다’라는 말은 ‘정련되다’라는 뜻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광석을 용광로에 넣어 불순물을 다 녹인 후 얻은 순금 같이 순도가 완전함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말씀의 순수성과 거룩함, 그 가치를 알기에, 시인은 앞에서도 수천, 수만의 금은보다 하나님의 율법이 나으며(72), 금이나 순금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127; 시 19:10). 그런데 완벽한 말씀에 자기 자신을 비교할 때, 시인은 별 볼 일 없고 사람들에게 멸시와 핍박을 당하고 있어 내세울 것이 없는 처지입니다. 그러나 시인의 마음에는 세상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는 의롭고 완벽한 하나님의 말씀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3) 진리와 의인 하나님의 말씀(142-144)

 

137, 138절에서 시인은 하나님과 말씀의 의로움과 성실함을 찬양했습니다. 그는 다시 한 번 하나님의 공의를 찬양하면서, 그 의의 영원성을 부각합니다.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에 수반되는 의는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실행되므로 시인은 그 의가 자기에게도 실현될 것을 기대합니다. 또한 시인은 하나님의 율법이 진리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점을 추가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공의와 진실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반영되어, 말씀을 사랑하여 잊지 않는 시인에게 의와 정직과 신실함을 가르쳐줍니다. 그러므로 환난과 우환이 시인에게 닥쳤으나,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기쁨을 찾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의 놀라운 의와 성실과 진실함이 녹아 있는 하나님 말씀을 계속 배워 깨닫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깊은 경외와 열정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경이롭고 우리의 영혼을 이끄는 빛입니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그에 의지하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더욱 굳건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는 진리로서 우리의 삶을 인도합니다. 우리가 이 진리를 따라 살아가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삶을 살아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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