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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122-01)


하나님 집의 평화를 위한 기도

시편 122편 1-9절


 

평화는 혼자만 누리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과 나누는 것입니다. 개인의 마음에서 시작하여 점점 공동체 전체로 퍼져나갑니다. 우리의 기도가 응답될 때, 그 평화는 우리 가정과 교회, 그리고 우리가 속한 모든 공동체에 흘러넘치게 됩니다. 평화는 단순한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충만한 열매입니다.

 

  • 예루살렘 순례의 길을 권유받은 시인은 기쁨으로 무리와 함께 하나님의 성전으로 향했습니다. 그곳에 도착한 시인은 하나님께 예배하러 온 수많은 순례자를 보고 감격하면서 예루살렘 성을 찬양합니다. 마지막으로, 시인은 그곳 예루살렘의 평안과 안녕을 기원합니다.

 

예루살렘 순례자의 기쁨(1-2)

하나님의 집으로 향하는 우리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처럼 기뻐하고 열정적이어야 합니다. 예배에 임하는 마음가짐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기억합시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고 사랑하는 공동체로서 교회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다시금 상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 즉 교회는 주님의 뜻과 사랑이 튼튼하게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1사람이 내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집에 올라가자 할 때에 내가 기뻐하였도다

2예루살렘아 우리 발이 네 성문 안에 섰도다(1-2)

 

시인은 여호와의 집에 가자는 다른 이들의 제안에 기쁨이 넘쳤던 일을 회상합니다. 여호와의 집은 예루살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을 가리킵니다. 예루살렘에 가는 길 또는 성전에 가는 길을 언급할 때, ‘올라가다’(1,4)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는 예루살렘의 지형적 특성을 문자 그대로 표현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이 골짜기 사이에 솟은 구릉(해발 780미터)에 위치했기 때문입니다. 성전을 향한 여정이 고되고 힘든 길이란 것을 알지만, 하나님의 임재와 예배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기쁨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마침내 시인은 예루살렘 성문에 도착했습니다. 함께 온무리와 성문 안에 발을 내딛고 서자, 시인은 예루살렘에 왔음을 실감하며 감격합니다. 성문은 예루살렘 주민들만 아니라 시인처럼 하나님께 예배하러 온 순례자 무리와 다른 용무로 성을 찾은 자들로 붐빕니다. 또한 백성들의 경제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며, 분쟁을 호소하며 판결을 구하는 재판이나 다른 중요한 모임들도 진행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곳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친히 자기의 이름을 두고 그의 예배의 터로 선택하신 곳이지 않습니까!(출 15:17; 신 12:5,11) 하나님의 임재가 깃들어 있는 평화의 도시가 아닙니까! 하나님을 섬기는 그의 백성이 오기를 소망하는 장소가 아닙니까! 시인의 마음은 기쁨과 감동에 차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찬양(3-5)

예루살렘은 정의와 공의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묘사됩니다. 이는 하나님의 집이 정의와 의를 실천하는 곳이어야 함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집에서의 정의와 공의를 위해 기도하고, 우리의 삶에서 이를 실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의 교회와 공동체가 하나님의 정의를 실현하는 장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3예루살렘아 너는 잘 짜여진 성읍과 같이 건설되었도다

4지파들 곧 여호와의 지파들이 여호와의 이름에 감사하려고 이스라엘의 전례대로 그리로 올라가는도다

5거기에 심판의 보좌를 두셨으니 곧 다윗의 집의 보좌로다(3-5)

 

눈앞에 펼쳐진 예루살렘 성을 둘러보니, 시인의 입에서는 찬양이 절로 나옵니다. 시인은 예루살렘이 오밀조밀하게 짜인 성읍처럼 건설되었다며 감탄합니다. 이 광경은 유다 산맥 언저리에 있는 예루살렘이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고, 성채를 중심으로 여러 건물이 서로 촘촘히 밀집되어 도시를 형성한 모습을 나타낸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다 주민들만 아니라 하나님을 예배하러 올라온 여러 지파 무리가 더해져, 외형적인 조합만이 아니라 내부적으로도 사회적이며 신앙적인 조합의 모습을 함께 보여줍니다. 시인과 마찬가지로 각 지역의 여러 지파 사람도 이스라엘의 전례에 따라 무리 지어 예루살렘에 올라왔습니다. 시인은 이들이 단순히 이스라엘 지파가 아니라 여호와가 세운 지파들임을 강조함으로써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임을 각인시킵니다. 이들은 하나님이 각 지파대로 기업으로 주신 땅에서 정착하며 살다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하나님께 예배하려고 예루살렘을 찾은 자들입니다. 이들이 따른 ‘이스라엘의 전례’(4)는 기본적으로 출애굽기 23:17의 ‘네 모든 남자는 매년 세 번씩 주 여호와께 보일지니라’를 기초로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지키도록 명하신 3대 절기는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로서, 출애굽기부터 신명기까지 각 책마다 이 절기들(및 다른 절기들)에 관해 기록하였습니다(출 23:14-19;레 23:1-44; 민 28-29장; 신 16장). 하나님께서 지정한 절기는 대대로 지킬 영원한 규례이며, 이스라엘은 예루살렘과 각처에서 절기마다 성회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의무와 특권을 가집니다(레 23:14,21,41; 민 28:25). 시인은 자기와 여러 지파 사람이 예루살렘에 온 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감사하려는 목적이었다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예배는 이처럼 감사와 찬양이 우선적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에 감사한다는 말은 먼저, 하나님만이 예배와 감사의 진정한 대상임을 표현합니다. 이 표현은 구체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어떤 분인지, 또 어떤 놀라운 일을 하셨는지에 대해 감사하고 찬양한다는 뜻이 함축되었습니다.

한편, 하나님이 예배 처소로 삼은 예루살렘은 영적 중심지일 뿐 아니라, 하나님의 정의가 백성들을 위해 구현되는 사회적 중심지이기도 합니다. 시인은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의 보좌가 놓였음을 언급합니다. 이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왕임을 상기시킵니다. 그는 또한 이 심판의 보좌가 다윗 왕조에게 맡겨진 점을 떠올립니다(5). 하나님께서는 목동이었던 다윗을 데려다 하나님 백성의 주권자로 삼으셨고, 다윗과 언약을 맺어 그와 그 후손에게 영원한 왕국을 약속하셨습니다(삼하 7:8,16). 그러므로 다윗과 그 후손들은 하나님께서 세운 왕의 법도(신 17:14-20)를 따라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의 말씀을 켜야 했습니다(왕상 9:4). 이처럼 왕은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 안에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한 백성과의 관계 안에서는 그들을 의와 공평으로 심판하고 다스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솔로몬과 같은 지혜의 왕도 그의 기도에서 하나님께 판단력과 지혜를 구하고, 하나님이 자신에게 맡긴 백성을 공의로 심판하여 억울함을 풀어주고 압박자를 벌함으로써 하나님이 기대하는 이상적인 왕의 역할을 감당할 수 있기를 간구합니다(시 72:2-4).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하는 기도(6-9)

우리의 마음 속에 평화는 우리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도 평화는 매우 중요한 가치입니다. 가정, 교회, 사회 모든 곳에서 평화가 필요합니다. 우리는 이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야 합니다. 다윗은 예루살렘의 평화를 위해 기도하라고 촉구합니다. 이는 평화가 하나님의 축복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6예루살렘을 위하여 평안을 구하라 예루살렘을 사랑하는 자는 형통하리로다

7네 성 안에는 평안이 있고 네 궁중에는 형통함이 있을지어다

8내가 내 형제와 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 네 가운데에 평안이 있을지어다

9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내가 너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6-9)

 

시인은 이제 예루살렘을 위해 평안을 구하는 기도를 올립니다. 6-9절까지 ‘평안’(샬롬)이란 단어가 세 차례 언급되며, ‘형’이 두 번, ‘복’(또는 ‘선’)이 한 번 나오고, 여기에 ‘평안의 도시’인 ‘예루살렘’이 두 번 나와, 전체적으로 평안의 축복이 가득 담겨 있고 평안이란 단어가 귀에 자주 들려옵니다. 시인이 평안을 비는 대상은 그가 최종 목적지, 성전에 이르는 동안 순서대로 발을 디딘 곳들과 연결됩니다(예루살렘 성, 성벽과 성채, 성안에 있는 사람들, 성전 등의 순서). 그는 먼저, 자기 자신만 아니라 청중에게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하라고 권유합니다. 시인과 시인의 요구에 따라 예루살렘을 위해 기도하는 자는 예루살렘 성을 사랑하는 자들입니다. 시인은 이들이 하나님께 예루살렘의 평안을 구하면, 그들도 마찬가지로 안락이나 형통의 축복을 받을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시인의 이런 선언은 자신과 함께한 순례자들이나 다른 무리로 하여금 예루살렘의 평안을 기원하도록 고무하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두 번째 시인의 기도는 예루살렘 성벽들(7절에서 ‘네 성’으로 번역됨)과 성채들(또는 망루들 7절에서 ‘궁중’으로 번역됨)에 대한 것입니다. 이 간구는 예루살렘 성읍 자체를 지탱하고 방어하는 성벽이나 성체가 견고하기를 구하는 기도이므로, 곧 예루살렘 성의 평화와 안전만이 아니라 이스라엘 나라 전체의 평화와 안전을 기원하는 간구입니다. 이 기도에는 성벽이나 성채가 보호하고 있는 성읍 주민들의 삶에 평안과 안락함이 지속되기를 원하는 시인의 마음도 함축되었습니다.

세 번째 시인의 기도는 예루살렘 주민과 예루살렘에 찾아온 순례자들의 평안을 위한 기도입니다. 시인의 동행만이 아니라 시인과 함께한 자들이 예루살렘에 살든지 순례를 왔든지 간에 모두 시인의 형제이자 친구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주로 섬기는 공동체라는 의미입니다. 또한 그들이 서로 다른 지파의 무리라 하더라도, 모두 하나님이 선택하신 한 나라, 한 백성이란 의미입니다.

마침내, 시인의 기도는 그의 순례길의 목적지인 하나님의 성전을 위한 간구로 마무리됩니다(9). 여호와의 집에 가기를 기뻐했던 시인(1)은 이제 그곳에 도착하여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성전과 예루살렘의 평안을 간구합니다(9). 시인은 성전을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집’으로 부르는데, 이는 그와 그곳에 함께한 여러 무리가 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다시금 상기시킵니다. 9절 마지막에 ‘너(예루살렘)를 위하여 복을 구하리로다’에서 ‘복’은 보통 ‘선’으로 번역되는 단어(토브)로서, ‘형통’, ‘안녕’ 등의 뜻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집을 중심으로 서 있는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선이 평안과 더불어 임하기를 기원합니다.


시편 122편은 하나님 집과 그 평화에 대한 깊은 기도를 담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 집의 중요성과 평화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우리의 교회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장소가 되도록,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공동체로 성장해 나가도록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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