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24-01)
하나님의 보호와 구원의 은혜
시편 124편 1-8절
우리도 삶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이 함께하신 덕분에 많은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말고, 항상 하나님을 의지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위기 속에서도 언제나 우리를 보호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찬양하며, 감사의 마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하나님의 도우심을 경험한 후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분의 이름을 높입시다.
- 천지의 창조주인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도움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편에 계셔 그들이 어떠한 위기에 있든지 그들을 안전히 보호하셨습니다. 청중들은 이스라엘의 도움이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지 않으셨더라면(1-5)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여러 차례 경험했으면서도, 그 은혜를 잊고 불평했던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기적을 통해 구원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반복적으로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 이러한 역사는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진심으로 감사하는 성도가 되어,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해 늘 감사해야 합니다.
1이스라엘은 이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어떻게 하였으랴
2사람들이 우리를 치러 일어날 때에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
3그 때에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 우리를 산채로 삼켰을 것이며
4그 때에 물이 우리를 휩쓸며 시내가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며
5그 때에 넘치는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 할 것이로다(1-5)
오늘 시인과 그의 공동체는 하나님께서 베푸셨던 은혜를 회고하며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있습니다. 먼저, 시인은 ‘만약에’라는 가정법을 이용하여 과거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지 않으셨다면 이스라엘은 이미 멸망했을 것임을 천명하면서 하나님의 도우심에 감사합니다. 1,2절의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은 직역하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지 않으셨다면’입니다. ‘하나님의 도움이나 하나님의 함께하심이 없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라는 가정을 이끌어냅니다. 시인은 ‘이스라엘은 이제 말하라’(1)고 청중에게 명하면서 그와 함께 과거를 회상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선포하고 찬양하자고 권유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도움을 경험한 사건은 사람들(대적들)이 이스라엘을 거슬러 공격했을 때였습니다.
3-5절은 매 절에서 ‘그 때에’라고 시작하면서, 12절의 ‘여호와께서 우리 편에 계시지 아니하셨더라면’의 결과로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 즉 ‘이스라엘이 원수들에게 멸망했을 것이라’는 내용을 서술합니다. 이때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대적들의 기세는 맹렬한 불과 격렬한 물의 비유로 묘사되었습니다. 이러한 비유는 이스라엘이 대적에게 죽임 당했을 가능성이 아주 높았음을 시사합니다. 또한 이와 더불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하신 것이 기적이며 은혜임을 간접적으로 부각합니다. 첫째 가능성으로, 이스라엘은 불처럼 거세게 일어난 대적들에게 불타버렸을 수 있었습니다(3). ‘그들의 노여움이 우리에게 맹렬하여’는 직역하면 ‘우리를 거슬러 그들의 화가 불타오를 때’란 의미로서, 대적의 공격 기세가 불같이 일어나는 모습을 묘사합니다. 불의 화력이 너무 강력하므로 이 불은 이스라엘을 산채로 통째로 삼켜버렸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대적의 파괴적인 기세는 하나님의 분노의 불이 타올라 음부나 땅의 소산이나 산들을 태워버리는 심판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신 32:22). 둘째 가능성으로, 이스라엘은 창궐하는 물과 같은 대적들에게 휩쓸려 떠내려갔을 것입니다(4-5). 여기 4-5절에는 물과 관련된 말이 세 가지(‘물들’, ‘시내’, ‘넘치는 물’)가 등장하여 3절의 불보다 훨씬 강도가 높은 기세를 보여줍니다, 여기서 물들은 잔잔한 물이 아니라 홍수나 쓰나미처럼 범람하고 파도치고 솟구치는 물입니다. 이 넘실대는 물이나 파도는 쏟아지는 우박이나 파괴하는 광풍과 마찬가지로 앗수르나 바벨론처럼 강력하고 무자비한 힘을 가진 이방 군대의 세력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었습니다(사 28:2; 렘 51:54).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하지 않으셨다면, 이런 물이 이스라엘을 휩쓸고 갔을 뿐 아니라 그들의 영혼을 삼켜버렸을 것입니다. ‘물이 우리 영혼을 삼켰을 것이라’(4,5)라는 표현은 직역하면 ‘물이 우리 영혼 위로 지나갔을 것이라’로서, 이스라엘이 물에 빠져 완전히 멸망했을 것임을 나타냅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존재하고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도움이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우리의 도움이신 여호와를 송축하라(6-8)
어리석은 자들은 어려움이 닥치면 자기 힘으로 해결해 보려 동분서주하다가 결국 실패하고 자포자기합니다. 반면,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는 자들은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의지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신뢰하며 그분의 도움을 구합니다. 이러한 신앙은 그들에게 평안과 지혜를 줍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로 어려움을 극복하고 평안을 찾습니다.
6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7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 같이 되었나니 올무가 끊어지므로 우리가 벗어났도다
8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의 이름에 있도다(6-8)
이제 시인과 그 무리는 ‘만약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지 않으셨더라면’이란 가정에서 벗어나 현실로 돌아옵니다. 시인은 6절에서 ‘여호와를 송축하라’고 시작하는데 이는 8절의 찬양과 함께 이 단락의 주제가 ‘찬양’임을 보여줍니다. 시인과 무리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그들의 편에 계신 하나님,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구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립니다. 이때 하나님의 구원의 행적은 두 가지 비유로 설명되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은 짐승의 먹잇감이었으나, 하나님께서 이들을 짐승의 이빨에서 구하셨습니다. 6절에서 ‘우리를 내주어 그들의 이에 씹히지 아니하게 하신 여호와’라는 번역은 직역하면 ‘우리를 그들의 이에 먹잇감으로 내주지 아니하신 여호와’로서 살짝 다르지만, 생생함과 현장감은 직역보다 더 잘 표현되었습니다. 위 2-5절에 언급된 이스라엘의 원수는 사나운 짐승처럼 이스라엘을 잡아 자기 먹이로 입에 넣었습니다. 아모스가 묘사한 이방 군대처럼 이들의 이빨은 사자의 이빨 같고 그 어금니가 암사자의 어금니와도 같았을 것(암 1:6)이므로, 이스라엘은 그들의 이빨에 다 부수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결코 이런 일이 일어나도록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둘째, 이스라엘은 사냥꾼의 사냥감인 새와 같았으나, 하나님께서 이들을 사냥꾼의 올무에서 건지셨습니다. 7절의 ‘사냥꾼’이란 단어는 ‘덫을 이용해 새나 짐승을 잡는 자들’을 뜻하며 ‘올무’는 ‘새 등을 잡는 덫’을 가리킵니다. 사냥꾼은 ‘새나 다른 짐승을 잡겠다’는 분명한 목적의식을 지닌 자들입니다. 대부분 이런 덫이나 올가미는 새가 자주 드나드는 곳에 구덩이를 파서 두거나 가지로 덮는 등 속임수를 이용하여 설치됩니다. 실제 새를 사냥하는 사람들은 끼니를 위하거나 새를 내다 팔아 수입을 얻으려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사냥꾼’은 의인을 잡아 해하려는 악인들을 묘사할 때 때때로 등장하며, ‘올무’ 또한 이 악인들의 간교한 계획이나 악행을 묘사할 때 사용되었습니다(렘 5:27-28). 한편, 올무에 걸린 새는 자기 주변에 그런 올무가 있었는지도 인지하지 못하며, 미끼나 그물에 들어가는 순간에도 자기 생명이 위협받는지조차 모릅니다(잠 7:23). 자기도 모르는 새에 발이나 다른 부위가 올무에 끼어(전 9:12) 몸부림을 치지만 몸에 상처만 입을 뿐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 사냥꾼의 손에 잡혀 생명을 잃게 됩니다(사 28:13). 이스라엘은 이처럼 사냥꾼이 놓은 올무에 걸려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올무에 걸린 새에 비유된 것을 보면, 이들이 올무에 걸린 것은 전적으로 사냥꾼의 계략 때문으로만 볼 수는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고려할 때, 이스라엘을 우상숭배와 악의 올무로 이끈 것은 하나님을 배반한 그들의 불신앙과 교만이었고(호 4:6), 그들의 욕심과 죄와 어리석음이었으며(호 4:7; 8:12), 그들의 영적 지도자들조차 올무의 역할을 하고 말았습니다(호 5:1). 오늘 본문에서는 이런 부분을 언급하지는 않지만, 이스라엘이 알게 모르게 스스로 죄악의 올무 안으로 들어간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사냥꾼의 올무, 즉 대적의 계략에 빠진 것은 심판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냥꾼의 올무에 잡힌 이스라엘에게 기적과 같은 일이 발생했습니다. 바로 그들의 올무가 끊어진 것입니다! 올무에 잡힌 새가 자기 힘으로 빠져나올 가능성이 거의 없듯이, 이스라엘도 자력으로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나기가 불가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은 올무에서 벗어났습니다.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난 새’나 ‘우리가 벗어났도다’(7)에서 ‘벗어나다’란 동사는 ‘(~에서 안전한 곳으로) 탈출하다, 빠져나가다’의 뜻으로, 이스라엘이 빠져나오기 불가능한 올무에서 안전함을 누릴 곳으로 옮겨졌음을 뜻합니다. 그들이 올무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직접적인 원인은 그 올무가 끊어졌기 때문입니다(7). 시인은 그 원인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8절에 그 실마리가 나와 있듯, 올무가 끊어져 그들이 자유하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었습니다(시 91:3). 그렇기에 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십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절명의 위기에서 이스라엘을 건져주신 분, 이스라엘의 도움이시며, 그의 이름이 이를 증명해줍니다. 8절의 ‘여호와의 이름’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대체어로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의 이름들(여호와 이레, 여호와 샬롬 등)에는 하나님의 하신 일이나 성품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오늘 소개된 하나님께서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입니다(8; 시 121:2; 134:3). 이 창조주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피조물을 통제하고 다스리십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또한 창조하셨으며, 이들을 보호하십니다. 앞서 123편에서 시인과 무리는 하나님을 하늘 보좌에 좌정하신 왕으로 묘사하면서 하나님께 교만한 자들의 멸시에서 자신들을 건져주시도록 은혜를 구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과 보호하심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경험했던 하나님의 도우심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지 말고, 항상 감사하며 찬양하는 성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 있음을 믿고, 모든 상황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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