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23-01)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시야
시편 123편 1-4절
미세먼지가 우리의 일상을 바꾸어 놓은 동안, 우리는 바람의 방향과 속도에 온 신경을 기울였습니다. 까닭 없는 바람에도 우리의 일상이 흩날리고 휘청거릴 때, 우리는 바람의 근원이신 그분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애타게 보내던 날들은 주께서도 함께 애태우신 날들입니다. 주의 음성이 청아하게 우리의 일상을 밝히는 그 날까지, 우리는 주를 바라보며 기다려야 합니다.
- 시인과 그의 공동체는 교만한 자들의 멸시를 받고 있지만, 그들의 시선을 오로지 하나님께 향하여 고정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이 상황에서 건져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을 향한 눈(1-2)
우리의 삶 속에서 어려움과 고난이 찾아올 때, 우리는 어디를 바라보고 있습니까? 우리의 시선이 세상의 문제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하늘에 계신 주님을 향해 고정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믿음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며, 그의 인도하심을 기다리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혜를 기다리는 종들입니다.
1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2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1-2)
시편 120편부터 134편의 열다섯 편의 시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라는 공통 제목이 나와 한 단락을 이룹니다. 122편에서는 시인이 예루살렘을 선두로 하여 도성 주민들, 순례자들, 성전의 평안과 형통함을 구했다면(6-9), 123편의 시인은 하나님의 은혜와 도움을 간청하는 기도를 드리고 있어, 서로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점에서 연결점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인 123편에서 시인과 그와 함께한 청중은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모습은 그들의 ‘눈들’(eyes)을 통해 묘사됩니다. 먼저 시인은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라고 말합니다. 원문에 따르면 이 문장의 첫 마디는 ‘당신께’(‘주께’로 번역됨)로서, 시인의 눈이 향하는 ‘대상’을 강조합니다. 시인은 이 대상을 향해 그의 두 눈을 들어 올립니다. 눈을 들어 올리는 동작은 고개를 들어 자신의 시선을 한 곳을 향해 고정하는 행동입니다. 이런 행동은 단순히 어떤 대상을 보기 위한 동작(창 13:10; 수 5:13)일 수 있으나, 여기서는 그 대상을 신뢰하여 집중하면서 그에게 보호나 도움을 간청하는 의미가 들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께 자신의 영혼을 들다’(보통 ‘영혼이 우러러보다’로 번역됨)라는 표현과도 유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시 25:1;86:4;43:88). 시인은 이런 물리적인 동작을 실제로 취했올 수도 있고, 적어도 묘사를 통해 시인이 그 대상을 간절히 바라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시인의 두 눈이 고정된 ‘당신’의 정체는 ‘하늘에 계신 주’입니다. 이 어구를 직역하면 ‘하늘에 앉으신 분’ 또는 ‘하늘에 거주하시는 분’입니다. ‘하늘에 앉으신 분’의 경우는 왕으로서 하늘 보좌에 좌정하신 하나님을 표현합니다. 시편 11:4에서도 하나님의 '왕좌'가 하늘에 있다는 구체적 설명을 제시하며, 시편 9:5에서는 보좌에 앉아 세상을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묘사합니다. 미가야나 이사야 선지자 등은 하늘의 왕좌에 앉으신 하나님을 보았다고 증언했으며(왕상 22:19; 사 6:1). 특히 다니엘은 그 왕좌가 불꽃이며 그 바퀴가 불이라고 말합니다(단 7:9). 사도 요한은 무지개가 둘린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계 4:3), 크고 흰 보좌에 앉으신 심판자 하나님(계 20:11)을 소개했습니다. 이제 ‘하늘에 계신 주’를 ‘하늘에 거주하시는 분’으로 읽는 경우에는 땅을 거주지로 삼은 인간과 대조적인 면이 부각되어 하나님의 신성이 강조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늘에 계신 주’는 하나님의 왕권과 그에 따른 신적 능력을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이 표현은 시편 2:4에도 나와, 세상의 인간 왕들이 꾸미는 계략을 하늘에서 살펴보시는 우주의 왕을 묘사합니다. 한편, 시인이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을 향해 눈을 든 모습은 시편 121편의 시인이 하나님 계신 성전을 향해 산길을 오르내리며 산들을 향해 눈을 들어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는 모습을 연상시킵니다. 121편의 시인은 자기를 둘러싼 산들을 둘러보며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찾는 반면, 123편의 시인은 현재 어디 있는지는 모르나 하늘에 그의 눈을 향함으로써 직접적으로 하나님을 찾고 있습니다.
이제 두 번째로, 시인의 눈만이 아니라 시인과 함께한 무리의 눈들도 하나님께 고정되었습니다. 원문에서는 2절의 맨 앞에 ‘보소서’란 뜻의 감탄사(힌네)가 나와 시인이 하나님의 이목을 자기와 자기 무리에게 집중시킴을 알 수 있습니다. 시인은 그와 무리의 시선이 오로지 하나님께 향했음을 하나님이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이때 시인은 하나님을 ‘여호와 우리 하나님’으로 칭합니다. 시인과 함께 하나님께 시선을 둔 무리도 하나님께서 하늘의 왕이심을 압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단순히 신적 능력을 가진 온 세계의 왕이심만을 인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자신들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스스로 있는 자, 여호와’(출 3:14)이심을 알며,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출 19:4-6)이 그 기초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시인은 자신과 공동체의 하나님을 향한 시선이 마치 남종이나 여종이 그들의 눈을 각기 주인의 손을 향한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시인은 자기 무리를 ‘종들’로 비유하고, 하나님을 그들의 ‘주인’으로 비유합니다. 시인이 ‘백성’이나 다른 신분으로 자신과 무리를 대변하지 않고 ‘종’으로 비유한 것은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심에 비해 자신들의 지극히 낮음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후 3-4절에서 설명되듯 멸시를 받고 있는 현재 그들의 비참한 상황 또한 암시적으로 나타낸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이 비유는 시인과 무리가 하나님께 시선을 둔 구체적인 동기가 그의 ‘손’을 바랐기 때문임을 알려줍니다. 이때 ‘손’은 도움, 긍휼, 은혜, 호의 등을 뜻합니다. 이들은 주인이 종을 긍휼히 여겨 자비를 베풀고 원하는 것을 들어주듯,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기를 고대합니다. 2절의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는 원문을 직역하면 ‘그(하나님)가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실 때까지’로서, 시인과 무리가 하나님이 은혜를 내려주실 때까지 자신들의 시선을 다른 데로 돌리지 않을 것임을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고대하는 이 공동체의 단호함, 간절함, 기다림과 인내는 하나님께서 왕이자 전능하신 분이며, 언약의 하나님, 이스라엘의 주인임을 인식한 데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간청(3-4)
성도는 고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해야 합니다. 멸시와 조소를 당하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놓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도 삶의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세상의 조소와 멸시가 우리를 무너뜨리려 할 때, 더욱 간절히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만이 우리를 이 어려움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다.
3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4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3-4)
3절에서 시인과 무리는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두 번 더 반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청합니다. 시인과 무리는 그들이 의지하고 은혜를 간구할 대상을 제대로 찾았습니다. 이 능력의 왕이자 주인이신 하나님은 긍휼과 은혜가 풍성한 사랑의 하나님(출 34:6)이시므로 그들에게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또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하나님(출 19:5-6; 렘 11:4;30:22)이시므로 그의 백성과 함께하여 그들을 돌보실 것입니다. 이제 3절 후반부에서 4절까지 시인과 그의 무리가 왜 하나님의 은혜를 더 간절히 간구하는지 그 이유가 밝혀집니다. 그들은 원수들로부터 극심한 멸시를 받고 있습니다. 3-4절에 ‘멸시’가 두 번, ‘조소’가 한 번, 총 세 번 나와 멸시받고 있는 이들의 상황을 극대화합니다. 특히, 3절과 4절 마지막 부분에 반복되는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우리가 멸시로 심히 배불렀나이다’란 뜻입니다. 음식과 음료로 배를 채워 흡족함을 누려야 하는데, 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지금 조롱으로 배가 꽉 차 고통스럽다는 의미입니다. 이 비유는 육체적인 배부름의 고통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4절에서는 ‘그들의 영혼’이 조소와 멸시로 가득 찼다고 묘사함으로써 그들이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지독한 복통 속에 있음을 호소합니다. 이때, 시인과 그 무리를 경멸하고 조롱하는 원수들은 ‘안일한 자들’이며 ‘교만한 자들’로 설명되었습니다(4). 그들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이들은 걱정 없이 안락한 삶을 살며 그런 삶이 다 자신들이 이룬 성과라고 여기는 교만한 자들입니다(사 32:10-11; 암 6:1; 슥 1:15). 이런 자들은 ‘악인’의 무리에 속하며, ‘의인’의 대적이자 하나님의 대적이 되는 무리입니다. 시인이 독자에게 강조하려고 하는 점은 이들의 정체보다는 이런 자들에게 강도 높은 조롱과 업신여김을 받고 있는 현 공동체의 상황입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절대적인 신뢰와 은혜를 간구하는 기도의 중요성을 가르쳐줍니다. 우리의 시선이 항상 하나님을 향해 고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세상의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의 눈을 하나님께 두고, 그의 은혜와 자비를 간절히 구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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