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119-03)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사는 삶
시편 119편 33-48절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가르침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것은 단순한 지식 습득이 아니라, 그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하여 끝까지 지키겠다는 결심이 필요합니다. 세상의 헛된 욕망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길에서 참된 기쁨을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깨달을 수 있습니다. 또한, 이 깨달음을 통해 전심으로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깨닫고 지키는 데는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이 필수적입니다. 시인은 이 점을 인식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삶을 지도해주시기를 부단히 간청합니다. 시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자유와 즐거움을 주며, 그를 구원과 회복으로 이끄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헤(다섯 번째 알파벳) “ה”연(33-40)
우리는 하나님의 가르침을 간절히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전심으로 순종하며, 그 계명을 따르는 기쁨을 누립시다.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하고, 말씀을 통해 소망과 생명을 찾는 삶을 살아갑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 참된 길로 인도하는 빛이 됩니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날마다 실천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33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34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35나로 하여금 주의 계명들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36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37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38주를 경외하게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39내가 두려워하는 비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들은 선하심이니이다
40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33-40)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배우고 지키기를 간구하며, 그 말씀을 통해 이해와 지혜를 얻고자 하는 시편 기자의 기도를 담고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고, 거짓된 길에서 벗어나며, 하나님의 명령을 즐거움으로 따르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규례들을 통해 자신을 새롭게 하고, 그분의 의로운 길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1) 하나님의 가르침을 간구(33-37)
시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가르침을 주는 교사입니다. 시인은 배우고 깨닫고 실천하는 모든 단계에 있어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존합니다. 잠언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또는 스승이 제자를 가르치듯(잠 1:9; 4:4), 시인은 먼저 하나님께 그분의 말씀을 자기에게 개인적으로 가르치시길 요청합니다(33). 하나님의 가르침을 통해 얻어야 하는 것은 단순히 지식의 전달이 아니라 ‘깨달음’이 포함된 교육입니다. 이에 따라 시인은 두 번째 단계로서 말씀의 깨달음을 주시길 요청합니다(34). 하나님의 명령이나 규례의 내용을 배워 기억해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명령이나 규례가 이끄는 ‘길’(33,35)에 대한 구체적인 이해와 판단이 요구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단계는 하나님께서 시인으로 그 길로 걷도록, 즉 배운 대로 실천하도록 이끄시는 단계입니다(35). 시인이 말씀을 따라 사는 과정은 호락호락하거나 단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마음과 눈의 방향을 지켜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합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성도의 마음이 향할 곳은 탐욕이 아니라 하나님의 증거들입니다(36). 36절에서 ‘향하다’란 동사는 손을 뻗거나 몸을 굽히는 등 적극적인 동작을 나타내어,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온전히 쏠려야함을 표현합니다. ‘탐욕’은 ‘불의의 이득’이란 뜻인데, 여기서는 어떤 특정한 불로소득을 가리키기보다는 포괄적으로 ‘불의’를 가리키는 용어로 이해하면 적절합니다. 37절의 ‘허탄한 것’으로 번역된 단어(샤브)는 ‘헛됨’, ‘거짓’, ‘속임’의 뜻이며(시 127:1,2), 이런 의미로 인해 ‘우상’을 가리키기도 합니다(시 31:6;렘 18:15). 우상이든 거짓이든 헛된 것이든 모두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거슬리는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시인이 하나님께 자기 눈이 허탄한 것을 보는 행위에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요청한 데서 알 수 있듯, 실제 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에만 집중하고 불의나헛된 것을 목격하거나 경험할 때 그것에 무관심하거나 무시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시인은 자기의 마음과 눈까지도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도록 맡깁니다. 시인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목적은 그 말씀을 지키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시인의 이러한 열심과 헌신은 ‘끝까지 지키리이다’(33)와 ‘전심으로 지키리이다’(34)라는 다짐에서 잘 나타납니다. ‘끝까지’로 번역된 단어는 ‘결과’, ‘상’의 뜻이므로, 이 뜻을 적용해보면 상을 받을 때까지, 끝장을 볼 때까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단호한 결의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전심으로’라는 말에는 말씀에 대한 진지함과 완전한 집중을 암시합니다. 여기에 ‘즐거움’(35)이 덧붙어져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자발적인 반응임을 보여줍니다. 시인의 말씀 자체에 대한 즐거움과 말씀을 순종하는 기쁨은 이미 여러 번 표현되어(14,16,24), 시인이 얼마나 하나님 말씀에 즐거워하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2)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회복을 간구(38-40)
하나님의 말씀은 성도를 소생시키고 회복하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시인은 계속해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37,40)라고 간구하는데, 그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길과 공의 안에서 소생되기를 바랍니다. 이 말은 시인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사는 동안에, 하나님께서는 전에 말씀을 통해 그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를 회복시키시기를 바란다는 의미입니다.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란 말도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그분을 경외하는 자를 위해 말씀을 주셨으므로, 그 약속의 말씀을 자신에게 이루어달라는 뜻입니다. 현재 비방과 멸시 속에 두려움도 느끼므로(39,22,23), 시인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대로 자신을 비방에서 자유롭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그들의 비방은 거짓에서 나왔으므로(69,78), 시인은 비난받을 이유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선하고, 시인은 그 말씀을 사랑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의로운 해결책은 시인을 이 모든 고통에서 건져 소생시키는 것입니다.
바브(여섯 번째 알파벳) “ו”연(41-48)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삶은 우리를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자유를 줍니다. 또한, 우리는 그 자유로 인해 어떤 권위자들 앞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두려움 대신 용기를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사모하는 마음은 우리에게 지속적인 영적 성장과 기쁨을 가져다줍니다.
41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
42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지함이니이다
43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44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지키리이다 영원히 지키리이다
45내가 주의 법도들을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걸어갈 것이오며
46또 왕들 앞에서 주의 교훈들을 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겠사오며
47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48또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41-48)
하나님의 구원과 인자하심을 간구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뢰와 사랑을 고백합니다. 시편 기자는 그 말씀을 통해 용기와 자유를 얻고, 하나님의 계명들을 즐거움으로 지키겠다고 다짐합니다.
(1) 하나님의 인자와 구원을 간구(41-42)
시인은 하나님의 약속에 따라 인자와 구원을 보내달라고 간청합니다. 시인은 자신을 비방하는 자들에게 자기의 지식이나 힘으로 맞서지 않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만을 의지합니다. 시인을 비방하는 자들은 그에게 거짓을 말하지만, 시인은 정직과 의의 대답을 줌으로써 그들에 맞설 수 있습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이와 같은 주의 인자한 성품과 그분의 구원의 역사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이 떠나지 않기를 간구(43)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라는 시인의 간구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라는 번역은 순화된 표현입니다. 이 동사(나짤)의 문자적 의미를 살리면, ‘잡아채지 마소서’, ‘끌어내지 마소서’라는 간구입니다. 하나님 말씀은 진리의 말씀이므로 일부라도 잃고 싶지 않으며, 그 말씀을 계속 입으로 전할 것이라는 시인의 의지가 담겼습니다. 의와 진리의 말씀은 그의 의지하는 대상이므로, 시인은 이를 결코 놓치지 않을 것입니다.
(3)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영원한 순종(44-46)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다는 시인의 고백은 말씀을 항상, 영원히 순종하겠다는 헌신과 의지를 드러냅니다. 시인이 이처럼 하나님의 법도들을 찾아 실천하므로, 그는 거리낌 없이 자유로이 행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왕들 앞에서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증거들을 담대히 말할 것이며, 이로 인해 부끄러움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사랑(47-48)
시인의 말씀에 대한 사랑에는 진정성과 자발성이 있습니다. 그에게 있어 하나님의 말씀은 계명이든 율례든 어떤 형태로든 그가 사랑하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그에게 있으므로 하나님의 말씀 또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을 억지로나 외압에 의해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즐거워합니다. 상이나 호의를 기대하기 때문에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므로 저절로 마음에서 우러나는 기쁨입니다. 하나님 말씀을 향한 시인의 사랑은 스스로 기뻐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말씀에 대한 반응으로 이어집니다. 그는 하나님의 계명들을 향하여 손을 들 것이고, 그의 율례들을 읊조릴 것입니다(48). ‘손을 드는 행동’은 보통은 하나님께서나 성전을 향하여 손을 든 채 기도하는 경우(왕상 8:22; 시 141:2; 딤전 2:8), 사람들을 축복하거나(레 9:22; 눅24:50) 하나님을 송축하는 경우(시 134:2), 하나님께 회개와 헌신을 표하는 경우(애 3:41-42), 하나님께 화답하는 경우(스 8:6) 등에서 일어납니다. 이런 예들을 고려할 때, 시인이 말씀을 향해 손을 든다는 표현은 말씀에 대한 그의 헌신과 구체적인 화답으로 볼 수 있겠습니다. 한편, ‘말씀을 읊조리는 행위’는 때로는 소리가 입 밖으로 나도록 말씀을 외우거나 말하는 행동을 가리키기도 하고, 때로는 심사숙고하면서 조용히 묵상하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한 자유와 그 말씀을 사랑하고 증거하는 삶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구원을 간구하며, 그 말씀을 영원히 지키고, 그 말씀을 통해 참된 자유를 누립시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며, 그 말씀을 묵상하고 증거하는 삶을 살아갑시다.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날마다 실천하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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