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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11-02)


솔로몬을 대적하는 원수들(I)

열왕기상 11장 14-25절


 

성도들은 하나님과 멀어질수록 위험해집니다. 성도들이 하나님께 겸손할 때에는 그들 앞에 있는 대적들이 사라졌지만, 하나님께 등을 돌리면 대적들이 등장합니다. 자신을 지켜주시는 하나님을 멀리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하나님과 점점 가까워져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 당신은 위험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에게 등을 돌린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도 등을 돌리십니다. 에돔은 이스라엘의 남쪽에, 아람은 이스라엘의 북쪽에 있는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주변국에 있는 이웃나라들을 일으켜 솔로몬을 징계하십니다. 외부적으로는 하닷과 르손의 반란을 통해, 내부적으로는 여로보암의 반란을 통해 솔로몬을 심판하십니다.

 

솔로몬의 대적(I): 하닷(14-22)

세상을 주관하는 사단을 간교합니다. 당신을 최고로 여긴 것처럼 하지만, 당신을 대적할 사람을 또 성장시키고 있다는 것입니다. 혹시 세상에서 승승장구한다고 자만하지 않길 바랍니다. 그것 때문에 하나님을 대적하게 되어지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대적이 됩니다. 그리므로 성도들은 하나님 외에 전적으로 의지할 대상은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하고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솔로몬 왕을 바로 잡기 위해 전쟁이라는 매를 드셨습니다. 솔로몬에게 바르게 방향을 설정하도록 하기 위합니다.

14여호와께서 에돔 사람 하닷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그는 왕의 자손으로서 에돔에 거하였더라 15전에 다윗이 에돔에 있을 때에 군대장관 요압이 가서 죽임을 당한 자들을 장사하고 에돔의 남자를 다 쳐서 죽였는데 16요압은 에돔의 남자를 다 없이 하기까지 이스라엘 무리와 함께 여섯달을 그곳에 유하였었더라 17그 때에 하닷은 작은 아이라 그 아비의 신복 중 두어 에돔 사람과 함께 도망하여 애굽으로 가려 하여 18미디안에서 발행하여 바란에 이르고 거기서 사람을 데리고 애굽으로 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나아가매 바로가 저에게 집을 주고 먹을 양식을 정하며 또 토지를 주었더라 19하닷이 바로의 눈 앞에 크게 은총을 얻었으므로 바로가 자기의 처제 곧 왕비 다브네스의 아우로 저의 아내를 삼으매 20다브네스의 아우가 그로 말미암아 아들 그누밧을 낳았더니 다브네스가 그 아이를 바로의 궁중에서 젖을 떼게 하매 그누밧이 바로의 궁에서 바로의 아들 가운데 있었더라 21하닷이 애굽에 있어서 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잔 것과 군대장관 요압의 죽은 것을 듣고 바로에게 고하되 나를 보내어 내 고국으로 가게 하옵소서 22바로가 저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있어 무슨 부족함이 있기에 네 고국으로 가기를 구하느뇨 대답하되 없나이다 그러나 아무쪼록 나를 보내옵소서 하였더라(15-22)

솔로몬의 배역으로 이스라엘의 분열이 예고된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대적들을 일으켜 그의 계획을 이루어 가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사방의 안식을 주리라 약속하셨고(삼하 7:11; 대상 22:9) 이를 이뤄주셨는데(8:56; 삼하 7:1), 솔로몬의 우상숭배로 안식과 평안은 깨지고 사람의 매와 채찍이 그를 찾아왔습니다(삼하 7:14). 

14-40절에 소개되는 세 명의 대적은 이스라엘의 외부인(하닷, 르손)과 내부인(여로보암)으로 나뉩니다. 이방인인 하닷과 르손은 각각 에돔과 아람 사람으로서(14-25), 다윗이 그들 나라를 정복했을 때 도망하여 각각 다른 나라에 망명해 있다가, 힘을 키워 자국으로 복귀합니다. 이스라엘인 여로보암도 솔로몬을 피해 애굽에 망명했다가 돌아와 장차 북이스라엘의 왕이 될 자입니다(26-40).

14-25절 단락의 처음과 마지막은 ‘대적’(사탄)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솔로몬의 불순종으로 일어난 대적들이 솔로몬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안전을 위협하게 됨을 나타냅니다. 구체적으로, 하닷과 르손 에피소드의 각 시작에는 “솔로몬의 대적”(14,23)이, 단락의 마지막에는 “이스라엘의 대적”(25)이 등장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닷을 “솔로몬의 대적”으로 일으키셨으며, 그 과정에는 인간으로서 가늠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났습니다.

에돔 왕의 아들이었던 하닷은 솔로몬이 왕이 되기 전부터 애굽에서 조국을 위해 일어설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전에 다윗이 주변국들을 정벌하면서, 에돔 사람 18,000명을 염곡에서 죽이고 에돔을 속국으로 삼은 바 있습니다(삼하 8:13-14). 다윗이 에돔과 전쟁 중이었을 때 요압은 에돔에서 이스라엘의 전사자들의 시신을 묻어주고, 이스라엘 군대와 함께 6개월 동안 에돔 남자들을 몰살했습니다. 당시 소년이었던 왕족 하닷은 틈을 타 부왕의 신하들과 함께 간신히 애굽으로 도망했습니다. 추적을 막기 위해 험한 지형과 우회로를 택했습니다. 먼저 에돔의 남동쪽으로 내려가 아라비아 반도 북부의 미디안 지역으로 갔습니다. 그 후 시내 반도 북서쪽에 있는 바란 광야를 통과했고, 마침내 애굽 왕 바로에게 갈 수 있었습니다. 바로는 그에게 집과 토지를 주고 양식을 약조함으로써 그의 망명을 허락했습니다. 이 ‘바로’는 40절에서 여로보암의 망명을 허락한 시삭(주전 945-924년)이 아닙니다. 하닷이 청소년 때부터 성인이 될 때까지 애굽에 있었으므로 그는 시작 직전 제 21왕조의 왕들 중 하나일 것입니다. 하닷은 바로의 눈에 큰 은총을 입습니다. 이는 요셉이 보디발이나 간수에게 은총을 입은 일(창 39:4, 21), 에스더가 궁녀를 주관하는 내시 헤개나 아하수에로 왕의 눈에 은혜를 입은 일(에 2:9,15; 5:2), 이스라엘 남자 아기들이 죽어 나갈 때 모세가 바로의 공주에게 긍휼을 입은 일(출 2:6)을 상기시킵니다. 요셉, 에스더, 모세 등이 예기치 못한 이방인에게 호의를 얻은 것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인애의 결과였던 것처럼(창 39:21), 하닷이 이방 왕의 보호를 받은 것은 하나님의 더 큰 계획 안에 있는 주권적인 섭리였습니다. 바로의 호의는 하닷을 왕의 일가로 맞고 우대함으로써 더 두드러졌습니다. 바로는 그의 처제, 즉 다브네스(왕비의 호칭)의 여동생을 하닷의 아내로 주었습니다. 또한 하닷의 아내가 아들 그누밧을 낳자, 다브네스는 그를 바로의 궁중에서 젖을 떼게 했습니다. 이 말은 왕비가 하닷의 아들을 양자로 삼았음을 뜻합니다. 그누밧은 바로의 궁에서 다른 왕자들과 같은 대우를 받으며 함께 자랐습니다. 모세가 바로의 공주 손에 입양되어 왕자처럼 자란 것과 같습니다(출 2:9-10). 바로가 하닷에게 호의를 베푼 것은 과거에 상대국이 베푼 호의를 되갚는 일이거나 당시 혹은 미래에 망명자를 이용하여 자국의 정치, 경제 통제권이나 이득을 얻으려는 융화책으로 해석됩니다.

이러는 동안 시간이 흘러 다윗과 요압의 죽음 소식이 애굽에 들렸습니다. 에돔을 속박했던 주동자들의 죽음 소식을 들은 하닷은 바로에게 자신의 고국 에돔으로 보내달라고 합니다. 모세가 바로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고국으로 보내라고 요구한 일과 유사합니다(출 7:16). 바로는 뭐가 부족하냐며 서운함을 표현하면서 그를 만류합니다. 그러나 하닷의 결심은 바로가 베푼 온갖 특권과 호의를 다 뿌리칠 만큼 단호했습니다. 이는 에돔을 향한 그의 사랑과 충성, 이스라엘과 다윗 왕조를 향한 그의 증오와 복수심이 그만큼 컸음을 보여줍니다. 하닷의 에피소드는 여기서 끝나고 후속 상황은 설명되지 않았으나, 25절을 참고하면 하닷이 에돔에 돌아가 독립을 위해 투쟁했음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대적(II): 르손(23-25)

하나님 나라가 그 방향을 잃고 세상을 향할 때, 올바로 바로잡기 위해 징계의 도구를 마련하고 계십니다. 타락한 이스라엘은 아무리 하나님께서 사랑받은 이스라엘이라 할지라도 이방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도움이 아니라 대적이 되기로 하신 것입니다. 아무 걱정 없이 번영과 평화를 누리던 솔로몬의 나라도 한순간에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나라가 되다는 것을 일깨워줍니다.

23하나님이 또 엘리아다의 아들 르손을 일으켜 솔로몬의 대적이 되게 하시니 저는 그 주인 소바 왕 하닷에셀에게서 도망한 자라 24다윗이 소바 사람을 죽일 때에 르손이 사람들을 모으고 그 떼의 괴수가 되며 다메섹으로 가서 웅거하고 거기서 왕이 되었더라 25솔로몬의 일평생에 하닷의 끼친 환난 외에 르손이 수리아 왕이 되어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미워하였더라(23-25)

하나님께서는 남동부 에돔의 하닷만 아니라 북부의 르손을 솔로몬의 대적으로 일으키셨습니다. 이스라엘 남동부의 에돔이 남서부의 애굽 왕족과 혈연지간이 된 상황에서, 북부와 북동부의 아람 지역(소바, 다메섹)에서 세력을 키운 르손이 솔로몬의 대적이 된 것은 남북 중간에 놓인 이스라엘에게 큰 압박을 주게 됩니다.

르손도 하닷과 유사한 과정을 거쳐 솔로몬의 대적으로 부상했습니다. 르손은 엘리아다의 아들로서, 소바 왕 하닷에셀의 신하였습니다. 다윗 당시 하닷에셀과 관련된 전쟁이 사무엘하 8장과 10장에 기록될 만큼 소바는 아람을 대표하는 군소 왕국이었습니다. 당시 하닷에셀이 유브라데 지역에 원정을 나가자, 다윗은 이를 기회로 삼아 그를 공격했고, 마병과 보병을 사로잡았습니다. 이때 소바 군대를 도우러 다메섹의 아람 연합군이 왔으나, 다윗은 이들 모두를 진압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다윗은 다메섹에 수비대를 두었고, 아람 연합국은 이스라엘의 속국으로서 조공을 바치게 되었습니다(삼하 8:6).

그 후 암몬이 다윗을 충동질한 사건을 수습하기 위해 아람과 돕 사람 등의 지원을 요청했을 때에도 다윗은 그들을 제압했습니다. 패한 아람 연합군을 하닷에셀이 도우려 했으나 오히려 다윗에게 당했고, 연합국은 모두 다윗의 속국이 되었습니다(삼하 10:15-19). 르손은 다윗이 소바를 칠 때, 하닷에셀 왕에게서 도망쳤습니다. 대신 사람들을 모아 그 무리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무리”(24)는 ‘공격대’, ‘약탈자들’의 의미입니다. 르손 패거리는 아람의 수도 다메섹으로 이주해 살다가, 거기서 왕이 되었습니다(24). 이는 르손과 일당이 아랍 지역에서 세력을 잡았으며, 그들의 두목인 르손의 입지가 누구보다 높아졌음을 암시합니다. 이처럼 다윗 당시부터 솔로몬 대에 이르도록 이스라엘의 종속국이었던 아람 지역은 점점 이스라엘의 통치권에서 벗어나고 있습니다.

25절은 솔로몬과 이스라엘에 대한 하닷과 르손의 반역에 대한 후기와 요약입니다. 에돔의 왕손 하닷은 솔로몬에게 재앙거리(“환난”)가 되었습니다. 이 말은 하닷이 에돔으로 돌아와 그의 원수인 이스라엘을 지속해서 공격했고, 솔로몬은 하닷의 침입을 진압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는 동안 르손은 아람(“수리아”)의 왕으로 군림했습니다. 그는 솔로몬의 일평생에 이스라엘의 대적이 되었고, 이스라엘을 증오했습니다. 이는 하닷과 더불어 르손이 세력을 키우며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괴롭혔음을 알려주며, 그가 앞으로도 이스라엘을 압박하는 강력한 세력이 될 가능성을 내비칩니다. 실제로 이후 역사 속 아람은 이스라엘의 두려운 견제 세력 중 하나로 성장합니다. 솔로몬과 이스라엘을 향한 하닷과 르손의 악감과 도발은 에돔과 아람에게 있어서는 독립을 꾀하는 충성스러운 행보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징계하는 도구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모든 선과 악을 그의 주권적인 계획과 섭리 아래 이뤄가십니다(잠 16:4,7; 창 50:20). 반면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헤아릴 수 없는 존재이므로, 늘 겸손하게 죄를 회개하며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모든 상황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멀리하면 징계를 받을 것입니다. 우리도 만약 잘못된 방향으로 나간다면 하나님께서 사랑의 매를 드실 것입니다. 그리므로 하나님을 항상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된 길을 돌아보며 뉘우치고 잘 깨달고 주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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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11-01)


점점 타락해 가는 솔로몬

열왕기상 11장 1-13절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인도하신 후에 광야로 인도하십니다. 광야는 힘들고 고달픈 길이었습니다. 그곳에서 40년 동안 생활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백성들을 광야 길에서 복을 주시고 훈련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광야에서 더욱 자상하고 애절하게 들어납니다. 광야에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신앙생활의 비극은 고통스러운 환경이 아니라 자신들과 동행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데 있습니다. 당신의 삶 속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고 동행하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통해 승승장구했던 솔로몬은 지혜를 주신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합니다. 이 세상의 어떤 왕보다 뛰어난 왕이었던 솔로몬은 이제 하나님을 등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방 여인들과의 정략결혼을 통해 나라의 안전을 지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께 엄중한 심판 선고를 듣고 맙니다.

 

세상을 사랑한 솔로몬(1-8)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환경을 만들고 믿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환경을 만들면 하나님을 멀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당신의 마음이 멀어지게 하는 것들을 무엇입니까? 그러한 것들을 주변에서 정리하시길 바랍니다. 솔로몬은 스스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상황을 만들었습니다. 그는 우상을 섬기는 많은 외국인 아내들에 둘러싸여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1솔로몬 왕이 바로의 딸 외에 이방의 많은 여인을 사랑하였으니 곧 모압과 암몬과 에돔과 시돈과 헷 여인이라 2여호와께서 일찌기 이 여러 국민에게 대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와 서로 통하지 말며 저희도 너희와 서로 통하게 말라 저희가 정녕코 너희의 마음을 돌이켜 저희의 신들을 좇게 하리라 하셨으나 솔로몬이 저희를 연애하였더라 3왕은 후비가 칠백인이요 빈장이 삼백인이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4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왕의 마음이 그 부친 다윗의 마음과 같지 아니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 앞에 온전치 못하였으니 5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좇음이라 6솔로몬이 여호와의 눈앞에서 악을 행하여 그 부친 다윗이 여호와를 온전히 좇음 같이 좇지 아니하고 7모압의 가증한 그모스를 위하여 예루살렘 앞 산에 산당을 지었고 또 암몬 자손의 가증한 몰록을 위하여 그와 같이 하였으며 8저가 또 이족 후비들을 위하여 다 그와 같이 한지라 저희가 자기의 신들에게 분향하며 제사하였더라(1-8)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약속한 지혜와 영화를 신실하게 이뤄주셨지만, 솔로몬은 우상을 섬겨 하나님의 명령에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저자는 솔로몬이 배역한 근본 원인이 이방 여인과의 결혼이라고 지적합니다. 통치 초기 솔로몬은 여호와를 ‘사랑하는 자’, ‘다윗의 법도를 행하는 자’였는데, 그때에도 바로의 딸과의 혼인이 전조로서 수면에 떠올랐습니다(3:1). ‘바로의 딸’은 통치 내내 계속 언급되어(3:1;7:8;9:24) 솔로몬의 신앙에 대한 불안을 자아냈습니다. 이제 통치 후반에 와서 솔로몬은 바로의 딸을 포함하여 수많은 ‘이방 여인을 사랑하는 자’, ‘우상을 따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모압, 암몬, 에돔, 시돈, 헷 족속 출신 등 이방 공주와의 정략결혼은 기본적으로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루어집니다. 그가 이방 공주나 명문가의 여인 700명을 아내로 맞고, 그보다 낮은 지위의 첩을 300명 거느린 점(3)은 당시 솔로몬이 주변 국가 내에 큰 위세와 부를 떨쳤음을 시사합니다. 그러나 이방 여인과의 결혼은 왕이나 백성이 지향해야 하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출 19:6)의 삶에 지대한 해를 가져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애굽을 비롯하여 1절에 언급된 열방 및 가나안 족속과의 통혼을 금하셨습니다(출 34:16; 신 7:34). 이방 민족의 통혼은 이스라엘을 미혹하여 우상을 따르게 하는 길임을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이는 왕에게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왕의 규례’(신 17:14-20)를 통해 왕이 되는 자는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지 않도록 많은 아내를 두지 말 것을 명하셨습니다. 그러나 2절은 “솔로몬이 그들을 사랑하였더라”라고 기록합니다. 여기서 “그들은 “이방의 많은 여인”, “여러 백성”(‘열방들’), “그들의 신들”을 가리킵니다. 직역하면 ‘솔로몬이 사랑으로 그들에게 달라붙었다(다바크)’입니다. 우상과 연합하여 영적으로 타락한 솔로몬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통혼을 통한 우상숭배의 경고에는 진노와 심판이 예고되었습니다(신 7:4). 솔로몬의 배역은 그와 이스라엘 왕국에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오고 있었습니다. 경고하신 대로(2) 솔로몬의 이방 아내들은 그의 마음을 우상에게 향하게 했습니다. 이방 아내의 수가 많은 만큼 솔로몬이 그들을 따라섬긴 신도 한둘이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그가 하나님을 배반하고 이방신을 섬긴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우상숭배에 대한 경계를 느슨하게 하고 빌미를 주고 타협했습니다. 그러다가 이방 여인 모두가 각각 자기 신에게 분향할 수 있게 산당을 만들어주고 거기서 제사할 수 있게 했습니다. 우상 신의 산당, 목상, 석상들은 예루살렘 앞(동쪽) 멸망 산 우편(남쪽)에 있었으므로(왕하 23:13) 솔로몬(과 이스라엘)은 우상숭배에 쉽게 노출되었습니다. 노년으로 접어들면서 솔로몬은 점차 이방여인들의 미혹을 받아 우상 신들에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4). 그 결과 시돈이 숭배하는 풍요의 여신 아스다롯과 암몬 사람이 숭배하는 밀곰(몰록, 몰렉, 말감)을 섬겼습니다. 르호보암의 모친인 나아마가 바로 암몬여인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이 신들을 위해 예루살렘 앞산에 산당을 짓고, 거기서도 제사했습니다. 모압의 신인 그모스를 위해 만든 산당은 요시야 왕 때도 남아 있어, 훼파해야 할 목록에 있을 정도였습니다(왕하 23:13). 그모스 숭배에는 밀곰 숭배와 마찬가지로 인신 제사가 실행되었습니다. 여호사밧과 여호람 시대에 모압 왕 메사는 이스라엘과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후계자인 장남을 인신제사로 드렸습니다(왕하 3:27). 이스라엘 내에서조차 이들 신에게 인신제사를 드리는 풍습이 있었습니다(왕하 17:17; 렘 32:35; 48:13). 5,7절에 밀곰과 그모스를 특히 가증한 신으로 부르는 것은 인신제사가 하나님 앞에 가증하고 중대한 죄악임을 나타냅니다. 열왕기 저자는 솔로몬의 마음과 행위를 다윗과 대조하면서 솔로몬의 불순종을 부각합니다(4,6). 다윗과 달리 솔로몬의 마음은 여호와와 완전한 관계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솔로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예고(9-13)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솔로몬을 아무것도 그를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나라를 빼앗아 신하에게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심판 가운데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솔로몬이 살아있는 동안에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하셨고, 다윗의 신실함을 생각하여 이 일은 솔로몬 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고 한 지파만 솔로몬의 아들에게 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9솔로몬이 마음을 돌이켜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떠나므로 여호와께서 저에게 진노하시니라 여호와께서 일찌기 두번이나 저에게 나타나시고 10이 일에 대하여 명하사 다른 신을 좇지 말라 하셨으나 저가 여호와의 명령을 지키지 않았으므로 11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12그러나 네 아비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치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13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9-13)

솔로몬이 하나님에게서 마음을 돌렸으므로 하나님께서는 크게 진노하셨고, 그 대가로 이스라엘의 분열을 선포하십니다. 위 단락(1-8)의 내용은 솔로몬이 이방아내들의 부추김에 떠밀려 우상을 숭배하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9절은 솔로몬이 하나님을 떠나고 우상을 숭배한 행동(4-6)이 그 자신의 의지와 선택이었음을 확인시킵니다. 솔로몬이 “마음을 돌려”(9)라는 표현은 그 마음이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서 다른 쪽으로 기울었다는 의미입니다. 앞에서는 마음을 돌리는 주체가 이방 여인이었으나(2,4), 9절에서는 솔로몬이 주체로 나와 그가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떠났음을 증명합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죄에 대한 마땅한 반응이지만, 그 이면에는 그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관심과 사랑이 앞서 있습니다. 저자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라 칭하며(9), 솔로몬이 저버린 신이 단순히 개인의 신이 아닌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여호와임을 상기시킵니다. 왕이 언약을 깬다면 나라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솔로몬에게 순종이 다윗 왕조와 이스라엘의 존속과 긴밀하게 연결되었음을 강조하셨습니다. 특히 솔로몬에게 두 번 직접 나타나 이를 교훈하셨습니다. 첫 번째(3:5-14)는 솔로몬의 등극 후 기드온에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지혜와 부귀와 영광을 주시며, 다윗처럼 순종할 것을 명하고 장수의 축복을 덧붙이셨습니다. 성전 완공(통치 제11년) 후에는 말씀을 보내어 그에게 순종의 의무를 상기시키고, 순종할 때 다윗 왕조의 존속뿐 아니라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두 번째 직접 나타나신 때(9:1-9)는 왕궁까지 다 완공한 후인 통치 24년 이후였습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표본으로 들어 온전한 마음과 정직함으로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라고 솔로몬에게 명하셨습니다. 순종할 때 그의 후손과 왕조가 존속할 것임을 확실히 알리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솔로몬과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지 말 것을 엄히 경고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배반하고 우상을 따른다면 아예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에서 끊어버리고 성전도 던져버리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솔로몬의 통치 기간 내내 순종의 축복과 불순종의 심판을 상기시키셨는데도, 그는 하나님의 명령에서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는 성전 봉헌식 때 자신의 순종을 전제로 두고 하나님께 약속을 꼭 지켜달라고 간청했습니다(8:25-26). 자신과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 하나님께 돌아와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하고 회복시켜달라고도 했습니다(8:28-30). 이에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셨습니다. 그랬던 솔로몬이 먼저 언약과 법도를 저버린 것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왕국을 그에게서 빼앗아 그의 신하에게 넘길 것이라 선포하십니다(11). ‘빼앗다’(카라)는 ‘찢다’, ‘뜯어내다’란 뜻으로, 여기서는 열두 지파로 구성된 한 나라를 찢어 나눌 것이라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대가 아닌 그의 아들 대에 나라를 찢을 것이며, 한 지파를 그 아들에게 줄 것이라 예고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내리시는 때에도 다윗을 위해, 하나님이 택한 예루살렘을 위해, 긍휼과 사랑을 베푸신 것입니다(13,32,36). 이로써 사울에게서는 인애를 거두었으나 다윗의 자손에게서는 거두지 않고 영원한 왕위를 주겠다고 하신 약속(삼하 7:15)을 신실하게 지키십니다. 솔로몬의 배역과 하나님의 심판 예고는 하나님께 지혜를 받았어도 그것이 순종의 삶을 보장하지는 않는다는 것을 교훈합니다. 교만이나 타협, 안일함, 욕심 등 한순간에 사람을 죄에 빠지게 하는 요소는 늘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이 점을 인지하고, 하나님 말씀을 분별하여 항상 따를 수 있도록 성령의 도움을 구하며, 서로 권면하며, 겸손히 매 순간을 살아내야 합니다(롬 8:26-27; 히 3:12-15).


솔로몬은 하나님께 놀라운 지혜를 공급받았습니다. 그것으로 열방에 명예를 얻게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부가 풍성히 임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명예와 재물을 가지고 자신만을 사용했습니다. 그 모습은 점점 영적으로 타락해 갔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이방 신들까지 섬기는 악한 모습으로 전락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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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10-02)


솔로몬의 부귀영화

열왕기상 10장 14-29절


당신은 소유한 것들 중에 가장 소중한 애장품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아마도 어떤 특별한 가치가 있고, 또 희소성이 있고, 특별한 인생의 의미가 담겨 있는 어떤 물건일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정말 소중하게 아끼는 그런 애장품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많은 재물은 축복이 아니라 재앙일 수 있습니다. 성령에 인도하심이 없으면 물질 때문에 교만해지고 거만해집니다. 솔로몬은 이러한 부분에서 실패를 불러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지혜와 부귀영화를 약속한 대로 솔로몬의 부와 지혜는 세상 모든 왕을 능가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남부의 흥해, 북서부의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해상 무역으로 솔로몬은 아라비아, 아프리카, 아시아, 유럽 지역과 교역을 활발히 이뤄나갔습니다. 은을 귀하게 여기지 않을 만큼 솔로몬은 풍성한 금을 소유했고, 그 외에도 값지고 진귀한 상품들을 얻었습니다. 애굽에서 병마를 수입하여 병거성에 두기도 하고, 그것들을 되팔아 이득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솔로몬의 경제적 부귀영화(14-22)

하나님께서는 형통하게 하심에 따라 솔로몬의 위상이 크게 높아집니다. 국내외적으로 금이 많이 들어옴으로 국내 경제가 활성화되었습니다. 나라의 세입금이 엄청나게 늘어났는데, 여기에는 이스라엘을 통과하는 무역로를 지나가는 외국인들로부터 받는 세입금도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명성은 갈수록 높아졌고, 부와 재산도 갈수록 늘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부귀를 주셔서 국내 경제가 활성화되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14솔로몬의 세입금의 중수가 육백 륙십 륙 금 달란트요 15그 외에 또 상고와 무역하는 객상과 아라비아 왕들과 나라의 방백들에게서도 가져온지라 16솔로몬왕이 쳐서 늘인 금으로 큰 방패 이백을 만들었으니 매 방패에 든 금이 육백 세겔이며 17또 쳐서 늘인 금으로 작은 방패 삼백을 만들었으니 매 방패에 든 금이 삼 마네라 왕이 이것들을 레바논 나무 궁에 두었더라 18왕이 또 상아로 큰 보좌를 만들고 정금으로 입혔으니 19그 보좌에는 여섯 층계가 있고 보좌 뒤에 둥근 머리가 있고 앉는 자리 양편에는 팔걸이가 있고 팔걸이 곁에는 사자가 하나씩 섰으며 20또 열 두 사자가 있어 그 여섯 층계 좌우편에 섰으니 아무 나라에도 이같이 만든 것이 없었더라 21솔로몬 왕의 마시는 그릇은 다 금이요 레바논 나무 궁의 그릇들도 다 정금이라 은 기물이 없으니 솔로몬의 시대에 은을 귀히 여기지 아니함은 22왕이 바다에 다시스 배들을 두어 히람의 배와 함께 있게 하고 그 다시스 배로 삼년에 일차씩 금과 은과 상아와 잔나비와 공작을 실어 왔음이더라(14-22)

솔로몬의 부와 영화를 통한 위세는 무역, 경제, 군사 등 다방 면에서 고조되고 있습니다. 이는 히람과의 홍해 무역(9:26-28), 스바 여왕의 방문(10:1-13)에 이어 북서쪽의 지중해 무역, 남서쪽의 애굽, 남쪽의 아라비아, 북쪽의 히타이트(헷)와 아람 등과의 교역을 통해 드러납니다. 통치 초기에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확답하신 지혜와 부귀영화(3:11-13)는 통치 후반에도 계속 실현됩니다.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능력은 계속 증명될 것입니다.

솔로몬은 홍해와 지중해의 해상 교역을 통해 사방 나라들로부터 경제적인 부를 축적합니다. 그가 세금으로 1년에 얻은 금은 660달란트(22톤)에 달했습니다. 상인들과 무역인들과의 거래, 남부 아라비아 왕들의 조공과 교역, 이스라엘의 지방 관장들로부터 받는 수익(4:7)을 통해서도 금이 들어왔습니다. 솔로몬의 부는 금제작품일 통해서도 과시됩니다(16-21). 소개된 제작품으로는 첫째, 금을 쳐서 늘여 만든 방패들입니다. 큰 방패 600개와 작은 방패 300개가 제작되었습니다. 큰 방패는 전신을 감싸는 방패로서 금 600세겔(6.8kg)이 사용되었고, 작은 방패는 팔에 두를 수 있는 크기로 금 3마네(1.7kg)가 들어갔습니다. 방패는 레바논 숲 궁(7:2)에 보관되었습니다. 왕이 성전에 출입할 때 군사들이 방패를 보관소에서 꺼내 들고 갔다가 다시 집어넣은 것을 보면(14:26-28) 장식이나 의전용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상아로 만든 솔로몬의 보좌에도 정금을 입혔습니다. 보좌의 뒤편 등받이는 둥근 모양이었습니다. 의자 양쪽에 팔걸이가 장착되었고, 각 팔걸이 옆에 사자 형상의 조형물이 하나씩 서 있었습니다. 보좌 아래에는 여섯 계단이 있었고, 모든 계단 양쪽에도 사자상이 하나씩 버티고 있었습니다. 이같이 엄위하고 화려한 보좌는 어느 나라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셋째, 그릇과 잔도 다 정금으로 제작되었으며, 레바논 숲 궁에 보관하고 사용했습니다. 솔로몬 당시에는 은 기물이 없고, 은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금이 풍성했습니다. 솔로몬과 히람의 협동 해상 무역이 지중해로 확장됨으로써 금 유입이 늘었습니다. 솔로몬은 스페인 항구 다시스로부터 금뿐 아니라 은, 상아, 원숭이, 공작을 3년에 한 번씩 반입해왔습니다.

 

솔로몬의 부귀영화와 지혜(23-25)

부자 되는 것이 무엇이기에 성경은 그토록 강하게 경고를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부자 되고 싶어 하는 마음과 천국을 소망하는 마음은 전혀 다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두 마음을 가질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부자 되고 싶어 하는 마음으로 산다면 결국 부자만 된다면 천국을 포기해도 좋다는 식이 될 수밖에 없고, 천국을 소망하는 마음이라면 부자가 아니어도 좋다는 마음일 것입니다. 그렇게 본다면 천국은 부자 되고자 하는 마음은 절대 허락하지 않음을 알아야 합니다.

23솔로몬 왕의 재산과 지혜가 천하 열왕보다 큰지라 24천하가 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를 들으며 그 얼굴을 보기 원하여 25각기 예물을 가지고 왔으니 곧 은 그릇과 금 그릇과 의복과 갑옷과 향품과 말과 노새라 해마다 정한 수가 있었더라(23-25)

솔로몬의 부와 함께 그의 지혜가 다시금 부각됩니다. 재물과 지혜로 솔로몬을 능가할 왕이 세상에 없을 정도였고, 이는 하나님의 선물이었습니다. 솔로몬의 통치기록(1-11장)은 이 점을 계속해서 부각합니다. 하나님께 지혜를 받기 전에도 솔로몬의 지혜는 다윗의 유언 속에 미리 암시되었습니다(2:6,9). 등극 후에는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을 통해 솔로몬이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부귀영화를 받았음이 밝혀졌습니다(3:11-14). 이후 솔로몬의 지혜는 백성의 재판과 행정 조직 개편을 통해, 자국과 열방의 다스림을 통해, 성전과 왕궁 건축을 통해, 무역과 외교 관계를 통해 직간접적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지혜에 대한 명성은 온 이스라엘(3:28), 사방의 모든 나라와 열왕(4:31,34)에 퍼졌습니다. 이방의 우두머리들인 히람(5:7)과 스바 여왕(6-9)도 솔로몬의 지혜를 칭찬하며, 그 지혜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송축했습니다. 지도자들만 아니라 수많은 사람이 솔로몬의 지혜를 듣기 위해 온 땅에서 그를 찾아왔습니다(24). 이 지혜는 하나님이 솔로몬의 “마음에 주신 지혜”(24)로,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3:12)입니다. 이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과 헌신을 기반으로 한 지혜입니다(3:14). 통치자의 지혜는 백성의 송사를 듣는 마음과 선과 악을 분별하여 정의를 구현하려는 우선적 목표가 요구되었습니다(3:8-12). 그런데 통치 초반에 비해 통치 후반에는 불어나는 재물과 영화에 대한 기록의 비중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수많은 자가 지혜를 들으러 왔다는 점을 부각했다면(4:34) 이제는 그들이 지혜를 들으러 오면서 해마다 많은 예물을 가지고 온 점이 부각되었습니다(25). 이들의 예물은 금과 은으로 제작된 그릇, 의복과 갑옷, 향품, 말과 노새였습니다. 이들의 방문과 무역과 조공으로 얻은 재물은 엄청났습니다. 그러나 잦고 긴 건축 사업, 선박 제조와 무역의 확장, 행정 개편 등으로 백성들에게 부과된 세금과 부역, 지파 간의 갈등도 늘어났습니다.

 

솔로몬의 군사적 부귀영화(26-29)

세상적인 관점으로 보면, 자신의 물질을 가지고 자신을 위해 사용하는 것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인 부분으로 살펴보면, 물질을 사용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나타나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서만 고가의 명품과 사치품으로 치장하는데 사용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에 붙드는 사람들은 물질도 주님의 뜻을 위해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사역을 할 때 드립니다. 주변에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합니다.

26솔로몬이 병거와 마병을 모으매 병거가 일천 사백이요 마병이 일만 이천이라 병거성에도 두고 예루살렘 왕에게도 두었으며 27왕이 예루살렘에서 은을 돌 같이 흔하게 하고 백향목을 평지의 뽕나무 같이 많게 하였더라 28솔로몬의 말들은 애굽에서 내어왔으니 왕의 상고들이 떼로 정가하여 산 것이며 29애굽에서 내어올린 병거는 하나에 은 육백 세겔이요 말은 일백 오십 세겔이라 이와 같이 헷 사람의 모든 왕과 아람 왕들을 위하여도 그 손으로 내어왔더라(26-29)

솔로몬의 부귀영화는 무역을 중개로 한 군사적 방비에서도 나타났습니다. 26, 28-29절은 솔로몬의 군사적 부귀영화를 묘사하고, 중간 27절은 이스라엘의 안전과 부요함을 묘사합니다. 이스라엘의 부와 풍요로움은 예루살렘과 유다 평지에 은과 백향목이 돌과 뽕나무처럼 흔한 데서 증명되었습니다(27). “평지”(쉐펠라)는 서쪽의 블레셋 평원과 동쪽의 유다 산지 사이의 구릉지를 가리킵니다. 군사적인 영화는 무수한 병거와 마병을 소유한 점으로 설명됩니다. 솔로몬은 1,400대의 병거와 12,000명의 기마병을 두었습니다. 역대기에는 병거를 끄는 말의 마구간이 4,000개라고 기록했습니다(대하 9:25). 병거와 말들은 무역상을 통해 남부의 애굽과 북부의 길리기아 지역으로 알려진 구에(28)에서 수입했습니다. 병거 한 대 값은 은 600세겔(6.8kg), 말 한 필은 150세겔(1.7kg)이었습니다. 병거 한 대의 가격은 일꾼이 약 7년, 말은 20개월 동안 일해야 살 수 있는 어마어마한 가격이었습니다. 솔로몬은 무역상들을 통해 북부의 헷 족속 왕들과 아람 왕들에게 병마를 되파는 중간상인 역할을 하기도 했습니다. 말과 병거의 엄청난 양적 규모와 투자한 비용은 솔로몬이 군사 방비에 지대한 관심을 쏟고 투자에 힘썼음을 드러냅니다. 이처럼 외적 모양새는 화려했으나 문제점들도 드러났습니다. 첫째,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께 달린 것(삼상 17:47; 대하 20:15)을 망각하고, 이방과 병력을 의지함으로써 자국의 안전을 도모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 앗수르, 바벨론 등 열방과 그들의 신들을 의지하지 말라고 명하셨고, 이를 어길 시 심판이 있을 것을 경고하셨습니다(사 8:6-7; 렘 46:25). 병력을 키울 목적으로 말을 많이 두지 말 것과 애굽과 교류하여 그곳의 말들을 사들이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신 17:16). 그러나 솔로몬은 바로의 딸을 아내로 맞이했기에, 애굽에서 수려한 말과 병거를 더 쉽게 사들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는 하솔, 므깃도, 게셀 등에 지은 병거성(9:17-19)과 예루살렘 성읍에 병거와 마병을 두었습니다. 저자는 병거와 마병을 예루살렘 왕과 함께(“왕에게도”) 있도록 인도했다(“두었으며”)고 기술합니다(26). 목자가 양을 목초지로 인도하듯, 솔로몬이 말과 병거를 병거성으로 인도하여 함께 있게 했다고 표현함으로써(26) 솔로몬의 말 수집이 하나님의 명령에 위배된 행동임을 꼬집습니다. 둘째, 솔로몬은 병마를 늘려 군사, 경제적 이득을 창출함으로써 자신의 부와 군사력을 과시하였습니다. 다윗 시대까지는 병거 부대나 병거성이 없었습니다. 병마를 모으는 데 엄청난 자금이 들었기 때문이며, 이스라엘 지형이 평야(예. 블레셋 평야, 이스르엘 골짜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구릉지라 전투할 때 병마가 필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 이방 지역들과 전쟁하면서 병거에 대한 관심이 커졌습니다. 다윗은 전쟁에서 빼앗은 병거 1,000대 중 말 100필이 몰 수 있는 병거를 남겨두었고(대상 18:4), 수많은 병거들을 사 모으기까지 했습니다. 그런데 수입한 병마를 되판 것을 볼 때 긴급한 군사적인 필요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솔로몬의 병력 증진이나 부의 축적은 왕의 위력과 부를 과시하는 용도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럴수록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은 약화되었습니다. 이것이 이후 나라의 분열과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이 됩니다.


솔로몬을 통해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주시는 축복의 풍성함을 봅니다. 날마다의 삶에서 당신 지혜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며 나아가게 하소서. 지혜의 부산물에 취해 사느라고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부러워하거나 욕심 부리지 않고 하나님과 더 깊이 교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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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10-01)


스바 여왕의 방문과 방문 결과

열왕기상 10장 1-13절


 

우리가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중요한 두 가지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속도와 방향입니다. 속도도 중요합니다. 아무리 방향이 원해도 당신이 목적지를 향해 출발점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또 힘있게 달려가지 않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속도와 더불어 방향이 중요합니다. 우리의 인생에 자신이 방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삶의 방향이 될 때, 우리는 진정한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허망한 인생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스바 여왕이 방문했습니다. ‘시바’는 지금의 ‘예멘’입니다. 예루살렘에서 2200km를 떨어진 곳에 솔로몬의 지혜를 듣고 싶어서 왔던 여왕입니다. 먼 거리를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엄청난 거리를 예루살렘까지 찾아왔습니다. 솔로몬의 지혜와 그 지혜로 이룬 성과들을 직접 확인한 여왕은 많은 예물로 답례합니다.

 

솔로몬과 스바 여왕(1-10)

하나님께서는 부와 지혜를 주시는 분입니다. 솔로몬이 가진 뛰어난 지혜와 많은 부는 모두 하나님이 주신 것이었습니다. 궁금하거나 필요한 것들이 있다면 솔로모보다 지혜롭고 부유하신 하나님께 말씀을 들으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것들을 어떻게 사용하길 원하시는지 분명히 알게 되어야 합니다.

1스바의 여왕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은 솔로몬의 명성을 듣고 와서 어려운 문제로 그를 시험하고자 하여 2예루살렘에 이르니 수행하는 자가 심히 많고 향품과 심히 많은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실었더라 그가 솔로몬에게 나아와 자기 마음에 있는 것을 다 말하매 3솔로몬이 그가 묻는 말에 다 대답하였으니 왕이 알지 못하여 대답하지 못한 것이 하나도 없었더라 4스바의 여왕이 솔로몬의 모든 지혜와 그 건축한 왕궁과 5그 상의 식물과 그의 신하들의 좌석과 그의 시종들이 시립한 것과 그들의 관복과 술 관원들과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는 층계를 보고 크게 감동되어 6왕께 말하되 내가 내 나라에서 당신의 행위와 당신의 지혜에 대하여 들은 소문이 사실이로다 7내가 그 말들을 믿지 아니하였더니 이제 와서 친히 본즉 내게 말한 것은 절반도 못되니 당신의 지혜와 복이 내가 들은 소문보다 더하도다 8복되도다 당신의 사람들이여 복되도다 당신의 이 신하들이여 항상 당신 앞에 서서 당신의 지혜를 들음이로다 9당신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당신을 기뻐하사 이스라엘 왕위에 올리셨고 여호와께서 영원히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므로 당신을 세워 왕으로 삼아 정의와 공의를 행하게 하셨도다 하고 10이에 그가 금 일백이십 달란트와 심히 많은 향품과 보석을 왕에게 드렸으니 스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에게 드린 것처럼 많은 향품이 다시 오지 아니하였더라(1-10)

스바 여왕의 방문을 다룬 이 단락은 솔로몬의 히람과의 무역 개시(9:26-28)와 함께 솔로몬의 외교, 무역, 정치적 역량을 기술합니다. 스바는 남서 아라비아에 위치한 현 예멘으로 알려졌습니다. 이 지역은 최상급 향료, 금, 보석 등의 교역이 활발했습니다(겔 27:22). 홍해의 해상 무역(9:26-28)을 소개한 후 홍해 지역 여왕의 방문을 기록한 것은 지역적 공통점과 함께 무역과 외교라는 공통 주제로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또한 9:28-10:13 단락에는 히람과의 교역과 스바 여왕 관련 기록이 번갈아 나와, 이와 같은 연결성을 강화합니다. 이런 구조와 내용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약속한 지혜와 영화가 그의 통치 기간 내내 실현되고 있음을 은근히 드러냅니다. 스바 여왕의 방문은 한 나라 지도자의 직접적 체험으로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소문의 진정성을 확인해주는 사건입니다. 솔로몬의 명성을 들은 여왕이 직접 방문합니다. 이 단락에서는 ‘들었다’ 또는 ‘소문’, ‘명성’ 등의 관련 표현이 반복적으로 나와 솔로몬의 평판이 온 열방에 퍼졌음을 부각합니다. 이 명성의 근원은 솔로몬이 아닌 “여호와의 이름”입니다(1). 솔로몬의 명성 자체는 그의 행위, 지혜, 축복(6-7)에 대한 것이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받은 솔로몬의 지혜는 이스라엘만 아니라 온 사방 나라에 소문이 나, 왕들이 사절단을 보내 그 지혜를 탐구해왔습니다(23-25; 3:28;4:29-34). 이번에는 한 여왕이 직접 행차하여 까다로운 질문으로 솔로몬의 지혜의 깊이를 시험하려 합니다. 여왕은 많은 수행원을 거느리고, 값비싼 향품과 금과 보석을 낙타에 싣고 왔습니다. 한 나라의 우두머리가 자국을 떠나 멀고 긴 여정을 마다하지 않고 온 점을 참작하면, 실제 방문 목적은 무엇보다 자국의 정치, 외교, 상업 등의 이익 창출을 위함임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이 히람과 홍해 무역을 추진하여 활발한 교역을 벌였으므로 무역 등 경제와 외교 부분에 대한 교섭을 원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여왕은 솔로몬에게 물어보고 싶은 모든 것을 물어보았습니다. 솔로몬이 어떤 질문에든 다 대답하는 것을 보고 여왕은 그의 비범한 지혜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이는 솔로몬의 지혜가 동방과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나고, 초목, 동물, 조류, 어류, 잠언과 노래 등 다양하고 깊은 지식과 혜안을 가졌음을 다시 상기시킵니다(4:30-33). 그의 지혜는 대화에서만 아니라 그가 건축한 건물들, 궁정 내부와 그곳의 일상과 무수한 시종들에게서 나타나는 질서 체계와 영화 속에서도 빛을 발했습니다. 구체적인 예로는 장엄하고 화려하게 건축된 왕궁과 성전, 식탁 위 금 그릇에 차려진 만찬들(21; 4:22-23), 신하들의 좌석과 서열 모습과 화려한 관복, 금잔(21)에 술을 바치는 술관원들과 그들의 제복, 성전에 올라가는 층계가 나열되었습니다(5). 여기서 신하들의 좌석이나 성전에 올라가는 층계는 솔로몬의 보좌와 보좌로 올라가는 층계에 비춰 봤을 때 화려하고 위엄이 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의 왕좌는 상아로 제작되어 정금으로 입혔고, 그 아래 여섯 층계가 있었으며 그 좌우편에는 사자 형상이 놓여 있었습니다(18-20). 한편 “여호와의 성전에 올라가는 층계”(5)는 ‘여호와의 성전에서 바친 번제들’로도 번역 가능하며, 이 경우 제물의 풍요로움과 의식의 엄숙함을 가리킵니다. 여왕은 이 모든 광경을 넋을 잃고 (“크게 감동되어”, 5) 바라보았습니다.

6-9절은 솔로몬의 지혜를 확인한 스바 여왕이 솔로몬에게 한 말들을 수록합니다. 여왕은 먼저 자기가 고국에서 들었던 솔로몬의 행위와 지혜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었음을 확증합니다(6). 여기서 “행위”(데바림)는 ‘업적’, ‘형적’ 만 아니라 ‘말씀’이란 의미도 있습니다. 솔로몬의 경우 그의 지혜로운 말과 잠언, 시 등으로 명성이 있었으므로 이 의미도 함께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실”(에메트)은 ‘진실’, ‘참’이란 뜻으로 솔로몬의 평판에 진정성이 있음을 알립니다. 여왕은 본국에 있을 때 솔로몬에 대한 소문을 들었으나 믿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직접 와서 자신의 눈으로(“친히”, 7) 보니, 자기가 보고받았던 내용이 솔로몬의 실제 지혜와 업적의 반도 안 됨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왕은 솔로몬에게 그의 지혜와 복이 그의 명성을 뛰어넘는다고 칭찬합니다. 이어서 여왕은 솔로몬의 신하들을 향해 “복되도다”라고 외치며, 늘 솔로몬 앞에서 그의 지혜를 들을 수 있음에 부러움을 표현합니다. 마지막으로 여왕은 솔로몬을 왕으로 삼으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합니다. 이 일은 솔로몬의 통치 초기에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왕위를 허락한 하나님을 송축한 일을 떠오르게 합니다(5:7). 히람의 찬양은 솔로몬의 등극을 통해 하나님께서 다윗과의 언약을 수행하셨음을 상기시켰습니다. 이번 스바 여왕의 말에서는 솔로몬과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기쁨과 사랑이 부각되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의 언약 백성으로 삼으신 일을 기억나게 합니다. 또 히람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많은 백성을 다스리는 지혜를 주셨음을 찬양했습니다. 스바 여왕의 말에서는 통치자의 지혜가 특히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일'임을 일깨웁니다. 이는 솔로몬이 백성의 송사를 듣고 선악을 분별하는 지혜를 구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3:9-11). 이처럼 솔로몬은 하나님의 권능과 은혜를 통해 왕의 자리에 올랐고, 그가 주신 지혜로 정의의 통치를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솔로몬이 얻은 명성은 오로지 여호와 덕분입니다(1). 하나님을 송축한 스바 여왕은 낙타에 싣고 온 금 120달란트(4톤)와 보석과 많은 향품을 솔로몬에게 선물로 전달했습니다. 여왕이 선물한 엄청난 양의 금은 히람이 솔로몬의 요구에 따라 빌려주었던 금의 양과 동일했습니다(9:14). 또한 엄청난 향품 선물은 전무후무한 일이 되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약속한 바를 신실하게 이뤄주신 일은 이스라엘 백성만 아니라 이방인 지도자들과 신하들에게도 입증되었습니다.

 

솔로몬과 히람(11-12)

만약 우리 이름과 업적이 다른 사람보다 빛나고 귀해서 칭찬받는 일이 생긴다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은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우수한 머리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면 그 머리를 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비록 땀 흘려 얻은 귀중한 승리나 메달이라 할지라도 역시 박수갈채는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사업이 잘 되고, 자녀가 존귀하게 된다면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복 주신 결과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1오빌에서부터 금을 실어온 히람의 배들이 오빌에서 많은 백단목과 보석을 운반하여 오매 12왕이 백단목으로 여호와의 성전과 왕궁의 난간을 만들고 또 노래하는 자를 위하여 수금과 비파를 만들었으니 이같은 백단목은 전에도 온 일이 없었고 오늘까지도 보지 못하였더라(11-12)

스바 여왕의 값진 선물에 덧붙여 솔로몬은 히람과 시작한 무역(9:26-28)을 통해서 큰 부를 소유했습니다. 앞서 건축 대금과 관련하여 솔로몬과 히람 사이에 생겨난 갈등(9:11-14)은 어떻게 해결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번 합작 무역의 성사는 이전의 긴장감이 해소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솔로몬은 홍해 교역으로 오빌에서 금 420달란트(약 14톤)를 얻었습니다(9:28). 남서 아라비아 또는 아프리카의 한 지역으로 알려진 오빌에서는 금 외에도 백단목과 보석까지 들여왔습니다. 특히 백단목으로 성전과 왕궁의 난간을 제작했고, 노래하는 자들을 위해 수금과 비파와 같은 악기도 제작했습니다. 백단목이 어떤 나무인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성전과 왕궁의 난간(또는 계단)과 악기 제작에 사용된 만큼, 나뭇결의 밀도가 높고 고우면서 단단한 목재로 추측됩니다. 이처럼 고귀한 백단목의 유입은 처음 있는 이례적인 일이었고, 이후에도 이런 일을 본적이 없었습니다. 스바 여왕의 후하고 귀한 선물과 마찬가지로 교역품의 진귀함과 풍요로움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에 덧붙여 은혜로 약속하신 부와 영화가 실현되었음을 암시합니다.

 

솔로몬과 스바 여왕(13)

넉넉하다고 해서, 달라는 대로 다 주지는 않습니다. 죄인인 인간은 많다고 해서 아무 것도 없는 사람에게 자신의 것을 나누지는 않습니다. 두 개 가지고 있으면 세 개 가지고 싶어 하는 것이 죄인의 실상입니다. 작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더 큰 것을 갈망하고, 낡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 새것을 갖고 싶어 합니다. 진심으로 줄 수 있는 것은 값없이 거저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또한 그 복이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축복임을 알 때에야 비로소 이웃에게 사심 없이, 조건 없이 나눠 줄 수 있게 됩니다.

13솔로몬 왕이 왕의 규례대로 스바의 여왕에게 물건을 준 것 외에 또 그의 소원대로 구하는 것을 주니 이에 그가 그의 신하들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갔더라(13)

많은 예물을 솔로몬에게 선물한 스바 여왕은 솔로몬으로부터 마찬가지로 풍성한 선물을 받고 되돌아갑니다. 솔로몬은 왕의 규례에 따라 스바 여왕에게 답례품을 전달했습니다. 이 같은 공식적인 외교 예물 외에도 솔로몬은 여왕이 원하여 요청한 모든 것을 다 선물로 주었습니다. 여왕은 솔로몬의 호의 속에 그가 이끌고 온 신하들과 함께 본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우리의 지혜를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세상을 섬기는 일에 사용해야 합니다. 솔로몬의 지혜를 확인한 스바 여왕은 그 지혜를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기뻐하시고 결과일 뿐,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더군다나 그 지혜가 공의를 구연하기 위해 사용할 때만 의미가 있음을 부연 설명합니다. 우리도 지혜로운 자가 되게 하셔서 하나님께는 영광을 이웃들에게는 기쁨을 주도록 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지혜와 재능으로 하나님을 높이며 살도록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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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9-02)


부정적으로 변해 가는 솔로몬

열왕기상 9장 10-28절


모든 일에는 양지가 있으면 음지가 있습니다, 한 개인의 삶도 그러합니다. 삶의 느늘이 우리를 무너뜨리지 않게 하고, 성취나 업적이 우리를 교만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어려울 때 무너지지 않게 하고, 승승장구할 때 더욱 자신을 실피고 하나님의 은혜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했던 솔로몬은 하나님의 은혜로 큰 성공과 영광을 거두었습니다. 성공 후에 관리가 중요합니다. 그는 성공 후부터 문제가 발생하기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에 성전과 궁궐이 건축되어 영적, 정치적 기반이 확립되고, 군사, 경제, 상업적 기반도 견고해집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 성읍을 재건하고, 요세화하여 방비했습니다. 이 일을 위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임무를 맡기고, 자국 내에 남아 있는 이방인에게는 노역을 맡겨 힘의 균형을 이루었습니다.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성전은 왕과 백성들의 제사와 기도의 장소로 완전하게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히람과 함께 무역을 개시하여 부를 창출했습니다.

 

솔로몬의 건축 사업 후기(10-25)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일을 더욱 발전시키고 필요한 부분을 세워 나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에서 능력 있는 사람과 협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면서 지혜롭게 도움을 주고 받아야 합니다. 과도한 도움을 받게 되면 상대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을 수 없음을 기억하고 주의를 기울이며 신중해야 합니다.

10솔로몬이 두 집 곧 여호와의 전과 왕궁을 이십년 만에 건축하기를 마치고 11갈릴리 땅의 성읍 이십을 히람에게 주었으니 이는 두로 왕 히람이 솔로몬에게 그 온갖 소원대로 백향목과 잣나무와 금을 지공하였음이라 12히람이 두로에서 와서 솔로몬이 자기에게 준 성읍들을 보고 눈에 들지 아니하여 13이르기를 나의 형이여 내게 준 이 성읍들이 이러하뇨 하고 이름하여 가불 땅이라 하였더니 그 이름이 오늘까지 있으니라 14히람이 금 일백 이십 달란트를 왕에게 보내었더라 15솔로몬 왕이 역군을 일으킨 까닭은 이러하니 여호와의 성전과 자기 왕궁과 밀로와 예루살렘 성과 하솔과 므깃도와 게셀을 건축하려 하였음이라 16전에 애굽 왕 바로가 올라와서 게셀을 탈취하여 불사르고 그 성읍에 사는 가나안 사람을 죽이고 그 성읍을 자기 딸 솔로몬의 아내에게 예물로 주었더니 17솔로몬이 게셀과 아래 벧호론을 건축하고 18또 바알랏과 그 땅의 들에 있는 다드몰과 19자기에게 있는 모든 국고성과 병거성들과 마병의 성들을 건축하고 솔로몬이 또 예루살렘과 레바논과 그가 다스리는 온 땅에 건축하고자 하던 것을 다 건축하였는데 20이스라엘 자손이 아닌 아모리 사람과 헷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중 남아 있는 모든 사람 21곧 이스라엘 자손이 다 멸하지 못하므로 그 땅에 남아 있는 그들의 자손들을 솔로몬이 노예로 역군을 삼아 오늘까지 이르렀으되 22다만 이스라엘 자손은 솔로몬이 노예를 삼지 아니하였으니 그들은 군사와 그 신하와 고관과 대장이며 병거와 마병의 지휘관이 됨이었더라 23솔로몬에게 일을 감독하는 우두머리 오백오십 명이 있어 일하는 백성을 다스렸더라 24바로의 딸이 다윗 성에서부터 올라와 솔로몬이 그를 위하여 건축한 궁에 이를 때에 솔로몬이 밀로를 건축하였더라 25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제단 위에 해마다 세 번씩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또 여호와 앞에 있는 제단에 분향하니라 이에 성전 짓는 일을 마치니라(10-25)

하나님의 출현(1-9)에 이어 솔로몬 통치기에 행한 건축에 대한 후기가 기록되었습니다. 모든 건축 사업 중심에는 ‘성전 건축’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 단락은 성전과 왕궁의 건축 자재를 대준 히람과의 관계(10-14), 건축을 위해 솔로몬이 일으킨 역군 및 자국 안팎의 방비를 위한 건축 사업(15-23), 왕궁과 성전 건축의 후기(24-25)를 기술합니다.

(1) 솔로몬과 히람(10-14)

성전 건축 준비 때부터 각별한 관계를 유지했던 솔로몬과 히람은 성전과 왕궁 건축이 완료된 20년의 끝자락에 갈등을 겪습니다. 솔로몬 등극 초에는 서로 원하는 것을 주고받는 만족스러운 조약을 맺었습니다(5장). 솔로몬은 백향목, 잣나무 등의 목재와 놋 기술자, 벌목공 등의 기술 인력을 제공 받았고, 히람은 밀과 올리브기름 등의 식자재를 얻었습니다. 솔로몬은 히람 덕분에 성전과 왕궁을 완공했습니다. 왕궁 건축이 완료된 후 솔로몬은 갈릴리 땅에 있는 20성읍을 히람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건축 자재 대금 정산의 성격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제공 받은 품목 중에 “금”이 있었다는 것은 새로운 정보입니다. 이제 히람은 두로에서 직접 와 솔로몬이 준 성읍들을 보았는데 히람의 눈에 흡족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북부 두로 경계에 있던 이 성읍들에는 이방인들이 거주하고 있었고(삼하 24:7), 좋은 조건의 땅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솔로몬에게 어찌 이런 땅을 주느냐고 불만을 토했고, 그곳을 ‘쓸모없는’(“가불”) 땅이라 명명했습니다. 역대기에 따르면 심지어 성읍을 모두 돌려주기까지 했습니다(대하 8:2). 솔로몬은 돌려 받은 성읍들을 재건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거주하도록 했습니다. 열왕기는 이런 내용은 생략하고, 히람이 보냈던 금의 양이 120달란트(약 4톤)였다고 말합니다(14). 성읍들이 히람에게 빌린 금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2) 역군 소집과 건축 사업(15-23)

여기서는 솔로몬이 건축 사업을 위해 일으킨 역군에 대해 설명합니다. 솔로몬은 우선 역군들을 성전과 왕궁 건축에 투입했습니다. 그 후 예루살렘의 방비를 위한 밀로 성 건축과 성벽 공사를 진행했습니다. ‘밀로’는 솔로몬이 애굽인 아내 (3:1)를 위한 궁을 완공한 후 건축했습니다(24). 돌로 만든 계단식 구조물이며 다윗이 예루살렘을 정복할 때 정비한 바 있는 성입니다(삼하 5:9). 그 이후 세월이 지났으므로 솔로몬 당시 보수하거나 보강 공사를 했을 것입니다(11:27). 솔로몬은 예루살렘 외 자국의 성읍을 재건하고 요새화함으로써 나라를 방비했습니다. 요새화한 성읍은 북부로부터 남부까지 하솔, 므깃도, 게셀, 아래 벧호론, 바알랏, 다말 등지였습니다. 성읍을 요새화하는 일에는 성벽을 세우고 성문과 문빗장을 구축하고, 식량, 무기, 마병을 둘 공간을 마련하는 일들이 포함됩니다(대하 8:5-6). 국고성은 방어를 위해 식량과 무기 등 각종 물품을 비축한 창고가 있는 성읍이며, 병거성과 마병성은 말 그대로 전차와 말들을 보관하고 기마병들을 배치할 목적으로 건축한 성읍입니다. 이 지역은 모두 군사 전략적 요충지였습니다. ‘하솔’은 갈릴리 호수 북쪽에 위치하여 북방의 침입을 경계하는 지역이고, 므깃도는 이스르엘 평원에 위치하며 다메섹과 메소포타미아로 통하는 교통의 요지입니다. ‘게셀’은 예루살렘 서쪽에 있으며, 애굽 공주의 아버지인 시아문(Siamun, 주전 978-959년)이 딸의 결혼 예물로 솔로몬에게 준 성읍이었습니다. 시아문은 게셀을 탈취해 불살랐고, 에브라임 지파가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거주민들(삿 1:29)을 죽여 그곳을 점령할 수 있었습니다. 게셀은 해안 도로에 위치해 애굽과 블레셋의 침입로가 되었기에, 솔로몬은 이 성읍을 재건축하여 요새화했습니다. 벧호론은 예루살렘 북서쪽이자 게셀의 북동쪽에, 바알랏은 게셀의 서쪽에, 다말(다드몰)은 유다 광야에 있는 성읍입니다. 솔로몬은 자국 외에 레바논과 그가 다스리는 온 이방 땅(4:21, 24)에서 활발한 건축 사업을 벌였습니다. 20-23절은 건축에 동원된 이방인 역군과 이스라엘 백성의 참여에 대한 설명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에 “남아 있는 모든” 이방인들을 노역에 가담시켰습니다(21). 이들은 아모리, 헷, 브리스, 히위, 여부스 족속으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멸하라고 명한 가나안의 일곱 족속에 포함되었습니다(신 7:1-2).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인도로 가나안에 들어와 그 땅을 삶의 터전으로 얻어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땅 정복을 위한 전쟁에서 믿음과 순종이 결여된 적이 많았으므로 이방인들을 다 몰아내지는 못했습니다(삿 1장). 따라서 수 많은 이방인들이 이스라엘 백성 중에 거하며 노역을 담당하게 되었습니다(수 9:27). 열왕기 저자가 이방인을 가리켜 ‘거주하는 자들’ 대신 ‘남아 있는 그들의 자손들’이란 표현을 쓴 것은 다분히 의도적으로,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 공사를 위해 짐꾼 7만 명, 산에서 돌 뜨는 자 8만 명, 총 15만 명의 이방인을 노예로 가담시켰습니다(5:15). 반면 이스라엘 백성은 노예로 삼지 않고 3만 명을 일시적 역군으로 삼았습니다(5:13-14). 그 외에는 군사, 신하, 고관, 대장, 병거와 마병 지휘관 등의 직책을 맡겼습니다. 왕의 관리들은 550명으로서 백성을 다스렸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을 노예로 삼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레 25:39-46)을 따른 조치였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건축 사업과 방어 체계 구축, 부역 정책, 행정 조직 개편 및 세금 징수, 국제 무역 등의 과중한 사업과 정책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고통을 주었고 그들의 불만을 가중시켰습니다.

(3) 왕궁과 성전(24-25)

24-25절은 궁과 성전 건축의 부가적인 후기입니다. 여기서도 바로의 딸이 다시 수면에 오릅니다. 솔로몬은 바로의 딸과 결혼하고 성전과 왕궁을 건축하는 기간 동안 그녀를 다윗 성, 즉 예루살렘 내에 머물게 했습니다(3:1). 그녀가 이방 여인이었으므로 법궤가 안치되어 있던 다윗 궁에는 머물게 할 수 없었습니다(대하 8:11;겔 44:7, 9). 그러나 이제 그녀를 위한 궁을 완공했으므로 솔로몬은 새 거처로 그녀를 인도했습니다. 이 일 후 솔로몬은 밀로를 건축했습니다. 한편 새로 건축된 성전은 제사(예배)와 기도의 장소(대하 7:12; 사 56:7)로 자리 잡아갔습니다. 솔로몬은 매년 세 절기(무교절, 칠칠절, 초막절)를 지키며 여호와를 위해 만든 놋 제단에서 번제와 감사제 등을 드렸습니다(대하 8:13). 절기 외에도 성전에서는 정한 날에 제사와 분향이 이루어졌습니다(출 23:17; 신 16장). 이렇듯 성전은 말씀에 순종하며 제사하는 본연의 역할을 감당하는 터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25절은 솔로몬이 ‘성전을 완성했다’고 선언하며, 성전과 관련된 기록을 마무리합니다.

 

솔로몬과 히람(26-28)

하나님께서 지혜를 주시고 사람들의 도움을 받개 될 때 활동 영역이 확장되는 기회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솔로몬은 백성들을 위해 지혜를 구했고, 처음에는 그 지혜를 잘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점점 부강해지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힘과 지혜를 사용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부당하게 대하거나 괴롭혀서는 안 됩니다. 솔로몬은 히람에게 좋지 못한 땅을 주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을 노예로 삼았습니다.

26솔로몬 왕이 에돔 땅 홍해 물 가의 엘롯 근처 에시온게벨에서 배들을 지은지라 27히람이 자기 종 곧 바다에 익숙한 사공들을 솔로몬의 종과 함께 그 배로 보내매 28그들이 오빌에 이르러 거기서 금 사백이십 달란트를 얻고 솔로몬 왕에게로 가져왔더라(26-28)

솔로몬은 자국 내외의 건축 사업에 덧붙여 해상 무역을 통한 국제 교역 시대를 열었습니다. 성전과 궁의 건축 자재 운반을 위해 솔로몬은 이미 히람과 지중해 (대) 교역을 해왔습니다. 이번에 이들은 협동으로 남부의 홍해를 이용해 아라비아, 아프리카 등으로 수송로를 확장했습니다. 솔로몬은 에돔 땅, 아카바 만의 항구 도시들인 엘롯 부근의 에시온게벨에서 선박들을 만들었습니다. 히람이 보낸 항해 기술자들은 솔로몬의 종들과 조력하여 오빌에서 금 420달란트(약 14톤)를 수송해 왔습니다. 무역을 통해 솔로몬이 얻은 부와 영화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3:13)의 성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의 성전은 빈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솔로몬의 번영을 부러워할 것이 아니라, 번영 가운데 숨겨진 성공 지상주의와 세상과의 타협과 무리수를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 건물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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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9-01)

 


성전 완성 후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

열왕기상 9장 1-9절


가족들이 함께 사는 집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좋은 집을 소유했다고 가정의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많은 가정들이 좋은 집을 얻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지만, 소원했던 좋은 집들을 얻은 후, 가정은 이상하게 되는 경우를 봅니다. 자기 생활에 바빠서 몇 명 안되는 식구들이 각자 따른 생활을 합니다. 그래서 가정이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봅니다. 집이라는 장소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집에 사는 가족들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의 성전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름다운 성전을 건축했기 때문에 거룩해진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성전을 통한 하나님께 거룩하게 예배하는 삶을 살길 원하신 것입니다.
 
솔로몬이 성전과 왕궁을 건축한 후, 기도하는 솔로몬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솔로몬이 기도한 것을 들으셨습니다. 솔로몬에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전달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성전에 거하시며 이스라엘을 보살펴 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시 나타나신 하나님(1-9)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버리고 불순종하고 우상을 숭배하면 이스라엘 백성을 땅에서 끊어버리고 성전에서 눈길을 거두어 던져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충성하지 않으면 성전을 헐어버리고 이방인들의 웃음거리로 만들겠다고 하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고 따르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의 성전은 빈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솔로몬은 성전을 다 건축했습니다. 그런 후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보호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성전을 완성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게 아닙니다. 이제부터 진짜 시작입니다.
1솔로몬이 여호와의 전과 왕궁 건축하기를 마치며 자기의 무릇 이루기를 원하던 일이 마친 때에 2여호와께서 전에 기브온에서 나타나심 같이 다시 솔로몬에게 나타나사 3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앞에서 기도하며 간구함을 내가 들었은즉 내가 너의 건축한 이 전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나의 이름을 영영히 그곳에 두며 나의 눈과 나의 마음이 항상 거기 있으리니 4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마음을 온전히 하고 바르게 하여 내 앞에서 행하며 내가 네게 명한대로 온갖 것을 순종하여 나의 법도와 율례를 지키면 5내가 네 아비 다윗에게 허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 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한대로 너의 이스라엘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려니와 6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이켜 나를 좇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숭배하면 7내가 이스라엘을 나의 준 땅에서 끊어 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 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8이 전이 높을찌라도 무릇 그리로 지나가는 자가 놀라며 비웃어 가로되 여호와께서 무슨 까닭으로 이 땅과 이 전에 이 같이 행하셨는고 하면 9대답하기를 저희가 자기 열조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자기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에게 부종하여 그를 숭배하여 섬기므로 여호와께서 이 모든 재앙을 저희에게 내리심이라 하리라 하셨더라(1-9)
솔로몬을 향한 하나님의 각별한 사랑과 관심 그리고 축복의 선물을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전에 나타나실 때는 스스로 작은 아이라 할 만큼 불안정한 정치상황을 두려워하던 솔로몬을 격려하기 위해 나타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전과 왕궁 건축으로 강력한 집권 체제를 확립한 솔로몬을 도전하기 위해 찾아오신 것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일천번제를 드린 기브온 산당에서 꿈에 나타나서 지혜와 함께 부와 영광을 약속하시고 다시 20년 만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솔로몬은 두 번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1) 솔로몬의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1-3)
열왕기상 8장의 봉헌 ‘예배’와 오늘 본문의 ‘하나님의 출현’ 내용은 솔로몬 등극(1-2장) 후의 첫 기록인 3장의 ‘예배’와 ‘하나님의 출현’과 내용상 연결됩니다. 3장의 예배는 기브온 산당에서의 제사였고, 9장은 예루살렘 새 성전에서의 봉헌 제사입니다. 기브온에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지혜와 부귀영화를 주실 것을 예고하셨고, 순종을 조건으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3:1-15). 이번에 예루살렘에서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과 이스라엘에게 순종의 축복만 아니라 불순종의 심판을 엄중히 경고하십니다.
기브온에 이어 두 번째로(“다시”, 2)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성전 봉헌식 때 드린 기도(8:22-53)와 관련하여 응답하십니다. 이 시기는 솔로몬 자신이 이루기를 원하던 모든 것, 즉 성전 및 왕궁 건축의 열망을 성공적으로 이룬 후였습니다(1; 대하 7:11). 그는 통치 기간 40년 중 절반을 두 건축 사업에 할애했습니다. 솔로몬 통치 제4년(주전 966년)에 시작된 성전 건축은 7년이 걸렸고, 그 후 13년에 걸쳐 왕궁을 건축했습니다(왕상 6:38; 7:1). 역대기에서는 하나님이 나타난 시각이 ‘밤’임을 알려, 기브온에서처럼 꿈에 등장했음을 암시합니다(대하 7:12). 하나님꼐서는 먼저 솔로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셨음을 확인시키십니다(3).
성전 봉헌식 때의 기도를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는 자신의 기도를 들어달라는 솔로몬의 간구(8:28)에 직접 응답하신 것이며, 나머지 기도(8:22-53)도 다 들으셨음을 암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간구에 대한 구체적인 응답으로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을 거룩하게 구별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영원히 이곳에 두셨음을 알리십니다(3). 봉헌식 때 솔로몬은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감당할 수 없기에 감히 이 성전에 하나님을 모실 수 없다고 고백했습니다(8:27). 그런데 오늘 하나님께서는 그가 이미 성전에 임하셨고, 자신의 거룩한 처소로 승인했음을 선언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성전의 가치는 백향목이나 금은보석과 같은 최상의 자재, 성전의 웅장함, 화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그의 거룩함으로 증명됩니다. 솔로몬의 간구대로(8:29) 하나님께서는 그의 눈과 마음을 성전에 두셨으며, 앞으로도 두실 것을 약속하십니다(3).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응답이 13년 전 성전 봉헌식 때 드린 기도(8:22-53)에 대한 응답이라 시간차를 생각하면 당황스럽습니다. 그렇지만 큰 시간차임에도 불구하고 1-2절에서 시간적 배경을 자세히 설명한 것은 사건들의 정보를 바꾸거나 은폐하지 않는 진실성과 역사성을 오히려 증명해줍니다.
그렇다면 봉헌식 당시에는 하나님의 응답이 없었던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역대기에 따르면 솔로몬의 봉헌식 기도 직후 하나님은 불과 영광으로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대하 7:1). 따라서 긴 세월이 지난 후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 당시의 기도에 대해 응답하시는 데에는 엄중한 의도가 있음을 암시합니다. 4-9절 및 11:9-13의 내용을 참작하면,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목적은 솔로몬과 백성에게 성전 건축 때의 초심을 갖고 명령에 순종해야 함을 경고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2) 순종과 축복의 약속(4-5)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다윗 왕조의 존폐가 순종 여부에 달려있음을 상기시키십니다. 4-5절의 하나님 말씀은 새로운 내용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다윗(8:25; 대상 28:7)과 솔로몬(3:14; 6:12-13)에게 직접 하신 말씀 및 다윗의 유언(2:2-4)을 통해서 솔로몬에게 모두 전달된 내용입니다. 4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따라야 할 모범으로 다윗을 예로 들고, 다윗처럼 온전한 마음과 정직함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행할 것을 명하십니다. 다윗이 완벽하다거나 죄와 실수가 없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다윗에 대한 전반적인 평가이며, 그가 평소에 하나님을 깊게 신뢰하며 말씀을 따라 살려고 힘썼음을 인정하셨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솔로몬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헌신을 기반으로 응당 하나님께서 명한 모든 일과 그가 제정한 법도와 율례를 지켜야 합니다. 이렇게 솔로몬이 하나님께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다윗 왕조를 견고히 지키심으로 보상하실 것입니다. 이 약속에는 “이스라엘의 왕위”가 두 번 반복되어(5), 순종의 결과로서 후손과 왕위의 존속이 특별히 ‘다윗 왕조’에 실현될 것임이 강조되었습니다. 순종과 견고한 왕권 간의 뗄 수 없는 관계는 다윗과 솔로몬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모든 왕들에게 주신 규례에 강조되어 있습니다. 왕은 언약 백성들(출 19:5-6)의 대표로서 늘 말씀을 옆에 두고, 여호와 경외하기를 배우며,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신 17:18-20). 왕이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종할 때 왕조의 존속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신 17:20).
(3) 불순종과 심판의 경고(6-9)
솔로몬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에는 ‘불순종에 따른 나라의 멸망’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동안은 순종의 축만 언급하셨지만(3:14; 6:12-13), 이제 나온 경고는 독자에게 긴장과 불안을 주고 있습니다. 다윗과 언약을 맺으실 때도 그의 후손이 죄를 짓는 경우 “사람의 매와 인생의 채찍”으로 징계할 것을 예고하신 적은 있습니다(삼하 7:14). 그러나 다윗과 후손을 친히 자신의 아들로 삼으셨기에 왕권을 영원히 견고하게 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삼하 7:13-16). 하지만 솔로몬과 후손에게는 땅을 끊고 성전을 던져버릴 것이라고 엄중하게 경고합니다(7). 이는 이스라엘 가운데 거하며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6:13)을 뒤집는 내용입니다. 불순종의 결과가 얼마나 참혹할지를 암시합니다. 하나님 임재의 상징인 성전이 파괴되고 나라가 패망한다면 다윗 왕조의 존속은 언급할 여지도 없습니다. 이번 하나님의 출현은 솔로몬 등극 후 적어도 24년이 지난 때입니다. 11:1-13을 참고하면 이미 솔로몬의 마음이 하나님에게서 크게 돌아섰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나님에게서 돌아서는 행동’은 6절과 9절에서 구체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설명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뒤를 따르지 않는 것, 이스라엘 앞에 준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않는 것, 우상에게 가는 것, 우상을 섬기고 경배하는 것, 이 모든 행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맺은 언약(출 19:6)을 파기했음을 함축합니다.
6절에서는 경고가 되는 행위로 나왔지만, 9절에서는 과거에 행한 행동으로 표현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선택한 이스라엘이나 그의 이름을 위해 성별한 성전이라도 다 멸하여 열방에게 속담거리와 이야깃거리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처럼 성전이 이스라엘의 안전을 보장하지 않음을 일깨우십니다. 지금은 성전의 명성이 높아 경탄을 자아내지만, 후에는 그곳을 지나는 자들이 황폐한 성전을 보고 경악하면서 ‘여호와가 어찌하여 이 땅과 이 성전이 이렇게 되게 하셨을까?’라며 조롱할 것입니다(8). 또한 이스라엘이 그들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해낸 여호와를 버리고 우상을 섬긴 까닭에 여호와가 이 모든 재앙을 내렸음을 만방이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이 경고를 받는 자는 솔로몬만 아니라 다윗의 후손 및 이스라엘 백성 전체입니다(6,9). 지도자나 백성은 가릴 것 없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어 그의 보배로운 소유가 된 자들입니다. 따라서 각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가 원하시는 거룩한 백성이 될 책임이 있습니다(출 19:6). 그러나 현실은 솔로몬을 비롯하여 왕들과 백성이 경고를 무시하고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의 계명을 따르지 않아 멸망했습니다.
열왕기 저자는 포로가 된 청중에게 불순종을 회개하며 하나님의 긍휼과 회복을 구하기를 독려합니다. 현대의 성도는 각자 일상을 돌아보고 하나님 앞에서 믿음과 순종으로 서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의 성전은 빈껍데기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 건물보다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을 더욱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며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지도자로서 하나님께서 맡기신 통치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항상 하나님을 의식하고 언약에 충성할 때 주시는 축복과 불충성할 때 내리시는 징계를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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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8-05)

 


성전 완공을 위한 솔로몬의 기도(3)

열왕기상 8장 44-53절


기독교는 만남과 사귐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과 깊은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좋은 일을 만나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슬픈 일을 만나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마치 동거동락한 친구를 알아 가듯이 말입니다. 어떻게 이 일을 이루어 갑니까?

 

솔로몬 왕의 여섯 번째 기도입니다. 전쟁을 시작하거나 적의 공격을 막는 것, 전쟁의 승리나 패배의 결정권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의 포로가 되었더라도 이방 땅에서 회개하고 온 마음과 영혼으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이는 주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고 그들을 소유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기도(Ⅲ)(44-53)

하나님을 어떤 상황이든지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면 들어주십니다. 승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정신 못 차리고 죄 지을 땐 우리를 벌하시지만, 마음을 돌이켜 회개할 땐 우리를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결코 기도의 끈을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44주의 백성이 그 적국으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 주의 보내신 길로 나갈 때에 저희가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45주는 하늘에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 일을 돌아보옵소서 46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게 붙이시매 적국이 저희를 사로잡아 원근을 물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47저희가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패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48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 열조에게 주신 땅 곧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49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보옵시며 50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저희를 사로잡아 간 자의 앞에서 저희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저희를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44-50)

기도하는 성도에게 있어 절망적인 상황은 오히려 살아 계시고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경이롭고 친밀한 기도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에게 있어 가장 절망적인 때는 건지시고 돌보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때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드린 마지막 봉헌 기도이자 가장 긴 기도는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여 포로 되었을 때에 관한 기도입니다.

(1) 중보기도(Ⅵ) : 전쟁에 대한 기도(44-45)

백성을 위한 솔로몬의 중보기도(31-53)의 마지막 두 기도(여섯, 일곱째)는 둘째 기도에서 언급된 ‘전쟁’의 주제로 돌아갑니다. 각각 전쟁에서의 승리와 패전과 유배라는 상반된 배경을 두고 있습니다. 성전 봉헌의 기쁜 날에 나라의 멸망과 포로가 된 상황을 두고 간구하는 것은 청중에게 긴장감과 경각심을 불러일으킵니다. 포로에 대한 우려는 결국 이스라엘 역사에서 현실이 되었지만, 솔로몬의 일곱 중보기도에 설정된 다양한 정황은 개인과 공동체가 어떤 고난을 맞닥뜨리든 성전을 향해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수 있음을 일깨웁니다. 특히 고난과 재앙의 상황이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범죄의 결과인 까닭에, 솔로몬의 중보기도는 이스라엘이 각각 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권고한다.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 건축된 이 성전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기회, 그에게 간구할 수 있는 통로가 됩니다.

여섯째 중보기도는 이스라엘이 적과 전쟁하러 나갈 때 하나님의 인도와 정의로운 응답을 구하는 내용입니다. 전쟁은 ‘하나님이 보내는 길로 싸우러 나가는 것’(44)이어야 함을 전제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출애굽 후 가나안 족속들과 전쟁을 벌일 때(삿 1:1), 다윗이 블레셋과 전쟁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승리의 예고만 아니라 전략까지 지도하셨습니다(삼하 5:19-25). 이제 예루살렘에 성전이 건축되면서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정할 때든 전쟁터에서든 성전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종용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을 때 그는 하늘에서 기도와 간구를 들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간구는 “그들의 일을 돌아보옵소서”(45)라는 간청이 덧붙어 있습니다. 여기서 “일”(미쉬파트)은 ‘심판’, ‘판결’, ‘(법적) 주장’, ‘정의’, ‘사정’ 등의 뜻이며, “돌아보옵소서”는 ‘(실행)하소서’의 뜻입니다. 따라서 이 문장은 ‘그들의 그들에게 공의를 행하소서’로도 번역되어, 그들을 공의대로 처분해달라는 의미가 됩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솔로몬이 우선적으로 간구하는 것은 무조건적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이미 첫째 간구(31-32)에서도 강조되었습니다. 두 개인 간에 분쟁이 난 경우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행위를 공의롭게 살펴서 악한 자는 악한 대로 심판하고 의로운 자는 의로운 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이제 개인 간의 시시비비를 넘어 국가 간 군사적 충돌에도 적용됩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승리를 구하는 게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구에 귀 기울이시면서도 이스라엘과 그들의 적을 정의로 대응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쟁에서 하나님의 정의의 대응이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전쟁의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레 26:1,7). 그러나 그의 말씀을 거역하는 경우 패전만 아니라 그 이전에 그의 호의를 거둘 것임을 경고하셨습니다(레 26:17).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한다 해서 자동적으로 전쟁의 승인과 승리를 확증 받는 것은 아니다.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형제 베냐민 지파를 치기로 결정한 후 하나님께 물었을 때, 하나님은 유다가 먼저 가라고 하셨으나 승리의 확답은 주지 않으셨습니다(삿 20:18-25). 결국 이스라엘은 두 차례 패했습니다. 전쟁에서의 패배는 그나마 이후에 회복될 가능성이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호의를 거두는 때는 이스라엘에 더 큰 파국이 닥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을 파기한 일과 동일시되기 때문입니다(출 19:5).

(2) 중보기도(Ⅶ): 포로에 대한 기도(46-50)

마지막 중보기도는 패전과 포로에 대한 간구입니다. 이번 간구는 앞에 나온 전쟁 관련 기도들보다 훨씬 더 악화된 ‘포로’의 상황이며, ‘나라의 멸망’이 암시되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범죄와 회개의 필요성, 하나님의 긍휼이 구체적이고 비중 있게 표현되었습니다. 전쟁에 대한 솔로몬의 기도들은 전쟁에 나가거나 적의 공격에 맞서는 일(신 20장)과 전쟁의 승패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렸음을 백성에게 재확인시켜줍니다(삼상 17:47).

46절에서 솔로몬은 간구에 앞서 인생이 죄에 빠지기 쉬운 나약한 존재임을 하나님께 호소하며 긍휼을 구합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빌미로 불순종의 죄를 합리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상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은 강퍅하고, 의지적이고, 적극적인 마음과 행동에서 비롯됩니다. 그렇기에 인간 본연의 죄의 성향과 연약함에 호소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데는 괴리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그의 큰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불순종은 그의 진노를 삽니다. 그의 진노로 야기되는 현상 중 패전, 포로, 나라의 멸망에 대한 경고를 이미 예고하신 바 있습니다(레 26:27-39; 신 28:36-57). 심판으로 이스라엘이 포로가 된 상황은 이 단락 전체에서 ‘사로잡히다/사로잡다’와 적국의 ‘땅’(에레쯔)이라는 단어가 반복됨으로써 나타납니다. 발음이 유사하거나 같지만 대조되는 의미인 ‘돌이키다/회개하다’(슈브)와 이스라엘의 ‘땅’(에레쯔)이 언어유희로 사용되면서 대조의 의미가 더욱 부각됩니다. 먼저, 이스라엘이 이방 땅에 ‘사로잡혀’ 가면 그들은 그곳에서 먼저 ‘돌이켜야’ 합니다(47). ‘회개’는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고(“스스로 깨닫고"), 온 마음과 온 영혼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의지적 행동입니다(47-48). 죄로 인해 고난이 왔을 때 가장 시급한 것은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간 ‘이방 땅’에서, ‘가나안 땅’을 향해 죄 용서와 귀환을 간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기도할 때 얼굴을 향하는 곳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땅, 하나님께서 택한 성읍 예루살렘, 솔로몬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건축한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주후 586년 유다가 멸망할 때, 땅과 성읍은 바벨론에 빼앗기고 성전은 파괴됩니다. 그러나 포로 된 이스라엘에게 있어 가나안 땅과 예루살렘 성읍은 단지 과거의 거주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 조상과 친히 언약을 맺고 약속으로 주신 땅(34,40,48)이자 그들에게 기업으로 수여한 “하나님의 땅”(36)이며, 그가 선택한 성읍(48)입니다. 땅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목적은 하나님께 이 점을 상기시켜 긍휼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45절에서처럼 하나님이 포로민의 기도를 들고, 공의대로 그들에게 행하시기를 간구합니다(49).

그렇지만 솔로몬이 전적으로 간청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포로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그들을 사로잡아 간 자 앞에서 그들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해달라고 그는 기도합니다(50). 이 문장을 직역하면 ‘당신은 그들을 포로 삼은 자들 앞에서 그들에게 긍휼들을 주소서’인데, 이는 긍휼의 원천과 수여자가 하나님임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기도 응답을 간구(51-53)

우리도 삶의 전쟁과 같습니다. 전쟁과 같은 삶에서 시작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일을 시작할 때, 자신의 경력과 용기로 하지 말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하시길 바랍니다. 자신감으로 하는 것은 자신 스스로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수고를 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아닐 수 있습니다.

51저희는 주께서 철 풀무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주의 산업이 됨이니이다 52원컨대 주는 눈을 들어 종의 간구함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간구함을 보시고 무릇 주께 부르짖는대로 들으시옵소서 53주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주의 종 모세로 말씀하심 같이 주께서 세상 만민 가운데서 저희를 구별하여 주의 산업을 삼으셨나이다(51-53)

솔로몬은 시내 산 언약을 기반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며 중보기도를 마칩니다. 구조상 52절의 간구가 51, 53절의 사이에 나와 부각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그의 언약 백성을 삼은 민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소유“, 세상 만민 중에서 구별하여 택한 “기업”이란 호칭(51, 53; 출 19:5-6; 신 9:26, 29)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조상과 맺은 언약(출 19장)이 현 이스라엘에게도 유효함을 나타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눈이 그의 종(솔로몬)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간구에 열려 있고, 부르짖을 때마다 들으시기를 간구합니다.


기도없는 평안한 삶이 기도하는 고난의 삶보다 더 위험합니다. 기도의 실패는 삶의 실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항상 돌보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진정 승리하는 인생입니다. 주변에도 아직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십자가 아래서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임하게 하십니다. 부족한 당신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과 더욱 친밀하게 지내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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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8-04)


성전 완공을 위한 솔로몬 기도(Ⅱ)

열왕기상 8장 33-43절


좋은 지도자는 함께하는 사람들의 그 삶을 잘 살펴보고 또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그런 지도자는 정말 좋은 지도자입니다. 좋은 부모는 자녀들의 필요와 자녀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중보기도하는 그 부모는 좋은 부모입니다. 좋은 배우자는 상대방을 위해서 끊임없이 잔소리하지 않고 오히려 배우자를 위해 기도하는 그런 사람이 좋은 배우자입니다. 오늘 솔로몬은 좋은 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백성들의 그 문제를 끊어 안고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중보자로 나서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 봉헌의 기도를 드리며, 백성을 위한 간구를 지속합니다. 이스라엘이 범죄로 패전과 가뭄, 질병, 전쟁 등 재앙을 맞을 때, 회개하고 성전을 향해 하나님께 간구할 것을 기대합니다. 또한 이들의 간구를 하나님께서 듣고 죄를 용서하실 것을 간절히 그대합니다. 이방인이 하나님을 찾을 때도 하나님께서 응답하셔서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해달라고 간구합니다.

 

솔로몬의 기도(Ⅱ)(33-43)

사랑을 속일 수는 있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익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부정을 저지르지 않아야 하고, 위기 앞에서도 바른 일을 행하며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바라는 기도는 반드시 우리의 진실한 생활과 함께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기도는 위선적 행동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안에 거짓과 위선이 없는지 볼아보아야 합니다.

33만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주께 범죄하여 적국 앞에 패하게 되므로 주께로 돌아와서 주의 이름을 인정하고 이 성전에서 주께 기도하며 간구하거든 34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의 조상들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오게 하옵소서 35만일 그들이 주께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하늘이 닫히고 비가 없어서 주께 벌을 받을 때에 이 곳을 향하여 기도하며 주의 이름을 찬양하고 그들의 죄에서 떠나거든 36주는 하늘에서 들으사 주의 종들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사하시고 그들이 마땅히 행할 선한 길을 가르쳐 주시오며 주의 백성에게 기업으로 주신 주의 땅에 비를 내리시옵소서 37만일 이 땅에 기근이나 전염병이 있거나 곡식이 시들거나 깜부기가 나거나 메뚜기나 황충이 나거나 적국이 와서 성읍을 에워싸거나 무슨 재앙이나 무슨 질병이 있든지 막론하고 38한 사람이나 혹 주의 온 백성 이스라엘이 다 각각 자기의 마음에 재앙을 깨닫고 이 성전을 향하여 손을 펴고 무슨 기도나 무슨 간구를 하거든 39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사하시며 각 사람의 마음을 아시오니 그들의 모든 행위대로 행하사 갚으시옵소서 주만 홀로 사람의 마음을 다 아심이니이다 40그리하시면 그들이 주께서 우리 조상들에게 주신 땅에서 사는 동안에 항상 주를 경외하리이다 41또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 속하지 아니한 자 곧 주의 이름을 위하여 먼 지방에서 온 이방인이라도 42그들이 주의 크신 이름과 주의 능한 손과 주의 펴신 팔의 소문을 듣고 와서 이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거든 43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이방인이 주께 부르짖는 대로 이루사 땅의 만민이 주의 이름을 알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처럼 경외하게 하시오며 또 내가 건축한 이 성전을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줄을 알게 하옵소서(33-43)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는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최종판결자 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문제를 아뢰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도록 하십니다.

(1) 중보기도(II): 패전에 대한 기도(33-34)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을 위한 솔로몬의 중보기도가 31절부터 계속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 봉헌의 기도(22-53)를 드리면서 중보기도를 드리는 것은 성전이 하나님과 소통하고 기도하는 곳이라는 점에서 적절합니다. 왕이 백성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하는 사례는 성경에서 찾아보기 쉽지 않습니다. 보통 전장에서나 이방의 침략 소식을 듣고 기도하는 경우는 종종 나옵니다(예. 아사, 여호사밧, 히스기야 등[대하 14:11;20:5-12;32:20;33:12]). 지도자의 경우 모세나 에스라 등이 백성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렸으나, 백성이 죄를 지어 재앙을 겪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출 32:11-13; 민 14:13-19; 스 9:5-15). 솔로몬은 앞으로 백성이 처할 수 있는 여러 상황을 두고 하나님의 긍휼과 보호를 미리 간구한다는 점에서 특별합니다.

앞서 공의로운 심판을 위해 기도한(31-32절) 솔로몬은 이제 이스라엘이 전쟁에 패하여 하나님께 간구할 때 응답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솔로몬은 전쟁에 패한 것을 군사적 실패로 여기지 않고, 이스라엘의 범죄와 연결시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을 때 이런 결과를 볼 것이라고 예고하신 바 있습니다(레 26:17; 신 28:25). 개인과 공동체에게 닥친 실패, 어려움, 재난이 모두 죄로 인한 결과는 아닙니다. 그러나 고난이 찾아왔을 때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과 공동체의 과오를 살피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필수적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이 죄 때문에 패했을 때 즉각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기대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33절의 ‘하나님의 이름을 인정하는 일’은 패전했거나 포로로 잡혀간 상황이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임을 받아들 한다는 의미입니다. ‘인정하다’는 ‘찬양하다.’, ‘고백하다’의 의미도 있으므로, 괴로운 상황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함을 교훈합니다. 패전한 자들은 성전에 와서 또는 포로가 된 땅에서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습니다. 이때 솔로몬이 구하는 우선적인 하나님의 응답은 죄 용서입니다. 전쟁의 승리나 포로 귀환을 위한 간구에 집중하기 쉽지만 이는 부차적입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하나님과 부어진 관계를 정립하는 것이 우선순위임을 성도들에게 일깨웁니다.

(2) 중보기도(Ⅲ) : 가뭄에 대한 기도(35-36)

세 번째 중보기도는 이스라엘에 가뭄이 들었을 때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내용이다. 패전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이 죄를 지을 때 하늘이 닫히고 비가 내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불순종하는 경우 천지를 물 한 방울 내지 못할 것과 철로 변하게 하고, 비 대신 티끌과 모래를 내려 백성을 멸할 것이라 이미 경고하셨습니다(신 28:23-24), 가뭄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심을 깨닫는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하고 죄에서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죄 지은 자를 내버려두지 않고 괴로움을 주시는 것은 돌아올 기회를 주는 사람과 긍휼의 행동이기 때문입니다(암 4:7). 이때도 하나님께 구해야 할 우선적인 응답은 비가 아니라 죄 용서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죄 사함을 받는 대상으로 그의 종들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언급합니다(36). 이들은 23절에서 설명하듯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말하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그러나 연약하고 죄에 빠지기 쉬운 인간은 하나님께 100%의 마음으로 다가가거나 말씀의 길로 걷지 않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우리가 다시 그를 찾아 회개하고 선한 길을 걷게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죄 용서에 덧붙여 언약 백성으로서 걸어야 할 하나님의 “선한 길”(신 6:18)을 가르쳐주시길 간청합니다. 솔로몬은 비 내려주시기를 구하며, 그 땅이 하나님이 주신 기업임을 언급합니다(36). 이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임을 상기시켜 그의 긍휼을 앞당기기 위함입니다.

(3) 중보기도(IV): 재앙과 질병에 대한 기도(37-40)

넷째 기도는 온갖 재난이 닥쳤을 때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는 간구입니다. 37절에 나열된 기근, 전염병, 곡식의 마름병, 깜부병, 메뚜기, 황충, 적국의 침입은 듣기에도 끔찍하지만 이스라엘 역사에나 현 시대에 끊이지 않는 재난과 질병의 목록입니다. 이 목록은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가 들어졌을 때 야기될 수 있는 심판과 저주로 경고되었습니다(신 28장). 솔로몬이 계속 강조하듯 개인과 공동체에 고난이 닥치면 먼저 각자 마음을 살펴 고난이 죄로 인한 것인지 따져봐야 합니다. 죄의 결과라면 즉각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에게 용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기도와 간구를 그가 계신 하늘에서 들으십니다. 그는 회개하는 자를 기꺼이 용서하시는 분입니다. 솔로몬은 위 간구에서와 같이 최우선적인 하나님의 응답이 죄 사함에 있음을 알림으로써(39)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마음을 말고 헤아리시므로 행위에 따라 응대하실 것입니다. 그럴 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그들 조상에게 주신 땅에서 그를 경외하며 사는 축복을 누릴 것입니다.

(4) 중보기도(V): 이방인의 간구에 대한 기도(41-43)

솔로몬의 다섯째 간구는 이방인을 위한 기도로,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 온 땅 만민이 하나님께 나오는 기회를 내다봅니다. 이 같은 간구는 하나님이 이스라엘에 국한된 왕이 아니라 은 세계의 왕임과 그가 만민의 기도와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임을 인지한 데서 비롯됩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블레셋, 아람, 모압, 암몬, 에돔, 아말렉, 소바 등 여러 주변국을 정복하게 하셨습니다(삼하 8장). 이런 정치적 상황은 솔로몬 대에까지 이어져, 그가 유브라데 강부터 블레셋에 이르는 모든 나라를 다스릴 수 있었습니다(4:21, 24). 게다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다는 사실이 널리 퍼져, 열방의 이목을 끌었습니다(4:34). 장엄하고 화려한 성전이 건축되고 있는 소식 또한 히람과의 교역이나 공사에 투입된 이방인들을 통해 퍼졌을 것입니다(5장).

이제 성전이 완공되고, 하나님께서 친히 성전에 임하셨습니다(7:51-8:11). 이런 소식들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은 계속 주변국에 전파될 것입니다. 이에 따라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의 속국이든 아니든 하나님에 대해 전해 들을 수 있습니다. 이들이 듣는 하나님의 크신 이름은 “능한 손”과 “펴신 팔”(42), 즉 그의 역동적인 능력과 한계가 없는 기적의 사건들을 입증합니다(신 26:8).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과 능력에 대한 소문은 이방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누구신지 깨닫는 기회를 줍니다.

또 그들을 성전으로 이끌고, 성전을 향해 기도하며, 하나님을 경배하게 인도합니다(41-43).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이들의 간구를 하늘에서 듣고 기도한 대로 행하시기를 구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응답이 이들만 아니라 “땅의 만민”(43)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 그를 경외하게 하는 통로가 되기를 갈망합니다. 앞서 솔로몬은 ‘이방인’을 ‘먼 곳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온 자들’로 정의했습니다(41). 그러나 그가 궁극적으로 바란 것은 ‘온 세상 사람’이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택함을 먼저 받은 육체적 이스라엘인은 아니나, 그들이 하나님께 나아올 때 영적 이스라엘,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갈 3:7). 이처럼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의 진정한 의미는 건물이 아닌 ‘하나님의 이름’에 있으며, 성전은 이스라엘만 아닌 ‘만민을 위한 기도의 집’이 될 것입니다(사 56:9; 마 21:13).


하나님께서는 공의를 행하시며 동시에 긍휼과 회복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삶 속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에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하나님의 긍휼과 회복을 경험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기도를 통해 공의와 은혜의 하나님을 체험하고 더욱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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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8-03)


성전 완공을 위한 솔로몬 기도

열왕기상 8장 22-32절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세상에 어떤 것도 비교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출애굽기 3:14절 말씀처럼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란 이름으로 사람이 만든 세상의 여러 신들보다 조금 힘이 더 세고 우월하신 분이 아니라, 스스로 계시며 세상을 지으시고, 인간을 창조하신 신으로, 범죄 한 죄인 된 인간을 사랑하시고 은혜를 베푸시며 구원하시는 신이십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하신 참 신으로 찬양과 경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신이십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처럼 주의 백성들의 기도를 들으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와의 유일함과 독특성은 그가 언약과 은혜를 지키는 신이라는 데서 드러납니다. 솔로몬은 백성 앞에서 성전 봉헌의 기도를 드리며 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대로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건축하셨습니다. 솔로몬과 후손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면 다윗 왕조는 영원히 견고하게 될 것입니다. 솔로몬은 자기와 백성이 성전을 향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기도를 듣고 죄를 용서하시기를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실현되기를 구합니다.

 

견고한 왕권을 위한 기도(22-26)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은 자신을 살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필요를 채워달라고,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하기 이전에 먼저 자신을 살피는 믿음의 지혜와 자기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것이 다름 아닌 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단절시키는 것이 죄이기 때문입니다.

22솔로몬이 여호와의 단 앞에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마주서서 하늘을 향하여 손을 펴고 23가로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상천 하지에 주와 같은 신이 없나이다 주께서는 온 마음으로 주의 앞에서 행하는 종들에게 언약을 지키시고 은혜를 베푸시나이다 24주께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허하신 말씀을 지키사 주의 입으로 말씀하신 것을 손으로 이루심이 오늘날과 같으니이다 25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말씀하시기를 네 자손이 자기 길을 삼가서 네가 내 앞에서 행한것 같이 내 앞에서 행하기만 하면 네게로 좇아나서 이스라엘 위에 앉을 사람이 내 앞에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셨사오니 이제 다윗을 위하여 그 허하신 말씀을 지키시옵소서 26그런즉 이스라엘 하나님이여 원컨대 주는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22-26)

하나님께서 약속한 대로 성전 완공을 이뤄주셨음을 증언한(15-21) 후 솔로몬은 성전 봉헌의 기도를 드립니다. 기도 내용은 다윗 왕조의 존속(23-26), 기도 응답과 죄 용서(27-30), 일곱 가지 상황(31-51)에 대한 간구 및 맺음 기도(52-53)로 구성되었습니다.

솔로몬은 봉헌식에 참여한 이스라엘 온 회중 앞에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가 자리한 곳은 성전뜰 놋 제단(54) 앞의 놋 대(연단) 위입니다. 놋 대는 길이와 너비 5규빗(2.3m), 높이는 3규빗(1.4m)으로 멀리 있는 자들도 솔로몬을 볼 수 있는 구조입니다(대하 6:12). 솔로몬은 백성을 마주한 채 하늘을 향해 두 손을 뻗고 무릎을 꿇었습니다(54). 이 동작은 하나님을 섬기는 백성의 대표로서 만왕의 왕 하나님께 겸손과 경외로 간구하는 자세입니다. 기도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부름으로 시작합니다(23). 이 호칭은 25, 26절에도 반복되는데 하나님께서 온 세상 중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선택하고 언약을 맺은 분임을 상기시킵니다(출 19장). 여호와와 같은 신은 상천하지에 없습니다. 세상의 유일한 신이며 가나안이나 애굽에서 숭배되는 우상들에 견줄 수 없는 존재입니다. 여호와의 유일함과 독보성은 특히 언약과 은혜를 지키는(샤마르) 신실하신 분이라는 데서 두드러집니다. “은혜”(헤세드)는 ‘신의’, ‘충성’, ‘신실함’ 등 언약을 주도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에게 언약 이행을 위해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속성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은혜를 이스라엘 중 ‘그의 앞에서 행하는 자들’에게 지키고 계십니다(23).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었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은혜를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시내 산 언약에는 하나님의 말과 언약을 지키는(샤마르) 자들만이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조건이 들어 있습니다(출 19:5-6). 온 마음으로 명령을 행하는 자들만 하나님을 진실하게 섬기는 “종들”로 인정됩니다(23, 32).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언약과 은혜를 구체적으로 다윗 왕조에게 연결시킵니다(24-26). 이 부분은 지금까지 다윗과의 언약을 지키신 하나님에 대한 찬양(24)과 앞으로 다윗 왕조에 대한 약속을 지켜달라는 간구(25-26)로 요약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성취하신 언약은 다윗과 솔로몬의 왕권 및 솔로몬을 통한 성전 건축을 가리킵니다(삼하 7장). 이 내용은 봉헌 기도 전에 솔로몬이 백성에게 증언했던 내용(15-21)과 같습니다. 24절은 15절처럼 하나님이 ‘그의 입’과 ‘그의 손’으로 약속을 이루셨음을 반복함으로써 언약과 성취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강조합니다.

25-26절은 다윗 왕조의 존속을 위한 간구입니다. 각 절의 첫 단어는 ‘이제’인데, 이로써 하나님의 주목을 끌고 응답을 재촉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영원히 견고하게 될 왕조를 약속하셨습니다(삼하 7:13). 이는 다윗의 믿음이나 행위에 따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방적이고 무조건적인 언약이었습니다. 이 언약의 시작은 다윗이 아니며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왕을 주실 것(창 17:6, 16)과 그 후손이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유다의 자손으로 올 것을 예고하셨습니다(창 49:10; 민 24:17). 아브라함의 언약 이전으로 더 거슬러 올라가면, 다윗 언약은 죄 지은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연결됩니다(창 3:15).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아를 통해 인간의 죄를 사하고 하나님의 왕국을 세울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사 11:10; 계 11:15).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켜오셨는데, 이제 메시아로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영원한 왕국이 실현되고, 이 모든 언약이 완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한편,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은 시내 산 언약처럼 하나님과 후손이 지켜야 할 의무가 포함되었습니다. 솔로몬이 25절에 인용한 말씀은 다윗의 유언(2:4)에서 나왔습니다. 다윗의 후손이 자기 길을 삼가고(샤마르) 다윗처럼 하나님 앞에서 행하면 왕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와 유사한 명령과 약속이 담긴 6:12과 역대하 28:7은 다윗 후손 전체가 아닌 솔로몬 개인을 지목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왕조의 존속 사이의 밀접한 관계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과 후손의 하나님에 대한 순종을 전제하며, 하나님도 다윗에게 한 약속을 확실하게 지키시기를 갈망합니다. 25, 26절의 간구는 ‘이제...다윗에게 하신 말을 지키소서(샤마르)’, ‘이제…다윗에게 하신 말씀이 확실하게 하옵소서(아만)’로 반복되어 솔로몬의 간절함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심을 증명하셨습니다(24-25). 앞으로도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실 것입니다. 성도는 이를 믿고 그분께 더욱 순종해야 합니다.

 

응답과 죄 용서를 위한 기도(27-30)

우리가 바라보며 기도해야 할, 눈에 보이는 성전이 지금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 가운데 오셔서 참성전이 되어 주셨습니다(요 2:21).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만큼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확실히 들으시고 응답해 주시는 길은 없습니다(요 14:14).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성전에 제한되시는 분이 아니라 하늘에서 들으시는 분임을 고백했습니다.

27하나님이 참으로 땅에 거하시리이까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주를 용납지 못하겠거든 하물며 내가 건축한 이 전이오리이까 28그러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종의 기도와 간구를 돌아보시며 종이 오늘날 주의 앞에서 부르짖음과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29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내 이름이 거기 있으리라 하신 곳 이 전을 향하여 주의 눈이 주야로 보옵시며 종이 이곳을 향하여 비는 기도를 들으시옵소서 30종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이 이곳을 향하여 기도할 때에 주는 그 간구함을 들으시되 주의 계신 곳 하늘에서 들으시고 들으시사 사하여 주옵소서 (27-30)

본문은 성전을 향해 기도하는 왕과 백성의 간구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성전에 임하셨다 하더라도(10-11), 그가 어디든지 계시는 전능한 존재임을 인지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솔로몬의 이해는 그분이 주신 지혜(3:12)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땅이든 하늘이든 하늘의 하늘이든 하나님을 담을(“용납할”) 수 없습니다(27). 천지도 하나님을 감당할 수 없는데 하물며 사람이 건축한 건물에 붙들어두랴?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성전을 자신의 처소로 선택하셨습니다. 이 선택과 임재는 하나님의 낮추심과 이스라엘에 대한 깊은 사랑을 드러냅니다. 솔로몬은 줄곧 “이스라엘의 하나님”으로 부르다가 28절에서 “내 하나님 여호와”로 부르며,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나타냅니다. 28-30절의 간구에는 ‘들으소서’가 다섯 번, ‘기도’나 ‘간구’의 단어가 여섯 번, ‘기도하다’(‘빌다’) 동사도 세 번 반복됩니다. 이런 단어의 반복은 솔로몬의 간구 내용을 확연히 드러내줍니다. 또한 간구에는 ‘성전(또는 이곳)을 향하여’라는 어구가 세 문장에 나오는데, 각 주어로 하나님의 눈, 솔로몬, 이스라엘 백성이 나와 등장인물 모두의 관심과 초점을 성전에 맞추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가 계신 하늘에서 얼굴을 성전으로 향하고, 귀로 듣고, 주야로 눈을 이곳에 두실 것입니다. 솔로몬과 이스라엘은 성전을 향하여 부르짖고 간구할 것입니다. 솔로몬은 다윗을 “주(당신)의 종”이라 지칭했듯(24, 25) 자신을 “주의 종”으로 부르며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겸손을 나타냅니다(28-30). 또한 이스라엘을 “주의 백성”으로 부르며, 그들이 자신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임을 분명히 합니다(30). 기도 응답에 덧붙여 솔로몬은 하나님의 용서를 간구합니다. 이는 거룩한 하나님이 성전에 임하셨으므로 성전이 거룩한 곳이 되었음을 함축합니다. 이제 그의 성도도 와서 회개함으로써 거룩함을 입어 하나님께 간구할 수 있습니다. 성전은 성도의 회개와 하나님의 용서, 성도의 간구와 하나님의 응답이 일어나는 교제와 소통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중보기도(I): 분쟁에 대한 기도(31-32)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다 아시는 분입니다. 사람을 속일 수 있지만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익을 얻기 위해 거짓말을 하거나 부정을 저지르지 않아야 합니다. 위기 앞에서도 바른 일을 행하며 진실을 말해야 합니다. 최종판결자 되시는 하나님 앞에 우리의 문제를 아뢰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하며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공의가 이루어지도록 하십니다.

31만일 어떤 사람이 그 이웃에게 범죄함으로 맹세시킴을 받고 저가 와서 이 전에 있는 주의 단 앞에서 맹세하거든 32주는 하늘에서 들으시고 행하시되 주의 종들을 국문하사 악한 자의 죄를 정하여 그 행위대로 그 머리에 돌리시고 의로운 자를 의롭다 하사 그 의로운대로 갚으시옵소서(31-32)

이제 솔로몬은 31-51절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향해 간구할 계기가 될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 일곱 가지(분쟁, 패전, 가뭄, 재앙, 이방인, 전쟁, 포로)를 놓고 간구합니다. 첫째 간구는 이웃과 분쟁이 일어났을 때, 하나님께서 분쟁에 개입하셔서 악인과 의인에게 정의로운 심판을 내리시기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에 의하면 이런 분쟁에 관여된 자들은 재판장(어떤 경우는 제사장)에게 가서, 여호와 앞에 맹세한 후 재판장의 판결을 받아야 합니다(출 22:7-12; 민 5:11-31). 이 규례는 하나님의 공의를 기초로 하며, 맹세자들의 정직함과 재판장을 통한 정의 구현이 요구됩니다. 솔로몬이 백성의 송사에서 선악을 분별할 지혜를 구한 데서 알 수 있듯(3:9), 하나님께서 세운 이스라엘은 그의 공의로 다스림 받는 나라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말씀으로의 응답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 초자연적이며 마술적인 방법으로 응답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초자연적인 방법을 동원해야겠다는 하나님의 결정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은 언제나 말씀으로 응답하십니다. 말씀을 주십니다. 그리고 주신 말씀대로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보편적인 응답의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들어야 하는 것은 절망의 자기중심성의 소리가 아니라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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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8-02)


솔로몬이 건축한 성전에 임하신 하나님

열왕기상 8장 12-21절


하나님께서는 실수가 없으신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 약속하신 일은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경험하고 경의로운 감사에 고백을 드립니다. 이처럼 우리가 기뻐하며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고,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로 우리가 하나님의 참 성전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성도인 우리가 누리는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려야 합니다.

 

여호와의 언약궤가 지성소에 안치되고 하나님의 임재가 구름으로 성전을 메운 것을 보고 솔로몬은 이 성전이 바로 여호와가 영원히 거하실 처소임을 천명합니다. 그 다음 백성들을 향해 그들을 축복하며, 여호와가 다윗에게 말씀하신 언약을 지키셨음을 찬양하도록 권면합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통해 성전을 건축하게 하신 사건을 다윗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과 섭리를 증명하고 그가 다윗과 맺은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셨음을 입증합니다.

 

여호와가 영원히 거하신 처소(12-13)

신앙의 핵심은 자신의 삶 전체로 하나님의 주권과 선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전을 건축하려 했던 다윗이 아니라 솔로몬을 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거절하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실패와 어려움도 하나님의 선한 계획 가운데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가 바른 신앙관을 가졌는지는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인정하며 하나님께서만 영광을 돌리는 것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12그 때에 솔로몬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캄캄한 데 계시겠다 말씀하셨사오나 13내가 참으로 주를 위하여 계실 성전을 건축하였사오니 주께서 영원히 계실 처소로소이다 하고(12-13)

통일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성전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다윗과 또 자신 2대에 걸쳐서 이루었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언약궤가 지성소에 안치된 후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을 메움으로써(1-11) 예루살렘 성전은 ‘하나님이 영원히 거하실 처소’로 전환됩니다. 여호와는 이전에 캄캄한 데 계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캄캄한데”(12)는 단순히 어두운 곳이 아니라 구름이 빽빽하게 낀 어둠을 뜻하며, ‘여호와가 캄캄한 데 계신다’는 표현은 하나님의 실제적 임재를 뜻합니다.

오늘 하나님이 성전에 임하신 사건은 과거에 일어난 두 가지 임재 사건과 연결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시내 산으로 임하신 사건입니다(출 19:16). 당시 하나님께서는 구름과 흑암과 화염 가운데 나타나셨고, 또 말씀하셨습니다(신 4:11). 하나님의 음성은 들렸으나 형체는 볼 수 없었습니다(신 4:12). 둘째, 하나님께서 구름 가운데 성막에 임하신 사건입니다(출 40:34-35). 하나님께서는 속죄소(지성소)에서 구름 가운데 임하실 것과 그곳에서 친히 말씀하실 것이라 약속하셨습니다(레 16:2; 출 25:22). 이 두 사건은 공통적으로 하나님께서 만물을 통제하며 진기한 현상 속에 나타나셨음을 증명합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전능자이자 세상의 주권자임을 드러냅니다. 또 하나님의 임재는 단순히 나타나심에서 그치지 않고 말씀과 소통으로 이어졌습니다.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을 누리게 된 것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일방적인 은혜로만 가능했습니다. 이제 세월이 흘러 솔로몬이 여호와가 거할 성전을 건축했고, 약속대로 그곳에 하나님께서 친히 임하셨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임재가 실제적으로 일어나지 않았다면 성전은 빈껍데기일 뿐입니다. 이런 면에서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그가 솔로몬이 지은 성전을 자신의 거처로 공인하셨음을 확증합니다. 성막은 계속 옮겨 다녔으나(삼하 7:6), 예루살렘에 건축된 이 성전은 그 자리에 ‘영원히’ 머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영원한’ 왕국을 약속하셨으니(삼하 7:16) 이 성전 또한 하나님의 ‘영원한’ 거처가 될 것을 고대할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변함없는, 성전의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솔로몬의 화답(14-21)

성도 가운데 하나님의 일을 위해 수고한 다음 서운한 감정을 가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배경에는 자신이 성취한 일에 대한 인정과 보상이 부족하다는 마음이 깔려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을 위해 행한 일에 대한 공적과 수고를 인정받으면 교만하게 될 위험성도 큽니다. 우리는 자신과 자신의 일에만 시선을 두지 말고, 우리 인생을 축복하여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14얼굴을 돌이켜 이스라엘의 온 회중을 위하여 축복하니 그 때에 이스라엘의 온 회중이 서 있더라 15왕이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할지로다 여호와께서 그의 입으로 내 아버지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이제 그의 손으로 이루셨도다 이르시기를 16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날부터 내 이름을 둘 만한 집을 건축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에서 아무 성읍도 택하지 아니하고 다만 다윗을 택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게 하였노라 하신지라 17내 아버지 다윗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더니 18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으니 이 마음이 네게 있는 것이 좋도다 19그러나 너는 그 성전을 건축하지 못할 것이요 네 몸에서 낳을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시더니 20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도다 내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 아버지 다윗을 이어서 일어나 이스라엘의 왕위에 앉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21내가 또 그 곳에 우리 조상들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그들과 세우신 바 여호와의 언약을 넣은 궤를 위하여 한 처소를 설치하였노라(14-21)

성전 완공은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었음을 함축합니다. 따라서 완공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일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포함하여 무수히 많았습니다.

하나님의 임재에 감격하여 성전을 향해 있던 솔로몬은 이제 자신을 마주하고 서 있는 백성에게 얼굴을 돌려 그들을 축복합니다. 특별한 행사에 왕이 백성을 축복하는 일은 의례적인 순서일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을 향한 솔로몬의 축복은 성막 축조 후 모세의 축복(출 39:43) 그리고 법궤 안치 후 다윗의 축복(대상 16:2)과 ‘하나님의 임재’라는 연결고리를 가집니다. 이는 과거 이스라엘 역사 속에 함께하신 하나님께서 지금도 이스라엘과 함께하심을 상기시킵니다. 또 그의 임재를 앞으로도 고대하게 합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일들을 하나씩 회고하며 그를 찬양합니다. 이때 그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부릅니다(15). 이 칭호는 온 세계의 왕(출 19:5; 시 24:1)이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택하셨고, 그가 이스라엘의 왕으로 통치하심을 함축합니다. 솔로몬은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그의 입으로’ 다윗에게 말씀하신 것을 ‘그의 손으로’ 실현하셨음을 찬양합니다(15). 여기서 “그의 입으로”라는 표현은 약속의 출처가 하나님임을 확실시합니다. “그의 손으로”는 하나님의 전능함과 주권 그리고 하나님께서 손수 약속을 이뤄주셨음을 표현합니다.

그렇다면 솔로몬이 뜻하는 ‘하나님의 약속’은 무엇입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맺은 언약에 언급한 다윗과 솔로몬의 왕권 및 솔로몬을 통한 성전 건축의 약속을 가리킵니다(삼하 7장). 하나님께서는 유다 지파와 이새의 집안을 택하고, 그 중에서 다윗을 택하여 왕으로 세우셨습니다(대상 28:4). 이 일은 하나님의 주권적 은혜가 다윗과 그의 후손에게 임한 엄청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출애굽 후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둘 성전을 짓기 위해 어떤 지파나 개인을 선택한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16; 삼하 7:6-7). ‘출애굽 사건’은 앞서 성전 기공 때와 마찬가지로(6:1) 성전 건축 및 다윗 왕권과 지속적으로 관련지어 언급됩니다. 이는 출애굽 사건을 통해 이스라엘이 공식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언약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출 19:5-6).

한편 왕이 된 다윗은 하나님 여호와를 위한 성전을 건축할 마음이 있었으나 하나님의 허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열망을 좋게 보셨으나, 그가 전쟁에서 피를 흘린 장수였기 때문입니다(17-19; 대상 28:2-3). 다윗은 성전 건축에 간접적으로라도 참여할 방안을 모색했고, 다방 면에서 건축을 준비했습니다. 사유재산까지 털어 수천 톤이 넘는 금과 은, 무게 측정이 불가한 많은 놋과 철, 재목과 돌, 각종 보석을 하나님께 바쳤습니다(대상 22:14-16; 29:2-5). 공사를 위해 건축 자재와 석수, 목수 등을 포함한 일꾼을 준비했습니다(대상 22장). 솔로몬과 지도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맡기신 건축 사역을 수행하도록 격려했고, 설계도와 식양을 전달했습니다(대상 22; 28-29장).

덧붙여 성전 안팎의 원활한 직무를 위해 성전 안에서 일할 레위인과 제사장의 반차와 직무를 정하고, 찬양대와 악기 연주자, 성전 문지기, 성전 창고 관리자를 세웠으며, 성전 밖에서 사무를 볼 유사와 재판관을 임명했습니다(대상 23-26장).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하기까지 그 배후에는 다윗의 헌신도 한몫했습니다. 실제 성전 건축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은 다윗의 아들 대에 있었습니다(19; 삼하 7:12-13; 대상 28:6).

20-21절에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한 약속(왕조 존속과 성전 건축)을 자신을 통해 이뤄주셨음을 선포하며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찬양합니다. 15-19절에서는 다윗에게 이른 하나님의 약속을 인용함으로 약속의 진정성을 강조했고, 20-21절에서는 자신의 증언을 통해 약속이 성취됐음을 확인시킵니다. 첫 증언은 솔로몬 자신이 다윗을 이어 왕이 된 내용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의 여러 아들 중 자신을 택하여 왕을 삼으셨음(삼하 7:12; 대상 28:5)을 백성에게 상기시키려는 의도입니다. 둘째 증언은 솔로몬이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성전을 건축했다는 내용입니다. 앞서 히람에게 보낸 편지에 언급한 대로 솔로몬은 성전 건축의 약속(5:5)을 지켰습니다. 성전 건축의 필수 목적인 ‘여호와의 이름’은 그 편지(5:3,5)에서나 실제 건축에서나(6:1,2), 오늘 본문의 16, 18, 19절에 이어 20절에서도 반복되었습니다. 특히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이라는 긴 호칭은 15절의 ‘찬양을 받는 주체’이신 하나님을 가리켜, 이스라엘로 하여금 찬양을 지속하게 합니다. 덧붙여, 완공된 성전은 다윗 왕조가 하나님께서 선택한 합법적인 왕조임을 공식화합니다. 다윗과 솔로몬에게 약속한 대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아버지가 되어주셨습니다(대상 22:10). 따라서 다윗 왕권을 향해 예고하신 영원한 왕국을 고대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솔로몬은 성전에 여호와의 언약궤를 둘 처소를 만들었음을 증언합니다(21).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출 19장)과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궤 안에는 언약의 증거인 두 돌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조상들과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이 현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유효함을 나타냅니다. 현 이스라엘 백성도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열국 중에 하나님의 ‘보배로운 소유’, ‘제사장들의 나라’, ‘거룩한 백성’(출 19:5-6)이 되어야 합니다. 언약궤는 솔로몬이 마련한 처소, 즉 본유의 자리인 지성소에 안치되었습니다(9).

결과적으로 과거의 성막과 현재의 성전이 물리적으로, 상징적으로 연합되었습니다. 성막의 다른 기물들은 성전을 지을 때 모두 새롭게 제작되었지만, 언약궤만 처음 그대로 보존되었고 성전에 옮겨졌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전은 성막에서 완전히 독립된 하나님의 거처가 아니라 성막을 대체한 연속적인 거처입니다. 성막에 임하셨던 하나님께서는 성전에도 실제적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이 언약궤를 둘 장소로 준비한 이 “처소”는 이제 ‘하나님이 영원히 거하시는 처소’(13)가 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자신이 지은 성전 가운데 임하신 하나님의 영광을 보며 감격했습니다. 우리도 솔로몬처럼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기쁨이 사라지고 있다면 우리가 지닌 기쁨의 원천으로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죄인일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먼저 찾아오셔서 구원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날마다 체험하고 살아가는 것이 성도가 가지는 특권이며 영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쁨이 우리 삶 전반을 움직이는 원동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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