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열왕기상(08-05)

 


성전 완공을 위한 솔로몬의 기도(3)

열왕기상 8장 44-53절


기독교는 만남과 사귐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그분과 깊은 교제하는 것을 말합니다. 좋은 일을 만나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고, 슬픈 일을 만나도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마치 동거동락한 친구를 알아 가듯이 말입니다. 어떻게 이 일을 이루어 갑니까?

 

솔로몬 왕의 여섯 번째 기도입니다. 전쟁을 시작하거나 적의 공격을 막는 것, 전쟁의 승리나 패배의 결정권은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방의 포로가 되었더라도 이방 땅에서 회개하고 온 마음과 영혼으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용서하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이는 주께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고 그들을 소유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의 기도(Ⅲ)(44-53)

하나님을 어떤 상황이든지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면 들어주십니다. 승리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보호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정신 못 차리고 죄 지을 땐 우리를 벌하시지만, 마음을 돌이켜 회개할 땐 우리를 용서하시고 불쌍히 여기십니다. 결코 기도의 끈을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44주의 백성이 그 적국으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여 주의 보내신 길로 나갈 때에 저희가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거든 45주는 하늘에서 저희의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그 일을 돌아보옵소서 46범죄치 아니하는 사람이 없사오니 저희가 주께 범죄함으로 주께서 저희에게 진노하사 저희를 적국에게 붙이시매 적국이 저희를 사로잡아 원근을 물론하고 적국의 땅으로 끌어간 후에 47저희가 사로잡혀 간 땅에서 스스로 깨닫고 그 사로잡은 자의 땅에서 돌이켜 주께 간구하기를 우리가 범죄하여 패역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며 48자기를 사로잡아 간 적국의 땅에서 온 마음과 온 뜻으로 주께 돌아와서 주께서 그 열조에게 주신 땅 곧 주의 빼신 성과 내가 주의 이름을 위하여 건축한 전 있는 편을 향하여 주께 기도하거든 49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저희 기도와 간구를 들으시고 저희의 일을 돌아보옵시며 50주께 범죄한 백성을 용서하시며 주께 범한 그 모든 허물을 사하시고 저희를 사로잡아 간 자의 앞에서 저희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하사 그 사람들로 저희를 불쌍히 여기게 하옵소서(44-50)

기도하는 성도에게 있어 절망적인 상황은 오히려 살아 계시고 은혜가 풍성하신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경이롭고 친밀한 기도의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성도에게 있어 가장 절망적인 때는 건지시고 돌보시는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는 때입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드린 마지막 봉헌 기도이자 가장 긴 기도는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범하여 포로 되었을 때에 관한 기도입니다.

(1) 중보기도(Ⅵ) : 전쟁에 대한 기도(44-45)

백성을 위한 솔로몬의 중보기도(31-53)의 마지막 두 기도(여섯, 일곱째)는 둘째 기도에서 언급된 ‘전쟁’의 주제로 돌아갑니다. 각각 전쟁에서의 승리와 패전과 유배라는 상반된 배경을 두고 있습니다. 성전 봉헌의 기쁜 날에 나라의 멸망과 포로가 된 상황을 두고 간구하는 것은 청중에게 긴장감과 경각심을 불러일으킵니다. 포로에 대한 우려는 결국 이스라엘 역사에서 현실이 되었지만, 솔로몬의 일곱 중보기도에 설정된 다양한 정황은 개인과 공동체가 어떤 고난을 맞닥뜨리든 성전을 향해 하나님의 긍휼을 구할 수 있음을 일깨웁니다. 특히 고난과 재앙의 상황이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범죄의 결과인 까닭에, 솔로몬의 중보기도는 이스라엘이 각각 죄에서 돌아서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권고한다. 여호와의 이름을 위해 건축된 이 성전은 백성들이 하나님께 나아오는 기회, 그에게 간구할 수 있는 통로가 됩니다.

여섯째 중보기도는 이스라엘이 적과 전쟁하러 나갈 때 하나님의 인도와 정의로운 응답을 구하는 내용입니다. 전쟁은 ‘하나님이 보내는 길로 싸우러 나가는 것’(44)이어야 함을 전제합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전쟁에 나가기 전에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출애굽 후 가나안 족속들과 전쟁을 벌일 때(삿 1:1), 다윗이 블레셋과 전쟁하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했고, 하나님께서는 승리의 예고만 아니라 전략까지 지도하셨습니다(삼하 5:19-25). 이제 예루살렘에 성전이 건축되면서 솔로몬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정할 때든 전쟁터에서든 성전을 향하여 여호와께 기도하기를 종용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찾을 때 그는 하늘에서 기도와 간구를 들으실 것입니다. 그런데 이 간구는 “그들의 일을 돌아보옵소서”(45)라는 간청이 덧붙어 있습니다. 여기서 “일”(미쉬파트)은 ‘심판’, ‘판결’, ‘(법적) 주장’, ‘정의’, ‘사정’ 등의 뜻이며, “돌아보옵소서”는 ‘(실행)하소서’의 뜻입니다. 따라서 이 문장은 ‘그들의 그들에게 공의를 행하소서’로도 번역되어, 그들을 공의대로 처분해달라는 의미가 됩니다. 여기에서 알 수 있듯이 솔로몬이 우선적으로 간구하는 것은 무조건적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의 실현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이미 첫째 간구(31-32)에서도 강조되었습니다. 두 개인 간에 분쟁이 난 경우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행위를 공의롭게 살펴서 악한 자는 악한 대로 심판하고 의로운 자는 의로운 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이제 개인 간의 시시비비를 넘어 국가 간 군사적 충돌에도 적용됩니다. 이스라엘은 전쟁에서 하나님의 인도와 승리를 구하는 게 마땅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간구에 귀 기울이시면서도 이스라엘과 그들의 적을 정의로 대응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전쟁에서 하나님의 정의의 대응이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때 전쟁의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레 26:1,7). 그러나 그의 말씀을 거역하는 경우 패전만 아니라 그 이전에 그의 호의를 거둘 것임을 경고하셨습니다(레 26:17). 그러므로 하나님께 기도한다 해서 자동적으로 전쟁의 승인과 승리를 확증 받는 것은 아니다. 사사 시대에 이스라엘이 자기들의 형제 베냐민 지파를 치기로 결정한 후 하나님께 물었을 때, 하나님은 유다가 먼저 가라고 하셨으나 승리의 확답은 주지 않으셨습니다(삿 20:18-25). 결국 이스라엘은 두 차례 패했습니다. 전쟁에서의 패배는 그나마 이후에 회복될 가능성이라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호의를 거두는 때는 이스라엘에 더 큰 파국이 닥칩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는 것은 근본적으로 시내 산에서 맺은 언약을 파기한 일과 동일시되기 때문입니다(출 19:5).

(2) 중보기도(Ⅶ): 포로에 대한 기도(46-50)

마지막 중보기도는 패전과 포로에 대한 간구입니다. 이번 간구는 앞에 나온 전쟁 관련 기도들보다 훨씬 더 악화된 ‘포로’의 상황이며, ‘나라의 멸망’이 암시되었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의 범죄와 회개의 필요성, 하나님의 긍휼이 구체적이고 비중 있게 표현되었습니다. 전쟁에 대한 솔로몬의 기도들은 전쟁에 나가거나 적의 공격에 맞서는 일(신 20장)과 전쟁의 승패가 전적으로 하나님께 달렸음을 백성에게 재확인시켜줍니다(삼상 17:47).

46절에서 솔로몬은 간구에 앞서 인생이 죄에 빠지기 쉬운 나약한 존재임을 하나님께 호소하며 긍휼을 구합니다. 인간의 연약함을 빌미로 불순종의 죄를 합리화하는 것은 아닙니다. 실상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는 것은 강퍅하고, 의지적이고, 적극적인 마음과 행동에서 비롯됩니다. 그렇기에 인간 본연의 죄의 성향과 연약함에 호소하여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데는 괴리감이 없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 구할 수 있는 것은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그의 큰 사랑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불순종은 그의 진노를 삽니다. 그의 진노로 야기되는 현상 중 패전, 포로, 나라의 멸망에 대한 경고를 이미 예고하신 바 있습니다(레 26:27-39; 신 28:36-57). 심판으로 이스라엘이 포로가 된 상황은 이 단락 전체에서 ‘사로잡히다/사로잡다’와 적국의 ‘땅’(에레쯔)이라는 단어가 반복됨으로써 나타납니다. 발음이 유사하거나 같지만 대조되는 의미인 ‘돌이키다/회개하다’(슈브)와 이스라엘의 ‘땅’(에레쯔)이 언어유희로 사용되면서 대조의 의미가 더욱 부각됩니다. 먼저, 이스라엘이 이방 땅에 ‘사로잡혀’ 가면 그들은 그곳에서 먼저 ‘돌이켜야’ 합니다(47). ‘회개’는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고(“스스로 깨닫고"), 온 마음과 온 영혼으로 하나님께 ‘돌아가는’ 의지적 행동입니다(47-48). 죄로 인해 고난이 왔을 때 가장 시급한 것은 죄 사함을 받아 하나님과의 깨어진 관계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포로로 잡혀간 ‘이방 땅’에서, ‘가나안 땅’을 향해 죄 용서와 귀환을 간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기도할 때 얼굴을 향하는 곳은 하나님께서 조상들에게 주신 땅, 하나님께서 택한 성읍 예루살렘, 솔로몬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건축한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주후 586년 유다가 멸망할 때, 땅과 성읍은 바벨론에 빼앗기고 성전은 파괴됩니다. 그러나 포로 된 이스라엘에게 있어 가나안 땅과 예루살렘 성읍은 단지 과거의 거주 장소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 조상과 친히 언약을 맺고 약속으로 주신 땅(34,40,48)이자 그들에게 기업으로 수여한 “하나님의 땅”(36)이며, 그가 선택한 성읍(48)입니다. 땅을 반복적으로 언급하는 목적은 하나님께 이 점을 상기시켜 긍휼을 불러일으키려는 것입니다. 솔로몬은 45절에서처럼 하나님이 포로민의 기도를 들고, 공의대로 그들에게 행하시기를 간구합니다(49).

그렇지만 솔로몬이 전적으로 간청하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포로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온다면 “그들을 사로잡아 간 자 앞에서 그들로 불쌍히 여김을 얻게” 해달라고 그는 기도합니다(50). 이 문장을 직역하면 ‘당신은 그들을 포로 삼은 자들 앞에서 그들에게 긍휼들을 주소서’인데, 이는 긍휼의 원천과 수여자가 하나님임을 분명히 알려줍니다.

 

기도 응답을 간구(51-53)

우리도 삶의 전쟁과 같습니다. 전쟁과 같은 삶에서 시작할 때,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무슨 일이든지 일을 시작할 때, 자신의 경력과 용기로 하지 말고, 하나님께 은혜를 구하고 하시길 바랍니다. 자신감으로 하는 것은 자신 스스로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수고를 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아닐 수 있습니다.

51저희는 주께서 철 풀무 같은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 주의 산업이 됨이니이다 52원컨대 주는 눈을 들어 종의 간구함과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간구함을 보시고 무릇 주께 부르짖는대로 들으시옵소서 53주 여호와여 주께서 우리 조상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실 때에 주의 종 모세로 말씀하심 같이 주께서 세상 만민 가운데서 저희를 구별하여 주의 산업을 삼으셨나이다(51-53)

솔로몬은 시내 산 언약을 기반으로 하나님의 응답을 구하며 중보기도를 마칩니다. 구조상 52절의 간구가 51, 53절의 사이에 나와 부각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그의 언약 백성을 삼은 민족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소유“, 세상 만민 중에서 구별하여 택한 “기업”이란 호칭(51, 53; 출 19:5-6; 신 9:26, 29)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조상과 맺은 언약(출 19장)이 현 이스라엘에게도 유효함을 나타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눈이 그의 종(솔로몬)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의 간구에 열려 있고, 부르짖을 때마다 들으시기를 간구합니다.


기도없는 평안한 삶이 기도하는 고난의 삶보다 더 위험합니다. 기도의 실패는 삶의 실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를 항상 돌보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는 것이 진정 승리하는 인생입니다. 주변에도 아직까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십자가 아래서 하나님을 만나는 역사가 임하게 하십니다. 부족한 당신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도의 능력을 체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과 더욱 친밀하게 지내며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구독과 광고 클릭은
저의 성경 연구에 큰 힘이 됩니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