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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3-02)


지혜롭게 판결한 솔로몬

열왕기상 3장 16-28절


살아가면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들이 많이 다가옵니다. 문제를 해결해야하지만 주변 사람들은 당신만 바라보고 있고, 그 문제가 너무나 어렵고 힘든 문제라면 난감할 것입니다. 그 때 하나님의 지혜를 간구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 속에 지혜의 열쇠를 보내주실 것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재판 이야기는 하나님의 약속대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를 시험하는 장이었습니다. 그가 백성의 송사에 귀기울이고 선악을 분별할 줄 아는 지혜를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사회에서 멸시받는 사람들을 위해 사용되어졌습니다. 이런 지혜야말로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하나님의 참 지혜입니다.

 

재판을 요청 받는 솔로몬(16-22)

어려운 일이 갑자기 다가오면 대부분 당황합니다. 상식적인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문제 앞에서는 순간적으로 막히기 그렇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태도는 당황스런 상황이 다가오면, 당황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를 달라고 일천 번제를 드렸고,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응답하셨습니다. 그 응답하신 내용이 본문의 내용입니다.

16그 때에 창기 두 여자가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17한 여자는 말하되 내 주여 나와 이 여자가 한집에서 사는데 내가 그와 함께 집에 있으며 해산하였더니 18내가 해산한 지 사흘 만에 이 여자도 해산하고 우리가 함께 있었고 우리 둘 외에는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나이다 19그런데 밤에 저 여자가 그의 아들 위에 누우므로 그의 아들이 죽으니 20그가 밤중에 일어나서 이 여종 내가 잠든 사이에 내 아들을 내 곁에서 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누이고 자기의 죽은 아들을 내 품에 뉘었나이다 21아침에 내가 내 아들을 젖 먹이려고 일어나 본즉 죽었기로 내가 아침에 자세히 보니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더이다 하매 22다른 여자는 이르되 아니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이 여자는 이르되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며 왕 앞에서 그와 같이 쟁론하는지라 23왕이 가로되 이는 말하기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저는 말하기를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는도다 하고 24또 이르되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칼을 왕 앞으로 가져온지라 25왕이 이르되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 반은 이 여자에게 주고 반은 저 여자에게 주라 26그 산 아들의 어미되는 계집이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가로되 청컨대 내 주여 산 아들을 저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한 계집은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27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산 아들을 저 계집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 어미니라 하매 28온 이스라엘이 왕의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16-28)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주신 지혜는 어떤 것입니까? 열왕기에만 기록된 ‘한 아이에 대한 친모 판별 소송’(16-28)은 위의 질문에 대답해줍니다. 이 사건의 의의는 무엇입니까? 첫째, 온 이스라엘에게 솔로몬이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은 왕임을 증명합니다(28). 둘째, 백성의 재판을 분별력 있게 판결하도록 ‘듣는 마음’을 구한 솔로몬에게(9) 하나님께서 응답한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12)이 실제로 성취되었습니다. 셋째, 이 성취를 통해 하나님의 전능함과 응답의 진정성이 증명되었습니다. 넷째, 하나님께서 지혜의 근원임을 깨닫게 합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지혜가 솔로몬의 민생 치리에 적용됨으로써 왕국의 견고함이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됨을 입증합니다.

(1) 두 창녀의 한 아들(16-22)

오늘 솔로몬이 판결을 내려야 할 재판은 한 아들을 놓고 두 여인이 서로 자기 아기라고 주장하는 송사에 대한 것입니다. 이 일로 솔로몬이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왕임이 증명되었으므로(28), 이 일은 기브온에서 돌아온 후(15)에 일어났을 것입니다. 두 여인은 ‘창기’로 소개되는데(16), 이는 왕 앞에 송사를 제기할 수 있는 대상이 사회의 소외계층까지 적용됨을 보여줍니다. 나그네, 고아, 과부 등 사회적 약자들에게 공정한 재판을 베풀 것을 명한 하나님의 의중(신 27:19)에 부합합니다. 두 여인이 왕 앞에 섰다는 것(16)은 이 송사가 마을의 장로나 재판관 사이에서 판결이 나지 않아 왕에게까지 올라온 어려운 소송임을 함축합니다. 재판이 시작되자 먼저 산 아이의 친모로 밝혀지게 될 여인이 사건 전모를 증언합니다(17-21). 두 여인은 한 집에서 생활했습니다. 친모가 먼저 아들을 낳았고, 삼 일 후에 가짜 친모도 아들을 낳았습니다. 어느 날 밤 가짜 친모가 실수로 자신의 아들 위에 눕는 바람에 아들이 죽고 말았습니다. 그 여인은 밤중에 일어나 친모가 자는 틈에 친모의 산 아들을 데려와 자기 품에 뉘고, 자기의 죽은 아들은 친모의 품에 뉘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아들에게 젖을 먹이려고 일어난 친모는 아들이 죽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자기 아들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이때 친모의 증언을 듣고 있던 가짜 친모가 나서서 산 아들이 자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합니다. 친모도 이에 질세라 가짜 친모를 반박합니다. 사건이 나던 밤에 집에는 두 여인과 아기들만 있었으므로(18) 다른 증인은 없습니다.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를 뒷받침할 만한 물증도 없습니다. 솔로몬은 재판에 필수적인 증인이나 증거 없이 오직 두 여인의 말만을 듣고 판결해야 하는 상황입니다. 한편 이스라엘 역사에서 재판이 공식화되고 체계화된 것은 출애굽 이후입니다. 애굽을 떠나 광야로 들어선 백성들 사이에 여러 분쟁이 일어났고, 모세는 종일 이들의 송사를 해결해주었습니다(출 18:13). 재판은 분쟁 당사자들의 양쪽 주장을 듣고, 그들에게 마땅한 하나님의 율법을 전달하는 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출 18:16). 모세 혼자 송사를 떠안고 있는 것을 본 장인 이드로는 일의 과중함과 비효율성을 파악했습니다. 이에 그는 재판관의 정의, 재판의 올바른 방법, 분담의 필요성을 모세에게 조언했습니다(출 18:19-20). 이드로는 무엇보다 재판관이 하나님의 세우심을 받은 자임을 강조했습니다. 재판관은 하나님 앞에서 백성을 위해 존재해야 하며, 백성의 송사를 자기 자신이 아닌 하나님께 가져가야 합니다. 이는 재판관이 백성의 대리인으로서 송사의 모든 과정을 하나님의 뜻대로 시행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판결해야 함을 뜻합니다. 실제 판곁에 있어 재판장의 역할은 백성에게 하나님의 율례와 법도를 경고하고 그들이 행해야 할 길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시내산 언약(출 19장)을 통해 이스라엘이 거룩한 백성으로 살 수 있도록 십계명을 기본으로 한 여러 율법을 제공하셨습니다. 이는 현대의 헌법 및 부차적인 법률에 상응합니다. 이드로는 재판의 효율적 체계를 위해 자격 있는 자들을 뽑도록 모세에게 권유했습니다. 재판관은 영적, 도덕적 면에서 고결함이 요구되며, 구체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유능한 자, 부정한 이득을 얻는 것을 혐오하는 자, 정직한 자여야 합니다(출 18:21-22). 조언에 따라 모세는 백성 중 천 명, 백 명, 오십 명, 열 명을 거느릴 자들을 각각 세웠습니다. 이 재판관들은 작고 쉬운 사건들을 처리했고, 어려운 사건들은 모세에게 가져왔습니다. 이와 같은 재판 제도를 기초로 가나안 정착 후 왕정시대에 이르러서 재판권은 왕에게 속했습니다. 기본적으로는 왕이 성읍에 재판관들을 임명하여 백성의 송사를 판결하게 했고, 어려운 판결은 왕 앞에 나와 재판을 받도록 했습니다(삼하 14장; 15:2-4; 왕하 15:5; 대하 19:5-7). 그 외에도 규례에 따라 장로들이 성읍 백성의 송사를 다루는 재판관 역할을 했습니다(신 21:18-21).

(2) 솔로몬의 지혜로운 판결(23-28)

솔로몬은 누구도 예상치 못한 판결을 내려 아기의 친모를 가려내고, 이로써 그가 하나님의 지혜를 얻은 왕임이 증명됩니다. 먼저 솔로몬은 소송의 진상을 ‘두 여인이 살아있는 한 아이를 서로 친자라 하고, 죽은 아이는 상대편 아들이라 주장한다’(23)고 요약합니다. 이 말은 다른 증인이나 증거 없이 여인들의 증언만을 토대로 판결해야 함을 함축합니다. 이때 솔로몬은 갑자기 신하들에게 칼을 가져오라 명합니다. 칼을 대령하자, 솔로몬은 칼로 아이를 둘로 나눠 반반씩 여인들에게 주라는 파격적인 판결을 내립니다(25). 두 사람이 하나를 놓고 소유권을 주장하므로 반반으로 나눠주는 것은 언뜻 공정한 판결로 보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대상이 생명체가 아닙니까! 아이를 죽이면 두 여인 모두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되므로 공평한 처사라 생각될 수 있으나, 분쟁을 없애기 위해 소유물을 없애는 것이 공정합니까? 아이의 억울한 죽음은 누가 책임질 것입니까? 이 판결은 들은 친모는 경악했고, 가짜 친모는 흡족했습니다. 친모는 아들에 대한 긍휼이 불타올라, 아들을 제발 죽이지 말고 가짜 친모에게 주라고 간청합니다. 모성애를 표현한 ‘긍휼이 불붙다’(26)에서 ‘불붙다’(카마르)는 ‘뜨거워지다’, ‘열망하다’, ‘불타다’의 뜻입니다. 이는 요셉이 친동생 베냐민을 애굽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를 향해 사랑의 마음이 복받쳐 오른 상태와 같습니다(창 43:30; 참조. 호 11:8). 하지만 가짜 친모는 산 아이가 친자가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일말의 동정심이나 양심의 가책도 보이지 않습니다. 어차피 친자가 아니니 자기가 차지할 수 없다면 친모 또한 아기를 갖지 못하게 할 심사였습니다. 그녀는 신하들에게 어명을 받들어 아이를 죽이도록 재촉합니다. 친모는 친권을 포기하면서까지 아들의 ‘생명’을 구하려 들지만, 가짜 친모는 비열하고 비정하게 남의 자식을 ‘죽음’으로 몰아가려 합니다. 자기 아들은 ‘실수로’ 죽였으나, 남의 아들은 ‘고의로’ 죽이려 듭니다. 생명에 대한 존중이나 긍휼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는 생명의 원천과 생사의 주관자가 하나님이며, 그가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피시는 분이란 사실을 망각한데서 옵니다. 죄는 이 여인처럼 마음에서 하나님을 배제하고 이기적이고 주관적인 자기 생각을 그 자리에 두는 데서 출발합니다. 솔로몬은 여인들의 심리적 반응을 보고 친모를 구별해내어, 아이를 친모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 것을 명합니다(27). 솔로몬의 지혜로운 판결 소식은 온 이스라엘의 귀에 들어갔습니다. 그들은 이 판결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이뤄졌음을 자각했습니다. 이로써 백성들은 솔로몬을 경외하며 그가 하나님이 선택한, 하나님의 지혜를 받은 왕임을 인정하게 됩니다. 솔로몬의 통치는 이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견고해져 갑니다.


성도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지혜로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위해 구해야 합니다. 주신 지혜는 연약한 자들을 위해 사용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연약한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주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주님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어린 솔로몬이지만 하나님의 지혜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높이 들림을 받은 것처럼 당신도 그렇게 높이 들어 사용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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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3-01)


솔로몬의 소원

열왕기상 3장 1-15절


사랑하던 사람과 데이트하던 추억을 기억하십니까? 만나도 만나도 지루하지 않고, 항상 새롭고, 금방 헤어져도 또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쓰는 돈이나 시간도 아깝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학을 천 마리를 접는 일을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는 마음은 이보다 더 했습니다.

 

솔로몬은 시므이를 죽임을 아버지 다윗의 유언을 성취합니다. 새로운 시대에 의롭지 못한 사람은 제거됨을 볼 수 있습니다. 또 산당에서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렸고, 이 행동에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무엇이든지 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이에 솔로몬은 백성을 다스릴 지혜를 달라고 요청합니다. 솔로몬을 기뻐하신 하나님께서는 지혜와 부귀 그리고 장수를 주셨습니다.

 

솔로몬의 정략 결혼과 산단 제사(1-3)

사람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그러므로 누구를 대하든 먼저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성도는 사람을 통해 도우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복잡한 상황이나 완악한 사람이 아니라 최종 결정권자인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1솔로몬이 애굽의 왕 바로와 더불어 혼인 관계를 맺어 그의 딸을 맞이하고 다윗성에 데려다가 두고 자기의 왕궁과 여호와의 성전과 예루살렘 주위의 성의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리니라 2그 때까지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아직 건축하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들이 산당에서 제사하며 3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행하였으나 산당에서 제사하며 분향하더라(1-3)

드디어 솔로몬 시대가 열렸습니다. 국내의 정적들을 제거하고 정권을 안정시킨 솔로몬은 대외적으로 이스라엘을 안정시키기 위한 전략을 구사합니다. 점점 나라가 강해지면서 애굽과 함께 조약을 맺을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솔로몬을 통해 모세를 통해 출애굽했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애굽과 동등한 자격으로 성장하게 된 것입니다.

집권 초기에 솔로몬이 적대 세력을 축출하여 왕정의 내적 견고함을 다지는 모습(2:13-46)에 이어 3:1에서는 정략결혼을 통해 외적 견고함을 세우는 모습을 기술합니다. 솔로몬이 정치적 지혜로 왕정을 꾸려가는 면모를 보여줍니다. 이러한 인간적 방책은 솔로몬의 지혜로 적들을 제거하고 지지자들을 살피라고 당부한 다윗의 유언을 상기시킵니다(2:5-9). 저자는 솔로몬의 여러 정략결혼 중 애굽 공주와의 결혼을 대표 사례로 듭니다. 이는 첫째, 솔로몬의 국제적 위세가 높았음을 보여줍니다. 애굽은 가나안과 주변의 군소국에 비교되지 않는 제국이라서 바로가 자식의 결혼을 통해 이웃 나라와 화친을 맺는 사례가 드물었습니다. 그런 애굽이 솔로몬과 전략적 동맹관계를 맺은 것은 당시 애굽의 위세가 이스라엘보다 취약했음을 드러냅니다. 후에 바로(시아문[주전 978-959년]으로 추정)가 게셀을 탈취하여 딸에게 결혼 예물로 준 것(왕상 9:16)도 이런 상황을 뒷받침합니다. 둘째, 이방 여인과의 결혼은 솔로몬의 신앙과 통치에 화근이 될 것을 암시합니다. 이방, 특히 애굽과 우호 관계를 맺어 의존함으로써 이스라엘의 화평을 유지하려는 시도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에 위배됩니다(사30:2; 31:1-3). 또한 이방 여인과의 결혼은 이방 신의 유입이 예견되는 일이라 왕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 걸림돌이 되기 쉽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왕의 규례’(신 17:14-20)에서 이에 주의를 주셨습니다. 우상을 섬기는 왕후는 왕만 아니라 백성과 나라 전체에 악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예. 이세벨, 아달랴). 결국 솔로몬의 정략결혼은 하나님을 배역하는 길로 이끕니다(11:1-13). 바로의 딸은 다윗 성에 머물렀는데, 이는 솔로몬이 왕궁과 성전과 예루살렘 주변의 성벽 공사를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연대순으로 보면 성전 공사가 맨 먼저 착수되어 7년이 걸렸고(6:38), 왕궁은 그 후 13년에 걸쳐 완공되었습니다(7:1). 성전 건축은 솔로몬 제4년(주전 966년)에 시작되었습니다(6:1). 앞서 시므이를 처단한 사건이 즉위 제3년인 것을 고려하면(2:39) 주변의 적들을 정리한 후 곧 성전 공사에 집중한 것으로 보입니다.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하기 전 이스라엘은 산당을 예배처로 삼았습니다. “산당”(바마)은 가나안 인들이 ‘신에게 제사하는 장소’입니다. 원래 ‘높은 곳’이란 뜻으로 평지보다 높은 언덕에 마련된 예배처를 가리켰으나, 후에는 지형과 관계없이 제단을 쌓은 곳은 다 산당이 되었습니다. 문제는 이스라엘이 이방신 제단이 즐비한 환경에 노출되어 하나님께 제사했다는 데 있습니다. 물론 오늘 솔로몬만 아니라 그전에 사무엘과 예언자들도 산당에 출입했습니다(삼상 9:19; 10:5). 그렇다 해서 산당 제사가 적법한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산당을 없애고 오직 그가 ‘택한 곳’에서 제사할 것을 명하셨기에(신 12:2-5) 성막이나 성전에서의 예배가 합법적입니다. 그러므로 열왕기 저자는 백성의 산당 제사(2)와 마찬가지로 솔로몬의 제사를 기술한 문장 맨 앞에 ‘다만’(라크)을 넣어 부정적 암시를 풍깁니다(3). 이는 솔로몬의 제사가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려는 의도는 아닙니다. 솔로몬은 성전 건축과 예배를 통한 헌신을 비롯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다윗의 법도를 행한 왕으로 평가받습니다. 제사 후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시고 지혜를 주신 것 또한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제사를 기쁘게 받으셨음을 알려줍니다. 산당 제사의 부정적 암시는 성전 완공 후에 조차 산당과 그곳의 제사가 사라지지 않아 이스라엘 백성과 왕의 신앙에 줄곧 거침돌이 되고 훗날 나라의 멸망을 초래했음을 독자에게 암시하며 이를 경고하려는 의도입니다.

 

솔로몬에게 나타나신 하나님(4-15)

자신의 찬양과 기도 그리고 헌물 등 모든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표현되었을 때 그렇게 힘들지 않습니다. 만약 자신이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고 있는데, 힘들고 어려움이 있다면 혹시 자신 안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식었는가 보시길 바랍니다. 같이 있고 싶은 시간이 점점 줄어들 때, 사랑이 식었다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로이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 때문에 일천번제를 주께 드리며 나가는 귀한 예배, 제사가 오늘 세계 곳곳에서 드려지길 바랍니다.

4이에 왕이 제사하러 기브온으로 가니 거기는 산당이 큼이라 솔로몬이 그 단에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5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6솔로몬이 가로되 주의 종 내 아비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주께서 저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저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예비하시고 오늘날과 같이 저의 위에 앉을 아들을 저에게 주셨나이다 7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종으로 종의 아비 다윗을 대신하여 왕이 되게 하셨사오나 종은 작은 아이라 출입할줄을 알지 못하고 8주의 빼신 백성 가운데 있나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9누가 주의 이 많은 백성을 재판할 수 있사오리이까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 10솔로몬이 이것을 구하매 그 말씀이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11이에 하나님이 저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것을 구하도다 자기를 위하여 수도 구하지 아니하며 부도 구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원수의 생명 멸하기도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송사를 듣고 분별하는 지혜를 구하였은즉 12내가 네 말대로 하여 네게 지혜롭고 총명한 마음을 주노니 너의 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없었거니와 너의 후에도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13내가 또 너의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네 평생에 열왕 중에 너와 같은 자가 없을 것이라 14네가 만일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내 길로 행하며 내 법도와 명령을 지키면 내가 또 네 날을 길게 하리라 15서서 번제와 감사의 제물을 드리고 모든 신하들을 위하여 잔치하였더라(5-15)

솔로몬은 예루살렘의 북서쪽 10킬로미터에 위치한 기브온 산당에 올라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 산당은 규모가 컸고, 여호와의 성막과 브살렐이 만든놋제단이 있었습니다(대하 1:3-6). 솔로몬은 일천 마리의 희생 제물로 번제를 드려 하나님께 헌신과 감사를 표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브온에서 제사 드린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 지혜와 부귀영화를 약속하셨습니다. 단어 “꿈”이 5, 15절에 나와 단락을 이루는 가운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신 사건은 솔로몬 왕국의 견고함을 기술하는데 있어 전환점을 이룹니다. 앞 2:12-3:1에서 솔로몬의 정치적 지혜가 왕정의 견고함의 바탕임을 기술했다면, 이제부터는 ‘하나님이 주신 지혜’가 견고한 왕국의 기초가 됨을 증명합니다.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5)고 하신 하나님의 말씀에는 구하는 것을 무엇이든 줄 수 있는 전능함이 암시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원하는 것을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다윗과 자신에게 베푸신 큰 은혜에 대해 감사를 표합니다(6).

첫째, 하나님께서는 언약(삼하 7:16)을 통해 다윗에게 견고한 왕위와 영원한 왕국을 약속하셨습니다. 성전 건축에 대한 다윗의 열망과 예상을 뛰어넘어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다윗과 언약을 맺음으로써 그와 후손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언약에 선언된 하나님의 약속은 무조건적이며 번복되지 않는 특성을 지녔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이 하나님의 은혜에 다윗의 순종을 결부시켜,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함께하며 성실, 공의, 정직의 마음으로 행한 점을 언급합니다(6). 언약과 결속된 다윗 왕조의 순종 의무는 다윗의 유언에서도 나타납니다. 이로써 순종이 왕조의 지속을 위한 후대 왕들의 책무임을 강조합니다(2:3-4). 이런 강조점은 포로기의 청중에게는 솔로몬을 비롯한 후대 왕들의 불순종이 다윗 왕조와 이스라엘 왕국의 멸망을 가져왔음을 역설적으로 상기시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다윗의 후계자로 주심으로써 큰 은혜를 행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통해 약속한 아들(삼하 7:12)을 다윗에게 주어 왕을 삼게 하심으로써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섭리로 왕이 된 솔로몬이지만, 그는 자신이 작은 아이이며 아직 미숙하고 부족한 왕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7; 대상 22:5). 그래서 그는 왕으로서 백성을 재판할 때 선악을 분별하여 재판할 수 있도록 “듣는 마음”을 하나님께 구합니다(9). 이때 솔로몬은 이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이며, 그 수효가 많음을 부각합니다. 또 이런 많은 백성을 감당해야 하는 자신은 다윗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종임을 인지하고 있습니다(6-9). 솔로몬의 요청은 하나님의 눈에 들었습니다. 그가 장수나 부나 원수의 생명을 구하지 않고, 재판(“송사”)을 듣고 분별하는 능력을 구한 점을 하나님은 높이 평가하셨습니다(11). 그리고 ‘보라! 내가 내 말대로 했다. 보라! 내가 네게 지혜롭고 분별하는 마음을 주었다’고 응수하셨습니다(12). 솔로몬과 같은 지혜를 가진 자는 전무후무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구하지 않은 부귀와 영광까지 주셨음을 선포하며, 당대에 그의 부귀영화를 따를 자가 없을 것을 약속하셨습니다(13). 12-13절에 반복된 "내가 네게 주노니”란 말은 ‘앞으로 주겠다’는 약속이 아니라 ‘이미 주었다’(I have given you)라는 성취의 발언입니다. 이로써 5절에 암시된 하나님의 전능함이 현실에서 실현됩니다. 열왕기는 역대기(대하 1:7-12)와 달리 ‘장수에 대한 하나님의 조건적 약속’(14)을 추가로 기록합니다. 솔로몬이 다윗처럼 하나님의 길로 행하고 법도와 명령을 지킬 때 장수하게 될 것이란 약속인데, 이는 다윗의 유언(2:4)에 ‘하나님에 대한 솔로몬의 순종’이 ‘왕조의 흥망’과 직결되었음을 알린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열왕기는 ‘순종’을 개인과 나라의 존속 여부를 결정짓는 요건으로 상기시키며, 포로기 청중에게 이스라엘의 멸망이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초래된 사건임을 일깨웁니다. 꿈에서 깬 솔로몬은 기브온을 출발해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그는 다윗이 예루살렘에 안치한 언약궤 앞에서 번제와 감사제를 드렸습니다. 또 잔치를 열어 신하들과 하나님의 은혜를 나눴습니다. 제사와 잔치는 5-14절 내용이 실제 일어난 참된 사건임을 입증해줍니다.


솔로몬은 꿈에서 주님의 약속을 들은 뒤 예루살렘에 올라와 언약궤 앞에서 번제와 감사제를 드리고 잔치합니다. 감사하고 호의를 베푸는 이런 마음이 있다면 평생에 축복받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이에게 나머지 필요를 다 채우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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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2-04)


처형당하는 시므이

 

열왕기상 236-46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나 같은 죄인도 사랑하십니까?’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고백을 점점 희미해집니다. ‘나와 같은 의인이 어디 있을까?’라고 이런 생각을 가질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을 정죄하기 시작합니다. 점점 변화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 주님! 저런 사람도 사랑하십니까?’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네가 죄인이라고 고백했던 첫 사랑을 회복하고, 그 만남의 장소로 다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과 하신 약속처럼 솔로몬이 통치한 나라가 점점 튼튼하게 세워집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정치적 행동을 가운데 성취합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제거해야할 세 사람 중 마지막으로 시므이가 어떻게 심판을 해야 할지 말합니다. 시므이는 죽음을 면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앞에서 솔로몬과 맺은 약속을 가볍게 여겨 어김으로써, 시므이는 준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고 죽음을 자초합니다.

 

시므이를 향한 경고(36-38)

성도는 주일이면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세상에 나가서는 삶으로 예배 드리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진정성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불법과 편법으로 위기를 넘기고 권모술수로 성공에 이르고자 한다면 결코 예배와 삶이 일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정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정직하지 않고 진실하지 않은 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됩니다.

36왕이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너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 37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정녕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 38시므이가 왕께 대답하되 이 말씀이 좋사오니 내 주 왕의 말씀대로 종이 그리하겠나이다 하고 이에 날이 오래도록 예루살렘에 머무니라(36-38)

솔로몬은 다윗이 심판하라고 당부한 시므이에 대해 조치를 취합니다. 시므이는 사울의 친족이며 다윗에게 악감을 가졌던 자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할 때(삼하 16:5-14)와 압살롬이 죽은 후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올 때(삼하 19:15-23) 시므와 다윗은 서로 만납니다. 시므이는 바후림에 사는 베냐민 사람으로 게라의 아들이며 사울의 친척이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길 때 다윗과 그를 따르는 무리는 요단강을 건너 동쪽 마하나임으로 피신하려 했습니다. 다윗 무리가 예루살렘에서 나와 바후림에 도달했을 때, 시므이가 나와 다윗과 무리에게 돌을 던졌고 다윗에게 악독한 저주를 퍼부었습니다(삼하 16:5). 그는 다윗이 사울의 집안에 피를 흘려 왕좌를 빼앗았으며, 그 때문에 하나님이 압살롬을 통해 다윗의 나라를 빼앗게 하셨다고 주장했습니다. 시므이의 주장은 억측이고 사울 집안에 대한 화풀이었지만, 다윗은 분개하는 대신 그의 말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으로 겸허히 받아들였습니다. 도리어 시므이를 당장 죽이겠다는 아비새를 꾸짖습니다. 다만 시므이의 악행으로 시련 당하는 자신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저주를 선으로 바꿔주시기를 고대했습니다. 결국 압살롬의 모반이 실패로 끝나고, 다윗은 왕권을 되찾아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이때 시므이는 발 빠르게 베냐민 사람 천명을 소집하고, 이스라엘의 북부 지파들보다 앞서 요단으로 내려가 다윗을 맞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용서를 빌었고, 당시 유다의 지지만 등에 업었던 다윗은 베냐민과 다른 지파의 지지도 필요했으므로 그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솔로몬에게 시므이를 처치하라고 유언한 것(8-9)을 보면 그는 시므이의 저주와 죄를 결코 용인할 의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시므이에 대한 다윗의 유언은 사적인 보복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모반의 전력이 있는 세력을 제거해서 솔로몬의 왕정에 평화로운 시작과 부흥을 주려고 했을 것입니다. 요압처럼 시므이도 이미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다윗을 배반하고 민심을 선동하는 등 적지 않은 물의를 일으켰으므로 언젠가 솔로몬 왕정에 큰 화근이 될 소지가 다분했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조언대로(9) 지혜롭게 일단 시므이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그를 처벌할 틈을 노립니다. 솔로몬은 시므이의 활동 반경을 예루살렘으로 제한합니다. 시므이는 이제 거주지를 떠나 예루살렘에 집을 짓고 안주해야 했습니다. 고향의 토지는 팔든지 종들의 손에 맡겨야 했습니다. 여기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36)는 직역하면 거기로부터 여기든 저기든 나가지 말라입니다. 예루살렘 밖의 출입을 완전히 통제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도피처로 제공하는 대신 그를 감시망 아래 둔 것입니다. 시므이가 특히 조심할 곳은 기드론 시내 너머입니다. 솔로몬은 그가 기드론을 건너는 날은 그의 피가 머리로 돌아가는 날, 즉 자기 죄로 죽는 날이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기드론 시내는 예루살렘 동쪽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골짜기로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동북쪽 경계입니다. 시므이의 거주지인 바후림(8)은 기드론 시내의 건너편에 있습니다. 솔로몬이 기드론 너머의 출입을 특별히 통제하는 목적은 시므온과 베냐민 및 북쪽 지파들과의 연결고리를 끊어 그가 지파를 선동하거나 역모를 일으키는 일을 미리 차단하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경고의 위증함은 너는 분명히 알라”,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니”(37)라는 강조된 표현과 여호와를 두고 엄중히 맹세한 점(42, 43)에서 두드러집니다. 시므이는 솔로몬의 처분을 합당하게 받아들였고, 이에 왕의 명령에 복종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는 다윗에게 저지른 죄를 알고 있고 이제 다윗이 죽은 터라 목숨이 위태했는데, 솔로몬으로부터 금족령만 받고 목숨을 건졌으니 어찌 좋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다윗에게는 목숨의 보전을 약속받았으나(삼하 19:23) 이번에는 목숨이 끊어질 것을 경고 받았습니다.

 

시므이에 대한 보고(39-40)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성도들을 평가할 때 그의 진정성을 봅니다. 신앙생활의 열심을 보지 않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 빛과 소금으로 살자는 말은 곧 삶에서 진정성을 갖자는 말과 상통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오늘날 성도들을 대상으로 영성 시험을 보신다면 가장 먼저 그들의 진정성을 보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언제나 일의 동기와 마음의 중심에 관심을 두십니다. 성도란 주님과 사람들 앞에서 말씀과 성령을 의지하여 현실의 삶을 정직하고 진정성 있게 살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39삼년 후에 시므이의 두 종이 가드 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도망하여 간지라 혹이 시므이에게 고하여 가로되 당신의 종이 가드에 있나이다 40시므이가 그 종을 찾으려고 일어나 그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가드로 가서 아기스에게 나아가 그 종을 가드에서 데려왔더니(39-40)

그 후 시므이는 예루살렘에서 3년 간 무사하게 지냈으나, 3년 후에 예기치 못한 일에 휘말립니다. 그의 두 종이 블레셋 땅으로 도망한 것입니다. 다윗 당시 시므이는 아들 15명과 더불어 적어도 20명 이상의 종을 거느리고 살았으며, 베냐민 지파 1,000명을 소집할 수 있고, 이스라엘 북쪽 지파에 관여할 만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삼하 19:16-17,20). 그의 두 종이 가드 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에게 도망했습니다. 아기스는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도주자 신세였을 때 그의 망명을 받아준 자입니다(삼상 21:10; 27:2). 그때부터 수십 년이 지났으므로 현재 아기스는 동일인이 아닌 아기스의 후손입니다. 종들의 도주 보고를 받은 시므이는 즉각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종들을 찾으러 가드의 아기스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종들을 가드에서 데려왔습니다. 다혈질로 보이는 시므이가 종들을 되찾느라 혈안이 되어 금족령을 잊었는지, 아니면 알고도 무리수를 두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시므이의 죽음(41-46)

하나님의 자비와 정의의 기준에 모두 부합한 일입니다. 정치적 보복으로만 볼 일은 아닙니다. 시므이는 배은망덕으로 자초한 형벌입니다. 솔로몬은 시므이 제거가 사적인 감정에 따른 정적 제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때를 따른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41시므이가 예루살렘에서부터 가드에 갔다가 돌아온 일을 혹이 솔로몬에게 고한지라 42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내가 너로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고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밖으로 나가서 어디든지 가는 날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도 내게 말하기를 내가 들은 말씀이 좋으니이다 하였거늘 43네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가리켜 한 맹세와 내가 네게 이른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느냐 44왕이 또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무릇 네 마음의 아는 모든 악 곧 내 부친에게 행한바를 네가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 보내시리라 45그러나 솔로몬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위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서 견고히 서리라 하고 46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하매 저가 나가서 시므이를 쳐서 죽게 한지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41-46)

시므이의 행보는 솔로몬에게 보고되었고, 솔로몬은 이를 기회 삼아 그를 처단합니다. 시므이를 소환하는 장면에 36절에 나온 첫 세 문장이 42절에 재등장하여, 이번에도 소환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됨을 보여줍니다. 그의 첫 소환은 목숨을 연장시켰으나, 이번 소환은 목숨을 앗아갑니다. 솔로몬은 금족령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명령의 진정성을 나타내고, 시므이가 명령에 동의했음을 확증합니다. 이는 왕의 명령이 쌍방의 합의였음을 분명히 합니다. 더구나 이는 여호와로 맹세한 엄중한 사안이지 않습니까(42, 43). 그런데 시므이가 여호와께 한 맹세와 왕의 명령을 어겼으니, 그는 유죄이며 처벌이 마땅합니다(43). 이어 나오는 44-46절의 내용과 순서는 요압 에피소드(32-34)와 유사하게 전개됩니다. 요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32) 시므이의 악()을 그의 머리로 돌려보내는 주체는 여호와이시다’(43). 요압의 처형 판결이 과거에 그가 저지른 살인과 배반에 대한 여호와의 의로운 심판이듯이(32), 시므이의 처형 또한 과거에 그가 다윗에게 행한 모든 악에 대한 여호와의 정당한 심판입니다(44). 여호와께서 요압의 악을 보복하되 다윗 왕위에는 영원한 평화를 주시듯(33), 이번에는 시므이의 악을 보복하되 다윗 왕위에는 영원한 견고함을 베푸실 것입니다(45). 42-45절의 솔로몬의 판결 내용에는 여호와가 네 번 나와, 그 판결이 사적인 앙갚음이 아닌 여호와와 율법에 적법한 선고임을 암시합니다. 요압의 죽음처럼(삼하 3:39) 시므이의 죽음은 저주를 선으로 갚아주시길 구한 다윗의 간구(삼하 16:12)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처형은 브나야가 맡습니다(46; 참조.25,34). 그는 어명에 순종하여 시므이를 쳤고, 그는 마침내 죽었습니다. 시므이의 처형 기록 후 열왕기 저자는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해졌다’(46)고 평가합니다. 유사한 평가(‘나라가 심히 견고하다’)가 이미 솔로몬의 왕정 기사를 시작하며 나왔으므로(12), 12-46절은 한 단락을 이룹니다. 열왕기는 견고한 나라의 공로를 솔로몬의 손, 그의 숙청 작업(13-46)에 돌립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당부했던 지혜’(6,9) 그리고 솔로몬이 행한 지혜는 결국 여호와 경외보다는 정치 지략과 율법을 이용한 정치적 수완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왕국의 견고함은 인간적, 정치적 노력을 뛰어넘어 하나님이 솔로몬과 함께하셨고(대하 1:1), 다윗과 맺은 약속(삼하 7:12)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큰 은혜와 섭리로 솔로몬의 등극과 왕정의 현실을 감싸 안으셨습니다.


시므이를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잊어버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태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언약의 파괴에 대한 결과가 죽음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자신들을 바르게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 바른 행동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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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2-03)

 


아비의 충고를 따르는 지혜자

열왕기상 226-35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서 심는 데로 거둔다!’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들은 참 두려운 말입니다. 어떤 행동을 한 것에 대한 결과의 책임을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본문의 아비아달을 보면서 그 말이 맞다는 것을 다시 생각합니다.

 

이복형인 아도니야가 다시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음흉한 음모를 꾸미다가 솔로몬에 의해 발각되어 제거되었습니다. 이어 본문에는 아도니야의 반란 음모에 가담했던 제사장 아비아달과 군대 장관 요압을 솔로몬이 숙정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관계를 정리하는 지혜:제사장 아비아달의 파면(26-27)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유언대로 지혜롭게 관계를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왕권을 세워가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사람들과 왕권을 세우는 사람들을 분리하기 시작합니다. 그 첫 대상들은 솔로몬이 왕이 되는데 반대하고 아도니야를 왕으로 세우려고 했던 사람들이 대상입니다. 그가 먼저 제거한 인물이 누구입니까?

26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로되 네가 내 부친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부친이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날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27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26-27)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측근인 제사장 아비아달과 군사령관 요압까지 제거합니다(26-34). 그는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구한 것을 반역으로 간주했고, 이 일에 아비아달과 요압의 공모 가능성을 의심했습니다(22). 이야기 전개상 아도니야 사건 직후에 이들의 숙청이 기록되어 두 사건의 연관성이 암시되었습니다. 다만 아도니야 사건처럼 모의의 진위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아 솔로몬의 처사가 정당했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는 아도니야와 그 측근이 제거됨으로써 장래의 역모 가능성이 미연에 방지되었고, 요압의 처단을 명한 다윗의 유언이 실현되었습니다. 솔로몬은 먼저 아비아달을 파면하고 고향 아나돗으로 추방하여 그의 종교적 영향력을 차단합니다. 그는 마땅히 죽을 자”(‘죽음의 사람’)이지만 솔로몬은 오늘 죽이지는 않겠다고 선언합니다(26). 그의 죄목에는 다윗을 배반하고 아도니야와 역모를 꾸민 일(1:7)이 분명하게 암시됩니다. 이번에 아도니야 사건에 개입했는지, 파면하는 공식 죄목이 무엇인지는 설명되고 있지 않습니다. 도리어 저자는 아비아달이 목숨을 보전한 이유를 밝힙니다. 첫째, 그는 다윗을 섬기며 여호와의 궤를 메었던 충실한 제사장이었습니다. 법궤를 옮긴 일은 제사장직의 대표성을 띄어 율법에 순종했음을 암시합니다. “다윗 앞에서”(26)라는 표현은 다윗에 대한 충성을 시사합니다. 그는 압살롬의 반역 때에도 법궤를 간수했고 다윗의 명을 따랐습니다(삼하 15:24-29). 둘째, 아비아달은 다윗의 고난에 참예한 헌신적인 신하였습니다.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던 다윗은 아비아달의 아버지이자 놉의 제사장이었던 아히멜렉에게 찾아왔고, 그는 자초지종도 모른 채 다윗을 도왔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 일을 반역으로 몰아 아히멜렉과 놉의 제사장 85명과 주민 및 가축까지 진멸했습니다(삼상 22). 이때 유일하게 생존한 아비아달은 다윗에게 합류한다. 다윗은 자기 탓에 아히멜렉과 놉 주민이 목숨을 잃었음을 통탄했다(삼상 22:22). 아비아달도 다윗이 원망스럽기도 했겠지만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는 내내 도왔고(삼상 23:6; 30:7), 압살롬에게 쫓길 때에도 사독과 함께 다윗을 위해 첩자가 되어 그의 안전을 도모했다(삼하 15:36; 17:15). 그러나 다윗의 노년에 아비아달은 그를 배반하고 아도니야를 따랐고, 그 때문에 오늘 솔로몬에 의해 제사장직을 잃게 되었다. 한편, 그의 파직은 개인적 몰락만을 뜻하지 않는다. 조상 엘리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실현된 사건이기도 하다. 제사장은 레위인 중 아론의 자손에게만 위임되는 특별한 직분이다. 그런데 아론의 네 아들 중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가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을 분향하여 죽게 됨으로써 (10:1-2) 엘르아살과 이다말 자손만이 제사장직을 맡아왔다. 세월이 흘러 사무엘 시대의 엘리 제사장이 이다말의 자손이었다. 당시 그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직분을 망각한 채 제사를 업신여기고 성소 봉사자 여인들과 동침하는 등 온갖 죄를 저질렀다. 엘리는 그들을 말로만 꾸짖었고, 그들은 훈계를 귀담아듣지 않았다(삼상 2:12-25). 하나님은 엘리와 아들들의 행위가 하나님을 멸시하는 악행임을 지적하며 엘리 가문의 몰락과 직분의 박탈을 예고하셨다(삼상 2:27-34). 결국 홉니와 비느하스는 블레셋 전투에서 죽었고, 그 소식을 전해 듣던 엘리도 즉사했다(삼상 4:11, 1822). 이후에 벌어진 엘리 집안 사건이 바로 아히멜렉을 포함한 놉의 살육 사건이다. 이제 아비아달까지 파면됨으로써 엘리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결코 잊히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과 섭리 아래 성취되고 있다. 이후로는 엘르아살의 자손인 사독 계열이 제사장 직을 담당하게 됩니다(35; 43:19).

 

관계를 끊을 줄 아는 지혜:군사령관 요압의 처형(28-34)

우리의 인생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잘 나가고 모든 권력을 가진 것 같지만, 어느 날 죽음 앞에서, 또는 위험한 환경 앞에서 하나님 앞에 도망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28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저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뿔을 잡으니 이는 저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좇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좇았음이더라 29혹이 솔로몬왕에게 고하되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곁에 있나이다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가로되 너는 가서 저를 치라 30브나야가 여호와의 장막에 이르러 저에게 이르되 왕께서 나오라 하시느니라 저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브나야가 돌아가서 왕께 고하여 가로되 요압이 이리이리 내게 대답하더이다 31왕이 이르되 저의 말과 같이 하여 저를 죽여 묻으라 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 나와 내 부친의 집에서 네가 제하리라 32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 머리로 돌려 보내실 것은 저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곧 이스라엘 군대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대장관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이 일을 내 부친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33저희의 피는 영영히 요압의 머리와 그 자손의 머리로 돌아 갈찌라도 다윗과 그 자손과 그 집과 그 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34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곧 올라가서 저를 쳐죽이매 저가 거친 땅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28-34)

아비아달이 파면된 후 솔로몬은 지혜대로 행하여 요압을 처리하라고 명한 다윗의 유언(5-6)을 이룹니다. 요압은 아비아달의 소식을 듣고 다음 숙청 차례가 자신임을 직감합니다. 그는 아도니야가 썼던 수법을 좇아(1:50)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음으로써 아도니야처럼(1:51-53) 목숨을 부지하려 합니다. “제단은 정사각형의 번제단으로 네 모퉁이에 뿔 모양이 달려 있습니다(27:1-8). 속죄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을 잡고 피를 네 뿔에 발랐습니다(29:12; 4). 뿔에 새겨진 예배자의 죄(17:1) 위에 피를 발라 속량한다는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요압은 장막을 도피처로 삼았지만, 그곳은 우발적살인자가 피신하는 곳입니다(35:11-12). 그는 고의로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였으므로, 도피처에 숨어도 목숨을 건질 수 없습니다.

한편 28절은 요압의 피신 이유를 반역에 가담한데서 찾습니다. 다만 압살롬은 따르지 않았지만 아도니야를 따랐다는 설명은 1장의 반역을 가리키므로, 아비아달과 마찬가지로 그가 2장의 아도니야 사건에도 관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요압이 제단에 피신한 상황은 솔로몬에게 보고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아도니야 때처럼 군사령관 브나야를 불러 장막으로 가서 요압을 치라고 명합니다(29). 어명에 따라 장막에 간브나야는 요압에게 나오라고 명하지만, 그는 거기서 죽겠다며 거절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둔 거룩한 처소에서 피를 흘리는 일은 삼갔으므로(왕하 11:15) 요압은 이를 악용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요압의 처형에 단호했습니다. 그는 요압의 말을 역이용하여 브나야에게 그를 치고묻으라고 명합니다. 솔로몬은 요압의 죄를 고의적 살인으로 정의하며, 이를 심판하지 않으면 그 책임이 다윗과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 설명합니다. 요압이 다윗 몰래(32) 두 장수를 죽여 다윗에게 해를 끼쳤고(삼하 3:26-38), 다윗이 왕으로서 피살자들을 신원하고(35:30-31), 살인자를 심판할 의무를 유언으로 솔로몬에게 당부했기 때문입니다(5-6). 브나야가 요압을 처단한 것은 다윗 가문에 임할 피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요압이 그보다 의롭고 선한 아브넬과 아마사를 쳤으므로동등한 피의 형벌을 요압에게 내리는 것이 여호와의 뜻과 심판이라고 주장합니다. 고의적 살인자는 도피처로 도망한다 해도 끌어내어 죽이는 것이 규례이므로(21:12-14; 19:11-13) 솔로몬의 판결은 적법합니다. 이로써 장수들이 흘린 억울한 피값은 요압과 자손에게 영원히 돌아가고, 다윗과 자손, , 왕위는 영원히 평화(샬롬)를 누릴 것입니다. 브나야는 어명대로 요압을 쳐서죽였고, 요압은 광야에 있는 집 매장지에 묻혔습니다. ‘매장은 아도니야나 이후 시므이의 처형에 언급되지 않은 내용으로 요압에게 뭔가 특별한 대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압의 처형은 살인의 죗값을 치른 것만 아니라 다윗 집안의 무죄를 확증하고, 다윗의 유언을 이루었으며(6), 요압의 악을 갚아달라고 기도한 다윗(삼하 3:39)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되었습니다.

 

새로 임명된 군사령관 브나야와 제사장 사독(35)

하나님 나라는 정의가 서고 율법에 충성하는 자들이 사는 나라입니다. 권력 남용을 경계하되 하늘의 분별을 구하며 단호하게 결단하였습니다. 정의가 서고 율법에 충성하는 자들이 사는 나라를 만들기 원합니다. 솔로몬은 무죄한 피를 흘린 요압의 죄를 물어 죽음을 명령합니다.

35왕이 이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로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장관을 삼고 또 제사장 사독으로 아비아달을 대신하게 하니라(34-35)

솔로몬은 아비아달과 요압의 자리에 사독과 브나야를 세움으로써 왕정을 재정비합니다. 아비아달과 요압은 다윗의 오랜 신하들로서 아도니야의 신복이 되었으나, 제사장 사독과 군대장관 브나야는 예루살렘에서 다윗의 신진 세력이 된 후 압살롬이나 아도니야를 좋지 않고 다윗과 솔로몬에게 충성했습니다. 엘르아살의 후손인 사독은 젊은 용사로서(대상 11:28) 다윗에게 합류했고, 후에 제사장이 되어 기브온의 성막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대상 16:39). 그는 압살롬의 반역 당시 다윗의 정보원으로서 그를 위기에서 구했으며(삼하 15:24-29; 17:15-18:8), 압살롬이 죽은 후에도 유다 백성을 다윗에게 돌아오게 도왔습니다(삼하 19:11-15). 브나야는 여호야다의 아들로서 다윗의 군사령관 열두 명 중 하나이며, 다윗의 군 조직의 셋째 달 반장이자 시위대 장관으로서 사독과 마찬가지로 다윗의 충실한 신하였습니다(삼하 23:20-23; 대상 27:5).


다윗의 나라는 악의 세력에 의해 쉽게 흔들리고 좌초될 수 있는 나라였기에 하나님께서 정한 심판의 방식으로 지켜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칼과 힘으로 세워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죽음의 세력조차 흔들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이 통할 줄 믿고 주께서 주신 자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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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2-02)


어리석은 욕심이 불러 온 아도니야

열왕기상 213-25


사람의 욕심이란 끝이었습니다. 하나를 가지면 만족할 줄 알았는데, 둘 셋을 가지고 싶어 하고, 셋을 가지고 싶으면 넷을 가지고 싶은 것이 사람의 욕심입니다. 권력에 대한 욕심도 마찬가지입니다. 포기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니깐 다시 욕심이 살아납니다. 이런 인간의 죄된 모습을 아도니야에게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죽은 후, 솔로몬이 왕으로 신정 왕국을 확장해 나갑니다. 그러나 솔로몬으로부터 목숨을 구한 아도니야는 왕이 되려는 미련과 욕심을 버리지 않습니다. 또 다시 악한 계교를 꾸밉니다. 솔로몬이 베푼 은혜를 배반하고 어리석은 부탁을 함으로써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욕심은 당신을 미련하게 만들고 위험에 빠뜨립니다.

 

아비삭을 아내로 요구한 아도니야(13-18)

하나님의 뜻이 아닌 일에 미련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인간적인 수법을 동원하여 하나님의 다스림과 뜻을 거스르는 계획과 경영은 없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반역으로 인하여 죽을 뻔했던 아도니야, 그를 살려 주었던 솔로몬은 왕이 되었습니다. 시간이 흐른 후, 아도니야는 왕권에 대한 욕심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밧세바를 찾아옵니다.

13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나아온지라 밧세바가 이르되 네가 화평한 목적으로 왔느뇨 대답하되 화평한 목적이니이다 14또 가로되 내가 말씀할 일이 있나이다 밧세바가 가로되 말하라 15저가 가로되 당신도 아시는 바여니와 이 왕위는 내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내게로 향하여 왕을 삼으려 하였는데 그 왕위가 돌이켜 내 아우의 것이 되었음은 여호와께로 말미암음이니이다 16이제 내가 한가지 소원을 당신에게 구하오니 내 얼굴을 괄시하지 마옵소서 밧세바가 가로되 말하라 17가로되 청컨대 솔로몬왕에게 말씀하여 저로 수넴 여자 아비삭을 내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왕이 당신의 얼굴을 괄시치 아니하리이다 18밧세바가 가로되 좋다 내가 너를 위하여 왕께 말하리라(13-18)

다윗이 죽으면서 아들 솔로몬에게 유언을 남겼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라는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을 우리 하나님이시다는 사실입니다.

아도니야는 다윗의 여인 아비삭을 아내로 삼으려 합니다. 그런데 그가 왕이 아닌 대비(大妃)인 밧세바에게 찾아옵니다. 그는 나단처럼 솔로몬의 모친밧세바를 이용하여 목적을 달성하려는 계산된 책략입니다. 다윗의 아내 밧세바는 새 군주의 모친이자 대비가 되어 정치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뜻밖의 방문에 그 목적이 화평인지를 물으며 그를 경계합니다(13a). 그가 왕권을 탐한 전력이 있기에 경계한 것입니다. 아도니야는 화평이라고 답하고, 할 말이 있다면서 그녀를 안심시킵니다(13b). 그런 후 다짜고짜 자신이 왕이 되는 게 순리였지만 솔로몬이 왕 된 것은 여호와의 뜻이었다고 진술합니다(15). 다윗이 솔로몬에게 네가 알 듯이’(5)라고 운을 떼며 원수들 숙청하는 문제에 솔로몬을 끌어들이려 했듯이, 아도니야도 말머리에 당신도 아시듯이’(15)라고 하면서 밧세바를 자기 일에 끌어들입니다. 아도니야의 주장에 따르면 원래 왕위는 그의 것이었습니다. 그가 다윗의 적법한 장자이며 다윗의 총애를 받은 자였습니다(1:6).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후계자로 계획하셨고(대상 22:9-10) 다윗도 맹세했습니다(1:30).

둘째, 이스라엘 백성은 자신을 왕으로 삼으려 했습니다(15). 아도니야는 온 이스라엘의 얼굴이 자신을 왕 삼고자 자기에게 고정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의 추종자들은 솔로몬을 뺀 왕자들, 아비아달, 요압, 일부 유다인들 뿐이었습니다(1:9). 압살롬처럼 백성의 마음을 빼앗았다거나 온 이스라엘이 그를 따랐다는 기록(삼하 15:6, 13)은 없습니다. 자축연마저 비밀리에 열려 백성들은 그의 등극을 몰랐습니다.

셋째, 왕권이 자기로부터 솔로몬에게 돌아간 것은 여호와의 계획이었습니다(15). 아도니야는 이때 솔로몬을 내 아우(아흐)”(15)로 칭하고 그에게 왕권을 뺏긴 것처럼 설명함으로써 솔로몬 왕정이 순리적인 결과가 아님을 표현합니다. 억울하지만 여호와의 뜻이니 어쩔 수 없이 받아들였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솔로몬을 후계자로 선택하셨기에, 아도니야에게 갈 왕권이 솔로몬에게 돌아갔다는 그의 주장은 전혀 옳지 않습니다. 아도니야가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는 이유는 자기가 큰 손해를 감수하고 물러났으니 이제 자신이 바라는 것을 말할 때에 거절하지 말고 꼭 들어달라는 것입니다. 밧세바의 반복되는 말하라”(14,16)라는 명령은 대비(大妃)의 권위와 권세를 드러냅니다. 아도니야는 그제야 아비삭을 아내로 얻도록 솔로몬에게 중재해달라며 방문 목적을 밝힙니다. 밧세바는 요청을 흔쾌히 수락하며 왕에게 말하겠다고 약속합니다. 흥미롭게도 아도니야와 밧세바의 진정한 속내를 알 수 없어 둘의 대화가 순수한 것인지 음흉한 계략인지 모호합니다. 아도니야의 말을 들여다보면 그는 반역을 꾀할 때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여전히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아비삭을 쉽게 얻을 것이라 믿고 섣부르게 행동합니다. 겉은 자신만만하지만 용기도 없고 솔로몬에게 절하며 목숨을 구걸했듯이(1:51-53) 지금도 대비 앞에서 비굴합니다. 자신의 반란이 가져올 최악의 상황을 부정했듯이, 지금도 최악의 경우는 배제한 순진한 모습입니다. 그러나 만약 아비삭을 요구한 의도가 후일을 도모하기 위한 시도라면, 그는 밧세바의 모성과 권세를 이용하는 지략을 펼치고 있는 셈입니다. 그는 솔로몬에게 왕좌를 잃은 서러움과 왕권에 대한 미련을 솔직하게 털어놓음으로써 밧세바의 경계심을 무너뜨리고, 그녀로 하여금 자신을 긍휼히 여기도록 속인 것입니다. 솔로몬의 왕권이 여호와의 뜻임을 인정한다면서 안심시켰습니다. 그녀의 청이라면 왕도 거절하지 못할 것이라면서 그녀에 강력한 권세가 있음을 상기시키고 이를 입증하도록 부추겼습니다. 밧세바가 아도니야의 요구를 어떻게 해석했는지는 모르지만, 그의 청탁을 들어준 이유는 아비삭을 주어 그를 위로해주려고 했거나 혹은 이번 기회에 아도니야(나아가 아비아달과 요압까지)를 제거할 공식적인 빌미를 만들려고 한 것인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후자라면, 밧세바는 정치적 지략이 뛰어난 여인으로서 다윗을 움직여 아도니야가 가로챈 왕권을 솔로몬에게 되찾아주었듯이, 이번에는 솔로몬을 움직여 아도니야가 가로채려 한 솔로몬의 왕권을 확실하게 지켜준 여인이 됩니다.

 

아도니야의 죽음(19-25)

우리들의 삶 가운데도 조그마한 욕심을 빨리 분별하여서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을 때에 그 욕심을 쳐버리는 은혜가 삶 가운데도 있어야 하겠습니다. 처음에는 얼마 작은 것 같아서 방심하고 가만히 나두면, 이렇게 성장해서 사람을 죽이게까지 하는 죄로 자라게 됩니다. 이제는 남을 해치는 큰 모양으로 변해가는 것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도 본문을 통해 네 안에 이런 작은 욕심이 없느냐?’, ‘죄가 없느냐?’고 묻고 계십니다. ‘하나님을 대적한 것이 없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19밧세바가 이에 아도니야를 위하여 말하려고 솔로몬왕에게 이르니 왕이 일어나 영접하여 절한 후에 다시 위에 앉고 그 모친을 위하여 자리를 베풀게 하고 그 우편에 앉게 하는지라 20밧세바가 이르되 내가 한가지 작은 일로 왕께 구하오니 내 얼굴을 괄시하지 마소서 왕이 대답하되 내 어머니여 구하시옵소서 내가 어머니의 얼굴을 괄시하지 아니하리이다 21가로되 청컨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주어 아내를 삼게 하소서 22솔로몬 왕이 그 모친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하여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저는 나의 형이오니 저를 위하여 왕위도 구하옵소서 저뿐 아니라 제사장 아비아달과 스루야의 아들 요압도 위하여 구하옵소서 하고 23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아도니야가 이런 말을 하였은즉 그 생명을 잃지 아니하면 하나님은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심이 마땅하니이다 24나를 세워 내 부친 다윗의 위에 오르게 하시고 허락하신 말씀대로 나를 위하여 집을 세우신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아도니야는 오늘날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19-24)

밧세바는 솔로몬에게 아도니야의 소원을 전하지만, 아도니야는 결국 목숨을 잃습니다. 밧세바가 이전에 나단의 계획대로 다윗을 만나러 갔듯이, 이번에는 아도니야의 계획대로 솔로몬을 만납니다. 나단이 일러준 말을 나름대로 바꿔 말했듯이 이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밧세바는 위 단락에서와 같이 솔로몬의 어머니로 계속 언급됩니다. 솔로몬은 깍듯이 예를 갖춰 모친을 접하고, 그녀는 왕좌 오른쪽에 마련해준 자리에 앉습니다. 20-21절의 밧세바와 솔로몬의 대화는 아도니야가 밧세바에게 말한 내용(16-17)을 반영합니다. 밧세바는 한 가지 작은 일(소원)”을 구하니 자신의 청을 거절하지 말라고 솔로몬에게 당부합니다(20). 밧세바가 아도니야의 소원작은 소원이라 칭한 것은 소원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거나 솔로몬이 그렇게 여기도록 축소한 것입니다. 솔로몬은 청을 거절하지 않을 것이라 약속합니다.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소청을 말하면서 아비삭을 아도니야에게 아내로 주어지게(be given) 하소서라는 소극적인 표현을 씁니다. 또한 아도니야를 당신의 형이라 칭하며 혈연을 넌지시 부각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모친의 말을 듣고 단번에 아도니야의 속셈을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판단합니다. 지금은 아비삭을 구하지만 결국은 왕좌를 노리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이전에 다윗을 속여 왕이 되려 했고, 이번에는 솔로몬을 속여 왕좌를 빼앗으려 한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아도니야와 밧세바가 혈연지간을 내세운 점을 받아쳐 솔로몬도 아도니야를 나의 형(아흐)”이라 부르며, 그를 위해 왕권까지 구하라고 밧세바에게 역정을 냅니다. 밧세바는 아도니야에 대해서말했지만(18,19), 솔로몬은 그녀의 요청이 그를 위한것임을 세 번 반복하며(22), 아도니야의 진의가 왕권 찬탈임을 일깨웁니다. 보통 왕이 죽으면 선대왕의 규방(harem)은 후대왕의 감찰 하에 맡겨지므로 아비삭은 솔로몬의 합법적인 규방에 속했습니다. 고대에는 새 왕이 이전 왕의 처첩을 아내로 맞는 일이 종종 있었는데, 이는 왕위의 정당성을 나타내려는 목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상대편이나 제3자 입장에서 보면 왕의 여자를 넘보거나 취하는 행위는 왕권에 대한 도발로 간주되기 십상입니다. 이전에 군사령관 아브넬이 사울의 첩을 취한 행동을 이스보셋이 배역으로 여긴 것은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삼하 3:7). 아히도벨이 다윗을 배반한 압살롬에게 다윗의 후궁과 동침하라고 조언한 것도 그의 왕위를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봅니다(삼하 16:20-23). 다윗의 경우는 사울의 딸 미갈을 아내로 되찾음으로써 베냐민 지파와의 결탁을 유도하고 새 왕조를 세우는 명분으로 삼으려 했습니다(삼하 3:13-14). 이런 사례들로 봤을 때,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아내로 구한 것은 왕권 찬탈의 의도가 다분한 행위입니다. 솔로몬이 아비아달과 요압까지 언급한 것(22)을 보면 그들이 관여했으리라 유추한 것 같습니다.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반역 의중이 드러났으니 그를 처단하기로 여호와께 맹세합니다. 아도니야에게서 악이 발견되면 죽을 것이라 경고한 바 있으므로(1:52), 솔로몬은 이 선고가 사적 보복이 아닌 정당한 판결임을 드러냅니다. 또한 그를 제거하는 것은 여호와가 다윗에게 예고한 솔로몬을 다윗의 왕위에 세우고 솔로몬 왕정을 수립하게 할 것이라는 약속의 실현임을 선포합니다. 그는 브나야에게 아도니야의 처형을 명합니다. 브나야는 어명대로 아도니야를 쳤습니다. 다윗의 관대함과 솔로몬의 호의로 목숨을 부지했던 아도니야는 이렇게 죽고 맙니다.


당신의 인생과 미래가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말씀을 따라 살아가도록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상황 속에서 참된 지혜를 분별하여 지혜로운 사람으로 존경받을 수 있습니다. 말씀의 풍성함 속에 살면서도 그 말씀을 따라 행하는 일은 빈약했던 것을 회개합니다. 당신 안에 말씀을 좇기 싫어하는 게으름과 악함을 거절하기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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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2-01)


형통으로 이끄는 다윗의 유언

열왕기상 21-12


옛날 초등학교 교과서에 말 안 듣는 청개구리 이야기를 아실 것입니다. 평소에는 어머니 청개구리의 말을 잘 안 듣다가 죽게 된 어머니 청개구리의 마지막 유언을 듣습니다. 그리고 죽은 어머니 청개구리를 강가에 묻었다가 비만 오면, 어머니 무덤이 떠내려갈까 봐서, 계속 울어댄다는 청개구리 이야기입니다. 정말 평소에는 부모님의 말을 안 듣다가도 마지막 유언에는 귀를 기우리는 것이 사람입니다. 본문에는 다윗의 생애를 마치면서 유언을 하는 현장이 나옵니다.

 

아도니야 사건을 잘 마무리하고 왕이 된 솔로몬에게 다윗은 통치의 원리를 가르칩니다. 죽음을 앞둔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형통케 원리를 줍니다. 솔로몬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군사력도 정치력도 아니었습니다. 율법에 담긴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이 성공의 참된 비결입니다. 그리고 다윗은 자신의 신하들에게 대해서 분별력을 가지고 대하라고 당부합니다.

 

다윗의 마지막 유언(1-9)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솔직해집니다. 죽어가는 사람도, 그를 보내는 사람도 서로 맺혔던 한을 풀고, 서로 용서하고 축복하는 장면이 죽음의 장면입니다. 부모들이 가장 솔직하게 자녀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꾸밈없이 할 수 있는 죽음을 앞두고 있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유언은 자신의 전 생애를 통해 깨달은 사실을 전하는 것입니다. 즉 인생의 결론입니다. 죽음을 앞둔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마지막 유언을 남기게 됩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무엇을 진실하게 권하고 있습니까?

1다윗이 죽을 날이 임박하매 그 아들 솔로몬에게 명하여 가로되 2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3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찌라 4여호와께서 내 일에 대하여 말씀하시기를 만일 네 자손이 그 길을 삼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진실히 내 앞에서 행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사람이 네게서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신 말씀을 확실히 이루게 하시리라 5스루야의 아들 요압이 내게 행한 일 곧 이스라엘 군대의 두 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예델의 아들 아마사에게 행한 일을 네가 알거니와 저가 저희를 죽여 태평시대에 전쟁의 피를 흘리고 전쟁의 피로 자기의 허리에 띤 띠와 발에 신은 신에 묻혔으니 6네 지혜대로 행하여 그 백발로 평안히 음부에 내려가지 못하게 하라 8바후림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너와 함께 있나니 저는 내가 마하나임으로 갈 때에 독한 말로 나를 저주하였느니라 그러나 저가 요단에 내려와서 나를 영접하기로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여 이르기를 내가 칼로 너를 죽이지 아니하리라 하였노라 9그러나 저를 무죄한 자로 여기지 말찌어다 너는 지혜 있는 사람인즉 저에게 행할 일을 알찌니 그 백발의 피를 흘려 저로 음부에 내려가게 하라(1-9)

다윗은 이제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았습니다. 그는 초연하게 죽음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후계자로 임명한 아들 솔로몬에게 꼭 해주어야 할 유언하고 있습니다. 죽음이 가까워진 다윗은 솔로몬과 그 신하들에게 마지막 말 유언을 남깁니다.

(1)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1-4)

죽음이 가까워진 다윗은 솔로몬에게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무엇보다 하나님의 명령을지킬 것을 명하며, 순종하기 위해서는 어린 솔로몬이 굳세져서 대장부가 되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킨다는 것은 그분이 원하시는 길로 행하는 것이며, 그 길은 모세의 율법에 명시되었습니다. 다윗은 이를 그의 법률들과 그의 계명들과 그의 율례들과 그의 증거들로 반복하면서 율법이 하나님에게서 나왔고, 그가 인간이 행할 길을 알리셨음을 강조합니다. 또한 순종하면 무엇을 하든 어디로 향하든 형통할 것이라면서 격려합니다. 다윗은 이어 하나님이 그와 맺은 언약을 이루실 것을 상기시킵니다. 이 언약은 조건적입니다. 다윗 후손들이 모든 마음과 영혼(“성품”)으로 진실하게 하나님 앞에서 행하고 행위를 주의하는지 여부에 따라 왕조의 지속이 결정된다는 내용입니다(4; 대상 28:7). 그런데 실상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이런 조건을 내걸지 않으셨고, 오직 그의 은혜로왕조가 영원히 견고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삼하 7:12-16). 물론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왕의 규례(6;17:18-20)를 통해 순종할 것을 명하셨고, 순종하는 왕에게 장구한 왕권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후손이 죄를 지으면 징계하겠지만 사울 때처럼 왕권을 빼앗지는 않을 것이고 다윗 왕조는 영원할 것이라고 보장해주셨습니다(삼하 7:14-16). 이 다윗 왕조의 영구성에 대한 약속은 결코 과장이 아닙니다. 다윗의 후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세워질 하나님의 왕국에 문자적으로 적용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2) 요압, 바르실래의 아들들, 시므이에 대한 지시(5-9)

다윗은 세 사람을 특정하여 그들에 대한 조치를 지시합니다. 이 당부들은 앞의 순종의 내용과 연결되어 솔로몬에게 압박을 줍니다. 다윗은 요압이 무죄한 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인 일을 들어 그의 처벌이 마땅함을 표합니다. 요압은 다윗의 조카이자 군사령관으로서 다윗 옆을 지켰으나 태평시대(샬롬)에 전쟁의 피를 흘린 장본인입니다. 다윗은 그들이 죽으며 흘렸던 피가 요압의 칼이나 다른 무기가 아닌 허리띠와 신발에 묻었다고 묘사합니다. 이는 요압이 전쟁에서 두 장수와 정정당당하게 겨룬 것이 아니라 무방비 상태인 그들을 유인해 비겁하게 죽였음을 고발하려는 의도입니다. 요압이 죽인 아브넬 장군은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을 왕으로 세운 자입니다. 그의 군사들과 요압의 형제를 포함한 다윗의 군사들 사이에 싸움이 일었을 때 아브넬은 자기 뒤를 뒤쫓은 요압의 형제 아사헬을 죽였습니다(삼하 2:12-23). 후에 아브넬은 이스보셋을 떠나 다윗에게 전향했지만, 요압은 아사헬에 대한 보복으로 아브넬을 살해했습니다(삼하 3:22-27). 당시 다윗은 자초지종을 몰랐으나 백성들에게 아브넬의 살인자로 오인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브넬의 무덤까지 상여를 따라가 울었고 그를 위한 애가를 지어 불러 백성의 오해를 풀어야 했습니다(삼하 3:26-38). 이때 다윗은 왕권이 약하여 요압을 제거하기 어려웠음에 울분을 토하며, 하나님이 요압의 악을 갚아주시기를 기원했습니다(삼하 3:39). 한편 아마사는 이드라(예델)와 아비갈(아비가일)의 아들로, 다윗의 조카이자 요압의 사촌이었습니다(삼하 17:25; 대상 2:17). 그는 압살롬을 추종한 군사령관이었지만, 압살롬이 죽은 후 다윗에 의해 요압 대신 군사령관이 되어, 특정 임무를 맡았습니다(삼하 19:13; 20:4-7). 요압은 강등당해 자존심이 상했는지, 다윗에 대한 반항심 때문인지, 다른 이유에선지 아마사가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기회를 노려 그를 죽이고 온 군대의 군사령관 자리를 되찾았습니다(삼하 20:4-13, 23). 요압이 이처럼 평화의 시기’(샬롬)에 피를 불렀으므로 그가 평안히(샬롬) 죽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이제 평화’(샬롬)의 이름을 가진 솔로몬이 이를 처리하여 다시 평화를 되찾아야 합니다. 요압은 전쟁에서 많은 공을 세우고 다윗에게 충성했지만, 사리사욕으로 제멋대로 행하여 그에게 가시와 같은 존재이기도 했습니다. 다윗이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마음에는 그가 자기 아들 압살롬을 죽인 일에 대한 분노와 원한이 남아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솔로몬이 요압을 처단함에 있어 지혜대로행하라고 명합니다(6). 이때 지혜어떻게 행할지를 아는 것입니다. 앞으로 솔로몬이 이를 어떻게 처리하는지 눈여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혜에 대한 언급은 솔로몬이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얻게 될 자임을 미리 귀띔하는 역할도 합니다.

둘째, 길르앗의 거부 노인 바르실래의 자식들에게 은총을 베풀라고 당부합니다(7). 다윗이 압살롬에게서 도망할 때 요단을 건너 길르앗 지역의 마하나임에 은신처를 꾸렸습니다(삼하 17:24). 이때 바르실래를 비롯한 길르앗 주민이 다윗과 무리를 긍휼히 여겨 침구류와 그릇과 음식을 후하게 대접했습니다(삼하 17:27-29). 압살롬이 죽은 후 다윗이 요단을 건너 다시 서쪽 유다로 돌아갈 때에도 바르실래는 그의 안전을 위해 동행했습니다. 또한 다윗과 무리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었습니다(삼하 19:31-39). 다윗은 그에게 예루살렘에 함께 가기를 권유했으나 이미 80세가 된 바르실래는 왕에게 누가 된다며 제안을 정중히 거절하고, 대신 김함을 데려가도록 요청했습니다(삼하 19:33-39). 다윗이 지금 솔로몬에게 바르실래의 아들들에게 호의를 베풀라고 명하는 것으로 보아 김함은 바르실래의 아들로 추정됩니다. 다윗은 이들이 솔로몬의 왕정에도 계속 도움이 될 존재라 생각한 것입니다. 이들은 솔로몬의 식탁에서 먹는 권한을 누리게 될 것인데, 이는 궁정의 음식과 보호를 공급받는다는 의미일 것입니다(4:27). 이는 왕의 가족이나 다름없는 융숭한 대접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유사한 예로 이전에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이 다윗에게 이 같은 대접을 받았고(삼하 9:7-11), 여호야긴 왕이 바벨론의 옥에서 풀려나와 바벨론 왕의 공궤를 받습니다(왕하 25:29).

마지막으로, 다윗은 시므이를 처단하도록 명합니다(8-9). 다윗은 보라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솔로몬의 이목을 집중시켜 시므이에 대한 지시가 위중함을 표현한 것입니다. 시므이는 바후림에 사는 베냐민 사람이며 사울의 친척이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마하나임으로 도망할 때 다윗에게 부당하고 악독한 저주를 퍼부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죽고 다윗이 왕권을 되찾자 용서를 빌었고, 다윗은 그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삼하 19:16-23). 이것이 그가 무죄하다거나 다윗이 용서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다윗은 이제 솔로몬이 지혜의 사람’(9)으로서 이 일을 어떻게 행할지 알 것이라며, 시므이가 피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게 하라고 당부합니다. ‘지혜의 사람이란 표현은 요압을 처리하는 방식(“네 지혜대로 행하여”(6)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수완으로 잘 해결하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여호와께 한 맹세와 정치적인 목적으로 시므이를 살려 두었지만, 솔로몬을 통해 그를 제거하여 새 왕정에 걸림돌이 없도록할 계획입니다. 열왕기는 다윗의 마지막 모습을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하기보다는 남은 문제들을 주도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인간적이고 정치적인 모습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다윗의 죽음(10-12)

당대에 천하를 호령하는 영웅호걸들도 시간이 되어서 모든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갔습니다. 중국의 진시황제는 죽지 않기 위해 불로초를 구했지만, 49세에 죽었습니다. 우리가 해낼 수 있는 것은 생각보다 적습니다. 그 영향력도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언기 남겨놓으려고 안달자지 말고 끝까지 책임지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본문에는 다윗도 모든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10다윗이 그 열조와 함께 누워자서 다윗성에 장사되니 11다윗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십년이라 헤브론에서 칠년을 치리하였고 예루살렘에서 삼십 삼년을 치리하였더라 12솔로몬이 그 아비 다윗의 위에 앉으니 그 나라가 심히 견고하니라(10-12)

이스라엘을 40년 동안 다스렸던 다윗은 죽었습니다. 그리고 다윗 성에 묻혔습니다. 다윗의 뒤를 이어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더욱 견고하게 세워졌습니다. 아버지 다윗보다 더 솔로몬의 위가 든든하게 설 수 있는 축복을 누렸습니다. 30세에 왕이 되어 헤브론에서 76개월, 나머지 33년은 예루살렘에서 온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다윗은 40년의 통치(주전 1010-970)를 끝으로 다윗 성 시온에 장사 되었습니다. 이제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제3대 왕이자 다윗 왕조의 둘째 왕으로 군림합니다. 하나님의 약속대로 그가 왕위에 올랐고 그의 나라는 심히 견고했습니다(삼하 7:12).

 

 

다윗처럼 솔로몬에게 유언하듯이, 당신도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남기는 귀한 유언을 하시길 바랍니다. 자녀의 미래는 하나님의 말씀에 달려있습니다. 언제 어디서든지 말씀을 따라 살아가도록 노력하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어떤 상황 속에서든지 참된 지혜로 분별하여 지혜로운 사람으로 존경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풍성한 말씀 속에 살면서 그 말씀을 따라 순종하지 못했던 것을 회개하시길 바랍니다. 당신 안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하길 원합니다. 그러면 자녀들에게까지 풍성한 축복을 누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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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1-04)


제단 뿔을 잡는 아도니야

열왕기상 1장 40-53절


항상 이 세상은 좋은 소식을 기다립니다. 그리고 그 소식을 들으면 기뻐합니다. 자녀가 합격했다는 소식, 남편이 승진했다는 소식, 부동산 값이 올랐다는 소식, 이런 저런 소식을 다 좋은 소식이라고 기다립니다. 그런데 성경은 진정한 좋은 소식(Good News)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고 소개합니다. 성경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당신에게는 가장 좋은 소식은 무엇입니까?

 

솔로몬의 왕위 즉위식이 온 백성의 환호와 축하 속에 진행됩니다. 아도니야 일행은 요나단에게서 솔로몬의 등극한 소식을 듣고 모두 흩어집니다. 아도니야도 이 소식을 전해 듣고 두려워 성소에 들어가 제단 뿔을 붙잡고 목숨을 간청합니다. 아도니야의 사건을 통해 솔로몬은 왕으로 안착할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의 등극을 듣는 아도니야(40-45)

다윗에서 솔로몬으로 은혜스럽고 평화스러운 정권교체가 일어난 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두 기뻐하며 축제를 버리기 시작합니다. 모두가 행복한 이때에 소외된 한 무리가 있었습니다. 바로 스스로 왕이 되려했던 아도니야의 무리들이었습니다. 그 상황을 살펴보겠습니다.

모든 백성이 왕을 따라 올라와서 피리를 불며 크게 즐거워하므로 땅이 저희 소리로 인하여 갈라질듯하니 41아도니야와 저와 함께한 손들이 먹기를 마칠 때에 다 들은지라 요압이 양각 소리를 듣고 가로되 성중에서 소리가 어찌하여 요란하뇨 42말할 때에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 요나단이 오는지라 아도니야가 가로되 들어오라 너는 용사라 아름다운 소식을 가져 오는도다 43요나단이 아도니야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과연 우리 주 다윗왕이 솔로몬으로 왕을 삼으셨나이다 44왕께서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을 솔로몬과 함께 보내셨는데 저희 무리가 왕의 노새에 솔로몬을 태워다가 45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이 기혼에서 기름을 부어 왕을 삼고 무리가 그곳에서 올라오며 즐거워하므로 성중이 진동하였나니 당신들에게 들린 소리가 이것이라(40-45)

이스라엘 백성들은 솔로몬이 기름 부음을 받는 것을 보고 매우 기뻐하고 있었습니다. 왕으로 등극한 솔로몬을 따르며 피리를 불고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이 기쁨의 소리가 너무 크고 요란했습니다. 다른 곳에서 아도니야를 왕으로 세우려던 무리들의 잔치까지 드렸습니다. 그들은 멀리서 들려오는 나팔소리와 백성들의 환호성을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궁금해 합니다.

바로 그때 제사장 아비아달의 아들인 요나단이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다윗 왕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웠으며, 지금 들리는 소리가 솔로몬 왕에 대한 축하와 기쁨의 환성이라고 전합니다.

아도니야 무리들이 잔치를 베풀고 있을 때, 요나단이 들어왔습니다. 그들은 기뿐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지만, 자신들이 왕이 되려는 잔치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축하한다는 소식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허황된 망상과 같은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좋은 소식(Good News)이 아니라 나쁜 소식(Bad News)이었습니다. 그것은 솔로몬이 왕이 되어서 모든 백성이 기뻐하는 소리라는 천청병력 같은 소식이었습니다. 나팔 소리가 큰소리로 울리고 있을 때, 아도니야는 계속해서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요압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은 대세를 따라 아도니야에게 ‘당신은 왕이 될 자격이 있습니다.’라고 부추기며, 그들은 아부하면서 ‘당신은 왕입니다.’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아도니야에게 아부를 계속했을지 모릅니다.

아도니야는 스스로 마련한 잔치에서 소수의 동조자들의 왕으로 굴림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왕 솔로몬은 이스라엘 모든 백성들의 왕위에 등극했습니다. 한편 솔로몬이 등극했다는 소식은 아도니야 사람들에게 기쁨의 소식이 아니라 두려운 소식이었습니다. 모든 인간적인 기대와 꿈을 깨뜨려 버린 절망적인 소식이었습니다.

아도니야의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을 생각해보면 오늘날도 그런 사람들이 없습니까? 자신의 성공을 위해 사람들이 몰려다니며 대세를 따라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성공지향적인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묵살하고 세상의 방법과 성공을 위해서만 살아갑니다.

 

솔로몬을 세우신 하나님을 찬양(46-48)

드디어 솔로몬이 왕으로 등극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윗 왕에게 와서 솔로몬이 왕으로 등극한 것을 축하합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솔로몬이 나라 위에 앉았고 47또 왕의 신복들이 와서 우리 주 다윗 왕에게 축복하여 이르기를 왕의 하나님이 솔로몬의 이름을 왕의 이름보다 아름답게 하시고 그 위를 왕의 위보다 크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매 왕이 침상에서 몸을 굽히고 48이르시기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여호와께서 오늘날 내 위에 앉을 자를 주사 나로 목도하게 하셨도다 하셨나이다 하니(46-48)

드디어 솔로몬이 왕좌에 앉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솔로몬이 새로운 왕으로 세워진 것에 대해 다윗에게 축하합니다. 그 내용은 ‘당신보다 당신 뒤에 앉을 사람이 당신보다 더 잘되길 바랍니다.’라고 축복을 했습니다. 이런 축복은 다윗에게는 기분이 나쁠 수 했지만, 하지만 다윗은 축하하는 마음으로 함께 공감하며 하나님께 예배합니다. 진정한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자신보다 자신의 후계자가 더 잘되는 것을 기뻐하는 다윗의 모습이, 다윗을 위대한 왕의 모습을 가지게 하는 좋은 지도자의 모습입니다.

다윗도 왕위를 이을 사람을 자신이 살아있는 동안 허락해주심과, 그리고 아들 솔로몬이 자기 이름보다 더 아름답고 자기 왕위보다 더 크게 되기를 구하는 기도를 듣고 하나님께 노쇠한 몸을 굽혀 감사를 드립니다.

다윗이 이렇게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이 스스로 세운 왕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왕으로 선택하여 세우기로 약속하셨기 때문에 축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솔로몬을 이렇게 축복할 수 있었던 것은 다윗의 보물이 왕의 자리가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왕의 직책이 아니라 영원히 들어갈 천국에 소망이 있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을 축복하고도 남을 넉넉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다윗입니다.

세상의 역사들이라 할지라도 그 근원에는 하나님의 통치가 있습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신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라고 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왕위에 오른 솔로몬을 보고 하나님께 찬양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상황을 주관하신 분입니다. 사람을 높이시기도 하며 낮추시기도 합니다. 아도니야가 왕이 되는 것이 대세처럼 보이는 상황을 완전히 뒤바꿔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솔로몬이 통치한 나라에 대한 번영도 하나님께 달려있는 것입니다. 당신은 지금 당신이 처한 상황도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실 뿐 아니라 얼마든지 뒤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솔로몬처럼 노라운 일을 경험할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아도니야의 무리(49-53)

이스라엘 백성들의 나팔 소리가 아도니야를 위한 소리가 아니라 솔로몬을 위한 나팔 소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도니야 잔치에 참석한 사람들은 어떤 행동을 취합니까?

아도니야와 함께한 손들이 다 놀라 일어나 각기 갈 길로 간지라 50아도니야도 솔로몬을 두려워하여 일어나 가서 제단 뿔을 잡으니 51혹이 솔로몬에게 고하여 가로되 아도니야가 솔로몬왕을 두려워하여 지금 제단 뿔을 잡고 말하기를 솔로몬왕이 오늘날 칼로 자기 종을 죽이지 않겠다고 내게 맹세하기를 원한다 하나이다(49-51)

솔로몬이 완전히 공식적으로 왕이 된 것을 듣자 아도니야 일행들은 들었습니다. 대세에 따라 아도니야가 왕이 될 것을 기대하고 미리 잔치를 벌이고 있던 그들은 이 소식을 듣고 놀라서 재빨리 도망쳤습니다. 무엇인가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부터 아도니야를 하나둘씩 떠나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세상입니다. 허상을 잡고 있을 때는 이러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당신이 잡고 있는 것이 전혀 진리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오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성도들이 믿고 따라야할 대상은 세상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한 분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아도니야도 그들이 떠나는 순간에 그것을 느겼을 것입니다.

이 전까지는 솔로몬이 등장하지 않았지만, 드디어 솔로몬이 나옵니다.

솔로몬이 가로되 저가 만일 선한 사람이 될찐대 그 머리카락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려니와 저의 가운데 악한 것이 보이면 죽으리라 하고 53사람을 보내어 저를 제단에서 이끌어 내리니 저가 와서 솔로몬왕께 절하매 솔로몬이 이르기를 네 집으로 가라 하였더라(52-53)

왕 행세를 하던 아도니야가 급해서 성소로 뛰어갑니다. 솔로몬이 두려워 제단 뿔을 붙잡고 생명을 구걸합니다. 밧세바와 솔로몬의 생명을 위협하던 아도니야가 이제는 제단 뿔을 잡고 살려달라고 간청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자신을 지지하던 몇몇 안 되는 권력자들의 지지에 하나님과 아비지도 무시하며 의기양양했던 사람이 목숨을 구걸합니다. 이에 솔로몬은 조건을 걸고 그를 살려주지만 사실상 그 조건은 아도니야의 목숨을 솔로몬의 마음대로 살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도니야에게 자비를 베풀어 그를 죽이지 않고 용서하고 집으로 돌려보냅니다. 아버지 다윗에게 배운 귀한 신앙을 첫 번째로 실천합니다. 당신의 삶 속에서도 솔로몬과 같이 다른 사람을 용서하고 축복하는 실천하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

대세를 따르지 말고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아도니야를 따랐던 이들은 솔로몬이 왕이 되자 당황하고 두려워하며 도망쳤습니다. 지금 당신의 삶의 기준은 상황을 따릅니까 아니면 말씀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사람들과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뜻에 따라 세상을 통치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명예와 권력을 위한 잔치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잔치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인도하신 것처럼, 당신을 인도하신 것입니다. 지금 상황이 불리하더라도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묵묵히 하나님의 뜻만 나가시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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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1-03)


왕으로 세움을 받는 솔로몬

열왕기상 1장 28-39절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끝임 없는 선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선택을 한다는 것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때로는 잘못된 선택하고 후회하고, 잘된 선택을 하고 기뻐하며 우리들이 살아있다는 증거를 봅니다. 항상 두 갈림길에서 어느 길을 선택할까 망설이고 있습니다. 본문의 다윗도 말년에 그의 생애의 마지막 선택을 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고 사람들을 모아 잔치를 배설하고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아무 것도 모르고 왕위를 위하여 아무것도 시도하지 어떤 일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왕인 다윗도 몰랐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알게 된 선지자 나단와 아내 밧세바는 다윗 왕에게 알립니다. 그리고 다윗은 과거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밧새바와 맺은 맹세를 기억하고, 솔로몬을 왕으로 등극 시킵니다. 이 과정에서 하나님의 역사는 강력하게 나타납니다.

 

솔로몬을 왕으로 세울 맹세(28-31)

열왕기는 다윗이 늙어서 병약한 다윗의 모습으로 시작합니다. 그 모양 그대로 라면 무능한 왕일 것입니다. 그런데 나단의 충고를 듣고 상황을 파악한 다윗은 이제는 더 이상 무능한 왕이 아닙니다. 침상에서 일어나 자신의 일을 행하기로 결심하고 하나님의 일을 행하기로 시작합니다.

28다윗왕이 명하여 가로되 밧세바를 내 앞으로 부르라 하매 저가 왕의 앞으로 들어와 그 앞에 서는지라(28)

다윗은 밧세바와 선지자 나단을 통해 아도니야의 악행에 대해 당황스러운 보고를 받았습니다. 정말 아도니야를 후계자로 삼았냐는 나단의 질문을 받습니다. 다윗은 성급하게 즉흥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자신의 침상에서 물리치고 혼자 조용히 생각을 정리하고 기도합니다. 기도한 다음에 다시 밧세바를 부릅니다. 그리고 말을 시작합니다. 이제는 늙은 호랑이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행동하는 왕으로 탈바꿈합니다. 그리고 이제 자신의 선택한 일에 대해 공포합니다.

이전까지는 다윗이 늙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의 침상에 누어있었습니다. 연약한 다윗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사람들 도움을 받고 일어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지 못하면 늙은 다윗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20대 젊은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자신의 삶에 매어서 하루하루 허비하면서 세월을 보냅니다. 늙은 다윗과 같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영적 생명력이 없는 늙은이처럼 되어 집니다. 아무리 몸은 늙어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능력만 살아있으면, 하나님의 뜻을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삶 속에 잘 적용하시길 바랍니다.

왕이 가로되 내 생명을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신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라 30내가 이전에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네게 맹세하여 이르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정녕 나를 이어 왕이 되고 나를 대신하여 내 위에 앉으리라 하였으니 내가 오늘날 그대로 행하리라 31밧세바가 얼굴을 땅에 대어 절하며 내 주 다윗왕은 만세 수를 하옵소서 하니라(29-31)

다윗은 침상에서 다시 일어납니다. 이렇게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는 능력이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자신을 일으켜 세우신 분은 “내 생명을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신 여호와”라고 고백합니다. 그 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으로 맹세”합니다. 그는 또 맹세한 것을 “내가 오늘날 그대로 행하리라”고 고백합니다. 노장 다윗이 죽음을 앞두고 신실한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이스라엘의 미래를 결정하는 유일하는 것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다윗은 현직에서 왕으로 있을 때, 이스라엘이 번영하며 안정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절실히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음 왕을 세우는 일이나 이스라엘의 운명 역시 여호와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다윗의 고백을 통해 우리들에게 영적 교훈을 줍니다. 인생의 마지막 때에 당신은 하나님에 대해 무엇이라고 고백할 것 같습니까?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라고 고백하면서 천국에 올라가길 원합니다. 자신에게 주신 사명을 잘 감당하고, 선물로 주신 자녀들을 말씀대로 잘 가르치고 주님 앞에 홀가분하게 나아가길 원합니다. 이러한 모든 고백들이 당신의 인생에 넘쳐나길 소원합니다.

또 한 가지 다윗은 자신이 깨닫지 못했던 것을 깨달았을 때, 신속하게 변화된 삶을 가졌습니다. 그는 밧세바가 전해 준 소식을 받았고, 더불어 선지자 다난을 통해 주신 소식을 들였습니다. 자신이 잘못된 삶을 기도하면서 수정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을 자신의 후계자로 삼겠다고 약속한 것이 기억이 났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다시 밧세바에게 약속합니다. 밧세바는 크게 절하며 감사의 표시를 합니다(31).

잘못된 것은 가급적이면 빨리 고치는 것이 좋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깨닫는 대로 즉시 시행해야 합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나단의 지적을 받은 다윗은 지체하지 않고 자신의 약속에 대한 책임을 다합니다. 즉시 그 약속을 시행했습니다. 나단은 질문을 통해 다윗의 스스로 체면을 세울 기회를 주었습니다. 다윗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 스스로 잘못된 일들을 인정해야할 것은 인정하시길 바랍니다.

 

왕위 즉위 절차를 세운 다윗(32-35)

다윗은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기 위한 구체적인 명령을 실시합니다. 다윗은 왕권을 솔로몬에게 계승하기 위해 성전의 재료들을 다 준비했었습니다. 자신의 것을 하나씩 포기하기 시작합니다.

32다윗왕이 가로되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내 앞으로 부르라 하니 저희가 왕 앞에 이른지라 33왕이 저희에게 이르되 너희는 너희 주의 신복들을 데리고 내 아들 솔로몬을 나의 노새에 태우고 기혼으로 인도하여 내려가고 34거기서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은 저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을 삼고 너희는 양각을 불며 솔로몬왕 만세를 부르고 35저를 따라 올라오라 저가 와서 내 위에 앉아 나를 대신하여 왕이 되리라 내가 저를 세워 이스라엘과 유다의 주권자가 되게 하기로 작정하였느니라(32-35)

이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 다윗은 문제를 즉각 해결하려고 사독(제사장), 나단(예언자), 브나야(장군)를 부릅니다. 그들에게 솔로몬을 왕으로 승계하기 위한 명령을 내립니다. 다윗은 신하들에게 명하여, 왕의 권위를 상징하는 다윗의 노새를 솔로몬에게 내어줍니다. 이 왕의 노새에 태워 기혼으로 내려가 그곳에서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고, 뿔나팔을 불며 공포하며 솔로몬 왕 만세를 외치도록 합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솔로몬이 왕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한마디로 솔로몬을 데려가 공개적이고 공식적으로 왕위 즉위식을 거행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다윗 왕이 분부한 대로 즉위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을 보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도 새로운 왕이 된 솔로몬을 왕으로 맞이하면서 만세를 부릅니다. 그들은 나팔을 불며 크게 기뻐했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도니야를 왕으로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는 의미입니다. 외모는 훌륭해 보인데, 평상시 행동에서 왕답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복을 누릴 사람들은 평상시 행동을 복되게 살아가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모습 속에서 ‘그 사람은 그 복을 당연히 받아야 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인정받길 바랍니다.

다윗은 솔로몬이 자신의 뒤를 이어 왕이 될 것임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아도니야가 왕이 되는 것이 대세였는데, 순식간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이 뜻하신 대로 솔로몬이 왕이 되었습니다.

 

왕위에 오른 솔로몬(36-39)

늙은 다윗이 솔로몬을 왕으로 추대하기 위한 사람들을 부른데 그들의 특징이 있습니다. 그들의 일반적인 특징은 하나님께 자신들과 함께 하시면 아무런 문제없이 일이 진행될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을 살펴보겠습니다.

36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왕께 대답하여 가로되 아멘 내 주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도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원하오며 37또 여호와께서 내 주 왕과 함께 계심 같이 솔로몬과 함께 계셔서 그 위를 내 주 다윗왕의 위보다 더 크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라 38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그렛 사람과 블렛 사람이 내려가서 솔로몬을 다윗왕의 노새에 태우고 인도하여 기혼으로 가서 39제사장 사독이 성막 가운데서 기름 뿔을 가져다가 솔로몬에게 기름을 부으니 이에 양각을 불고 모든 백성이 솔로몬왕 만세를 부르니라(36-39)

다윗은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는 일을 도울 충성스러운 신하들을 불렀습니다. 그들은 제사장 사독과 선지자 나단, 그리고 군대 장관 브나야였습니다. 그들이 솔로몬을 왕으로 등극하는데 최선을 다할 것을 확신합니다. 다윗은 그들이 중심이 되어 솔로몬을 왕으로 기름 붓는 행사를 주관하도록 했습니다.

그들은 다윗에게 순종합니다. 특히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다윗의 명령에 ‘아멘’이라고 화답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옳은 일이라고 하면 연합하여 순종하는 ‘아멘’의 삶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사용하십니다. 이러한 순종의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어려운 과정 속에서도 하나님의 일을 성취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다윗이 부른 신하들이 대세를 거스르고 다윗의 명령에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이 있습니다. 순종할 수 있는 것은 “여호와께서 내 주 왕과 함께 계심 같이 솔로몬과 함께 계셔서 그 위를 내 주 다윗왕의 위보다 더 크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고백합니다. 그들은 분위기나 여론에 따라 모인 것이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의 뜻에 따라 모인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자신들에게 다윗 왕이 명령한 것들도 하나님께로부터 온 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솔로몬이 위대한 왕이 되기에 합당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독과 나단 그리고 브나야가 솔로몬을 위해 연합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연합한 사람들입니다. 당시에 분위기나 여론으로 아도니야 쪽으로 가는 것이 맞습니다. 이 사람들은 그것을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움직이고, 그것을 위해서 연합한 집단입니다. 사람의 분위기 따라 연합하지 않도록 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연합한 공동체가 되길 바랍니다. 우리 시대에 진정한 ‘의의 연합’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들은 언약 가운데 함께하신 하나님 때문에 다윗도 축복할 수 있었습니다 솔로몬도 축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본 것은 사람이 아니라 다윗과 솔로몬 뒤에 계시는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다.

한편 반대로 하나님보다 자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아도니야처럼 스스로 높아져서 자신을 위하여 자신을 칭찬하는 사람을 모으는 사람들, 끝없이 자신을 칭찬하는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드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자신의 삶의 주인이며, 어느 누구보다 자신이 매우 중요하다가 느끼는 사람, 그런 사람들의 특징은 남을 축복해줄 수 없습니다. 자신이 주인공이며 자신이 스포트라이트(spot-light)’를 다 받아야 하는데 하면서 자신만을 중심으로 살기 때문에 남을 축복해 줄 수 없습니다. 또 이들 가운데서는 이 솔로몬과 다윗처럼 평화적 정권교체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이 특징입니다. 바로 압살롬과 아도니야처럼 다윗 몰래 자신이 왕권을 가지고자 했던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이루어지는 현장에서는 다윗의 말한 절차를 그대로 따라 솔로몬에게 기름을 붓고 그를 왕으로 세웁니다. 모든 백성들은 기쁨 속에서 ‘솔로몬 왕 만세!’를 외칩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닙니다. 자연스럽게 백성들 안에서 울려 나오는 외침입니다. 이런 명령을 받은 브나야는 다윗과 함께하신 하나님이 솔로몬과도 그가 앞으로 솔로몬을 왕으로 잘 섬길 것이라는 다짐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브나야는 다윗을 찬양하고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복 주시기를 빕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을 주관하시며 이루시는 분입니다. 사람들에게는 아도니야가 왕이 될 것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은 다윗을 통해 약속하신 대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셨습니다. 도저히 안 될 것 같고 어려워 보여도 결국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모든 일을 너무 서두르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짐을 믿어야 합니다. 약속이 성취되기까지 인내하며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다윗과 다윗의 신하들은 상황을 믿지 않고 하나님의 약속만 믿었습니다. 그리고 대세가 아도니야에게 기우러진 상황이지만 상황을 보지 않고 순종해야 합니다. 정말 우리도 그런 모습을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의 모습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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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1-02)


음모를 이길 지혜로운 계획

열왕기상 1장 11-27절


우리는 살아가면서 ‘조언자’, ‘상담자’ 그리고 ‘올바른 훈계를 해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조언(助言)’이란 ‘말로 거들거나 깨우쳐 주어서 도움’을 뜻합니다. 한 분야의 전문가나 대가들의 조언은 큰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그 조언을 받아들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날은 이러한 사람들을 ‘맨토(manto)’라고 말합니다. 당신이 힘들 때 찾아갈 수 있는 사람, 당신이 잘못 가고 있을 때, ‘잘못 가고 있다.’고 말해줄 수 있는 사랑의 조언자가 있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입니다. 사실 어느 때는 마음이 상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 조언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다윗이 늙은 후에 이제 다윗은 다음으로 왕을 계승할 사람을 세워야 시기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욕심 많은 아도니야가 하나님의 뜻이 아닌 스스로 왕이 되려고 했습니다. 그의 야망과 계교를 나타냈습니다. 이것을 안 선지자 나단은 밧세바와 함께 다윗 왕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립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도록 설득해 나갑니다.

 

나단이 밧세바에게 조언(11-14)

하나님의 뜻은 때로는 사람들의 기대와 다릅니다. 역사는 왕위가 당연히 자신에게 주어질 것이라는 아도니야의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을 살펴보겠습니다.

11나단이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고하여 가로되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왕이 됨을 듣지 못하였나이까 우리 주 다윗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12이제 나로 당신의 생명과 당신의 아들 솔로몬의 생명 구원할 계교 베풀기를 허락하소서 13당신은 다윗왕 앞에 들어가서 고하기를 내 주 왕이여 전에 왕이 계집종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정녕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위에 앉으리라 하지 아니하셨나이까 그런데 아도니야가 무슨 연고로 왕이 되었나이까 하소서 14당신이 거기서 왕과 말씀할 때에 나도 이어 들어가서 당신의 말씀을 증거하리이다(11-14)

인간의 야망으로 스스로 왕이 되기 위한 아도니야의 음모는 음밀한 가운데 진행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가만히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여금 악한 아도니야의 방법을 막으십니다. 그래서 아도니야의 음모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것을 막으려는 하나님의 은밀한 역사도 같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선지자 나단은 지혜롭게 일을 처리해 나가고 있습니다.

선지자 나단은 다윗이 밧세바와 함께 범죄 했을 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찾아와 다윗에게 죄를 지적했던 선지자입니다. 나단의 지적을 듣고 울며 회개했던 다윗, 그는 나단에게 아픔도 있었지만, 그것을 인하여 자신의 죄된 모습을 바라볼 수 있는 고마운 조언자이기도 합니다. 지금은 다윗이 늙어서 침상에 누어있을 때, 밖에서 일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선지자 나단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먼저 선지자 다난은 아도니야의 음모를 다윗에게 성급하게 공개하지 않습니다. 사태가 심각하고 다급했지만, 효과적으로 설득하기 위해 지혜로운 방법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문제를 공개하는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일을 잘 진행할 수 있도록 만드는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지혜로운 사람들은 일을 성취시켜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는 일에 대한 순서를 정했습니다. 먼저 다윗을 돕기 위해서 다윗의 아내 밧세바에게 알리고, 다음으로 밧세바가 다윗에게 찾아가서 알리도록 합니다. 마지막으로 다윗이 문제를 듣고 충격을 받았을 때, 다난이 다윗에게 가서 일을 확정 시키기로 합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사람은 일을 이루어 감에 있어서도 탁월한 지략을 발휘해 나가고 있습니다. 나단의 주장은 지극히 자기 개인적인 것 같습니다. 아도니야 잔치에 자기를 부르지 않아서 화난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그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뜻은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고자 하는 계획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진행할 사람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나단은 이전에 다윗이 여호와의 이름을 걸고 밧세바에게 맹세한 것을 기억하도록 만듭니다. 이 약속은 사람들과의 약속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으로 약속한 것이라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다윗은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침상에 누어있는 연약한 모습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야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후계자를 세워놓지 않고 죽으면, 이스라엘은 큰 어려움의 소용돌이에 휩싸입니다. 이 일을 이루어갈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실제적으로 다윗에게 나가서 말할 밧세바도 필요하고, 지원한 나단도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나단과 밧세바는 먼저 밧세바가 겸손하게 다윗 왕에게 나아가 전해 약속한 맹세를 상기시키고, 그 후에 나단이 왕을 찾아가 이를 확증하기로 계획합니다.

어떤 일을 성취해 나감에 있어서 옳고 그름이나 대의명분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어떻게 지혜롭게 성취해 나가는 방법론이 더 중요합니다. 때로는 대의명분은 좋지만 지혜로운 방법이 없이 순진한 발상에 문제를 한꺼번에 터뜨리므로 더 큰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경우를 봅니다.

다른 사람들의 조언(助言)을 잘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밧세바는 하나님의 사람 나단의 조언을 듣고 나단이 지시한 대로 순종했습니다. 그 결과 솔로몬이 안전하게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당신은 주변 사람들의 조언에 어떻게 반응합니까? 특별히 당신을 위해 기도하는 부모님과 영적 지도자들의 조언을 잘 듣고 순종하시길 바랍니다.

 

솔로몬을 향한 밧세바의 간청(15-21)

믿음의 사람들은 때로는 아무런 소망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약속 하나만 붙잡고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해야 할 상황이 있습니다. 그때는 상황을 보지 않고 약속을 붙잡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루어 가실 것입니다. 밧세바는 하나님의 약속만 의지하고 나갑니다.

15밧세바가 이에 침실에 들어가 왕에게 이르니 왕이 심히 늙었으므로 수넴 여자 아비삭이 시종하였더라 16밧세바가 몸을 굽혀 왕께 절하니 왕이 이르되 어찜이냐 17저가 왕께 대답하되 내 주여 왕이 전에 왕의 하나님 여호와를 가리켜 계집종에게 맹세하시기를 네 아들 솔로몬이 정녕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위에 앉으리라 하셨거늘 18이제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어도 내 주 왕은 알지 못하시나이다 19저가 수소와 살찐 송아지와 양을 많이 잡고 왕의 모든 아들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군대장관 요압을 청하였으나 왕의 종 솔로몬은 청치 아니하였나이다(15-19)

다윗의 아내 밧세바는 나단의 조언에 따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밧세바는 다른 사람 말만 듣고 행하진 않습니다. 그녀는 나단의 말만을 가지고 나가기보다 더 섬세하게 잘 준비하여 다윗을 만납니다. 그녀는 다윗을 만나서 다윗의 신복이었던 요담과 아도니야, 그리고 제사장 아비야달 등이 아도니야와 함께 스스로 만든 왕 즉위식으로 왕이 되면, 이제 자신과 솔로몬은 그들에 의해 죽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또한 나단처럼 다윗이 예전에 하나님의 이름으로 솔로몬을 왕으로 세울 것이라는 맹세했던 것을 상기시킵니다. 아도니야는 다음을 결정할 권한이 다윗 왕에게 있음을 부인하지만 백성들은 인정하고 있다는 것도 알려줍니다. 당신의 존재는 당신의 행동 하나로서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고 솔직하게 이야기 합니다. 그리고 지금 무엇을 결정해야 되는지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왕이 되지 않고 아도니야가 왕이 된다면, 밧세바 자신과 솔로몬은 반역자가 되어 죽을 것이라고 하여 다윗의 동정심을 자극합니다. 그래서 속히 결정하도록 효과적으로 재촉합니다.

어려움이나 중대한 결정 앞에 서 있거든, 밧세바처럼 말씀과 기도 가운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구하며 담대하게 순종합시다.

내 주 왕이여 온 이스라엘이 왕에게 다 주목하고 누가 내 주 왕을 이어 그 위에 앉을 것을 반포하시기를 기다리나이다 21그렇지 아니하면 내 주 왕께서 그 열조와 함께 잘 때에 나와 내 아들 솔로몬은 죄인이 되리이다(20-21)

밧세바는 솔직하게 다윗에서 ‘당신이 죽고 나면 이제 문제가 시작될 것입니다.’하고 상황을 설명합니다. 어느 때는 솔직한 표현이 가장 정직하게 다가갈 수 있습니다. 간접적으로 돌려 말하기 보다는 솔직하게 상황을 이야기할 때, 다윗은 상황을 새롭게 다시 판단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바른 조언해 줄 수 있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당신을 사랑하는 자가 당신에게 그런 조언을 할 때에 그것을 기쁨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받아들이는 성숙함이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우선하는 사람을 통해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나단은 대세가 기울어진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아도니야가 왕이 되려는 것을 막았습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뜻과 주변 상황 중 무엇을 우선합니까?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일들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일입니까?

 

다윗에게 사실을 알리는 나단(22-27)

아무리 좋은 말이라도 좋은 시기가 있습니다. 조언을 할 때도 때를 잘보고 말해야 합니다. 대화의 법칙에는 말할 때 말하고 기다릴 때 기다려야 하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22아밧세바가 왕과 말씀할 때에 선지자 나단이 들어온지라 23혹이 왕께 고하여 가로되 선지자 나단이 여기 있나이다 하니 저가 왕 앞에 들어와서 얼굴을 땅에 대어 왕께 절하고 24가로되 내 주 왕께서 이르시기를 아도니야가 나를 이어 왕이 되어 내 위에 앉으리라 하셨나이까 25저가 오늘 내려가서 수소와 살찐 송아지와 양을 많이 잡고 왕의 모든 아들과 군대 장관들과 제사장 아비아달을 청하였는데 저희가 아도니야 앞에서 먹고 마시며 아도니야왕 만세를 불렀나이다 26그러나 왕의 종 나와 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왕의 종 솔로몬은 청치 아니하였사오니 27이것이 내 주 왕의 하신 일이니이까 그런데 왕께서 내 주 왕을 이어 그 위에 앉을 자를 종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나이다(22-27)

밧세바는 다윗을 찾아가서 아도니야가 왕이 되어져 가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가 끝날 쯤에 선지자 나단이 들어갑니다. 이어 선지자 나단이 들어와 아도니야가 지금 벌이고 있는 일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다윗 앞에 겸손하면서도 단호하게, 상세하면서도 지혜롭게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알려줍니다. 다윗 왕의 허락도 없이 아도니야가 왕이 되었다는 것을 돌려 말함으로써 왕의 결단을 요청한 것입니다.

선지자 나단과 아도니야의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아도니야는 늙은 아비 다윗을 찾아가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미 스스로 왕이라고 생각하고 사람들을 모아서 왕위 계승을 축하 잔치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도니야가 특근들과 잔치를 벌이는 것을 볼 때, 누구나 다 이미 전세가 기울었다고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 대해 선지자 나단은 냉철한 분별력을 가지고 판단합니다. 나단을 알고 있었습니다. 늙은 다윗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를 통해서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래서 다윗을 찾아가는 모습은 지혜로운 방법이 아닐 수 없습니다. 참된 선지자는 공동체의 모든 상황을 분별력을 가지고 볼 수 있는 사람입니다. 아울러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바로 볼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선지자 나단은 상황을 잡지 않고 언약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는 직접 다윗 앞에 나아가 아도니야가 벌이는 헛된 잔치에 대해 자세히 언급하고 그것이 왕이 허락한 일인지를 당당하게 묻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윗에게 언약을 상기시키기 위함입니다. 또 다윗이 이 일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11), 다윗이 추인한 것처럼 말하여 정서를 자극함으로써 즉각적인 대응을 이끌어냅니다. 역대상 22장 9절에 “한 아들이 네게서 나리니 저는 평강의 사람이라 내가 저로 사면 모든 대적에게서 평강하게 하리라 그 이름을 솔로몬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저의 생전에 평안과 안정을 이스라엘에게 줄 것임이니라”고, 하나님께서는 이미 솔로몬이 왕이 될 것을 예언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고 그 말씀이 이미 이루어질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다윗을 찾아가 솔로몬이 왕이 되어야 된다는 것을 한 번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나단은 또 다윗이 이 땅을 떠나기 전에 할 일이 있다는 것을 일깨워 주고 있습니다. 늙었다고 침대에 누어있을 때가 아니라 마지막을 할 일이 있다고 그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당신이 죽으면 혼란이 오기 때문에 일어나서 이 문제를 해결하라고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마지막 사명을 이 땅에서 감당하라는 그런 충고를 아끼지 않습니다.

지도자들에게 꼭 필요한 것들은 말과 용기 그리고 분별력 등입니다. 지도자들은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어느 때는 죽을 수도 있고, 두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임했을 때에 그것을 담대하게 지키며, 그것을 잡으며, 그것을 가지고 용기 있게 나가는 그런 믿음이 우리 지도자들에게 필요합니다. 우리는 나단처럼 다윗 왕에게 담대하게 나가서 그를 이르켜 세우고 당신이 이제 마무리를 잘해야 합니다. 그렇게 외칠 수 있는 귀한 믿음이 있는 사람들이 되길 간절히 소원합니다.

나단의 이러한 활동의 결과 다윗은 솔로몬이 후대 왕이 될 것을 공포합니다. 아도니야가 왕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다고 여긴 그는 밧세바로 하여금 다윗 왕을 설득해 솔로몬을 왕으로 세우게 했습니다.


선지자 나단이 다윗을 찾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켰듯이, 당신에게도 그런 좋은 조언자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당신이 나단과 같은 좋은 조언자가 되길 바랍니다. 이웃을 일으켜 세울 수 있는 능력이 있길 바랍니다. 모든 일은 결국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루어질 것을 믿어야 합니다. 좋은 조언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동합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은 지혜와 담대함 그리고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것들은 말씀과 기도를 통해 얻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함으로 선지자 나단과 같은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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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1-01)


늙은 다윗의 생활과 상황

열왕기상 1장 1-10절


일이 진행되어 가는 결정적인 형세를 일컬어 ‘대세(大勢)’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세를 따릅니다. 그 이유는 대세는 유행과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익이 되면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유익이 없으면 썰물처럼 빠져 나갑니다. 모든 것이 눈으로 보인 대로 이루어질 것 같으니깐 따르는 것입니다. 진정한 대세는 눈에 보아는 사람의 수나 세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대세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열왕기는 다윗의 노년기로부터 시작하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늙어서 왕위를 다음 왕을 계승될 시기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늙어서 신체적인 능력과 함께 아버지와 왕으로서 권위도 점점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주 무기력한 모습을 봅니다. 이것은 아들 아도니야는 자신만만하고 거칠 것 없는 모습과 대조적입니다. 그 틈을 타서 아도니야는 솔로몬을 따돌리고 왕이 되려 합니다. 계속해서 이스라엘 역사가 진행될 배경으로 제시합니다.

 

말년의 노쇠한 다윗(1-4)

 

인생의 마지막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믿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노년에는 점점 정신이 희미해져서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예배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노년에는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법칙이 있습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다 아는 사실이 있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다윗도 하나님의 자연법칙에 따라 나이가 많아 늙었습니다. 다윗 노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다윗 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2그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저로 왕을 모셔 봉양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3이스라엘 사방 경내에 아리따운 동녀를 구하다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4이 동녀는 심히 아리따운 자라 저가 왕을 봉양하며 수종하였으나 왕이 더불어 동침하지 아니하였더라(1-4)

용맹하게 세상을 누볐던 이스라엘 왕이었던 다윗이 70세의 노년의 초란한 모습을 봅니다. 골리앗을 이긴 맹장이요, 이스라엘을 하나로 통일시킨 위대한 왕의 면모를 떠나서, 이제 자기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늙은 사자와 같은 모습입니다. 늙은 다윗은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늙었습니다. 그의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낸 해결책이 있습니다. 다윗의 몸을 따뜻하게 하고 기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젊은 여인과 동침하도록 계획을 세웠습니다. 전 이스라엘을 돌아다니면 그에 합당한 여인을 찾았습니다. 그 젊은 아이의 이름은 ‘아비삭(Abishag)’라는 여인에게 시중을 받게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늙은 다윗에게 필요한 것은 젊은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가기 전까지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영적 도우미, 호스피스(hospice)들입니다.

이러한 상황들은 이제 이스라엘에 다윗 왕을 계승할 새로운 왕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제 왕위를 아들에게 넘겨줄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일평생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던 그였지만, 이제 너무 늙어서 기력이 없어진 것입니다. 다윗의 죽음이 점점 다가오면서 권력 이동이 진행됩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항상 기억해야할 엄연한 사실 하나를 일깨워 줍니다. 그것은 모두가 늙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 것들은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언젠가 다윗처럼 늙어 육신의 기력이 쇠하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움켜진 재물이나 지식, 악착같이 챙기는 건강도 모두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날이 이르기 전에 당신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감사하며, 더욱 열심히 주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주님 앞에 서는 날에 칭찬 받길 원합니다.

 

스스로 왕이 된 아도니아(5-6)

이스라엘에는 누가 왕위를 계승할 것인가는 모든 백성들의 관심사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다윗의 아들들 중에 제일 연장자인 아도니야는 당연히 자신이 왕위를 승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왕이 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5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전배 오십인을 예비하니 6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5-6)

아다니야는 다윗의 넷째 아들로서 살아있는 아들 중 가장 장자였습니다(삼하 3:2-5). 얼굴도 잘 행기도 키도 훤칠한 모습은 외모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첫 왕인 사올처럼 왕으로서 손색이 없었습니다. 아도니아 자신도 충분히 왕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높여 ‘내가 왕이 되리라’고 자신만만했습니다. 하지만 열왕기를 기록한 저자는 아도니야가 외모와 더불어 여러모로 압살롬처럼 부족한 것이 없지만(삼하 14:25; 15:1), 결과도 압살롬처럼 비참한 결과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가 압살롬처럼 멸망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증거는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6b)고 그의 성장 배경을 설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버릇없이 성장했다는 말입니다. 아도니야의 건방진 태도는 자식을 잘못 훈계한 다윗의 책임이기도 했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울 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도 외모적으로 다윗이 아닌 다윗의 형 엘리압을 보고 왕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군으로서 자격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또 한 가지를 살펴볼 수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녀들에게 대한 교육 문제입니다. 자녀를 교육하는 것은 부모들의 가치관으로 가르칩니다. 하지만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키운다고 잘못함에도 매를 아껴서 자녀들을 버릇없고 권위를 우습게 여기는 아이로 성장시키진 않습니까? 잠언에서 자녀들의 교훈에 대한 진리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잠언 기자는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 13:24)라고 하였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잠 23:13)고 하였습니다. 자녀를 키울 때는 하나님의 훈계와 사랑으로 아이를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성장하면서 아이의 기를 살려준다고 생각해서 기를 살려 놓으니깐, 나중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기로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음을 말씀을 통하여 배우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버릇없이 성장하면, 하나님을 버릇없이 대하게 행동합니다.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계를 받지 않고 자랄 때 본문에서 나타나는 증상들이 있습니다. 첫째 증상은 ‘스스로 높여서’(5)라는 증상입니다. 아도니야가 자신을 스스로 높여서,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자신이 너무 중요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먼저 해야만 됩니다. 이런 것들이 스스로 높여서 교만스러운 반응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다음 증상은 ‘자기를 위하여’(5)에 기록되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자신이 늘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조연(엑스트라)은 싫어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언제나 자신이 주인공 되어서 다른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시기와 질투로 사람들을 대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파괴시킵니다. 그런 잘못된 특징들이 있습니다.

다윗의 대내외적으로 큰 성공을 이룬 사람이었습니다. 자녀들의 교육에는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 성공을 이루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 성공을 이루었지만, 자녀교육에는 소홀하면서 잘못한 자녀를 말슴으로 바르게 교육하지 않으면, 아도니야처럼 버릇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 자녀는 당신의 노년을 힘들게 할지도 모릅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바른 하나님의 말씀과 바른 생활에 대해 가르쳐 나가길 바랍니다.

 

양분되는 다윗의 신하들(7-10)

이미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왕권을 계승한다고 언약하셨습니다. 아도니야도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계속 자신의 고집대로 잘못된 행동하는 아도니야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7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저희가 좇아 도우나 8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에게 속한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9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돌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복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10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7-10)

다윗의 신하들은 득세하고 있는 아도니야 앞에서 그를 중심으로 양분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힘의 세력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끝까지 다윗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로 나누어졌습니다.

아도니아는 세력을 과시해서 왕위로 등극하기 위한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측근들을 모으고 스스로 왕이 되는 잔치 자리에 초청했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옛 군대장관 요압과 종교의 최고 지도자인 아비아달 제사장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 잔치에 솔로몬의 이름을 뺐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세우고자 하는 것을 자신은 반대하는 것을 의미입니다. 그것은 아버지 다윗을 행한 반역이요, 또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도니야가 양분 시킨 사람들을 구분해보면,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은 아도니야를 추종했지만, 제사장 사독과 브나야와 나단과 몇몇 용사들을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그들을 솔로몬과 함께 초청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반역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편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람들을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분열을 만듭니다.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모으게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공동체가 분열되어집니다. 시기와 질투가 판칩니다. 그는 자신이 왕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기초로 인생의 미래를 펼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측근들을 모아 놓고 왕이 될 모의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자신이 지도자로 섰을 때에 자신을 돕고 지지하도록 만듭니다. 군중 심리를 통해 개인의 의사는 무시되어버리고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도록 미혹하고 자신의 편을 만듭니다.

아도니야가 왕으로 세움을 입는 것이 대세인 것처럼 보이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함께 동참해야할 명단 중에 중요한 분이 빠져있습니다. 그분을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빠져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편일 때에 그 전쟁은 승리합니다. 사람들의 이름이 아무리 많아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아도니야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배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편에 서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고 속상해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내 편인가를 체크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동조하고 당신이 옳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지 않으시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삶의 명단에 하나님의 이름이 초청의 대상이 되길 바랍니다.

아도니야가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잊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무엇인가 이익이 되는 동안만 지지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먹을 것이 없으면 냉철하게 떠난다는 사실을 망각했습니다.

종종 신분이나 수요를 기반으로 스스로 교만하여, 다른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려고 합니다. 이런 것들로 자신의 미래를 펼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정말 잘못된 오산입니다. 왕을 세우는 분은 하나님임에도 불구하고 아도니야는 마치 자신이 왕이 된 것처럼 행세를 했습니다. 교만은 파멸을 앞당기고 패망의 선봉장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왕으로 고백하고 섬기고 살아가면서도 당신이 왕인 것처럼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강한 편이 아니라 옳은 편에 서야 합니다. 아도니야가 왕이 될 것처럼 보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아도니야의 편에 섰지만,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어느 한 편을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혹시 하나님의 뜻은 저버리고 무조건 강한 편, 다수의 편에 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옳은 편에 서길 원하십니다. 항상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는 겸손한 믿음과 영적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


왕이신 하나님을 높이며 겸손하면서 당당하게 하나님의 편에 서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항상 겸손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아도니야를 보면서 스스로 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을 인식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 날에 받을 상급을 기대함으로 오늘을 사는 겸손한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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