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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2-03)

 


아비의 충고를 따르는 지혜자

열왕기상 226-35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서 심는 데로 거둔다!’자업자득(自業自得)’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들은 참 두려운 말입니다. 어떤 행동을 한 것에 대한 결과의 책임을 자신이 감당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본문의 아비아달을 보면서 그 말이 맞다는 것을 다시 생각합니다.

 

이복형인 아도니야가 다시 왕권을 차지하기 위해 음흉한 음모를 꾸미다가 솔로몬에 의해 발각되어 제거되었습니다. 이어 본문에는 아도니야의 반란 음모에 가담했던 제사장 아비아달과 군대 장관 요압을 솔로몬이 숙정한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관계를 정리하는 지혜:제사장 아비아달의 파면(26-27)

왕위에 오른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유언대로 지혜롭게 관계를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왕권을 세워가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사람들과 왕권을 세우는 사람들을 분리하기 시작합니다. 그 첫 대상들은 솔로몬이 왕이 되는데 반대하고 아도니야를 왕으로 세우려고 했던 사람들이 대상입니다. 그가 먼저 제거한 인물이 누구입니까?

26왕이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네 고향 아나돗으로 가라 너는 마땅히 죽을 자로되 네가 내 부친 다윗 앞에서 주 여호와의 궤를 메었고 또 내 부친이 모든 환난을 받을 때에 너도 환난을 받았은즉 내가 오늘날 너를 죽이지 아니하노라 하고 27아비아달을 쫓아내어 여호와의 제사장 직분을 파면하니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함이더라(26-27)

솔로몬은 아도니야의 측근인 제사장 아비아달과 군사령관 요압까지 제거합니다(26-34). 그는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구한 것을 반역으로 간주했고, 이 일에 아비아달과 요압의 공모 가능성을 의심했습니다(22). 이야기 전개상 아도니야 사건 직후에 이들의 숙청이 기록되어 두 사건의 연관성이 암시되었습니다. 다만 아도니야 사건처럼 모의의 진위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아 솔로몬의 처사가 정당했는지 의구심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결과적으로는 아도니야와 그 측근이 제거됨으로써 장래의 역모 가능성이 미연에 방지되었고, 요압의 처단을 명한 다윗의 유언이 실현되었습니다. 솔로몬은 먼저 아비아달을 파면하고 고향 아나돗으로 추방하여 그의 종교적 영향력을 차단합니다. 그는 마땅히 죽을 자”(‘죽음의 사람’)이지만 솔로몬은 오늘 죽이지는 않겠다고 선언합니다(26). 그의 죄목에는 다윗을 배반하고 아도니야와 역모를 꾸민 일(1:7)이 분명하게 암시됩니다. 이번에 아도니야 사건에 개입했는지, 파면하는 공식 죄목이 무엇인지는 설명되고 있지 않습니다. 도리어 저자는 아비아달이 목숨을 보전한 이유를 밝힙니다. 첫째, 그는 다윗을 섬기며 여호와의 궤를 메었던 충실한 제사장이었습니다. 법궤를 옮긴 일은 제사장직의 대표성을 띄어 율법에 순종했음을 암시합니다. “다윗 앞에서”(26)라는 표현은 다윗에 대한 충성을 시사합니다. 그는 압살롬의 반역 때에도 법궤를 간수했고 다윗의 명을 따랐습니다(삼하 15:24-29). 둘째, 아비아달은 다윗의 고난에 참예한 헌신적인 신하였습니다. 사울을 피해 도망 다니던 다윗은 아비아달의 아버지이자 놉의 제사장이었던 아히멜렉에게 찾아왔고, 그는 자초지종도 모른 채 다윗을 도왔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이 일을 반역으로 몰아 아히멜렉과 놉의 제사장 85명과 주민 및 가축까지 진멸했습니다(삼상 22). 이때 유일하게 생존한 아비아달은 다윗에게 합류한다. 다윗은 자기 탓에 아히멜렉과 놉 주민이 목숨을 잃었음을 통탄했다(삼상 22:22). 아비아달도 다윗이 원망스럽기도 했겠지만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는 내내 도왔고(삼상 23:6; 30:7), 압살롬에게 쫓길 때에도 사독과 함께 다윗을 위해 첩자가 되어 그의 안전을 도모했다(삼하 15:36; 17:15). 그러나 다윗의 노년에 아비아달은 그를 배반하고 아도니야를 따랐고, 그 때문에 오늘 솔로몬에 의해 제사장직을 잃게 되었다. 한편, 그의 파직은 개인적 몰락만을 뜻하지 않는다. 조상 엘리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실현된 사건이기도 하다. 제사장은 레위인 중 아론의 자손에게만 위임되는 특별한 직분이다. 그런데 아론의 네 아들 중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가 명하지 않은 다른 불을 분향하여 죽게 됨으로써 (10:1-2) 엘르아살과 이다말 자손만이 제사장직을 맡아왔다. 세월이 흘러 사무엘 시대의 엘리 제사장이 이다말의 자손이었다. 당시 그의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직분을 망각한 채 제사를 업신여기고 성소 봉사자 여인들과 동침하는 등 온갖 죄를 저질렀다. 엘리는 그들을 말로만 꾸짖었고, 그들은 훈계를 귀담아듣지 않았다(삼상 2:12-25). 하나님은 엘리와 아들들의 행위가 하나님을 멸시하는 악행임을 지적하며 엘리 가문의 몰락과 직분의 박탈을 예고하셨다(삼상 2:27-34). 결국 홉니와 비느하스는 블레셋 전투에서 죽었고, 그 소식을 전해 듣던 엘리도 즉사했다(삼상 4:11, 1822). 이후에 벌어진 엘리 집안 사건이 바로 아히멜렉을 포함한 놉의 살육 사건이다. 이제 아비아달까지 파면됨으로써 엘리 집안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약속은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결코 잊히지 않았으며, 하나님의 주권적인 계획과 섭리 아래 성취되고 있다. 이후로는 엘르아살의 자손인 사독 계열이 제사장 직을 담당하게 됩니다(35; 43:19).

 

관계를 끊을 줄 아는 지혜:군사령관 요압의 처형(28-34)

우리의 인생입니다. 자신이 아무리 잘 나가고 모든 권력을 가진 것 같지만, 어느 날 죽음 앞에서, 또는 위험한 환경 앞에서 하나님 앞에 도망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28그 소문이 요압에게 들리매 저가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뿔을 잡으니 이는 저가 다윗을 떠나 압살롬을 좇지 아니하였으나 아도니야를 좇았음이더라 29혹이 솔로몬왕에게 고하되 요압이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단 곁에 있나이다 솔로몬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며 가로되 너는 가서 저를 치라 30브나야가 여호와의 장막에 이르러 저에게 이르되 왕께서 나오라 하시느니라 저가 대답하되 아니라 내가 여기서 죽겠노라 브나야가 돌아가서 왕께 고하여 가로되 요압이 이리이리 내게 대답하더이다 31왕이 이르되 저의 말과 같이 하여 저를 죽여 묻으라 요압이 까닭 없이 흘린 피를 나와 내 부친의 집에서 네가 제하리라 32여호와께서 요압의 피를 그 머리로 돌려 보내실 것은 저가 자기보다 의롭고 선한 두 사람을 쳤음이니 곧 이스라엘 군대장관 넬의 아들 아브넬과 유다 군대장관 예델의 아들 아마사를 칼로 죽였음이라 이 일을 내 부친 다윗은 알지 못하셨나니 33저희의 피는 영영히 요압의 머리와 그 자손의 머리로 돌아 갈찌라도 다윗과 그 자손과 그 집과 그 위에는 여호와께로 말미암은 평강이 영원히 있으리라 34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가 곧 올라가서 저를 쳐죽이매 저가 거친 땅에 있는 자기의 집에 매장되니라(28-34)

아비아달이 파면된 후 솔로몬은 지혜대로 행하여 요압을 처리하라고 명한 다윗의 유언(5-6)을 이룹니다. 요압은 아비아달의 소식을 듣고 다음 숙청 차례가 자신임을 직감합니다. 그는 아도니야가 썼던 수법을 좇아(1:50) 여호와의 장막으로 도망하여 제단 뿔을 잡음으로써 아도니야처럼(1:51-53) 목숨을 부지하려 합니다. “제단은 정사각형의 번제단으로 네 모퉁이에 뿔 모양이 달려 있습니다(27:1-8). 속죄 제사를 드릴 때 제물을 잡고 피를 네 뿔에 발랐습니다(29:12; 4). 뿔에 새겨진 예배자의 죄(17:1) 위에 피를 발라 속량한다는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요압은 장막을 도피처로 삼았지만, 그곳은 우발적살인자가 피신하는 곳입니다(35:11-12). 그는 고의로아브넬과 아마사를 죽였으므로, 도피처에 숨어도 목숨을 건질 수 없습니다.

한편 28절은 요압의 피신 이유를 반역에 가담한데서 찾습니다. 다만 압살롬은 따르지 않았지만 아도니야를 따랐다는 설명은 1장의 반역을 가리키므로, 아비아달과 마찬가지로 그가 2장의 아도니야 사건에도 관여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요압이 제단에 피신한 상황은 솔로몬에게 보고되었습니다. 솔로몬은 아도니야 때처럼 군사령관 브나야를 불러 장막으로 가서 요압을 치라고 명합니다(29). 어명에 따라 장막에 간브나야는 요압에게 나오라고 명하지만, 그는 거기서 죽겠다며 거절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둔 거룩한 처소에서 피를 흘리는 일은 삼갔으므로(왕하 11:15) 요압은 이를 악용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요압의 처형에 단호했습니다. 그는 요압의 말을 역이용하여 브나야에게 그를 치고묻으라고 명합니다. 솔로몬은 요압의 죄를 고의적 살인으로 정의하며, 이를 심판하지 않으면 그 책임이 다윗과 자신에게 돌아올 것이라 설명합니다. 요압이 다윗 몰래(32) 두 장수를 죽여 다윗에게 해를 끼쳤고(삼하 3:26-38), 다윗이 왕으로서 피살자들을 신원하고(35:30-31), 살인자를 심판할 의무를 유언으로 솔로몬에게 당부했기 때문입니다(5-6). 브나야가 요압을 처단한 것은 다윗 가문에 임할 피를 제거하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솔로몬은 요압이 그보다 의롭고 선한 아브넬과 아마사를 쳤으므로동등한 피의 형벌을 요압에게 내리는 것이 여호와의 뜻과 심판이라고 주장합니다. 고의적 살인자는 도피처로 도망한다 해도 끌어내어 죽이는 것이 규례이므로(21:12-14; 19:11-13) 솔로몬의 판결은 적법합니다. 이로써 장수들이 흘린 억울한 피값은 요압과 자손에게 영원히 돌아가고, 다윗과 자손, , 왕위는 영원히 평화(샬롬)를 누릴 것입니다. 브나야는 어명대로 요압을 쳐서죽였고, 요압은 광야에 있는 집 매장지에 묻혔습니다. ‘매장은 아도니야나 이후 시므이의 처형에 언급되지 않은 내용으로 요압에게 뭔가 특별한 대우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요압의 처형은 살인의 죗값을 치른 것만 아니라 다윗 집안의 무죄를 확증하고, 다윗의 유언을 이루었으며(6), 요압의 악을 갚아달라고 기도한 다윗(삼하 3:39)에게 하나님의 응답이 되었습니다.

 

새로 임명된 군사령관 브나야와 제사장 사독(35)

하나님 나라는 정의가 서고 율법에 충성하는 자들이 사는 나라입니다. 권력 남용을 경계하되 하늘의 분별을 구하며 단호하게 결단하였습니다. 정의가 서고 율법에 충성하는 자들이 사는 나라를 만들기 원합니다. 솔로몬은 무죄한 피를 흘린 요압의 죄를 물어 죽음을 명령합니다.

35왕이 이에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로 요압을 대신하여 군대장관을 삼고 또 제사장 사독으로 아비아달을 대신하게 하니라(34-35)

솔로몬은 아비아달과 요압의 자리에 사독과 브나야를 세움으로써 왕정을 재정비합니다. 아비아달과 요압은 다윗의 오랜 신하들로서 아도니야의 신복이 되었으나, 제사장 사독과 군대장관 브나야는 예루살렘에서 다윗의 신진 세력이 된 후 압살롬이나 아도니야를 좋지 않고 다윗과 솔로몬에게 충성했습니다. 엘르아살의 후손인 사독은 젊은 용사로서(대상 11:28) 다윗에게 합류했고, 후에 제사장이 되어 기브온의 성막을 담당하고 있었습니다(대상 16:39). 그는 압살롬의 반역 당시 다윗의 정보원으로서 그를 위기에서 구했으며(삼하 15:24-29; 17:15-18:8), 압살롬이 죽은 후에도 유다 백성을 다윗에게 돌아오게 도왔습니다(삼하 19:11-15). 브나야는 여호야다의 아들로서 다윗의 군사령관 열두 명 중 하나이며, 다윗의 군 조직의 셋째 달 반장이자 시위대 장관으로서 사독과 마찬가지로 다윗의 충실한 신하였습니다(삼하 23:20-23; 대상 27:5).


다윗의 나라는 악의 세력에 의해 쉽게 흔들리고 좌초될 수 있는 나라였기에 하나님께서 정한 심판의 방식으로 지켜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칼과 힘으로 세워진다는 뜻은 아닙니다. 죽음의 세력조차 흔들 수 없는 하나님의 주권이 통할 줄 믿고 주께서 주신 자리를 잘 지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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