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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2-04)


처형당하는 시므이

 

열왕기상 236-46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나 같은 죄인도 사랑하십니까?’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 고백을 점점 희미해집니다. ‘나와 같은 의인이 어디 있을까?’라고 이런 생각을 가질 것입니다. 그 다음에는 사람들을 정죄하기 시작합니다. 점점 변화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 주님! 저런 사람도 사랑하십니까?’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모습도 보입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다시 말씀하십니다. ‘네가 죄인이라고 고백했던 첫 사랑을 회복하고, 그 만남의 장소로 다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선지자 나단을 통해 다윗과 하신 약속처럼 솔로몬이 통치한 나라가 점점 튼튼하게 세워집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약속은 인간의 정치적 행동을 가운데 성취합니다. 다윗은 솔로몬에게 제거해야할 세 사람 중 마지막으로 시므이가 어떻게 심판을 해야 할지 말합니다. 시므이는 죽음을 면할 기회를 얻었습니다. 하지만, 여호와 앞에서 솔로몬과 맺은 약속을 가볍게 여겨 어김으로써, 시므이는 준 기회를 스스로 저버리고 죽음을 자초합니다.

 

시므이를 향한 경고(36-38)

성도는 주일이면 교회에서 하나님께 예배 드리고, 세상에 나가서는 삶으로 예배 드리는 사람입니다. 따라서 진정성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아야 합니다. 불법과 편법으로 위기를 넘기고 권모술수로 성공에 이르고자 한다면 결코 예배와 삶이 일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진정성이 없는 사람입니다. 정직하지 않고 진실하지 않은 것은 결코 오래가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르게 됩니다.

36왕이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너는 예루살렘에서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거기서 살고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 37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나가서 기드론 시내를 건너는 날에는 정녕 죽임을 당하리니 네 피가 네 머리로 돌아가리라 38시므이가 왕께 대답하되 이 말씀이 좋사오니 내 주 왕의 말씀대로 종이 그리하겠나이다 하고 이에 날이 오래도록 예루살렘에 머무니라(36-38)

솔로몬은 다윗이 심판하라고 당부한 시므이에 대해 조치를 취합니다. 시므이는 사울의 친족이며 다윗에게 악감을 가졌던 자입니다.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 도망할 때(삼하 16:5-14)와 압살롬이 죽은 후 예루살렘으로 되돌아올 때(삼하 19:15-23) 시므와 다윗은 서로 만납니다. 시므이는 바후림에 사는 베냐민 사람으로 게라의 아들이며 사울의 친척이었습니다. 다윗이 압살롬에게 쫓길 때 다윗과 그를 따르는 무리는 요단강을 건너 동쪽 마하나임으로 피신하려 했습니다. 다윗 무리가 예루살렘에서 나와 바후림에 도달했을 때, 시므이가 나와 다윗과 무리에게 돌을 던졌고 다윗에게 악독한 저주를 퍼부었습니다(삼하 16:5). 그는 다윗이 사울의 집안에 피를 흘려 왕좌를 빼앗았으며, 그 때문에 하나님이 압살롬을 통해 다윗의 나라를 빼앗게 하셨다고 주장했습니다. 시므이의 주장은 억측이고 사울 집안에 대한 화풀이었지만, 다윗은 분개하는 대신 그의 말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으로 겸허히 받아들였습니다. 도리어 시므이를 당장 죽이겠다는 아비새를 꾸짖습니다. 다만 시므이의 악행으로 시련 당하는 자신을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겨 저주를 선으로 바꿔주시기를 고대했습니다. 결국 압살롬의 모반이 실패로 끝나고, 다윗은 왕권을 되찾아 예루살렘으로 향했습니다. 이때 시므이는 발 빠르게 베냐민 사람 천명을 소집하고, 이스라엘의 북부 지파들보다 앞서 요단으로 내려가 다윗을 맞았습니다. 그는 자신의 죄를 인정하며 용서를 빌었고, 당시 유다의 지지만 등에 업었던 다윗은 베냐민과 다른 지파의 지지도 필요했으므로 그를 죽이지 않겠다고 맹세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이 솔로몬에게 시므이를 처치하라고 유언한 것(8-9)을 보면 그는 시므이의 저주와 죄를 결코 용인할 의향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 시므이에 대한 다윗의 유언은 사적인 보복으로 들립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모반의 전력이 있는 세력을 제거해서 솔로몬의 왕정에 평화로운 시작과 부흥을 주려고 했을 것입니다. 요압처럼 시므이도 이미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고 다윗을 배반하고 민심을 선동하는 등 적지 않은 물의를 일으켰으므로 언젠가 솔로몬 왕정에 큰 화근이 될 소지가 다분했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조언대로(9) 지혜롭게 일단 시므이의 영향력을 차단하고 그를 처벌할 틈을 노립니다. 솔로몬은 시므이의 활동 반경을 예루살렘으로 제한합니다. 시므이는 이제 거주지를 떠나 예루살렘에 집을 짓고 안주해야 했습니다. 고향의 토지는 팔든지 종들의 손에 맡겨야 했습니다. 여기 어디든지 나가지 말라”(36)는 직역하면 거기로부터 여기든 저기든 나가지 말라입니다. 예루살렘 밖의 출입을 완전히 통제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을 도피처로 제공하는 대신 그를 감시망 아래 둔 것입니다. 시므이가 특히 조심할 곳은 기드론 시내 너머입니다. 솔로몬은 그가 기드론을 건너는 날은 그의 피가 머리로 돌아가는 날, 즉 자기 죄로 죽는 날이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기드론 시내는 예루살렘 동쪽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골짜기로 유다와 베냐민 지파의 동북쪽 경계입니다. 시므이의 거주지인 바후림(8)은 기드론 시내의 건너편에 있습니다. 솔로몬이 기드론 너머의 출입을 특별히 통제하는 목적은 시므온과 베냐민 및 북쪽 지파들과의 연결고리를 끊어 그가 지파를 선동하거나 역모를 일으키는 일을 미리 차단하려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경고의 위증함은 너는 분명히 알라”,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니”(37)라는 강조된 표현과 여호와를 두고 엄중히 맹세한 점(42, 43)에서 두드러집니다. 시므이는 솔로몬의 처분을 합당하게 받아들였고, 이에 왕의 명령에 복종할 것을 약속합니다. 그는 다윗에게 저지른 죄를 알고 있고 이제 다윗이 죽은 터라 목숨이 위태했는데, 솔로몬으로부터 금족령만 받고 목숨을 건졌으니 어찌 좋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다윗에게는 목숨의 보전을 약속받았으나(삼하 19:23) 이번에는 목숨이 끊어질 것을 경고 받았습니다.

 

시므이에 대한 보고(39-40)

믿지 않는 사람들이 성도들을 평가할 때 그의 진정성을 봅니다. 신앙생활의 열심을 보지 않습니다. 크리스천으로서 빛과 소금으로 살자는 말은 곧 삶에서 진정성을 갖자는 말과 상통합니다. 만일 하나님이 오늘날 성도들을 대상으로 영성 시험을 보신다면 가장 먼저 그들의 진정성을 보지 않겠습니까? 주님은 언제나 일의 동기와 마음의 중심에 관심을 두십니다. 성도란 주님과 사람들 앞에서 말씀과 성령을 의지하여 현실의 삶을 정직하고 진정성 있게 살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39삼년 후에 시므이의 두 종이 가드 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에게로 도망하여 간지라 혹이 시므이에게 고하여 가로되 당신의 종이 가드에 있나이다 40시므이가 그 종을 찾으려고 일어나 그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가드로 가서 아기스에게 나아가 그 종을 가드에서 데려왔더니(39-40)

그 후 시므이는 예루살렘에서 3년 간 무사하게 지냈으나, 3년 후에 예기치 못한 일에 휘말립니다. 그의 두 종이 블레셋 땅으로 도망한 것입니다. 다윗 당시 시므이는 아들 15명과 더불어 적어도 20명 이상의 종을 거느리고 살았으며, 베냐민 지파 1,000명을 소집할 수 있고, 이스라엘 북쪽 지파에 관여할 만한 영향력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삼하 19:16-17,20). 그의 두 종이 가드 왕 마아가의 아들 아기스에게 도망했습니다. 아기스는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도주자 신세였을 때 그의 망명을 받아준 자입니다(삼상 21:10; 27:2). 그때부터 수십 년이 지났으므로 현재 아기스는 동일인이 아닌 아기스의 후손입니다. 종들의 도주 보고를 받은 시므이는 즉각 일어나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종들을 찾으러 가드의 아기스에게 갔습니다. 그리고 종들을 가드에서 데려왔습니다. 다혈질로 보이는 시므이가 종들을 되찾느라 혈안이 되어 금족령을 잊었는지, 아니면 알고도 무리수를 두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시므이의 죽음(41-46)

하나님의 자비와 정의의 기준에 모두 부합한 일입니다. 정치적 보복으로만 볼 일은 아닙니다. 시므이는 배은망덕으로 자초한 형벌입니다. 솔로몬은 시므이 제거가 사적인 감정에 따른 정적 제거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때를 따른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41시므이가 예루살렘에서부터 가드에 갔다가 돌아온 일을 혹이 솔로몬에게 고한지라 42왕이 사람을 보내어 시므이를 불러서 이르되 내가 너로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고 경계하여 이르기를 너는 분명히 알라 네가 밖으로 나가서 어디든지 가는 날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도 내게 말하기를 내가 들은 말씀이 좋으니이다 하였거늘 43네가 어찌하여 여호와를 가리켜 한 맹세와 내가 네게 이른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느냐 44왕이 또 시므이에게 이르되 네가 무릇 네 마음의 아는 모든 악 곧 내 부친에게 행한바를 네가 스스로 아나니 여호와께서 네 악을 네 머리로 돌려 보내시리라 45그러나 솔로몬왕은 복을 받고 다윗의 위는 영원히 여호와 앞에서 견고히 서리라 하고 46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에게 명하매 저가 나가서 시므이를 쳐서 죽게 한지라 이에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하여지니라(41-46)

시므이의 행보는 솔로몬에게 보고되었고, 솔로몬은 이를 기회 삼아 그를 처단합니다. 시므이를 소환하는 장면에 36절에 나온 첫 세 문장이 42절에 재등장하여, 이번에도 소환 과정이 일사천리로 진행됨을 보여줍니다. 그의 첫 소환은 목숨을 연장시켰으나, 이번 소환은 목숨을 앗아갑니다. 솔로몬은 금족령 내용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명령의 진정성을 나타내고, 시므이가 명령에 동의했음을 확증합니다. 이는 왕의 명령이 쌍방의 합의였음을 분명히 합니다. 더구나 이는 여호와로 맹세한 엄중한 사안이지 않습니까(42, 43). 그런데 시므이가 여호와께 한 맹세와 왕의 명령을 어겼으니, 그는 유죄이며 처벌이 마땅합니다(43). 이어 나오는 44-46절의 내용과 순서는 요압 에피소드(32-34)와 유사하게 전개됩니다. 요압의 경우와 마찬가지로(32) 시므이의 악()을 그의 머리로 돌려보내는 주체는 여호와이시다’(43). 요압의 처형 판결이 과거에 그가 저지른 살인과 배반에 대한 여호와의 의로운 심판이듯이(32), 시므이의 처형 또한 과거에 그가 다윗에게 행한 모든 악에 대한 여호와의 정당한 심판입니다(44). 여호와께서 요압의 악을 보복하되 다윗 왕위에는 영원한 평화를 주시듯(33), 이번에는 시므이의 악을 보복하되 다윗 왕위에는 영원한 견고함을 베푸실 것입니다(45). 42-45절의 솔로몬의 판결 내용에는 여호와가 네 번 나와, 그 판결이 사적인 앙갚음이 아닌 여호와와 율법에 적법한 선고임을 암시합니다. 요압의 죽음처럼(삼하 3:39) 시므이의 죽음은 저주를 선으로 갚아주시길 구한 다윗의 간구(삼하 16:12)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도 처형은 브나야가 맡습니다(46; 참조.25,34). 그는 어명에 순종하여 시므이를 쳤고, 그는 마침내 죽었습니다. 시므이의 처형 기록 후 열왕기 저자는 나라가 솔로몬의 손에 견고해졌다’(46)고 평가합니다. 유사한 평가(‘나라가 심히 견고하다’)가 이미 솔로몬의 왕정 기사를 시작하며 나왔으므로(12), 12-46절은 한 단락을 이룹니다. 열왕기는 견고한 나라의 공로를 솔로몬의 손, 그의 숙청 작업(13-46)에 돌립니다. 다윗이 솔로몬에게 당부했던 지혜’(6,9) 그리고 솔로몬이 행한 지혜는 결국 여호와 경외보다는 정치 지략과 율법을 이용한 정치적 수완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왕국의 견고함은 인간적, 정치적 노력을 뛰어넘어 하나님이 솔로몬과 함께하셨고(대하 1:1), 다윗과 맺은 약속(삼하 7:12)을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큰 은혜와 섭리로 솔로몬의 등극과 왕정의 현실을 감싸 안으셨습니다.


시므이를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잊어버린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태도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았습니다. 언약의 파괴에 대한 결과가 죽음이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 자신들을 바르게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잘못된 행동이 아니라 바른 행동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가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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