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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1-01)


늙은 다윗의 생활과 상황

열왕기상 1장 1-10절


일이 진행되어 가는 결정적인 형세를 일컬어 ‘대세(大勢)’라고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대세를 따릅니다. 그 이유는 대세는 유행과 같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익이 되면 밀물처럼 밀려왔다가 유익이 없으면 썰물처럼 빠져 나갑니다. 모든 것이 눈으로 보인 대로 이루어질 것 같으니깐 따르는 것입니다. 진정한 대세는 눈에 보아는 사람의 수나 세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의 대세는 하나님의 뜻입니다.

 

열왕기는 다윗의 노년기로부터 시작하면서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늙어서 왕위를 다음 왕을 계승될 시기가 되었습니다. 다윗이 늙어서 신체적인 능력과 함께 아버지와 왕으로서 권위도 점점 잃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주 무기력한 모습을 봅니다. 이것은 아들 아도니야는 자신만만하고 거칠 것 없는 모습과 대조적입니다. 그 틈을 타서 아도니야는 솔로몬을 따돌리고 왕이 되려 합니다. 계속해서 이스라엘 역사가 진행될 배경으로 제시합니다.

 

말년의 노쇠한 다윗(1-4)

 

인생의 마지막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여 믿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노년에는 점점 정신이 희미해져서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예배도 잊어버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노년에는 지속적으로 기도하고 말씀으로 무장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많은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법칙이 있습니다.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모두 다 아는 사실이 있습니다. 사람은 나이가 들면 죽는다는 사실입니다. 천하를 호령하던 다윗도 하나님의 자연법칙에 따라 나이가 많아 늙었습니다. 다윗 노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다윗 왕이 나이 많아 늙으니 이불을 덮어도 따뜻하지 아니한지라 2그 신복들이 왕께 고하되 우리 주 왕을 위하여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하여 저로 왕을 모셔 봉양하고 왕의 품에 누워 우리 주 왕으로 따뜻하시게 하리이다 하고 3이스라엘 사방 경내에 아리따운 동녀를 구하다가 수넴 여자 아비삭을 얻어 왕께 데려왔으니 4이 동녀는 심히 아리따운 자라 저가 왕을 봉양하며 수종하였으나 왕이 더불어 동침하지 아니하였더라(1-4)

용맹하게 세상을 누볐던 이스라엘 왕이었던 다윗이 70세의 노년의 초란한 모습을 봅니다. 골리앗을 이긴 맹장이요, 이스라엘을 하나로 통일시킨 위대한 왕의 면모를 떠나서, 이제 자기 몸 하나 추스르지 못하는 늙은 사자와 같은 모습입니다. 늙은 다윗은 자신의 체온을 유지하지 못할 정도로 늙었습니다. 그의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머리를 맞대고 생각해낸 해결책이 있습니다. 다윗의 몸을 따뜻하게 하고 기력을 회복시키기 위해 젊은 여인과 동침하도록 계획을 세웠습니다. 전 이스라엘을 돌아다니면 그에 합당한 여인을 찾았습니다. 그 젊은 아이의 이름은 ‘아비삭(Abishag)’라는 여인에게 시중을 받게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늙은 다윗에게 필요한 것은 젊은 여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가기 전까지 삶을 잘 마무리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영적 도우미, 호스피스(hospice)들입니다.

이러한 상황들은 이제 이스라엘에 다윗 왕을 계승할 새로운 왕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제 왕위를 아들에게 넘겨줄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일평생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인정받았던 그였지만, 이제 너무 늙어서 기력이 없어진 것입니다. 다윗의 죽음이 점점 다가오면서 권력 이동이 진행됩니다.

이 말씀을 읽으면서 항상 기억해야할 엄연한 사실 하나를 일깨워 줍니다. 그것은 모두가 늙어간다는 사실입니다. 이 땅에 것들은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언젠가 다윗처럼 늙어 육신의 기력이 쇠하게 될 때가 올 것입니다. 지금까지 당신이 움켜진 재물이나 지식, 악착같이 챙기는 건강도 모두 내려놓아야 할 때가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날이 이르기 전에 당신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감사하며, 더욱 열심히 주님을 섬겨야 할 것입니다. 모두가 주님 앞에 서는 날에 칭찬 받길 원합니다.

 

스스로 왕이 된 아도니아(5-6)

이스라엘에는 누가 왕위를 계승할 것인가는 모든 백성들의 관심사였습니다. 이렇게 되자 다윗의 아들들 중에 제일 연장자인 아도니야는 당연히 자신이 왕위를 승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왕이 되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습니까?

5때에 학깃의 아들 아도니야가 스스로 높여서 이르기를 내가 왕이 되리라 하고 자기를 위하여 병거와 기병과 전배 오십인을 예비하니 6저는 압살롬의 다음에 난 자요 체용이 심히 준수한 자라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5-6)

아다니야는 다윗의 넷째 아들로서 살아있는 아들 중 가장 장자였습니다(삼하 3:2-5). 얼굴도 잘 행기도 키도 훤칠한 모습은 외모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첫 왕인 사올처럼 왕으로서 손색이 없었습니다. 아도니아 자신도 충분히 왕의 자격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높여 ‘내가 왕이 되리라’고 자신만만했습니다. 하지만 열왕기를 기록한 저자는 아도니야가 외모와 더불어 여러모로 압살롬처럼 부족한 것이 없지만(삼하 14:25; 15:1), 결과도 압살롬처럼 비참한 결과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가 압살롬처럼 멸망할 것이라는 암묵적인 증거는 “그 부친이 네가 어찌하여 그리 하였느냐 하는 말로 한번도 저를 섭섭하게 한 일이 없었더라”(6b)고 그의 성장 배경을 설명합니다. 쉽게 말하면 버릇없이 성장했다는 말입니다. 아도니야의 건방진 태도는 자식을 잘못 훈계한 다윗의 책임이기도 했습니다.

다윗을 왕으로 세울 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에게 하나님의 사람을 선택하는 기준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인 사무엘도 외모적으로 다윗이 아닌 다윗의 형 엘리압을 보고 왕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여호와께서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 용모와 신장을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군으로서 자격은 외모가 아니라 중심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또 한 가지를 살펴볼 수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자녀들에게 대한 교육 문제입니다. 자녀를 교육하는 것은 부모들의 가치관으로 가르칩니다. 하지만 자녀들을 인격적으로 키운다고 잘못함에도 매를 아껴서 자녀들을 버릇없고 권위를 우습게 여기는 아이로 성장시키진 않습니까? 잠언에서 자녀들의 교훈에 대한 진리들을 살펴보겠습니다. 잠언 기자는 “매를 아끼는 자는 그의 자식을 미워함이라 자식을 사랑하는 자는 근실히 징계하느니라”(잠 13:24)라고 하였습니다. 또 다른 곳에서 “아이를 훈계하지 아니치 말라 채찍으로 그를 때릴지라도 죽지 아니하리라”(잠 23:13)고 하였습니다. 자녀를 키울 때는 하나님의 훈계와 사랑으로 아이를 가르치라는 말씀입니다. 성장하면서 아이의 기를 살려준다고 생각해서 기를 살려 놓으니깐, 나중에 하나님을 대적하는 기로 얼마든지 변할 수 있음을 말씀을 통하여 배우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사람들에게 버릇없이 성장하면, 하나님을 버릇없이 대하게 행동합니다.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훈계를 받지 않고 자랄 때 본문에서 나타나는 증상들이 있습니다. 첫째 증상은 ‘스스로 높여서’(5)라는 증상입니다. 아도니야가 자신을 스스로 높여서,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으로 살아갑니다. 자신이 너무 중요한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먼저 해야만 됩니다. 이런 것들이 스스로 높여서 교만스러운 반응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다음 증상은 ‘자기를 위하여’(5)에 기록되었습니다. 이들의 특징은 자신이 늘 주인공이 되어야 하지 조연(엑스트라)은 싫어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언제나 자신이 주인공 되어서 다른 사람들이 잘 되는 것을 보지 못합니다. 시기와 질투로 사람들을 대합니다. 다른 사람들의 성공을 파괴시킵니다. 그런 잘못된 특징들이 있습니다.

다윗의 대내외적으로 큰 성공을 이룬 사람이었습니다. 자녀들의 교육에는 실패한 사람입니다. 그 성공을 이루기 위해 밤낮으로 뛰어 성공을 이루었지만, 자녀교육에는 소홀하면서 잘못한 자녀를 말슴으로 바르게 교육하지 않으면, 아도니야처럼 버릇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 자녀는 당신의 노년을 힘들게 할지도 모릅니다. 자녀를 위해 기도하고, 바른 하나님의 말씀과 바른 생활에 대해 가르쳐 나가길 바랍니다.

 

양분되는 다윗의 신하들(7-10)

이미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왕권을 계승한다고 언약하셨습니다. 아도니야도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도 계속 자신의 고집대로 잘못된 행동하는 아도니야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7아도니야가 스루야의 아들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모의하니 저희가 좇아 도우나 8제사장 사독과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와 선지자 나단과 시므이와 레이와 다윗에게 속한 용사들은 아도니야와 같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9아도니야가 에느로겔 근방 소헬렛 돌 곁에서 양과 소와 살찐 송아지를 잡고 왕자 곧 자기의 모든 동생과 왕의 신복 유다 모든 사람을 다 청하였으나 10선지자 나단과 브나야와 용사들과 자기 동생 솔로몬은 청하지 아니하였더라(7-10)

다윗의 신하들은 득세하고 있는 아도니야 앞에서 그를 중심으로 양분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힘의 세력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끝까지 다윗 곁을 떠나지 않는 사람들로 나누어졌습니다.

아도니아는 세력을 과시해서 왕위로 등극하기 위한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자신을 지지하는 측근들을 모으고 스스로 왕이 되는 잔치 자리에 초청했습니다. 그들은 다윗의 옛 군대장관 요압과 종교의 최고 지도자인 아비아달 제사장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 잔치에 솔로몬의 이름을 뺐습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세우고자 하는 것을 자신은 반대하는 것을 의미입니다. 그것은 아버지 다윗을 행한 반역이요, 또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도니야가 양분 시킨 사람들을 구분해보면,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은 아도니야를 추종했지만, 제사장 사독과 브나야와 나단과 몇몇 용사들을 따돌림을 받았습니다. 그들을 솔로몬과 함께 초청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반역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의 편을 만든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사람들을 만듭니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분열을 만듭니다. 분열을 조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들을 모으게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공동체가 분열되어집니다. 시기와 질투가 판칩니다. 그는 자신이 왕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기초로 인생의 미래를 펼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측근들을 모아 놓고 왕이 될 모의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많은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 자신이 지도자로 섰을 때에 자신을 돕고 지지하도록 만듭니다. 군중 심리를 통해 개인의 의사는 무시되어버리고 판단을 흐리게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돌아서도록 미혹하고 자신의 편을 만듭니다.

아도니야가 왕으로 세움을 입는 것이 대세인 것처럼 보이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함께 동참해야할 명단 중에 중요한 분이 빠져있습니다. 그분을 바로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이 빠져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편일 때에 그 전쟁은 승리합니다. 사람들의 이름이 아무리 많아도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아도니야는 이번 기회를 통해서 배울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들은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편에 서지 않는다고 섭섭해 하고 속상해 하는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내 편인가를 체크한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당신을 동조하고 당신이 옳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 하지 않으시면 아무 소용없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삶의 명단에 하나님의 이름이 초청의 대상이 되길 바랍니다.

아도니야가 사람들의 행동에 대해 잊고 있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은 자신에게 무엇인가 이익이 되는 동안만 지지한다는 사실을 몰랐습니다. 먹을 것이 없으면 냉철하게 떠난다는 사실을 망각했습니다.

종종 신분이나 수요를 기반으로 스스로 교만하여, 다른 사람들 위에서 군림하려고 합니다. 이런 것들로 자신의 미래를 펼쳐 나갈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정말 잘못된 오산입니다. 왕을 세우는 분은 하나님임에도 불구하고 아도니야는 마치 자신이 왕이 된 것처럼 행세를 했습니다. 교만은 파멸을 앞당기고 패망의 선봉장입니다. 당신은 하나님을 왕으로 고백하고 섬기고 살아가면서도 당신이 왕인 것처럼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강한 편이 아니라 옳은 편에 서야 합니다. 아도니야가 왕이 될 것처럼 보였기에 많은 사람들이 아도니야의 편에 섰지만, 하나님의 뜻은 달랐습니다. 어느 한 편을 선택해야 한다면 당신은 혹시 하나님의 뜻은 저버리고 무조건 강한 편, 다수의 편에 서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옳은 편에 서길 원하십니다. 항상 주님의 인도하심을 믿는 겸손한 믿음과 영적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


왕이신 하나님을 높이며 겸손하면서 당당하게 하나님의 편에 서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항상 겸손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아도니야를 보면서 스스로 교만하지 않아야 합니다. 언제나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을 인식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 날에 받을 상급을 기대함으로 오늘을 사는 겸손한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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