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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8-01)

 

 


언약궤를 지성소로

열왕기상 8장 1-11절


하나님을 가장 기뻐하는 것이 우리 삶의 목적이 포인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마음의 중심에 두고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다스림을 기뻐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더 나아가 이것이 개인적 차원에 그쳐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온전히 기뻐하며 섬기는 공동체로 모여야 합니다. 신앙에는 후원자가 있어야 합니다. ‘홀로 믿음’의 열기는 오래가기가 힘들지만, ‘다함께’ 믿음은 오래가며 힘이 있습니다. 다함께 전심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다스림을 기뻐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각자가 맡은 일에 충성하며 하나님 섬기는 일을 기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완공됨에 따라 봉헌식의 첫 단계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여호와의 언약궤가 지성소에 안치됩니다. 언약궤는 기브온의 성막이 아니라 시온성에 다윗이 준비한 장막 안에 보관되어왔습니다. 이제 성전이 새로 건축되었으므로 성막의 기구와 함께 언약궤가 합쳐져 제자리를 찾습니다. 이를 수행하는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규례를 철저히 따랐습니다. 궤가 지성소에 안착되자 하나님께서는 구름 속에 그의 임재와 거룩함을 나타내셨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으로 옮긴 언약궤(1-5)

모든 성도와 믿음 공동체는 하나님을 중심에 둡니다. 하나님을 갈망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한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삶의 모습이 다르고 하나님을 섬기며 예배하는 일에는 한마음으로 예배하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다함께 전심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다스림을 기뻐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각자가 맡은 일에 충성하며 하나님 섬기는 일을 기쁨으로 감당해야 합니다.

1이에 솔로몬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다윗 성 곧 시온에서 메어 올리고자 하여 이스라엘 장로와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 곧 이스라엘 자손의 족장들을 예루살렘에 있는 자기에게로 소집하니 2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다 에다님월 곧 일곱째 달 절기에 솔로몬 왕에게 모이고 3이스라엘 장로들이 다 이르매 제사장들이 궤를 메니라 4여호와의 궤와 회막과 성막 안의 모든 거룩한 기구들을 메고 올라가되 제사장과 레위 사람이 그것들을 메고 올라가매 5솔로몬 왕과 그 앞에 모인 이스라엘 회중이 그와 함께 그 궤 앞에 있어 양과 소로 제사를 지냈으니 그 수가 많아 기록할 수도 없고 셀 수도 없었더라(1-5)

8장은 성전 봉헌식 내용을 소개합니다(대하 5:2-7:22). 봉헌식의 첫 행사인 ‘언약궤 운반’ 내용(1-21)은 “여호와의 언약궤”(1)와 “여호와의 언약을 넣은 궤”(21)가 각각 처음과 마지막 절에 언급되어 통일성 있는 단락을 이룹니다. 여호와의 언약궤(법궤)는 다윗 성(시온)에서 예루살렘의 완공된 성전으로 운반될 예정입니다. 솔로몬은 언약궤 운반 준비를 위해 이스라엘 장로들과 모든 지파의 우두머리를 예루살렘에 소집했습니다(1). 언약궤 이동은 성전 봉헌식과 함께 제7월(에다님월) 장막절에 맞춰 진행됩니다. 날짜와 기간은 장막절(15-22일) 전 일주일(8-14일)입니다(65; 대하 7:8-10). 성전 건축이 완료된 시기가 솔로몬 제11년(주전 959년) 제8월(불월)인데(6:38) 봉헌식은 한 달 앞선 제7월로 소개되므로(2), 실제 봉헌식은 성전 완공 다음 해에 거행한 것으로 추측됩니다. 당시 언약궤는 다윗이 시온성에 예비한 장막 안에 놓여 있었습니다(삼하 6:17). 언약궤가 이곳에 옮겨지기까지는 짧지 않은 역사가 있습니다. 처음에 언약궤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은(출 19장) 후 그의 명령에 따라 성막과 함께 축조되었습니다(출 39:32, 42-43).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궤는 성막의 핵심으로서 성막의 중심부인 지성소에 안치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광야를 지나 가나안에 들어온 후 언약궤는 성막과 더불어 주로 실로(수 18:1;삼상 1:3)에 있었고, 벧엘(삿 20:27)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사무엘 당시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이스라엘이 패함으로써 궤는 블레셋 수중에 들어갑니다(삼상 4:11). 그런데 궤가 머문 블레셋 성읍마다 하나님이 독종과 사망의 재앙을 내리시자(삼상 5:5-12), 언약궤는 결국 이스라엘로 반환됩니다. 이때 궤는 성막과 떨어져, 기럇여아림(바알레유다) 성읍 아비나답의 집에 안치되었습니다(삼상 7:2). 성막은 사울 당시 놉에 있었고(삼상 21:1-6), 다윗의 통치 때에는 기브온에서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대상 16:39). 다윗은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던 언약궤를 우여곡절 끝에 시온 성에 안치할 수 있었습니다(대상 13, 15-16장). 이제 언약궤는 완공된 예루살렘 성전으로 운반됩니다.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은 다윗 성의 장막에서 여호와의 언약궤를, 기브온에서 성막과 성막의 모든 성물을 새 성전으로 옮겼습니다. 법궤를 포함하여 성물을 덮고, 성막에서 가지고 나오는 일은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맡았고, 성막의 기구를 운반하는 일은 레위 자손들이 맡았습니다(민 4장). 법궤는 네 모퉁이에 달린 고리에 두 채(봉)를 꿰어 어깨에 메어야 했고(출 25:14), 성물도 메어 운반해야 했습니다(민 4장). 이런 까닭에, 원문의 1,4,6절에 ‘메다’라는 동사가 나오지 않으나 한글 번역에는 이 단어를 추가하여 언약궤가 규례에 따라 운반되었음을 나타내려 한 것입니다. 다윗 당시 언약궤를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옮길 때에는 이런 규정들을 지키지 않아 궤 운반에 실패했고(삼하 6장), 두 번째에 규례에 순종하여 제대로 운반할 수 있었습니다(대상 15-16장). 오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이 궤를 안전하게 옮길 수 있던 것은 하나님께서 명한 규례를 따랐기 때문입니다. 궤가 운반되는 동안 솔로몬 왕은 봉헌식과 장막절 행사를 위해 소집된 이스라엘 회중을 앞에 두고 함께 언약궤 앞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양과 소를 드려 제사를 지냈습니다. 제물의 수는 기록할 수도,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지성소에 안치된 언약궤와 여호와의 영광(6-11)

하나님을 삶의 중심에 두는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갑니다. 주일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행위 자체도 중요하지만,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신실하게 지키며 생활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 하나님을 중심에 두는 삶입니다. 우선 말씀을 이해하고 말씀에서 나오는 삶의 원리를 찾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는 말씀대로 움직이며 말씀을 실천함으로 신앙의 근육을 키워 나가야 합니다.

6제사장들이 여호와의 언약궤를 자기의 처소로 메어 들였으니 곧 성전의 내소인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 7그룹들이 그 궤 처소 위에서 날개를 펴서 궤와 그 채를 덮었는데 8채가 길므로 채 끝이 내소 앞 성소에서 보이나 밖에서는 보이지 아니하며 그 채는 오늘까지 그 곳에 있으며 9그 궤 안에는 두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후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맺으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그 안에 넣은 것이더라 10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11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6-11)

제사장들이 성전으로 운반한 언약궤는 이제 본연의 자리인 지성소로 이동됩니다. 6절은 궤의 지정 장소를 “자기(궤)의 처소”, “성전의 내소”, “지성소”, “그룹들의 날개 아래”라는 네 가지 표현을 사용하여, 궤가 제자리를 찾았음을 강조합니다. 이전에 하나님께서 궤가 안치된 곳에서 모세를 만나고, 이스라엘이 행할 규례를 모세에게 알리셨으므로(출 25:16), 이곳은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이 깃든 장소라는 상징성을 띱니다. 지성소는 성전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곳으로 “내소”로도 불립니다. 이곳에는 감람나무로 제작된 두 그룹(천사의 형상)이 이미 놓여 있었습니다. 이 그룹들은 언약궤 위에 얹은 속죄판에 자리한 작은 그룹(출 25:17-20)이 아니라, 지성소 중앙에 세운 높이 10규빗(4.6m)의 큰 형상입니다. 이 형상들은 원래 성막에는 없었던 새로운 조형물입니다. 그룹의 양 날개는 각각 10규빗, 총 20규빗(9m)의 길이로 펼쳐져 있어, 같은 폭인 지성소의 좌우에 닿아 있었습니다(6:23-28). 언약궤는 조각목(싯딤 나무)으로 제작되었고, 규격은 2.5×1.5×1.5규빗(120×70×70㎝)이었습니다(출 25:10). 이제 궤는 두 그룹 사이, 구체적으로 말하면 두 그룹의 각각 한쪽 날개 사이 아래에 안착됩니다. 앞에서 보면 두 그룹이 궤와 궤의 양쪽에 달린 채들을 위에서 날개로 덮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런 구조는 이전에 다윗이 솔로몬에게 지시한 식양(대상 28:18)을 따른 것입니다. 언약궤에 달린 두 채(또는 봉)는 궤의 네 모퉁이에 매단 네 금고리에 끼운 금을 입힌 막대기들(poles)로, 길이가 길었습니다. 채의 각 끝(머리 부분)은 지성소 앞의 성소에서는 볼 수 있으나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채들이 오늘까지 거기에 있다(8절)는 말은 ‘채들을 고리에서 빼내지 말라’는 규례(출 25:15)에 순종했음을 나타냅니다. 이런 모든 설명은 이 기록 당시에 언약궤가 온전히 보전되어 있었음을 알립니다. 언약궤 안에는 십계명이 적힌 두 돌판이 놓여 있었습니다. 돌판(또는 증거판)을 궤 속에 넣어둔 것 또한 하나님의 명령을 따른 결과입니다(출 25:16). 저자는 이 두 돌판이 출애굽 후 여호와가 이스라엘 자손과 호렙 산(시내 산)에서 언약을 맺을 때 모세가 넣은 것이라고 설명합니다(9). 이로써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언약과 언약에 대한 순종을 상기시킵니다. 두 돌판은 원래 하나님께서 처음에 주신 돌판(출 24:12; 31:18)이 아닌, 두 번째로 받은 판입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첫 돌판들을 받아 산에서 내려올 때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고 있었고, 이에 모세가 노하여 판들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렸습니다(출 32:19). 이후 하나님께서는 다시 돌판 둘을 만들라 명하셨고, 결과적으로 둘째 돌판에도 같은 내용이 기록되었습니다(출 34:1, 27-28). 9절은 궤 안에 언약의 돌판만 있다고 전합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는 아론의 싹 난 지팡이와 만나 항아리도 있었다고 하고(히 9:4), 민수기와 출애굽기는 이것들이 언약궤 앞에 보존되었다고 전합니다(민 17:10; 출 16:33). 이를 종합하면 지팡이와 만나 항아리는 원래 언약궤 앞에 놓였다가, 이후 운반이나 다른 이유로 궤 안에 보관되었고, 솔로몬 당시에는 이미 소실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와 같이 1절부터 묘사된 언약궤 운반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 즉 메는 사람, 방법, 장소, 궤 안의 내용물 등 모든 설명은 하나님의 지시에 순종했음을 증명합니다. 제사장들이 궤를 지성소에 넣고 나올 때 하나님이 성전에 임하셨습니다. 제사장들이 물러나는 동안, 레위인들은 악기를 연주하며 목소리로 하나님을 찬양했습니다(대하 5:13). 이때 “구름”(10)이 성전을 채웠는데, 이는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11)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현현이 종종 구름, 지진, 번개 등을 동반하는 이유 중 하나는 가시적 현상 없이는 인간이 하나님의 임재를 확인할 길이 없기 때문일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눈앞에 벌어진 엄청난 사건에 경외와 감탄으로 압도된 나머지 자신들의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구름 속 하나님의 임재는 그가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고 율법을 주신 사건(출 24:15-16) 및 성막 완공(출 40:34-36)과 연속성을 가집니다. 이는 수백 년이 흐른 오늘도 그 언약과 율법이 변치 않음을 암시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임재는 언약궤 운반에 대한 승인이며, 성막에 거하셨던 하나님이 이제 예루살렘 새 성전에 머무심을 확증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의 삶에는 기쁨과 영광이 있습니다. 그 기쁨은 하나님과 교제할 때 누리게 되며, 그 영광은 하나님을 기뻐하는 우리에게 보이시는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하나님을 우리 삶 중심에 모셔야 합니다. 하나님을 전심으로 예배하며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자 영광이며, 동시에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기쁨이자 영광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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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7-04)

 


성전의 기물들

열왕기상 7장 40-51절


종종 교회 안에서 보이거나 무심코 내뱉는, ‘하나님이 다 해주신다고 손 놓고 앉아 있는’ 태도나 ‘대충, 은혜로 하자’는 말 모두 믿음도 신뢰도 아니고 은혜를 모르는 무지하고 무책임한 말이 아닐까요? 하나님의 거처인 성전은 그렇게 대충, 충동적으로 허술하게 세워지지 않았습니다.

 

이 다락은 성전 건축의 마지막 부분으로 히람이 만든 놋기구들의 목록과 솔로몬이 성전을 위해 만든 금 기구들의 목록이 소개됩니다. 그리고 성전이 완성되었을 때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께 드리기 위해 성별한 예물을 성전의 곳간에 들임으로 성전 건축이 자신과 아버지 다윗의 합작품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히람이 만든 기구의 종류(40-45)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께 드려진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우리가 지닌 최상의 것으로 섬겨야 합니다. 스스로 한계를 두지 말고 하나님 나라의 필요를 충분히 만족시키도록 우리의 물질과 재능과 시간을 드림에 있어 다함 없는 섬김의 자세가 있어야 합니다.

40히람이 또 물두멍과 부삽과 대접들을 만들었더라 이와 같이 히람이 솔로몬 왕을 위하여 여호와의 전의 모든 일을 마쳤으니 41곧 기둥 둘과 그 기둥 꼭대기의 공 같은 머리 둘과 또 기둥 꼭대기의 공 같은 머리를 가리는 그물 둘과 42또 그 그물들을 위하여 만든 바 매 그물에 두 줄씩으로 기둥 위의 공 같은 두 머리를 가리게 한 석류 사백 개와 43또 열 개의 받침 수레와 받침 수레 위의 열 개의 물두멍과 44한 바다와 그 바다 아래의 소 열두 마리와 45솥과 부삽과 대접들이라 히람이 솔로몬 왕을 위하여 여호와의 성전에 이 모든 그릇을 빛난 놋으로 만드니라(40-45)

40절은 그 외에 히람이 만든 놋 기구로 솥과 부삽과 대접들을 소개합니다. 히브리 성경과 우리말에는 ‘솥’ 대신 ‘물두멍’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45절과 역대하 4:11에서 솥과 부삽과 대접들은 같이 언급되는 기구들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물두멍’ 대신 ‘솥’으로 보는 것이 더 적당합니다. 솥은 희생 제사를 드린 후 제단에 남은 재를 담기 위한 그릇입니다. 그리고 부삽은 제단에서 재를 긁어모아 솥에 담을 때 사용하는 기구입니다. 그리고 대접은 제물의 피를 담는 그릇으로 제물이 되는 짐승을 잡을 때 반드시 피를 그릇에 따로 받아서 제단 주변에 뿌렸습니다. 이런 기구는 모두 제단이 있는 성전 뜰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성전 안의 기구들은 금과 정금으로 만든 반면, 성전 뜰에서 사용하는 기구들은 모두 놋으로 만들었습니다. 40절에서는 히람이 솥과 부삽과 대접을 만드는 것을 끝으로 여호와의 전을 위한 기구를 만드는 일을 모두 마쳤다고 보고합니다.

41-45절은 앞에서 언급되었던 기구들에 대해 다시 간략하게 요약하며, 히람이 만든 기구들을 다시 한 번 정리합니다. 여기서 히람이 만든 것으로 언급된 것은 야긴과 보아스로 불리는 기둥 둘과 기둥을 장식하는 공 같은 기둥머리 둘, 공 같은 머리를 감싸기 위해 만든 그물 둘과 그 그물들을 장식하기 위해 만든 석류 400개, 열 개의 받침 수레와 받침 수레 위 열 개의 물두멍, 바다 한 개와 바다를 받치는 소 열두 마리와 솥과 부상과 대접들입니다. 여기서 기둥과 받침 수레와 바다에 대해서는 크기와 모양에 대해 자세히 설명한 반면에 물두멍과 소와 과부삽과 대접들의 크기와 모양에 대해서는 일절 언급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바다를 받치는 소 모형의 경우 지름이 5미터 되는 거대한 바다를 열두 마리로 떠받치려면 매우 튼튼하고 거대하게 만들어야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소의 경우 열두마리라는 것과 소의 배치 방법만을 언급하고 있을 뿐크기와 만드는 방법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즉, 열왕기 화자는 히람이 만든 놋기구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몇 가지만을 선택적으로 자세히 설명한 것입니다. 열왕기에서는 언급하지 않지만 역대기에는 언급되는 중요한 기구 중 하나는 제단입니다. 희생제사가 이루어지는 성전 뜰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이 제단입니다. 제단은 역대하 4:1에 따르면 놋으로 만들었으며 길이가 20규빗(10미터)이고 너비가 20규빗(10미터), 높이가 10규빗(5미터)이라고 했습니다. 이 거대한 놋제단은 하나님께 제물을 드릴 때 사용되었습니다. 제단의 높이가 높기 때문에 제단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만들어졌으며, 이 계단을 올라갈 때 제사장은 여호와께 하체를 드러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반드시 속옷을 입어야 했습니다. 45절 마지막 부분에서 히람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해 만든 기물들은 모두 잘 닦여 반짝반짝 빛나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이것은 표면을 잘 가공해서 옷을 반짝반짝하게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이런 표현은 히람이 뛰어난 놋 대장장이라는 것과 그가 성전의 기구를 만드는 데 정성을 다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놋기구를 만든 장소와 후기(46-47)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님과 이웃 섬김을 최우선으로 하며, 풍성하게 드리고자 하는 자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색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먼저 섬겨 주셨던 것처럼,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 역시도 하나님께 다함 없는 섬김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46왕이 요단 평지에서 숙곳과 사르단 사이의 차진 흙에 그것들을 부어 내었더라 47기구가 심히 많으므로 솔로몬이 다 달아보지 아니하고 두었으니 그 놋 무게를 능히 측량할 수 없었더라(46-47)

46절은 히람이 놋 기구를 제작한 장소에 대한 설명입니다. 히람은 높이가 9미터이고 지름이 2미터 정도 되는 놋기둥을 주물로 만들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물의 틀을 만들 수 있는 넓은 공터가 필요했습니다. 땅에 기둥의 주물 틀을 만들고 여기에 녹인 옷을 부어 기둥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작업을 하려면 평평하고 넓은 공터와 주물 틀을 만들기에 적합한 흙이 있어야 합니다. 숙곳은 요단강과 얍복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주물에 사용하기 좋은 진흙이 있고 넓은 평지가 있는 지역이기에, 이곳에서 옷을 주조해서 예루살렘 성전으로 옮긴 것입니다. 성경 본문에서는 어떻게 옮겼는지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47절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것 이외에 히람이 대단히 많은 양의 기구를 만들었는데, 이 히람이 만든 놋기구의 무게를 달아보지 않고 두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옷을 사용하는 바람에 측정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기 때문입니다. 비록 금보다는 싸지만 놋의 가격도 싸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놋의 중량을 셀 수 없다는 것은 솔로몬이 성전을 짓는 데 어마어마한 돈을 들였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솔로몬의 헌신과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약속하신 축복 중의 하나인 부를 솔로몬이 충분히 받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솔로몬이 만든 성전 안의 기구들(48-50)

신앙에는 이월 장부가 없습니다. 윗대의 헌신이 나의 헌신이 되는 것이 아니며, 어제 했던 헌신이 오늘의 허신을 대체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은혜에 바탕을 두고 우리가 자발적으로 드리는 헌신으로 세워져 갑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이 감당해야 할 사명에 기쁨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48솔로몬이 또 여호와의 성전의 모든 기구를 만들었으니 곧 금 단과 진설병의 금 상과 49내소 앞에 좌우로 다섯씩 둘 정금 등잔대며 또 금 꽃과 등잔과 불집게며 50또 정금 대접과 불집게와 주발과 숟가락과 불을 옮기는 그릇이며 또 내소 곧 지성소 문의 금 돌쩌귀와 성전 곧 외소 문의 금 돌쩌귀더라(48-50)

이 단락은 성전 안의 기구에 대한 부분으로 만든 사람은 히람이 아닌 솔로몬입니다. 성전과 성전 내부의 금기구들은 솔로몬이 주도적으로 지시하고 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역대기에서는 놋기둥과 놋기구를 포함한 성전의 모든 것을 솔로몬이 만들었다고 한 후에 부가적 설명으로 후람(히람)이 솔로몬을 위해 놋기구들을 만들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역대기가 열왕기보다 성전을 짓는 데 솔로몬의 기여가 많았다는 것을 강조하는 관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성전 안에 금단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향을 피우기 위한 향단으로 백향목 나무로 만들고 그 위에 금을 입혔습니다. 그리고 진설병을 놓기 위해 금상을 만들었는데 이것도 백향목 나무로 만들고 그 위에 금을 입혔습니다. 진설병은 여섯 개씩 두 줄로 모두 열두 개를 둡니다. 그리고 등잔은 정금, 즉 순금으로 만들었고 등잔대 하나에 등잔 다섯 개가 올라갈 수 있는 형태로 두 개를 만들어서 내소 앞 좌우에 하나씩 놓았습니다. 등잔은 성막과 가장 달라진 부분으로 원래 성막에서는 일곱 개의 등잔을 가진 등잔대 하나만 있었고, 진설병 상 건너편 성소의 왼쪽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전에서는 다섯 개의 등잔을 가진 등잔대 두 개를 양쪽에 놓은 것입니다. 성막의 등잔대는 살구꽃 모양을 형상화했는데 여기서는 그런 설명이 없습니다. 등잔과 같이 만들어진 ‘금 꽃’은 단순히 등잔대를 장식하는 장식품이 아니라 활짝 핀 꽃 모양으로 형상화한 등잔 받침입니다. 여기서 설명하는 등잔대는 등잔대 하나에 다섯 개의 가지가 있고, 가지 끝에 꽃 모양 등잔 받침이 있고, 그 위에 등잔을 얹어놓은 형태입니다. 출애굽기 25:31-37 에 따르면 등잔대는 순금을 두드려서 만들었는데, 솔로몬 성전에서도 순금을 사용하여 동일한 방법으로 만들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등잔과 불집게도 모두 순금으로 만들었습니다.

50절에 정금 대접과 정금 심지 가위는 등잔의 불을 관리하는 기구로 대접은 등잔의 기름을 담아 두며 정금 가위로는 심지를 정리합니다. 금 대야와 작은 금 부삽과 금 쟁반은 모두 향을 피우는 향로의 숯불을 옮기고 관리하는 데 사용하는 기구들입니다. 솔로몬은 성전 내소문의 돌쩌귀와 외소 문의 돌쩌귀까지 금으로 칠해 성전 안을 모두 금으로 장식하였습니다.

 

여호와의 성전 기구 제작을 모두 마침(51)

모든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 참여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일에는 각자에게 주어진 몫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성도들이 함께 세워 가며 각자가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세워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제 몫을 감당하며 자발적으로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51솔로몬 왕이 여호와의 성전을 위하여 만드는 모든 일을 마친지라 이에 솔로몬이 그의 아버지 다윗이 드린 물건 곧 은과 금과 기구들을 가져다가 여호와의 성전 곳간에 두었더라(51)

이제 솔로몬이 성전 건물과 성전의 모든 기구들까지 성전을 위한 모든 작업을 마쳤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그의 아버지 다윗이 여호와께 드리려고 성별해 두었던 은과 금과 기구들을 여호와의 집에 있는 창고에 갖다 두었습니다. 성전 건축의 마지막을 다윗이 여호와께 드린 예물을 드리는 것으로 마친 것은 다윗도 성전 건축에 참여하였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기 위한 것입니다. 즉, 성전 건축은 다윗이 처음 생각하고 계획했고 솔로몬이 실행한 두 부자의 합작품인 것입니다. 이렇게 솔로몬은 모든 부분에서 거룩하고 정성스럽게 하나님께 성전을 지어드림으로 하나님께 대한 헌신을 표현하였습니다. 하지만 성전보다 더 중요한 것은 6:11-13에서 하나님께서 언급하신 순종이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됩니다.


이제 우리가 거룩한 성전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여호와의 전 특별히 성소와 지성소로 들어가는 돌적이에 사용하는 기구들을 만들었습니다. 금잔과 진설병의 금상, 정금 등대 금꽃과 등전과 불집게 정금 대접과 불집게와 주발과 숟가락, 불을 옮기는 그릇 등을 만들었습니다. 성전 바깥에서 쓰는 것들을 놋으로 만들었고 성전 내부의 치장과 기물들은 녹과 색깔이 비슷한 금으로 칠하거나 만들었습니다. 금이 천상적인 것을 표현한다면 놋은 그 천상적인 것에 지상적인 모형이라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제 선전된 우리의 영광스러움은 그 같은 외적인 지장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통해 가능합니다. 또한 새 하늘과 새 땅이 완성되면 우리는 친히 하나님께서 영광이 빛나는 성전에 거하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든 속된 것이나 가증하고 거짓된 것은 그리고 들어갈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성령 안에서 우리 자신을 거룩하고 정결하게 나갈 때 영광스러운 성전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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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7-03)


놋 받침 수레와 물두멍

열왕기상 7장 27-39절


블평 인생을 살지, 감사 인생을 살지는 결국 우리의 선택에 달렸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합니다. 감사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만, 불평은 사탄을 기쁘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자녀라면 불평 제조업자가 아닌 감사 제조업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 인생 공장이 불평이 아닌 감사를 찍어 내다보면 늘 기쁨과 축복이 넘쳐날 것입니다.

 

이 단락에서는 물두멍을 두는 받침 수레와 물두멍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받침 수레에 대한 설명이 매우 자세하지만 복잡하여 글로 재구성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세한 설명은 성전 기구들 중에서 받침 수레가 매우 아름답고 정교하며 중요한 기구하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받침 수레에 대한 설명(27-37)

우리에게 거룩하고 정결한 삶은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우리가 마땅히 행해야 할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기 때문입니다(살전4:3). 하나님과 더욱 친밀한 관계를 누리기 위해 우리는 말마다 말씀대로 실천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27또 놋으로 받침 수레 열을 만들었으니 매 받침 수레의 길이가 네 규빗이요 너비가 네 규빗이요 높이가 세 규빗이라 28그 받침 수레의 구조는 이러하니 사면 옆 가장자리 가운데에는 판이 있고 29가장자리 가운데 판에는 사자와 소와 그룹들이 있고 또 가장자리 위에는 놓는 자리가 있고 사자와 소 아래에는 화환 모양이 있으며 30그 받침 수레에 각각 네 놋바퀴와 놋축이 있고 받침 수레 네 발 밑에는 어깨 같은 것이 있으며 그 어깨 같은 것은 물두멍 아래쪽에 부어 만들었고 화환은 각각 그 옆에 있으며 31그 받침 수레 위로 들이켜 높이가 한 규빗 되게 내민 것이 있고 그 면은 직경 한 규빗 반 되게 반원형으로 우묵하며 그 나머지 면에는 아로새긴 것이 있으며 그 내민 판들은 네모지고 둥글지 아니하며 32네 바퀴는 옆판 밑에 있고 바퀴 축은 받침 수레에 연결되었는데 바퀴의 높이는 각각 한 규빗 반이며 33그 바퀴의 구조는 병거 바퀴의 구조 같은데 그 축과 테와 살과 통이 다 부어 만든 것이며 34받침 수레 네 모퉁이에 어깨 같은 것 넷이 있는데 그 어깨는 받침 수레와 연결되었고 35받침 수레 위에 둥근 테두리가 있는데 높이가 반 규빗이요 또 받침 수레 위의 버팀대와 옆판들이 받침 수레와 연결되었고 36버팀대 판과 옆판에는 각각 빈 곳을 따라 그룹들과 사자와 종려나무를 아로새겼고 또 그 둘레에 화환 모양이 있더라 37이와 같이 받침 수레 열 개를 만들었는데 그 부어 만든 법과 크기와 양식을 다 동일하게 만들었더라(27-37)

이 단락은 물두멍을 나르고 세워두는 받침 수레에 대한 설명입니다. ‘받침 수레’의 기본 기능은 물두멍을 받치는 받침대인데, 여기에 손쉽게 이동할 수 있도록 바퀴를 달아놓았기 때문에 우리말에서 ‘받침 수레’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28절부터 언급되는 받침대의 구조를 보면, 받침대들은 변죽(가장자리)이 있었는데, 그 가장자리들은 판(틀) 사이에 끼어 있었습니다. 받침대의 크기는 길이와 너비가 각각 4규빗(2미터)이고, 높이가 3규빗(1.5미터)으로 놋으로 만든 틀입니다. 받침 수레의 모양은 네 개의 다리가 있고, 다리와 다리 사이에 이들을 지지하는 가로대가 두 개씩 있고, 이 가로대 사이에 판을 붙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 판 위에 사자와 소와 그룹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사자와 소와 그룹의 모형으로 장식했다는 것인데, 새겨 넣었는지 붙였는지 혹은 처음부터 이런 모양을 만들어 틀에 부어 만들었는지에 대한 설명은 없습니다. 가로대 위에도 판과 동일하게 사자와 소와 그룹들 장식을 하였습니다. 사자와 소 아래에는 화환 모양으로 장식하였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사자와 소와 그룹들을 각각 힘과 속도와 지혜를 상징하는 것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또한 사자는 야생 동물의 제왕이고, 소는 가축의 제왕이고, 그룹들은 하나님의 창조물 중 최고이므로 최고의 생물들로 성물을 장식했다고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30절은 받침대 아래 부분의 모양으로 받침대 한 개에는 각각 네 개의 놋 바퀴와 놋 축이 있고, 네 발 밑에는 어깨 같은 것이 있어 물두멍 아래에 있고, 화환 같은 것이 그 옆에 돌아가면서 있습니다. 어깨 같은 것은 바퀴 부분과 받침대를 지지하는 대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만들어 붙인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틀을 짜서 통으로 만들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거치대 각각에는 옆에 화환 모양이 붙어있습니다. 여기서 통으로 틀에 부어 만들었다는 것은 기술자의 기술이 좋다는 것과 이어 붙인 것이 아니므로 매우 튼튼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31절은 받침대 윗부분에 물두멍을 놓을 자리를 설명한 것으로 받침대의 입구는 거치대에서 1규빗 정도 위로 올라와 있으며, 지름이 1.5규빗 정도 되는 원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원형판에도 모양을 아로새겨 넣었습니다. 하지만 받침대 전체의 모양은 네모입니다. 즉, 네모로 틀을 만들고 그 안에 왕관 같이 동그란 틀을 만들어 넣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동그란 틀은 물두멍 바닥이 닿는 부분입니다.

32-33절은 받침대의 바퀴에 대한 설명으로 바퀴는 모두 네 개며 네 귀퉁이에 위치합니다. 바퀴 축은 받침대발 부분에 붙였습니다. 즉, 네 개의 바퀴를 받침대 아래에 달았다는 뜻입니다. 이 바퀴의 크기는 지름이 1.5규빗(70센티미터)이고, 병거 바퀴의 구조와 동일하며 축과 테와 살과 통을 다 부어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각각을만들어 조립한 것이 아니라 바퀴 전체를 통으로 부어만들었다는 뜻입니다. 이 받침대는 물이 든 물두멍을 옮기고 세워놓는 역할을 하는데, 물두멍에 40바트 대략 1,600리터가 담기기 때문에, 2톤 정도의 무게를 견딜 수 있을 정도로 튼튼하게 만들어져야 했습니다.

34-36절은 받침대 맨 위에 놓일 물두멍 거치대를 만드는 것으로 받침대 네 모퉁이에는 어깨 네 개가 있는데, 어깨 같은 것은 받침대와 연결되었습니다. 그리고받침대의 꼭대기에 높이가 반 규빗 되는 둥근 테두리를 만들었습니다. 받침 수레 위의 버팀대와 옆판들이 받침수레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옆판은 버팀대와 버팀대 사이를 연결하고 지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이 옆판과 버팀대의 빈 곳에도 그룹들과 사자와 종려나무를 새기고 그 둘레에 화환 무늬를 만들었습니다. 받침 수레의 경우 모양을 새길 수 있는 모든 곳에 그룹들과 사자와 소와 종려나무와 화환 모양을 새겨 넣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종려나무는 고대 근동에서 생식력을 상징하기 때문에 고대 근동에서 장식 문양으로 많이 사용되었습니다.

성전 기구 중에서 물두멍을 옮기고 세워두는 받침 수레에 대한 설명이 가장 복잡하고 깁니다. 받침 수레는 단순히 장식용이 아니라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2톤 가량의 물을 실어 나르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기능적으로 튼튼하고 정밀해야 합니다. 물두멍의 크기에 딱 맞게 설계되고 만들어져야 하기 때문에 정교한 설계와 솜씨를 발휘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미적으로도 아름답게 하기 위해 모든 부분에 정교하고 아름다운 세공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길고 자세한 설명을 통해서 히람이 만든 물건들 중에 받침 수레가 가장 뛰어난 기술과 예술성을 자랑하는 기구였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히람은 이렇게 정교한 기술이 들어가고 커다란 받침 수레를 모두 동일한 방식과 크기를 따라 열 개를 만들었습니다. 본문은 ‘부어 만드는 법과 크기와 양식을 모두 동일하게 만들었다’고 하므로, 열 개를 하나처럼 동일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기계로 물건을 만드는 시대에는 동일하게 만드는 것이 쉽지만, 손으로 일일이 만들어야 하는 시대에 크기와 모양과 만드는 방법을 모두 동일하게 해서 열 개를 만들어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서 동일하게 만들었다는 것은 히람의 놋 다루는 솜씨가 어떤 조건에서도 동일한 결과물을 얻어낼 만큼 매우 뛰어나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보여줍니다.

 

물두멍에 대한 설명(38-39)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하신 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또다시 죄를 짓더라도 날마다 정결하게 하시는 예수님으 ㅣ능력을 의지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더 나아가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드러내는 정결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38또 물두멍 열 개를 놋으로 만들었는데 물두멍마다 각각 사십 밧을 담게 하였으며 매 물두멍의 직경은 네 규빗이라 열 받침 수레 위에 각각 물두멍이 하나씩이더라 39그 받침 수레 다섯은 성전 오른쪽에 두었고 다섯은 성전 왼쪽에 두었고 성전 오른쪽 동남쪽에는 그 바다를 두었더라(38-39)

38절은 물두멍에 대한 설명으로 수레 받침을 만드는 설명에 비해 매우 간단합니다. 물두멍은 직경이 4규빗(2미터)이며 40바트(1600리터)가 들어갈 정도의 놋으로 된 물통으로 모두 열 개를 만들었습니다. 물두멍의 모양이나 자세한 크기나 문양에 대해서는 일절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물두멍보다 수레 받침이 더 중요한 기구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각각의 물두멍은 열 개의 수레 받침에 하나씩 올려두었습니다. 그리고 수레 받침은 성전 오른쪽에 다섯 개, 왼쪽에 다섯 개를 두었고, 성전 오른쪽 동남쪽에는 이전에 설명한 바다를 두었습니다. 성전 그림들을 보면 성전 오른쪽에는 바다와 수레 받침이 같이 있습니다. 성전의 오른쪽 동남쪽 모퉁이에는 놋바다를 두었는데, 바다가 성전에서 제사를 주도하는 제사장들이 물로 씻도록 마련되었다면, 물두멍은 제사를 드리는 자들과 제물들을 정결케 하기 위하여 마련되었고(대하 4:6), 제사를 드리고 난 후에 제물들의 피로 얼룩진 제단과 성전 뜰을 깨끗하게 하기 위하여 마련되었습니다. 물두멍은 옮길 수 있었던 기구로 보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하나님의 제사장이라는 신분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손과 발을 씻어 죄와 부정을 씻어낸 거룩한 존재라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만일 부정한 상태로 제사를 드리거나 성전에 들어가면 제사장이 죽거나 그 제사가 오염되어 하나님께서 받지 않으십니다. 현재 우리의 예배로 보면 물두멍은 회개 의식을 위한 기구로 볼 수 있습니다. 회개를 통해 우리의 죄에 대해 씻음을 받고 용서를 받지 못하면, 우리가 하나님께 나가 예배하고 기도하는 것이 무의미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물두멍의 물로 자신을 씻은 제사장처럼 죄를 씻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물두멍에 만들어진 이런 여러 장식들(물수레의 사자, 소, 그룹, 바퀴)은 그것이 기능성과 예술성을 함께 갖춘 기물이었음을 보여줍니다. 다음은 장식물에 대한 브루그만의 설명입니다: “다른 한편, 그룹들은 여호와의 임재를 예술적으로 표현한다. 그것들은 보이지 않는 임재 주변에 모인 하위 궁정 수행원들을 나타내기 때문이다…사실상 바퀴의 의미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 그러나 그것들이 임재의 주장과 연결되는 것은 분명하다.”(Brueggemmann 200:100-101).


더는 물수레나 물두멍은 필요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물로 씻어 정결케 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 안에서의 성결의 상태는 반드시 필요합니다. 방식은 달라졌을지라도 최고의 정성과 최선의 준비, 최적의 준비된 마음과 몸의 상태가 예배답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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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7-01)

 


놋기둥과 놋바다

열왕기상 7장 13-26절


하나님게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로봇로 만들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피조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자랑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정말 연약한 우리를 통해서 영광을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성전 건축에 있어서도 하나하나 사람의 손을 빌어서 그 성전을 건축하시므로 그래서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됩니다.

 

성전의 기물과 금속 장식을 만들기 위해 솔로몬은 두로에 있는 놋 대장장이인 히람을 데리고 옵니다. 그는 제2의 브살렐로 지혜와 기술과 지식이 풍부한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그는 제일 먼저 야긴과 보이스라는 두 개의 놋기둥을 만들고 아름답게 장식한 후, 그것을 성전 앞에 세웁니다. 야긴과 보아스라는 이름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권능으로 든든하게 세워주실 것이라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고백입니다.

 

히람에 대한 소개(13-14)

사람이 주인이 되는 공동체는 견고하게 세워지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때만 교회는 세워질 수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뿐이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성령 안에서 함께 순종하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해 수고해야 합니다.

13솔로몬 왕이 사람을 보내어 히람을 두로에서 데려오니 14그는 납달리 지파 과부의 아들이요 그의 아버지는 두로 사람이니 놋쇠 대장장이라 이 히람은 모든 놋 일에 지혜와 총명과 재능을 구비한 자이더니 솔로몬 왕에게 와서 그 모든 공사를 하니라(13-14)

석재와 목재를 이용해 여호와의 성전 공사를 마친 솔로몬은 성전 기물을 만들기 위해 두로 사람 히람을 데리고 옵니다. 역대하 4:11-22에 따르면 후람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사람을 보내서 데리고 왔다는 것은 솔로몬이 그의 명성을 듣고 성전 기물을 만들기 위해 초빙했다는 뜻입니다. 히람은 일반적으로 아버지의 이름이 등장하고 그의 아들이라고 소개되는 것과 달리, 납달리 지파의 과부인 어머니가 먼저 소개되고 그녀의 아들이라고 불립니다. 그런 후에 그의 아버지가 두로 사람이라는 것을 알립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혈통을 가진 모계를 강조함으로 히람이 이방인이 아니라 이스라엘과 매우 친밀한 관계를 가진 인물임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히람의 아버지 이름은 소개되지 않고, 두로 사람이며 놋쇠 대장장이라고 소개됩니다. 고대에는 대부분 아버지의 직업을 아들이 계승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놋쇠 대장장이면 아들인 히람도 놋쇠 대장장입니다.

14절 하반절은 구체적으로 히람의 능력에 대해 소개합니다. 화자는 히람이 모든 놋 일을 하는 데 있어서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도 있고 오랜 시간 익히고 습득한 기술과 지식도 많다고 합니다. 여기서 놋 일에 대한 히람의 능력은 출애굽기 31:3에서 성막의 기구를 만든 브살렐이 하나님의 영을 통해 받은 능력과 동일합니다. 출애굽기에서는 하나님께서 ‘내가 그에게 하나님의 영으로 지혜와 기술과 지식과 모든 재주를 가득 채워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면, 히람은 이미 지혜와 기술과 지혜를 충만하게 가지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이렇게 열왕기 화자는 유사한 언어를 통해 히람이 제2의 브살렐이라는 사실을 암시적으로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히람은 솔로몬의 초청으로 예루살렘에 와서 성전의 모든 기구들을 만들게 됩니다.

 

두 개의 기둥을 만듦(15-20)

사람은 끊임없는 자기 결단에 의해서 성장합니다. 물론 성화와 성숙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만 되는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와 성령의 역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은 성장과 성화가 나의 노력과 책임은 필요없는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이라고 여기는 생각입니다. 성도의 확실한 회심과 변화 그리고 성숙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교회를 세운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성전은 솔로몬의 힘으로 지어졌으나 나를 이끄실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15그가 놋기둥 둘을 만들었으니 그 높이는 각각 십팔 규빗이라 각각 십이 규빗 되는 줄을 두를 만하며 16또 놋을 녹여 부어서 기둥 머리를 만들어 기둥 꼭대기에 두었으니 한쪽 머리의 높이도 다섯 규빗이요 다른쪽 머리의 높이도 다섯 규빗이며 17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를 위하여 바둑판 모양으로 얽은 그물과 사슬 모양으로 땋은 것을 만들었으니 이 머리에 일곱이요 저 머리에 일곱이라 18기둥을 이렇게 만들었고 또 두 줄 석류를 한 그물 위에 둘러 만들어서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에 두르게 하였고 다른 기둥 머리에도 그렇게 하였으며 19주랑 기둥 꼭대기에 있는 머리의 네 규빗은 백합화 모양으로 만들었으며 20이 두 기둥 머리에 있는 그물 곁 곧 그 머리의 공 같이 둥근 곳으로 돌아가며 각기 석류 이백 개가 줄을 지었더라(15-20)

이 단락은 두 개의 기둥을 만드는 과정과 모양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규빗 되는 줄을 두를 만하며”라는 표현은 기둥 둘레를 재었을 때 12규빗이라는 의미입니다. 기둥의 크기는 높이가 18규빗(9미터)이고 둘레가 12규빗(6미터)으로 둘레가 6미터이면 지름이 대략 2미터 정도 됩니다. 그리고 기둥을 만들었다고 표현한 단어 ‘쭈르’는 ‘주조하다’라는 뜻으로 금속을 녹여 틀에 부어서 형태를 만드는 방식을 뜻합니다. 이것은 기둥을 만들 때 흙으로 큰 틀을 만들고 여기에 늦을 부어서 만들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런 경우 기둥의 속은 비어 있게 됩니다. 10미터 정도의 기둥을 만들려면 예루살렘 성내에서 이런 작업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7:46에 보면 요단 평지의 숙곳과 사르단 사이의 진흙이 있는 곳에서 이 작업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기둥을 만든 것과 같은 방식으로 다섯 규빗(2.5미터) 되는 기둥 머리를 만들었습니다. 이렇게 기둥 머리까지 합하면 기둥의 높이는 대략 11미터가 넘습니다. 11미터면 건물 4층 높이 정도 되는데, 성전의 높이가 30규빗(15미터)으로 5층 높이인 것을 감안하면 성전 높이보다 좀 작은 정도입니다. 그리고 기둥의 머리를 장식하기 위해 바둑판 모양의 그물과 사슬 모양을 각각 일곱 개씩 만들었고 바둑판 모양의 그물을 장식하기 위해 석류 두 줄을 만들어 각각의 기둥머리에 하나씩 두르게 했습니다.

19절은 두 개의 기둥에 대한 설명이 아니라 주랑에 있는 기둥 머리에 대한 설명으로 주랑의 기둥들은 백향목으로 만들었는데, 이 위에 놋으로 4규빗짜리 백합 모양의 머리를 만들어 올렸다는 것입니다. 이 머리의 용도는 백향목 덮개나 차양을 받치기 위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갑자기 주랑의 기둥을 설명하는 것은 기둥과 놋 주물이라는 공통점이 있기에, 참고로 이곳에서 언급한 것입니다. 20절은 다시 두 개의 기둥 머리 장식에 대한 것으로 기둥 머리는 배처럼 둥글게 되어 있는 부분과 그물 모양으로 된 부분으로 되어 있고, 역대하 3:16에 따르면 기둥 머리 전체를 100개씩 200개의 석류 모양으로 감쌌습니다. 이렇게 기둥 머리 장식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두 기둥이 상당한 공을 들여 매우 섬세하고 정교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두 개의 놋기둥을 세움(21-22)

신령한 신자들에게는 죄에 대한 실패가 간헐적이지만, 육적인 신자들에게는 은혜 안에 있는 경험이 간헐적입니다. 이처럼 은혜 안에 있는 신자들은 하나님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과정에서 경험하는 작은 죄와 일상적인 불순종에 의하여 영적 생활이 영향을 받기는 하지만 즉각적인 회개와 돌이킴의 순발력이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그의 심령 안에 있는, 죄와 은혜의 면역력 때문입니다. 이처럼 병적인 유아 상태에 있는 육에 속한 신자를 신령한 신자로 바꾸는 놀라운 일은 은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오직 하나님 은혜만이, 그의 영혼과 인격 속에 깊이 파고들어 역사함으로 그를 변화된 새사람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21이 두 기둥을 성전의 주랑 앞에 세우되 오른쪽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왼쪽의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22그 두 기둥 꼭대기에는 백합화 형상이 있더라 두 기둥의 공사가 끝나니라(21-22)

히람이 만든 두 개의 놋기둥은 성전 앞에 있는 주랑 앞 양쪽에 세웠는데, 오른쪽 기둥의 이름은 야긴, 왼쪽 기둥의 이름은 보아스라고 불렀습니다. 야긴은 ‘세우다’라는 뜻을 가진 동사 ‘쿤’)의 히필 미완료형으로 ‘그가 세울 것이다’ 혹은 ‘그가 든든하게 할 것이 다’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힘’이란 뜻의 명사 ‘오즈’에 전치사 ‘베’를 붙인 형태로 직역하면 ‘힘으로’라는 뜻입니다. 우리말에서는 ‘그에게 힘이 있다’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야긴과 보아스 두 이름을 연결하면 ‘그가 세울 것이다. 힘으로’라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므로 이 이름은 하나님께서 그의 능력과 힘과 권능으로 이스라엘을 든든하게 세우신다는 뜻으로 두 기둥은 여호와의 전을 나타내는 상징물입니다. 그리고 이 두 개의 기둥은 출애굽 시 이스라엘을 인도한 여호와의 불기둥과 구름 기둥을 생각나게 합니다. 불기둥과 구름 기둥의 형태로 큰 권능과 힘으로 광야 40년을 인도하신 하나님을 두 개의 기둥으로 상징화하여 이곳이 하나님의 집이라는 것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세워주시는 나라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고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라는 의미로 볼 수 있습니다.

 

놋바다에 대한 설명(23-26)

생각도 씻고 기억도 씻고 귀도 씻고 마음도 씻고 발자취도 씻고 그리고 새롭게 해야했습니다. 그리고 제물도 씻어야했습니다! 씻음, 생각을 씻고 기억을 씻고 마음을 씻고, 씻음이 너무도 중요했기에 이렇게 놋바다를 설치했고 또 물두멍을 설치했습니다. 씻겨지기 원합니다. 놋바다의 물로, 물두멍의 물로, 그리고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지기를 원합니다. 내 마음, 정결하여져 참된 제물되기 원합니다!

23또 바다를 부어 만들었으니 그 직경이 십 규빗이요 그 모양이 둥글며 그 높이는 다섯 규빗이요 주위는 삼십 규빗 줄을 두를 만하며 24그 가장자리 아래에는 돌아가며 박이 있는데 매 규빗에 열 개씩 있어서 바다 주위에 둘렸으니 그 박은 바다를 부어 만들 때에 두 줄로 부어 만들었으며 25그 바다를 소 열두 마리가 받쳤으니 셋은 북쪽을 향하였고 셋은 서쪽을 향하였고 셋은 남쪽을 향하였고 셋은 동쪽을 향하였으며 바다를 그 위에 놓았고 소의 뒤는 다 안으로 두었으며 26바다의 두께는 한 손 너비만 하고 그것의 가는 백합화의 양식으로 잔 가와 같이 만들었으니 그 바다에는 이천 밧을 담겠더라(23-26)

바다는 제사장들이 성전으로 들어가기 전에 몸이나 손을 씻기 위한 물을 담아 놓는 둥글고 큰 물통으로 지름이 10규빗(5미터)이고, 높이는 5규빗(2.5미터)이며, 둘레 길이는 30규빗(15미터) 정도 되었고, 두께는 한 뼘 정도로 대략 10센티미터입니다. 이 거대한 물통을 ‘바다’(얌)라고 부른 것은 바다처럼 넓은 모양으로 생겨서 많은 물을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이천 밧의 물을 담을 수 있다고 하는데, 1바트는 대략 40-45리더이므로 대략 80-9킬로미터 정도 됩니다. 이것은 200리터 드럼통 400-450개 정도 되는 분량으로 엄청난 양입니다. 바다는 가장자리를 통아가며 한 규빗당 열 개의 박 모양을 두 줄로 만들어 장식했는데 24절의 ‘두 줄로 부어 만들었다’는 표현에서 보듯이, 바다를 주조할 때 치음부터 모양을 넣어 주조한 것이지 따로 만들어 붙인 것이 아닙니다. 바다의 받침은 열두 개의 소 모양을 만들어 각 방위에 세 마리씩 배치하여 받치게 하였는데, 모든 소의 얼굴이 앞쪽으로 나오게 하였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바다를 만들어 성전의 동남쪽에 두어 제사장들이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씻는 물로 사용했습니다. 씻을 때 이 바다에 직접 들어가지는 않고 바다의 물을 곁에 있는 물두멍에 떠서 사용한 것으로 생각됩니다. 하지만 제사장들이 사용하기에 불편한 정도로 큰 놋바다는 기본적인 용도 이외에 네 방위의 소들이 힘차게 놋바다를 떠받쳐 흔들리지 않게 한 것처럼, 하나님의 성전에서는 혼돈으로 상징되는 바다도 함부로 요동치지 못하고 세상을 무질서하게 만들지 못하며,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자신에게 주어진 경계 안에 있다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성전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능력을 경험하는 공감이며, 나를 내어놓고 그분의 임재 안에 들어가는 곳입니다. 참다운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흘러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중심에 성전이 있는 것처럼, 성도가 함께 모인 자리가 능력을 덧입는 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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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7-01)


솔로몬 왕궁의 건축

열왕기상 7장 1-12절


우리의 마음이 다른데 빼앗기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말씀드린 대로 우리의 현실과 솔로몬이 결코 다르지가 않습니다. 그런 우리가 종교적 행위를 갖춘다고 해서 그것을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인간의 현실에서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결국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약속한 부귀와 영화는 왕궁 건축에서도 증명되었습니다. 성전 완공 후 솔로몬은 자신의 왕궁을 13년에 걸쳐 건축했습니다. 공적 건물로는 레바논 숲 궁과 재판의 전을 지었고, 사전 공간으로 자신이 거처할 궁과 바로의 딸을 위한 궁 등을 건축했습니다. 궁정의 규모는 성전보다 훨씬 컸으며 건축에 들어간 자재나 방법 등도 성전에 버금갔습니다.

 

솔로몬의 왕궁들(1-12)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성도의 삶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며, 그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 성전을 설명하는 사이에 등장하는 솔로몬 왕궁 이야기는 왕궁의 웅장한 자태를 통해 성전 건축에 헌신한 자가 누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항상 함께하는 성도의 삶에는 하나님의 풍성과 영광이 따릅니다.

 

1솔로몬이 자기의 왕궁을 십삼 년 동안 건축하여 그 전부를 준공하니라 2그가 레바논 나무로 왕궁을 지었으니 길이가 백 규빗이요 너비가 오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라 백향목 기둥이 네 줄이요 기둥 위에 백향목 들보가 있으며 3기둥 위에 있는 들보 사십오 개를 백향목으로 덮었는데 들보는 한 줄에 열 다섯이요 4또 창틀이 세 줄로 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고 5모든 문과 문설주를 다 큰 나무로 네모지게 만들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으며 6또 기둥을 세워 주랑을 지었으니 길이가 오십 규빗이요 너비가 삼십 규빗이며 또 기둥 앞에 한 주랑이 있고 또 그 앞에 기둥과 섬돌이 있으며 7또 심판하기 위하여 보좌의 주랑 곧 재판하는 주랑을 짓고 온 마루를 백향목으로 덮었고 8솔로몬이 거처할 왕궁은 그 주랑 뒤 다른 뜰에 있으니 그 양식이 동일하며 솔로몬이 또 그가 장가 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는데 이 주랑과 같더라 9이 집들은 안팎을 모두 귀하고 다듬은 돌로 지었으니 크기대로 톱으로 켠 것이라 그 초석에서 처마까지와 외면에서 큰 뜰에 이르기까지 다 그러하니 10그 초석은 귀하고 큰 돌 곧 십 규빗 되는 돌과 여덟 규빗 되는 돌이라 11그 위에는 크기대로 다듬은 귀한 돌도 있고 백향목도 있으며 12또 큰 뜰 주위에는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를 놓았으니 마치 여호와의 성전 안뜰과 주랑에 놓은 것 같더라(1-12)

솔로몬의 ‘왕궁 건축’을 묘사합니다. 대표 건물로 레바논 숲 궁(2-5), 솔로몬의 거처, 왕비의 별궁(8) 등을 소개하며, 성전 공사 기록과 유사한 순서와 내용으로 전개합니다. 이 단락은 5-7장의 ‘성전 건축 공사’ 기록의 하부 단락으로, 중간에 배치되었습니다. 5-6장은 성전 건축 준비(5장), 성전의 기공 및 내외부 공사(6장)를 기록했습니다. 이제 7:1-12은 성전 완공 후 솔로몬이 건축한 왕궁들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 13-50절은 다시 성전 건축으로 돌아가 놋 기구, 금 기구 제작을 기술하고, 51절에 가서야 성전 건축 기사를 완전히 종결합니다. 이처럼 왕궁 건축이 성전 건축 기록의 중간에 들어 있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긍정적인 면에서는 왕궁 건축이 솔로몬 왕조, 넓게는 다윗 왕조의 시작을 의미하므로 이 왕조가 성전 건축에 암시된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 안에 있어야 함을 일깨웁니다. 둘째, 왕궁 건축에서 드러난 솔로몬의 지혜와 부귀영화가 성전 건축과 함께 하나님이 다윗과 솔로몬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임을 상기시킵니다. 부정적인 면에서는 솔로몬이 왕궁 건축에 쏟은 시간, 관심, 부, 공력이 성전 건축에 결코 뒤지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긴장감을 일으킵니다. 왕궁 건축 기사에 나타나는 몇몇 부정적인 암시는 앞으로 다가올 솔로몬의 우상 숭배와 나라의 분열에 대한 복선이 됩니다.

(1) 레바논 숲 궁(1-7)

7년 6개월에 걸쳐 성전을 완공한 솔로몬은 그 후 13년 동안 자신의 왕궁을 건축하기에 이릅니다. 두 건축에 소요된 20년은 솔로몬의 통치 40년의 절반인 긴 기간입니다. ‘레바논 숲/수풀 궁’은 조선 궁궐의 ‘외전’에 해당하는 공적 건물입니다(2-5). “그가 레바논 나무로 왕궁을 지었으니”는 직역하면 ‘그가 레바논 숲 궁(the house of the forest of Lebanon)을 지었다’로 나와 궁의 이름을 소개합니다. 궁에는 높고 인상적인 백향목 기둥들이 줄지었고, 들보와 마루 등 백향목을 사용한 공간이 넘쳤습니다. 이 이름은 레바논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백향목 삼림을 연상시킨 데서 비롯되었을 것인비다. 궁은 길이 100규빗(45.7m), 너비 50규빗(23m), 높이 30규빗(13.7m)이며, 면적은1,046㎡(약 316평)입니다. 성전은 길이 60규빗(27m), 너비 20규빗(9m), 높이 30규빗으로 약 249㎡(약75평)이므로, 왕궁은 성전과 높이는 같으나 면적은 4배 정도 큽니다. 레바논 숲 궁은 외형상으로도 가장 크고 장엄하며, 실제적으로도 궁에서 최고의 권위를 나타내는 핵심 공간이었습니다. 통상 왕궁에는 즉위식, 외국 사절 접견, 공적 행사 등을 위한 공간, 왕과 신하들의 회의 공간(10:5), 왕의 집무실 등이 있습니다. 다른 본문에서는 이 궁에 국고에 해당하는 값진 무기와 그릇을 보관하는 방이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솔로몬은 조공과 무역을 통해 거둔 엄청난 금으로 크고 작은 방패 500개를 만들어 전시했고(10:14-17), 순금으로 만든 그릇들도 이 궁에 저장했습니다(10:21). 이제, 레바논 숲 궁의 구체적인 외형을 보자면, 건물의 하단에는 백향목 기둥들이, 숫자는 알 수 없으나, 네 줄로 정렬되어 있었습니다. 양쪽은 벽과 이어졌고 가운데 두 줄은 개방되어 궁의 내부에 큰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구조인 것 같습니다. 이 기둥들은 그 위의 백향목 들보(서까래)들을 받치고 있었습니다(2). 3절은 이 백향목 기둥들 위에 45개의 백향목 “들보”로 궁의 지붕을 덮었음을 알려줍니다. 다만 여기서 기둥들 위에 얹은 “들보”의 의미가 명확치 않아, 대안으로 ‘골방’이 제시됩니다. 2절에 나오는 “들보”(케루타)는 원래 ‘들보/서까래'의 뜻이지만, 3절의 “들보” (쩰라)는 원래 ‘갈빗대'란 뜻으로 건물 옆구리에 붙은 골방, 곁방 등을 뜻하기 때문이다(6:5). 따라서 이 단어를 첫째, ‘들보’로 읽는다면(NKJ, NAB, NIV), 2절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서 네 줄의 백향목 기둥들 위에 '45개의 들보’를 한 줄에 15개씩 얹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기둥은 네 줄인데 들보는 세 줄이므로 서로 조합이 맞지 않아 보입니다. 둘째, ‘들보’대신 ‘골방’(는 곁방)으로 읽고(RSV, NAS, 현대어성경, 공동번역), 45개를 기둥의 수로 읽는다면, 세 줄 총 45개의 ‘기둥’ 위에 골방들이 있는 형태입니다(RSV). 또는 각 충(줄)에 15개씩 ‘45개의 골방들’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NLT). 이처럼 골방으로 읽는 경우, 성전 각 층 삼면에 총 30개의 골방이 있는 것(겔 41:6)처럼 궁정에도 각층의 한 면, 양면, 또는 삼면에 적어도 15개의 부속 공간이 딸려 있는 구조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읽을 때 4-5절의 창문에 대한 설명도 좀 더 적절하게 이해됩니다. 궁의 각 층에는 창틀이 한 줄씩 있고, 각 층의 양쪽 끝에 창이 마주하고 있어, 채광과 환기에 적합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과 문설주는 사각형 틀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궁정 본체 앞에는 기둥들로 만든 주랑(입구, 현관)이 있었습니다. 이는 성전 앞의 주랑(6:3)과 놋 기둥(15-22절)을 연상시킵니다. 성전 앞주랑의 길이(20규빗)와 성전 너비가 같았듯이(6:3), 궁의 주랑의 길이도 궁의 너비와 같은 50규빗(23m)이며 너비는 30규빗(13.7m)이었습니다. 이 기둥들 앞에 또 주랑이 있으며, 그 앞에 다른 기둥들과 섬돌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섬돌”(6)은 무엇인지 정확치 않으며 ‘차양’으로 보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소개되는 건물은 “보좌의 주랑”(보좌의 전당) 또는 “재판하는 주랑”(재판의 전당)입니다(7). 이름 그대로 왕의 재판이 열리는 공적 개방 장소입니다. 3장에서 소개된 송사가 이곳에서 열렸을 것입니다. 이곳은 지성소와 성소 사이같이 마루에서 천장까지 백향목으로 덮였습니다(6:16). 뿐만 아니라 10:18-20을 참고하면, 이곳은 왕의 권위와 권세가 한껏 드러나는 장소였습니다. 보좌는 상아로 제작 후 순금으로 입혔고, 보좌 아래에 금 발판과 여섯 계단을 놓았으며, 계단 양쪽에 사자 형상을 세워 왕의 출입을 호위했습니다.

(2) 솔로몬의 왕궁들(8-12)

공적 건물 소개에 이어 왕과 왕비의 침전 등 사적 공간이 소개됩니다. 솔로몬이 기거할 궁은 ‘재판의 주랑’ 뒤의 다른 뜰에 따로 건축했습니다. 건축 양식은 다른 건물과 동일했습니다. 솔로몬은 아내인 바로(이집트 왕)의 딸을 위한 별궁도 지었습니다. 솔로몬은 이 여인 외에도 정략결혼을 통해 여러 이방 공주를 아내로 맞았기에 이들의 궁들도 무수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오직 그녀와 별궁만을 소개하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애굽의 영향력과 당시 애굽 공주의 위세가 컸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3:1을 시작으로 계속 언급되는 바로의 딸(9:24; 11:1)의 존재는 열방과의 동맹, 이방 여인과의 결혼, 우상숭배로 치닫는 솔로몬의 위태로운 신앙과 국정, 나아가 이스라엘의 분열과 멸망으로 이어지는 전조로도 이해됩니다. 한편, 솔로몬이 지은 궁은 최상의 목재와 더불어 최고의 석재를 사용한 점이 부각됩니다. 목재와 마찬가지로 돌들도 성전 건축에 사용된 것과 같았습니다(5:7). 모두 크고 귀한 돌들이며, 치수에 맞게 돌의 앞면과 뒷면(“안팎”, 9)을 톱으로 잘라 다듬어, 초석에서 처마까지와 밖에서 큰 뜰에까지 사용했습니다. 초석에는 10규빗(4.6m), 8규빗(3.7m) 되는 큰 돌을 사용했습니다. 그 돌들 위에 돌과 백향목을 함께 사용하여 견고한 궁을 지었습니다. 큰 뜰 주변에는 다듬은 돌 세 층과 백향목 판자 한 층을 놓아 벽을 쌓았습니다. 이는 성전 안뜰과 주랑에 있는 담과 같은 형태입니다. 이처럼 솔로몬의 왕궁은 모든 면에서 성전 건축에 버금가는 위엄과 화려함을 갖추었습니다. 최상의 자재, 웅장하고 화려한 궁의 묘사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약속한 부와 영광을 이뤄주셨음을 입증합니다(3:11-13).


성전과 성전은 건축도 배치도 나란히 배열되어 있는 데다 재료나 건축 방식도 유사합니다. 신앙은 무엇이 본이고 말이며, 선이고 후인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전도되지 않도록 방심도 자만도 하지 말고 안팎의 위험 요소를 경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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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6-02)


성전을 완성하는 솔로몬

열왕기상 6장 14-38절


주께서는 성전에서 장사치들을 내쫓으며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 하셨습니다. 바울은 구별된 삶을 강조하면서 우리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하였습니다(고후 6:16).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가 곧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전입니다. 성전이 드러나야 할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본문은 성전의 외부 구조를 설명한 후에, 내부를 장식하는 배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성전 외소는 백향목 널판을 씌운 후 그룹과 종려와 핀 꽃무늬를 나무에 새기고, 그 위에 금칠을 하였습니다. 언약궤가 놓인 지성소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가장 영광스런 장소였습니다. 성전을 하신 궁극적인 이유는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함 입니다.

 

성전 내부 장식(14-28)

성소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거룩한 곳입니다. 지성소가 정육면체로 지어진 것은 하나님의 완전성을 상징합니다. 반면 성소의 구조는 직육면체이며 성전 뜰 밖으로 나가면 완전한 모형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성도는 지성소를 통해 하나님의 지극히 거룩하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는 지극히 거룩하신 하나님과 교제를 누리는 존재이기에 그 자신도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14솔로몬이 성전 건축하기를 마치고 15백향목 널판으로 성전의 안벽 곧 성전 마루에서 천장까지의 벽에 입히고 또 잣나무 널판으로 성전 마루를 놓고 16또 성전 뒤쪽에서부터 이십 규빗 되는 곳에 마루에서 천장까지 백향목 널판으로 가로막아 성전의 내소 곧 지성소를 만들었으며 17내소 앞에 있는 외소 곧 성소의 길이가 사십 규빗이며 18성전 안에 입힌 백향목에는 박과 핀 꽃을 아로새겼고 모두 백향목이라 돌이 보이지 아니하며 19여호와의 언약궤를 두기 위하여 성전 안에 내소를 마련하였는데 20그 내소의 안은 길이가 이십 규빗이요 너비가 이십 규빗이요 높이가 이십 규빗이라 정금으로 입혔고 백향목 제단에도 입혔더라 21솔로몬이 정금으로 외소 안에 입히고 내소 앞에 금사슬로 건너지르고 내소를 금으로 입히고 22온 성전을 금으로 입히기를 마치고 내소에 속한 제단의 전부를 금으로 입혔더라 23내소 안에 감람나무로 두 그룹을 만들었는데 그 높이가 각각 십 규빗이라 24한 그룹의 이쪽 날개도 다섯 규빗이요 저쪽 날개도 다섯 규빗이니 이쪽 날개 끝으로부터 저쪽 날개 끝까지 십 규빗이며 25다른 그룹도 십 규빗이니 그 두 그룹은 같은 크기와 같은 모양이요 26이 그룹의 높이가 십 규빗이요 저 그룹도 같았더라 27솔로몬이 내소 가운데에 그룹을 두었으니 그룹들의 날개가 퍼져 있는데 이쪽 그룹의 날개는 이쪽 벽에 닿았고 저쪽 그룹의 날개는 저쪽 벽에 닿았으며 두 날개는 성전의 중앙에서 서로 닿았더라 28그가 금으로 그룹을 입혔더라(14-28)

14절의 “솔로몬이 성전 건축하기를 마치고”는 1-13절의 성전 외부 공사의 완료를 알리며, 15절부터는 성전 내부 공사를 기록합니다. 외부 공사와 마찬가지로 솔로몬(또는 솔로몬을 지칭하는 ‘그’)은 내부 공사에 관한 모든 행위(지었다, 아로새겼다, 입혔다 등)의 주체로 나와 그가 건축의 총 책임자임이 부각됩니다. 한글 번역에는 주어가 대부분 생략됐으므로(15,16,19,20,28 등) 이 점을 유의해야 합니다. 성막 제작의 주체를 모세로 돌렸듯이, 솔로몬을 성전 건축의 주체로 돌리는 것은 첫째, 그가 이스라엘 백성의 대표임을 나타냅니다. 둘째, 솔로몬을 성막 제작자 모세와 동일시함으로써 이들을 불러 자신의 거처를 만들게 한 분이 하나님이심을 상기시킵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한 ‘네 아들이 내 이름을 위해 성전을 건축할 것이라’(삼하 7:12-13)는 말씀을 성취하고 계심을 함축합니다. 넷째, 솔로몬이 하나님의 약속과 다윗의 명령(대상 28:9-10)을 따라 순종하고 있음을 증명합니다.

이제 성전 내부의 공정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성전 외부(벽)는 돌로 지었고, 성전 내부는 모두 나무로 둘렀습니다(15). 성소와 지성소의 마루는 잣나무 널판으로 깔았으며, 마루부터 천장까지는 백향목 널판으로 둘렀습니다. 백향목과 잣나무는 모두 두로 왕 히람과의 조약을 통해 공급받았습니다(5장). 성전 내부를 덮은 백향목 널판에는 박, 핀 꽃, 그룹, 종려의 문양을 새겨 아름답게 장식했습니다(18, 29). 돌로 만든 성전 벽을 백향목으로 빼곡하게 덮었으므로 내부에서 돌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성전의 가장 뒤쪽 (서쪽)부터 지성소와 성소가 위치했습니다. 지성소는 문자적으로 ‘거룩한 중에 가장 거룩한 집’입니다. 가장 안쪽에 자리했으므로 “내소”(데비르)로도 불렀고, 성소는 “외소”(헤칼)로 불렀습니다(16-17). 내소의 길이는 20규빗(9m), 외소는 40규빗(18.3m)으로, 외소가 두 배 길었습니다. 두 방 사이는 백향목 널판으로 마루에서 천장까지 막아 분리했습니다. 또 성막처럼(출 26:31-33), 화려한 실로 직조하고 그룹의 문양을 수놓은 휘장을 함께 드리웠습니다(대하 3:14). 내소는 여호와의 언약궤를 두기 위한 장소입니다(19). 언약궤는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의 대표적 성물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을 기록한 두 돌판이 들어 있어(8:9) 상호 간의 긴밀한 언약관계를 함축합니다. 내소의 내부는 길이, 너비, 높이 모두 20규빗(9m)인 정육면체입니다. 성전의 높이가 30규빗(13.7m)임을 참작하면 내소에 10규빗(4.6m)의 빈 공간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역대기에서 내소 위의 다락들을 언급한 것(대하 3:9)을 보면, 큰 다락들이 자리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다락들이 성전의 삼면을 둘러싼 다락들처럼 5규빗(2.3m)의 높이였다면(10), 나머지 5규빗의 빈 공간은 내소의 하단이 차지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 경우라면, 왕좌를 궁정의 마루에서 높게 띄우듯 내소의 마루를 건물 바닥에서 높게 띄움으로써 하나님의 높으심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상징적으로 표현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편 내소의 내부 전체는 금으로 입혀 고귀함을 더했습니다(20; 대하 3:8). 내소의 휘장 밖(출 30:6), 즉 외소(성소)에 놓인 분향단(“제단”)도 정금으로 입혔습니다(20,22). 내소 앞은 금사슬로 장식하고, 외소의 내부도 금으로 입혔습니다(22,29-30). 내소 안에는 그룹(천사) 형상의 두 조형물을 두었습니다(23-28). 그룹은 감람나무로 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제작했고, 겉은 금으로 입혔습니다. 이 그룹들은 언약궤 위에 둔 작은 그룹들이 아니라 새 성전에 새롭게 제작된 큰 형상입니다. 각 높이는 10규빗(4.6m)이며, 두 날개는 각각 5규빗(2.3m)이었습니다. 두 그룹은 내소의 중앙에 위치했고(27), 외소(동쪽)를 향해 서 있었습니다(대하 3:13). 그룹들의 날개는 좌우 총 20규빗(9m) 길이로 펼쳐져 있어, 같은 규격인 내소의 양 벽에 닿았으며, 각 그룹의 한쪽 날개가 중앙에서 서로 맞닿았습니다(27).

 

성전 외소 장식(29-36)

성도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자녀로서 성결한 삶을 살아갑니다. 더불어 하나님의 영광과 위대하심으ㄹ 찬양하며 선포합니다. 하나님의 집은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곳일 때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교제하는 감격을 날마다 누리며 기뻐하는 성도는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영광을 감추고 살아갈 수 없습니다.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날마다 자신이 경험하고 교제하는 하나님을 입술로 고백하며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 합니다.

29내 외소 사방 벽에는 모두 그룹들과 종려와 핀 꽃 형상을 아로새겼고 30내외 성전 마루에는 금으로 입혔으며 31내소에 들어가는 곳에는 감림나무로 문을 만들었는데 그 문인방과 문설주는 벽의 오분의 일이요 32감람나무로 만든 그 두 문짝에 그룹과 종려와 핀 꽃을 아로새기고 금으로 입히되 곧 그룹들과 종려에 금으로 입혔더라 33또 외소의 문을 위하여 감람나무로 문설주를 만들었으니 곧 벽의 사분의 일이며 34그 두 문짝은 잣나무라 이쪽 문짝도 두 짝으로 접게 되었고 저쪽 문짝도 두 짝으로 접게 되었으며 35그 문짝에 그룹들과 종려와 핀 꽃을 아로새기고 금으로 입히되 그 새긴 데에 맞게 하였고 36또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로 둘러 안뜰을 만들었더라(29-36)

29-35절은 성전 내부(29-30)와 문들(31-35)을 설명하며, 특히 같은 문양을 새기고 금으로 입혔음을 공통적으로 묘사합니다. 이는 건물의 통일감과 고귀함과 아름다움을 드높입니다. 내부 장식으로는 내소와 외소 사방 벽에 그룹, 종려, 핀 꽃 문양을 새겼습니다. 잣나무로 정렬한(15) 성전 마루는 모두 금으로 입혔습니다. 그룹, 나무, 꽃 문양과 금장식은 에덴동산을 상기시키며 영광과 풍요로움을 드러냅니다(창 2:9-14). 또한 내소와 외소에 각각 접이식 문짝 두 개를 달았으며(34; 겔 41:23-24), 내소의 문은 감람나무로, 외소는 잣나무로 제작했습니다. 내소, 외소의 각 문짝에는 성전 내부에 새긴 것과 동일한 문양을 새기고, 문양이 정교히 드러나도록 형태에 맞춰 금으로 입혔습니다(32,35). 내소의 문인방과 문설주는 벽의 오분의 일(31), 외소의 문설주는 사분의 일이라고 소개되는데(33), 이는 크기나 각진 형태를 가리키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나머지 36절은 성전 본체를 둘러싼 뜰에 대한 설명입니다. 뜰은 적어도 두 군데이며(왕하 21:5;대하 20:5), 역대기는 제사장 뜰과 큰 뜰을 소개합니다(대하 4:9). ‘제사장 뜰’은 ‘안뜰’(36)과 ‘위 뜰’(렘 36:10)과 동일한 공간으로 보입니다. 안뜰이 있다는 것은 바깥뜰도 있음을 전제하고, 위 뜰은 안뜰의 고도가 바깥뜰보다 높음을 알려줍니다. ‘바깥뜰’은 ‘큰 뜰’로도 불립니다. 뜰은 용도와 모이는 회중에 따라 나뉘기도 합니다. 번제단, 바다, 물두멍이 위치한 안뜰에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장과 레위인의 주도 하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바깥뜰은 절기나 예배 등으로 군중이 모일 때 사용했습니다. 안뜰의 벽(담)은 성전 외벽처럼 채석장에서 미리 재단해 온 돌을 사용했습니다. 담의 구조는 돌을 수평으로 세 켜 쌓고 그 위에 백향목 두꺼운 판자를 한 겹 더 댄 형태로 보입니다(36; 7:12; 스6:4). 돌들 사이에 나무판자를 끼워 넣음으로써 진동이나 지진에 대응하는 목적이었을 것입니다. 이 담은 안뜰과 바깥뜰 사이에 세운 담이고 그리 높지 않아, 울타리와 같이 바깥뜰에서 안뜰을 바라볼 수 있도록 한 형태였을 것입니다. 역대기를 참고하면 뜰 바닥에는 박석을 깔았습니다(대하 7:3). 한편 바깥뜰에는 제사장들이나 레위인들을 위한 골방들이 돌려 있었고(대상 23:28; 28:11; 왕하 23:11; 렘 36:10), 바깥뜰의 문들은 놋으로 입혀 장착했습니다(대하 4:9). 성전의 본 입구는 성막처럼(출 27:13-16) 동쪽에 문이 나 있었습니다(겔 11:1).

 

성전 건축이 완성됨(37-38)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도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최상의 헌신을 드리며 살아갑니다. 교회는 세상에 존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 가운데 확장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시길 바랍니다.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삶의 내용을 지녀야 합니다. 거룩함을 회복해야 할 때입니다. 더불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작정하고 시작한 일 가운데 중단된 일은 없습니까?

37넷째 해 시브월에 여호와의 성전 기초를 쌓았고 38열한째 해 불월 곧 여덟째 달에 그 설계와 식양대로 성전 건축이 다 끝났으니 솔로몬이 칠 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였더라(37-38)

성전 공사는 솔로몬 직위 4년 시브월에 시작하여 직위 11년 불월, 즉 여덟째 달에 마침으로 무려 기초를 놓은 지 7년 8개월이 세월이 걸렸습니다. 솔로몬이 ‘그 설계와 식양대로’ 성전을 건축하였다고 고백하는 것은 성전을 짓기 전에 솔로몬은 미리 성막을 기초로 설계도를 만들고 계획을 세웠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새로운 조형물이나 기물 또는 방 등을 추가로 제작했습니다. 또한 구조물의 규격을 증대하기도 하고, 기두나 기물의 수량을 눌려 만들기도 했습니다. 이 모든 것은 “그 설계와 식양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성전의 설계와 식양 자체는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성전의 주인으로서 직접 그가 거할 처소를 설계하셨습니다(대상 28:19). 또한 하나님께 순종했음을 함축합니다. 성막 축조의 경우 모세가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여호와의 명령대로 성말을 만들었는데(출 40:16), 성전 건축도 솔로몬이 여호와가 다윗에게 명한 대로 순종하여 완공했습니다. 성전은 거룩한 하나님의 처소이므로 건축자들도 순종함으로 거룩함을 확증해야 합니다. 이렇게 솔로몬은 드디어 예루살렘을 성전을 중심으로 한 예배 공동체로 만들었습니다.


성전인 교회가 장사치들의 탐욕으로 오염되지 않게 하고, 세상에 동화된 세속성을 경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인 우리는 지금도 공사중입니다.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하나님을 찬양하고 거룩하게 살면서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도록 오늘도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도들의 그늘이 되어 하나님의 백성을 보호하고, 의로움과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도와주고, 찾는 이에게 생명을 주는 향기와 영광과 거룩함이 가득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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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6-01)


성전을 건축하는 솔로몬

열왕기상 6장 1-13절


가장 크고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는데, 필요한 돈은 얼마나 있어야 합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 값을 ‘영원’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돈이 하나도 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장 크고 위대한 일은 모조리 헌신에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모든 것을 드릴 때, 그것을 값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큰 일이 일어납니다. 또한 크고 위대한 일을 이룰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그 요소들이 본문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솔로몬 제4년에 시작된 성전 건축이 7년 6개월 후 완공됨으로써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말씀이 성취됩니다. 성전은 3층 구조이며, 성전 앞에는 돌출된 입구가 있으며, 내부에는 성소와 지성소가 자리 잡고 있고, 바깥쪽에는 창문과 다락과 골방들이 붙어 있습니다. 성전 건축과 관련하여 여호와는 솔로몬에게 말씀에 대한 순종을 명합니다. 백성의 대표로서 왕이 하나님께 순종할 때 하나님께서는 백성 가운데 거하며 그들을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성전 건축의 시작과 성전의 외부 공사(1-6)

위대한 일을 시작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지혜를 취하고 당신의 삶 속에 실천할 때부터 시작됩니다. 그 위대한 일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솔로몬은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일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너무나도 놀랍고 위대한 일이라는 사실입니다. 그 일을 해 나가갈 때, 하나님께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지혜를 허락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잘 아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를 삶 가운데 거하게 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1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지 사백 팔십년이요 솔로몬이 이스라엘 왕이 된지 사년 시브월 곧 이월에 솔로몬이 여호와를 위하여 전 건축하기를 시작하였더라 2솔로몬 왕이 여호와를 위하여 건축한 전은 장이 육십 규빗이요 광이 이십 규빗이요 고가 삼십 규빗이며 3전의 성소 앞 낭실의 장은 전의 광과 같이 이십 규빗이요 그 광은 전 앞에서부터 십 규빗이며 4전을 위하여 붙박이 교창을 내고 5또 전의 벽 곧 성소와 지성소의 벽에 연접하여 돌아가며 다락들을 건축하되 다락마다 돌아가며 골방들을 만들었으니 6하층 다락의 광은 다섯 규빗이요 중층 다락의 광은 여섯 규빗이요 제 삼층 다락의 광은 일곱 규빗이라 전의 벽 바깥으로 돌아가며 턱을 내어 골방 들보들로 전의 벽에 박히지 않게 하였으며(1-6)

성전 건축 자체에 대한 설명을 담은 열왕기상 6장은 처음(1)과 마지막(37-38)에 건축의 시작과 완공 날짜를 알리며 한 단락을 형성합니다. 앞서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두로 왕 히람과의 조약을 성사시켜 건축 자재와 기술자들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5:1-12). 또한 자국민과 이방인 역군을 일으켜 건축 준비에 박차를 가했습니다(5:13-18). 이제 솔로몬은 통치 제4년(주전 966년) 제2월(시브월, 양력 4-5월) 2일(대하 3:2)에 실질적인 공사에 착수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왕이 숭배하는 신의 신전을 짓는 것은 왕권신수의 당위성을 증명하거나 전쟁의 승리를 준 신과 왕의 위세를 떨치기 위한 과업이었습니다. 솔로몬의 건축 목적으로는 앞서 히람에게 보낸 서신에서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일’이라 언급되었듯(5:3-5), 1-2절에도 ‘여호와를 위한 일’임이 다시금 부각됩니다. 여호와의 성전은 역대기에 따르면 예루살렘의 모리아 산 위에 건축되었습니다(대하 3:1).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둘 장소로 지정하신 곳입니다(대하 6:6). 모리아 산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친 곳(창 22:2),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나타나 기도에 응답하신 곳(대하 3:1)으로, 하나님의 임재와 응답이 깃든 상징적 장소입니다. 한편 저자는 성전 기공의 해가 이스라엘 자손이 이집트에서 나온 지 480 년이라고 전합니다(1). 480년의 수치를 액면 그대로 계산하면 출애굽의 연도는 주전 1446년입니다. 성전 기공과 출애굽 사건의 연결성에는 무엇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의 언약 관계가 두드러집니다. 여기에 함축된 의의로는 첫째,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상기시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스로 있는 자”로서 온 세상의 왕이십니다(출 3:14). 그런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 조상들의 신이 되셨고(출 3:15), 이스라엘을 자기의 언약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출 19:5). 또 다윗과 언약을 맺고, 그 왕국을 여호와의 나라로 삼으셨습니다(대상 28:5). 이제 친히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성전에 임하여 그들을 영원히 다스리실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심을 기억하게 합니다. 종살이 하던 땅에서 이스라엘을 구하신 하나님께서는 가나안에 정착한 그들을 열방과 이방신으로부터 보호하시는 분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언약을 신실하게 지키셨음을 일깨웁니다. 아브라함과 후손에게 약속한 대로(창 12:1-3; 26:3-4) 하나님게서는 이스라엘로 큰 민족이 되게 하셨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또 임재와 보살핌의 축복으로 그들과 동행하셨습니다. 과거 구름과 불기둥 속에, 성막에 임하신 하나님(출 13:21-22; 40:34-38)께서는 이제 성전에 임하실 것입니다. 넷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그의 말씀에 순종해야 함을 깨닫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백성”이 되는 길은 그에게 온전히 순종하는 것입니다(출 19:5-6). 2-10절은 성전의 구조, 규격 및 외부 공사를 소개합니다. 외벽, 다락, 지붕 등을 제외한 성전 내부 본체의 규격은 길이(가로) 60규빗(27m), 너비(폭, 세로) 20규빗(9m), 높이 30규빗(13.7m)으로 약 249제곱m입니다(2). 이는 성막의 두 배 규모인데, 현대의 거대한 교회 건물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작게 생각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전 본체의 용도가 현대 교회처럼 성도들이 모여 예배하는 장소가 아니라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제사, 분향 등의 소임을 담당하는 곳임을 고려하면 상당한 규모입니다. 당시 백성들은 제사장의 뜰(또는 안뜰)에서 제사를 드렸으며, 큰 무리가 모일 때에는 성전의 큰 뜰을 이용한 것 같습니다(대하 4:9; 렘 26:2). 성전 건물은 3층이며(8), 동에서 서로 들어가면서 주랑, 성소, 지성소 순서로 위치했습니다. “주랑”(3)은 성전의 입구 또는 현관에 해당하며, ‘낭실’(대하 3:4)이나 ‘복도’(대상 28:11)로도 불립니다. 주랑은 성소 앞에 튀어나온 구조이며, 길이는 성전 너비와 같이 20규빗(9m), 폭은 10규빗(4.6m)으로 약 41㎡입니다. 높이는 역대기에 의하면 120규빗(54m)입니다(대하 3:4). 다만 이 수치가 성전 높이(30규빗)보다 네 배나 높아, 몇몇 역본과 번역본은 20규빗으로 대치했습니다(3). 성전에는 창틀이 있는 붙박이 창문이 달렸는데(4), 어떤 생김새였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성소와 지성소의 삼면인 남쪽, 서쪽, 북쪽에는 외벽을 따라 각 층마다 다락을 짓고 골방을 마련했습니다. 에스겔 41:6에 따르면 골방은 각 층에 30개가 있었습니다. 골방의 용도는 제사장들의 식사와 옷 갈아입기, 제물 보관 등으로 추측됩니다(겔 42:13-14). 다락의 높이는 각 층 5규빗(2.3m), 총 약 7m로, 성전 높이(13.7m)의 반 정도에 달했습니다. 너비는 1-3층 각각 5규빗(2.3m), 6규빗(2.7m), 7규빗(3.2m)으로, 올라갈수록 1규빗씩(45㎝) 넓어집니다(6). 따라서 벽은 하층일수록 두꺼운 구조입니다. 이때 외벽 쪽으로 각 층마다 선반같이 턱을 내어, 골방의 들보들을 지지하게 했습니다. 이는 성전 본체 벽에 들보를 박는 것을 피하려는 대안이었습니다(6; 겔 41:6). 그러므로 공사 기간 동안에는 방망이(망치)나 도끼 등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건축에 필요한 돌들을 채석장에서 미리 규격에 맞게 재단하고, 다듬어서 갖고 와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조치는 ‘철 연장으로 성물의 돌을 다듬지 말라’는 규례(신 27:5; 수8:31)를 따른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큰 소음을 일으키는 여느 건축 현장과 달리 공사는 조용히 진행되었습니다. 골방 입구는 성전의 오른편([동남쪽]과 왼편[동북쪽; 겔 41:11])에 위치했고(8), 각 층에는 출입을 위해 계단이 설치되었습니다(8). 이는 성전 뜰에서만 골방으로 출입이 가능하고 골방에서 성소나 지성소로 연결되는 통로나 문이 없음을 나타냅니다. 이처럼 성전 본체의 공정을 일반 구조물과 달리 적용하는 것은 성전의 거룩함을 물리적, 상징적으로 보존하고 존중하려는 의도라 봅니다. 이제 9절의 “성전의 건축을 마치니라”는 완공을 알리는 것이 아니라 성전 본체와 골방 등 외부 공정의 완료를 뜻합니다. 이후 9-10절은 백향목 건축재를 사용한 공정을 보충적으로 설명합니다. 먼저, 성전 지붕은 백향목 서까래와 널판으로 덮었습니다. 그리고 성전 외벽의 삼면을 둘러 만든 다락방을 백향목 들보로 성전과 연결했습니다. 1-10절에서 성전 공사의 각 주체는 모두 솔로몬으로 나와 그가 건축의 대표자이자 총책임자임을 부각합니다.

 

솔로몬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11-13)

하나님의 지혜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순종할 때, 그것이 온전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어떻게 건축하라는 말씀을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대로 어떻게 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을 하나님의 방식대로 순종하지 않는다면 그 성전이 거룩한 전으로 채워질 수 없을 것입니다. 당신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다면, 그 하나님의 지혜를 따라 순종할 수 있는지를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11여호와의 말씀이 솔로몬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12네가 지금 이 성전을 건축하니 네가 만일 내 법도를 따르며 내 율례를 행하며 내 모든 계명을 지켜 그대로 행하면 내가 네 아버지 다윗에게 한 말을 네게 확실히 이룰 것이요 13내가 또한 이스라엘 자손 가운데에 거하며 내 백성 이스라엘을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더라(11-13)

11-13절은 솔로몬에게 임한 하나님의 조건적 약속을 소개합니다. 원문에서 11절의 첫마디는 ‘네가 건축하는 이 성전’이란 어구로, 이어 나오는 하나님의 계시를 성전 건축과 긴밀하게 연결시킵니다. 계시의 내용은 솔로몬에게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을 요구하고 이에 대한 축복을 약속하는 조건적 언약입니다. 조건절에는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이 세 문장으로 반복적으로 나와 강조되었습니다: ‘만일 네가 나의 법도들을 행하면’, ‘네가 나의 율례들을 들으면’, ‘네가 나의 모든 계명들을 행하기 위해 지키면’(12). 이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도 화답하듯 세 문장으로 설명됩니다. 첫째, 솔로몬이 하나님께 순종하면,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한 약속을 솔로몬에게 확실히 이루어주실 것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이 다윗과 맺은 언약(삼하 7:8-16) 및 다윗의 유언(2:2-4) 속에 언급된 ‘다윗 왕조의 존속’에 대한 것입니다. 이들 내용에도 다윗 왕조의 존속은 다윗 후손의 하나님에 대한 순종 여부에 달렸음이 이미 예고되었습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중에 거하실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실 것입니다. 둘째와 셋째 약속은 하나님의 임재와 보살핌을 확증합니다. 이스라엘은 특히 “내 백성”이라 나와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출 19:5)임을 상기시킵니다. 백성에 대한 약속은 그간 다윗 언약이나 다윗의 유언에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약속은 다윗 왕조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의 존속 또한 지도자의 순종을 기반으로 한 통치와 직결됨을 암시합니다. 이 계시는 순종만이 성전으로 상징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 길임을 일깨웁니다.


영광스런 성전을 가졌던 이스라엘은 결국 멸망했습니다. 성전이 갖는 의미보다는 성전이라는 형식을, 삶의 영광스러움보다는 규모를, 말씀에 합당한 내용보다는 외형을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성전다움은 주님의 법도를 따르고 율례를 행하며 계명을 지켜 행하는 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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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5-01)

 


성전 건축을 준비한 솔로몬

열왕기상 5장 1-18절


정보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많은 정보를 얻습니다. 옛날과는 다르게 많은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이나 신문 그리고 매스컴들을 통해서 새로운 정보를 얻습니다. 또 개인적으로 스스로 연구를 하는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정보가 홍수를 이룹니다. 그 많은 정보들 중에서 취사선택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 수많은 연구들과 정보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지혜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가지고 있는 정보들 중에 하나님의 지혜를 찾아서 그 지혜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길 바랍니다.

 

솔로몬은 하나님께 받은 지혜로 두로 왕 히람과 언약을 맺고 성전 건축 준비를 시작합니다. 다윗과 친분을 맺었던 히람은 솔로몬이 왕이 되자 사절단을 보냅니다. 이에 솔로몬은 여호와께서 태평한 왕정을 허락하심과 그에게 성전 건축 사명을 맡기신 점을 히람에게 상기시키며 레바논의 목재와 기술자들을 보내달라고 요청합니다. 히람은 솔로몬의 요청을 수락하고 그 대가로 궁정에 필요한 양식을 구합니다.

 

솔로몬의 성전 건축 준비(1-6)

리더의 자리라는 것은 어쩌면 자기가 중심이 되고 싶은 자리입니다. 리더가 되면 사람들의 이목이 자기에게로 몰립니다. 그래서 우쭐해지기 쉽습니다. 하지만 솔로몬은 철저히 신본주의자였습니다. 신본주의자는 생각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도 많지만, 철저히 하나님 중심으로 생각하고 움직이는 사람이 신본주의자입니다.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지만 자신은 하나님의 신하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렇게 했을 때 왕의 권위가 나타났습니다.

1솔로몬이 기름 부음을 받고 그 부친을 이어 왕이 되었다 함을 두로 왕 히람이 듣고 그 신복을 솔로몬에게 보내었으니 이는 히람이 평일에 다윗을 사랑하였음이라 2이에 솔로몬이 히람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3당신도 알거니와 내 부친 다윗이 사방의 전쟁으로 인하여 그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고 여호와께서 그 원수들을 그 발바닥 밑에 두시기를 기다렸나이다 4이제 내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게 사방의 태평을 주시매 대적도 없고 재앙도 없도다 5여호와께서 내 부친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 내가 너를 이어 네 위에 오르게 할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리라 하신대로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려 하오니 6당신은 영을 내려 나를 위하여 레바논에서 백향목을 베어내게 하소서 나의 종과 당신의 종이 함께할 것이요 또 내가 당신의 모든 말씀대로 당신의 종의 삯을 당신에게 붙이리이다 당신도 알거니와 우리 중에는 시돈 사람처럼 벌목을 잘하는 자가 없나이다(1-6)

하나님의 샬롬으로 평안을 누린 솔로몬은 아버지 다윗의 숙원이던 성전을 건축합니다. 당시로서는 성전 건축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건축을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은 물론이고 많은 물자와 인력이 필요했습니다. 성전 건축은 솔로몬이 했지만, 이미 다윗 때부터 시작했습니다. 지혜가 있는 솔로몬은 성전 건축을 위해 준비해 나갑니다.

본 5장은 솔로몬과 히람 간의 서신 내용을 시작으로 성전 건축의 준비 단계가 시작됐음을 알립니다. 두로 왕 히람(후람)은 솔로몬의 등극 소식을 듣고 축하 사절단을 보냈습니다. 두로는 지중해 연안에 위치한 베니게(페니키아, 현 레바논) 왕국의 항구 도시이자 국제 무역의 요지입니다. 예루살렘에서 북서쪽 약 230킬로미터에 위치했습니다. 저자는 히람이 솔로몬에게 사절단을 보낸 이유로 등극 축하만 아니라 히람이 평생에 다윗을 사랑했기 때문임을 부가적으로 설명합니다. 이 설명은 히람이 이미 다윗과 우호적인 동맹 관계를 맺고 있었음을 알리고, 그가 이런 관계를 솔로몬 대에까지 지속할 의향이 있음을 함축합니다. 이스라엘과 베니게 사이의 정치적 우호 관계는 히람이 주도적으로 시작했습니다. 다윗이 이스라엘 왕으로서 입지를 다지며 하나님의 함께하심으로 점점 강성해지자, 히람은 다윗에게 사절단과 더불어 백향목과 목수와 석수를 보내 그의 궁을 지어주는 호의를 보였습니다(삼하 5:11). 다윗은 이웃 나라 왕의 예기치 않은 관대한 행보를 통해 자신의 왕권과 이스라엘 왕국의 위상이 하나님에게서 비롯됨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삼하 5:12). 히람의 축하를 기회로 삼아 솔로몬은 성전 건축 자재를 요청하는 서신을 히람에게 보냅니다. 솔로몬은 하나님의 섭리 속에 달라진 당대의 상황을 히람에게 설명하며 성전 건축의 당위성을 주장합니다. 이 요청에서도 다윗과 히람의 관계는 보이지 않는 중재 역할을 합니다. 다윗 당시는 “사방의 전쟁”이 있었고 정복해야 할 나라가 많았습니다(3).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다윗과 함께하심으로써 다윗이 여러 전쟁에 승리하여 원수들을 발아래 제압할 수 있었습니다(삼하 5:10; 8장). 그 결과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의 경계(창 15:18)를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사방의 적들로부터 안식할 때 다윗은 성전을 짓고자 했습니다(삼하 7:1). 그러나 그는 많은 피를 흘렸기에 거룩한 성전의 건축자로 적합하지 않았습니다(대상 22:8).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청을 거절하는 대신 그의 아들 대에 성전 건축을 이룰 것이라 예고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현재 솔로몬에게 임한 “사방의 태평”(4)은 하나님이 성전 건축에 대한 약속(삼하 7:11-13)을 시행하실 때가 됐음을 알립니다. “태평”(안식)은 원수와 재앙이 발 디딜 틈 없는 평화로운 시기임을 뜻합니다. “원수”(사탄)는 ‘적대자’, ‘고발자’의 뜻이며, “재앙”은 ‘악의 발생’이란 의미로, 둘 다 전쟁이나 악재를 상징합니다(4). 다윗은 성전 건축과 관련한 하나님의 말씀을 솔로몬에게 전달하며 그가 과업을 담대히 시작해야 함을 일깨웠습니다. 또한 이 일에 하나님의 임재와 더불어 필요한 인재들과 백성의 지지가 있을 것을 알림으로써 용기를 주었습니다(대상 22:13; 28:20-21). 솔로몬은 히람에게 보내는 편지에 다윗의 하나님을 “내 하나님 여호와”로 부르며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경외를 은연중에 드러냅니다(4-5). 그는 하나님의 계획과 부친의 당부에 따라 그가 건축하게 될 성전이 오직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한’ 집이 될 것(3,5)임을 피력합니다. 성전 건축의 때가 되었음을 증명한 솔로몬은 히람에게 백향목 조달과 벌목꾼 파견을 요청합니다. 8절과 역대하 2:8에 의하면 잣나무와 백단목도 품목에 포함되었습니다. 백향목 또는 레바논 삼나무는 크고 곧을 뿐 아니라 잘 썩지 않고 병충해에 강해 최적의 건축재였습니다. 레바논 삼림에 이런 나무가 가득했습니다. 또한 6절의 “시돈 사람”으로 소개된 ‘나무에 대한 지식과 나무를 자르고 보관하고 운반하는 등 실용적인 기술을 가진자들’이 많았습니다. 시돈은 두로에서 북쪽 40킬로미터에 위치한 항구 도시입니다. 시돈 사람은 두로 사람처럼 베니게 사람들을 총칭합니다.

 

성전 건축을 위한 교역(7-12)

우리의 신앙을 보여주는 척도는 단순합니다. 주변을 살펴보면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뜨겁다면,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간직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없이 냉랭하다면 우리의 신앙을 점검해봐야 합니다. 설령 우리에게 하나님을 향한 열정이 있더라도, 간혹 우리의 열정이 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오늘 한국교회의 위기는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자신의 욕망의 벽을 넘지 못하는데서 비롯됩니다. 믿음이란 어떤 상황이나 시간, 인물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7히람이 솔로몬의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여 가로되 오늘날 여호와를 찬양할찌로다 저가 다윗에게 지혜로운 아들을 주사 그 많은 백성을 다스리게 하셨도다 하고 8이에 솔로몬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당신의 기별하신 말씀을 내가 듣고 내 백향목 재목과 잣나무 재목에 대하여는 당신의 바라시는대로 할찌라 9내 종이 레바논에서 바다로 수운하겠고 내가 그것을 바다에서 떼로 엮어 당신이 지정하는 곳으로 보내고 거기서 그것을 풀리니 당신은 받으시고 나의 원을 이루어서 나의 궁정을 위하여 식물을 주소서 하고 10솔로몬의 모든 원대로 백향목 재목과 잣나무 재목을 주매 11솔로몬이 히람에게 그 궁정의 식물로 밀 이만석과 맑은 기름 이십석을 주고 해마다 그와 같이 주었더라 12여호와께서 그 말씀대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고로 히람과 솔로몬이 친목하여 두 사람이 함께 약조를 맺었더라(7-12)

솔로몬의 서신으로 근황을 전해 들은 히람은 크게 기뻐하며 먼저 여호와를 송축합니다. 이방 왕이 이스라엘의 신을 찬양하는 것은 의례를 따른 것이겠으나 그의 찬양의 내용은 다윗과 그 아들 솔로몬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를 담고 있습니다. 첫째, 솔로몬을 다윗의 후사로 정하신 분이 여호와입니다. 이는 솔로몬이 다윗의 적법한 후사인 것뿐 아니라 하나님의 선택받은 왕임을 부각합니다. 둘째, 솔로몬은 많은 백성을 다스릴 “지혜로운 아들”입니다(7). 두로 왕의 이런 언급은 솔로몬의 지혜가 사방 나라에 소문이 났음을 입증합니다(4:31,34). 이는 또한 솔로몬의 지혜가 하나님께 받은 기도 응답의 결과임을 상기시킵니다(3:11-12).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지혜만 아니라 부귀영화까지 약속하셨으므로(3:13) 이 부분에 대한 기대도 상승됩니다.

히람은 솔로몬의 교역 요구에 흔쾌히 협조합니다. 이스라엘은 다윗의 정복 활동과 솔로몬의 지혜를 통해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습니다. 그러므로 솔로몬과의 교류는 히람에게 있어 단순히 우호 관계의 유지만 아니라 개인적 명성과 국가적 평화를 얻고, 교역 확대나 무역로 개발 등을 통한 경제적 유익을 창출하는 기회가 됩니다. 히람은 솔로몬이 요구한 백향목과 잣나무에 대해서 솔로몬이 바라는(헤페쯔) 대로 할 테니(8), 그 대가로 자신의 원(헤페쯔) 대로 식량을 달라고 요청합니다(9). 목재 운반에 대해서는 레바논에서 벌목 후 뗏목으로 엮어 바다(지중해)를 이용해 이스라엘의 항구 욥바(대하 2:16)로 보낼 것을 약조합니다. 성전 건축을 위한 백향목 공급, 운송 노선, 대가로 지급한 음식물, 이 세 조합은 페르시아 고레스 당시 이스라엘의 귀환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할 때에도 등장하여(스 3:7), 두 사건의 연결고리를 보여줍니다. 히람은 솔로몬의 모든 원(헤페쯔)대로 재목을 보냈습니다(10). 두 왕 사이에 반복된 ‘원대로’라는 표현은 쌍방 간 흡족한 교역이 이루어졌음을 부각합니다. 솔로몬은 히람의 궁정을 위해 밀 20,000고르(440만 리터)와 맑은 기름 20고르(4,400리터)를 제공했습니다. 이 교역은 성전과 왕궁 건축 기간 20년 내내, 매년 이루어졌습니다(11; 7:2). 열왕기 저자는 솔로몬이 성전 건축준비로 히람과 친목(샬롬)하고 조약을 맺은 사건을 ‘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증거’라고 평가합니다(12). 이로써 두로 왕의 언급(7)에 이어, 솔로몬의 지혜가 다시금 부각됩니다. 성전 건축을 준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임한 사건은 하나님께서 성막 제작자들에게 지혜를 주어 물품을 제작하도록 하신 사건(출 31:1-11; 35:10-36:1)과 같은 맥락입니다. 성막 제작과 마찬가지로 성전 건축도 하나님이 그의 섭리와 계획 가운데 이루어가심을 입증합니다.

 

성전 건축에 참여한 역군들(13-18)

삶의 터전은 늘 척박합니다. 이런 저런 척박함이 항상 우리에게 포기하기를 권합니다. 그때 주저앉아 포기할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이라는 토양을 하나님의 열정으로 기경해야 합니다. 치열하게 자신의 허락된 척박한 삶을 갈아엎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역사 속에서 먼지처럼 사라지지 않고, 그의 삶과 열정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오대양 육대주를 넘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삶을 경험하길 원하는 사람들에게 전이되었습니다.

13이에 솔로몬왕이 온 이스라엘에서 역군을 불러 일으키니 그 역군의 수가 삼만이라 14솔로몬이 저희들을 한 달에 일만인씩 번갈아 레바논으로 보내매 저희들이 한 달은 레바논에 있고 두 달은 집에 있으며 아도니람은 감독이 되었고 15솔로몬에게 또 담군이 칠만인이요 산에서 돌을 뜨는 자가 팔만인이며 16이 외에 그 역사를 동독하는 관리가 삼천 삼백인이라 저희가 일하는 백성을 거느렸더라 17이에 왕이 영을 내려 크고 귀한 돌을 떠다가 다듬어서 전의 기초석으로 놓게 하매 18솔로몬의 건축자와 히람의 건축자와 그발 사람이 그 돌을 다듬고 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재목과 돌들을 갖추니라(13-18)

솔로몬은 성전 건축의 역군으로 이스라엘인 3만 명을 소집했습니다. 그리고 1만 명씩 한 달은 레바논에, 두 달은 이스라엘에 머물게 하여, 1년에 총 네 달을 레바논에서 일하도록 했습니다. 이들의 감독자는 다윗 통치 후기부터 강제노역을 총괄한 아도니람이었습니다(4:6;삼하 20:24). 노역을 위해서는 짐꾼 7만 명과 산에서 돌 뜨는 자 8만 명, 총 15만 명을 모았고, 3,300명의 관리자를 두었습니다. 이들 모두는 인구조사를 통해 계수된 이방인이었습니다(대하 2:17). 이들은 노예로서(9:21-22) 성전 기초석으로 사용될 큰 돌들과 귀한 돌들을 산에서 떼어내는 일을 맡았습니다. 여기에 솔로몬과 히람의 건축자들, 그 사람들이 목재와 돌들을 전문적으로 다듬는 일을 담당했습니다. 다윗도 성전 건축을 위해 이스라엘 내 이방인 거주자를 계수하여, 돌 다듬는 일을 시켰습니다(대상 22:2). 이 외에도 금은, 놋과 철, 백향목, 돌 등 무수한 재산을 바쳤습니다(대상 22:3-4, 14-16). 하나님의 은혜 안에 다윗의 헌신, 히람의 협조, 솔로몬의 순종, 백성의 참여가 함께하여 성전 공사가 순조롭게 시작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을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맡겨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일은 감당할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그 사역을 잘 감당하기 위해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혼자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달란트를 통해 사역을 이루어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협력이 필요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공동체 안에 평화를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서로를 인정해주고 칭찬하는 일들을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사항은 일하는 사람만 너무 혹사 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우려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공동체를 통해 날마다 부흥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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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4-02)


지혜로 번영을 이룬 솔로몬

열왕기상 4장 20-34절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허락하신 풍성한 은혜를 맛보신 적입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헤아릴 수 없고, 끝없이 흘러넘치는 은혜를 누리며 살아가길 원합니다. 당신도 그 은혜 속에서 살아보고 싶지 않습니까? 하지만 복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런 큰 복이 올 때, 하나님의 뜻대로 누릴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번 그 풍성한 복의 세계로 나가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셨습니다. 그 결과 솔로몬의 시대는 번영을 이루었습니다. 이러한 모든 기초는 하나님의 지혜로 되어진 일들입니다. 이스라엘은 매우 막강한 강대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나라들로부터 부러움을 샀습니다. 경제적, 군사적으로 부강한 나라로 하나님께서 우뚝 세워 주셨습니다.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은 부강한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솔로몬의 부귀영화와 지혜(20-34)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풍요로운 시대는 솔로몬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는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 안에서 평화롭고 즐겁게 살아가는 시대였습니다. 그 풍요로움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간 솔로몬의 지혜에 있습니다.

20유다와 이스라엘의 인구가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매 먹고 마시며 즐거워하였으며 21솔로몬이 하수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 지경에 미치기까지의 모든 나라를 다스리므로 그 나라들이 공을 바쳐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섬겼더라 22솔로몬의 일일분 식물은 가는 밀가루가 삼십석이요 굵은 밀가루가 육십석이요 23살찐 소가 열이요 초장의 소가 스물이요 양이 일백이며 그 외에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살찐 새들이었더라 24솔로몬이 하수 이편을 딥사에서부터 가사까지 모두 다스리므로 하수 이편의 모든 왕이 다 관할한바 되매 저가 사방에 둘린 민족과 평화가 있었으니 25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 26솔로몬의 병거의 말의 외양간이 사만이요 마병이 일만 이천이며 27그 관장들은 각각 자기 달에 솔로몬왕과 왕의 상에 참예하는 모든 자를 위하여 먹을 것을 예비하여 부족함이 없게 하였으며 28또 저희가 각기 직무를 따라 말과 준마에게 먹일 보리와 꼴을 그 말의 있는 곳으로 가져왔더라 29하나님이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심히 많이 주시고 또 넓은 마음을 주시되 바닷가의 모래 같이 하시니 30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애굽의 모든 지혜보다 뛰어난지라 31저는 모든 사람보다 지혜로와서 예스라 사람 에단과 마홀의 아들 헤만과 갈골과 다르다보다 나으므로 그 이름이 사방 모든 나라에 들렸더라 32저가 잠언 삼천을 말하였고 그 노래는 일천 다섯이며 33저가 또 초목을 논하되 레바논 백향목으로부터 담에 나는 우슬초까지 하고 저가 또 짐승과 새와 기어 다니는 것과 물고기를 논한지라 34모든 민족 중에서 솔로몬의 지혜의 소문을 들은 천하 모든 왕 중에서 그 지혜를 들으러 왔더라(20-34)

솔로몬의 통치는 하나님이 약속한 지혜와 부귀영화가 실현되는 장이 됩니다. 앞에서는 솔로몬이 하나님의 지혜로 자국민(3:16-28)과 정부와 지방(4:1-19)을 치리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여기서는 솔로몬의 통치로 평화와 풍요가 넘침을 기술하고, 솔로몬의 통치 영역(20-28)과 지혜의 범위(29-34)가 열방에까지 뻗어나감을 묘사합니다.

(1) 솔로몬의 부귀영화(20-28)

솔로몬이 하나님이 주신 지혜로 다스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양적, 질적 번영을 누립니다(20). 이스라엘은 바닷가의 모래처럼 번성했습니다. 20,25절은 앞서 사용한 “온 이스라엘”(1, 7) 대신 “유다와 이스라엘”이란 어구로 이스라엘 전체를 지칭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번성을 비유한 “바닷가의 모래 같이 많게 되매”(20)라는 표현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창 22:17)입니다! 하나님꼐서는 이처럼 신실하게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이 약속이 실현되기까지 아브라함 때부터 대략 천 년이 흘렀기에 인간의 눈에 더딘 것처럼 보이나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그가 정한 때에 성취됩니다. 둘째, 이스라엘 백성의 삶은 안전, 풍요, 만족감으로 충만했습니다.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는 삶’(20)은 인생에서 누릴 수 있는 하나님의 선물이며(전 3:13;8:15),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축복이 실현됐음을 알립니다(신 12:7). 솔로몬은 자국만 아니라 이스라엘 사방의 모든 나라를 다스림으로써 국제적 위세와 평화를 유지했습니다(21, 24). 21절에서 솔로몬의 통치 반경은 “그 강(유브라데)에서부터 블레셋 사람의 땅에 이르기까지와 애굽 지경에 미치기까지의 모든 나라”로 소개됩니다. 유브라데 강은 지리적으로 이스라엘의 북동쪽, 블레셋은 서쪽, 이집트는 남쪽 경계를 가리킵니다. 이 어구는 24절의 “딥사(유브라데 강의 한 성읍)에서부터 가사 (블레셋 성읍)까지” 또는 8:65의 “하맛 어귀에서부터 애굽 강까지”와 같은 의미입니다. 이 남북의 경계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 경계에 들어맞습니다(창 15:18). 저자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선조 아브라함에게 예고한 수많은 자손(20)과 땅(21)의 언약을 솔로몬 대에 이루셨음을 증명하며, 그의 신실하심을 드높입니다. 솔로몬은 이 열방들에게 종주권을 행사하고 조공을 받았습니다. 이는 다윗이 블레셋, 아람, 모압, 암몬, 에돔, 아말렉, 소바 등과 전쟁을 치렀고,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여 승리를 주셨기 때문입니다(삼하 8장). 종주국의 왕이 죽으면 속국의 배반도 잇따르기 마련인데(왕하 1:1), 솔로몬의 지혜와 국제적 위상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섭리가 있었기에, 다윗의 죽음 이후에도 솔로몬은 이방 나라를 계속 통제할 수 있었습니다. 물론 후에 소바와 에돔이 솔로몬을 배반하지만 이는 솔로몬의 불순종의 결과였습니다(11장). 한편 24절도 21절과 같이 솔로몬이 열방을 통치하는 군주임을 재차 설명합니다. 21절의 경제, 정치, 외교와 관련한 양적 번영에 덧붙여 24절은 솔로몬(‘평화’) 자신의 이름처럼 그에게 사방으로부터 ‘평화’(샬롬)가 찾아왔음을 설명하며 질적 형통을 묘사합니다. 이 내용은 하나님이 솔로몬에 대해 다윗에게 이미 예고한 ‘주변 모든 대적에게서 평온(안식)을 얻게 할 것’(대상 22:9)이라는 약속 뿐 아니라 이전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착 후에 이뤄주신다고 예고한 ‘사방 대적에 대한 승리, 평안과 안식’(신 12:10)의 약속이 문자 그대로 실현되었음을 증명합니다. 22-23, 26-28절은 솔로몬 왕실 군대가 공급받는 풍요로운 식량과 공급책을 소개함으로써 하나님께서 약속한 부귀영화의 실체를 증명합니다. 왕실에 공급된 양식으로는 가는 밀가루 30고(6,600리터), 굵은 밀가루 60고르(13,200리터), 사육한 소(“살진 소”) 10마리, 초장의 소 20마리, 양 100마리, 암수사슴, 살진 새들이 소개되었습니다. 조공(21)과 함께 지방 관장들이 맡은 달에 왕실 식탁에 부족함 없는 식료품을 공급했습니다(27). 또한 솔로몬의 군대는 병거의 말 외양간이 4만, 마병이 1만 2천명이었으며(26), 말의 먹이도 각 지방이 담당했습니다(28). 솔로몬이 사방 나라를 지배하여 평화를 누리므로 이스라엘 백성은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21, 25절에서는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라는 어구가 덧붙여 있어 솔로몬의 자국 및 타국의 통치로 인해 나라 안팎에서 평화가 유지되었음을 강조합니다. “단에서부터 브엘세바”(25)는 각각 이스라엘의 북쪽, 남쪽의 경계로서 이스라엘 전역을 상징하는 전통적 표현입니다(삿 20:1; 3:10). 이곳에서 이스라엘이 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아래 평안히 살았다는 말은 안전, 평화, 풍요로움을 누렸다는 의미입니다. 이 또한 하나님께서 미리 다윗에게 ‘솔로몬 생전에 이스라엘에게 평안과 안일함을 주실 것’(대상 22:9)이라고 한 약속이 성취됐음을 보여줍니다.

(2) 솔로몬의 지혜(29-34)

솔로몬이 누린 부귀영화와 태평성대의 기반은 하나님께 받은 지혜로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지혜와 지극히 큰 총명과 바닷가의 모래 같은 넓은 마음을 주셨습니다(29). “총명”(테부나)은 ‘이해력’, ‘판단력’, ‘통찰력’의 의미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것은 솔로몬의 기도(3:9-13)만 아니라 다윗의 기도에 대한 응답이었습니다. 다윗은 솔로몬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명한 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분별력과 통찰력을 기원했습니다(대상 22:12-13). 솔로몬의 지혜가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은 3장의 재판 사건을 통해 온 이스라엘에 알려졌습니다(3:28). ‘바닷가의 모래 같은 마음의 넓음(또는 넓이)’에서 ‘마음’은 감정이 아닌 ‘지식과 지혜의 원천’으로서의 마음입니다. 이 표현은 수많은 모래가 해변에 넓게 펼쳐져 있듯이 솔로몬의 지식과 지적 능력이 광범위하고 끝없음을 뜻합니다. 특히 솔로몬의 지혜는 당시 지혜로 유명한 동방 사람들, 애굽과 이스라엘 현자들보다 뛰어났습니다. 여기서 동방 사람은 메소포타미아 및 에돔과 아라비아 등지까지 포함합니다. 에돔의 도시인 데만(드만)도 지혜와 모략 있는 자들로 알려졌습니다(옵 1:9; 렘 49:7; 욥 2:11). 메소포타미아 수메르의 격언들을 비롯해 애굽에서도 프타호텝(주전 2450년), 메리카레, 아메네모페(주전 1100년경) 등의 교훈과 가르침 등 많은 지혜문학과 그 밖의 학문의 발전상을 보여줍니다. 성경에서도 소안이나 놉(멤피스)의 지혜가 언급되었습니다(사 19:11-13). 또한 솔로몬의 지혜는 이스라엘 내 현자로 소문나 있던 예스라(에스라) 사람 에단이나 마홀의 아들들인 헤만, 갈골, 다르다보다도 뛰어났습니다. 에단, 헤만, 갈골, 다라(다르다?)라는 이름은 유다와 다말 사이에 난 세라의 아들로 소개되었습니다(대상 2:6). 그러나 31절에서 에단을 마홀의 아들이 아닌 예스라인으로 특정 짓는 것으로 보아 그는 시편 89편의 표제에 등장하는 ‘에스라인 에단’으로 추정됩니다. 그 경우라면 에단은 다윗 당시 성전의 찬송과 악기 연주 등에 봉사하던 자입니다(대상 15:19). 또한 에단과 함께 성전 음악에 봉사하던 자들 중에도 헤만이란 인물이 있었고, 시편 88편의 표제에 ‘에스라인 헤만’으로 나옵니다. 이들 넷의 정확한 신원은 알 수 없지만 그들이 이스라엘의 현자로 정평이 났음은 분명합니다. 이 같이 솔로몬의 지혜는 지혜의 보고로 알려진 고대 열방이나 이스라엘의 현자들보다 더 출중했습니다(31). 그는 3,000편의 잠언, 1,005편의 노래를 말했고, 초목으로는 크고 높은 백향목부터 작은 식물인 우슬초까지 논했고, 천지와 물에 사는 생물들에 대해 논했습니다. 솔로몬의 지적 능력은 하나님이 바닷가의 모래와 같이 주신 무궁한 통찰력이 뒷받침됐음을 증명합니다(29). 그의 지혜는 천하에 소문이 났고, 왕들이 그의 지혜를 들으러 사신을 보냈습니다. 이런 사례는 시바 여왕의 방문에서도 입증됩니다(10:1-13). 이런 모든 내용은 솔로몬 전후에 그 같은 지혜를 소유한 자가 없을 것이라 하신 하나님의 말씀(3:12)이 참됨을 드러냅니다.


솔로몬의 지혜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습니다. 이는 정치, 경제, 군사, 외교, 문학에 이르기까지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동방이나 애굽의 어떤 사람의 지혜보다 더 켰습니다. 이스라엘과 주변에서도 솔로몬에 버금 갈만한 지혜로운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가지고 삶의 열매를 만들어냈습니다. 그래서 주변 많은 나라 왕들이 찾아와 솔로몬의 지혜를 들었습니다. 당신도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삶의 열매를 만들어 가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관심은 주신 복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복은 지속적으로 당신에게 영원히 임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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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4-01)


위용을 갖춘 솔로몬 왕국

열왕기상 4장 1-19절


당신이 갑자기 큰 회사를 맡아서 일하게 될 때, 많은 사람들을 뽑아서 일을 맡겨야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을 어떻게 뽑을 수 있을까, 사람들을 적제적소 자리에 앉힐 수 있을까 고민할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의 주변 인물들에게 정보를 구하고 이력서를 보면서 정보를 구하게 될 것입니다. 아니면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깨닫고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가십니까? 무슨 일을 하던지 오직 하나니께서 함께 하셔야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지혜로 솔로몬 왕정은 체계가 잡혀갑니다. 솔로몬은 행정부에 제사장, 서기관, 군사령관, 지방 관장 감독관, 왕궁 감독관, 부역 감독관을 배치하여 이스라엘의 종교, 정치, 군사, 경제 등을 돌봤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솔로몬은 온 이스라엘 땅을 12개 행정구로 지배했고, 열두 지방 관장을 두었습니다. 조직 개편으로 이스라엘은 지파 중심에서 유다와 예루살렘 중심의 중앙집권정치로 탈바꿈합니다.

 

솔로몬의 고관들 명단(1-19)

솔로몬은 재판하는 일에 지혜로운 왕이 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전체적으로 나라를 다스린 면에서도 지혜로웠습니다. 솔로몬에게 뛰어난 지혜가 있었지만, 모든 일을 혼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사역을 나누어서 각자 합당한 일들을 신하들에게 맡겼습니다.

1솔로몬왕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고 2그의 신하들은 이러하니라 사독의 아들 아사리아는 제사장이요 3시사의 아들 엘리호렙과 아히야는 서기관이요 아힐룻의 아들 여호사밧은 사관이요 4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는 군대장관이요 사독과 아비아달은 제사장이요 5나단의 아들 아사리아는 관리장이요 나단의 아들 사붓은 대신이니 왕의 벗이요 6아히살은 궁내대신이요 압다의 아들 아도니람은 감역관이더라 7솔로몬이 또 온 이스라엘 위에 열 두 관장을 두매 그 사람들이 왕과 왕실을 위하여 식물을 예비하되 각기 일년에 한달씩 식물을 예비하였으니 8그 이름은 이러하니라 에브라임 산지에는 벤훌이요 9마가스와 사알빔과 벧세메스와 엘론벧하난에는 벤데겔이요 10아룹봇에는 벤헤셋이니 소고와 헤벨 온 땅을 저가 주관하였으며 11돌 높은 땅 온 지방에는 벤아비나답이니 저는 솔로몬의 딸 다밧으로 아내를 삼았으며 12다아낙과 므깃도와 이스르엘 아래 사르단 가에 있는 벧스안 온 땅은 아힐룻의 아들 바아나가 맡았으니 벧스안에서부터 아벨므홀라에 이르고 욕느암 바깥까지 미쳤으며 13길르앗 라못에는 벤게벨이니 저는 길르앗에 있는 므낫세의 아들 야일의 모든 촌을 주관하였고 또 바산 아르곱 땅의 성벽과 놋빗장 있는 큰 성읍 육십을 주관하였으며 14마하나임에는 잇도의 아들 아히나답이요 15납달리에는 아히마아스니 저는 솔로몬의 딸 바스맛으로 아내를 삼았으며 16아셀과 아롯에는 후새의 아들 바아나요 17잇사갈에는 바루아의 아들 여호사밧이요 18베냐민에는 엘라의 아들 시므이요 19아모리 사람의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나라 길르앗 땅에는 우리의 아들 게벨이니 그 땅에서는 저 한 사람만 관장이 되었더라(1-19)

솔로몬은 하나님께 받은 지혜(3:12)로 일반 백성부터 고위 관리 그리고 왕실과 지방 전체에 이르러 다방면에서 체계를 잡아가며 왕국을 견고히 세워나갑니다. 3장에서 솔로몬이 백성에게 공정한 판결을 행함으로써 사법과 사회 영역의 역량을 보여주었다면, 4장에서는 왕정 고관 임명(1-6)과 지방 행정 개편(7-19)을 통해 정치, 경제, 행정 영역의 역량을 발휘합니다.

(1) 왕실의 신하들(1-6)

저자는 솔로몬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다고 밝히는데(1), 이는 하나님께서 다윗과 솔로몬에게 약속한 견고하고 영화로운 왕국(3:13; 삼하 7:11-13)이 성취되고 있음을 나타냅니다. 특히 그간 다윗 왕조 역사에 나타난 이스라엘 내부의 ‘균열’과 솔로몬 이후 실제가 될 이스라엘의 ‘분단’을 고려할 때,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다윗은 재위 동안에 이스라엘 주변 나라를 정복하고,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백성의 평화를 꾀했습니다. 그 결과 “온 이스라엘”을 다스리며, 백성에게 공의를 행한 왕으로 평가받았습니다(삼하 8:15). 그러나 밧세바와 간음 이후 압살롬의 모반으로 인해 이스라엘의 민심은 압살롬에게 향했습니다(삼하 15:13; 16:15). 반란 진압 후 다윗이 왕권에 복귀한 때에도 유다와 북쪽 지파들 사이에 야기됐던 갈등이 심화되어 왕정은 위태로웠습니다(삼하 19-20장). 설상가상으로 말년에는 아들 아도니야가 다윗 측근들과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이런 분열과 반역과 위기 속에 솔로몬이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약속한 견고한 나라의 기반을 이루도록 이스라엘 백성의 결속을 이끌어가셨습니다. 그는 “모든 백성”으로 즉위식에서 솔로몬을 기꺼이 왕으로 받아들이게 하셨습니다(1:39-40). 또 통치 초기에 솔로몬의 지혜로운 판결을 통해 다시금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솔로몬을 하나님께서 세운 통치자로 인정하게 이끄셨습니다(3:28). 이후 진행될 성전 건축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신앙적 소속감과 연대를 다지는 계기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솔로몬은 그의 왕정을 꾸려갈 관료들을 임명합니다. 왕실 고관 목록(2-6)에는 일곱 직책인 제사장, 서기관, 사관, 군사령관, 지방 관장 책임자(두령), 궁내대신, 노동 감독관이 수록되었습니다. 이전에 다윗이 행정 조직의 기반을 다져두었기에(대상 23-27장) 솔로몬은 이를 바탕으로 조직을 강화할 수 있었습니다. 많은 전쟁을 치르고 영토 확장에 힘썼던 다윗 시대에는 군사적 행정체계가 중요했지만, 솔로몬의 관료 명단은 제사장으로 시작하며, ‘제사장’ 직분이 세 번 언급되어 종교적 중요성이 상대적으로 부각되었습니다. 지방 관장 책임자와 궁내 대신이 새로운 직책으로 포함되었습니다. 솔로몬은 다윗의 신하들 중 군사령관 브나야, 노동 감독관 아도니람,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재임명했습니다. 브나야는 다윗의 충성스러운 신하였고(삼하 8:18; 20:23) 솔로몬의 즉위 전부터 왕이 된 이후 줄곧 솔로몬에게 충성했습니다(1:8, 38; 2:25, 46). 아도니람(아도람, 하도람)은 다윗 통치 후반의 명단(삼하 20:24)에만 나온 것으로 보아 성전 건축 준비를 위해 다윗이 강제 노동자를 소집했을 때(대상 22:2) 이들을 감독할 자로 발탁한 것으로 이해됩니다. 사독과 아비아달은 다윗의 제사장으로서(삼하 20:25) 압살롬의 반역 때 다윗의 명에 따라 예루살렘에 남아 압살롬 측을 감시하는 첩자 노릇을 톡톡히 감당했습니다. 그러나 압살롬이 죽은 후 아비아달은 다윗을 배반하고 아도니야를 지지했으며, 사독만 다윗과 솔로몬의 충실한 제사장으로 남았습니다. 아도니야의 모반이 실패로 끝나자 아비아달은 솔로몬으로부터 제사장 직분을 박탈당하고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2:26-27). 이들 외에 솔로몬이 새로 등용한 엘리호렙과 아히야는 시사의 아들들로서 서기관 직을 맡았습니다. 여호사밧은 사관으로 임명되었는데, 사관은 역사 기록관처럼 왕이 하는 일과 판결 등을 기록하여 후대에 남기는 일을 했습니다. 나단의 아들 아사리아는 솔로몬이 새로 기획한 12행정구의 관장들(8-19)을 총괄하는 감독이 되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의 일부 고관들이 혈연관계인 것으로 보아 나단은 다윗의 아들로 추정됩니다(삼하 5:14). 나단의 또 다른 아들로 소개된 사붓은 제사장이자 솔로몬 왕의 벗입니다. 왕의 “벗”은 다윗에게 있어 후새(삼하 15:37;16:16-17)와 같이 단순히 친구만 아니라 자문관의 역할을 담당한 자로 추측됩니다. 아히살은 궁내대신으로서 왕궁을 관리 감독하는 일을 맡았습니다.

(2) 이스라엘 12행정구의 지방 관장들(7-19)

왕실의 행정 체계를 잡은 솔로몬은 “온 이스라엘”을 12개 행정구역으로 나누고 각 지역에 관장을 임명함으로써 지방 행정 체계를 수립합니다(7). 솔로몬이 등용한 지방 관장에는 사위인 벤아비나답과 아히마아스(11, 15)나 후새의 아들 바아나(16)도 포함되었습니다. 열왕기 저자는 솔로몬의 행정 조직의 주목적이 왕실의 식량 조달로, 각 행정구가 1년에 한 달씩 돌아가면서 곡식과 가축 등을 공급하는 책임을 맡는다고 설명합니다(7). 또한 이들의 책임감 있는 양식 공급과 헌신으로 왕실에 부족함이 없었고(27-28),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지혜로운 통치로 평안한 삶을 살았다고 평가합니다(20,25).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약속한 견고한 나라(삼하 7:12)와 솔로몬에게 약속한 부귀영화(3:13)가 실현되고 있음을 증명하려는 의도입니다. 그런데 행정구 신설의 이면에는 나라의 경제 부담을 분산하려는 목적 또한 깊게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솔로몬이 성전과 왕궁을 건축하고, 말들을 사들이고 병거성을 축조하며, 국제 무역을 확장하는 등 여러 사업을 벌였기 때문에, 이를 충당할 막대한 경비와 인적 자원이 요구되었기 때문입니다. 한편 솔로몬이 정비한 12행정구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가나안 땅의 분배 구획을 근접하게 따르고 있습니다. 다만 산과 강과 같은 지리적 경계나 지파의 원래 경계를 깨뜨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대강 지리상으로 간추리면, 8-12절은 이스라엘 중부, 13-14절은 요단 동편, 15-17절은 이스라엘 북부, 18-19절은 각각 이스라엘과 요단 동편의 남부에 해당합니다. 8-12절의 다섯 행정구는 에브라임 산지, 서쪽 욥바 항구로부터 남동 및 북동쪽의 땅, 이스르엘 골짜기를 포함한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파의 영역입니다. 13-14절의 두 행정구는 요단 동편의 북부와 중부인 길르앗 라못, 바산, 마하나임으로서 므낫세와 갓 지파의 영역입니다. 15-17절의 세 행정구는 납달리, 아셀, 잇사갈, 스불론에게 할당되었던 지역입니다, 18-19절 지역은 베냐민 지파 지역, 요단 동편의 아모리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의 영역인 길르앗 지역으로, 갓과 르우벤 지파의 영역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7절에서 12행정구로 지목된 “온 이스라엘”의 실체는 4-19절의 지명에 비추어 볼 때, 온 지파가 아닌 북부열 지파에게 할당된 지역을 의미합니다. 레위 지파는 할당받은 영토가 없고 성막과 제사의 책임을 맡았으므로 명단에서 빠졌습니다. 결과적으로 유다 지파만 행정구에서 빠져 세금 부담에서 면제됐음을 알 수 있습니다. 후에 70인역(LXX)에서는 19절의 “그 땅”을 일부러 ‘유다’로 바꿔놓았지만, 당시 유다의 누락은 정책의 일환이었습니다. 가나안 정착 이래 이스라엘은 지파 간의 동맹과 협력을 기반으로 지금까지 성장해왔습니다. 그러다 다윗이 여호와의 법궤를 예루살렘에 옮겨 그곳을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로 삼았고, 이제 솔로몬은 예루살렘 중심의 집권 체제를 통해 이스라엘의 결속을 다지려 합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는 개별 행정구의 신설로 지파의 협력 체제가 약화되고, 유다가 받는 특혜로 타 지파들의 불만이 높아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풍요와 안전을 누리는 솔로몬과 온 이스라엘은 이런 긴장 속에서 하나님을 향한 지속적인 신뢰와 순종을 잃지 않을 책임이 있습니다.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더해져야 하고, 하나님 백성의 신실성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솔로몬의 왕국은 다윗 언약에 기초한 나라입니다. 모든 조직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지향할 때,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성장을 담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거스른 조직은 망합니다. 솔로몬은 여러 신하들과 함께 협력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렸습니다. 이처럼 천국의 모형인 교회도 여러 사람이 각자 받은 달란트대로 협력하여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맡은 자리를 열심히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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