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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07-01)


솔로몬 왕궁의 건축

열왕기상 7장 1-12절


우리의 마음이 다른데 빼앗기지 않았다고 장담할 수 있습니까? 말씀드린 대로 우리의 현실과 솔로몬이 결코 다르지가 않습니다. 그런 우리가 종교적 행위를 갖춘다고 해서 그것을 신앙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이러한 인간의 현실에서 견해가 다르기 때문에 결국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약속한 부귀와 영화는 왕궁 건축에서도 증명되었습니다. 성전 완공 후 솔로몬은 자신의 왕궁을 13년에 걸쳐 건축했습니다. 공적 건물로는 레바논 숲 궁과 재판의 전을 지었고, 사전 공간으로 자신이 거처할 궁과 바로의 딸을 위한 궁 등을 건축했습니다. 궁정의 규모는 성전보다 훨씬 컸으며 건축에 들어간 자재나 방법 등도 성전에 버금갔습니다.

 

솔로몬의 왕궁들(1-12)

하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섬기는 성도의 삶을 통해 영광을 받으시며, 그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하나님 성전을 설명하는 사이에 등장하는 솔로몬 왕궁 이야기는 왕궁의 웅장한 자태를 통해 성전 건축에 헌신한 자가 누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줍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항상 함께하는 성도의 삶에는 하나님의 풍성과 영광이 따릅니다.

 

1솔로몬이 자기의 왕궁을 십삼 년 동안 건축하여 그 전부를 준공하니라 2그가 레바논 나무로 왕궁을 지었으니 길이가 백 규빗이요 너비가 오십 규빗이요 높이가 삼십 규빗이라 백향목 기둥이 네 줄이요 기둥 위에 백향목 들보가 있으며 3기둥 위에 있는 들보 사십오 개를 백향목으로 덮었는데 들보는 한 줄에 열 다섯이요 4또 창틀이 세 줄로 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고 5모든 문과 문설주를 다 큰 나무로 네모지게 만들었는데 창과 창이 세 층으로 서로 마주 대하였으며 6또 기둥을 세워 주랑을 지었으니 길이가 오십 규빗이요 너비가 삼십 규빗이며 또 기둥 앞에 한 주랑이 있고 또 그 앞에 기둥과 섬돌이 있으며 7또 심판하기 위하여 보좌의 주랑 곧 재판하는 주랑을 짓고 온 마루를 백향목으로 덮었고 8솔로몬이 거처할 왕궁은 그 주랑 뒤 다른 뜰에 있으니 그 양식이 동일하며 솔로몬이 또 그가 장가 든 바로의 딸을 위하여 집을 지었는데 이 주랑과 같더라 9이 집들은 안팎을 모두 귀하고 다듬은 돌로 지었으니 크기대로 톱으로 켠 것이라 그 초석에서 처마까지와 외면에서 큰 뜰에 이르기까지 다 그러하니 10그 초석은 귀하고 큰 돌 곧 십 규빗 되는 돌과 여덟 규빗 되는 돌이라 11그 위에는 크기대로 다듬은 귀한 돌도 있고 백향목도 있으며 12또 큰 뜰 주위에는 다듬은 돌 세 켜와 백향목 두꺼운 판자 한 켜를 놓았으니 마치 여호와의 성전 안뜰과 주랑에 놓은 것 같더라(1-12)

솔로몬의 ‘왕궁 건축’을 묘사합니다. 대표 건물로 레바논 숲 궁(2-5), 솔로몬의 거처, 왕비의 별궁(8) 등을 소개하며, 성전 공사 기록과 유사한 순서와 내용으로 전개합니다. 이 단락은 5-7장의 ‘성전 건축 공사’ 기록의 하부 단락으로, 중간에 배치되었습니다. 5-6장은 성전 건축 준비(5장), 성전의 기공 및 내외부 공사(6장)를 기록했습니다. 이제 7:1-12은 성전 완공 후 솔로몬이 건축한 왕궁들을 소개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 13-50절은 다시 성전 건축으로 돌아가 놋 기구, 금 기구 제작을 기술하고, 51절에 가서야 성전 건축 기사를 완전히 종결합니다. 이처럼 왕궁 건축이 성전 건축 기록의 중간에 들어 있는 의미는 무엇입니까? 긍정적인 면에서는 왕궁 건축이 솔로몬 왕조, 넓게는 다윗 왕조의 시작을 의미하므로 이 왕조가 성전 건축에 암시된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 안에 있어야 함을 일깨웁니다. 둘째, 왕궁 건축에서 드러난 솔로몬의 지혜와 부귀영화가 성전 건축과 함께 하나님이 다윗과 솔로몬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임을 상기시킵니다. 부정적인 면에서는 솔로몬이 왕궁 건축에 쏟은 시간, 관심, 부, 공력이 성전 건축에 결코 뒤지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긴장감을 일으킵니다. 왕궁 건축 기사에 나타나는 몇몇 부정적인 암시는 앞으로 다가올 솔로몬의 우상 숭배와 나라의 분열에 대한 복선이 됩니다.

(1) 레바논 숲 궁(1-7)

7년 6개월에 걸쳐 성전을 완공한 솔로몬은 그 후 13년 동안 자신의 왕궁을 건축하기에 이릅니다. 두 건축에 소요된 20년은 솔로몬의 통치 40년의 절반인 긴 기간입니다. ‘레바논 숲/수풀 궁’은 조선 궁궐의 ‘외전’에 해당하는 공적 건물입니다(2-5). “그가 레바논 나무로 왕궁을 지었으니”는 직역하면 ‘그가 레바논 숲 궁(the house of the forest of Lebanon)을 지었다’로 나와 궁의 이름을 소개합니다. 궁에는 높고 인상적인 백향목 기둥들이 줄지었고, 들보와 마루 등 백향목을 사용한 공간이 넘쳤습니다. 이 이름은 레바논의 웅장하고 아름다운 백향목 삼림을 연상시킨 데서 비롯되었을 것인비다. 궁은 길이 100규빗(45.7m), 너비 50규빗(23m), 높이 30규빗(13.7m)이며, 면적은1,046㎡(약 316평)입니다. 성전은 길이 60규빗(27m), 너비 20규빗(9m), 높이 30규빗으로 약 249㎡(약75평)이므로, 왕궁은 성전과 높이는 같으나 면적은 4배 정도 큽니다. 레바논 숲 궁은 외형상으로도 가장 크고 장엄하며, 실제적으로도 궁에서 최고의 권위를 나타내는 핵심 공간이었습니다. 통상 왕궁에는 즉위식, 외국 사절 접견, 공적 행사 등을 위한 공간, 왕과 신하들의 회의 공간(10:5), 왕의 집무실 등이 있습니다. 다른 본문에서는 이 궁에 국고에 해당하는 값진 무기와 그릇을 보관하는 방이 있었음을 알려줍니다. 솔로몬은 조공과 무역을 통해 거둔 엄청난 금으로 크고 작은 방패 500개를 만들어 전시했고(10:14-17), 순금으로 만든 그릇들도 이 궁에 저장했습니다(10:21). 이제, 레바논 숲 궁의 구체적인 외형을 보자면, 건물의 하단에는 백향목 기둥들이, 숫자는 알 수 없으나, 네 줄로 정렬되어 있었습니다. 양쪽은 벽과 이어졌고 가운데 두 줄은 개방되어 궁의 내부에 큰 공간을 마련할 수 있는 구조인 것 같습니다. 이 기둥들은 그 위의 백향목 들보(서까래)들을 받치고 있었습니다(2). 3절은 이 백향목 기둥들 위에 45개의 백향목 “들보”로 궁의 지붕을 덮었음을 알려줍니다. 다만 여기서 기둥들 위에 얹은 “들보”의 의미가 명확치 않아, 대안으로 ‘골방’이 제시됩니다. 2절에 나오는 “들보”(케루타)는 원래 ‘들보/서까래'의 뜻이지만, 3절의 “들보” (쩰라)는 원래 ‘갈빗대'란 뜻으로 건물 옆구리에 붙은 골방, 곁방 등을 뜻하기 때문이다(6:5). 따라서 이 단어를 첫째, ‘들보’로 읽는다면(NKJ, NAB, NIV), 2절에 대한 부연 설명으로서 네 줄의 백향목 기둥들 위에 '45개의 들보’를 한 줄에 15개씩 얹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되면 기둥은 네 줄인데 들보는 세 줄이므로 서로 조합이 맞지 않아 보입니다. 둘째, ‘들보’대신 ‘골방’(는 곁방)으로 읽고(RSV, NAS, 현대어성경, 공동번역), 45개를 기둥의 수로 읽는다면, 세 줄 총 45개의 ‘기둥’ 위에 골방들이 있는 형태입니다(RSV). 또는 각 충(줄)에 15개씩 ‘45개의 골방들’이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NLT). 이처럼 골방으로 읽는 경우, 성전 각 층 삼면에 총 30개의 골방이 있는 것(겔 41:6)처럼 궁정에도 각층의 한 면, 양면, 또는 삼면에 적어도 15개의 부속 공간이 딸려 있는 구조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읽을 때 4-5절의 창문에 대한 설명도 좀 더 적절하게 이해됩니다. 궁의 각 층에는 창틀이 한 줄씩 있고, 각 층의 양쪽 끝에 창이 마주하고 있어, 채광과 환기에 적합하게 되어 있습니다. 문과 문설주는 사각형 틀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궁정 본체 앞에는 기둥들로 만든 주랑(입구, 현관)이 있었습니다. 이는 성전 앞의 주랑(6:3)과 놋 기둥(15-22절)을 연상시킵니다. 성전 앞주랑의 길이(20규빗)와 성전 너비가 같았듯이(6:3), 궁의 주랑의 길이도 궁의 너비와 같은 50규빗(23m)이며 너비는 30규빗(13.7m)이었습니다. 이 기둥들 앞에 또 주랑이 있으며, 그 앞에 다른 기둥들과 섬돌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섬돌”(6)은 무엇인지 정확치 않으며 ‘차양’으로 보기도 합니다. 두 번째로 소개되는 건물은 “보좌의 주랑”(보좌의 전당) 또는 “재판하는 주랑”(재판의 전당)입니다(7). 이름 그대로 왕의 재판이 열리는 공적 개방 장소입니다. 3장에서 소개된 송사가 이곳에서 열렸을 것입니다. 이곳은 지성소와 성소 사이같이 마루에서 천장까지 백향목으로 덮였습니다(6:16). 뿐만 아니라 10:18-20을 참고하면, 이곳은 왕의 권위와 권세가 한껏 드러나는 장소였습니다. 보좌는 상아로 제작 후 순금으로 입혔고, 보좌 아래에 금 발판과 여섯 계단을 놓았으며, 계단 양쪽에 사자 형상을 세워 왕의 출입을 호위했습니다.

(2) 솔로몬의 왕궁들(8-12)

공적 건물 소개에 이어 왕과 왕비의 침전 등 사적 공간이 소개됩니다. 솔로몬이 기거할 궁은 ‘재판의 주랑’ 뒤의 다른 뜰에 따로 건축했습니다. 건축 양식은 다른 건물과 동일했습니다. 솔로몬은 아내인 바로(이집트 왕)의 딸을 위한 별궁도 지었습니다. 솔로몬은 이 여인 외에도 정략결혼을 통해 여러 이방 공주를 아내로 맞았기에 이들의 궁들도 무수했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에서 오직 그녀와 별궁만을 소개하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 애굽의 영향력과 당시 애굽 공주의 위세가 컸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3:1을 시작으로 계속 언급되는 바로의 딸(9:24; 11:1)의 존재는 열방과의 동맹, 이방 여인과의 결혼, 우상숭배로 치닫는 솔로몬의 위태로운 신앙과 국정, 나아가 이스라엘의 분열과 멸망으로 이어지는 전조로도 이해됩니다. 한편, 솔로몬이 지은 궁은 최상의 목재와 더불어 최고의 석재를 사용한 점이 부각됩니다. 목재와 마찬가지로 돌들도 성전 건축에 사용된 것과 같았습니다(5:7). 모두 크고 귀한 돌들이며, 치수에 맞게 돌의 앞면과 뒷면(“안팎”, 9)을 톱으로 잘라 다듬어, 초석에서 처마까지와 밖에서 큰 뜰에까지 사용했습니다. 초석에는 10규빗(4.6m), 8규빗(3.7m) 되는 큰 돌을 사용했습니다. 그 돌들 위에 돌과 백향목을 함께 사용하여 견고한 궁을 지었습니다. 큰 뜰 주변에는 다듬은 돌 세 층과 백향목 판자 한 층을 놓아 벽을 쌓았습니다. 이는 성전 안뜰과 주랑에 있는 담과 같은 형태입니다. 이처럼 솔로몬의 왕궁은 모든 면에서 성전 건축에 버금가는 위엄과 화려함을 갖추었습니다. 최상의 자재, 웅장하고 화려한 궁의 묘사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약속한 부와 영광을 이뤄주셨음을 입증합니다(3:11-13).


성전과 성전은 건축도 배치도 나란히 배열되어 있는 데다 재료나 건축 방식도 유사합니다. 신앙은 무엇이 본이고 말이며, 선이고 후인지에 관한 문제입니다. 전도되지 않도록 방심도 자만도 하지 말고 안팎의 위험 요소를 경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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