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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09-03)
 


두 번째 십자가를 예언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9장 30-37


 
하루하루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큰 축복이며 선물입니다가장 잘 사용하는 방법은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면서 아름답게 사용할 수 있는 지혜를 얻는 것입니다오늘 하루 당신의 삶 가운데 주님과의 친밀한 깊은 교제가 있을 축복합니다.
 

  • 본문은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가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가버나움에 들릴 예정이었습니다. 얼마 동안 제자들과 함께 한적한 곳에 계시던 예수님은 가버나움에 가시면서도 가급적이면 무리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여행을 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앞에 놓고 제자들을 양육할 시간이 더 많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길을 가시면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두 번째 예언을 하셨습니다.

 

죽음과 부활을 두 번째 예언(30-32)

하나님의 말씀은 들어도 성령님의 조명하심이 없다면 깨달을 수 없습니다예수님께서 변화산에 놀라운 하나님의 본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이것을 본 제자들에게는 더욱 인간적인 영광스런 모습을 신뢰하게 됩니다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더욱 자신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다시 한 번 말씀하셨습니다.
 
30그 곳을 떠나 갈릴리 가운데로 지날새 예수께서 아무에게도 알리고자 아니하시니 31이는 제자들을 가르치시며 또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지 삼 일만에 살아나리라는 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이더라 32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묻기도 두려워하더라(30-32)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의 여정은 이제 갈릴리 지역에 이르렀습니다제자들은 갈릴리에 도착했을 때예수님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던 갈릴리에서 군중집회를 통해 영향력을 힘껏 발휘하길 원했을 것입니다하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조용한 길로 찾아가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분명한 목적이 있었습니다그 동안에서는 많은 무리들을 만나셨습니다하지만 지금 이 시간만큼은 무리에게 방해받지 않고제자들에게만 가르치시길 원했습니다예수님께서는 대중에게 노출을 삼가고자신이 이 땅에 찾아오신 목적과 그들을 부르신 이유 그리고 그들에게 따라가야 할 제자의 모습에 대해서 가르치시며 제자들에게만 조용히 시간을 보내시길 원하셨습니다.
 
이방 지역이었던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중간 지점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것입니다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무리들에게 휩싸여서 가르칠 수 없기 때문입니다지난번처럼 이어 두 번째로 반복해서 자신의 고난과 죽음그리고 부활에 대한 예고를 반복하십니다이것은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에남은 사역은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이뤄지는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확실히 가르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사역에 대해 진정으로 따르는 제자의 삶이 어떠해야 하는지 제자들이 알기를 원하셨습니다예수님은 처음부터 제자들을 친구라고 칭하시며 그분의 비밀을 전부 알려 주시고자 했습니다(요 15:15).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님의 그런 가르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을 뿐 아니라 그 의미를 어느 누구도 함부로 질문하기까지도 두려워했습니다왜냐하면 또 어떤 책망이 떨어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실수는 자신들이 선입견으로 모든 것을 바라본 것입니다예수님께서 다른 각도에서 말씀하셔도 상대방의 의도한 차원에서 이해하려고 노력해 보지도 않았습니다자신들의 생각으로 가득한 것입니다이것이 얼마나 큰 실수를 가져옵니까우리들도 말씀을 읽을 때나 들을 때나 자신이 원하는 부분만 귀 기우리는 경우를 봅니다진정한 제자가 되길 원하신다면말씀에서 제시하고 있는 내용을 깨닫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누가 클까 다투는 제자들(33-34)

예수님께서는 외면할 수 없는 감당해야할 진실 앞에서 감당해 가셨고제자들에게 가르치길 원하셨습니다하지만 제자들의 모습은 정반대의 모습이었습니다가급적이면 피하고 싶고 회면하고 싶은 그러한 모습들을 보여줍니다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요구하신 것들을 제자들은 그것을 충분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33가버나움에 이르러 집에 계실새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 하시되 34그들이 잠잠하니 이는 길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33-3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집중해서 가르치시고 같이 시간을 보내시길 원하셨습니다하지만 제자들의 관심은 전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그들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으심에 대한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예수님께서는 그들이 집중하는 것을 환기시키기 위해 너희가 길에서 서로 토론한 것이 무엇이냐?라고 질문합니다예수님의 질문에 당황했을 것입니다그들은 아무도 대구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심각하게 전하는 상황에서도 제자들은 엉뚱하게 누가 큰지에 대해 다툼을 하고 있었습니다그들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이야기하지만그들의 관심은 오직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통치자 되셔서 새로운 세상을 여실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고 있었습니다그래서 계속적으로 제자들 중에서 누가 가장 높은 자리에 앉을 것인가 곧 성공과 승리를 통한 명예나 지위 등에 관심이 있었습니다그래서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지를 놓고 자기들끼리 길거리에서 다투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삼년 동안 예수님께 훈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아직까지도 변화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훈련은 지식뿐만 아니라 삶의 변화입니다제자들의 삶이 완전하게 변화되길 원하셨던 것입니다하나님께서는 오늘도 교회를 통해 훈련하십니다훈련은 진심으로 하나님과 사람들을 섬기는 훈련입니다이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으면 곁과 속이 다를 이중적인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겉으론 섬긴다고 하지만 제자들처럼 자신의 이권에게 대단히 큰소리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제자로서 가는 길에 대한 훈련에 들어가지 전에 제자로서 기본적인 정신이 필요합니다군인에게는 군인정신이 기초적으로 필요하듯이 제자에게는 제자의 정신이 바르게 필요합니다그것이 없으면 바른 제자의 길을 갈 수 없습니다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이것은 구호나 외침이 아닙니다제자로서의 변화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바른 제자 길을 설명하신 예수님(35-37)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큰사람은 모든 사람을 겸손히 섬기는 사람입니다그래서 사람의 눈에 크게 보이는 것은 누가 더 많이 쌓고 높아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하지만 하나님의 눈에 크게 보이는 것은 누가 더 많이 내주고 낮아져 섬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35예수께서 앉으사 열두 제자를 불러서 이르시되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하시고 36어린 아이 하나를 데려다가 그들 가운데 세우시고 안으시며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37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 아이 하나를 영접하면 곧 나를 영접함이요 누구든지 나를 영접하면 나를 영접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를 영접함이니라(35-37)
 
이러한 제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예수님께서는 정말 한숨스러웠을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가시던 길을 멈추시고 앉으셨습니다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35)고 말씀하셨습니다모든 사람의 종이 되는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세상에서 첫째가 되는 것이라고 설명해 주었습니다주님은 첫째가 되는 것이 나쁘다고 하시지 않습니다다만 주님이 말씀하시는 첫째가 되는 방법과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법에는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주님의 방법대로 따라가는 것이 제자들의 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어린 아이를 안으시고 이런 어린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섬기는 사람이 첫째가 될 것이라고 설명해 주셨습니다나아가 이러한 것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어린 아이의 같다는 것은 종과 같은 자세로 살아가는 것입니다종의 자세는 무엇입니까아침 일찍 일어나서 주인의 밭에 나가서 농사를 짓고 수고합니다그리고 저녁까지 수고한 후에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들어와서저녁에는 주인이 주무실 때까지 계속 섬겨야 합니다단 하루도 쉬지 않고 주님의 집에서 365일 동안 수고해야 합니다그러고도 자신의 주장이 없습니다.
 
어린 아이와 같이 낮은 자리로 내려가야 그곳에 계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그래야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 아버지도 경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제자들이 꿈꾸는 세상과 예수님이 세우려는 하나님 나라와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가장 잘 보여주어야 할 곳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교회는 서로 섬기려 하는 곳이고 서로 바닥으로 내려가려는 곳입니다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섬김을 받고 서로를 가장 존귀하게 대접하는 곳입니다그런 곳에 예수님께서 임재하시고 자신의 몸으로 삼으실 것입니다예수님은 교회에서 서로 높아지려고 갈등하고 다투고 대접받으려 하는 곳을 자신의 몸으로 삼으실 리 없습니다.
당신이 영접해야할 어린 아이는 누구입니까이 땅에서 더 큰 사람이 되기 위해 수고하기보다 더 낮은 자리에 가는 사람입니까인정해 주지 않고 대접해 주지 않아서 섭섭한 마음을 품고 있습니까주님의 마음이 편히 임재하실 사랑과 섬김과 겸손의 공동체를 가꾸어나가길 바랍니다교회에서는 섬긴다는 것은 주장한 것이 아닙니다성도들의 섬김으로 하나님의 교회가 세워지고 연약한 성도들이 세워진다면 섬기는 사람으로서 가장 큰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겸손하게 주를 섬기는 제자의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이기심을 뛰어넘어 진정으로 섬기는 사람이 되길 원하십니다성령의 불로 이기심을 태워 버려야 합니다이제는 섬김을 받으려는 자리보다 심김의 자리로 나가는 성도들이 되길 바랍니다작은 일부터 섬김에 실천이 있길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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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09-02)


믿음의 능력을 가르치신 예수님

마가복음 9장 14-29


 

성악가들은 날마다 발성 연습을 합니다운동선수들 또한 날마다 연습과 스트레칭을 지속적으로 해야 합니다그래야만 자신의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영적인 능력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항상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당신은 영적인 능력을 나타내고 있습니까?

 

  • 본문은 예수님이 갈릴리에서 마지막으로 병을 고치신 이적 기사에 대한 내용입니다. 세 제자와 함께 변화산에서 기도하고 내려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남아 있던 아홉 제자들이 난처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들은 귀신들린 아들을 고쳐달라고 간청하는 사람의 요구를 들어주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모인 무리들에게 비난과 조롱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고치지 못한 이유를 통해 우리에게 교훈을 하고 계십니다.

 

변화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14-18)

하나님의 능력은 믿는 자들을 통해 나타납니다믿음이 없다면 어떤 기적도 체험할 수 없습니다예수님의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고 사람들에게 조롱거리가 되어 망신을 당하고 있었습니다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14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15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16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17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14-18)

 

예수님께서는 수제자인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데리고 변화산으로 올라가셨습니다그곳에서 제자들은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놀랐고 두려워했습니다그래서 변화산에서 내려왔을 때산 아래에는 내려와야 할 이유가 있었습니다그곳에는 생각하고 싶지 않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나머지 아홉 명의 제자들은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예수님께서 도착하자 수많은 무리들이 예수님께로 모여 들었습니다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 사건의 발단을 한 아버지가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라고 말했습니다제자들에게 부탁했지만귀신을 내쫓지 못하고 실패하였습니다그들은 한때는 성공적으로 많은 귀신을 쫓아내었습니다(6:13). 과거에는 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아무런 능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실패했던 것입니다더욱 제자들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상황이 논쟁거리가 되어 있었습니다.

 

아홉 명의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모습과는 극단적으로 대조되고 있었습니다모세가 시내산을 내려왔을 때이스라엘 백성들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아론을 지도자 삼아서 황금송아지를 만들었던 사건을 연상케 합니다제자들은 큰 무리에 둘러싸여서 서기관들과 변론하고 있었습니다그들에게 논쟁과 조소거리가 되어서 망신당하고 있었습니다더욱 불신의 대상이 되어 있었습니다서기관들은 이미 앞에서부터 예수님과 제자들에 대해 적대적이었고예수님의 귀신 쫓는 기적과 관련하여서도 문제를 제기한 적이 있었습니다(3:22).

 

믿음의 생활은 한 때 누렸던 영광을 경험으로 역사가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경험을 의지하는 것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제자들은 이미 권세를 받았고(막 6:7), 경험이 있었음에도(막 6:13) 불구하고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그들은 영적 전투를 자신의 경험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날마다 기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성령 충만함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귀신을 쫓아내신 예수님(19-27)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그러면 세상 사람들이 성도들만 업신여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까지 업신여깁니다하나님을 믿으라는 우리들의 말에 귀담아듣지 않을 것입니다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19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19-20)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귀신과 세상 사람들에게 쩔쩔매고 있는 상황을 보시며제자들을 향해 믿음이 없는 세대라고 한탄하시며 책망하셨습니다예수님의 십자가의 시간은 점점 다가오는데죽음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아직도 더디게 깨닫고 믿음이 없어서 그 십자가를 질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한 없이 안타까웠던 것입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능력이 없어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다고 생각했지만예수님의 대답은 달랐습니다이것을 해결하지 못하는 것은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혹시 제자들처럼 인생의 능력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십니까착각하지 마시길 바랍니다핵심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능력을 구해야 할 것이 아니라 믿음을 구해야 합니다.

 

21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23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21-24)

 

예수님께서는 귀신 들린 아들을 데려오게 하십니다그의 아버지에게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는지 자초지정을 묻으십니다사실 아이를 죽게 하려고 어려서부터 자주 불과 물속에 던졌습니다예수님 앞에서 아이는 심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넘어졌습니다아이의 아버지의 믿음을 꺾으려는 사탄의 전략입니다그는 자포자기 한 심정으로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라고 대답합니다그 동안 아이의 고질병은 절망적인 상황으로 몰고 갔습니다아홉 제자들에게도 귀신을 치유할 수 없는 의심을 더욱 부추겼던 것입니다의심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 믿음에 대한 문제를 지적하고 계십니다예수님은 단호하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고 답변하셨습니다예수님의 명령은 의심에게 책망이며 악한 세력에 대한 도전입니다예수님은 믿음을 제한하지 말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의 능력을 인간이 생각하는 지혜와 능력의 한계를 넘어서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믿음은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에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님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정직한 고백합니다언뜻 이율배반적인 답변입니다믿음과 믿음 없음의 공존은 말이 안 됩니다말은 안 되지만 현실에서는 일어나고 있습니다곧 한편으로는 믿는다고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예수님께 자신의 믿음 없음을 불쌍히 여겨서 도와달라고 소리쳤습니다예수님께 간절히 매달렸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모든 사람들이 주님 앞에 나가는 죄인들의 마음 태도입니다누군들 100% 믿음 가지고 주 앞에 나간다고 자신 있게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주님은 그런 줄 아시면서도 우리를 대해 주셨던 것입니다그러기 때문에 담대하게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예수님은 그 아버지의 마음에 태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보고 계셨습니다예수님께서 원하신 것은 많은 믿음이 아니라 진짜 믿음을 원하신 것입니다.

 

25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25-27)

 

이에 예수님께서 귀신에게 명령하시자 그 귀신을 소리를 지르며 아이에게서 떠나갔습니다아이는 죽은 사람같이 쓰러졌습니다일어나지 못했습니다사람들은 죽었다고 생각했습니다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켜 주셨습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을 보기만 해도 그 권위에 굴복했던 귀신들은권위 있는 예수님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그리고 이 사건을 논쟁거리로 삼았던 서기관들에게 하나님의 권능을 증명하셨습니다.

 

이곳에는 중요한 신학적인 의미가 담겨 있었습니다아이가 죽은 것같이 쓰러졌다는 표현과 그가 일으킴을 받았다는 표현은 장차 하나님의 아들이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고 사흘만에 다시 일어나는 사건을 미리 내다보는 표현입니다예수님께서 변화산에서 내려와야할 이유가 이곳에 있습니다바로 이 아이처럼 죄와 사망에 매어 사탄에 매어 종노릇하던 자들을 살리시기 위해 갈보리 산에서 돌아가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에게 믿음을 요구하셨습니다제자들의 믿음 없음을 안타까워하고 책망하셨습니다믿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예수님이 도와주신다면 모든 일이 가능합니다믿음의 기도에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오늘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문제가 하나님보다 커 보인다면문제에 너무 가까이 가 있습니다하나님께로 가까이 가서 하나님 앞에 문제를 내려놓을 때 문제가 해결될 것입니다하나님께 해결할 것을 믿고 내려놓은 것이 믿음입니다지금 해결 받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면믿는 사람에게 능치 못할 일이 없다는 말씀을 믿고 예수님 앞으로 나가시길 바랍니다.

 

문제점을 가르쳐주신 예수님(28-29)

믿음과 기도는 동전의 양면과 같습니다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기도합니다기도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냅니다제자들은 자신의 문제점을 아직까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예수님께 조용히 나갑니다.

 

28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28-29)

 

제자들은 자신들이 쫓아내지 못한 이유를 물었습니다과거에는 귀신을 쫓아내었지만 지금은 귀신을 내쫓지 못했습니다제자들은 자신의 실패 이유를 알지 못했습니다그래서 그 이유를 조용히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옆에 계시지 않아서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없었기 때문입니다오직 기도로만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대답하셨습니다제자들이 기도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닙니다예수님께서도 기도하지 않고 귀신을 축사하셨습니다주님께서 의미하신 기도는 매일매일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삶에서 나오는 능력성령 충만함을 의미 합니다.

그래서 성도들은 날마다 기도하는 습관이 있어야 합니다매일매일 기도하는 사람들의 삶 가운데 기도의 능력이 온전히 들어나게 됩니다제자들에게 부족한 것이 기도하는 삶이었습니다하나님의 능력은 기도로 요청하고 의지해야 믿음에서 시작합니다능력의 근원은 예수님이며 우리는 그 능력의 통로입니다따라서 치유를 원하는 사람들처럼하나님이 고쳐 주신다는 믿음을 가지고 올바른 능력의 통로가 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성공적인 과거의 행적이 자동으로 오늘도 성공적인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는 것은 아닙니다하나님을 향한 절대 믿음을 대체할 성공 전략이나 테크닉은 없습니다오직 믿음밖엔 없습니다믿음은 하나님과의 관계는 날마다 변하고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능력을 이 세상에게 나타나길 원하십니다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신 데도 실패한 이유가 있습니다그것은 과거의 경험으로 의지해 나갈 때 실패합니다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신뢰하는 것입니다자신의 경험을 의지하지 않고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기도해야 합니다삶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믿음에는 능치 못한 일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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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09-01)


천상의 모습으로 변화하신 예수님

마가복음 9장 2-13절


 

세계 7000m이상 높은 산은 14봉우리입니다. 산악인들은 14봉우리를 전부 등반하는 것이 꿈입니다. 산악인들이 그렇게 등반하고 싶은 산일지라도, 막상 정상에 머무는 시간은 약 한 시간밖에 되지 않습니다. 산소가 희박하고 기압이 높아서 오래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시간 이상이면 목숨이 위태롭습니다. 아무리 절경이 황홀하고, 그곳에 오르기 위해 많은 준비했어도, 반드시 내려가야 합니다. 본문에서 반드시 내려와야 하는 산에 오른 예수님과 제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 예수님께서 세 제자들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자신이 장차 다스릴 하나님 나라와 그 영광이 얼마나 찬란한 것인가를 보여 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이 무리를 피해 제자들과 함께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기셨을 당시에 있었던 것입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에 있는 헐몬 산이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간에 제자들에게 자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이유가 있습니다.

 

변화산으로 올라가심(2-4)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하고 푼 성도들에게 새로운 신앙 경주에 다시 나가도록 재촉하고, 영적인 허구에서 벗어나서 현실의 두 발을 딛고 살도록 촉구합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을 외치는 선동적인 구호에 속지 말라고 도전하는 말씀입니다.

 

2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시고 따로 높은 산에 올라가셨더니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그 옷이 광채가 나며 세상에서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희어졌더라 4이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에게 나타나 예수와 더불어 말하거늘(2-4)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죽기전에 볼 자들도 있을 것이다’라는 희망적인 약속을 주셨습니다. 이 예수님께서 등극한다는 뜻이었습니다. 1차적으로 부활 사건을 염두해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본문에 나오는 ‘변화산 사건’은 부활의 영광을 미리 맛보게 하는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듣고서 십자가의 고난을 예고하셨습니다. 그 엿새 후에 수제자인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데리시고 산으로 올라 가셨습니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모하셨습니다. 이 ‘변화산 사건’은 자세히 살펴보면, 첫 이스라엘과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첫 언약을 맺을 때, 경험했던 모습과 여러모로 비슷합니다. 저자 마가는 예수님을 새 이스라엘과 새 언약을 맺으시는 새로운 모세로 소개하고 있습니다(참고. 출애굽기 24:16). 예수님께서는 모세처럼 높은 산에 올라 영광 가운데 서셨습니다. 옷이 희어져 광채가 났는데, ‘세상의 빨래하는 자가 그렇게 희게 할 수 없다’라는 묘사는 그것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영광임을 말해 줍니다.

 

예수님 옆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 선지자들의 대표자인비다. 이들이 나타난 것은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리스도가 바로 예수님이심을 증명해 줍니다(4). 이 놀라운 사건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 장차 어떤 영광을 받게 될 지를 미리 보여 주시려고 행하신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자들은 장차 예수님과 같은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영광의 왕이십니다.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기쁨으로 자신의 뒤를 따르게 하려고 자신을 따르는 자들이 받을 영광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실 영광을 소망하여 영광의 주님을 찬양합니다.

 

변화산에서 제자들의 반응(5-8)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역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신 것, 죄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 다 중요한 복음이 됩니다. 하지만 이 세상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일 것입니다. 부활만이 우리들이 살아가는 희로애락의 생활 속에서 희망과 능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5베드로가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 하니 6이는 그들이 몹시 무서워하므로 그가 무슨 말을 할지 알지 못함이더라 7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8문득 둘러보니 아무도 보이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와 자기들뿐이었더라(5-8)

 

변화산에서 영화롭게 변화된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본 베드로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그 자리에 초막을 짓자고 합니다.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장막에서 살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상징하는 구름 기둥과 불기둥 아래에서 살았던 것을 기념하는 절기, 초막절을 떠올린 것입니다(5-6).  이에 하나님께서는 구름 소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7)라고 명령하시는데, 이는 시편 2:7과 신명기 18:15의 인용입니다. 시편 2편은 왕의 대관식 때 불렀던 노래고, 신명기 18:15은 하나님께서 ‘나(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세우실 것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는 명령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영광스러운 예수님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은 더 이상 나갈 수 없는 영광스런 모습이었습니다. 아직도 십자가를 이해하지 못한 본 제자들, 특히 베드로는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해 초막 셋을 짓겠다고 제안합니다. 그 때에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는 그분의 선언과 요구가 아무리 충격적이더라도 베드로처럼 그분을 막아서거나 산 위에 머물려 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내려와야 했습니다. 그것은 그들에 종착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변화산에 내려오심(9-13)

사람들은 자신이 온전히 믿지 못한 것들을 말하기도 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 그것을 온전히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대로 믿을 때 말씀을 통한 역사가 일어납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시면, 그분이 그리스도심이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 고난을 먼저 거쳐야 하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산에서 본 것을 발설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십니다.

 

9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께서 경고하시되 인자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니 10그들이 이 말씀을 마음에 두며 서로 문의하되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하고 11이에 예수께 묻자와 이르되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 12이르시되 엘리야가 과연 먼저 와서 모든 것을 회복하거니와 어찌 인자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 하였느냐 13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엘리야가 왔으되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 하시니라(9-13)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선지자는 어리석은 백성에 의해 멸시의 대상이 되곤 했습니다. 예수님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변화산 사건을 부활 이전에는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1) 예수님의 당부(9)

 

예수님께서는 산 아래로 내려오시면서 돌아 가시 전까지는 아무에게도 본 것을 말하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

 

(2) 엘리야에 대한 질문(10-11)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서로 의논하다가 예수님께서 묻습니다. 당시 율법학자들은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렇다면 왜 엘리야는 아직 오지 않았는냐고 제자들이 물었습니다.

 

(2) 엘리야에 대한 대답(12-13)

 

예수님은 엘리야가 먼저 오는 것은 회복을 위함이고 이미 엘리야가 왔지만 사람들은 알아보지 못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없는 영광은 없습니다. 변화산에서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본 제자들은 감격해서 그냥 그렇게 머물러 있길 원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받아들이지 않으셨습니다. 혹시 제자들처럼 고난 없는 영광만 누리려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영광을 위해 고난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천국의 가장 좋은 모델은 교회와 가정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와 가정에서 하나님의 영광과 사랑을 체험해야 합니다. 우리 가족, 함께 신앙생활을 하는 믿음의 공동체 성도 모두가 장차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이 땅에서 모두 함께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드러내면서 천국 리허설을 잘 마치고 나서 그 나라에 함께 들어가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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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08-03)


제자도를 가르치신 예수님

마가복음 8장 27-9장 1


 

사람들이 뭔가 부족할 때 2%로 부족하다고 말을 자주 합니다예수님이 누구신가에 대해 사람들은 다양하게 설명합니다하지만 그들의 대답을 들어보면 무엇인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사실 그것은 2%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2%도 표현하지 못한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먼저 고난과 죽음을 당하셔야 했습니다. 베드로와 제자들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지만, 예수님께서 죽음을 예고를 하시자 그는 가로막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제자의 길을 가르치십니다. 그 길은 십자가의 길이며, 그 길만이 영생의 길이라고 소개합니다.

 

예수님의 정체에 대한 고백(27-30)

지금 우리들은 예수님의 제자로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그렇다면 믿고 있는 예수님을 어떠한 예수님을 믿고 있습니까기다리고 사모하는 예수님은 어떤 모습니까그것은 신앙의 모습을 이끌어가는 신앙관이기 때문입니다당신도 예수님의 질문에 대해 바른 대답을 하시길 바랍니다.

 

27예수와 제자들이 빌립보 가이사랴 여러 마을로 나가실새 길에서 제자들에게 물어 이르시되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28제자들이 여짜와 이르되 세례 요한이라 하고 더러는 엘리야더러는 선지자 중의 하나라 하나이다 29또 물으시되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 하매 30이에 자기의 일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경고하시고(27-30)

 

예수님께서 마지막 여정을 시작하십니다제자들과 함께 가이샤라 빌립보로 가시는 길이었습니다마지막 여정인 빌립보에서 예루살렘까지 약 200km를 걸어가면서 제자 훈령을 하고 계십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제자의 삶인지 알기 위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그것은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관한 지식입니다제자는 스승을 따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스승의 정체가 곧 제자의 정체인 것입니다제자는 스승의 분신입니다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자신을 얼마나 잘 이해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먼저 제자들에게 사람들의 여론으로 자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 질문하셨습니다제자들은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따라 예수님께 엘리야나 세례 요한과 같이 예언자로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무리들의 이해는 이것까지였습니다많은 말씀을 듣고 많은 기적을 보았지만 바른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대답들을 들으신 후에 이번에는 제자들에게 다시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라고 묻습니다그러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라고 대답합니다이 대답은 예수님이 기대하셨던 대답이었습니다이 뒤에 예수님의 칭찬이 나올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그 대신에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들에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명하셨습니다이런 명령을 하셨는지 알 순 없지만 뒤에 가르친 내용을 보면 어느 정도 가늠케 해줍니다.

그것은 베드로는 아직 그리스도이신 중 알았지만 어떤 그리스도이신 줄 몰랐던 것입니다이대로 제자들이 메시아로 전하면 무리들 역시 자신들이 바라던 정치적인 메시아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제자들도 더 배워야 했고무리들도 더 알아 야 했습니다그래야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니다그러지 않으면 자신들이 만든 예수님을 믿기 때문입니다아직 하나님의 때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때가 되면 예수님께서 직접 그 사실을 공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그때까지는 그리스도의 신분은 비밀에 붙여야 합니다.

 

베드로를 꾸중하신 예수님(31-33)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 어떤 메시아인지 가르치기 시작합니다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에서 세 번에 걸쳐서 자신의 사명을 소개하십니다이번이 그 첫 번째입니다.

 

31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 32드러내 놓고 이 말씀을 하시니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항변하매 33예수께서 돌이키사 제자들을 보시며 베드로를 꾸짖어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31-33)

 

베드로의 신앙 고백을 들으신 후에이제 예수님께서 장차 자신이 이루어가야 할 일들을 예언하셨습니다처음으로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이 땅에서 많은 사람들을 위해 고난을 받고 십자가에 죽임을 당하실 것그리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희망적인 말씀보다 절망을 주었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있던 베드로를 포함한 다른 제자들도 예수님을 붙잡고 예수님을 꾸짖었습니다그들이 이렇게 강력하게 대한 이유가 있습니다그들은 지금까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하지만 이제 자신의 선생이 망하기 때문에 자신들도 망하게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알게 된 제자들은 모든 것을 깨달은 것처럼 보입니다하지만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그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메시아가 다른 메시아였습니다.

제자들이 생각하는 메시아는 조국을 정치적 속박에서 해방시켜 다윗 시대의 영화를 회복하는 정치적 군사적 메시아라고 생각해서 따라왔던 것입니다그러면 자신들은 높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고모든 것을 버린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라 따라왔던 것입니다그런데 예수님께서 죽음을 예언하신 것은 하늘이 무너진 소리였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제자들이 서로 앞 다투어서 예수님을 한쪽으로 데리고 가서꾸짖었습니다그리고 적극적으로 말렸던 것 같습니다그중에 다혈질인 베드로는 더욱 열심히 항변하며 말렸습니다이렇게 하는 것이 예수님께 칭찬 들을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돌이키시면 제자들을 바라보시면서 그 중에 베드로를 향하여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라고 책망하셨습니다그들은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바리새인들과 헤롯당처럼 자기 자신의 이권만 생각하고 있습니다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했던 사람이 순간적으로 사탄의 하수인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사탄이 하는 일은 예수님의 길을 가로막는 일입니다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간질하는 것이 사탄의 일입니다지금 베드로가 하는 일이 그 일입니다그러기 때문에 제자들은 예수님께 크게 책망을 받았습니다앞에서 살펴본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과 지금 베드로의 공통점이 있습니다그들은 하나님을 위한다고 하는 일들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오히려 사탄을 도와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고 하셨습니다그들은 예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뒤를 따라가지 않고 예수님 앞에서 인도하려 들었습니다예수님을 가르쳐 들고자신들이 바라던 예수님으로 만들려고 했던 것입니다하나님의 뜻을 앞세우지 않고 자기 명예와 자랑과 자기만족을 앞세웠던 것입니다사람들에게는 칭찬을 받을 진 모르겠지만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 때문에 일을 제대로 진행할 수 없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을 열심히 따른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그것은 예수님을 바로 알고 따르는 것입니다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예수님인 줄 알고 따르고 있던 분이 예수님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으로 만들어 놓은 허상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예수님께서 왕노릇하는 나라입니다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세상 나라의 왕으로서 로마를 물아내고 이스라엘을 근동의 강대국으로 만드실 분이 아닙니다그분은 사탄의 나라를 이기고 온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실 분입니다검과 창의 무력이 아니라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세우실 것입니다그리고 그 나라는 남을 희생시켜 세울 나라가 아니라 자신이 희생하여 세우실 나라입니다.

 

제자들은 성공적인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자신들이 생각하는 메시아와 다른 말씀하신 예수님을 책망한 실수를 범한 것입니다당신은 예수 그리스도를 어떤 그리고 있습니까그분을 통하여 무엇을 기대하고 있습니까?

 

제자도를 가르치신 예수님(34-9:1)

이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아가는 백성의 자세를 가르치십니다진정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따라 가는 제자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가야 하는지 설명합니다진정으로 예수님을 쫓는 제자의 길은 어떤 길입니까?

 

34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38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1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는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하시니라(34-9:1)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따라오는 방법을 말씀하셨습니다그 방법을 사람들과 제자들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예수님을 따르는 비결은 예수님을 따르는 길입니다그것은 자기를 주장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입니다자신의 욕망을 품고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것입니다진정한 예수님의 제자는 십자가를 가로 막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십자가를 지고 자기 목숨을 잃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것은 목숨과 바꿀 만큼 복음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따라오라는 것입니다십자가의 고난을 받겠지만영원한 생명과 영광이라는 엄청난 복도 받을 것입니다그러한 제자들만이 진정한 생명을 얻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은 온 천하보다 귀하다고 하십니다그 사실을 믿을 때 제자로 살 수 있습니다다음으로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38)고 결단을 촉구하십니다예수님을 자신의 목숨보다 하찮게 여기면 주님도 그렇게 하시겠다는 뜻입니다그것을 세상을 사랑하고 신랑이신 예수님을 버린 것이기 때문에 죄라고 하시고 음란한 짓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감당해야 할 것들이 있습니다항상 사람의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그것은 자기 주권을 포기하고 하나님의 주권에 복종하는 것입니다예수님처럼 목숨까지 버려서라도 순종해야 합니다그러나 그것은 희생이나 손실이나 그리고 헌신도 아닙니다버린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그리고 당신의 헌신을 통해 귀한 생명을 얻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제자입니까제자들은 예수님을 자신의 생각대로 앞장섰습니다그러나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자신을 희생함으로 하나님 나라를 세웠습니다먼저 자신의 욕망을 포기해야만 예수님을 바르게 따를 수 있습니다그렇지 않으면 십자가를 지고 따를 수 없습니다이제 진정한 제자라면 자신이 아닌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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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08-02)


영적인 소경을 가르치신 예수님

마가복음 8장 14-26


 

자세하게 말했는데도 상대방이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그러면 다시 또 더 자세하게 설명하지만그래도 알아듣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그리고 듣는 사람이 말을 전하는 사람의 의도와는 전혀 엉뚱한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이러한 상황은 말을 전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나처할 때가 있습니다.

 

  •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는 오병이어와 칠병이어를 통해 두 번이나 무리를 먹이시는 기적을 보았지만, 바리새인들은 하늘로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주님은 불신앙으로 가득한 그들을 떠나십니다. 본문은 사천 명을 먹이신 사건에 대해 제자들이 부정적인 반응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벳새다에서 소경을 치유하신 것을 통해 제자들의 영적 치유의 필요성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누룩을 설명하신 예수님(14-15)

마음이 둔하면 깨닫지 못합니다눈으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귀로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행동이 둔하면 제때에 일을 이룰 수 없습니다생각이 둔하면 계획과 추진력이 없습니다손발이 둔하면 게을러 굶게 됩니다그러므로 아무것도 성취할 수 없습니다결국 주님께 책망을 받게 됩니다.

 

14제자들이 떡 가져오기를 잊었으매 배에 떡 한 개밖에 그들에게 없더라 15예수께서 경고하여 이르시되 삼가 바리새인들의 누룩과 헤롯의 누룩을 주의하라 하시니(14-15)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떠나 호수 건너편으로 가셨습니다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셨습니다그것이 바로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가르침과 헤롯왕의 나쁜 행동을 닮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하셨습니다적은 누룩이 음식 전체에 펴지듯이 이들의 악한 가르침과 행동이 제자들에게 악한 영향을 줄 것을 염려하신 것입니다.

 

이것에서 말씀하신 누룩은 제자들에게 끼칠 수 악한 영향력을 의미합니다바리새인들의 누룩은 종교 지도자들은 흠모의 대상이 아니라 경계의 대상이란 것입니다그들은 많은 기적을 보고도 하늘에서 오는 표적을 구하였습니다그들은 자기 입맛에 맞을 때까지 어떤 진리도 믿지 않고 왜곡한 사람들입니다헤롯의 경우도 권력을 위해 경건을 가장하고 진리를 억압하는 삶이기 때문입니다모두 경계의 대상일 뿐입니다예수님의 제자들도 바리새인처럼 종교적인 위선자나 헤롯과 같이 정치적인 야망을 가진 사람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른 이유가 무엇인지 돌아보게 하는 요구입니다.

 

이처럼 제자들에게 바리세인과 헤롯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권하셨습니다오늘날 우리들도 조심해야할 세상의 누룩들이 있습니다세상의 권력과 명예에 영향을 받으면예수님도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릴 수 없을 것입니다그러기 때문에 반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누룩을 세상에 전파해야 합니다.

 

빵을 걱정하는 제자들(16-21)

예수님과 많은 시간을 지내면서 많은 것을 듣고 보고 배웠습니다하지만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제자들의 답답함을 볼 수 있습니다예수님께서 누룩에 대한 이야기를 하셨을 때제자들은 무엇이라고 응답합니까?

 

16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기를 이는 우리에게 떡이 없음이로다 하거늘 17예수께서 아시고 이르시되 너희가 어찌 떡이 없음으로 수군거리느냐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 너희 마음이 둔하냐 18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 또 기억하지 못하느냐 19내가 떡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바구니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열둘이니이다 20또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떼어 줄 때에 조각 몇 광주리를 거두었더냐 이르되 일곱이니이다 21이르시되 아직도 깨닫지 못하느냐 하시니라(16-21)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함을 이해하고 계셨습니다그래서 누룩에 대한 말씀을 하실 때제자들은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자신들이 떡을 가져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누룩을 비유로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하지만 누룩을 떡으로 이해하는 제자들은 한심스러운 것입니다그들은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은 대로만 들었던 사람들입니다.

사람들과 관계에 잘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그들은 자기 생각으로 가득 찬 사람들입니다자기 확신이 지나치게 강해서 모든 것을 자기 생각으로 판단하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누룩을 말씀하실 때자신들의 해석대로 떡을 걱정하신 것으로 이해했습니다칠병어이를 통해 남은 떡을 미처 챙기지 못하고 배에 오른 것에 대해 예수님의 책망하신 줄 알았습니다.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이 예수님을 자신의 종교나 정치적으로 경쟁자로 오해하고 있었습니다하지만 제자들도 예수님을 자신들이 원하는 메시아로 만들고 있었습니다그런 점에서 언젠가 제자들도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처럼 자기 이해관계가 다르면 언제든지 예수님을 버릴 수 있는 그런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을 예수님은 책망하십니다그들을 향해 아직도 알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그들의 문제를 마음이 굳어진 데서 찾으십니다그들의 영적인 상태를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상태로 규정하십니다왜 이렇게 책망을 받아야 합니까그들은 망각했던 것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해서 홍해의 기적만나의 기적 그리고 많은 기적들을 체험했음에도 불구하고 망각했습니다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했습니다그래서 그들은 불평과 불만을 늘어놓았습니다망각은 죽음에 이르는 병입니다망각과 무지가 낳은 자신은 불신입니다.

자신의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그들에게 말씀이 어렵게 들린 것은 그것이 자신과 상관없이 말로 들리기 때문입니다말씀과의 상관성을 찾지 못한 것은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그러기 때문에 제자들이 책망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시고칠병이어로 사천 명을 먹이시던 기적을 다시 기억하도록 하셨습니다이러한 기적들을 보았으면서도 아무것도 깨닫지 못하고 여전히 먹을 것에 대해 걱정하고 염려했기 때문입니다제자들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33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태복음 6:33-34)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고 따를 만큼 영적인 눈이 열렸지만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 만큼 온전히 깨닫지는 못했습니다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는 마음이 굳어져서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했습니다더디게 깨닫는 제자들의 문제를 지적하시되그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이고 정확하게 지적해 주시는 분입니다.

 

성도들이 말씀에 영향력이 되지 않는 사람들이 되면다른 무엇인가에 반드시 영향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그래서 신앙은 항상 선택의 문제입니다어떤 것에 영향을 받을 것인지 선택해야 합니다오늘날 우리 주변에는 예수님에 대한 그릇된 생각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이러한 것들을 잘 분별해야 합니다그래서 바른 누룩을 전파해야 합니다오늘도 주의해야할 누룩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그런 누룩을 퍼트리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소경을 고치신 예수님(22-26)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넘는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이 마무리되어 가는 상황에서 제자들이 이와 같은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마가는 여기서 매우 의미심장한 기적을 소개합니다그 기적은 벳새다에서 소경을 치료하는 기적입니다.

 

22벳새다에 이르매 사람들이 맹인 한 사람을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손 대시기를 구하거늘 23예수께서 맹인의 손을 붙잡으시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사 눈에 침을 뱉으시며 그에게 안수하시고 무엇이 보이느냐 물으시니 24쳐다보며 이르되 사람들이 보이나이다 나무 같은 것들이 걸어 가는 것을 보나이다 하거늘 25이에 그 눈에 다시 안수하시매 그가 주목하여 보더니 나아서 모든 것을 밝히 보는지라 26예수께서 그 사람을 집으로 보내시며 이르시되 마을에는 들어가지 말라 하시니라(22-26)

 

예수님께서 벳새다에 계실 때사람들이 앞을 보지 못한 소경을 데리고 왔습니다예수님께서는 소경을 마을 밖으로 따로 데리고 나가셔서 직접 그 사람의 눈에 침을 뱉으시고 안수하여 주셨습니다그러자 예수님께서 이 사람의 눈을 열려서 앞을 보게 되었습니다하지만 희미하게 보였습니다아직까지는 불안전한 치유였습니다예수님께서 능력이 부족해서 그런 것은 아닙니다예수님께서 다시 소경을 안수해주시니깐 이제 완전하게 회복이 되었습니다두 단계로 고치신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마을로 들어가지 말고 돌아서 집으로 가라고 당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소경의 눈을 두 단계로 회복시켜 주셨습니다아직 제자들이 영적인 눈을 제대로 뜨지 못하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첫 번째 소경이 희미하게 보이듯이 예수님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희미하게 이해했던 것이었습니다이러한 제자들의 영적인 상태를 깨우쳐 주고 싶었습니다단계적으로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그래서 이 사건은 벳새다 소경을 두 단계로 치유하신 것은 제자들의 영적인 눈이 점점 뜨여가는 과정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당신의 영적인 시력은 어떻습니까하나님과 말씀을 희미하게 보인 상태보다 밝히 보아야 합니다만약 희미한 상태라면 예수님께서 당신을 만져주시길 바랍니다당신의 어두워진 영혼이 더욱 밝아지고 넓은 시야를 가지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모든 사람들의 형편을 보고 불쌍히 여기십니다하나님의 말씀을 편식하며 자신이 이해한 것만 최고라고 고집하지 않습니까그것은 믿음 없는 행위입니다믿음이 없고 마음이 강퍅해서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엉뚱한 생각을 하는 우리들은 불쌍히 여겨 주시길 구하길 바랍니다그리고 영안을 뜨게 하시길 원합니다그리고 온전한 예수님의 시선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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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08-01)


광야에서 이방인을 먹이신 예수님

마가복음 8장 1-13


 

주님을 찾아갈 수 없는 상황에 있을 때주님은 당신을 찾아오십니다주님의 찾아오심을 인간의 조건을 따라 찾아오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당신을 찾아오십니다당신의 인생 가운데 주님께서 찾아와 말씀하신 것을 들으시길 바랍니다그리고 주님께서 주시기 원하시는 모든 것들을 얻는 그런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예수님은 이방인들에게도 먹이셨습니다.

 

  • 예수님께서 계속적으로 이방 사람들을 향한 사역을 살피고 있습니다. 이방여인의 귀신들린 딸을 축사하시고,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고치고 그리고 이방인들을 먹이시는 사건입니다. 과거에 갈릴리 지역에서 유대인 남자 오천 명을 먹이신 적인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방 지역에서 사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베푸십니다. 하지만 종교지도자인 바리새인들은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합니다.

 

먹을 것이 없는 이방인(1-4)

아무 것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것을 만드신 기적은 하나님의 사랑에서 출발합니다하나님은 사람들의 필요를 아시고 그것을 채우시기 위해 만들어주신 것입니다오늘도 주님은 우리들의 필요를 아시고 그것을 풍성하게 채워주실 것입니다그러나 그렇게 이루어가는 과정이 있습니다.

 

1그 무렵에 또 큰 무리가 있어 먹을 것이 없는지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2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 그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 이미 사흘이 지났으나 먹을 것이 없도다 3만일 내가 그들을 굶겨 집으로 보내면 길에서 기진하리라 그 중에는 멀리서 온 사람들도 있느니라 4제자들이 대답하되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1-4)

 

오병이어와 비슷한 사건이 이번에는 이방인들이 사는 동네에서 일어납니다예수님께 나아온 무리들은 대부분 이방인이었습니다그들은 주린 배를 참아가면서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대단한 열심이고 열정이었습니다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먹을 것이 떨어졌는데도 광야에서 삼 일 동안이나 함께하면서 말씀을 들었습니다그런 무리가 돌아가는 길에 기진할까 예수님은 염려하셨습니다이처럼 예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지 않으셨으며영적인 필요와 육적인 필요를 나누지 않으셨습니다굶주린 유대인을 불쌍히 여겨서 먹이신 예수님께서 굶주린 이방인들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난 곳도 광야지만이 기적도 광야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마가복음의 큰 무대는 광야입니다이것은 모든 사람들이 방황하고 있는 장소입니다광야는 믿음이라는 눈으로 보면광야에는 또 다른 실체가 숨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하지만 자신의 기준대로 보면삭막하고 살아남기 힘든 곳입니다세례 요한도 예수님도 제자들도 광야는 소명을 기억하고 사명을 부여받고 사명을 환기하는 자리였습니다광야는 자신의 주장은 사라지고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 때도 무리를 목자 없는 양같이 불쌍히 여기셨습니다이번에도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있고 계십니다당신이 가지고 있는 문제를 예수님께서는 당신보다 더 잘 아시고 피할 길을 준비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믿음의 반응을 요구하셨습니다그러나 제자들의 태도는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이 사람들로 배부르게 할 수 있으리이까?라고 회의적인 반응을 합니다그들은 예수님을 신뢰하기는커녕 훈계하고 책망하듯 한 행동입니다이 모습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한 탄식 소리가 다시 들려온 듯합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신앙적인 소리를 들어보겠습니다.

 

18그들이 그들의 탐욕대로 음식을 구하여 그들의 심중에 하나님을 시험하였으며 19그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적하여 말하기를 하나님이 광야에서 식탁을 베푸실 수 있으랴 20보라 그가 반석을 쳐서 물을 내시니 시내가 넘쳤으나 그가 능히 떡도 주시며 자기 백성을 위하여 고기도 예비하시랴 하였도다(시편 78:18-20)

 

제자들은 첫 번째 오병이어의 기적처럼 회의적인 반응을 보입니다얼마 전까지 첫 번째 기적을 맞보고도 이번에도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 제자들은 의외의 반응입니다마땅히 깨달아야할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의 실패는 예수님의 신랄한 책망을 듣기에 충분합니다(8:17-21).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직접 보고 직접 그 기적에 참여했으면서도제자들은 예수님을 의지하는 대신 현실의 벽 앞에서 체념하는 편을 택합니다자기가 할 수 없고 상식적으로 가망이 없으면 예수님도 무능한 분으로 만드는 이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속사정까지 먼저 아시고필요를 채워주실 것입니다걱정하지 말고 예수님을 가까이 나가서 사정을 아뢰시길 바랍니다그러면 당신이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더 풍성하게 채우실 것입니다.

 

칠병이어를 통해 역사하신 예수님(5-10)

예수님은 우리의 사정을 아시고 돌보시는 분입니다예수님께서는 누가 말하지 않았지만 사람들의 배고픔을 아시고 그들을 배불리 먹이신 사랑의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제자들을 향해 소유한 것이 몇 개인지 물어보고 계십니다.

 

5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 이르되 일곱이로소이다 하거늘 6예수께서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떡 일곱 개를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나누어 주더라 7또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는지라 이에 축복하시고 명하사 이것도 나누어 주게 하시니 8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 일곱 광주리를 거두었으며 9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더라 예수께서 그들을 흩어 보내시고 10곧 제자들과 함께 배에 오르사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시니라(5-10)

 

이렇게 불신앙적인 제자들의 태도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습니다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느냐?고 물으십니다제자들은 떡 일곱 개를 내놓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땅에 앉게 하십니다그리고 모든 사람 앞에서 그 떡을 가지고 축사하십니다제자들에게 떼어 나누어 주게 하십니다떡을 나누어 주면서 제자들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오병이어의 기적을 망각한 채 현실의 어려움 앞에서 믿음 대신에 체념을 선택한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무너져 내렸을 것입니다그들은 또 잊었구나!’라는 생각에 예수님을 신뢰하지 못한 것을 느꼈을 것입니다이러한 제자들의 부끄러운 모습이 우리들에게도 있습니다예수님보다 먼저 나서서 속단하고 체념하고 있는 기도의 제목이 없습니까그것까지도 주님의 뜻이 이루어질 위해 기도하시길 바랍니다하나님께 맡기는 삶은 상상할 수 없는 축복을 누릴 것입니다.

 

본문으로 돌아가서 제자들이 가져온 떡 일곱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먹이셨습니다그러고도 일곱 광주리의 떡이 남았습니다이방인 무리들은 오병이어의 기적보다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던 것입니다약 사천 명의 사람들이 이 기적을 경험하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오병이어 기적은 갈릴리 서쪽 해안에서 유대인을 위한 잔치였으면본 기적은 갈릴리 동쪽 이방 땅에서 이방인들을 위한 잔치입니다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쌍히 여기시고 만족케 하셨던 것처럼이방 백성도 동일하게 긍휼히 미하고 있음을 상징한 것입니다이 사건은 이방인들을 포함하는 하나님 나라의 잔치가 얼마나 풍요로울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다시 흩으시고 이방 지역 사역을 마무리하시고 달마누다 지방으로 가십니다.

 

이방인인 우리들은 지금 이미 이 잔치를 맛보는 중에 있습니다오늘도 예수 공동체의 나눔을 통해 적어도 우리 주변에서부터라도 이 천국의 부요함을 나누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표적을 구하는 바리새인(11-13)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대한 믿음을 가진 것은 기적이 아니라 믿음입니다믿음을 가져야할 유대인들더 나가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맞이하고 있습니다그들의 태도는 이방인들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예수님을 믿기 위해 나온 것이 아니라 시험하려든 것을 봅니다.

 

11바리새인들이 나와서 예수를 힐난하며 그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거늘 12예수께서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시며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13그들을 떠나 다시 배에 올라 건너편으로 가시니라(11-13)

 

이방인들은 삼 일 동안이나 굶주리면서 예수님과 함께 말씀을 청종했습니다하지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그들은 그 동안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들었을 텐데도 또 다른 표적을 구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눈으로 하늘에서 만나가 내린 것을 보게 해달라고 요구합니다그들의 목적은 예수님을 시험하는 것이었습니다그들에게 더 이상 어떤 표적을 보여준들 그들은 믿지 않고 트집을 잡으려고 한 것입니다그들은 믿기 위해서가 아니라 믿지 않기 위해 새로운 표적을 구한 것입니다말도 안 되는 다양한 핑계를 대며 다른 증거를 구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면서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적을 구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세대에 표적을 주지 아니하리라고 깊은 탄식을 하십니다종교 지도자들이 먼저 신뢰하고 믿어야한데도 불신으로 가득 찬 모습을 탄식하신 것입니다그 유대들에게 보여주어도 안 믿음을 것이기 때문에 보여주지 낳는 것입니다짐승처럼 여기는 이방인들은 예수님을 말씀을 삼 일 동안이나 청종하는데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고 있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말씀보다는 기적에만 관심가진 시대입니다포스던모던니즘은 진리가 없다고 생각한 시대입니다이 시대에 영합하여 말씀에 대한 문맹자들이 많이 나옵니다하나님의 능력을 부정하며 불신을 작정한 시대의 주장에 마음이 흔들리지 마시길 바랍니다도리어 겸손한 자세로 확신하게 신실하게 진리를 말하고 성실하게 진리를 나타내며 살아갑니다기적을 구하는 것보다 믿음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지금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이 때에 예수님께 믿음의 태도를 가져야 할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철병이어의 기적 때처럼 우리의 형편을 살펴보고 계십니다그리고 당신의 부족함을 아시고 풍성하게 채우실 것입니다한 가지 주의할 것은 너무 기적에만 의존하지 마시길 바랍니다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적절하게 이루어 가시는 분임을 잊지 않으면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그리고 당신도 세상을 향해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의 시선으로 바라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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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07-03)

 

 


이방인의 장벽을 무너트린 예수님

마가복음 7장 24-37절


 

몸이 아프면 정상적이기 않기 때문에 몸이 움츠려듭니다. 특히 감기가 들어서 코만 막혀도 잠이 오지 않습니다. 만일 혈관이 막히면 동맥경화로 마비가 됩니다. 터지면 큰 질병을 가져 옵니다. 뇌에 산소 공급이 되질 않으면 죽음에까지 이르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도 막힌 것이 있다면 반드시 뚫어야만 해결이 됩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나가는 데는 장벽이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정결법’으로 이방인들에게 장벽을 두었습니다. 하지만 이것을 예수님을 뚫어주셨습니다.

 

  • 본문에서 8장 10절까지 예수님의 이방 사역이 전개됩니다.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그 이방인의 장벽을 허무셨습니다. 유대 종교지도자들의 눈총에서 아랑곳하지 않고, 이방 지역에서 이방 여인의 딸과 귀먹고 어눌한 사람을 고쳐주셨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께서 이방인들과 유대인의 장벽을 무너뜨리셨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자격은 유대인의 생각처럼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을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바꾸셨습니다. 것을 의미하십니다.

 

이방인의 믿음을 보신 예수님(24-30)

유대인들 입장에서 보면, 이방인들은 절대로 구원의 반열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들만이 구원의 혈통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방인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은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복음의 역사는 모든 장벽을 초월하여 역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4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방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25이에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에 엎드리니 26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 쫓아내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27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28여자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29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30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24-30)

 

예수님께서는 이방인 지역으로 넘어가시기 전에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한 장벽을 무너뜨리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정결 교리였습니다. 본문은 먼저 예수님께서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딸을 치료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귀먹고 말을 더듬는 사람을 고치십니다. 이 사람들은 ‘씨 뿌린 비유’에서 좋은 밭에 뿌려진 사람들입니다.

 

(1) 두로 지방을 찾으신 예수님(24)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는 게네사렛에게 갈릴리 중부에 위치한 두로 지역을 방문하셨습니다. 먼저 넘어가시기 전에 이방인들과 유대인의 장벽을 먼저 무너뜨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들어가신 두로는 구약에서 주로 시돈과 함께 연결되어 언급되는데(이사야 23:1-12; 예레미야 47:4 등), 이방인 거주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두로 지역의 한 집에 들어가셨다는 언급은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정결 규례의 관점에서는 이해하기 힘든 행동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새 시대에 토라의 규정들, 특별히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의 성과 속을 나누는 음식법이 의미 없어졌음을 선언하신 바 있습니다(7:19). 이러한 맥락에서 예수님의 방문은 구약에서 예언된 두로와 다른 이방 민족에 대한 구원이라는 관점에서 읽힐 수 있습니다(시편 87:4). 본문 문맥도 이 같은 해석을 지지합니다. 바로 이전에서 정결 규례에 대한 언급 이후 예수님께서 이방지역을 찾아가시는 이야기는 이제 이방인과 유대인 사이에 존재하는 장벽이 무너지고 하나님의 통치가 이방인들의 지역에서도 임할 것을 암시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가는 예수님께서 휴식을 위해 잠시 사적인 시간을 갖기 원했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예수님의 시도는 이번에도 실패하고 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 사람들에게도 익히 잘 알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수로보니게 여인의 간청(25-26)

 

아무도 모르게 쉬시려고 두로 지역에 들어가셨지만, 그곳에서도 쉴 수 없었습니다. 이방 지역이었지만 예수님의 명성은 이미 두로 지역까지도 널리 펴져있었습니다. 그 두로 지역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들었습니다.

이때 ‘더러운 귀신’이 들린 어린 딸을 둔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께 나왔습니다. 그리고 귀신을 쫓아내 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더러운’이란 표현이 등장하는데, 이것은 유대인들의 정결의 관점에서 기록된 것입니다. 앞서는 정결 규례와 관련된 주제와 잘 어울리는 표현입니다. 마태복음에서는 이 여인이 가나안 여인이라고 소개 됩니다. 이미 갈릴리에서 사역하실 때 예수님께 나아온 무리 가운데 두로 사람들이 소개되고 있기 때문에(3:8) 예수님께서는 이 지역을 방문하셨을 때 수로보니게 여인이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찾아온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이 여인은 헬라인이었고, 정결의 관점에서 더러운 영에 사로잡힌 딸을 두었습니다. 헬라인이라는 표현은 신약성경에서 종종 유대인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이방인을 언급하는 용어입니다(로마서 1:16; 고린도전서 1:24; 갈라디아 3:28). 정결 규례의 관점에서 이러한 이방 여인과 유대인들은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이러한 여인이 예수님께 나아와 그 발아래 엎드려 자신의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유대인의 기준으로 보면, 둘 사이에는 너무나도 멀었지만, 예수님께서 마련하신 새로운 기준으로 보면, 수로보니게 여인이 하나님께 더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

 

(3) 예수님의 대답과 여인의 반응(27-28)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정결 규례나 이방인들에 대해서 취하신 태도로 생각해볼 때, 이방 여인의 간청에 대한 그의 반응은 얼핏 보면 당혹스럽습니다.

 

① 황당한 예수님의 대답(27)

이방 수로보니게 여인의 간청에 예수님께서는 충격적으로 그녀의 요청을 매우 쌀쌀하게 거절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27)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곳에 사용된 ‘개들’이라는 표현은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지칭하던 경멸적인 표현입니다.

앞에서 유대인 종교지도자들에게 하신 답변과는 모순처럼 드리는 답변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예수님의 진심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 여인을 시험하고 계신 것이 분명합니다. 왜냐하면 앞에서 이미 이방인 지역 거라사 지역에서 귀신 들린 사람을 고치신 일이 있기 때문에 이방인들은 안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유대인들이 부정하다고 하는 지역인 이방 지역으로 들어오셨고, 이방인 집에 머물고 계시고 있습니다. 더 나가서 이방인 여인과 대화까지 하고 계십니다. 이미 이러한 행동들만으로도 정통 유대인의 생각을 깨드리는 행동이었습니다.

 

② 믿음을 가진 여인의 반응(28)

이방 수로보니게 여인은 예수님의 마음을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구원사의 순서에서 이스라엘에 우선권이 주어져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바로 알아차린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용하신 다소 모욕적으로 들릴 수 있는 ‘개’의 은유를 그대로 사용하여 예수님의 말씀에 적절히 답합니다.

차가워 보이는 예수님의 말씀에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아래 개들도 아이들이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28)라고 담담하게 대답합니다. 이곳에서 여인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릅니다. 이 호칭은 그녀가 예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 얼마나 예수님을 의지하고 있는지도 보여줍니다. 또, 예수님께서는 ‘옳소이다’라고 예수님의 말씀을 인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방인보다 유대인들을 먼저 구원하려 오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그것이 구속사의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인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창조적인 해석을 제시합니다. ‘그 개가 자녀들의 상아래 있다면, 자녀들과 동시에 해택을 입을 수도 있지 않겠느냐?’라고 말합니다. 물론 온전한 떡은 아니더라도 부스러기만이라도 먹을 권리가 개에게도 있다고 합니다. 놀라운 통찰력입니다.

여인은 예수님과 함께 하고 있는 것이 메시아의 풍성한 식탁에 참여하고 있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 잔치는 이미 오병이어에서 보았듯이 먹고도 열 두 광주리나 남을 만큼 풍성한 잔치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발 아래 조아리고 있으면, 유대인에게 구원을 베풀 때, 이방인인 자신도 그 남은 떡을 먹을 수 있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성경이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바입니다. 이스라엘은 이방의 빛으로 부르심을 입었습니다(이사야 42:6;49:6). 이 여인이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한 이 같은 정확한 인식을 어떻게 얻었는지는 모르지만 매우 놀랍습니다. 더욱이 항상 예수님과 같이하면서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생각하면 놀라움은 더해집니다.

 

(3) 놀라운 반전(29-30)

 

예수님께서는 수로보니게 여인에게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29)고 선언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여인의 믿음을 보시고, 딸을 보지도 않고 말씀만으로 귀신을 쫓아내주십니다. 집으로 돌아간 여인은 귀신이 떠나고 딸이 온전해진 채, 침상에 누어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귀신이 쫓겨나간 사건 보도를 통해서 마가는 하나님 나라의 복음이 유대 지역뿐만 아니라, 이방 지역에서도 선포되고 성취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습니다.

 

귀먹은 자를 치유하신 예수님(31-37)

하나님 앞에서는 가난한 마음과 순전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의 마음으로 연약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돌아보는 관심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주변 사람들 가운데 당신의 위로와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없는지 돌아봅시다. 하나님 나라는 손으로 만질 수 있도록 임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해방과 자유의 역사는 구체적이고 실제적입니다.

 

31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방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32사람들이 귀 먹고 말 더듬는 자를 데리고 예수께 나아와 안수하여 주시기를 간구하거늘 33예수께서 그 사람을 따로 데리고 무리를 떠나사 손가락을 그의 양 귀에 넣고 침을 뱉어 그의 혀에 손을 대시며 34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 35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맺힌 것이 곧 풀려 말이 분명하여졌더라 36예수께서 그들에게 경고하사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하시되 경고하실수록 그들이 더욱 널리 전파하니 37사람들이 심히 놀라 이르되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 못 듣는 사람도 듣게 하고 말 못하는 사람도 말하게 한다 하니라(31-37)

 

이제 예수님께서는 두로를 나와서 북쪽 시돈을 통과해서 갈릴리 남동쪽에 위치한 데가볼리 지방을 통과하여, 갈릴리 바다로 가셨다고 소개합니다. 이러한 묘사는 갈릴 서편의 유대 지역과 대조되는, 아마도 동편의 이방 지역을 의미합니다.

 

(1) 데가볼리에서 사역하신 예수님(31-35)

 

그런데 그 데가볼리 사람들이 그 지역에 살고 있던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단어들이 이사야 35:5-6에서 메시아가 행하실 일들을 언급하면서 등장합니다.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리고 말 못 하는 자의 혀가 노래하게 될 것이다.’ 이사야 35장의 예언대로 예수님께서는 귀먹고 말 더듬는 자를 따로 데리고 사서 치유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특이하게 고쳐주십니다. 따로 데리고 가섰습니다. 따로 데려가신 이유는 아마도 이 치유 사역을 공개적으로 함으로써 불러올 수 있는 불필요한 주목을 피하려고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귀에 손가락을 넣고 손바닥에 침을 뱉어서 그의 혀를 만지시며 ‘에바다’라고 외치셨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이 귀와 눈이 뚫리면서 병이 나았습니다. ‘에바다’는 아람어로 ‘열리라’라는 뜻인데, 그의 능력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을 알도록 하신 것입니다. 단순히 어떠한 신체 부위가 열리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고 귀먹은 자가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마지막 날에 메시아가 오실 때에 일어날 일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습니다.

 

5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6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이사야서 35:5-6)

 

이렇게 소경과 귀머거리를 고치신 것은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을 이루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메시아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충분히 메시아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셨지만, 예수님을 충분히 보고 배우지 않는 상태에서 기적만 보고 오해할 수 있어서 그렇게 하셨습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의 사역이 방해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생각과는 달리 이 소식은 더욱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그들에게 귀가 열리니깐 자연스럽게 복음을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2) 구약의 성취(36-37)

 

예수님께서는 치유 이적을 베푸신 후, 다시 침묵을 명령하십니다. 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고 있지만, 유대인들은 영적인 귀를 통해 들을 수 없었습니다. 더욱 말씀을 들을 수 없었기 때문에 복음도 전파할 수 없었습니다. 전하더라도 어눌하게 전파했던 것입니다. 이런 유대인의 상태를 ‘에바다’로 귀를 여시고 입을 여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식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은 놀라서 ‘그가 모든 것을 잘하였도다’라고 반응하였습니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후에, ‘보시기에 좋아더라’(창세기 1:33)라는 것과 표현과 같은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로 인해 망가진 하나님의 형상을 아주 새롭게 보시기 좋은 상태로 되돌립니다.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으로서 재창조 사역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두를 치유하신 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나가서 치유 받아야할 눈멀고 귀먹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형상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영적인 귀먹거리와 말 더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에바다의 은총을 간절히 기다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하나님 자녀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막힌 담을 허신 분입니다. 유대인들과 이방들 사이의 막혀 있는 것들을 뚫어주셨습니다. 이제는 모든 이방인들도 유대인들과 동등하게 권세를 누릴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혈통이 아니라 믿음을 보고 계십니다. 언제나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나가시길 바랍니다. 당신의 모든 문제들을 깨끗하게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로서 능력 있게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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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07-02)


영혼을 더럽게 하는 가르침

마가복음 7장 14-23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더러운 것들을 피하려고 합니다흙탕길을 걸어갈 때는 흙탕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걸어갑니다집안에 부패된 음식은 다른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분리시켜 놓습니다좋지 못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 참석하지 않지 않습니다하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것은 마음속에 있는 더러움임을 망각할 때가 있습니다심령의 더러움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종종 무관심할 때가 있습니다그러나 심령의 더러움이 얼마나 심각하게 자신을 더럽게 만드는지 알아야 합니다더러운 생각은 마음속에 깊은 곳에 존재하면서 자신을 망쳐가지만깨끗하기 위해서는 우선 더러운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계명보다 장로들의 유전을 더 고수하려는 자들과 논박하십니다.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사람의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속에서 나오는 것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새로운 정결과 부정의 기준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신앙의 본질을 오도하는 위선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비유로 참된 정결을 설명(14-16)

예수님께서 유대인과 이방인의 장벽을 허물고 계심을 봅니다예루살렘에서 파송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그들은 예수님께 항의합니다제자들의 문제는 스승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14무리를 다시 불러 이르시되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 15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16사람 안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하시고(14-16)

 

호시탐탐 예수님을 노리던 바리새인들은 제자들 손을 씻지 않고 떡을 먹는 것을 문제를 삼았습니다장로들의 전통에 의하면 씻지 않고 떡을 먹는 것은 부정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그 대신 함께 따라오던 무리를 향해 깨닫길 기대하시면서 비유를 설명하기 시작하십니다예수님께서는 손 씻는 것만 강조하는 바리새인들의 정결법에 대해서무리에게 사람을 더럽히는 것을 말씀하십니다사람들을 더럽게 하는 것은 에서 사람의 몸으로 들어가는 음식물이 아니라사람 에서 나오는 것들이 더럽게 하는 것입니다사람을 더럽게 하기 때문에 마음을 정결케 하기를 원하십니다악한 행위는 악한 생각에서 비롯됩니다예수님은 유대교의 정결 예법들과 관련해서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를 들어 정결법이 잘못된 것에 반박하십니다첫째는 항의하는 너희들이 위선자들이란 것입니다겉으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있는 것 같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 같지만실질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마음이 멀어진 사람들입니다하나님께 진실로 예배하는데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란 것입니다둘째로 자신들이 만든 전통을 지키기 위해 하나님의 계명을 저리고 있다는 것입니다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의 참 뜻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고 그들의 관심은 하나님께 순종하는데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즐거워하지 않았습니다그들은 다만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자신을 차별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바리새인들의 잘못이 이것입니다율법의 완성자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몰라보면서 율법의 전문가를 자처하고 있었습니다얼마나 위선자입니까그들이 마음이 더러워진 이유가 무엇입니까더러운 것들을 마음에 집어넣기 때문입니다그러기 때문에 더러운 것들이 나왔던 것입니다더러운 것들을 보고더러운 것들을 만지고 그리고 더러운 것들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그들은 탐욕스러운 것을 보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입니다(고전 3:16). 성소가 더럽혀진다면 아무리 손을 씻는 외형적인 정결예식을 행한다고 하더라도 소용이 없습니다그래서 날마다 마음을 그리스도의 거룩한 보혈로 덮고 씻어야 합니다우리들이 매일 보고 묵상하는 것이 거룩한 것들이어야 합니다마음의 묵상이 마음의 내용을 만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식물이 깨끗하다.’고 선언하십니다이것은 구약의 정결규례와 음식법 전체의 유효 기간이 끝났고 말하는 것과 같은 혁명적인 해석입니다사도 바울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4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로마서 4:14)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은 영혼 구원을 성취하시고그분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써 음식을 통한 정결의 구분을 폐하시고 내면으로부터 거룩함과 온전함이 흘러나오도록 하셨습니다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마음속을 꿰뚫어 보십니다어떤 말을 하지 않더라도어떤 행동을 하지 않더라도 마음속에 있는 악한 생각을 하나님께 솔직히 고백하며 그 생각들을 없애달라고 기도하시길 바랍니다.

 

비유에 대한 설명(17-20)

칼빈은 인간의 마음은 악의 제조공장과 같다.’고 했습니다사람들은 죄성으로 인해 죄악 된 행위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때로는 우리들이 이러한 것들을 부인하거나 숨기려고 노력합니다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인정하고 숨김없이 나오길 원하십니다.

 

17무리를 떠나 집으로 들어가시니 제자들이 그 비유를 묻자온대 18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도 이렇게 깨달음이 없느냐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19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20또 이르시되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17-20)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던 내용을 듣고도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그래서 집으로 돌아와서 다시 물었습니다예수님께서는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의 물음에 다시 한 번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도 깨달음이 없느냐?”고 반응하십니다예수님의 비유는 유대교가 오랜 역사 동안 아주 중요하게 여긴 정결법이 이제는 폐지되었다는 선언이기 때문입니다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별하고 차별하는 기준이 사라졌다고 하는 혁명적인 선언이기 때문입니다제자들은 예수님이 누구인지 잘 몰랐기 때문에 예수님을 통해 정결법이 완성된 것도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19이는 마음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배로 들어가 뒤로 나감이라 이러므로 모든 음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18b-19)라고 추가로 설명하십니다사람의 속으로 들어가는 것곧 모든 음식은 배설물로 나오기에 진정으로 사람을 더럽히는 못한다고 하셨습니다이제 정결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 사이에 구별은 사라지고 모든 음식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것이니 다 깨끗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정한 음식과 부정한 음식을 임의로 나누신 이유가 있습니다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방 민족들과 구별되어 정결하고 거룩한 나라임을 일깨우시기 위해서 하신 것입니다그것은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사람들을 죄에서 구원하여 거룩하게 하실 대속의 사역을 미리 보여 주는 모형이고 그림자였습니다그런데 이제 원형과 실체가 왔기 때문에 모형과 그림자는 사라져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죄악으로 가득한 사람의 실체(21-23)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함은 외모에 있지 않습니다다만 하나님의 성전인 마음에 모습을 봅니다하지만 자연적인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거룩함이 아니라 죄악으로 가득한 것입니다쓰레기 같은 것들은 마음에 집어넣었기 때문에 쓰레기 같은 생각이 나오는 것입니다.

 

21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둑질과 살인과 22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질투와 비방과 교만과 우매함이니 23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21-23)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에 들어 있는 죄성들을 열거하고 계십니다이제 중요한 것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고 새로운 기준을 말씀하십니다이어 사람을 더럽히는 것은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것들곧 악한 생각음란간음악의속임수방탕질투욕지거리교만어리석음이라고 가르쳐 주셨습니다한마디로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은 ()’라는 것입니다.

 

본문에 열거된 더러운 것들은 죄의 행위와 죄성에서 비롯해서 그릇된 태도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인간은 죄성으로 인해 죄 된 행위를 쏟아 낼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모든 음식은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주고필요 없는 것은 배변을 통해 몸 밖으로 나오게 됩니다따라서 음식은 우리의 몸을 더럽게 하지 않습니다다만 우리 속에서 나오는 죄의 성향과 그 행동들이 우리를 더럽게 합니다.

 

하나님을 싫어하시는 마음이 우리를 부정하게 만듭니다아무리 교회를 다니고예배를 드리고기도를 많이 하고헌금을 많이 하고성경도 많이 읽고교회에서 중직을 받는다 할지라도 그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신 것이 가득하면 그는 더러운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외적인 활동으로 자신의 마음속에 죄를 감추는 위선자(僞善者)들이라는 것입니다. ‘위선자란 연극배우들이 가면을 썼다.’ ‘분장을 했다.’는 말입니다연극배우들이 분장을 하듯이 경건의 모양만 꾸미고 경건의 능력은 전혀 없는 사람들이 바로 부정한 사람들입니다모든 인류를 거룩하게 하려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정하지 않고예수님을 구주와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 종교지도자들이야 말로 가장 부정한 자들입니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의 모습은 참으로 더럽습니다미움과 음란과 폭력 그리고 타락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습니다세상이 이처럼 더러운 것은 사람들의 생각이 더럽기 때문입니다세상은 사람들 속에 있는 생각들이 흘러나와서 문화를 만들기 때문입니다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개혁하기 전에 먼저 우리 영혼의 내면세계를 변화되길 원합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십니다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속을 들려다 보시고 무엇이라고 말씀하실 것 같습니까그래서 생각이 매우 중요합니다악한 생각에서 악한 말이 나오고악한 행동이 나옵니다생각이 바뀌지 않으면 말도행동도 바뀌지 않습니다우리가 버려야 하는 악하고 더러운 생각들은 무엇입니까생각 없이 행동하지 말고생각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각인지 살피고 점검하시길 바랍니다.

 

우리 속에 옛 사람의 잔재들이 꿈틀거립니다우리의 결심과 노력으로는 되지 않습니다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덧입으면 깨끗하게 씻어질 것입니다죄로부터 승리할 것입니다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변화가 될 때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일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생각이나 규칙보다도 중요합니다하지만 모든 삶에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의 생각보다 앞세워야 합니다외면을 중시함으로 형식에 치우신 경우가 있다면 주님 앞에 부끄러운 삶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정직한 영을 계속해서 부어 깨끗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어긋나는 생각이 앞장서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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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07-01)


전통에 대한 바른 교육한 예수님

마가복음 7장 1-13


 

신앙의 길은 장벽을 허무는 길입니다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장벽을 허물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장벽을 허무는 일입니다이것이 샬롬이고 평화인 것입니다하나님과 담을 쌓고 사는 사람은 사람들과도 벽을 쌓고 살아갔습니다자기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은 손잡고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되면 언제든지 과감하게 버리고 맙니다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은 기득권을 지키려고 끊임없이 장벽을 만듭니다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이러한 장벽을 철폐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입니다모든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서로 감사하는 태도로 사는 것이 신앙입니다이러한 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 본문은 거룩에 대한 문제입니다. 결례에 대한 논쟁 기사로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먹는다고 비난하는 바리새인들의 논쟁을 다르고 있습니다. 이 사건은 예수님은 의식적 정결보다 영적인 정결이 더 중요함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야말로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전통으로 교훈을 삼는다고 비판하십니다. 하나님의 거룩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문제를 제기하는 종교지도자(1-5)

예수님의 인기가 절정에 이르자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한 시도 긴장을 풀 수 없었습니다어떻게 해서라도 예수님의 허점을 찾아 없애려고 몸부림치고 있었습니다예루살렘에서 게네사렛 땅으로 내려왔습니다전통을 통해 예수님을 잡으려 하고 있습니다하지만 전통을 지키는 것과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다릅니다.

 

1바리새인들과 또 서기관 중 몇이 예루살렘에서 와서 예수께 모여들었다가 2그의 제자 중 몇 사람이 부정한 손 곧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았더라 3(바리새인들과 모든 유대인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지키어 손을 잘 씻지 않고서는 음식을 먹지 아니하며 4또 시장에서 돌아와서도 물을 뿌리지 않고서는 먹지 아니하며 그 외에도 여러 가지를 지키어 오는 것이 있으니 잔과 주발과 놋그릇을 씻음이러라) 5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께 묻되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장로들의 전통을 준행하지 아니하고 부정한 손으로 떡을 먹나이까(1-5)

 

예수님 당시에 종교 지도자들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빵을 먹는 것을 보았습니다그래서 그들은 모든 유대인들이 지키는 장로들의 유전을 제자들은 지키지 않은 것에 물었습니다이들이 이렇게 질문한 이유는 잘 배우려고 한 것이 아닙니다어떻게든 예수님을 트집 잡이서 정죄하기 위한 의도였습니다.

그들은 게네사렛 사람들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게네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단순하게 믿었습니다그들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온전하게 치유를 받았습니다하지만 종교 지도자들은 마음을 닫은 사람들입니다자신들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혈안이 된 사람들입니다.

 

음식 앞에서 손을 씻는 내용을 기록한 구약 성경을 살펴보면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에게 제사를 드리기 전에 손발을 씻도록 하셨습니다.

 

19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되 20그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제단에 가까이 가서 그 직분을 행하여 여호와 앞에 화제를 사를 때에도 그리 할지니라 21이와 같이 그들이 그 수족을 씻어 죽기를 면할지니 이는 그와 그의 자손이 대대로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출애굽기 30:19-21)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들이 제사를 드릴 때 정결해야 하기 때문에 명하신 내용입니다하지만 이 말씀을 바리새인들은 일반 백성들이 지켜야 의무로 바꾸었습니다사람들은 음식을 먹을 때는 잘 씻고시장에 다녀와서는 몸 전체를 씻었으며잔과 주발과 그릇까지 정결하게 씻도록 까다로운 규칙을 만들었습니다이 규례는 매우 까다롭고 어려웠습니다보통사람들은 지키기가 거의 불가능했던 것입니다결국 이것은 율법학자들이 일반 사람들을 기를 죽여서 자신들이 우월한 존재로 비추기 위해 사용했던 것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규칙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 말씀을 어긴 죄로 여겼습니다제사장들에게 요구되던 높은 수준을 일반 사람들에게 정결함을 요구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열정이 문제였습니다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이나 내적 거룩함이 아닌 전통만 유지하는데 집중했습니다고수한 지나치게 엄격한 정결 기준 때문에 형제를 마구 정죄하는 오만한 사람들이 되어버렸기 때문입니다사랑 없는 순종은 인간적인 의만 쌓으며 차가운 판단의 마음만 키웁니다.

 

이제 정결의 기준이 바뀌었습니다부정한 죄인들이 거룩하게 되는 비결은 예수 그리스도께 나옴으로 인해서 정결해집니다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힘은 예수님의 임재입니다거룩한 하나님과 접촉함으로 정결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새롭게 정결하게 된 것에 대해 고린도교회에게 말합니다.

 

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

 

우리들의 신앙생활 속에도 당연히 여기는 전통이나 관습이 하나님의 말씀과 상충되지 않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신앙생활이 형식이나 습관에 매여 있지 말아야 합니다형식주의나 율법주의에 매인 것들을 벗어버리고 말씀을 최우선으로 두고 살아가야 합니다.

 

전통을 지키는 사람들(6-9)

때로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잘못된 생각으로 다른 사람들을 판단할 때가 있습니다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라면 먼저 생각해야할 것은 자신의 생각과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입니다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것이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6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7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8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9또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잘 저버리는도다(6-9)

 

예수님께는 그들의 질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버리고 순종하지 않았고 사람들의 전통만 따르는 위선자라고 책망하셨습니다전통은 내용을 담고 있는 그릇인데그 내용은 버리고 그릇만 중요하다고 붙들고 있었습니다그들은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라고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을 것입니다처음에는 말씀을 사모해서 형식과 규례를 만들었을 것입니다어느 순간부터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사라지고 행위만 남은 것입니다마치 하나님의 일을 해왔는데하나님은 사라지고 일만 남은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의 모습을 성경을 통해서 설명합니다이사야의 예언대로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마음은 멀리 떠난 사람들이었습니다그들은 사람의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버렸습니다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위선과 헛된 예배를 책망하셨습니다이처럼 제멋대로 만들어 놓은 규칙들은 철저하게 지키려 하면서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는 유대인들을 꾸짖었습니다.

 

현대 교회 안에 바리새인들과 유사한 것들이 많습니다성경 말씀보다 전통적인 관례나 법을 가지고 그것이 신앙의 표준처럼 생각해서 남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구실로 이용하는 경우가 있습니다사람을 잘못되게 하는 것은 행동이 아니라 마음입니다마음에서부터 문제가 생기면서 행동도 더러워진 것입니다악한 생각이 음란한 행동을 하게 만듭니다그리고 도둑질과 살인을 하도록 만듭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과 지체를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전통은 사아계신 하나님을 드러내지 못하고오로지 우리의 오만과 태만을 감추는 도구만 될 것입니다껍데기뿐인 전통을 고수하려고 생생하고 역동적인 하나님과의 교제와 성도간의 사귐세대 간의 소통을 포기하는 경우가 있습니다입술과 마음은 모두 하나님을 공경하고 있길 바랍니다.

 

당신의 신앙은 어떻습니까주님을 향한 첫사랑과 마음을 상실하면 겉대기만 매너리즘(mannerism)에 가득 찬 남을 정죄하는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말씀을 사모하고 말씀대로 살려했던 순수한 첫사랑을 회복하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잘못된 전통을 바르게 교훈하신 예수님(10-13)

헌신을 핑계 삼아 이웃에게 악을 행하면 안 됩니다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전통을 더 중요 하게 여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외식을 지적하시면서 그런 것이 얼마나 나쁜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10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모욕하는 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였거늘 11너희는 이르되 사람이 아버지에게나 어머니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12자기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다시 아무 것도 하여 드리기를 허락하지 아니하여 13너희가 전한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10-13)

 

유대인들 중에는 장로의 전통인 고르반 제도를 지킨다는 핑계 삼아 이웃에게 악을 행한 것입니다부모를 공경하라는 율법을 무시하여 부모를 모욕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전통을 더 중시하는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질타하시면서 그 예로 고르반의 예를 들고 있습니다. ‘고르반이란 하나님께 바쳐진 예물로서 제사 때 구별해 드리는 곡식짐승제물 등을 말합니다이것을 다른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르반의 맹세였습니다서원물을 하나님께 드릴 때만 사용했습니다하나님께 드린다고 고르반’ 해놓고일정 기간 아무 것도 손을 데지 못하도록 악용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문제는 자신의 연로한 부모님의 생계가 막막함에도 불구하고 고르반이라고 둘러대며 부모에 대한 책임을 회피했던 것입니다헌신을 핑계로 마땅히 행해야할 것은 하지 않고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서는 안 됩니다.

불순종을 정당화하거나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기 위해 성경을 사용하는 것이 진짜 부정함이고 순종과 믿음을 통해 말씀으로 이끌림을 받는 것이 참된 성결입니다.

 

사람들은 동기가 불순하면 자신이 알고 있는 영적인 지식을 악용해서 사용합니다하나님의 본질의 거룩함을 피해가는 수 있습니다하나님의 말씀을 더 잘 지키겠다는 의도로 만들어 놓은 좋은 전통들이 하나님의 요구를 교묘하게 피해가는 교활한 수단으로 전락합니다거룩한 지식도 악한 동기로 잘못 이용되면 악한 열매를 맺게 되어 집니다.

 

오늘 우리들이 믿는 진리가 진리임을 세상에 증명하는 길은우리들이 진리대로 사는 삶으로 진리의 진정성을 증명할 수 있습니다계명의 정신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바리새인들은 고르반의 전통을 내세워 하나님의 명령하신 부모 공경의 책임을 회피했습니다혹시 당신도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우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깨뜨리고 있진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들의 생각이나 규칙보다도 중요합니다모든 삶에 하나님의 말씀을 당신의 생각보다 앞세워야 합니다외모를 중시함으로 형식에 치우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신이 사라지진 않습니까이런 경우가 있다면 주님 앞에 부끄러운 삶입니다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하게 생각하며 살아가야 합니다그리고 어긋나는 생각이 앞장서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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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06-04)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

마가복음 6장 45-56


 

사람들이 두려움은 과거에 실패의식 속에서 일어납니다다시 똑같이 실패할 것 같은 생각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그래서 두려움에 휩싸이면마음을 마비시키며실제보다 문제를 확대해석합니다그래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합니다두려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파괴되었기 때문입니다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은 모든 것을 주께 맡기고 하나님만을 바라보는 것입니다그래서 성경에서 가장 많이 나온 명령어는 366번 나온 두려워하지 말라!”입니다.

 

  •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은 예수님을 환호하고 유대인의 왕으로 잔득 기대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관심을 뒤로하고 제자들을 배를 태워 보내시고 산에 올라가 기도하십니다. 배를 타고 건너가던 제자들은 중간에 큰 바람을 만나서 어려움을 당합니다. 제자들을 위해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찾아가셨지만, 제자들은 물 위를 걸어서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몰라봅니다. 

 

홀로 기도하신 예수님(45-46)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능력을 부러워합니다사람들은 부러워하면서도 예수님과 같이 능력을 얻는 방법을 따라서 하나님의 능력을 얻으려하지 않습니다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부터 얻은 능력을 얻은 방법은 무엇입니까?

 

45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를 보내는 동안에 배 타고 앞서 건너편 벳새다로 가게 하시고 46무리를 작별하신 후에 기도하러 산으로 가시니라(45-46)

 

오병이어의 기적을 본 무리는 모세가 환생했다고 생각했습니다그래서 예수님을 잡아 억지로 왕을 삼으려고 했습니다(요 6:14-15). 무리들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압제에서 해방시켰듯이예수님은 로마의 압제에서 해방시키실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그러나 이것은 예수님과 제자들에게는 큰 유혹의 순간이었습니다무리가 예수님께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이었습니다예수님은 그들이 생각한 메시아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제자들의 생각도 무리와 다르지 않았습니다무리들 못지않게 흥분했을 것입니다그들은 이제 예수님께서 왕으로 임하실 때가 임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무리의 환호 속에 점점 빠져 들어가고 있었습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재촉하여 건너편 벳세다로 먼저 가게 하십니다열광하는 무리에게서 제자들을 신속히 떼어놓으신 것입니다제자들에게 무리가 주는 헛된 기대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하시려고 배를 띄워 건너편으로 가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인 무리들을 흩어 보내신 후에한적한 산으로 기도하려 올라가셨습니다사람들의 요구를 멀리하시고 세례 요한처럼 십자가의 길을 가시기 위해 친히 기도의 골방으로 가신 것입니다예수님의 진짜 능력이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대목입니다골방 기도만이 예수님께서 힘들고 분주한 사역을 모두 능력 있게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역을 하시기 전과 후에 반드시 기도하셨습니다작은 성공에 도취되지 않도록 하신 것입니다사람들은 성공 앞에서 겸손하기 어렵고감사하기도 어렵습니다스스로 교만해져서 성과를 자신의 것으로 돌리려 할 때가 많습니다그래서 환호를 받는 시간은 짧을수록 좋고하나님께 무릎 꿇는 시간은 길수록 좋습니다.

 

놀라운 기적을 행하신 후에 열광하는 무리를 흩어 보내시고 무척 피곤하셨을 텐데도 홀로 밤을 지새우며 기도하시는 분입니다많은 사람들이 주변 분위기나 육체적 피곤함을 핑계로 기도하는 일에 게으른 사람들이 있습니다그만큼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놀라운 능력을 체험하길 원한다면 정기적으로 기도하는 시간과 장소를 만드시길 바랍니다.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47-52)

예수님은 언제나 모든 성도들의 삶에 모델입니다항상 예수님께서는 자신과 함께한 사람들을 항상 돌아보셨습니다예수님께서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는 모습을 닮고 싶어 합니다본문에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고난에 빠져 있을 때그들을 돌아보시고 계십니다.

 

47저물매 배는 바다 가운데 있고 예수께서는 홀로 뭍에 계시다가 48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밤 사경쯤에 바다 위로 걸어서 그들에게 오사 지나가려고 하시매 49제자들이 그가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유령인가 하여 소리 지르니 50그들이 다 예수를 보고 놀람이라 이에 예수께서 곧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시고 51배에 올라 그들에게 가시니 바람이 그치는지라 제자들이 마음에 심히 놀라니 52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47-52)

 

예수님께서는 분주한 일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시는 것을 잊지 않으신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멀리서 기도하고 계셨지만제자들에게 가 있었습니다예수님께서 기도하고 계셨지만마음은 제자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대로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고 있었지만때마침 불어오는 맞바람이 불어서 제자들을 매우 힘겹게 노를 젓고 있었습니다그들은 예수님의 명령을 따랐기 때문에 당한 어려움입니다그들은 밤이 맞도록 바다를 건너지 못하고 고난을 당했습니다예수님께서 자신의 욕망과 싸우면서 기도하고 있는 동안에제자들은 바다에서 역풍과 싸우고 있습니다육지에 있으면 화려함과 인기는 있지만 하나님의 뜻 밖에 있는 인생이었습니다배를 타고 바다 중앙으로 나가면 그곳은 어두움이 있고 풍랑이 있지만 그래도 하나님의 뜻 안에 있는 인생입니다폭풍 속에서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을 바라보게 되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새벽에 물 위를 걸어서 제자들의 배에 다가가십니다밤새 바다와 싸우느라 녹초가 된 제자들은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서 유령으로 착각하며 소리를 지릅니다항상 함께 다닌 제자들이었지만 두려움에 사로잡히니깐예수님이 보이지 않고 유령이 보인 것입니다그래서 예수님을 유령으로 보고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수많은 기적을 보았습니다자신들도 제자로 파송되어 기적을 일으켰습니다몇 시간 전에는 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였습니다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그러기 때문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두려워한 이유는 예수님께서 오병이어로 먹이신 기적을 깨닫지 못했습니다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통해 메시아이심을 명백하게 증명한 것입니다메시아가 마련하신 하나님 나라의 잔치가 오병이어임을 몰랐던 것입니다제자들은 기적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깨달아야 했습니다그들은 마음이 무뎌져 있었기 때문입니다적어도 이 시점에 이르러서 제자들은 그러한 기적에 대한 진전된 깨달음이 있어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은 계속 폭풍 속에 계속 방치해 두지 않습니다제자들을 찾아가셨습니다그리고 제자들에게 안심하라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안심시킵니다그리고 주님에서 배안에 들어가니깐 모든 문제들이 해결되었습니다힘들던 폭풍의 바다가 주님께서 배에 오르시자 모두 잠잠해집니다제자들은 또 한 번 놀랍니다예수님의 말씀은 두려워하는 제자들의 마음이나 거칠게 불고 있는 바다모두를 다 잠잠케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능력을 보고도 놀랄 뿐이지 진정으로 신뢰하지 못했습니다그들은 기적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는 굳은 마음 때문이었습니다놀라운 체험보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마음이 굳어지면 하나님의 사역을 통해서 하나님을 볼 수 없습니다당신의 마음은 어떤 상태입니까항상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사람은 어떤 풍랑 속에서도 안전하다는 사실입니다.

 

병자를 고치시는 예수님(53-56)

폭풍의 바다를 건너고 이른 곳은 원래 위치와 다른 곳입니다하지만 그곳 또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습니다그곳 사람들은 예수님을 간절히 원했던 것입니다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간절히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은혜를 베푸십니다그들의 모습을 살펴보겠습니다.

 

53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러 대고 54배에서 내리니 사람들이 곧 예수신 줄을 알고 55그 온 지방으로 달려 돌아 다니며 예수께서 어디 계시다는 말을 듣는 대로 병든 자를 침상째로 메고 나아오니 56아무 데나 예수께서 들어가시는 지방이나 도시나 마을에서 병자를 시장에 두고 예수께 그의 옷 가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성함을 얻으니라(53-56)

 

풍랑의 영향으로 배가 본래의 목적지인 갈릴리 북쪽의 벳세다로 가지 못하고 그곳에서 몇 킬로 떨어진 게네사렛에 도착했습니다예수님께서 고향 나사렛에게는 냉대를 당했지만그와는 대조적으로 게네사렛 사람들은 예수님을 알아보고 열렬하게 환대했습니다.

 

예수님의 일행이 게네사렛에 도착하자 병든 자를 침상 째 메고 나아왔으며예수님의 옷자락에라도 병자의 손을 대려고 했습니다그런 간절함과 믿음 때문에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사람들이 기도하지 않는 이유는 아쉽지 않기 때문입니다그러나 아픔에 있는 사람들은 열정적으로 찾는 것입니다절박한 심령으로 주님께 나와 매달려야 합니다그러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간절히 구하는 사람들에게 한없는 사랑과 은혜를 베푸십니다하나님의 사랑이 예수님을 통해 흘러넘치고 있습니다예수님의 사역은 사람들에게 주린 배를 채워주고병을 치유하여 주시고 귀신 들린 사람을 축사하셨습니다그리고 이 세상의 것만 채워주신 것이 아니라 영생에 이를 때까지 인도하십니다예수님을 만나면 당신의 인생에 모든 것을 해결을 받습니다.

 

게네사렛 땅 사람들은 예수님의 옷자락만이라도 만지기를 소망하였고만진 자들은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내 문제를 해결받기 위해 예수님을 향한 이와 같은 간절함이 있습니까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하시길 원하십니까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간절히 찾으시길 바랍니다.


열광하는 분위기와 피곤한 육체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기도하는 일에 힘을 쏟으셨습니다모든 사역의 능력은 홀로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것에서 시작하셨습니다우리들도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더욱 덧입는 성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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