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17-01)
우상숭배를 대한 미가와 레위 제사장
사사기 17장 1-13절
예수님의 제자인 마태는 레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만나기 전에까지 무엇을 했었습니까? 그는 “세리 마태”라고 소개합니다(마 10:3). 레위인은 제사장 지파인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국노의 대표로 인식하고 있는 세리가 되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로마에 바칠 세금을 받고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얼마나 영적으로 타락했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또 다른 영적 타락한 시대를 보여줍니다.
- 본문은 미가라는 한 청년이 자신의 어머니에게 은을 훔치는 내용으로 시작됩니다. 그는 어머니께서 훔쳤다가 돌려드린 은으로 우상을 만들고 에복과 드라빈까지 만들어 집에 신당을 차리게 됩니다. 그런데 때마침 떠돌던 레인이 미가의 집에 오게 되었고 미가는 이 레인을 자신의 집 제사장으로 삼게 됩니다. 미가가 이런 일을 한 이유는 복을 받기 위한 것이었지만 자기 눈에 보기 좋은 대로 행동한 것입니다.
미가 집의 제사장(1-7)
하나님께서 부재한 심령에 남는 것은 탐욕에 물든 자아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난 자신의 소견과 소욕을 따라 행하던 시대입니다. 그 끝은 방황과 방탕 혼동과 공허뿐입니다. 옳고 그른 것을 말하고 듣는 것을 불편해하고, 오로지 다른 관점으로 치부하는 이 시대에 우리가 잃어버린 참된 건의와 기준이 무엇인지 돌아보길 원합니다. 하나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는다면 우리의 신앙은 내 야망을 이루는 욕망의 도구가 될 뿐입니다.
1에브라임 산지에 미가라 이름하는 사람이 있더니 2그의 어머니에게 이르되 어머니께서 은 천백을 잃어버리셨으므로 저주하시고 내 귀에도 말씀하셨더니 보소서 그 은이 내게 있나이다 내가 그것을 가졌나이다 하니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 아들이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 하니라 3미가가 은 천백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매 그의 어머니가 이르되 내가 내 아들을 위하여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부어 만들기 위해 내 손에서 이 은을 여호와께 거룩히 드리노라 그러므로 내가 이제 이 은을 네게 도로 주리라 4미가가 그 은을 그의 어머니에게 도로 주었으므로 어머니가 그 은 이백을 가져다 은장색에게 주어 한 신상을 새기고 한 신상을 부어 만들었더니 그 신상이 미가의 집에 있더라 5그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그가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한 아들을 세워 그의 제사장으로 삼았더라 6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1-6)
사사기 17-21장은 마지막 에필로그에 해당합니다. 사사기 17-18장은 종교적인 타락을 다루고, 19-21장은 윤리적인 타락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타락의 배후는 하나님에 대한 타락으로부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사사기 마지막에 가면 죄악이 쌓이고 쌓여서 이제 사람들이 얼마나 무심해지고 무감각해질 수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자신들이 죄를 짓는지도 모르고, 죄를 짓고도 마음 아파할 줄 모르고, 오히려 당당하기까지 한 뻔뻔함이 사사기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신앙은 사라지고 껍데기뿐인 종교만 남은 것입니다.
본문에는 미가는 이스라엘 지파 중 가장 큰 에브라임 지파로 에브라임 산지에 사는 사람으로 소개되고 있습니다(1). ‘미가’라는 이름은 본문에서 두 가지로 나옵니다. 첫째는 ‘미카 예후’인데 그 뜻은 ‘누가 여호와와 같게 있느냐?’입니다. 미가 선지자와 동명이인입니다. 1절에서 소개할 때 사용되고, 4절에서 미가의 집에서 이 이름이 사용되어 단락을 형성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우리 말 개역개정처럼 ‘미가’라고 번역하기보다는 ‘미가 예후’로 번역하는 것이 본문의 의도를 살리는 것입니다. 이 이름은 오직 여호아만이 신이라는 것을 고백할 때, 많이 사용되는 구문으로 이 이름 만을 보면, 미가의 어머니가 여호와를 믿는데 열심인 것처럼 보입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은 1100개를 잃어버렸습니다, 그녀는 이 돈을 가져간 사람을 저주합니다. 이 저주를 듣고 겁이나서 아들 미가는 두려워서 자신이 그 은을 가져갔다고 자백하고 은을 도로 내놓고 있습니다(2). 아들이 어머니의 돈을 도둑질하는 시대가 사사 시대입니다.
아들이 어머니의 돈을 도둑질하는 것은 십계명 중에 ‘내 부모를 공경하라’는 넷째 계명과, ‘도둑질을 하지 말라’는 여덟째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의 계명을 통 크게 어기면서도 어머니의 저주, 즉, 하나님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이중성을 보입니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저주가 없다면 하나님께서는 모른다고 생각한 것입니까!
미가는 도덕적이지는 않지만, 종교적인 인물로 묘사됩니다. 미가 어머니의 반응도 기대와는 다릅니다. 도둑질한 아들에게 화를 내거나 벌을 내리거나, 적어도 슬퍼할 일입니다. 오히려 도둑질한 아들에게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라고 하면서 복을 빕니다. 이는 자신의 저주가 아들에게 임할 것 같으니깐, 여호와의 축복으로 상쇄시키고 있습니다. 다른 절도범은 저주를 받아도 되고, 자기 아들은 절도범이라도 해도 저주받아서는 안 된다는 생각한 것입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돈을 훔친 자식을 전혀 훈계하거나 징계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히 돈을 무사히 찾은 것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난발하고 있습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미가에게 은을 돌려주면서 은을 여호와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릴 것이며 그것을 가지고 아들을 위해 신상들을 만들 것이라고 합니다(3). 신상을 만드는 것은 십계명의 제2계명을 정면으로 어긴 것입니다. 하지만 미가의 어머니는 그런 결정을 여호와를 위해 그리고 여호와께 복을 받기 위해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은 200을 가져다가 은 세공장에게 주어 신상을 만들었으며 그 신상은 이후 미가 예후의 집에 있게 됩니다(4). 미가의 어머니는 말끝마다 여호와의 이름을 거론하고 그분을 위하는 것처럼 말하며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그녀의 행동은 전혀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사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미가 어머니의 모습은 당시 허울과 형식만 남고 말씀은 전혀 지키지 않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습니다.
집 안에 신상을 둔 미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에봇과 드라비는 주로 하나님의 신탁을 받을 때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그런데 미가는 일반인이 가져서는 안 되는 에봇을 만들고 작은 우상도 만들었습니다. 레위기에 따르면 제사장은 오직 레위인만이 할 수 있는데 이 말씀도 어기고 자신의 아들을 제사장으로 삼고 맙니다(5). 결국, 미가의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제사장을 자신의 집에 두어 여호와를 섬길 곳을 마련하였지만, 그의 방식은 철저히 이방 신을 섬기는 방식이었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여호와를 위한다는 미명 하에 자행된 미가와 그의 어머니의 범죄들에 대해 사사기는 “그때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한 것”이라고 평가합니다(6). 여기서 “왕이 없으므로”라는 표현은 하나님만이 이스라엘 왕이신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 이상 왕이신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 말씀을 따라 살지 않음을 의미합니다.
레위인이 미가집의 제사장이 됨(7-13)
신앙이 우리 욕심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하라는 기복주의로 전락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절대 의존과 섬김의 대상입니다. 언제든지 자기 만족과 행복을 위해 부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우상처럼 여겨서는 안 됩니다. 자기 부정과 절대 순종을 요구하는 신앙이 우리 욕심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기복주의로 전락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7유다 가족에 속한 유다 베들레헴에 한 청년이 있었으니 그는 레위인으로서 거기서 거류하였더라 8그 사람이 거주할 곳을 찾고자 하여 그 성읍 유다 베들레헴을 떠나 가다가 에브라임 산지로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매 9미가가 그에게 묻되 너는 어디서부터 오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나는 유다 베들레헴의 레위인으로서 거류할 곳을 찾으러 가노라 하는지라 10미가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 내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을 주리라 하므로 그 레위인이 들어갔더라 11그 레위인이 그 사람과 함께 거주하기를 만족하게 생각했으니 이는 그 청년이 미가의 아들 중 하나 같이 됨이라 12미가가 그 레위인을 거룩하게 구별하매 그 청년이 미가의 제사장이 되어 그 집에 있었더라 13이에 미가가 이르되 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하니라(7-13)
이제 7절에서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는데, 유대 베들레헴에서 온 레위인 청년입니다. 여기서 레위인을 ‘나르’, 즉 청년으로 언급한 것은 공식적으로 제사장을 시작하는 나이가 30세가 아직 안 되었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은 인물이라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그리고, 7-9절에 세 번이나 반복해서 나오는 유다 베들레헴 출신 거류민이라는 것은 그가 하나님께서 주신 자신의 지역을 벗어나 떠돌고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여호수아 21장 4절에 하나님께서 레위인에게 주신 거주지가 있는데, 유다 베들레헴은 그 성읍 명단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신명기 18장 6-7절에 따르면, 레위인이 그가 받은 거주지를 떠나는 경우는 간절히 소원이 있을 때이고, 그 경우에도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 즉, 여호와의 성소가 있는 곳을 가야 됩니다.
레위인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자신을 위해 선택한 사람들로 항상 예배에 봉사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규정이 있는데도 이 레인은 유다 지파에 속한 레위인이 거주하는 지역에 살지 않고 이탈하여 성소도 없는 베들레헴의 거류민으로 살다가 다시 에브라임 산지까지 온 떠돌이였습니다. 그가 하나님께서 주신 의무를 전혀 실행하지 않는 인물임을 본문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사장직을 수행하기에 나이도 어리고 사명도 없는 인물이 미가의 집에 이르렀습니다.
미가는 거주지를 찾는다는 레위인의 말에 자신의 집에 고하며, 자신을 위한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어 달라고 요청합니다. ‘아버지’라는 호칭은 일종의 존경의 표시로 제사장이 제사를 집행하고 신탁을 받아 조언하는 역할을 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것입니다. 미성숙하고 책임감이 없는 아이 거류민에게 미가는 책임이 막중한 아버지가 되어 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레위인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성소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해야 하고 거기서 나온 것으로 생활해야지, 어느 개인에게 소속되어 그의 일을 해주어선 안 됩니다. 하지만, 이 레위인은 미가가 제시한 1년의 은 10과 옷과 음식에 만족하며 기꺼이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 레인이 들어갔다”(10)라는 표현은 협상이 성립되었다는 것을 표현합니다.
11-12절은 미가의 집에서 생활하던 레위인의 상황을 정리한 것으로 11절은 레위인의 관점에서 그 생활이 만족스럽다라고 표현합니다. 그리고 레위인이 아들 중 하나 같이 되었다는 것은 미가의 식구들이 그를 한 가족처럼 잘 대어 주었다는 표현입니다. 즉, 이 협상은 서로에게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한 사람의 일방적인 강요가 아니라 서로의 합의 하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강조하며, 본문은 이 어이없는 상황을 미가의 관점과 레위인의 관점에서 반복해서 보여줌으로써 서로의 만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레위인은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보다는 자신이 편하고 만족스러운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즉, 하나님의 제사장이었지만 철저히 사익을 쫓았으며 이를 위해 하나님의 규례를 어기고 율법을 어기는 일이라도 개의치 않는 인물입니다. 이 레위인을 통해 당시 이스라엘 사회가 미가 같은 일반인뿐 아니라 레위인까지 자신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 무질서한 사회였음을 보여줍니다.
13절은 전개의 결론으로, 미가는 레위인이 자신의 제사장이 되었기 때문에, 이제 여호와께서 자신에게 복을 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미가 이 말은 그의 신앙 형태를 잘 보여줍니다. 이제 재단과 우상과 레위인 제사장까지 완전한 형식을 갖췄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대로가 아니라 세속화되고 이방화된 종교 생활에 매달리고 있는 미가의 모습은 복음의 진수는 잃어버린 채 교회의 외형적인 성장과 형식적인 예배, 기도와 헌금만이 기독교의 전부인 줄 알고 이것만 잘하면 복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 시대의 성도들의 모습과 다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지기 않는 삶에는 도덕적 무질서와 해이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진지한 관심보다는 종교적 의형에만 관심이 있기 때문에 의로운 삶의 변화가 나타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기준으로 삼아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나타나도록 힘써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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